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퍼시와 패드 풋
다음 날 아침 해리는 누구보다도 일찍 눈을 떴다. 그는 한동안 침대
가장자리에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 속에서
춤추는 먼지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누워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며 여유를 만끽했다. 학기의 첫 주가
그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마법의 역사 수업을
일주일 내내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 세상이 잠든 것 같은 고요함과 싱그럽고 여린 햇빛을 보니, 이제 막
날이 밝은 것 같았다. 해리는 커튼을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멀리서 지저귀는 새 소리와 깊이
잠든 그리핀도르 친구들의 느린 숨소리뿐이었다. 해리는 살그머니 가방을
열고 양피지와 깃펜을 꺼낸 다음, 침실로 나와서 휴게실로 향했다.
불이 꺼진 벽난로 옆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찌그러진 낡은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다. 해리는 곧장 의자로 다가가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양피지를 펼치며 휴게실 안을 둘러보았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으레 휴게실을 뒤덮다시피 한 구겨진 종이 뭉치며 낡은 곱스톤, 텅 빈
약병, 사탕 껍데기들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만든 집요정
모자 또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쯤 얼마나 많은 집요정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유를 얻었을까 생각하면서, 해리는 잉크병을
열고 깃펜에 잉크를 묻혔다. 그리고 한동안 깃펜을 손에 든 채, 매끄러운
노란 양피지를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해리는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텅 빈 벽난로를 응시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해리는 이제야 지난여름 동안 론과 헤르미온느가 그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얼마나 난감하고 힘들었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지난
한 주일 동안 일어난 모든 일들을 시리우스에게 알려 주고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의문들을 남김없이 털어놓으면서도, 편지를
가로챌지도 모르는 염탐꾼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벽난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해리는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다시 한 번 깃펜에 잉크를 묻히고 양피지에
글씨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스누플즈
별일 없으시죠. 이곳에서 맞은 첫 번째 주는 정말 끔찍했어요. 드디어
주말이 되어서 정말 기뻐요.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선생님으로 엄브릿지 교수가 오셨어요.
아저씨의 어머니만큼이나 좋은 분이세요. 제가 편지를 쓴 것은, 어젯밤
엄브릿지 선생님과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지난여름에 제가 편지에
써 보냈던 그 일과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우리의 덩치 큰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그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럼 답장이 오기를 기다릴게요.
해리
해리는 자신이 쓴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보면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짐작해 보려고 애를 썼다. 과연 다른 사람들이
이 편지만 읽고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혹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시리우스가 해그리드에
대한 암시를 눈치 채고 그가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알려 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해리는 해그리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묻고 싶지 않았다. 자칫하면
해그리드가 호그와트를 떠나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너무 지나친
관심을 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아주 짧았지만, 쓰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해리가
편지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햇살이 방 안을 가로질러 절반쯤 비추었다.
위층 침실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양피지
두루마리를 봉인한 다음, 해리는 초상화 구멍 밖으로 기어 나가서
부엉이장으로 향했다.
"내가 너라면 그쪽으로는 가지 않겠어."
해리가 복도를 걸어 내려가고 있을 때,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벽에서
그의 코앞으로 황급히 튀어나오며 말했다.
"피브스가 저 복도 한가운데 있는 파라셀수스 흉상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주 재미있는 장난을 치려고 벼르고 있거든."
"혹시 지나가는 사람 머리 위에 파라셀수스를 떨어뜨리려는 것 아녜요?"
해리가 물었다.
"우습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따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브스는 가벼운 장난 따위는 관심도 없어. 나는 어서 가서 피투성이
바론을 찾아가봐야겠다. 그라면 피브스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나중에
보자... 해리...."
"네, 안녕히 가세요."
해리는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대신, 왼쪽으로 돌아섰다. 부엉이장까지는
조금 돌아가는 길이긴 했지만, 이 편이 더 안전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하늘이 바라보이는 창문 앞으로 차례차례 지나면서, 해리는 점점 더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면 퀴디치 훈련이 있다. 드디어 퀴디치
운동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때 뭔가 그의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밑을 내려다보자, 해골처럼
비쩍 마른 회색 고양이 노리스 부인이 그의 옆을 살금살금 기어가고
있었다. 노리스 부인은 등잔처럼 생긴 노란 눈으로 그를 한동안 빤히
돌아보더니, 윌프레드 동상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난 아무 잘못도 안 했어."
해리가 노리스 부인의 등 뒤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틀림없이 뭔가
주인에게 고자질하러 가는 태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토요일 아침에 부엉이장으로 가는 것은 전혀 거리낄 일이
아니었다.
이제 태양은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온통 유리 창문이 달린
부엉이장으로 들어서자, 해리는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수백 마리의
부엉이들이 서까래에 둥지를 틀고 있는 둥근 방 안으로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부엉이들은 아침 햇살 속에서 다소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마리는 방금 사냥에서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해리가
헤드위그를 찾느라 고개를 뒤로 젖히고 걷다가 조그만 동물 뼈들을 밟자,
지푸라기가 깔린 마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여기 있었구나."
둥근 천장 제일 높은 곳에서 헤드위그를 발견한 해리가 소리쳤다.
"이리 내려와. 편지를 가져왔어."
헤드위그는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커다란 하얀 날개를 쫙 펴더니 그의
어깨로 날아와 앉았다.
"그래. 이 봉투 바깥에 스누플즈라고 적혀 있어."
헤드위그는 노란 눈을 한 번 깜박거렸다. 해리는 그것을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해리는 헤드위그를 창문 쪽으로 데려갔다. 헤드위그는 그의 팔을 한 번
꽉 움켜쥐더니 눈부시게 푸른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해리는 헤드위그가
작은 점처럼 작아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해그리드의 오두막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창문에서는 오두막이
아주 잘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창문에는 커튼이 굳게 드리워져 있었고 굴뚝에서는 연기 한 점 피어나지
않았다.
금지된 숲의 나무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해리는
얼굴에 와 닿는 신선한 바람을 즐기면서 그 나무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있을 퀴디치 연습을 생각했다. 바로 그때 호그와트의 마차를
끌던 그 동물과 비슷하게 생긴, 커다란 날개가 달린 말이 익룡처럼 검은
날개를 쫙 펴더니 나무 위로 휙 날아올랐다. 흡사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새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것은 빙빙 원을 그리며 솟아오르더니, 다시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 모든 일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해리는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만 심장만 터질
듯이 두근거릴 뿐이었다.
