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1 베스트 드라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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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단순무식했다. 주랑처럼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애초에 사장은 리스트에 등재된 11명을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갑작스레 면접이니 뭐니한 것도 일종의 쇼다. 다른 텔러들을 긴장학게 만들면서 상은 확실히 주고, 11명은 가차없이 해고다. Death Note에 기록된 순간 기회따윈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수희를 괴롭힌 예은과 민혁과 잤다느니 어쨌다느니 헛소문을 퍼뜨린 정숙은 아무리 싹싹 빌어도 용서 안 할거다.
"정숙씨는 원래 분란 잘 일으키고 다니죠?"
"무, 무슨 말씀이신지..."
"뒷담화는 나쁜 겁니다. 루머 만들기는 더더욱 나쁘고요. 그 루머의 질조차 낮으면 더더더욱 나쁘고요."
정숙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사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정숙은 남 뒷담화하기 무척 좋아하고 나쁜 소문 퍼뜨리는 걸 무척 즐겨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인식자체가 별로 없었으니까.
"애초에 별로 의식 자체가 없죠? 그게 더 나빠요."
윤석은 Death Note를 또 넘겼다. 이건 면접이 아니었다. 면접이 아니라 취조였다.
"혜원씨는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네?"
"커피는 알아서 타드세요. 제가 여러분 고객 상담하라고 고용했지 심부름 시키라고 고용한 거 아니잖아요? 심지어 저도 커피는 제가 타먹거든요."
이제 슬슬 윤곽이 잡혀간다. 텔러끼리는 보통 커피심부름같은 거 시키지 않는다. 심부름이 아니라 부탁정도면 모를까. 그런데 일부러 수희에게 커피심부름 시켰다. 이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 스트레스를 주다보면 제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왜 괴롭힘 당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의외로 수희는 밝게 웃으며 심부름을 해냈다.
그 밝은 웃음 뒤에 Death Note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말이다.
"저, 전 커피 심부름 시킨 적이 없는데요..."
진짜 없다. 딱 한명한테만 시켰다. 200명 중 1명이다. 그 정도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질 않은가.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한명이 김수희라는 거다. 평소에 모의고사를 백점씩 맞아도 막상 수능 때 시험 망치면 말짱 황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아무리 잘했어도 김수희 Death Note에 걸려들면 끝이다.
졸지에 내부고발자가 된 김수희를 향해 원망의 눈빛이 쏟아졌다. 그건 윤석을 더 열받게 만들었다. 그런데 예은이 말했다.
"이건 잘못된 처사입니다. 사장님은 지금 한 신입사원의 바람직하지 못한 내부고발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려 하고 계십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내부고발이요?"
윤석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물론 Death Note에는 사적인 감정이 많이 들어가있다. 그러나 거짓말을 쓰지는 않았다. 어딜가나 이런 부류들 꼭 있다. 모든 일에 핑계를 만들고 자기 탓이 아닌 남 탓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언제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해도 그게 왜 잘못인지 모르고, 그 잘못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평생 그렇게 남 탓 하면서 살아요. 그 인생 퍽이나 즐겁겠네요."
윤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 여기 모이신 11명 전부를 해고합니다. 다시는 이 회사에서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 * *
예은이 씩씩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걸 모르겠다. 잘못한 건 자신들이 아니라 치사하게 내부고발이나 한 저 신입사원이 문제인 거다.
"저기. 이수희씨."
예은이 씩씩대며 수희에게 걸어갔다. 폼만 보면 머리채라도 잡을 것 같았다. 졸지에 해고당한 다른 텔러들은 수희를 노려봤다. 만약 예은이 나서지 않았으면 누군가 한 명은 일어났을 거다.
"제 이름 틀렸는데요? 저 이수희 아니고 김수희인데요."
문이 열렸다. 민혁이다. 텔러들은 윤석의 얼굴은 몰라도 민혁의 얼굴은 안다. 민혁은 회사관리를 위해 매일같이 출근하니까.
"어라. 수희야. 너 계속 여기 앉아 있을거야?"
새파란 신입사원인 '이수희'가 일어섰다. 이수희는 대표이사인 민혁에게 스스럼없이 반말을 텄다.
"이제 갈거야."
민혁은 그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민혁은, 갑작스런 이사의 등장에 숨 죽이고 있는 텔러들을 안쓰러운 듯 쳐다봤다.
"이 분들이 그 분들이야?"
이분들이 그 분들이냔다. 수희도 모르는 말이다. 그래도 눈치껏 대충 알아들었다. 민혁이 가까이 다가와 수희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었다.
"내부 감사하느라 수고했어."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수희는 가만히 있었다. 대신 다른 텔러들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이제 모든 게 설명이 된다. 수희는 내부고발자가 아니었다.
내부감사였다. 그것도 비밀 감사. 회사가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기만해도 안 된다는 걸 이사도 알고 있었나보다. 보통 감사는 미리 언질을 주고 한다. 그런 감사는 별로 소용이 없다. 미리 준비 다 해놓는데 감사는 무슨 감사란 말인가.
