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31화 (131/244)

00131  1억 vs 7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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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카스텐같은 위관급 장교부터 지략가로 이름높은 구스 하인더나 이선신과 같은 영관급 장교에 이르기까지. 군과 관련되 모든 정보부처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판타리아인들이 집결하여, 자신감을 얻은 채 얼스로 진격하는 것 까지는 괜찮았다.

사실 천명만 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숫자다. 천명이 한 자리에 모이면 그 위세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만명이 모이면 더욱 엄청나다. 바로 옆사람에게 말을 하려고해도 목청을 높여 크게 얘기해야하며 높은 곳에서 만명의 사람이 떼거지로 모여있는 것을 보면 사람으로 바다를 만든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십만쯤 되면 더이상 세기를 포기한 숫자라고 보면 된다. 그냥 많다 수준을 벗어나서 엄청나게 많은 숫자고 십만은 충분히 '대군'이라 불릴만한 전력이었다.

그 전력들이 포탈게이트를 타고 이동해오는 통에 그 동안 숨겨져있던 포탈게이트의 위치들이 하나 둘 씩 발견되었다.

그래서 지략가들이 바빠졌다. 설정상, 서로의 포탈게이트의 위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이젠 알 수 있게 된 거다.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고 수십만씩 모이는데 그 위치를 모른다면 정보부처는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유명무실한 기관일 것이다.

얼스의 지략가들은 바빠졌고, 포탈을 타고 넘어온 판타리아유저들은 자신감에 차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사람뿐이다. 게임을 하면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장면은 처음 본다. 10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사람이 모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이끌어낼만큼 위세가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무리가 생기면 무리를 지휘하는 리더가 생기기 마련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앞장서서 사람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생긴다. 때론 인망이 높은 사람이, 때론 돈이 많은 사람이, 때론 힘이 센 사람이, 때론 똑똑한 사람이, 때론 목소리 큰 사람이 주축이 되어 사람들을 움직인다.

10만 대군을 한꺼번에 인솔할 능력자는 이 자리에 없었지만 그래도 각자 그룹 별로 그룹을 통제하는 리더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는 네임드유저들도 꽤 됐다.

" 와... 대박이다... 포탈이 여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 장난 아니네. 동시접속자 5억이다 5억이다 말만 들었지... 모이니까 얄짤없네. "

" 죽어도 나는 안 죽겠다. 이거 다 죽이려면.... 어휴. "

상상하기도 힘들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만큼 이 10만이란 숫자가 주는 압박감과 위세는 대단했다.

" 얼스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 정도 인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 "

" 걔넨 7천명밖에 안 된다며. 뉴스에 난리도 아니었잖아. 얼스 쪽에서도 완전 눈물 빨고 장난 아니라던데. "

" 무기가 좋으니까 이 정도 핸디캡은 되야지. 근데 아무래도 우리가 이길 거 같다. "

포탈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얼스의 곳곳에서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몇만까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판타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7천명으로 1억을 이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이면 안다. 그 중요하다는 전체 길드퀘스트인데, 아직까지 얼스로 넘어간 마도사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건 아직 판타리아에 가능성이 없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잔뜩 기대에 부푼 판타리아 유저들은 '얼스를 사냥하자'라든가 '얼스에게 호된 맛을 보여주자'와 같은 구호 비슷한 함성을 내지르며 보무도 당당하게 얼스를 향해 진격했다. 복장도 가지각색. 클래스도 가지각색. 레벨도 천차만별.

"저, 저기 뭔가 떨어지... "

그런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져내렸다. 몇몇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오 신이시여... "

* * *

한 곳에 갑자기 십만이 넘는 인파가 득실거리는데 그것도 지하에 숨은 것도 아닌데 잡아내지 못한다면 얼스의 첨단위성이라고 할 수 없다. 얼스는 자가용조차도 '날아다니게 만든' 최신식 과학기술을 보유한 대륙이다. 인공위성을 통해 좌표를 찍고.

" 발사. "

윤석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연장로켓포가 연기를 뿜어내며 순식간에 발사되었다. 이번 기회에 재래식 무기들을 실컷 낭비하자는 심산이다. 현대 육군전에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데에 가장 최적화되었다는 최신 다연장로켓포도 얼스에 있어선 재래식 무기였다.

어차피 훈련을 할 때에도 그렇게 많이 쓰는 무기도 아니었다. 이제 무기의 수명이 얼마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침공은 얼스에게 무척 좋은 기회가 되었다.

흔히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라고 줄여서 부르는 M270. 한국육군이 보유한 대표적인 대구경 다연장 로켓포로써 60초 이내에 12발의 로켓을 발사하는 강력한 로켓이다. 현실에서는 강철비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사정거리는 약 32km인 M26 로켓탄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고, 이 M26탄에는 600개가 넘는 M77 자탄이 내장되어 있어 사격목표 지점 부근의 상공에서 터져 지상을 타격하게 된다. 일종의 확산탄이라는 소리다.

축구장 세개의 넓이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키는 살상무기가 하늘에 뿌려졌다. 하늘에서 로켓비가 내렸다. 로켓은 단순히 폭발해서 무서운 게 아니다.

