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뱀의 눈
일요일 아침이 되자, 헤르미온느는 60센티미터 높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을 다시 찾아갔다. 해리와 론도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제는 산더미처럼 밀린 숙제에 거의 깔려 죽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휴게실에 남아서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즐거운 함성
소리에 귀를 막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썰매를 타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가장 최악의 순간은,
마법에 걸린 눈 뭉치가 그리핀도르 탑까지 날아와서 창문에 탁 부딪힐 때였다.
"이봐!"
마침내 인내심을 잃어버린 론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고함을 질렀다.
"난 반장이야. 한 번만 더 창문에 눈을 던지면... 어이쿠!"
론은 재빨리 창문 안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의 얼굴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였어."
론은 창문을 쾅 닫으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제기랄."
헤르미온느는 점심 시간 직전에 해그리드의 오두막에서 돌아왔다. 그녀는
무릎까지 흠뻑 젖은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어떻게 됐니?"
헤르미온느가 들어오자, 론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해그리드가 수업 계획을 받아들였어?"
"노력은 했어."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옆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힘없이 말했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꺼내 약간 복잡하게 이리저리 흔들자, 지팡이 끝에서 뜨거운 바람이
흘러나왔다. 헤르미온느가 그것을 옷자락에 가까이 댔다. 김이 나면서 망토가
마르기 시작했다.
"내가 갔을 때는 해그리드가 집에 없었어. 삼십 분 가까이나 문을 두드렸지.
그리고 얼마 지나서야 해그리드가 숲 속에서 걸어 나오더군."
해리가 신음 소리를 내었다. 금지된 숲이야말로 해그리드를 파면시키기에 딱
맞는 동물들이 우글거리는 장소였던 것이다.
"거기서 뭘 기르고 있대? 해그리드가 뭐라고 말해 줬어?"
해리가 물었다.
"아니."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저었다.
"헤그리드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 해. 난 엄브릿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려고 애를 썼어.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아무도 키메라 대신 크날을 배우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어. 오, 그렇다고 키메라를 가져오진 않을 거야."
순간, 해리와 론의 얼굴에 겁먹은 표정이 떠오르자,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덧붙였다.
"하지만 키메라 알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말하는 걸 봐서,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닌 것 같아. 어쨌든 나는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님의 수업
계획을 그냥 따르는 편이 좋겠다고 셀 수 없이 여러 번 말해 줬어. 그렇지만
내가 하는 말의 절반도 귀담아듣지 않더라고. 해그리드는 약간 묘한 상태였어.
게다가 아직도 어떻게 상처를 입게 되었는지 말해 주려고 하지 않았어."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해그리드가 교직원 테이블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모든 학생들이 기뻐하며 그를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프레드나 조지, 리
같은 몇몇 학생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테이블
사이를 달려 나가서 해그리드의 커다란 손을 덥석 잡기도 했다. 하지만
패르바티와 라벤더 같은 학생들은 실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해리는 많은 학생들이 그루블리 프랭크 선생님의 수업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루블리 프랭크 선생님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수업은, 적어도 누군가 그들의
목을 떼어 갈 위험이 있는 수업은 아니었다.
화요일이 되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온 얼굴을 감싼 채,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해리는 해그리드가 과연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걱정이었지만, 다른 학생들, 특히 말포이 패거리들이
엄브릿지 앞에서 어떤 태도로 나올지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눈 속을 헤치며 힘들게 해그리드 앞으로 갔을 때, 장학사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해그리드는 숲 가장자리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상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토요일 밤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던 자리가 이제는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물들고, 몇몇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해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상처가 잘 낫지 않는 독을 지닌 어떤 생물에게 공격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게다가 해그리드는 그러지 않아도 보기 흉한 몰골에 음산한 분위기를
더하려는 듯이, 어깨 위에 죽은 소를 반으로 잘라 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저기서 공부할 거란다!"
해그리드는 등 뒤에 있는 어두운 숲을 향해 고갯짓을 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학생들에게 한껏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좀더 잘 감추기 위해서지! 게다가 어두운 곳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뭐가 어두운 곳을 더 좋아한다는 거야?"
해리는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공포에 질려 있었다.
"뭐가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고 그랬는지, 넌 혹시 들었니?"
해리는 말포이가 지금까지 딱 한 번밖에 숲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도 말포이는 겁을 내고 무서워했었다. 해리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퀴디치 시합 이후로 말포이를 골려 줄 수 있는 일이면 무조건
대환영이었던 것이다.
"준비됐니?"
해그리드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신나게 말했다.
"좋아. 나는 5년 동안 숲 속 여행을 아껴 두고 있었지. 숲에 들어가면 자연
상태로 살아가는 생물들을 볼 수 있을 거야. 이제 오늘 우리가 공부할 것은 아주
보기 드문 거란다. 아마 영국에서 이걸 길들이는 데 성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일 거라고..."
"길들인 게 확실한가요?"
말포이가 더욱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사나운 동물을 수업 시간에 데려온 게 처음은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슬리데린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그리핀도르의 몇몇
학생들까지도 말포이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건 길들여져 있지."
해그리드는 얼굴을 찌푸리며 어깨에 매고 있던 죽은 소를 좀더 위로
추켜올렸다.
"그럼 도대체 얼굴은 왜 그렇게 된 거죠?"
말포이가 따져 물었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해그리드가 벌컥 화를 냈다.
