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장 (89/194)

제37장

딱정벌레의 비밀

한달이 흐른 후에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해리의 머리 속에는 거의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너무나 많은 일을 겪은 나머지 머리가 더 이상 기억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 바로 다음날 아침에 디고리 부부를 만난 것이었다. 

디고리 부부는 지나간 일로 해리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리가 케드릭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온 것에 대해 무척 고맙게 여겼다. 해리를 만나는 동안 에이머스 디고리는 계속 흐느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디고리 부인은 이제 눈물을 흘릴 만한 기력조차 없는 것 같았다. 

해리는 케드릭이 어떻게 죽었는지 디고리 부부에게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이 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겠구나. 어쨌거나 에이머스... 케드릭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승리한 후에 죽었잖아요. 분명히 행복했을 거예요."

디고리 부인이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부디 몸조심 하거라."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디고리 부인이 해리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리는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금화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이걸 받으세요. 우승 상금은 원래 케드릭이 받아야 할 것이었어요. 케드릭이 제일 먼저 결승점에 도착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받으세요."

해리가 금화 주머니를 내밀면서 말했다. 하지만 디고리 부인은 한사코 금화 주머니를 떠밀었다.

"아니다. 그건 네 것이야. 나는... 받을 수 없단다... 네가 간직하렴."

다음날 저녁에 해리는 다시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갔다. 헤르미온느와 론의 말로는, 덤블도어가 그날 아침 식사 시간에 전교생에게 주의를 준 모양이었다. 덤블도어는, 해리를 가만히 내버려두고 아무도 미로 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해리는 복도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슬슬 피하면서 외면하는 것을 느꼈다. 어떤 학생들은 해리가 지나갈 때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수군거렸다. 

해리는 아마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난번에 리타 스키터가 썼던 기사 내용을 그대로 믿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기사에는 해리가 정신적으로 몹시 불안정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학생들은 케드릭의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각본을 짜고 있을지도 몰랐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있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좋았다. 혹은 체스를 두면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좋았다. 마치 그들 세 사람은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말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경지까지 도달한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호그와트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나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확실히 알기 전에 공연히 다가올 일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지나간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입에 올린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위즐리 부인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덤블도어를 만났다고, 론이 해리에게 말했던 것이다.

"엄마는 교장 선생님께 이번 여름 방학에는 네가 곧바로 우리집으로 오면 안 되는지 물었어.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네가 더즐리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어. 최소한 처음 며칠만이라도 말이야."

론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왜?"

해리가 물었다. 

"엄마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 론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믿어야만 하겠지? 그렇지?"

론과 헤르미온느를 제외하고 해리가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해그리드였다. 더 이상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이 없었으므로 그 수업 시간은 자유였다. 

그들은 목요일 오후의 빈 수업 시간을 이용해서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을 방문했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날이었다. 오두막집 가까이 다가가자, 팽이 펄쩍 뛰어나오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팽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면서 왕왕 짖어대었다. 

"누구세요?" 해그리드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문을 나왔다. "해리!"

해그리드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한 팔로 해리를 끌어안으면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놓았다. 

"만나서 반갑구나, 친구! 정말 반가워!"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으로 들어간 해리와 친구들은 벽난로 앞에 있던 나무 탁자 위에 거의 양동이만큼이나 커다란 컵 두 개와 받침 접시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올림프와 커피를 한 잔 했단다. 올림프는 조금 전에 돌아갔어."

해그리드가 서랍장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죠?"

론이 물었다. 

"물론 맥심 부인이지!"

해그리드가 겸연쩍어하며 대답했다. 

"두 분은 화해하셨군요! 그렇죠?"

론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난 도통 모르겠구나."

해그리드는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서랍장에서 몇 개의 컵을 더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차와 살짝 구운 부드러운 쿠키 한 접시를 차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해그리드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딱정벌레 같은 검은 눈으로 해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너 괜찮니?"

해그리드가 불쑥 물었다.

"괜찮아요."

해리가 대답했다. 

"아니야. 넌 괜찮지 않아.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곧 좋아질 거란다."

하지만 해리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돌아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그리드가 불쑥 말을 던졌다.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마치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해그리드를 쳐다보았다. "그래...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해리, 그는 조용히 은신처에 숨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언젠가 그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단다... 그리고 이제 일어난 거야. 우리는 그가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쨌든 그게 덤블도어 교수님의 계획이란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참 위대한 분이야. 그런 분이 우리 곁에 있는 한,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

해그리드는 세 사람의 얼굴에 회의적인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자, 송충이 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걱정이나 하면서 앉아 있는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야.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 그 일이 닥치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면 되는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은... 해리, 네가 어떻게 했는지 말씀해 주셨어."

해그리드는 다정한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쭉 폈다. 