로켓이 폭발하면 주위의 모든 걸 날려버린다. 공기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공간을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 진공을 메꾸기 위해 강한 압력으로 대기가 움직이게 되는데 그 여파로 사람의 내장은 다 터져나간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폭발하는 게 아니다. 모탄 안에서 수많은 자탄이 뿜어져 나온다. 로켓포가 비처럼 떨어져내렸다며 로켓포 내의 자탄은 그 비를 수천토막으로 잘라놓은 것만 같았다. 하늘이 철로 뒤덮였다.

쿠과과과광!!

포탈게이트 주변은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모두가 바닥에 엎드렸다. 아무리 게임이어도 현실감이 넘치는 곳이다. 공포 영화만 봐도 찔끔찔끔 놀라는 것이 사람인데, 머리 위로 떨어져내리는 강철비에 모두들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폭발음이 멎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시체로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사람이 10만이나 되다보니 아직 살아있는 사람도 꽤 됐다. 적어도 수천명은 넘어보였다.

" 끄, 끝인가? "

" 재, 재장전? "

아무래도 재장전이 아닐까 싶다. 그도 아니면 얼스의 무기사용에도 일종의 제약같은 것이 있어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어쨌든 지금은 살아있고, 공격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 비켜! "

포탈을 타고 이동하려고 서로를 밀치기 시작했다. 십만원이나 십만 일원이나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마찬가지로 판타리아인들의 눈에, 다른 판타리아인들은 개미떼처럼 많기만 했다. 아무리 많은 수가 죽어버렸다고는 해도 어차피 많다. 포탈을 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방해꾼 밖에는 안 됐다.

칼부림이 났다. 어떻게든 빨리 이 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또다시 공격이 이어질 수도 있다.

" 비키라고! "

카오가 되는 것도 아랑곳 않고 몇몇은 실제로 유저들을 죽여버리며 포탈 쪽으로 이동해가기도 했다.

그런데.

" 저, 저건 또 뭐야! "

" 괴상한 게 날아온다! "

말 그대로 괴상한 것이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속에서나 나올법한, 어찌보면 부메랑 처럼 생긴 비행물체가 날아오고 있었는데,

< If you see this, you are fucked >

하얀색 글자가 보였다.

거대한 비행기의 몸통에 새겨진 글자였다. 비행기가 아니라 UFO나 비행접시 같이 생겼다. 외계인이 비행기를 만든다면 저런 모양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괴상했는데, 저 모습은.

" B, B, B,B-2다!! "

현실에서, 미국이 자랑하는 스텔스 전략폭격기 B-2를 본따만든 얼스의 군용물자다. 물론 정식 명칭은 B-2가 아니다. 얼스에선 '고구려'라고 부르는 전폭기다. 그러나 B-2든 고구려든 판타리아인들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스펠을 외워! 격추시키라고! "

" 원거리 딜러들! 빨리 쏘란 말이야! 저공비행하잖아! "

" 빨리! 빨리 좀 움직여 이 밥버러지들아!"

아비규환이었다. 이미 포화를 경험한 유저들은 서로를 밀치고 서로를 밟으며 도망치기 바빴다. 무서운 영화만 봐도 비명을 지르고 찔끔찔끔 놀라는 게 인간이다. 여긴 가상현실이다. 현실감이 남다르고, 정말로 전쟁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이건 상대가 안 된다. 뭐 어디서 쏘는지 보여야 반격을 하든지 말든지 할텐데, 난데없이 로켓포가 날아와 사람을 모조리 쓸어버리질 않나 지금은.

" 흐억! "

사람들이 눈을 가렸다. 저공비행하던 B-2가 갑자기 고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 스텔스기가 언제부터 수직이착륙이가능했냐고! "

고오오오오-!!!

저공비행하던 고구려가 초 고압 초 고열의 기체를 뿜어냈다.

그건 단순히 수직이착륙을 위한 기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있던 수십의 유저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화염방사기를 뿜어낸 것 같았다. 고압 고열의 기체를 맞이한 유저들이 녹아내렸고 그 부근의 모래가 푹 파여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흙먼지가 핵폭풍처럼 몰아쳤다. 안 그래도 뜨거운 사막이 더욱 이글이글 익어버렸다.

고구려가 수직으로 고도를 높였고, 마법사들과 궁수들의 공격은 고구려에게 닿지 못했다. 고구려의 수직기동은 굉장히 빨랐다.

그리고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어져버렸다. 고도가 높아져서가 아니었다. 색깔이 변했다.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덧씌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아... 아름다운 도대체 무슨 수작이야..."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왜 굳이 저공비행을 해서 날아온 것인지도 모르겠고 왜 굳이 폭격기를 날린건지 모르겠다. 얼스에서 마음만 먹으면 다연장로켓포로 이 곳을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중계를 접하고 있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사람들은 왜 얼스가 이러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건지 분석하기 바빴다. 가장 유력한 설은 '얼스의 무기는 딜레이가 길다!'라는 것이었다. 얼스의 군에 몸담고 있는 유저가 없다보니 각종 추측과 설이 난무했다. 실시간으로 전세계에서 수만가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어쨌거나 그건 현실세계에서의 일이고, 사후디 사막에서 눈치 빠른 몇 몇은 로그오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원이 로그오프를 하려고 하다보니 렉이 걸리기도 했다.

" 아름다운! 로그오프 좀 되라고! 사랑스럽다 진짜! "

그 사이, 고구려의 배가 열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배가 열리면

뭐가 나오지; 아기가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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