"자, 이제 그 멍청한 질문이 다 끝났으면, 그만 날 따라와라!"
해그리드는 돌아서서 숲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하지만 모두들 썩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슬쩍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한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보다
앞장서서 해그리드의 뒤를 따라갔다.
약 십 분쯤 따라가니, 나무들이 너무나 빽빽이 들어서서 해질 때처럼 항상
어둡고 바닥에는 눈 한 점 쌓여 있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해그리드는 짊어지고
온 소를 끙 하고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더니, 다시 학생들을 향해서
돌아섰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당장에라도 뭔가가 덮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한
눈길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나무 사이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리 모여라. 이리로 모여."
해그리드가 아이들을 격려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그것들이 고기 냄새를 맡고 몰려들 거다. 하지만 어쨌든 나도 그것들을
부를 거야. 그래야 내가 온 줄 알고 좋아할 테니까 말이다."
해그리드는 텁수룩한 머리를 흔들며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다. 그리고 기묘하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 뭔가
무시무시한 새를 부르는 신호처럼 어두운 숲 전체로 울려 퍼졌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사실은 너무 겁에 질려서 찍소리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그리드는 또다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일 분쯤 지났을까. 학생들은
과연 무엇이 나타날지 불안한 얼굴로 어깨너머를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해그리드가 세 번째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거대한 가슴을 잔뜩 부풀리는
순간, 해리는 론을 툭 치면서 옹이진 두 그루의 주목나무 사이의 캄캄한
빈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얗게 번뜩이는 두 개의 눈이 어둠 속에서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용처럼
생긴 얼굴과 목이 나타났다. 그리고 비늘로 뒤덮인, 날개 달린 거대한 검은 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길고 검은 꼬리를 흔들면서 잠깐 동안 아이들을 둘러본
후, 고개를 숙이고 뾰족한 이빨로 죽은 소의 살점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자, 해리는 커다란 안도감에 휩싸였다. 마침내 자기가 본 동물이
헛된 공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것은 진짜였다. 해그리드도 그
동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해리는 의기양양하게 론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론은
여전히 나무 사이를 두리번거리더니, 잠시 후에 속삭였다.
"해그리드는 왜 다시 부르지 않는 거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론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뭔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몇 센티미터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지 못하고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해리 이외에 그 말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명뿐인 것 같았다. 고일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단단한 체격의 슬리데린 학생
한 명이 징그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말을 쳐다보고
있었고, 네빌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길고 검은 꼬리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오, 저기 한 마리가 더 오는구나."
해그리드가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두 번째 검은 말이 어두운 나무 사이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 말은 가죽 날개를 몸에 바싹 붙이더니 머리를 숙이고
고기를 뜯어먹었다.
"자, 이제 손을 들어보렴. 저것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
마침내 그 이상한 말의 수수께끼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한껏 마음이
들뜬 해리는 손을 번쩍 들었다. 해그리드가 해리는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난 네가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해리."
해그리드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릭 너도, 네빌도? 그럼..."
"잠깐만요."
말포이가 잔뜩 비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우리더러 뭘 보라는 거죠?"
해그리드는 대답 대신, 땅 위에 놓인 죽은 소를 가리켰다. 모든 학생들이
고깃덩어리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다음 순간, 몇몇 아이들은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고, 패르바티는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뼈에
붙은 살점이 저절로 떨어지면서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은 정말 기괴해
보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패르바티가 제일 가까이 있는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겁에 질려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가 저걸 먹고 있는 거지?"
"세스트랄이란다."
해그리드가 으스대며 말했다. 순간 해리 옆에서 헤르미온느가 알겠다는 듯이
'아!' 하고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호그와트에서는 그 무리들을 이 숲 속에서 기르고 있었지. 자. 누가..."
"하지만 그건 아주, 아주 재수없는 동물이에요!"
패르바티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그 동물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온갖 끔찍한 불행이 닥친다고 트릴로니
교수님이 예전에 말씀해 주셨는데..."
"아니, 아니다. 아니야."
해그리드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건 그저 미신일 뿐이야. 세스트랄은 재수 없는 동물이 아니란다. 오히려
아주 똑똑하고 쓸모 있는 놈들이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몰라.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께서 순간이동 마법을 쓰지 않고 긴 여행을 떠나실 때면 저걸 타고
가시지. 그렇지 않을 때에는 주로 학교 마차를 끈단다. 저기 두 마리가 더
오는구나, 봐라..."
또 다른 두 마리의 말이 나무 사이에서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 중 한 마리는
패르바티의 옆을 바싹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더니 나무에 바싹
붙어서 소리쳤다.
"뭔가 느껴졌어. 아마 내 근처에 있나 봐!"
"걱정하지 마라. 널 다치게 하진 않을 테니."
해그리드가 인내심을 가지고 달랬다.
"자, 이제 왜 누구는 저걸 볼 수 있고, 누구는 볼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이번에는 헤르미온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서 말해 보렴."
해그리드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스트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정답이다."
해그리드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핀도르에 10점이다. 이제 세스트랄은..."
"에헴, 에헴."
어느 사이에 엄브릿지 교수가 와 있었다. 그녀는 또다시 초록색 모자와 망토를
입은 채, 손에는 필기판을 들고 해리에게서 불과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한편 엄브릿지의 헛기침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해그리드는
이 녀석이 왜 이런 소리를 냈을까 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세스트랄을 가많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에헴, 에헴."
"오, 안녕하세요!"