"너는 네 아버지처럼 행동한 거야... 너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큰 칭찬은 없다고 생각해."

비로소 해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요즘 들어서 해리가 웃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뭘 부탁하셨어요, 해그리드? 맥고나걸 교수님을 보내서 아저씨와 맥심 부인을 불렀잖아요... 그날 밤에 말이에요."

해리가 물었다. 

"여름 방학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주셨단다. 하지만 그건 비밀이야. 나는 그 이야기를 절대로 말할 수 없어. 너희한테도 안 돼. 올림프... 그러니까 맥심 부인이 나와 함께 가게 될 것 같거든..."

해그리드가 대답했다.

"볼드모트와 관련이 있는 일인가요?"

해리가 그 이름을 말하자, 해그리드는 몸을 움찔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해그리드는 모호하게 대답하면서 말꼬리를 돌렸다. "이제부터... 나와 함께 마지막 남은 스크루트를 보러 가지 않을래? 아니다, 농담이다. 농담이었다니까!"

해그리드는 세 사람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보자, 황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변명했다.

프리벳 가로 돌아가기 전날에 기숙사에서 트렁크를 싸는 해리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해리는 어쩐지 종강 연회에 참석하는 것이 두렵기만 했다. 물론 평소라면 호그와트 기숙사들 사이의 대항전에서 승자를 발표하는 아주 즐거운 자리였을 것이다.

해리는 병동에서 퇴원한 이후부터 줄곧 연회장으로 내려가는 것을 기피하고 있었다. 식사를 할 때에도 다른 친구들의 호기심이 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해 연회장이 텅 비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들어가곤 했다. 

연회장으로 들어간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즉시 종강 연회 때마다 연회장을 화려하게 꾸며 놓았던 실내 장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년 같으면 우승을 차지한 기숙사를 상징하는 색깔로 연회장이 온통 치장되어 있었겠지만, 오늘 밤에는 교직원들의 상석 뒤에 검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그것이 케드릭에 대한 조의의 표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교직원 테이블에는 진짜 매드아이 무디가 앉아 있었다. 무디의 나무 다리와 마법의 눈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무디는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펄쩍 뛰곤 했다.

해리는 그런 무디를 비난할 수가 없었다. 적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무디의 두려움은, 트렁크 속에서 열 달 동안이나 감금되는 지독한 경험을 겪은 이후로 당연히 더욱 커졌을 것이다. 카르카로프 교수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다른 그리핀도르 학생들과 함께 자리에 앉은 해리는 어쩐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카르카로프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볼드모트에게 붙잡히지는 않았을까?

맥심 부인은 종강 연회에 참석했다. 맥심 부인은 해그리드의 옆자리에 앉아서 뭔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테이블 저편에는 맥고나걸 교수 옆자리에 스네이프가 앉아 있었다. 

해리가 고개를 들고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스네이프의 시선도 한참 동안 해리에게 머물렀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심술맞고 불쾌하게 보일 뿐이었다. 스네이프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해리는 스네이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볼드모트가 돌아온 그날 밤에 덤블도어의 명령에 따라 스네이프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왜... 왜... 덤블도어는 스네이프가 정말로 우리편이라고 그토록 굳게 믿는 것일까?

스네이프는 첩자였다. 해리가 우연히 보았던 펜시브 속에서, 덤블도어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엄청난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볼드모트의 밑으로 들어가서 첩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스네이프는 다시 그 일을 맡게 된 것일까? 혹시 죽음을 먹는 자들과 다시 접촉을 한 것은 아닐까? 마치 진짜로 덤블도어의 편에 섰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척하면서? 마치 볼드모트처럼, 스네이프도 적당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척하면서?

마침내 교직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리의 생각은 뚝 중단되었다. 지금까지도 다른 종강 연회가 열렸을 때에 비해 훨씬 조용했던 연회장은 그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또다시 한 학년이 끝났습니다."

덤블도어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한 채, 후플푸프 기숙사 테이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부터 후플푸프 기숙사 테이블에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후플푸프 학생들은 연회장에 참석한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슬프고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습니다." 덤블도어가 다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일 먼저 아주 훌륭한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지금 저기 저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덤블도어는 손을 들어 후플푸프 테이블을 가리켰다. "우리와 함께 이 연회를 즐기면서 말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케드릭 디고리를 위해 잔을 높이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덤블도어의 지시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엄숙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커다랗게 소리쳤다. 

"케드릭 디고리를 위하여!"