갑자기 부엉이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초 챙이 손에 편지와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안녕."
해리가 거의 자동적으로 인사를 던졌다.
"어... 안녕."
초 챙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여기 있을 줄 몰랐어. 오 분 전에야 오늘이
우리 엄마 생신이라는 게 생각났거든."
초 챙은 꾸러미를 내보였다.
"그렇구나."
해리는 머릿속이 정지되어 버린 것 같았다. 뭔가 재미있고 웃기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 무시무시한 날개 달린 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날씨가 참 좋지."
해리는 어색하게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당황해서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날씨라니. 고작 날씨 이야기나 하고 있다니.
"그래."
초는 적당한 부엉이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퀴디치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야. 나는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밖에 나가
보지 못했어, 나는?"
"나도 마찬가지야."
초는 학교의 헛간 부엉이를 한 마리 골랐다. 그녀의 팔뚝 위에 내려앉은
부엉이는 그녀가 선물 꾸러미를 발목에 매다는 동안, 얌전하게 한쪽
다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핀도르는 새로운 파수꾼을 뽑았니?"
초가 물었다.
"응. 내 친구 론 위즐리가 뽑혔어. 너도 알지?"
"토네이도즈 팀을 싫어하는 그 친구?"
초가 다소 쌀쌀맞게 말했다.
"실력은 괜찮니?"
"응. 그런 것 같아. 사실 그 친구가 테스트받는 걸 보진 못했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거든."
초가 부엉이의 다리에 꾸러미를 매달다 말고 고개를 번쩍들었다.
"엄브릿지 그 여자는 정말 못됐어."
초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단지 네가 그- 그의 죽음에 대해서 진실을 말했다고 해서 너에게
나머지 공부를 시키다니 말이야. 모두 그 이야기를 들었어. 학교 전체에
소문이 다 났으니까. 넌 아주 용감하게 그 여자와 맞선 모양이더라."
순간 해리는 마음이 얼마나 부풀어 올랐는데, 부엉이 똥이 여기저기
흩어진 마루 위로 몸이 정말로 몇 센티미터쯤 둥둥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날아다니는 말 따위가 지금 무슨 상관이냐. 초가 그를
용감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잠깐 동안 해리는 부엉이의 다리에 꾸러미를
매달고 있는 초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상처가 난 손등까지 보여 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짜릿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는 순간,
또다시 부엉이장의 문이 열렸다.
관리인 필치가 씨근거리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홀쭉한 그의 얼굴에는
붉으락푸르락한 핏대가 섰고 그의 턱은 부르르 떨렸으며 힘없는 회색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단숨에 뛰어온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의 뒤를 이어 나타난 노리스 부인이 부엉이들을 올려다보며 배가
고픈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는 불안하게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갈색 부엉이가 위협적으로 부리를
딱딱거렸다.
"아하!"
필치가 해리를 향해 다가오면서 소리쳤다. 그의 축 처진 두 뺨은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네 녀석이 똥 폭탄을 대량 주문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들었다.!"
해리는 팔짱을 끼고 관리인을 노려보았다.
"내가 똥 폭탄을 주문한다고 누가 그래요?"
초는 얼굴을 찌푸리며 해리와 필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쪽 다리를
내밀고 서 있는데 지친 헛간 부엉이가 그녀의 팔위에서 경고하는
울음소리를 냈지만, 못 들은 척했다.
"나에게도 소식통이 있지."
필치는 만족스런 듯이 말했다.
"이제 보내려고 하던 걸 그만 내놓아 보시지.'
해리는 망설이지 않고 편지를 곧장 부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없어요. 벌써 보냈어요."
"보냈다고?"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보냈어요."
해리는 침착하게 말했다. 필치는 화가 나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눈으로 해리의 옷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네 호주머니에 숨기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하지?"
"왜냐하면-."
"해리가 보내는 걸 저도 봤어요."
초가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필치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네가 봤다고-?"
"네. 제가 봤어요."
초는 분명하게 말했다. 필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초를 노려보았다.
그녀도 지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필치는 휙 돌아서더니 문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리고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놓고 해리를 돌아보았다.
"만약 똥 폭탄의 냄새라도 맡는 날에는...."
필치는 쿵쿵거리며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노리스 부인은 아쉬운
눈빛으로 부엉이들을 바라보더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해리와 초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고마워."
해리가 인사를 했다.
"천만의 말씀."
마침내 헛간 부엉이의 다리에 꾸러미를 매단 초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설마 정말 똥 폭탄을 주문한 건 아니겠지?"
"아니야."
해리가 말했다.
"그런데 왜 필치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초는 창문 쪽으로 부엉이를 데려가며 말했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초 챙만큼이나 해리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순간만큼은 그런 일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부엉이장에서 나왔다. 성의 서쪽 건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이르자, 초가 말했다.
"난 이쪽으로 가야 해. 나중에... 보자, 해리."
초 챙은 미소를 던지고 가 버렸다. 해리는 우쭐한 기분으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초 챙과 끝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 한번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다.
넌 아주 용감하게 그 여자와 맞선 모양이더라.... 초가 그를 용감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혼자 살아서 돌아온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물론 초는 케드릭을 더 좋아했다. 해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케드릭보다 먼저 무도회에 가자고 말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해리가 무도회 파트너 신청을 했을 때, 초는 거절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잘 잤어?"
대연회장의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론과 헤르미온느를 만난 해리는
명랑하게 인사를 했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음... 조금 있다가 퀴디치를 하잖아."
해리가 베이컨과 달걀이 담긴 커다란 접시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
론은 먹고 있던 토스트 조각을 내려놓고 커다란 호박 주스잔을 집어
들어들었다.
"해리... 혹시 나랑 조금 일찍 나가지 않을래? 그러니까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나랑 연습 좀 하면 안 될까? 그럼 거리감을 좀 익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아, 물론이지?"
해리가 말했다.
"너희는 그러면 안 돼."
헤르미온느가 심각하게 반대했다.