비로소 소리가 나는 곳을 알아차린 해그리드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오두막집으로 보낸 전갈을 받지 못하셨나요?"
엄브릿지는 지난번과 다름없이 큰 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마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였다.
"오, 받았습니다."
해그리드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이곳을 제대로 찾아오셔서 다행이군요. 보시다시피... 아니, 혹시
보이시나요? 오늘 우리는 세스트랄을 공부하고..."
"뭐라고요?"
엄브릿지가 인상을 쓰면서 귀 뒤로 손을 갖다 댔다.
"뭐라고 하셨죠?"
해그리드는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저... 세스트랄이요!"
그는 큰 소리로 설명했다.
"커다랗고... 날개가 달린 말이요!"
해그리드는 거대한 팔을 퍼덕거렸다. 엄브릿지 교수는 눈을 치켜뜨더니,
필기판에 뭔가 적으며 중얼거렸다.
"조악한... 시늉에... 의지함..."
"그게... 어쨌든... 음...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
해그리드는 어쩔 줄 모르고 학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기억력이... 대단히... 나쁜... 것처럼... 보임."
엄브릿지는 모두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마치 크리스마스가 한 달이나 앞당겨 오기라도 한 표정이었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느라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버렸다.
"아, 그래."
헤그리드는 엄브릿지의 필기판을 향해 불편한 눈초리를 한 번 던지더니,
용감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이 무리를 기르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게. 처음에는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다섯 마리로 시작했단다. 바로 이 녀석이지."
해그리드는 제일 먼저 나타난 말의 머리를 툭툭 쳤다.
"테네브러스라고 하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놈이지. 이 숲속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놈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혹시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엄브릿지가 큰 소리로 불쑥 끼어들었다.
"마법부에서는 세스트랄을 '위험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걸?"
해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해그리드는 그저 킬킬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세스트랄은 위험하지 않아요! 물론 심하게 괴롭히면 약간 깨물 수는 있죠."
"폭력적인... 생각을... 하며... 즐기는... 경향이... 있음."
엄브릿지가 다시 필기판에 글씨를 휘갈겨 쓰면서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에요, 이봐요!"
해그리드는 이제는 약간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내 말은 개도 미끼를 보면 문다는 뜻이에요. 다만 세스트랄은 죽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편견이 생겼을 뿐이죠. 사람들이 그들을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단지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말이죠. 안 그래요?"
엄브릿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쓰던 것을 마저 다 쓰고 나더니,
해그리드를 쳐다보며 다시 큰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평소처럼 그대로 가르치세요. 전 그냥 좀 돌아다니죠."
엄브릿지는 걷는 시늉을 했다. 말포이와 팬시는 소리를 참으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엄브릿지는 손가락으로 학생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질문을 좀 하겠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 입을 가리키며 말을 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해그리드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엄브릿지가 왜 쉬운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하듯이 구는지 영문을 알지 못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헤르미온느는 너무 분해서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고약한 늙은이, 나쁜 할망구 같으니라고!"
엄브릿지가 팬시 파킨슨 쪽으로 걸어가자, 헤르미온느가 중얼거렸다.
"무슨 짓을 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이 심술궂고 사악하고 못된..."
"음... 어쨌든... 그러니까 세스트랄에 대해서는 배울 게 아주 많이 있단다."
해그리드는 어떻게든 다시 수업의 흐름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학생은 해그리드 교수가 말을 할 때,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나요?"
이때 엄브릿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팬시 파킨슨에게 질문을 던졌다.
헤르미온느와 마찬가지로 팬시 파킨슨의 두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배를 움켜쥐고 너무 웃다가 흘린 눈물이었다. 지금도 웃음을 참느라 거의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니요... 왜냐하면... 대개는... 그냥... 으르릉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거든요."
엄브릿지는 필기판에 재빨리 휘갈겨 썼다. 해그리드의 얼굴에서 멍이 안 든
부분이 다시 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는 팬시의 대답을 못 들은 척했다.
"음... 그러니까... 세스트랄에 대해선 배울 게 많단다. 세스트랄은 이것들처럼
일단 길이 들면, 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단다. 방향 감각이 아주 뛰어나거든.
어디든 가고 싶은 곳만 말하면..."
"물론 그것들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겠죠."
말포이가 큰 소리로 빈정거렸다. 그러자 팬시 파킨슨이 또다시 배를 움켜쥐고
발작을 일으키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엄브릿지 교수도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네빌을 향해 돌아섰다.
"롱바텀, 세스트랄이 눈에 보인다고? 그러니?"
엄브릿지가 물었다. 네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죽는 걸 본 적이 있니?"
엄브릿지가 전혀 다른 어조로 물었다.
"저... 저희 할아버지요."
네빌이 대답했다.
"저것들을 어떻게 생각하니?"
엄브릿지가 뭉툭한 손가락으로 말들을 가리켰다. 이제 세스트랄들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다 뜯어먹고 거의 뼈만 남겨놓고 있었다.
"전... 괜... 괜찮은 것... 같아요..."
네빌이 해그리드를 슬쩍 곁눈질하며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생들이... 너무... 억눌려서... 자신의 두려움을... 표현하지... 못함."
엄브릿지는 다시 중얼거리며 필기판에 평가 내용을 썼다.
"아니에요!"
네빌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게 아니에요. 전 저것들이 무섭지 않아요!"
"괜찮다."
엄브릿지가 마치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네빌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지만 해리의 눈에는 마치 능글맞은 비웃음처럼 보였다.