해리는 연회자에 모여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초 챙의 모습을 발견했다. 초 챙의 얼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해리는 그만 테이블 위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잠시 후에 학생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케드릭은 언제나 모범적으로 행동했으며, 후플푸프 기숙사를 빛낸 자랑스러운 학생이었습니다." 덤블도어는 연회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케드릭은 착하고 신의 있는 친구였으며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케드릭은 정정당당한 시합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케드릭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나, 모르고 있었던 사람 모두에게 그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 모두가 케드릭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리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덤블도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덤블도어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드릭 디고리는 볼드모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순간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통 공포와 의혹에 가득 찬 눈길로 덤블도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연회장이 다시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마법부는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 중에서도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볼드모트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한 어떤 분들은 내가 여러분처럼 아직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라도 거짓보다는 진실이 더 낫다고 믿습니다. 또한 케드릭 디고리 군이 우연한 사고나 혹은 어떤 실책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습니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덤블도어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온몸이 마비라도 된 것 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지만 해리는 슬리데린 기숙사 테이블에 앉아 있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은밀하게 속삭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리는 역겨움과 뜨거운 분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다시 덤블도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케드릭의 죽음과 더불어 반드시 언급해야 할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덤블도어가 계속했다. "그 사람은 물론 해리 포터입니다."

연회장이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몇 명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려서 해리를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해리 포터는 볼드모트로부터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더구나 그는 케드릭의 시신을 다시 호그와트로 가지고 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해리 포터가 보여준 용기는 그간 볼드모트와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극소수의 마법사들이 보여준 용기를 방불케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자리를 빌려, 해리 포터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덤블도어는 엄숙한 태도로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덤블도어를 따라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케드릭의 이름을 외친 것처럼 해리의 이름을 외쳤다. 

그들은 다시 해리를 위해 건배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해리는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 그리고 슬리데린의 많은 학생들이 끝까지 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잔에는 손도 대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마법의 눈을 갖고 있지 않았던 덤블도어는 해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앉자, 덤블도어는 연설을 계속했다. 

"트리위저드 시합의 목적은 마법사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증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볼드모트의 부활로 인하여 이러한 결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덤블도어는 맥심 부인과 해그리드를 슬쩍 바라보더니 플뢰르 델라쿠르와 보바통의 다른 학생들 그리고 슬리데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빅터 크룸과 덤스트랭의 다른 학생들까지 한 번 쭉 둘러보았다.  

해리는 거의 겁에 질린 듯이 팽팽하게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빅터 크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덤블도어가 당장이라도 뭔가 심한 말을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연회장에 앉아 있는 모든 손님들께서..."

덤블도어의 시선이 잠시 덤스트랭 학생들에게 머물렀다. 

"호그와트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면 언제라도 우리는 기꺼이 환영할 것입니다. 볼드모트가 돌아온 이 마당에 우리는 오직 하나로 단결할수록 더욱 강해질 수 있고 흩어지면 흩어질 수록 더욱 약해질 것입니다. 

볼드모트는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적의를 퍼뜨리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보다 강한 우정과 신뢰를 보일 때에만 그와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가 똑같고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언어와 관습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 모두 힘들고 어두운 시기를 맞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디 이런 나의 생각이 한낱 망령된 착각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중에서 몇 사람은 이미 볼드모트의 손에 의해 직접 고통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몹시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한 학생이 우리의 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덤블도어는 엄숙한 목소리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케드릭을 기억하십시오. 부디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올바른 길과 쉬운 길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닥친다면, 선량하고 친절하고 용감한 한 소년이 단지 볼드모트의 앞길에 우연히 잘못 들어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일을 당했는지 기억하십시오. 케드릭 디고리를 기억하십시오."

해리는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 있었다. 헤드위그가 들어간 새장은 트렁크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현관에서 다른 4학년생들과 함께 어서 마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호그스미드 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청명한 여름날이었다. 오늘 저녁쯤엔 프리벳 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지금 프리벳 가는 무척 덥고 녹음도 울창하겠지.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해리의 기분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애리!"

갑자기 해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힐끗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성으로 들어오는 돌계단을 따라 성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의 등 뒤로 운동장 저편에서 해그리드가 맥심 부인을 도와 두 마리의 거대한 말에 마구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능 아마 공 다시 만나겡 될 거양. 나능 영어 실력을 늘이기 위행 여기에서 일자리릉 구할 거양."

플뢰르 델라쿠르는 해리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불쑥 손을 내밀었다. 

"벌써 아주 훌륭한데 뭘 그래."

론이 이상하게 숨이 막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론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짓자, 헤르미온느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안녕, 애리. 너희드를 만나서 증말 즐거웠엉!"

플뢰르 델라쿠르가 천천히 돌아서면서 말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눈부신 은빛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면서 맥심 부인을 향해 잔디밭을 달려가는 모습을 보자, 울적했던 해리의 기분도 약간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덤스트랭 학생들은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카르카로프도 없이 배를 조정할 수 있을까?"

론이 물었다. 

