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3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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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쳤다. <아니? 이럴 수가! 이게 어찌된 일이지!> 로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희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을 플레이하고, 플레이를 하다보면 히든클래스라는 것을 얻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면 그 능력을 가지고 이세계(異世界)에 떨어진다거나 현실에서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거나.
이 책 역시 그랬다. 벼락을 맞았는지 어쨌는지 주인공은 게임속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책을 덮었다. 책을 들긴 들었는데 독서를 하고 싶어서 책을 든 건 아니었다. 잠깐 눈을 감아봤다.
신계로 입성하겠다고 말했을 때에 화면이 바뀌었었다. 정지해있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고 나를 흠씬 두들겨 패주겠다던 남자도 사라져 있었다. 여기가 신계인가 싶어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 거려보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기척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중원 NPC들과 유저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신계라고 해봐야 별 것 없나보다, 라고 생각했던 순간 슈퍼컴퓨터 스파크가 말을 걸어왔다.
[최상위 명령 프로토콜이 실행되었습니다. 사용자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 때 뭔가 이상하기는 했었다. 로그아웃을 해야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로그아웃이란 건 평소에 했던 로그아웃과는 달랐다. 게임 속에서의 가짜 로그아웃이 아닌, 내 원래 세상으로의 진짜 로그아웃을 해야한다고 느꼈다.
[최상위 명령 프로토콜 실행 완료. 연결을 해지합니다. 유토피아 CLEAR 조건 불충분. 재접속을 요구합니다.]
로그아웃을 하려던 순간 스파크가 또다시 무언가를 말했다.
[사용자는 본 최상위 명령프로토콜에 대하여 함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비밀이 새어나가게 될 시, 최상위 명령프로토콜에 의한 실행은 종료되고 유토피아는 CLEAR되게 됩니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었다. 비밀의 유지해야한다고 했다. 하부장이랑 얘기를 할 때에, 넌지시 떠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부장은 신계로 가는 것의 선택유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몰랐다. 나는 굉장히 특별한 경우였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신계에 접어들 조건을 만족하게 되면 게임은 클리어 되고 저절로 연결이 해지된다나.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임 속에서 (주)유토피아는 당연히 유토피아의 세계에 간섭할 수 없었다. 그 (주)유토피아의 운영진은 진짜 운영진이 아닌 그저 소프트웨어와 비슷한 도구였을 뿐이고, 따라서 그들은 유토피아를 직접 만들지 않았다. 불세출의 어떤 천재 -혹은 외계인. 정체를 알 수 없는- 가 갑자기 나타나 유토피아를 만들어 냈고 (주)유토피아의 사장에게 유토피아 세계를 유지하고 만들어가라고 주문했단다.
게임 속 하부장과 유토피아의 사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었고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그 세계에 간섭할 수 없다고 고백했었다. 그것 외에는 운영진이 유토피아의 세계에 간섭할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건 게임 속 회사인 (주)유토피아의 얘기다. 진짜 현실의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유토피아를 구현해 냈으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유토피아를 만든 운영진들이 유토피아의 최종 선택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건 마치 게임속의 (주)유토피아와 비슷하지 않은가.
이유는 잘 몰랐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슈퍼컴퓨터 스파크가 게임 속 슈퍼컴퓨터가 아닌, 현실의 슈퍼컴퓨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부장과 헤어지고서, 나는 주랑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을 각오하고 다시금 접속했다. 그 왜, 공포영화같은 것을 보면 주인공이나 주변인물은 가만히 있어도 될 것을 굳이 꼭 나서서 어두운 곳이나 이상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괜히 움직이지 않던가. 나도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꼭 확인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재접속을 했을 때에, 슈퍼컴퓨터 스파크는 최상위 명령 프로토콜의 조건이 달성되었다면서 잠시간 휴식을 취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스파크와의 통신이 끊어졌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유토피아에 연락을 넣어보니 스파크의 전원을 끊었단다. 현실의 스파크 전원을 끊어버린 것과 여기서의 통신두절에 어떠한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봤다. 윤석은 개발팀의 이팀장에게 스파크를 재가동하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슈퍼컴퓨터라는 것에 요즘 투자 계획이 있어서라고 대충 둘러댔다. 유토피아로부터, 스파크를 살렸다고 연락이 왔을 때 스파크와 다시 통신이 가능해졌다.
현실에서는 약 3시간 정도 지난 것 같다. 캡슐에서 나왔을 때 나는 주랑의 매서운 도끼눈을 마주하고 나서도 용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라 주랑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내게는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주랑이었다.