"그럼, 해그리드."
엄브릿지는 해그리드를 올려다보며, 또다시 커다란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저는 이제 그만 가도 될 것 같군요... 열흘 이내에 참관 수업의 결과를 받게
될 겁니다."
엄브릿지는 필기판을 가리키더니 손으로 뭔가를 받아 드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뭉툭하고 짧은 손가락 열 개를 쫙 펼쳐보였다. 초록색 모자 밑에서 이를
들어내 놓고 웃는 그녀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더 두꺼비처럼 보였다.
엄브릿지는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말포이와 팬시 파킨슨을 뒤로한 채, 분주하게
그곳을 떠났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네빌은 어쩔
줄 모르고 얼떨떨하게 서 있었다.
"치사하고 더럽고 비비 꼬인 늙은 이무기 같으니라고!"
그로부터 30 분 후에 그들은 아침에 만들어 놓은 눈 속 터널을 지나서
성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그 여자의 속셈이 뭔지 너희들도 알고 있지? 혼혈에 대한 그 못된 편견이 또
발동하기 시작한 거야. 해그리드를 멍청한 트롤쯤으로 몰아세우려는 거지. 단지
해그리드의 엄마가 거인족이란 이유 때문에 말이야. 이건 너무 부당해.
해그리드의 수업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또다시 폭탄 꼬리 스크루트였다면,
그건 문제가 있지. 하지만 세스트랄은 괜찮아. 사실 해그리드 기준으로 보자면,
아주 훌륭한 거지!"
"엄브릿지는 세스트랄이 위험하다고 했어."
론이 중얼거렸다.
"그럼 해그리드는 이렇게 말할걸. 그들은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다고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마 그루블리 프랭크 같은 선생님이라면, N,E,W,T 수준이 되기 전에
세스트랄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너무 흥미롭지 않니?
어떤 사람 눈에는 보이고 어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니! 나도 볼 수
있었으면!"
"정말이니?"
해리가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가 갑자기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오, 해리... 미안해.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어리석었어..."
"괜찮아. 걱정하지 마..."
해리가 얼른 안심을 시켰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다니 놀랐어. 한 반에 세 명씩이나..."
론이 말했다.
"그래, 위즐리. 우리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갑자기 심술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이 바로 그들 뒤에까지 쫓아오는 걸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혹시 누군가 뒈지는 꼴을 보면, 퀘이플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은 요란하게 웃으며 그들 옆을 홱 지나갔다. 그들은
'위즐리는 우리의 왕'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즐리는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
"무시해, 무시해 버려."
헤르미온느는 이렇게 속삭이며 지팡이를 꺼내더니 다시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마법을 걸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온실까지 가는 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눈을 녹이면서 보다 쉽게 갈 수 있었다.
더 많은 눈과 함께 12월이 찾아왔다. 5학년들에게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숙제도
함께 동반되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론과 헤르미온느가 해야 할 반장
업무도 점점 더 많아졌다. 그들에게는 성을 장식하는 일을 감독하고, ("피브스가
반짝이 줄의 한쪽 끝을 붙잡고 네 목을 조르려고 하는 동안, 넌 그걸 어떻게든
벽에 걸어야만 해." 론은 이렇게 투덜거렸다.) 1.2학년들이 노는 시간에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책임이 맡겨졌다. 바깥 날씨가 너무 추웠던
것이다. ("이번 하급생들은 시건방진 꼬마 불량배들이야. 우리가 1학년 때에는
절대로 그렇게 무례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론은 투덜거렸다.) 그리고 아구스
필치와 교대로 복도 순찰도 해야만 했다. 필치는 잔뜩 고조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마법사들 간의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똥만 잔뜩 들었어." 론은 화를 냈다.) 어찌나 바빴는지 헤르미온느는
집요정의 모자를 뜨는 일조차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모자가
세 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안달했다.
"아직도 그 가엾은 집요정들을 다 해방시키지 못했는데, 모자가 부족해서
크리스마스를 그냥 넘겨야만 하다니!"
해리는 차마 그녀가 만든 모자와 양말들을 전부 도비가 가져갔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마법 역사 숙제 위로 얼른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해리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 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휴일 동안 호그와트를 멀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던 것이다.
퀴디치 시합에 출전 금지 조치를 당한 데다가 해그리드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겹쳐서, 해리는 이곳에 대해 강렬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가 진심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 D,A 모임뿐이었다.
그렇지만 D,A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모임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부모님과 함께 스키를
타러 갈 예정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론은 우스워서 어쩔 줄 몰랐다. 머글들이
기다란 널빤지를 발에 붙이고 산을 미끄러져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론은 버로우의 집에 갈 예정이었다. 해리는 며칠
동안이나 부러운 마음을 애써 감춰야만 했다. 하지만 해리가 론에게 크리스마스
때 집에 어떻게 갈 생각이냐고 물었을 때, 론은 이렇게 대답했다.
"너도 같이 가야지! 내가 말 안했나? 엄마가 몇 주 전에 편지를 보내서 너를
초대하라고 하셨어!"