"카르카로프는 조청하지 않았타." 갑자기 그들의 등 뒤에서 굵고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카로프는 선실에 있었타. 배를 조청하는 일은 우리가 다 했타." 빅터 크룸이 헤르미온느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칸 이야기 좀 할 수 있을카?"

빅터 크룸이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음... 그래... 좋아."

헤르미온느는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빅터 크룸을 따라 학생들 틈을 헤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둘러야 할 거야! 몇 분 후에 마차가 도착할 테니까 말이야."

론이 헤르미온느의 등 뒤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마차가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일은 모두 해리에게 맡기고, 몇 분 동안 론은 목을 있는 대로 길게 빼면서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로 빅터 크룸과 헤르미온느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금방 현관으로 들어왔다. 론은 재빨리 헤르미온느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표정은 무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디고리를 좋아했타." 빅터 크룸이 불쑥 해리에게 말했다. "디고리는 항상 나에게 친절했타. 언제나. 내가 카르카로프와 함께 온 덤스트랭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빅터 크룸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아직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니?"

해리가 빅터 크룸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빅터 크룸은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플뢰르 델라쿠르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빅터 크룸은 해리와 악수를 나눈 후에 다시 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론도 빅터 크룸과 악수를 나누었다.

론은 마음속에서 뭔가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빅터 크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론은 몹시 다급했던지 그의 입에서 엉겁결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사인 좀 해줄래?"

헤르미온느는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저만치에서 말이 끌지 않고 저절로 움직이는 마차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빅터 크룸은 약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론이 내민 양피지 조각에 기꺼이 사인을 해 주었다. 

킹스 크로스역으로 돌아가는 길의 날씨는 지난 9월에 호그와트에 도착했을 때의 날씨와 영 딴판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간신히 객실 한 칸을 잡을 수 있었다. 

피그위존은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었기 때문에 론은 다시 예복으로 덮어씌워 버렸다. 헤드위그는 날개 밑에 머리를 파묻고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크룩생크는 털이 북실북실한 커다란 붉은색 방석처럼 몸을 둥그렇게 만 채 좌석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호그와트 급행 열차가 남쪽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리는 종강 연회에서 덤블도어가 했던 연설 덕분에 꽉 막혀 있던 가슴이 어느 정도 뚫린 기분이었다. 이제 지나간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덤블도어가 볼드모트를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 한창 떠들던 세 사람은 음식을 파는 마녀가 수레를 끌고 지나가자 잠시 동안 이야기를 중단했다. 

헤르미온느는 벌떡 일어나더니 수레를 끌고 있는 마녀를 향해 다가가서 <예언자 일보>를 구입했다. 헤르미온느는 가방 안에 거스름 돈을 다시 집어넣고 <예언자 일보>를 펼쳐 들었다. 

해리는 <예언자 일보>에 실린 기사를 읽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난처한 표정으로 신문을 바라보았다. 해리의 표정을 재빨리 읽은 헤르미온느가 태연히 말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어.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 해리. 하지만 정말로 아무런 기사도 실리지 않았는걸. 나는 날마다 신문을 자세히 읽어 보았어. 세 번째 시험이 열렸던 다음날 아주 짧은 기사 몇 줄이 실렸을 뿐이야. 네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이겼다는 내용이었어. 케드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어. 다른 이야기도 전혀 없었고... 아마도 퍼지가 언론에게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명령했나 봐."

"하지만 리타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어. 더구나 이런 기사 거리를 말이야."

해리가 말했다. 

"오, 리타 스키터는 세 번째 시합 이후로 그 어떤 기사도 쓰지 않았어." 헤르미온느가 이상하게도 무척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참 동안 리타 스키터는 아무런 기사도 쓰지 못할 거야. 내가 자기 비밀을 누설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이제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론이 물었다. 

"나는 교정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리타 스키터가 도대체 무슨 수로 사람들의 개인적인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지 알아냈어."

헤르미온느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털어놓았다. 사실 해리는 지난 며칠 동안 헤르미온느가 뭔가 말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간신히 참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했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냈니?"

해리와 론이 거의 동시에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 사실 내게 실마리를 주었던 사람은 바로 너였어, 해리."

헤르미온느가 활짝 웃었다. 

"내가? 어떻게?"

무슨 영문인지 몰랐던 해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청 장치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아주 신이 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런 장치들은... 호그와트에서 쓸 수 없다고 분명히 네 입으로..."

"물론 전자 도청 장치는 아니었지."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니야. 그러니까 리타 스키터는..."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승리감으로 잔뜩 들떠 있었다. "마법부에 등록되지 않은 애니마구스였어. 그러니까 리타 스키터는... 변신을 할 수 있었던 거야."

헤르미온느는 가방을 열더니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그 유리병은 마개로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바로 딱정벌레로 말이지."