"너희 두 사람 모두 숙제가 많이 밀렸-"
헤르미온느가 말을 멈추었다. 아침 우편물이 도착한 것이다. 늘 그렇듯이
부엉이 한 마리가 <예언자 일보>를 입에 물고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설탕 그릇 옆에 신문을 툭 떨어뜨리더니, 한쪽
다리를 쑥 내밀었다. 헤르미온느는 가죽 주머니 안에 1크넛을 넣은 다음
신문을 집어 들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1면 기사를 살펴보았다. 부엉이는
다시 날아가 버렸다.
"뭐 재미있는 기사라도 있어?"
론이 물었다. 해리는 어떻게든 헤르미온느가 다시 숙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를 쓰는 론을 보며 씩 웃었다.
"아니."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쉬었다.
"운명의 세 여신 밴드의 베이스 연주자가 결혼을 한다는, 쓸데없는
기사뿐이야."
헤르미온느는 신문을 펼쳐 들고 얼굴을 파묻었다. 해리는 다시 달걀과
베이컨을 먹는 데 열중했다. 한편 론은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높이 있는 유리창 밖을 올려다보았다.
"잠깐만!"
헤르미온느가 갑자기 소리쳤다.
"오, 안 돼... 시리우스!"
"무슨 일이야?"
해리는 황급히 신문을 낚아챘다. 그 바람에 신문 가운데 찢어져 버렸다.
헤르미온느와 해리는 각자 신문을 절반씩 손에 쥐고 읽어 내려갔다.
"마법부는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하여 악명 높은 대량 학살자 시리우스
블랙이... 최근 런던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헤르미온느가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손에 쥔 반쪽 신문을 읽어 내려갔다.
"틀림없이 루시우스 말포이일 거야."
해리가 치를 떨며 말했다.
"기차역에서 시리우스를 알아보았거든...."
"뭐라고? 넌 그런 말을 하지-"
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쉿!"
다른 두 사람이 동시에 속삭였다.
"...'마법부는 블랙이 열세 명의 사람을 죽이고... 아즈카반의 감옥을
탈출한, 아주 위험한 인물이라고 마법사 사회에 경고했다....' 나머지는 늘
하는 헛소리야."
헤르미온느가 반으로 찢어진 신문을 내려놓으며 겁에 질린 눈길로
해리와 론을 쳐다보았다.
"이제 시리우스는 절대로 그 집을 떠날 수 없을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도 그렇게 경고했잖아."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해리는 자기가 들고 있는 <예언자 일보>를 우울하게 내려다보았다.
말킨 부인의 전천후 망토 가게에 대한 광고가 신문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일 중인 것 같았다.
"이봐, 여기 좀 봐!"
해리는 헤르미온느와 론이 볼 수 있도록 신문을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난 더 이상 옷이 필요 없어."
론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니, 여길 봐. 여기 이 작은 기사 말이야...."
론과 헤르미온느는 좀더 바싹 몸을 숙이고 자세히 신문을 읽었다. 신문
사설 오른쪽 하단에, 불과 1센티미터도 안 되는 길이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마법부 침입 사건
클래펌, 래버넘 가든 2번지에 사는 스터지스 포드모어(38세)는 8월 31일
마법부 무단 침입 및 강도 혐의로 위즌가모트에 소환되었다. 포드모어는
마법부의 경비 마법사인 에릭 먼치에 의해 체포당했다. 발견 당시
포드모어는 새벽 한 시에 일급 기밀이 보관되어 있는 방에 강제
침입하려고 시도 중이었다. 자신에 대한 변호를 거부하고 있는 포드모어는
두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어, 아즈카반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스터지스 포드모어?"
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머리가 텁수룩한 그 친구 아니야, 그렇지? 그 친구도 기사-"
"론, 조용!"
헤르미온느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론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즈카반에서 6개월형이라고!"
해리가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렸다.
"그저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을 뿐인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던게 아니야.
도대체 새벽 한 시에 마법부에서 뭘 한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핀잔을 주었다.
"그럼 기사단을 위해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을까?"
론이 중얼거렸다.
"잠깐만... 스터지스는 우리를 경호하러 오기로 되어 있었어. 기억나?"
해리가 천천히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은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원래는 킹스 크로스 역까지 우리를 경호할 사람들 중 하나였어.
그런데 스터지스가 나타나지 않아서 무디가 계속 짜증을 냈잖아. 그래서
스터지스가 자기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모양이군. 안 그래?"
"맞아, 아마 사람들은 그가 붙잡힌 줄 전혀 몰랐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어쩌면 누명을 쓴 걸지도 몰라!"
론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니, 내 말 좀 들어 봐!"
론은 위협적인 헤르미온느의 표정을 보자, 갑자기 목소리를 확 낮추며
속삭였다.
"마법부에서는 그가 덤블도어의 사람이 아닌가 의심했을 거야. 그래서
그를 마법부로 불러낸 거지. 스터지스는 문을 열 생각조차 없었어! 어쩌면
마법부에서 그를 체포하려고 모두 꾸며 낸 이야기일지 몰라!"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잠시 론의 주장을 되새겨 보았다. 해리는 너무
지나친 추측이라고 생각했지만, 헤르미온느는 꽤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야."
헤르미온느는 반쪽으로 찢어진 신문을 접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해리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 순간, 몽상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맞아. 이제 우리는 스프라우트 교수님이 내주신, 스스로 비료를 주는
관목에 대한 작문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운이 좋으면, 점심 먹기 전에
맥고나걸 선생님의 이나니마투스 콘주루스 주문을 시작할 수 있을 거야."
해리는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산더미 같은 숙제들을 생각하자,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하늘은 저토록 눈부시게 푸른데 지금까지
한 번도 파이어볼트를 타 보지 못했다....
"정말이야. 오늘 밤에 다 할 수 있어."
비탈진 잔디밭을 지나 퀴디치 운동장으로 걸어가면서, 론이 위로하듯이
말했다. 그들은 각자 빗자루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들의 귓가에는
그러다가 틀림없이 O.W.L.에서 떨어질 거라고 경고하던 헤르미온느의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아직도 맴돌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잖아. 헤르미온느는 너무 숙제에 열심히란
말이야. 그게 마로 그 애의 문제야."
론이 잠시 입을 다물더니 약간 걱정스런 어조로 덧붙였다.
"헤르미온느가 두 번 다시 자기 공책을 베끼지 못하게 한다고 했던 말,
설마 진심일까?"
"그래, 진심일 거야."
해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중요해. 퀴디치 팀에 계속 남아 있으려면 연습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네 말이 맞아."