헤르미온느는 눈알을 굴렸지만, 해리는 갑자기 기운이 솟구쳤다. 버로우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생각을 하니, 너무 신이 났다. 단지 시리우스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약간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하지만 시리우스까지
크리스마스 휴일에 초대해 달라고 위즐리 부인을 과연 설득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시리우스가 그리몰드 광장을 떠나는 걸 덤블도어 교수님이 허락해
주실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왠지 위즐리 부인이 시리우스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항상 의견이 안 맞아서
티격태격했던 것이다. 시리우스는 지난번 벽난로에 나타났던 이후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브릿지가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고 있는 한 그와
연락을 시도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해리는 어머니의
낡은 저택에서 크리처와 외로운 말씨름이나 벌이면서 혼자 지낼 시리우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해리는 크리스마스 전의 마지막 D,A 모임을 위해서 필요의 방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방에 불을
켰을 때, 도비가 크리스마스를 위하며 손수 이 방을 장식해 놓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단박에 누구 솜씨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해리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수백 개의
싸구려 황금색 장식들을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을 집요정은 도비 이외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해리가 간신히 마지막 장식을 떼어 내고 있을 때, 삐걱하고 문이 열리더니
루나 러브굿이 평소처럼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안녕."
러브굿은 남아 있는 장식물을 둘러보며 흐리멍덩하게 인사를 했다.
"멋지구나. 네가 꾸몄니?"
"아니, 집요정 도비가 그랬어."
"겨우살이(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밑에 있는 소녀에게 키스해도 되는 관습이
있음)야."
루나가 해리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커다랗고 하얀 열매 덩어리를 가리키며
몽롱하게 말했다. 해리는 황급히 그 밑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잘 생각했어. 가끔 나글스에 감염되어 있기도 하거든."
루나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때마침 안젤리나와 케이티, 앨리샤가
도착했기 때문에, 해리는 니글스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세 사람 모두 몹시 추워 보였다.
"네 자리를 채웠어."
안젤리나가 망토를 벗어서 한쪽 구석에 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 자리를 채우다니?"
해리는 어리둥절했다.
"너와 프레드와 조지 말이야. 다른 수색꾼을 구했단 말이야!"
안젤리나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누군데?"
해리가 재빨리 물었다.
"지니 위즐리야."
안젤리나가 지팡이를 꺼내더니 팔운동을 했다.
"하지만 지니도 꽤 쓸 만해. 물론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안젤리나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
"하지만 넌 할 수가 없으니..."
해리는 입술을 깨물며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생각
같아서는, 팀에서 쫓겨난 것에 대해서 내가 너보다 백 배는 더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걸 단 일 초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몰이꾼은 어떻게 됐어?"
해리는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쓰며 물었다.
"앤드류 키르케, 그리고 잭 슬로퍼."
앨리샤가 시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 별로 뛰어나진 않아. 하지만 선수가 되겠다고 나타난 다른 멍청이들에
비하면..."
곧이어 론과 헤르미온느, 네빌이 도착하자 이 괴로운 대화도 끝이 났다. 오
분도 안 돼서 방 안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해리는 원망에 가득 찬 안젤리나의
성난 얼굴을 쉽게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오늘 저녁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복습해야 할
것 같아."
해리가 모든 아이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왜냐하면 오늘이 크리스마스 휴가 전 마지막 모임이니까. 앞으로 삼 주나 쉴
건데 지금 당장 새로운 마법을 시작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야."
"새로운 마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온 방 안에 다 들리도록 투덜거렸다.
"그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야..."
"해리가 너에게 왜 그 말을 진작 안 해주었는지, 우리도 정말 안타깝다."
프레드가 큰 소리로 구박을 하자, 몇몇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해리는 초
챙이 따라 웃는 것을 보고, 마치 계단을 헛디뎌 미끄러졌을 때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둘씩 짝을 지어 연습을 하면 돼. 우선 장애 마법부터 시작해 보자. 딱 십
분만 해본 다음, 방석을 꺼내 놓고 다시 기절 마법을 연습하는 거야."
아이들 모두 그의 말에 따라서 짝을 지었다. 해리는 평소처럼 네빌과 짝을
지었다. 방 안은 곧 '임페디멘타!'라고 간간이 외치는 주문 소리로 가득 찼다.
아이들은 일 분 정도 꼼짝없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동안 상대방은 할 일
없이 다른 사람들이 연습하는 광경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마법이 풀리면,
역할을 바꿔서 연습을 계속했다.
네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세 번이나 연달아 몸이 얼어붙은
후에, 해리는 네빌을 론과 헤르미온느와 짝을 지어 주었다. 방 안을 돌아다니며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초 옆을 지나갈 때, 초는
그를 보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다시 그녀의 곁을 지나고 싶은 유혹을 몇
번이나 참아야만 했다.
장애 마법을 십 분 동안 연습한 후에, 그들은 마루 위에 방석을 쫙 늘어놓고
기절 마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간이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동시에 이 마법을 연습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절반은 다른 아이들이
연습하는 걸 지켜보며 기다렸다가 다시 교대하곤 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해리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네빌이
애초에 겨냥했던 딘이 아니라, 파드마 패틸을 기절시킨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훨씬 더 목표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엄청난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해리는 그만 하라고 소리쳤다.
"아주 잘했어."
해리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활짝 웃었다.
"휴가가 끝나고 돌아오면, 좀더 굉장한 마법을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패트로누스 마법이라도..."
아이들은 흥분해서 웅성거렸다. 늘 그렇듯이 아이들은 두셋씩 짝을 지어 방을
떠났다. 모두들 해리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라는 인사를 했다. 해리는
즐거운 기분으로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방석을 모아서 깨끗이 정리했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이 방을 떠난 후에도 남아 있었다. 초가 아직도 그 방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초에게서도 크리스마스 인사를 듣고 싶었다.