"웃기지 마. 그럴 수가... 그럴 리가 없어..."

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정말이야."   

헤르미온느는 두 사람의 코앞에 유리병을 들이대더니 야단스럽게 흔들었다. 해리와 론은 물끄러미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유리병 속에는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 몇 장이 들어 있었는데, 커다랗고 통통한 딱정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지금 농담하는 거지?"

론은 얼른 헤르미온느의 손에서 유리병을 받아 들었다. 론이 투명한 유리병을 눈 높이까지 들어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절대로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병동에서 이 여자를 잡았어. 이 딱정벌레는 병동의 창틀 위를 살금살금 기어가고 있었지. 자세히 살펴봐. 딱정벌레 더듬이 주위에 그 여자가 쓰고 있던 안경과 똑같은 모양의 무늬를 볼 수 있을 거야."

과연 그 딱정벌레의 더듬이 주위에는 안경 무늬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문득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해그리드가 맥심 부인에게 자신의 엄마에 대해 고백하던 그날 밤에도 딱정벌레가 석상 위를 기어가고 있었어!"

크리스마스 무도회가 열리던 날 밤에 순록 석상 등을 기어가던 딱정벌레! 바로 그 딱정벌레가 리타 스키터였단 말인가?

"바로 그거야. 빅터 크룸과 내가 호숫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도 그 딱정벌레가 있었어. 빅터 크룸이 내 머리에 붙어 있던 딱정벌레를 떼어 주었지. 네 흉터에 통증을 느끼던 그 점술 수업 시간에도 리타는 분명히 창틀 위에 앉아 있었을 거야. 결국 리타 스키터는 지난 1년 내내 기사거리를 찾아서 붕붕거리고 날아다닌 셈이지."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세 번째 시험을 앞두고 말포이가 나무 그늘 밑에서 혼자 열심히 지껄였을 때에도..."

비로소 론이 이해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변신한 리타 스키터를 손에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물론 말포이는 이 딱정벌레가 리타 스키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이런 방법으로 리타 스키터는 슬리데린 학생들과 멋진 인터뷰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거야. 그 애들은 우리와 해그리드에 대해서 끔찍한 기사 거리만 제공할 수 있으면, 그 여자가 어떤 불법적인 짓을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어."

헤르미온느는 론의 손에서 다시 유리병을 받아 들더니 딱정벌레를 향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딱정벌레는 화가 난 듯이 붕붕거리면서 유리병에 달라붙었다. 

"리타 스키터에게 말했어. 런던으로 돌아가면 놓아 주겠다고 말이야. 나는 이 유리병에 깨뜨릴 수 없는 마법을 걸어 놓았기 때문에 리타 스키터는 다시는 변신을 할 수가 없어. 그리고 리타 스키터에게 앞으로 1년 동안 그 속기 깃펜은 그냥 간직하고만 있으라고 말했어. 과연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지독한 거짓말을 쓰는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지켜보겠다고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딱정벌레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다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갑자기 객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주 똑똑하군, 그레인저."

드레이코 말포이가 떡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크레이브와 고일도 그 뒤에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더 거만하고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말포이는 천천히 객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결국 너는 가련한 한 기자를 붙잡았고, 포터는 다시 덤블도어가 가장 총애하는 소년이 되었군... 정말 잘했어. 아주 훌륭한 거래야."

말포이는 더욱 능글맞게 웃었다. 크레이브와 고일도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하겠지? 일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하는 게 좋겠지?"

말포이가 세 사람을 둘러보면서 느물느물하게 말했다. 

"꺼져!"

해리가 말포이를 노려보면서 외쳤다. 해리는 덤블도어가 케드릭에 대해 연설을 하는 동안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이후로 말포이와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해리는 귓속이 웅웅거리면서 마구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요술지팡이를 움켜잡았다. 

"포터, 너는 잘못된 편에 선 거야! 나는 경고했어! 나는 분명히 너에게 친구를 좀더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말했어! 기억하고 있니? 우리가 처음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났을 때? 그때 나는 이 따위 인간 쓰레기들하고는 어울리지 말라고 충고했어." 말포이가 론과 헤르미온느를 향해 고갯짓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었어. 포터! 어둠의 주인이 부활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쟤들이 제일 먼저 갈 거야! 머글 혼혈들과 머글 애호가들이 첫번째 희생물이지! 아니, 두번째라고 해야겠군. 디고리가 첫번째였으..."

그 순간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어떤 사람이 객실 안에서 폭죽을 한 상자 터뜨린 것처럼 사방에서 눈부신 마법의 불꽃이 번쩍였다. 