예은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알겠다. 이수희가 아니라 김수희라고 재차 강조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김수희는 사장의 동생이름이 아니던가.
김수희에게 커피심부름을 시켰던 정혜원도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신입사원이 아니란다. 신입사원이 아니라 무려 내부감사원이란다. 그런데 그 감사원이 사장의 하나뿐인 친동생이란다. 그 감사원한테 뭣도 모르고 커피심부름이나 시키면서 타박 놓았다. 김수희에게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색이 시꺼매진 텔러들을 보며 수희가 말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감사가 잘 진행 됐네요. 실적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니 어쩌면 실적이 없었어야 좋은 것이었을까요?"
수희는 드라마에서 보던, 악역 역할의 배우가 톡 쏘듯 말하고선 민혁과 함께 자리를 떴다. 밖에서 민혁이 킥킥대고 웃었다.
"너 연기 진짜 못한다."
"뭐가!"
"국어책 읽는 줄 알았어."
"오빠!"
민혁은 수희의 말을 따라했다. 어찌나 어색한지 막장 드라마의 악역은 커녕 시트콤의 바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수희는 울상을 지었다. 천생 악역은 못할 노릇인가보다.
"어쨌든 고마워요. 덕분에 감사가 잘 진행 됐네요. 누가 시킨건지는 모르겠지만."
"미워!"
* * *
나영은 신나는 마음으로 취재를 왔다. 이래서 친구를 잘 둬야 한다. 이게 바로 인맥의 힘이다. 윤석과 단독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내용이 조금 무겁다.
"그니까... 전 게임매거진에 종사하고 있는데..."
윤석이 말한 것은,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관련자들을 엄중처벌했다는 내용이다.
"그럼 기자회견이나 하죠 뭐."
"아, 아니에요. 저도 충분히 핸들링(*handling:다루다,취급하다) 가능해요!"
나영은 테이블 하나를 놓고 윤석과 마주앉은 상태다. 그녀는 취재 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관심이 있는 듯 다리를 꼬았다. 다리를 꼬면서 윤석의 다리를 일부러 스쳐지나갔다. 푹 패인 형태의 검은색 옷을 입었다.
그 옷은 가슴골을 확연히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딱 붙는 형태의 스타일로 차려입은데다 H라인의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건강하고 탄력있는 S라인이 상당히 육감적이었다.
쇄골 아래에는 LOVE라는 글자가 타투로 새겨져 있었다. 그건 나영의 외모와 꽤 잘어울렸다. 단순한 포인트 타투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남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화장도 제법 진하게 했다. 붉은색 입술을 혀로 살짝 핥았다. 다른 건 몰라도, 색기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희 둘 밖에 없나요?"
"아뇨. 밖에 수정씨 있어요. 하여튼 빨리 처리해주시면 고맙겠네요. 그리고 입술에 뭐 묻었어요? 왜 자꾸 핥아요?"
나영은 무언가를 느끼듯 눈을 게슴츠레 떴다. 확실히 색기는 넘쳤다. 다리를 꼬면서 스치는 것 하며, 손가락 움직임 하며, 표정하며, 남자 홀리는데는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가슴도 굉장히 큰 편인데 팔짱을 끼어 강조를 하거나, 몸을 테이블 앞까지 밀착시켜 가슴을 테이블 위에 얹어 놓는 등 대놓고 색기를 발산했다.
예전 같았으면 홀라당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물론 나영의 색기는 인정하지만 '밤의 주랑'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낮의 주랑과 밤의 주랑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웨딩드레스를 입은 주랑을 보고 난 뒤, 윤석은 눈 앞에 김태희가 와도 눈도 꿈쩍 안 할거라 확신했다.
"자꾸 그러면 입술 허니까 뭐라도 좀 발라요. 전 이만 일이 있어서."
윤석은 가볍게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말하자면 여론몰이다. 그리고 이건 11명의 텔러들의 경력에, '유토매니아에서의 근무'를 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유토매니아의 기업이미지를 높임과 동시에 11명에 대한 제재이기도 했다.
유토매니아가 워낙 이름 높은 기업이 되었다보니 이 곳에서 일한 것은 하나의 우대받는 경력이 될 수 있다. 그걸 막아버렸다. 사건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했고 이제 해고당한 텔러들은 유토매니아에서 일했던 것이 경력이 아니라 숨겨야할 치부가 되어버리고 만거다.
"사장님. 유토피아 내에서 뭐 재미있는 건 없나요?"
윤석을 꼬시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다 생각한 나영은 화제를 돌렸다. 윤석이 발걸음을 멈췄다.
"글쎄요. 현대클래스가 마도사를 박살내놨는데... 어쩌면 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 * *
오월컴퍼니. 그들은 유토매니아와 계약을 성공함으로써 많은 이득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건 윤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판타리아에는 수희가 있다. 그것도 최상급 네임드유저라 판타리아의 소식을 구하기엔 적격이었다. 또한 이재운검사도 있다. 판타리아에선 '노란머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중이며 수희보다 더 유명한 네임드 유저다. 마도사가 해체된 지금 최고의 마법사 클랜이라 할 수 있는 샤무의 길드장이기도 하고.