론이 진심으로 맞장구를 쳤다.
"더구나 시간은 충분해."
퀴디치 운동장에 가까이 갔을 때, 해리는 오른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어두컴컴한 금지된 숲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날아오르지 않았다. 저 멀리 부엉이 몇 마리만이 부엉이장이 있는 탑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을 뿐,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해리는
걱정거리가 태산이었다. 날개 달린 말은 그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해리는 잠시 그 생각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들은 탈의실에 있는 서랍장에서 공을 골라 연습을 시작했다. 론은
높은 골대 세 개를 지키고, 해리는 추격꾼이 되어서 퀘이플을 집어넣었다.
해리는 론이 꽤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해리가 친 공의 사 분의 삼을
막아 냈다. 그리고 연습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더 좋아졌다. 두 시간 후에
그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성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으면서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그들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해리와
론은 진짜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퀴디치 운동장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탈의실에 들어갔을 때, 안젤리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벌써 와
있었다.
"잘 지냈니, 론?"
조지가 그에게 눈을 찡긋했다.
"응."
론은 운동장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우리에게 솜씨를 보여 줄 준비가 되셨나? 귀염둥이 반장님?"
프레드가 퀴디치 선수복 밖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심술궂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만 해."
론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난생 처음 선수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보다 어깨가 넓은 올리버 우드의 옷을 물려받은 것인데도 그럭저럭
론에게 잘 맞았다.
"좋아. 모두들 나가자."
벌써 선수복으로 갈아입은 안젤리나가 주장 사무실에서 나왔다.
"앨리샤와 프레드는 공 상자를 가지고 나와. 오, 저기 우릴 지켜보는
구경꾼들이 있군. 하지만 부디 신경 쓰지 않길 바라, 알았지?"
억지로 태연한 척하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해리는 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누구인지 벌써 짐작이 갔다. 과연 탈의실에서 나와 햇살이
눈부신 운동장으로 들어섰을 때, 슬리데린 퀴디치 팀으로부터 야유와
휘파람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슬리데린 팀의 열성 팬들이 텅 빈
관중석 중간쯤에 모여서 여기에 합세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운동장 전체로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위즐리가 타고 있는게 뭐지?"
말포이가 특유의 멸시 어린 느린 말투로 소리쳤다.
"도대체 저렇게 케케묵은 낡은 막대기에 하늘을 나는 마법을 왜
걸었을까?"
크레이브와 고일 그리고 팬시 파킨슨은 배꼽이 빠져라 큰 소리로 웃어
댔다. 얼른 빗자루에 올라탄 론은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그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면서, 해리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냥 무시해 버려."
해리가 론을 따라잡으려고 박차를 가하면서 충고했다.
"어디 시합이 끝난 후에 누가 웃는지 두고 보자."
"해리,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태도야."
안젤리나가 퀘이플을 옆구리에 끼고 그들 주위를 맴돌며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속력을 줄이고 하늘에 떠 있는 선수들 앞에 멈춰 섰다.
"좋아. 모두들 몸을 푸는 단계로 우선 패스 연습을 시작해보자. 팀
전체는-"
이봐, 존슨. 도대체 그 머리 스타일은 뭐야?"
팬시 파킨슨이 밑에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당장에라도 벌레가 기어 나올 것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고 싶어 하는 걸까?"
안젤리나는 길게 땋은 머리를 뒤로 휙 젖히면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모두 흩어져.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해리는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돌아서서 운동장 끝으로 갔다. 론은
반대편 골대로 향했다. 안젤리나는 퀘이플을 높이 쳐들더니 프레드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는 다시 조지에게 패스를 하고, 조지는 해리에게, 해리는
론에게 패스를 했다. 론은 그만 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말포이를 선두로, 슬리데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함성을 지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퀘이플이 땅에 닿기전에 붙잡으려고 바닥을 향해서 돌진한 론은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빗자루에 비스듬히 매달린 채, 얼굴을 붉히며
선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해리는 프레드와 조지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그 점이 무척
고마웠다.
"론, 이쪽으로 패스해."
안젤리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론은 퀘이플을
앨리샤에게 던졌고 앨리샤는 해리에게, 해리는 조지에게 패스했다.
"포터, 요즘 네 이마의 흉터는 어떠냐?"
말포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혹시 누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병원에 들어갔다가 일주일 만에
나오면 너로서는 신기록 아니니? 안 그래?"
조지가 안젤리나에게 공을 패스하자, 안젤리나는 뒤쪽의 해리에게
패스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공이었지만, 해리는 아슬아슬하게 공을
붙잡아서 재빨리 론에게 패스했다. 론은 얼른 몸을 날렸지만, 몇 센티미터
차이로 공을 놓쳤다.
"이봐, 론. 정신 차려."
또다시 퀘이플을 쫓아서 바닥으로 내려가는 론을 보고, 안젤리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론이 다시 선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 론의 얼굴이 더 빨간지
퀘이플이 더 빨간지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제 말포이와
슬리데린들은 운동장이 떠나가라 왁자지껄 웃고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 론은 간신히 퀘이플을 잡았다. 하지만 안도감
때문인지 너무 힘껏 공을 패스하는 바람에, 공이 케이티의 쭉 벋은 손을
지나서 그녀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혔다.
"미안!"
론은 신음 소리를 내며, 혹시 다치지 않았는지 보려고 황급히 앞으로
날아갔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케이티는 괜찮아!"
안제릴나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자기 팀 선수에게 공을 패스할 때는 빗자루에서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거야, 알았지? 그건 블러저가 할 일이야!"
케이티의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밑에서는 슬리데린들이 발을
구르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프레드와 조지가 케이티에게 다가갔다.
"여기 이걸 먹어."
프레드가 호주머니에서 보라색이 나는 뭔가를 꺼내더니 케이티에게
주었다.
"순식간에 멈출 거야."
"좋아."
안젤리나가 소리쳤다.
"프레드, 조지. 제자리로 가서 방망이와 블러저를 들어. 론, 골대로
올라가. 해리, 내가 말을 하면 스니치를 풀어놓도록 해. 이제 우리는 론의
골대를 향해 공을 넣을 거야."
해리는 스니치를 가지러 쌍둥이 형제와 함께 날아갔다.
"론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 안 그래?"