해리는 눈부신 불꽃 때문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연달아 들리는 굉음 때문에 귀가 아주 먹먹했다. 해리는 눈을 깜박이면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말포이, 크레이브, 고일, 세 사람은 모두 의식을 잃어버린 채 바닥에 털썩 쓰러져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세 사람의 발치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 모두 제각기 다른 주문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주문을 쏜 사람은 비단 그들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세 녀석이 무슨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지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지."

프레드가 고일을 타 넘고 객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태평스럽게 말했다. 프레드는 손에 요술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조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지는 일부러 말포이를 발로 짓밟으면서 프레드의 뒤를 따라 객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재밌군. 그런데 누가 퍼넌쿨러스 마법을 썼지?"

조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크레이브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나야."

해리가 말했다. 

"참 이상하군. 나는 엿가락 다리 마법을 썼는데... 마치 이 두 가지 마법은 서로 섞어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군. 이 녀석은 얼굴에 온통 작은 촉수가 돋아났잖아. 음... 이대로 세 녀석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지. 이 녀석들이 있으면, 미관상 보기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

조지가 명랑하게 말했다. 론과 해리, 조지는, 의식을 잃고 열차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세 사람 모두 온갖 종류가 뒤섞인 주문을 동시에 맞는 바람에 더욱 심각한 상태가 된 것 같았다)을 발로 굴리면서 객실 밖으로 밀어 버렸다. 

조지는 재빨리 객실의 문을 쾅 닫았다. 

"폭발카드 놀이 할 사람?"

프레드가 카드 한 벌을 꺼내면서 말했다. 그들은 빙 둘러앉아서 카드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섯 번째 게임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해리는 힐끗 고개를 돌려서 조지와 프레드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두 사람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게 어때, 형?"

해리가 조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뭘?"

조지가 카드를 뒤적거리면서 반문했다. 

"형들은 누구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고 있었던 거야?"

"아, 그거 말이야?"

어쩐지 조지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 거 아니야. 게다가 전혀 중요한 일도 아니었어. 어쨌거나 지금은 아니야."

프레드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제는 그만 포기했어."

조지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하지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무슨 일인지 끈질기게 물어보았다. 

"좋아, 좋아. 만약 너희들이 정말로 알고 싶다면... 그건 바로 루도 베그만이었어."

마침내 프레드가 입을 열었다.

"베그만? 그렇다면... 베그만이 이 일에 관련이..."

해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그런 일이 아니야. 그 사람은 정말 멍청해. 그럴 만한 머리도 없어."

조지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인데?"

론이 재빨리 물었다. 

"우리가 퀴디치 월드컵에서 그 사람과 내기를 했던 거 기억하고 있지? 아일랜드가 승리를 거두지만, 크룸이 스니치를 잡을 거라고 했던 것 말이야."

프레드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응, 알고 있어."

해리와 론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사기꾼이 우리에게 아일랜드팀의 마스코트인 레프러칸 요정이 뿌렸던 금화를 우리에게 주었어."

"정말?"

"정말이라니까! 당연히 그 돈은 곧 사라지고 말았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구! 다음날 아침이 되니까..."

프레드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그렇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말하자, 조지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우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베그만에게 편지를 써서 뭔가 실수가 있었다고 알려 주기만 하면 금방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베그만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어. 우리가 보낸 편지를 그냥 묵살해 버린 거야. 우리는 호그와트에서 계속 그 문제에 대해 베그만과 의논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베그만은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우리를 피했지."

"결국에는 아주 험악하게 나오더군. 도박을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어리다고 하면서... 우리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거야."

프레드가 투덜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우리가 걸었던 돈만이라도 돌려 달라고 부탁했어."

조지가 잔뜩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설마 그것조차도 거절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그래! 거절했어!"

프레드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형들이 애써 모았던 돈 전부잖아!"

론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내가 다 설명할게. 물론 우리는 결국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냈어. 리 조던의 아버지도 베그만에게 돈을 한 푼도 받아내지 못해서 고생하고 있었지. 사실 베그만은 도깨비 때문에 커다란 곤경에 처해 있었던 거야. 도깨비들에게 금화를 엄청 빌렸거든. 퀴디치 월드컵이 끝난 후에 도깨비 갱단이 베그만을 붙잡았어. 도깨비들은 베그만을 숲속으로 끌고 가서 가지고 있던 금화를 몽땅 빼앗았어. 하지만 그걸로도 베그만이 진 빚을 죄다 갚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베그만을 감시하기 위해 호그와트까지 쫓아왔던 거야. 베그만은 도박으로 전재산을 다 날린 채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지. 단돈 2갈레온이 없었다니까... 그런데 그 멍청이가 어떻게 해서 빚을 갚았는지 알아?"

조지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갚았는데?"

해리가 물었다. 

"베그만은 너에게 내기를 걸었어. 네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이긴다는 쪽에 엄청난 돈을 걸었지. 물론 도깨비들을 상대로 말이야."