그러나 중원에는 믿을만한 정보통이 없었다. 불기둥승부사 -정차장의 아들 정은현의 닉네임-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하여튼 오월컴퍼니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한 번의 암살시도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중원의 살수들은 적외선 탐지에도 걸리지 않는 특수한 스킬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단다. 그러나 괜찮았다. 아직까지 유저의 능력으로는 수호자의 군복을 입은 윤석을 해치지 못했다. 습격할 거라는 걸 알기만 하면, 금세 제압할 수 있다.
그리고 윤석은 중원으로 진출했다. 판타리아야 여러번 오갔지만 중원은 온 적이 별로 없었다. 소총, 스나, 포가 윤석 바로 뒤에서 천천히 따라 걸었다.
"여기...좋다...맑다... 토끼... 귀엽다... 작고... 빠르다... 포는... 안락함을 느낀다..."
포는 주위를 둘러보며 경치에 감탄했다. 판타리아의 숲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판타리아의 숲은 거대한 느낌이다. 굵직굵직하고, 커다랗고 화려한 식물들이 잔뜩 있는 곳. 중원은 판타리아보다는 약간 얄상한 느낌이다. 얇지만 높이 솟은 나무들. 굳이 비유하자면 활엽수와 침엽수같은 느낌이랄까. 울긋불긋 화려한 식물도 별로 없었다. 마치 유명한 동양화 화가가 녹색과 갈색으로 심혈을 기울여 그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기척이 느껴집니다. 사살합니까?"
"우리 이외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죽여도 좋아."
그 말에 스나가 움찔했다. 씨익 웃었다. 단도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나...무섭다... 오싹한...기분이다."
"저는 무섭지 않습니다."
스나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나는 윤석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볼이 약간 붉어졌다.
"저는 귀여운 편입니다."
그리고선 단검을 혀로 핥았다. 소총과 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윤석을 쳐다봤다. 스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중장님께서 귀엽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총과 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단도를 혀로 핥고 있는 -심지어 며칠 전, 저 단도로 누군가의 목을 따버리지 않았던가-모습이 어딜봐서 귀엽단 말인가.
"그래. 스나는 귀여운 편이지."
윤석의 말에 스나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까딱 숙였다. 맞다고 동의하는 것 같은데 표정은 없지만 볼과 귀가 아주 조금 붉어져 있었다.
"사살하는데, 최대한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살해."
소총이 대답했다.
"사살하겠습..."
그랬다가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서 명령을 다시 내렸다.
"스나. 전방 12시. 조용하게 처리해라."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짓고있던 스나는 그제서야 씨익 웃었다. 스나가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앞으로 다가갔다. 조용히 죽이는 건 자신있다.
그런데 윤석이 갑자기 말렸다.
"아 맞다! 스나! 멈춰!"
누군가의 목에 단도를 갖다대던 스나는 움찔했다. 스나의 단도가 누군가의 목.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맥을 아주 살짝 찔렀다. 위험할 뻔 했다. 그 누군가는 침을 꿀꺽 삼켰다.
"%@%&@^%%@&@^*!"
"@%%^@%%&@#$^*%$!!"
윤석이 멋쩍게 웃었다.
"맞다. 깜빡하고 있었지 뭐에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윤석의 표정과 제스쳐로, 윤석의 말을 알아들은 남자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묻어났다. 계약관계여서 아무말도 못했지만 속으로 윤석을 욕했다. 까딱 잘못했으면 죽을 뻔 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 법이다. 누군가 실수로 깜빡하고 있으면, 또 다른 누군가는 황천길 간다. 그래도 표정관리 했다. 지금은 단순히 게임시간이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다.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며 윤석을 보며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윤석이 말했다.
"아놔 이 아름다운. 어쭈구리 표정봐라. 깜빡했을 수도 있지 정색하기는. 이 것들을 그냥 콱!"
어차피 말 안통한다. 겉으론 웃었다. 스나도 씨익 웃었다.
"죽입니까?"
소총도 지지 않았다.
"사살합니까?"
윤석과 만나기로 했던,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목숨가지고 죽이네 마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오월컴퍼니의 세 명은 최대한 웃어보이면서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뭐라 하는 거야?"
"몰라. 웃고 있잖아. 나쁜 얘기는 아니겠지."
"말로만 들었는데 저 NPC 진짜 이쁘다."
"그건 그렇네. 저렇게 예쁜 NPC를 어떻게 귀속시켰대?"
스나가 재차 확인했다.
"살립니까?"
나쁜 얘기는 아닐거라 확실한 오월컴퍼니의 세 명은 해맑게 웃어보였다. 제딴에는 매우 호의적인 웃음이었다. 스나가 말했다. NPC라서 언어순화가 안 됐다.
"아무래도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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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이 아름다운. 깜빡했을 수도 있지 정색하기는."
두 번 깜빡했다간 중원 쓸어버릴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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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끄는 감이 있어 연참하겠습니다...!
아침에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