조지가 중얼거렸다. 공이 담긴 상자가 있는 곳에 착륙한 세 사람은
상자를 열고 블러저 하나와 스니치를 꺼냈다.
"긴자해서 그래. 오늘 아침에 나랑 연습할 때는 괜찮았어."
"그래, 너무 일찍 실력을 발휘하게 될까 걱정이다."
프레드가 우울하게 말했다. 세 사람은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안젤리나가 호루라기를 불자, 해리는 스니치를 풀어놓았다. 동시에
프레드와 조지는 블러저를 날렸다. 바로 그 순간부터 해리는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날개를
팔락거리는 작은 황금색 공을 다시 잡는것만이 그의 일이었다. 저 공은
자신을 잡은 수색꾼의 팀에 150점을 안겨다 줄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속력과 기술을 필요로 했다. 해리는 빠르게 속력을 내면서 몸을
빙빙 돌리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추격꾼들을 따돌렸다. 따듯한 가을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멀리서 들려오는 슬리데린의 함성소리가 그의 귀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소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호루라기 소리가 그를
다시 멈춰 세웠다.
"그만- 그만- 그만!"
안젤리나가 비명을 지르듯이 고함을 쳤다.
"론, 중간 골대를 막지 않고 있잖아!"
해리는 론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두 개의 골대를 완전히 비워 둔 채,
왼쪽 끝에 있는 골대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어... 미안...."
"추격꾼들을 지켜보면서 계속 골대를 왔다갔다해야 해!"
안젤리나가 소리쳤다.
"골대를 지키거나 골대 주위를 돌아야 할 경우가 아니면, 가운데 위치에
머물러 있어야지. 애매하게 한쪽 골대에서만 서성거리고 있으면 안 된단
말이야! 그것 때문에 네가 이미 세 골이나 허용한 거라고!"
"미안해...."
론이 되풀이해서 사과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베이컨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이 더욱 붉게 보였다.
"그리고 케이티, 그 코피 좀 어떻게 멈출 수 없니?"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케이티가 소맷자락으로 흐르는 피를 막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해리는 재빨리 프레드를 쳐다보았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면서 호주머니를
살펴보고 있었다. 프레드는 보라색이 나는 뭔가를 꺼내서 잠시 살펴보더니,
겁에 질려 새파랗게 변한 얼굴로 케이티를 돌아보았다.
"좋아, 그럼 다시 한 번 해보자."
안젤리나가 '그리핀도르 패배자들, 그리핀도르 패배자들'이라고 입을
모아 합창을 하고 있는 슬리데린들을 무시하며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빗자루에 올라타고 있는 그녀의 태도에는 위엄이 넘쳤다.
이번에는 다시 날기 시작한 지 채 삼 분도 안 되어 안젤리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에 반대편 골대 주위를 맴돌고 있는 스니치를
발견했던 해리는 못내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해리가 가까이 있는 앨리샤에게 투덜거렸다.
"케이티야."
앨리샤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해리는 몸을 돌려서 안젤리나를
바라보았다. 프레드와 조지가 동시에 전속력으로 케이티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해리와 앨리샤도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안젤리나가 제때에 훈련을
멈추게 한 것이 분명했다. 케이티는 이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분필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던 것이다.
"병동으로 가야겠어."
안젤리나가 말했다.
"우리가 데려갈게."
프레드가 말했다.
"어- 그러니까 실수로 출혈 물집 알약을 삼켰을지도 몰라."
"몰이꾼과 추격군이 빠진 채, 연습을 계속할 수는 없어."
프레드와 조지가 케이티를 부축하고 성을 향해 날아가자. 안젤리나가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가서 옷을 갈아입자."
슬리데린들은 탈의실로 향하는 그들의 뒤에 대고 게속 노래를 불러
댔다.
"연습은 어땠어?"
삼십 분 후에 론과 해리가 초상화 구멍을 지나서 그리핀도르 휴게실로
들어오자, 헤르미온느가 다소 쌀쌀맞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연습은-"
해리가 입을 열자마자, 론이 헤르미온느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힘없이
말을 가로챘다.
"완전히 엉망이었어."
헤르미온느는 론을 한 번 쓱 쳐다보았다. 금방 쌀쌀맞은 태도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너는 훈련이 처음이잖아."
헤르미온느가 그를 위로했다.
"당연히 시간이 걸릴 거야-"
"도대체 나 때문에 훈련이 엉망이 되었다고 누가 그래?"
론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무도 안 그랬어. 하지만 내 생각에-"
헤르미온느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당연히 형편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이거 봐. 네가 연습이 엉망이었다고 하길래 난
그저-"
"난 그냥 숙제나 할래."
론이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남학생 침실을 향해서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돌아보았다.
"론이 형편없었어?"
"아니야."
해리는 신의를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눈을 치켜뜨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실력 발휘를 다 하지는 못했어. 하지만 네가 말한 대로 이번이 첫
번째 훈련이니까..."
해리도 론도 그날 밤에는 별로 숙제를 많이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해리는 론이 퀴디치 연습에서 자신이 형편없었다는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또한 '그리핀도르 패배자'라는 노랫소리를
머릿속에서 떨쳐 버리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숙제 더미에 파묻힌 채, 일요일 내내 휴게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동안 학생들은 휴게실을 채웠다가 썰물처럼 다시 빠져나갔다. 일요일도
환하고 맑은 날씨였다. 그리핀도르의 학생들은 대부분 그 해의 마지막
햇살을 실컷 즐기려는 듯이 운동장에 나가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해리는 누군가 머릿속을 마구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는 주중에 좀더 많은 숙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
해리가 론에게 중얼거렸다. 그들은 마침내 맥고나걸 교수의
이나니마투스 콘주루스 주문에 대한 기나긴 보고서를 마치고 시니스트라
교수의 목성에 있는 수많은 달에 대한, 역시 길고 어려운 보고서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그래."
론이 충혈된 눈을 비비며 다섯 번째로 망친 양피지 종이를 벽난로 속에
던져 버렸다.
"저기... 헤르미온느에게 숙제 해 놓을 걸 한 번만 보여달라고 부탁해
볼까?"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슬쩍 넘겨다보았다. 그녀는 무릎 위에 크룩생크를
올려놓고 앉아서 지니와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서는 한
쌍의 뜨개질바늘이 허공에 뜬 채, 이번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집요정
양말을 열심히 뜨고 있었다.