"아니야, 너 먼저 가."
해리는 초가 친구인 마리에타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해리는 쌓아 올린 방석을 똑바로 정리하는 척했다. 이제는 틀림없이 두
사람뿐일 것이다. 해리는 초가 곧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대신
커다랗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를 돌아본 해리는 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해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초는 소리 없이 울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초는 머리를 흔들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미... 미안해."
초는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난... 그저... 이런 걸 모두 배우다 보니... 혹시 그가 이걸 알았다면...
아직까지... 살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해리의 심장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그걸 왜
몰랐을까. 초는 케드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케드릭도 이런 걸 다 알고 있었어."
해리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케드릭은 아주 잘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 미로를 통과하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볼드모트가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어."
초는 볼드모트의 이름을 듣자,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넌 아기였을 때에도 살아남았잖아."
초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맞아."
해리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가며 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나도 그 이유는 몰라. 어느 누구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건 전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야."
"아니, 가지 마!"
초가 다시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정말 미안해...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초가 다시 딸꾹질을 했다. 눈두덩이 빨개지고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뻤다. 해리는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그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한 마디만
했어도 너무나 기뻤을 것이다...
"너에게 무척 힘든 일이라는 거 나도 알고 있어."
초가 다시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는 케드릭이 죽는 걸 직접 보았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또 꺼내서... 아마 넌
그 일을 그만 잊고 싶을 거야."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넌 저...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야. 지금까지 나는 기절 마법 같은 건 할 줄
몰랐어."
초가 여전히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해리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해리는 당장에라도 그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발짝도 걸음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겨우살이야."
초가 그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장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어쩌면 나글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몰라."
해린느 왠지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나글스가 뭔데?"
"나도 몰라."
초가 가까이 다가왔다. 해리는 머릿속이 정지되는 것 같았다.
"루나에게 물어봐. 그러니까 루나 말이야."
초는 흐느낌과 웃음이 뒤섞인 묘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의 얼굴에 난 주근깨 숫자까지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해리, 난 네가 정말 좋아."
해리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얼얼하고 울렁울렁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팔과 다리, 머리까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초는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해리는 그녀의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
방울까지 볼 수 있었다...
삼십 분 후에 다시 휴게실로 돌아온 해리는 벽난로 옆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있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발견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침실로 올라가고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아주 긴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이미 절반쯤 쓰인 양피지
두루마리가 책상 가장자리에 늘어져 있었다. 한편 론은 깔개 위에 엎드려서
변신술 숙제를 끝내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뭐 하고 온 거야?"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옆 자리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자, 론이 물었다.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충격을 받아서 머리가 멍한 상태였던
것이다. 방금 일어난 일을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덤까지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해리, 넌 괜찮니?"
헤르미온느가 깃펜 너머로 그를 넘겨다보며 물었다.
해리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괜찮은지
어떤지 자기 자신도 잘 몰랐던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론은 해리의 얼굴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팔꿈치를 받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해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과연 그들에게
털어놓고 싶은 것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해리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을 때, 헤르미온느가 먼저 그의 짐을 덜어 주었다.
"초 때문이야?"
헤르미온느가 대단히 사무적인 어조로 물었다.
"모임이 끝난 후에 초가 너를 기다렸구나?"
허를 찔리고 얼이 빠진 해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거리다가 헤르미온느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정색을 했다.
"그래, 초가 뭐라고 하던?"
론이 일부러 태연한 목소리로 꾸미며 물었다.
"초는..."
해리는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초는..."
"초랑 키스했니?"
헤르미온느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론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깔개 위에 잉크병이 쏟아졌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해리만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랬어?"
론이 다그쳤다. 해리는 호기심과 환희가 뒤섞인 론의 얼굴과 살짝 인상을 쓰고
있는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론이 불끈 쥔 주먹을 의기양양하게 치켜들더니, 창가에 앉아 있던 소심한
표정의 2학년생들이 깜짝 놀라 자빠질 정도로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해리는
깔개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론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헤르미온느는 정말 꼴불견이라는 표정으로 론을 잠깐 내려다보더니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 어땠어?"
마침내 론이 해리를 빤히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해리는 잠깐 생각을 해보더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축축했어."
론은 도대체 좋았다는 건지, 혐오스러웠다는 건지 구별하기 힘든 묘한 소리를
질렀다.
"왜냐하면 초는 울고 있었거든."
해리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네 키스가 그렇게 형편없었나?"
론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
"몰라. 아마 그랬을 거야."
미처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해리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절대 그렇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편지를 쓰는 데 열중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론이 날카롭게 따졌다.
"왜냐하면 초는 요즘 주로 울면서 지내거든. 식당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어딜
가나 눈물을 흘리고 있어."
"넌 키스를 하면 초의 기분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구나."
론이 씩 웃으며 말했다.
"론, 넌 내가 재수 없이 마주친 돌탱이들 중에 가장 눈치 없고 둔한 녀석이야."
헤르미온느가 깃펜을 잉크병에 담그며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세상에 키스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대체 뭐란
말이야!"
론은 기분이 상해서 투덜거렸다.
"맞아.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러지?"
헤르미온느는 너무 불쌍하고 한심해서 못 봐 주겠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지금 초의 기분이 어떤지 이해하지 못하겠니?"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응."