프레드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서 계속 내가 이기도록 도와주려고 했던 거구나! 어쨌거나 내가 이겼잖아? 그렇다면 베그만은 형들에게 금화를 돌려줄 수 있었겠네?"

"전혀." 조지는 완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도깨비들은 베그만만큼이나 치사했어. 도깨비들은 네가 디고리와 비겼다고 말했어. 베그만은 네가 단독으로 우승할 거라는 쪽에 내기를 걸었던 거야. 결국 베그만은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지. 세 번째 시합이 끝나자마자, 베그만은 당장 도망을 치고 말았어."

조지는 땅이 푹 꺼질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아주 즐겁게 흘러갔다. 해리는 이대로 여름 방학이 다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킹스 크로스 역에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해리가 지난 1년 동안 힘들게 배운 것처럼, 좋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 도착한 호그와트 급행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열차 통로는 요란한 소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것은 학생들이 짐을 내릴 때마다 항상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아직도 통로에 쓰러져 있는 말포이와 고일, 크레이브를 피하면서 짐을 운반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프레드 형, 조지 형... 잠깐만 기다려."

쌍둥이들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해리는 트렁크를 열더니 트리위저드 상금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이걸 받아."

해리는 조지의 손에 돈 주머니를 쥐어 주었다. 

"뭐라구?"

프레드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물었다. 

"이걸 받으라구. 나는 이 돈을 갖고 싶지 않아."

해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제정신이니?"

조지는 한사코 해리에게 돈 주머니를 되돌려 주었다. 

"아니, 난 멀쩡해. 그러니까 이걸 받아. 이 돈을 발명하는 데 써. 이건 장난감 가게를 위한 돈이야."

해리는 다시 돈 주머니를 내밀었다. 

"쟤가 미쳤나 봐."

프레드가 거의 경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 형들이 이 돈을 받지 않으면, 나는 이걸 시궁창에 던져 버릴 거야. 나는 이 돈을 받고 싶지 않아. 필요도 없어. 하지만 나는 한바탕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 활짝 웃을 수만 있으면... 나는 머지않아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훨씬 더 웃음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해리, 여기에는 1000갈레온이 들었단 말이야."

조지는 손으로 돈 주머니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래. 그 돈이라면 얼마나 많은 카나리아 크림을 만들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봐, 형."

해리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쌍둥이들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만 아주머니에게 이 돈이 어디에서 났는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주머니도 더 이상 형들이 마법부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해리..."

프레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부탁이야, 형! 이걸 받아. 그렇지 않으면 주문을 쏘겠어. 이제 나는 제법 쓸 만한 주문들을 많이 알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이 돈으로 론에게 다른 예복 정장을 한 벌 사 주고... 형들이 선물했다고 말해줘."

해리는 아주 단호했다. 그는 쌍둥이 형제가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을 성큼 타 넘더니 객실에서 나가 버렸다. 아직도 열차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저주를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킹스 크로스 역 개찰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논 이모부의 모습이 보였다. 위즐리 부인은 버논 이모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해리를 품에 꼭 끌어안으면서 재빨리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름 방학이 좀 지나고 나면,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이 너를 우리집으로 보내 줄 것 같구나. 해리, 계속 연락하자꾸나."

"해리, 잘 가."

론이 해리의 등을 탁 치면서 인사했다. 

"안녕, 해리!"

헤르미온느는 작별 인사를 하더니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뺨에 입을 맞추었던 것이다.

"해리, 고마워"

조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프레드는 해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열심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해리는 그들을 향해 눈을 한 번 찡긋한 후에 버논 이모부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버논 이모부의 뒤를 따라 조용히 킹스 크로스 역에서 빠져나갔다. 더 이상 걱정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더즐리네 자동차 뒷좌석에 올라타면서 해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해그리드의 말대로 어차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리고 그 일이 닥치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거야.

<해리포터와 불의 잔> 끝

제5권에서 계속됩니다.

옮긴이의 말

현대의 성배

최인자(문학평론가)    

불의 잔! 마침내 불의 잔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불의 잔을 가만히 응시한다. 불의 잔은 새로운 신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나는 신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마법의 세계가 막을 올리는 것이다. 조앤 롤링은 '불의 잔'을 통해 온갖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신비와 감동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그야말로 '현대의 성배'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는 빛과 어둠이 골고루 스며들어 있다. 가뭄이 심할수록 한 모금의 물이 더욱 소중한 것처럼, 해리 포터는 복잡하게 얽힌 운명의 미로를 헤쳐 나가면서 용기와 지혜의 물줄기로 애타는 듯한 갈증을 시원하게 적신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조차도 무심코 지나갈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후반부로 갈 수록 그 의미가 증폭되면서 거미줄처럼 촘촘한 의미망을 형성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른바 '동화'라는 장르의 특성으로 인해 문학성에 대한 시비 또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해리 포터를 진정한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가?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 조앤 롤링은 영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출판문학상 중에 하나인 위트브레드 상을 놓고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셔머스 히니와 경합을 벌인 끝에 안타깝게도 간발의 차로 수상을 놓쳤지만, 아마도 제 4권이 미리 출간되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톰 소여의 모험>이나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영원한 명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반증이다.