"안 돼. 절대 보여 주지 않을 거야."
해리가 우울하게 말했다. 결국 두 사람은 창 밖의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공부를 계속했다. 차츰 휴게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열한 시 반이 지나자, 헤르미온느도 하품을 하며 그들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거의 끝났니?"
"아니."
론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목성의 가장 큰 달은 칼리소트가 아니라 가니메데아야."
헤르미온느가 론의 어깨 너머로 그의 천문학 보고서 한 곳을 짚으며
말했다.
"그리고 화산이 있는 곳은 이오야."
"고맙구나."
론이 잘못된 부분을 싹싹 지우며 쏘아붙였다.
"미안해. 난 그저-"
"그래. 우리 잘못을 꼬집으려고 온 거라면 그만 됐어."
"론-"
"헤르미온느, 난 설교를 듣고 있을 시간이 없어. 난 여기 이 숙제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아니, 저걸 봐!"
헤르미온느가 제일 가까이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해리와 론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잘생긴 헛간 부엉이 한 마리가 창문틀 위에 앉아 론을
응시하고 있었다.
"헤르메스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래, 맞아!"
론이 조용히 깃펜을 내던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퍼시가 나에게 무슨 편지를 보낸 거지?"
론은 창 쪽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헤르메스는 안으로 날아
들어오더니 론의 보고서 위에 앉아서 편지가 묶여 있는 한쪽 다리를
내밀었다. 론이 편지를 받자, 부엉이는 이오 위성을 그린 론의 보고서 위에
발자국을 남긴 채, 즉시 날아가 버렸다.
"이건 분명 퍼시의 글씨야."
론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으며 두루마리 겉에 쓰인 글씨를 읽었다.
호그와트, 그리핀도르 기숙사, 로날드 위즐리. 론은 고개를 들고 다른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얼른 열어 봐!"
헤르미온느가 재촉했다. 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두루마리를
펼치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피지를 따라 시선이 내려갈수록,
그의 얼굴도 점점 더 심하게 찌푸려졌다. 마침내 편지를 다 읽었을 때,
론은 거의 토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해리와 헤르미온느에게 편지를
내던졌다. 두 사람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편지를 읽었다.
친애하는 론
나는 방금 전에야 네가 호그와트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름
아닌 마법부 장관님의 입을 통해서 말이야. 그분은 너희들이 새로운
선생님이신 엄브릿지 교수님께 들었다고 하시더구나.)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다. 그리고 먼저 축하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구나 솔직히 나는 네가 나의 뒤를 따라오기보다는, 행여
프레드와 조지의 전철을 밟거나 않을까 항상 걱정했었단다. 그러니 네가
권위를 업신여기는 태도를 버리고 진정한 책임을 짊어지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론, 나는 너에게 축하 인사보다도 충고 몇 마디를 해주고 싶구나.
보통 아침 우편 대신 지금 이 밤중에 편지를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란다.
부디 괜히 이상한 질문을 받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이
편지를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장관님께서 네가 반장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얼핏 흘리신 몇 가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너는 아직도 해리 포터를 자주 만나고 있는
모양이더라. 하지만 론, 그 아이와 계속 시시덕거리며 어울리다가는 반장
배지마저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꼭 말해 주고 싶다. 물론 이 말을 들으면
넌 무척 놀란 게다. 그리고 포터는 항상 덤블도어가 가장 총애하는
학생이었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덤블도어는 조만간 호그와트에서 물러나게
될 거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포터의 행동에 대해서 아주 다른 -그리고
보다 정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단다. <예언자 일보>를 보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너도 정확히 알게 될 게다. 그리고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게다!
론, 너도 포터처럼 똑같이 자기 이름에 먹칠을 하고 싶지는 않겠지. 너의
장래에도 아주 커다란 해를 입힐 수 있단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뒤의
인생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네가 꼭 알아 둬야 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그를 법정에까지 데려갔을 때, 포터는 위즌가모트 전원 앞에서 징계
청문회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그렇게 보기 좋게
빠져나오지 못했어. 포터는 단지 기술적으로 벗어났을 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어.
어쩌면 너는 포터와 관계를 끊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녀석이 아주 불안정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혹시라도 그것 때문에 무슨 걱정이 있거나, 포터가 조금이라도 너를
괴롭히는 행동을 하거든 즉시 돌로레스 엄브릿지 선생님께 말씀드리렴,
참으로 좋으신 분이니까 너에게 기꺼이 적절한 충고를 해주실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다시 너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는구나. 내가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덤블도어 교수는
호그와트에서 곧 물러나게 될 거야. 그러므로 론, 너는 덤블도어 그 사람이
아니라, 학교와 마법부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 엄브릿지 교수가 호그와트
내에서 꼭 필요하고 마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교직원들의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몹시 안타까웠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모든 일이 훨씬 더
쉬워질 거다. 내일 자 <예언자 일보>를 보렴!) 나는 단지 이 말만을
해주고 싶다. 지금 엄브릿지 교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학생은 일이 년
안에 학생회장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여름방학 내내 너를 만나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구나. 우리 부모님을
비난하는 것이 무척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분들이 덤블도어 주변의
위험한 무리들과 계속 어울려 지내시는한, 나는 더 이상 그분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편지를 쓰게 되면,
덤블도어의 가까운 친구인 스터지스 포드모어가 최근에 마법부를 무단
침입한 죄로 아즈카반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꼭 알려 드리렴, 어쩌면 이
일로 엄마도 최근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 범죄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깨닫게 되실지도 모르지. 나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마법부가
나에게 큰 은혜를 베푼 셈이지. 론, 부디 가족이라는 정에 얽매여서 우리
부모님의 믿음과 행동의 그릇된 점까지 보지 못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때가 되면, 그분들도 자신들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겠지. 그날이 오면, 나는 물론 기꺼이 그분들의 사과를 받아들일
생각이다.
부디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곰곰이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특히 해리
포터에 대한 충고를 잊지 말거라. 다시 한 번 반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
사랑하는 형, 퍼시
해리는 론을 바라보았다.
"걱정 마, 론. 설사 네가 - 그러니까- 뭐라고 썼더라?"
해리는 퍼시의 편지를 그저 웃기는 농담처럼 생각한다는 티를 내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그리고 퍼시의 편지를 다시 살펴보는 척했다.
