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1 마교와의 전쟁 ep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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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카스텐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사황성주는 그 무엇보다도 이득과 효율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조종하기는 힘들지만 협력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한다면 말입니다."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본론만 말해, 라고 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이미 3개 함대를 잃었다. 이대로라면 퀘스트 실패다. 그냥 실패도 아니고 항공모함까지 포함된 전력을 잃고 실패했다. 이건 문책을 넘어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모를 일이다. 구카스텐의 말을 경청했다.
윤석이 평소와 다르게 자신의 말을 경청하자 구카스텐은 설명에 더욱 열을 올렸다.
"이미 사황성주는 동해검문을 설득하여 동해바다를 내주었습니다. 사황성주가 원하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코드, 그리고 마교의 세력 약화입니다. 현 시점에서 사황성주는 그 외의 다른 것들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사황성주가 원하는 그 두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방안을 제시하면 됩니다."
멀리도 돌아왔다. 드디어 본론이 나오나 싶어 윤석은 구카스텐의 말을 더욱 경청했다.
"그러니까 상대와 협상을 벌일 때의 전략은, 상대의 성품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금 같은 경우는..."
"본론만 말해."
결국 윤석은 구카스텐의 말을 끊었다. 가끔가다 도통 이해못할 말은 엄청나게 짧게해서 이해못하게 만들고, 또 가끔가다 어떤 말은 장황하게 해댄다. 구카스텐의 입장에서야 억울하겠지만 어쨌든 군인은 까라면 까는 거다.
"바닷길은 이미 마교에 의해 완전히 차단당했습니다."
"나도 알아."
"그렇다면 바닷길을 다시 만들면 됩니다."
"그러니까 방법이 뭐냐고!"
윤석은 슬슬 짜증났다. 구카스텐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의 입장에선, 어떤 것이 윤석이 어려워하고 쉬워하는 건지 갈피를 못잡겠다. 천재는 범재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천재가 보기엔 지극히 당연한 것이 범재에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보니 구카스텐은 어떤 것을 열심히 설명해야하고, 어떤 것을 간략히 설명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구카스텐은 윤석이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약간 고민하다가 답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바로 함대가 아닌 제 8전투단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 * *
윤석은 은미를 불렀다. 은미는 현재 무팀의 부팀장으로 있으며 연봉은 2억 5천만원이고, 은미상단을 운영하고 있다. 은미상단도 어느덧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초기에 쏟아부은 자본을 회수하려면, 그러니까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그 은미상단을 운영하는 은미는 작은 회의실에 앉았다. 윤석과 직접 대면이다. 그냥 오빠면 모르겠는데 사장과 사원으로 앉아있으니 조금 긴장 됐다.
'저번에 그... 보증금 때문에 그러시나?'
윤석과 상의도 없이 30조코드를 써버렸다. 안 그래도 은미상단은 누적적자가 무려 조단위다. 이제 흑자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 뿐이다. 그렇다보니 저번에 30조를 보증금으로 날려먹은 것이 -돌려받는 돈이라고 해도 30조다. 하루 하루 지날때마다 이자만 따져도 엄청난 돈이 된다.- 신경 쓰였다.
'수, 수희가 하라고 그런 건데...'
수희와도 제법 많이 친해졌다. 이제 말도 텄다. 동갑이어서 그런지 빨리 친해졌다. 한편으로는 수희가 부럽기도 했다. 보증금에 벌벌 떠는 자신과는 달리 그런 결정을 그 자리에서 턱턱 내릴 수 있는 위치이지 않은가. 오빠 참 잘 만났단 생각을 한 번 해봤다. 그 때 윤석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 괜찮으니까 앉아있어."
윤석은 일어나려는 은미를 앉히고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은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혼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사황성주와 협상을 좀 해줘야겠어."
"협상이요?"
은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혼을 내려고 부른건 아닌 것 같다.
"네가 사황성 소속의 땅을 좀 사야할 것 같아. 사는게 가장 좋고, 그도 안되면 대여라도 좋아."
윤석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아. 내 참모의 예상으로는 약 300조 코드 가량을 소모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구카스텐은 '300조 코드'에 대한 근거로 현재의 상황 -함대가 격침되고 바다를 빼앗긴 상황,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보상금까지-을 제시하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300조 코드 정도를 쓰게 된다는 거다.
"사...삼백조..."
삼백조 코드. 정말 엄청난 돈이다. 그걸 개인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다. 참고로 한국 국방비가 약 30조다. 그 돈의 무려 10배다. 현금과 코드가 거의 동일시 되는 세상이다. 은미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반드시 협상에 성공해야 돼. 네가 해야 할 일이 뭐라고?"
"그, 그게..."
은미는 당황해서 말을 못했다. 사장 앞이라 긴장한 탓도 있고 어마어마한 금액의 코드 앞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윤석이 다시 한 번 정리해줬다.
"첫 째, 땅 매입 혹은 대여. 둘 째, 땅 사용에 대한 사황성주의 재가. 셋 째, 우리의 안전. 이 세가지를 확실히 문서화해서 기록을 남겨."
"네."
"아, 그리고 팁을 몇 가지 말해줄건데... 뭐더라..."