조앤 롤링은 마크 트웨인이나 키플링처럼 전형의 창조와 묘사, 치밀하고 황홀한 구성을 바탕으로 작품의 환상적인 구조를 지탱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조앤 롤링의 손끝에서 현대 문학사가 다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그야말로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문학성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출간되었던 작품들이 스토리 중심의 얼개를 가지고 있었다면, 제 4권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성격을 불어넣으면서 그 형식과 내용을 더욱 확장시킨다.

"전편들에 비해 분량이 거의 두 배나 되고 가장 쓰기 힘들었던 작품"이라는 조앤 롤링의 고백대로, 이 책은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한 저자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만만찮은 분량으로 인해 모두 네 권으로 출간된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처음에 우리는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일반 소설을 압도하는 그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 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동안 독자들은 순식간에 호그와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상반된 갈등으로 인해 몹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이 책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싶어서 빨리 속독을 하고 싶은 욕망과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늦추기 위해 천천히 정독하고 싶은 욕망이 서로 엇갈릴 것이다. 이보다 더 행복한 고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조앤 롤링은 이미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사건들을 적절히 안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해리 포터 제 5권은 도대체 언제 나올 것인가?)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외적인 흥미에 치중하던 조앤 롤링의 작품 세계가 내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등장인물의 성격이 너무나 섬세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해리 포터 매니아라면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개성과 거미줄처럼 깔린 복선을 느긋한 마음으로 음미하면서 그 재미와 깊이에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얽힌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려 나가는 가슴 떨리는 재미와 감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모두 7권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 시리즈의 반환점을 이루고 있는 '불의 잔'은 전체 작품의 방향과 형태를 잡아 주는 매우 중요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불의 잔'은 빛과 어둠의 세계를 동시에 담아 내고 있다. 확고한 규범과 질서를 가지고 있는 '밝은' 호그와트와, 위험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어두운' 리들 하우스가 한꺼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빛과 어둠의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개학이 되어서 다시 호그와트로 돌아간 해리는 덤블도어로부터 올해에는 퀴디치 게임이 열리지 않는 대신에 트리위저드 시합을 개최하게 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세 차례에 걸쳐서 진행되는 트리위저드 시합은 챔피언들의 용기와 미덕 그리고 지혜를 시험하는 무대이다. 해리는 헝가리의 혼테일과 싸우면서 용기를 익히고 인어들에게 사로잡힌 인질을 구출하면서 미덕을 쌓는다.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지키는 스핑크스와 지혜의 대결을 벌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마지막 4권으로 오면서, 마치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모든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역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좀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책읽기를 당부하고 싶다. 이 소설의 전반부가 늘어진다거나 전편에 비해 흥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것은 흙 속에 파묻힌 보석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출간 즉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유명한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던 해리 포터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해리 포터가 우리의 내면 속에 깃들어 있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작품을 쓰면서 소설 속의 주인공을 위대한 영웅으로 포장한다. 그것은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작가 자신을 동일시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천박한 영웅들(혹은 작가자신)은 모든 난관을 혼자의 힘으로 헤쳐 나가면서 정상에 다다른다. 결국 그런 영웅들은 우리가 도저히 접근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해리 포터는 위대한 마법사의 재능을 타고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해리 포터는 친구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간다. 결국 그 '불완전함'이 해리 포터를 더욱 '완전'하게 만들면서 우리의 사랑을 듬뿍 받도록 하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동양의 고유한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지, 덕, 체를 한몸에 아우르는 진정한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하지만 그 영웅은 결코 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해리 포터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가질 수 있는 서사적 가치는 이러한 경로를 거치면서 초개인적이고 초시간적인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해리 포터는 신의 신탁을 받아서 최정상에 우뚝 선 '강요된'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공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웅의 길로 접어든다. 물론 그 길에는 가슴 벅찬 감동과 용기, 그리고 희망이 깔려 있다. 

해리 포터의 책장을 여는 순간, 우리는 전혀 새로운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사이에 우리 모두는 또 다른 해리 포터가 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지배하는 디지털이나 영상 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문자의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것 자체가 놀라운 마법의 힘이 아닐까!  

자, 우리 모두 위태로운 갈림길에 서 있는 해리 포터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도록 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