해리와 론이 동시에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푹푹 한숨을 쉬면서 깃펜을
내려놓았다.
"물론 초는 케드릭의 죽음 때문에 무척 슬퍼하고 있어. 하지만 동시에
혼란스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거야. 한때는 케드릭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해리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초 자신도 누굴 더 좋아하는지 모를 테니까 말이야.
어쩌면 내심 죄책감도 느끼고 있을 거야. 해리와 키스를 하는 게 케드릭의
기억에 대한 모독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지. 해리와 사귀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해리에 대한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지도 몰라. 해리는 케드릭이 죽는 순간에 케드릭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서 너무나 괴로운
거야. 초는 래번클로 퀴디치 팀에서 쫓겨날까 봐 그것도 걱정하고 있어. 요즘
비행 솜씨가 형편없어졌거든."
헤르미온느가 일장 연설을 마치자, 어리벙벙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론이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 그 모든 감정을 동시에 다 느낄 순 없어. 그럼 터져 버리고 말
거야."
"네가 코딱지만 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모두 그런 건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탁 쏘아붙이더니 다시 깃펜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초가 먼저 시작했어."
해리가 변명을 했다.
"난 아무 짓도... 초가 나에게 다가왔어. 그리고는 내 어깨에 기대어 울음을
터뜨렸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네 탓이 아니야, 해리."
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해리를 위로했다.
"넌 그냥 초에게 잘해 주면 돼. 물론 그랬겠지, 그치?"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럽게 고개를 들고 물었다.
"글세... 난 그저 등을 살짝 두드려 주었는데..."
해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헤르미온느는 눈알을 부라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래, 그 정도면 양호해. 그런데 초를 다시 만날 거니?"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당연히 만나겠지, 안 그래? D,A 모임을 계속할 거잖아?"
"내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고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의 말을 듣자, 갑자기 새로운 가능성들이 펼쳐지면서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해리는 초와 함께 어딘가... 아마도 호그스미드 같은 곳에...를 가서 몇
시간 동안 단 둘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방금 그런 일이 있었으니, 초는
틀림없이 그가 데이트를 신청해 오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해리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초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기회는 앞으로 무궁무진할 거야."
헤르미온느는 다시 편지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해리가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지 않다면?"
론은 평소와 다르게, 몹시 심술궂은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해리는 벌써 오래 전부터 초를 좋아했어. 안
그래, 해리?"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초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그가 머릿 속에 그렸던 초의
모습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초가 아니라,
자신만만하고 행복한 초였다.
"그건 그렇고 넌 누구에게 그런 장편소설을 써서 보내는 거냐?"
론이 이제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 편지를 슬쩍 들여다보려고
하자, 헤르미온느가 홱 낚아챘다.
"빅터야."
"크룸 말이야?"
"그럼 우리가 아는 빅터가 또 있니?"
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몹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 후로 이십 분
동안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론은 짜증스런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지우고
다시 쓰기를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간신히 변신술 숙제를 마쳤다. 헤르미온느는
지치지 않고 마지막 한 줄까지 양피지를 다 채우더니, 조심스럽게 둘둘 말아서
봉인을 했다. 해리는 벽난로 속을 멍하니 들여다보면서, 저기에 시리우스의
머리가 나타나 여자에 대해서 현명한 충고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길을 점점 더 사그라지더니 나중에는 빨갛게 달아올랐던
장작마저 재가 되어 부서졌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휴게실 안에는 또다시 그들
세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잘 자."
헤르미온느가 커다랗게 하품을 하더니 여학생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헤르미온느는 크룸의 어디가 좋을까?"
해리와 함께 남학생 침실로 올라가던 론이 물었다.
"글쎄."
해리는 잠깐 생각을 해보더니 대답을 했다.
"크룸은 우리보다 더 나이도 많고... 게다가 국제적인 퀴디치 선수니까..."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녀석은 불평만 늘어놓는 멍청이잖아,
안그래?"
론은 바싹 약이 오른 것 같았다.
"그래, 덩치 큰 얼간이지."
입으로는 이렇게 맞장구를 쳤지만, 해리의 머릿속은 온통 초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옷을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딘과 시무스,
네빌은 벌써 잠이 들었다. 해리는 침대 옆 탁자 위에 안경을 벗어 놓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침대 기둥의 커튼을 내리지 않고 네빌의 침대 옆에 난
창문 너머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만약 어젯밤 바로 이 시간에,
자신이 앞으로 스물네 시간 이내에 초 챙과 입맞춤을 하게 되리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잘 자."
오른쪽 어둠 속에서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자."
해리가 대답했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혹시 다음번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녀는 좀더
행복해할지도 몰라. 이번에는 꼭 초에게 함께 외출하자고 말해야겠다. 초는 그걸
기다리다가 지금쯤 정말로 토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직도 케드릭 생각을
하며 울고 있을까? 해리는 생각이 왔다갔다했다. 헤르미온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진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바로 이런 걸 가르쳐 줘야 하는데... 여자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최소한 점술보다는 훨씬 더 쓸모 있을 거야.
네빌은 자면서 코를 킁킁거렸다. 어둠 속 어디선가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D,A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초는 그가 거짓 핑계로
자기를 여기까지 꾀어냈다고 큰 소리로 비난하고 있었다. 여기 오면, 그가
개구리 초콜릿 카드 150장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다. 해리는 변명을
했지만, 초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케드릭은 나에게 이렇게 많은 개구리 초콜릿 카드를 주었단 말이야, 이거 봐!'