"그래, 바로 여기 있구나. 설사 네가 나와의 '관계를 끊는' 다고 해도, 난
절대로 폭력적이 되지 않을게. 맹세할 수 있어."
"그만 돌려줘."
론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퍼시의 편지를 반으로 쫙 찢었다.
"퍼시는 정말-"
론은 또다시 편지를 반으로 찢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론은 또다시 편지를 반으로 찢었다.
"멍청이야."
그리고 찢어진 조각을 불 속에 집어던졌다.
"서두르자. 우린 날이 밝기 전에 이 숙제를 끝내야만 해."
론이 시니스트라 교수의 보고서 숙제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이리 줘 봐.'
헤르미온느가 불쑥 입을 열었다.
"뭐라고?"
론이 물었다.
"그거 나 달라고. 내가 읽어 보고 틀린 걸 고쳐 줄게."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정말이야? 오, 헤르미온느, 넌 생명의 은인이야.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도무지-"
론은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다.
"그저 '두 번 다시 이렇게 숙제를 미루어 놓지 않겠다고 약속해.'라고
말하면 돼."
헤르미온느는 두 사람의 숙제를 양손에 받았다. 그러나 왠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너무너무 고마워, 헤르미온느."
해리가 힘없이 숙제를 건네주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졸린 눈을
비볐다. 자정이 지나자, 휴게실에는 세 사람과 크룩생크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헤르미온느의 깃펜이 보고서 여기저기를
고치며 사각거리는 소리와 책상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참고 서적에서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하느라 책장을 넘기는 소리뿐이었다. 해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다. 동시에 뱃속이 텅 비고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피곤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순전히 저 벽난로 속에서 검게 타오르고 있는 편지 때문이었다.
호그와트에 있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그를 이상한 놈이라고, 심지어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해리도 잘 알고 있었다. <예언자 일보>가
몇 달 동안이나 그에 대해서 악의에 찬 비방을 해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내용이 쓰여 있는 퍼시의 편지를 직접 읽는 것은 또
달랐다. 퍼시가 론에게 그를 사귀지 말라고, 심지어 엄브릿지에게 가서
그를 고자질하라고 충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욱 절감하도록 만들었다. 해리는 지난 4년 동안
퍼시를 알고 지냈고 여름방학이면 그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심지어
퀴디치 월드컵 경기 때에는 그와 같은 천막을 쓰기도 했다. 또한 지난
트리위저드 시합의 두 번째 시험 때에는 그에게서 만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퍼시는 그가 불안정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갑자기 대부에 대한 연민이 밀려오면서, 해리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시리우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시리우스도 지금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 세계에 속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리우스를 위험한
살인자에다 볼드모트의 열렬한 추종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리우스는 14년 동안이나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해리는 눈을 깜박했다. 방금 전 벽난로 속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잠깐 눈앞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시리우스에 대한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헛것을
본 거야.
"좋아. 이렇게 다시 적어."
헤르미온느가 자신이 적어 놓은 종이와 론의 보고서를 되돌려 주며
말했다.
"그런 다음 내가 써 준 결론을 덧붙이도록 해."
"헤르미온느, 넌 정말 내가 만난 최고의 친구야."
론이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내가 또다시 너에게 무례하게 굴거든-"
"그래 봤자, 네가 다시 평소와 똑같이 행동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헤르미온느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해리, 네 보고서는 끝에 몇 가지면 빼면 다 괜찮아. 아마 시니스트라
교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 유로파(목성의 4대 위성 중 하나
: 역주)는 쥐가 아니라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해리?"
해리는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와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불에 그을리고 낡아빠진 벽난로 앞 깔개 위에 웅크린 채, 불 속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해리?"
론이 망설이며 물었다.
"왜 거기 앉아 있는 거니?"
"방금 전 불 속에서 시리우스의 머리를 보았거든.'
해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작년에도 이 벽난로 속에서 시리우스의
머리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을 건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진짜로 머리를 본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너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시리우스의 머리?"
헤르미온느가 다시 물었다.
"트리위저드 시합 때처럼 그가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니?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리가 없어. 그건 너무 위- 시리우스!"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리고 벽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론은 깃펜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 한가운데
시리우스의 머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싱끗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 버리기 전에 너희들이 자러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매 시간 살펴보고 있었지."
"시간마다 벽난로 속에 나타났었단 말인가요?"
해리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없는지 살펴보려고 잠깐잠깐 나타났었지."
"하지만 그러다가 다른 사람 눈에라도 띄면 어떻게 해요?"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글세. 아마 신입생인 것 같은 한 여학생이 조금 전에 나를 얼핏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헤르미온느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깜짝 놀라자, 시리우스는 황급히
덧붙였다.
"그 여학생이 나를 돌아보자마자, 내가 곧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틀림없이 그 여학생은 내가 이상하게 생긴 통나무거나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시리우스, 이건 너무 위험한 짓이에요."
헤르미온느가 잔소리를 시작했다.
"네 말투가 꼭 몰리 같구나. 하지만 암호를 사용하지 않고 해리의
편지에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 말이야. 게다가 암호는
해독할 수도 있어."
해리가 편지를 보냈다는 말을 듣자, 헤르미온느와 론이 동시에 해리를
쳐다보았다.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말을 하지 않았잖아!"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비난했다.
"깜박 잊었어."
그것은 사실이었다. 부엉이장에서 초를 만나고 나자, 다른 모든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헤르미온느,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마. 비밀 정보는 한 마디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썼어. 그렇죠, 시리우스?"
"그래, 아주 훌륭했다."
시리우스가 빙그레 웃었다.
"어쨌든 서두르는 게 좋겠다. 혹시 누가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네 흉터
말이다."
"뭐라고요?"
론이 끼어들려고 하자,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가로막았다.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계속하세요, 시리우스."
"흉터가 또 아프다면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지난해 동안 계속 아팠던 게
사실이잖아?"
"그래요. 덤블도어 교수님은 볼드모트가 어떤 감정을 강하게 느낄
때마다 통증이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해리는 늘 그렇듯이 론과 헤르미온느가 찔끔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무시해 버렸다.
"그렇다면 잘 모르겠지만, 제가 나머지 공부를 받던 그날 밤에 그자는
몹시 화가 났거나 뭐 그랬을 거예요."
"그래. 그자가 돌아왔으니, 흉터가 더 자주 쑤시는 건 당연해."