나는 그 세계에 4만년을 갇혀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한 번은 게임 속 현실인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해서 멸망에 가까운 위기가 도래하기도 했었다. 그 세계에서 나는 그 세계의 주민이었다. 게임을 한다는 자각이 없었고 4만년동안 내 존재에 대해 심히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죽지 않는가. 내게 주어진 능력 때문인가.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4만년을 살 수 있는 노릇은 아니지 않은가. 게임 속에서 나는 내 존재에 대해 끝없이 물음표를 던졌었다. 나는 그 세계에서 고독해졌고 외로워졌다. 2만년을 살아왔다던 천마가 없었다면 내 정신이 붕괴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게임 속 세계에서 주랑이 늙어 죽었을 때에 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10년 가까이를 폐인처럼 살았다.
여기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분명 게임 속에서 자연경에 접어들고 위대한 능력을 가지게 됐는데, 왜 지구에서도 나이를 먹지 않는 걸까. 나는 왜 죽지 않는 걸까. 혹시 게임 속 능력이 현실로 전이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2만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결국 판타지 소설의 도입부에서 처럼, '앗! 게임 속 능력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음하핫! 나는 최강이닷! '과 같은 스토리에 몸을 맡기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유? 글쎄... 내가 그 세상에서 4만년을 살아왔지만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4만년이 아니라 40만년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어떤 외계인이나 그도 아니면 어떤 신같은 것이 있어서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외계인이든 신이든 내게는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난 4만년을 죽지도 못하고 갇혀 있었고 4만년 만에 로그아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랑했던 주랑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고 주랑을 격하게 껴안을 수 있었다. 아마 그때 난 말그대로 '상남자'였던 듯 싶다. 잔소리 많고 가끔은 좀 무섭던 주랑은 어느새 수희같은 천상여자가 되어버렸다. 내 박력에 반했다나 뭐라나.
나는 혹시나 싶어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임 속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스파크. 네 놈 짓이야?"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역시 그렇다. 게임 속에서와 같이 불가사의한 일은 여기선 벌어지지 않는 거다.
그 세계의 이름은 유토피아( *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였다. 처음엔 정말로 유토피아인 줄 알았다.
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가졌다.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부도 쌓았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존경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젊기까지 했다. 약 20년 쯤 흘렀을 때 전혀 늙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에 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모든 것을 다 누렸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다. 나는 시간마저도 소유한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주랑이 죽고 나서 내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어버렸다.
이상향.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그런 건 내 밖의 다른 것들로 채워지거나 만들어지는 세상은 아니었다. 4만년간 외롭게, 괴물취급 받기 싫어 신분을 세탁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얼굴 없는 유명인사로 계속해서 살아왔을 때의 난 지옥을 살았다. 갇혀있다고 표현한 게 괜히 갇혀있다고 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나는 이름뿐인 ‘유토피아’에 갇혀서 외로이 살았다.
이곳 나이로 겨우 32살 밖에 먹지 않은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에는 어처구니 없을지는 몰라도, 내 젊은 나날이 조금 후회되었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다. 대한민국 내 100대 재벌 속에 들어갈 만큼, 나는 사회적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게 내게 있어서 최선이고, 행복의 최고 조건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내게 있어 유토피아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주랑아.”
“네? 아, 아니... 응?”
주랑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주랑의 말을 빌리자면, 내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단다. 함부로 대하기 힘들뿐더러, 묘하게 의지가 된단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변한 것 같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변하는 거다. 내가 변하면 내 주위의 세상이 전부 바뀌어버리니까. 나는 이 세상에 나를 맞추기 위하여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이 그런 건줄로만 알았으니까. 사람들의 존경, 부, 명성, 명예.
“사랑해 주랑아.”
주랑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것이 보였다. 내 사랑하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안고서 꼭 끌어안았다.
내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건 외부의 다른 어떤 것들이 아니었다. 이 세상을 진정한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라 내 속에 있었다.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내 친구를 위하는... 아. 이건 정정하겠다. 일단 죽빵 7000대를 때리고 얘기하자.
어쨌든 내가 소중히 여기고, 또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이 순간순간, 이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 때에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거다.
‘유토피아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뭘 위해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왔던가. 결국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고 노력하는데, 나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그 순서가 바뀌어버린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버는 건데, 돈을 벌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큰 오류를 범하고 마는 거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아도 내 옆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내 마음속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었다.
주랑이 말을 더듬었다.
“저, 저도...아니, 나, 나도 여보.”
그녀는 “에이씽! 몰라!” 라고 콧소리가 잔뜩 섞인 앙탈을 부리고서 문을 열고서 도망쳐버렸다.
세상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바뀌었다.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닌, 내가 있는 곳을 유토피아로 만드는 사람이 되면 되는 거다.
아참. 그리고 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얼마전, 내 하나뿐인 동생이 결혼식을 치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동생은 누구나가 칭찬하고 동경하는 완벽에 가까운 여자다. 절대로 내 동생이라서 칭찬하는 게 아니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그런 아름답고 착하고,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조차 불가능한 완벽한 내 동생이 강민혁같은 놈팽이 새끼에게 시집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래도 동생 이기는 오빠 없다고... 아. 이게 아니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인가? 어쨌든 난 내 동생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둘은 결혼을 했다.
