00106 그 누가 10여명이라고 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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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군 NPC를 이끌고 있는 준장. 안졸리냐졸려는 샤무와 손을 잡기로 했다.
' 공적치... 이거 뭔가 있다. '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을 잡은 건 아니다. 샤무의 도움이 없어도 판타리아에 유토매니아를 홍보할 수단은 많다. 유토매니아에는 남아도는게 코드다. 과연 현금화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만큼 천문학적인 금액이 시시각각 쌓여간다. 숨 한번 쉴때마다 몇 억이 왔다갔다한다. 화장실 한 번 갔다오면 십억이다. 한달 30조. 하루 1조. 1시간 약 4백억. 1분에 약 7억. 힘 좀 주고 5분동안 볼 일 보면 35억이 생긴다.
어쨌든 게임내 화폐인 코드는 그렇게나 많고, 그걸 사용하면 게임 내에선 못할 게 없다. 그런데도 굳이 샤무와 손을 잡은 건, 바로 '공적치'라는 것 때문이다.
마탑의 마도사들을 사살할 때마다 착실히 쌓여가는게 보인다. '노란머리'는 이 공적치를 편의상 '계급 경험치'라고 불렀다. 아마 이 공적치를 계속해서 쌓게되면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할 수 있는 퀘스트를 받을 수 있을거라고 설명했다.
그저 판타리아인과 중원인을 싹쓸이하는 것 보다 마도사들을 골라죽이는게 훨씬 효율이 좋았다. 효율면에 있어서 아예 비교가 안 되었다. 일반 유저는 아무리 죽여도 1퍼센트가 채 오르지 않는 반면, 마도사를 잡을 때엔 10명 당 0.1퍼센트 가량은 오르는 듯 했다.
' 아무래도 노란머리의 말대로 공적치라는 것은 마도사 혹은 강호를 잡아야만 오르는 모양이야. '
샤무와 손을 잡았다. 샤무는 마도사들을 유인해주는 역할을 하고, 현대의 NPC들이 마도사를 죽인다는게 작전의 핵심인데,
대신 샤무에게도 반을 떼어주기로 했다. 떨구는 아이템도 반반씩 나눠가지고 사살하는 마도사의 수도 반씩 나눠가진다. 샤무는 안전을 확보해서 좋고, 윤석은 0.01퍼센트 극소수의 마도사를 사냥할 수 있어서 좋다.
노란머리가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 저... 그런데 거느리고 있는 NPC의 수가 도대체 어느정도 되는 겁니까?
- 꼭 알아야 합니까?
- 아니...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개인적인 호기심이...
- 좀 많습니다. 이번에 좀 많이 받았거든요.
- 원래 12명정도였다고...
- 예전엔 그랬죠.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많다고 보면 됩니다. 사실 12명만 있어도 마도사들 죽이는덴 전혀 지장이 없거든요. 근데 손으로 쓰니까 너무 불편하네요. 얘기는 그만하죠. 나중에 연락주세요.
윤석은 바쁜일이 있다면서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당연히 윤석의 귀속 NPC들은 회군했다.
이 곳에 모인 샤무는 총 네 명. 모두들 숨을 죽였다. 주인이 옆에 있는 맹견은 크게 두렵지 않지만, 주인이 옆에 없는 맹견은 무섭다. 까딱 잘못하면 물린다. 샤무가 아무리 날고기는 대인전 전용, PK 마법사들이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능력으로는 얼스의 군 NPC에게 상대가 안된다. 게다가 저쪽은.
' 도대체 몇 명인거야... '
몇 명인지 그 수조차도 확실하지 않았다. 척. 척. 척. 척. 일사분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노란머리는 황급히 길드채팅으로 외쳤다.
- 제우스시티 부근은 얼씬도 하지마세요. 얼스 군인들 지나갑니다.
그랬더니 누군가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 아 그럼 꼴 보기 싫은 놈들 제우스시티 쪽으로 보내면 됩니까?
- 제우스시티쪽에 이벤트 몬스터 나타났다고 소문 흘리면 되겠네요.
- 오케이. 제가 마침 그 쪽이에요. 지금부터 경치 돈 많이 주는 이벤트 몬스터 안졸이 출몰하는 겁니다.
* * *
주랑은 윤석 앞에서 언제나 웃었고 언제나 행복해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 오빠! "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주랑은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밝게 웃는 주랑을 보며 윤석도 해맑게 웃었다. 인사말자체는 전혀 해맑지 않았지만.
" 응. 여기서 할래? "
주랑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자,
" 뽀뽀 말이야 뽀뽀. 도대체 뭘 생각하는거야? "
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는 차문을 열고서 보조석 문을 열어주었다.