윤석은 구카스텐이 팁이라고 알려준 몇 가지 사항을 은미에게 더 전달해줬다. 은미는 그 것을 달달 외웠다.
"별로 쓸데없어 보이긴 해도..."
멍청한 NPC가 하도 꼭 전해달라고 애걸복걸을 해서 말이야. 라는 말을 하려다가 슬쩍 말을 바꿨다.
"아마 쓸모가 있긴 있을 거야."
사장님의 팁이다. 은미는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임무를 주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몸소 팁까지 챙겨줬다. 고마웠다. 정말 입사 잘한 것 같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 * *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다.
얼스의 중장이 가지고 온 철덩어리들은 제대로 힘을 써보기도 전에 멀지 않은 - 앞바다라고 하기에는 조금 먼- 바다에서 모두 침몰 당했다.
"그러나 그 고철덩어리들을 저희 땅에 들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사황성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아니지만 조금 거슬린다.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그들의 고철은 한낱 고철이 아닙..."
말을 하던 NPC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무언가 말을 더 하고 싶기라도 한건지 입을 벌린 채, 머리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마교 졸개들도 쳐부순 고철들이다. 그런데 내 앞마당에서 내가 두려워 할 것 같나?"
조용해졌다. 모두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황성주는 무력을 행사하고 나서, 은미를 쳐다봤다. 은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 사장님 말이 맞았어...'
사황성주는 어떤 식으로든 기선을 제압할 거라고 했다. 아마도 반대하는 자를 숙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기를 죽임과 동시에 얼스의 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암묵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여, 역시 괜히 사장님이 아니구나.'
참모 NPC 구카스텐의 팁을 전해준 것 뿐이지만, 은미의 머릿속에서 윤석은 훌륭한 책략가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잔뜩 겁을 먹은 척을 하라고 했어. 그 다음은... 협상 조건을 얘기 하겠지...?'
은미는 겁 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음미하듯 바라보면서, 사황성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 봅시다. 은미상단주. 매입도 괜찮고 임대도 괜찮겠군. 그러나 임대보다는 아예 팔아버리는 것이 낫겠어."
은미는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말이 무조건 맞는 것 같다.
'매입을 하고 나서, 또 다시 돈을 청구할 거야. 위험한 물건들과 병력을 주둔시키는 거니까 땅과는 따로 이용료를 받을 거라고 했어. 얼스의 병력을 감시할 인원들에 대한 돈도 청구될 거고...'
사황성주는 구카스텐이 예상한대로 움직였다.
같은 시각.
천재 NPC 구카스텐은 윤석에게 구박을 당했다. 구카스텐의 설명을 듣던 윤석이 폭발한 것이다.
"아오! 좀 알아듣게 말을 좀 해봐!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 * *
별도의 보증금 100조.
축구장 다섯 개 넓이의 토지 약 30조.
병력을 주둔시키는 대가로 하루 1조.
동해의 섬 하나를 지우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사황성에서 사황성의 섬이라 주장했고 윤석은 이를 받아들였다- 100조.
칼만 안들었지 완전히 날강도다. 사황성 입장에선 땡 잡은 거다. 덤터기를 제대로 씌웠다. 사황성에서는 덤터기를 제대로 씌웠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거의 구카스텐의 계산대로 움직였다.
윤석은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분위기 한 번 살벌하네."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비록 수호자의 군복이 있다지만 믿을 수 없다. 마교의 엘리트 NPC들이 함대를 박살냈다. 그 말은 즉, 사황성의 엘리트 NPC들도 얼추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고 수호자의 군복이 완벽하게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차하면 수호자의 결계를 펼친 다음 로그오프를 해야한다.
여긴 사황성의 세력권이다. 까딱 잘못해서 사황성의 무인과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매우 피곤해진다.
군인들도, 무인들도 모두 긴장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적이다. 서로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이는 적군이 같은 장소에 모였다.
다만, 스나만이 조금 덜 긴장한 것 같았다.
"죽입니까?"
"아니."
"농담 입니다."
스나의 말에 포와 소총이 경악했다.
"스...스나가...노...농담을 했습...니다... 저...저희 죽는 거...아닙니까? 포는... 아주 아주 무섭습니다..."
소총도 침을 꿀꺽 삼켰다.
"워...원사님이 쫄면 어떡합니까..."
"쫄지 않았다."
또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목젖이 위 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윤석이 피식 웃고 말했다.
"거 봐. 농담도 하고 그러니까 귀엽잖아."
스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누가봐도 부끄러워하는 모양새다. 윤석은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현재 남은 병력은 약 3천명. 그리고 귀속 병력 '제 8전투단'.
임시로 지어진 막사 안에서 윤석이 장교들을 모았다. 이 곳에 장교가 아닌 NPC는 단 세 명. 윤석의 호위를 맡고있는 소총, 포, 스나 뿐이었다. 윤석이 말했다.
"새벽의 여명작전을 실행한다."
포가 갸웃했다. 소총에게 속삭였다.
"새벽의 여명작전....이 뭡니까...? 들은 거 있습니까 원사님...?"
보아하니 장교 NPC들도 처음듣는 내용인 듯 우물쭈물대고 있었다.
윤석이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구카스텐 소령이 설명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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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역시 괜히 사장님이 아니구나.'
은미야. 아니야. 너 속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