시리우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나머지 공부를 할 때, 엄브릿지가 저를 만진 것과
흉터가 쑤시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해리가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다."
시리우스가 말했다.
"나도 그 여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죽음을
먹는 자는 아닐 거야-."
"그 여자는 그러고도 남을 여자예요."
해리가 우울하게 말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온 세상이 착한 사람과 죽음을 먹는 자, 둘로만 나눠지는
것은 아니야."
시리우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여자가 꽤 고약하다는건 나도 알아. 리무스가 그 여자에 대해서 한
말을 너도 들어 봤어야 하는데."
"루핀이 그 여자를 안단 말인가요?"
해리가 재빨리 물었다. 문득 첫 수업 시간에 엄브릿지가 위험한 잡종에
대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니야. 하지만 그 여자는 2년 전에 늑대인간 반대 법안을 제안한
장본인이야. 그 덕분에 루핀은 더 이상 직업을 얻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지."
해리는 요즘 들어 점점 더 추레해진 루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브릿지에 대한 미움이 더욱 깊어졌다.
"그 여자는 늑대인간을 왜 반대하는 거죠?"
헤르미온느가 화가 나서 물었다.
"무서운 게지."
시리우스가 흥분하는 헤르미온느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여자가 반 인간을 혐오하는 것은 분명해. 작년에는 인어들을 가두어
놓고 꼬리표를 붙여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단다. 크리처 같은
부랑자들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판에 인어들을 괴롭히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고 상상해 봐라."
론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헤르미온느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시리우스! 솔직히 아저씨가 조금만 크리처에게 관심을 쏟는다면,
틀림없이 크리처도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크리처에게 남아
있는 가족이라고는 아저씨밖에 없잖아요. 덤블도어 교수님도 말씀하시길-"
헤르미온느가 잔소리를 늘어놓자, 시리우스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그래, 엄브릿지의 수업은 어땠니? 너희에게 잡종을 죽이는 훈련이라도
시키든?"
"아니요."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못 본 척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녀는 크리처를
옹호하던 말이 가로막히자, 몹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해요!"
"한심한 교과서만 읽게 하는걸요."
론이 투덜거렸다.
"그래, 그 사람들이 그렇지."
시리우스가 말했다.
"마법부 내부의 정보에 따르면, 퍼지는 너희들에게 전투 훈련을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전투 훈련이라고요!"
해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풀이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여기서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마법사
군대라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퍼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아니면 덤블도어가 그렇게 하고 있을까
봐 두려운 거겠지. 개인 군대를 양성해서 언젠가 마법부를 차지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이 말을 듣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론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멍청한 말은 생전 처음 들어 봐요. 루나 러브굿이 하는 그
엉터리 같은 말까지 다 포함해도 말이죠."
"그러니가 마법부를 상대로 우리가 마법을 쓸까 봐 겁이 나서, 퍼지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우리에게 가르치지 못하게 한 거로군요."
헤르미온느가 성난 얼굴로 말했다.
"맞아, 퍼지는 덤블도어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모든 걸 불사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요즘 들어 퍼지는 덤블도어에 대해서 더욱 광적인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어. 이러다가는 퍼지가 날조된 죄목으로 덤블도어를
체포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봐."
이 말을 듣자, 해리는 문득 퍼시의 편지가 떠올랐다.
"내일 자 <예언자 일보>에 덤블도어에 대해서 무슨 기사가 실리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론의 형인 퍼시의 말에 따르면-"
"나도 모르겠다. 주말 내내 기사단 사람들을 한 명도 못 봤거든. 모두
굉장히 바빠서 말이야. 여기는 크리처와 나밖에 없어..."
시리우스의 목소리에는 쓸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해그리드에 대해서도 무슨 소식 못 들으셨어요?"
"아참. 해그리드는 이제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라."
순간 충격을 받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시리우스는 황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계시니까, 너희 세 사람도
그렇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해그리드는 틀림없이 무사할 게다."
"그래도 지금쯤 돌아올 때가 되었다면..."
헤르미온느가 몹시 불안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맥심 부인이 해그리드와 함께 있단다. 우리는 줄곧 부인과 연락을
취했는데, 고향으로 가는 길에 서로 헤어졌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해그리드가 다쳤거나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하나도 없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여전히 마음이 불안한 해리와 론이 헤르미온느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애들아, 해그리드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걸 묻지 말아라."
시리우스가 황급히 말했다.
"그러면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자꾸 더 관심을 끌게 될
뿐이야. 덤블도어도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으셔. 해그리드는 강하니까,
분명히 괜찮을 거야."
하지만 이 말을 듣고도 전혀 즐거워하지 않는 세 사람을 보자,
시리우스는 다시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다음번 호그스미드 주말 방문이 언제지? 내가 생각해
봤는데, 개로 변한 채 우리가 함께 역까지 나갔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도-"
"안 돼요!"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시리우스, <예언자 일보>도 못 보셨어요?"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그거. 내가 어디에 있다는 소문이야 항상 떠돌고 있는 걸. 실제로는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어."
시리우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래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단서를 잡은 것 같아요."
해리가 말했다.
"기차 안에서 말포이가 한 말도 왠지 그 개가 아저씨였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어요. 게다가 말포이의 아버지도 기차역에 있었고요.
아저씨도 루시우스 말포이를 알고 계시죠?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
오시면 안 돼요. 만약 말포이가 아저씨를 다시 알아보게 되면-"
"알았다.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시리우스는 무척 마음이 상한 것 같았다.
"그냥 생각만 해본 거야. 너희들이 나랑 함께 간다면 좋아할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그렇죠. 하지만 아저씨가 다시 아즈카반으로 끌려가는 건 싫어요!"
해리가 말했다.
잠시 짧은 침묵이 흐르고, 시리우스는 불 속에서 벽난로 밖에 있는
해리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시무룩한 두 눈 사이로 굵은 주름이 잡혔다.
"넌 생각보다 네 아버지를 별로 닮지 않았구나."
마침내 시리우스가 쌀쌀맞게 말했다.
"제임스는 위험이 따를수록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 크리처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시리우스가 말했다. 하지만 해리는 분명히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 다시 이 벽난로에 나타날 수 있을지, 편지에 써서 알려 주마.
알겠지? 네가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시리우스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도다시 불곷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