" 타시죠 사모님. "
" 안 내리셔도 되는데... 그냥 제가 열고 탈게요. "
" 네가 모르나본데 내가 어디가서 매너로 절대 꿀리지 않는 남자야. "
차에 탄 윤석은 몸을 옆으로 쭉 빼서 주랑의 안전띠를 매주었다. 그러면서 주랑의 목에 살짝 키스했다.
" 간지러워요. "
" 더 간지럽게 해줄까? "
" 돼, 됐어요. 여긴 도로라구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됐다는 말은, 사람들이 없으면 괜찮다는 뜻도 된다. 윤석은 피식 웃고선 운전을 시작했다.
" 오빠. "
" 엉? "
" 그 누구야... 스나 말고... 그 NPC는 뭐에요? "
" 음? 누구? "
" 그 있잖아요. 엄청 예쁘고 섹시한 NPC. "
" 아아. 언더스노우? "
" 이름이 언더스노우에요? "
" 엉. 나도 얼마전에 알았어. "
" 음. 그렇구나. "
주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 갑자기 그건 왜? "
" 아니 그냥요. "
주랑을 힐끗 본 윤석은 짓궂게 웃으면서 오른 검지손가락으로 주랑의 볼을 콕콕 찔렀다.
" 너도 야동 같이 볼래? "
" 시, 싫어요. "
야동을 보는 것 까지는 이해하지만, 같이 보지는 않겠다는 듯 주랑은 고개를 휙휙 저었고, 그 때마다 주랑의 머리카락에 배긴 아카시아 꿀향기보다 더욱 달콤한 체취가 윤석의 코에 스며들었다.
" 근데 오빠 있잖아요. 그 NPC... 좀 이상하지 않아요? "
" 뭐가 이상해? "
" 뭐랄까... NPC같은 느낌이 아니랄까... "
윤석이 피식 웃었다.
" 뭐야. 너 지금 컴퓨터 프로그램에 질투해? "
" 그, 그런 거 아니에요. "
" 그런 거 아니면 뭔데? "
" 그냥... NPC가 아닌 거 같은 뭐 그런 요상한 기분이 들어서요. "
" 걔가 나한테 너무 딱 붙어있고 그래서 그런가봐. "
그래서 그런가...하고 주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생각하는데, 윤석이 말했다.
" 네가 만나지 말라면 안 만나고. "
" 그런 건 아니에요. "
요즘 안그래도 말이 많다. NPC와의 섹스. 유토피아의 이용자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또 유토피아가 새로운 세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가면서 생긴 문제다. 윤석과 주랑은 '야동을 보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 NPC치고... 행동패턴이 좀 복잡한 거 같아서요. "
" 그래? "
" 물론... NPC들이 단순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 특별히 오빠한테 명령을 받거나 뭐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데 꼭 제가 옆에 있을 때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뭐랄까... 설명하기 힘든데... 하여튼 그래요. "
NPC들은 보통 몇가지 '대전제'를 가지고 행동한다. 예를들어 군인 NPC는 '판타리아인과 중원인에 대한 적개감' 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고, 그 전제에 따라 행동을 취한다. (단순화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요녀 NPC' 인 언더스노우는 아마도 '윤석을 꼬신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행동을 할 것이 분명했다.
' 그런데 나랑 오빠랑 있으면 은근히 눈치 살피고 좀... 설명하긴 힘들지만... '
정화하게 콕 집어서 설명하긴 힘들어도 뭐랄까 이상한 기분이 들긴 들었다.
윤석이 물었다.
" 그래서. 프로포즈는 언제할까? 언제가 좋아? "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주랑이, 이번엔 표정을 조금 굳혔다. 저번에 엘레베이터가 띵- 하고 문을 열 때 들려왔던 프로포즈.
결혼...할래?
보다 더욱 최악이다.
" 그거 저한테 물어보시는 건... 저에 대한 배려에요? "
윤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 화 났어? "
" 아니요. "
평소라면 화 안났어요, 정말이에요. 라면서 생긋 웃을 주랑이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아니요.' 한마디로 끝냈다.
" 왜 화났어? "
" 화 안 났어요. "
윤석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화가난게 맞는 것 같다. 6년간 솔로였던 윤석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 수희한테 물어보든가 해야지. '
주랑의 집에 도착했다.
" 고마워요 오빠. "
그녀는 문을 열고 내렸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윤석은 창문을 열고 목을 쭉 뺐다. 주랑이 사뿐사뿐 걸어와 키스를 해줄 것이 분명하니까.
" 어라...? "
씨익 웃으며 눈을 감고 있던 윤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랑이 어느새 집으로 들어가 있었다. 윤석은 확신할 수 있었다.
' 뭔가 엄청나게 잘못하긴 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