수희의 인맥 덕분에 세계적인 아티스트 김다복과 함께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 때 잠깐의 문제가 생겼었다.
글쎄. 뭐였을까. 아마 무인드론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동생이 나를 올려다봤었다.
“오빠. 뭐해요?”
“아니. 그냥. 내 사랑하는 동생 결혼식 날 누가 방해하면 어쩌나 싶어서.”
수희가 예쁘게 웃었었다.
“그런 사람은 없을 거예요.”
나도 웃었다.
“그렇겠지?”
“네. 오빠 고마워요. 결혼식 때문에 오히려 저보다도 오빠가 더 신경쓴 거 알아요.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요.”
나는 수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줬고 민혁이 놈으로부터 “야! 수희 신랑은 네 놈이 아니라 나란 말이다!”라는 말을 듣게 됐다. 중간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약간의 소란이 일기는 했지만 잘 해결 됐다. 무인드론이 여기서 폭파 되었다나 뭐라나. 아무도 그런 걸 보지 못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군인들은 그냥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쳐봤다.
<스탯창! 스킬창! 음. 좋았어.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난 최강이라고. 레벨업은 어떻게 하는 거지?> 와 같은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책 속 주인공은 의외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금방 익숙해졌고 또 금방 활용해냈다.
내게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글쎄. 나는 과연 좋아할까? 나는 또 어쩌면 또 혼자 외로이 남겨져 고독하게 살아갈 지도 모른다. 게임 속 능력을 얻는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주랑의 체취를 맡으면서, 주랑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렇게 편안하고 따스할 수 없었다. 이 침대 위 작은 공간이 내게는 유토피아랄까.
다음 날, 뉴스 속보가 터져나왔다.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거대한 운석이 폭파되었단다. 세계 각국의 최정상급 인사들만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단다. 지구의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고 일부러 쉬쉬했단다. 그런데 그 운석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폭파 되었단다.
며칠 전부터, 내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사용하게 된 내 사랑스런 아내 주랑이 내게 물었다.
“여보. 밤새 어디 나갔다가 왔어요?”
“아니. 나 방금 일어났는데.”
앞치마를 한 주랑이 가까이 걸어왔다. 윤석의 얼굴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여기 옷은 왜 찢어져 있어요? 소매 쪽. 산지 얼마 안 된건데...”
“글쎄... 내 잠버릇이 험해서 그런가?”
“음... 당신 그 옷 빨아야 겠어요. 먼지가 왜 이렇게 잔뜩 묻었어요? 어제까진 멀쩡했던 거 같은데...”
잠옷이 조금 더러워져 있었다. 어젠 분명 깨끗했었던 것 같은데 밤이어서 잘 몰랐나보다. 주랑이 말했다.
“아참. 뉴스 속보 봐봐요. 엄청 위험했대, 우리.”
“그랬어?”
“반응이 싱겁네요?”
“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 사랑하는 주랑이만 옆에 있으면 행복하게 죽을 수 있거든.”
주랑은 얼굴을 붉히다가 흐,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선 주방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걸음걸이가 무척 가벼워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뭔가 조금 이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알고 있었다.
‘운석이 떨어진다는 걸 다들 몰랐었다고?’
조금 이상했다.
‘어째서 난 그걸 당연하다는 듯 알고 있었지?’
길거리에 서있는 가로수들. 가로수가 있다는 건 기억하지만 그게 몇 그루였는지는 아무도 기억 못한다. 그런 느낌이다. 그냥 스쳐지나갔던 기억. 단지 그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알고 있었다. 군인들이 허탕치고 돌아간 날. 나는 분명 무인드론을 봤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드론을 말이다.
뉴스에서, 앵커가 우리들은 살았다며 감격의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난 그 감격의 소리보다도 주랑의 목소리가 더욱 좋았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TV를 꺼버렸다.
“여보! 밥 먹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였어요!”
- 히든 플레이어 (完)
============================ 작품 후기 ============================
호불호가 갈리는 결말이라고 예상은 합니다만...
이 결말은 1년도 더 전에 이 작품을 시작할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결말입니다. 중간에 독자님들 반응을 보고 이런식의 결말을 싫어하시는 분이 많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어떻게든 바꿔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얘기해왔던 내용들은 전부 이 결말. 그러니까 '유토피아' 라는 것에 맞춰져 있었고 제가 이끌어낸 결말이 아니면 이 '유토피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기가 힘들거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르게 풀어나갈 수 있는 필력과 실력이 제겐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여기까지 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또 죄송한 마음, 그리고 또 아쉬운 마음을 담아 자세한 얘기는 다음편인 마지막 후기에 담도록하고 여기에서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