초는 망토 안에서 카드를 한 움큼 꺼내더니 공중으로 던졌다. 그 순간 초는
헤르미온느로 변했다. '넌 그녀에게 약속을 했어... 너도 알잖아, 해리. 난 네가
그녀에게 대신 뭔가 다른 걸 줘야 한다고 생각해. 파이어볼트는 어때?' 해리는
엄브릿지가 파이어볼트를 가져갔기 때문에 초에게 줄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어쨌든 이건 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자긴 그저 도비의 머리를 닮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기 위해서 D,A 방에 왔을 뿐이라고 따졌다...
갑자기 꿈이 바뀌었다...
해리는 자신의 몸이 매끄럽고 힘차고 유연해진 것을 느꼈다. 반짝이는 금속
창살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 그는 차갑고 검은 돌 위를 지나갔다. 지금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배로 기어가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이었지만, 해리는
이상한 빛을 발하며 뿌옇게 흔들리는 주변 사물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볼 때에는 복도가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 남자가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복도 저 끝에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윤곽이 희미하게 빛났다...
해리는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공기 중에 떠도는 남자의 냄새가 맛으로
느껴졌다... 그는 살아 있었지만 졸고 있었다... 복도 끝에 있는 문 앞에 앉아서...
해리는 그 남자를 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몸을 움직였다...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빛 망토가
그의 무릎 위에서 떨어졌다. 해리는 그의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떨리는 남자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허리춤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해리는 바닥에서 머리를 높이 쳐들고 한 번, 두 번, 세 번 공격을
가했다. 그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 남자의 살 속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턱
밑에서 그 남자의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따뜻한 피가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더니... 곧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남자는 벽에 털썩 몸을 기댔다... 피가 바닥까지 철철 흘러내렸다...
갑자기 그의 이마에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해리! 해리!"
해리는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침대보가
죄수들에게 씌우는 구속복처럼 그의 몸에 칭칭 감겨 있었다. 해리는 마치 빨갛게
달아오른 주전자를 이마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해리!"
론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리의 침대 발치에는
몇몇 아이들이 서 있었다. 해리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고통 때문에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몸을 비틀며 침대 가장자리에 대고 왈칵
토했다.
"해리가 정말 아픈가 봐. 누굴 불러와야 하는 게 아닐까?"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 해리!"
어서 론에게 말해야만 한다.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해리는 또다시 토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죽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고통으로 눈앞이 흐렸다.
"너희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가... 공격을 당했어..."
해리는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헐떡거렸다.
"뭐라고?"
론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해졌다.
"너희 아버지 말이야! 물렸다고. 아주 위험해. 온 사방이 피투성이야..."
"내가 사람을 불러올게."
또다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침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발소리를 들었다.
"해리, 이봐... 넌... 그냥 꿈을 꾼 거야."
론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해리가 격렬하게 소리쳤다. 어떻게든 론을 이해시켜야만 했다.
"꿈이 아니었어... 보통 꿈이 아니었다고... 난 그 자리에 있었어. 내가 봤단
말이야... 내가 그랬어..."
해리는 시무스와 단이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 상관이
없었다. 여전히 발작을 일으키듯 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이마의
통증은 조금씩 사라졌다. 해리는 순간 다시 왈칵 구역질을 했다. 다행히도 론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해리, 넌 지금 몸이 안 좋아. 네빌이 도움을 청하러 갔어..."
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괜찮아."
해리가 잠옷으로 입을 닦으며 목이 메어 소리쳤다. 그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마구 떨렸다.
"난 멀쩡해. 네가 지금 걱정해야 할 사람은 네 아버지야. 네 아버지를 빨리
찾아내야 해... 피를 흘리고 계신단 말이야... 내가... 아니, 거대한 뱀이 그랬어..."
해리는 침대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론이 그를 붙잡아 자리에 눕혔다. 딘과
시무스는 여전히 침대 옆에 서서 수군덕거리고 있었다. 일 분이 지났는지, 십분이
지났는지 해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와들와들 몸을 떨면서 서서히 이마의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황급히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네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이에요, 교수님..."
체크 무늬 가운을 입은 맥고나걸 교수가 허둥지둥 침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뾰족한 그녀의 코끝에는 안경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포터, 무슨 일이냐? 어디가 아픈 거지?"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치료한답시고 법석을 떨며 소용도 없는 약을 억지로 먹이려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불사조 기사단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론의 아버지요."
해리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론의 아버지가 뱀에게 공격을 당했어요. 아주 위험해요. 제가 직접 봤어요."
"네가 그걸 보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맥고나걸 교수가 검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잠이 들었는데 거기 있었어요..."
"그럼 꿈을 꿨단 말이니?"
"아니에요!"
해리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처음에는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어요. 말도 안 되는 멍청한 꿈을요...
그런데 갑자기 그 장면이 나타났어요. 그건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어요. 제가
상상한 게 아니에요. 위즐리씨는 마루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거대한
뱀에게 공격을 당했어요.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위즐리 씨가 쓰러졌어요. 누군가
어서 빨리 그를 찾아내야만 해요..."
맥고나걸 교수는 마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어떤 것을 바라보듯이, 한동안
커다란 안경 너머로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미친 것도 아니라고요!"
해리는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말했잖아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포터, 난 네 말을 믿는다."
맥고나걸 교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운을 입어라. 교장 선생님을 뵈러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