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스네이프의 가장 끔찍한 기억
마법부의 포고령
장학사 돌로레스 제인 엄브릿지가 알버스 덤블도어를 대신하여 호그와트 마법
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었음을 알림.
위의 내용은 교육 법령 28조에 따른 것임
마법부 장관 코넬리우스 오스왈드 퍼지
밤 사이에 이 공고문이 학교 전체에 나붙었다. 하지만 어떻게 호그와트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덤블도어가 두 명의 오러와 장학사,
마법부 장관 그리고 부보좌관을 물리치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성 안 어디를 가든지 간에, 유일한 화제는
덤블도어의 도주였다. 비록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소한
사실들이 이상하게 왜곡되기도 했지만(해리는 2학년 여학생이 다른 여학생에게
지금 퍼지가 호박 머리를 단 채, 성 뭉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밖의 다른 내용들은 얼마나 정확한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예를
들면, 해리와 마리에타가 덤블도어의 방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유일한
학생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에타가 병동에 누워 있는 이
상황에서, 해리는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혼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머지않아 돌아오실 거야."
약초학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어니 맥밀란은 해리의 이야기를 끝까지
귀담아듣고 나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2학견 때에도 그들은 덤블도어를 쫓아낼 수 없었어.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뚱보 프라이어가 내게 말했는데..."
어니 맥밀란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마치 음모라고 꾸미는 사람처럼
소곤거렸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바싹 몸을 숙여야만 했다.
"지난밤에 덤블도어를 찾아서 성과 운동장을 샅샅이 뒤진 끝에, 엄브릿지가
그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무기 상조차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교장실은 절대 엄브릿지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대."
어니가 조롱하는 미소를 지었다.
"틀림없이 그 여자 기분이 좀 안 좋았을 거야."
"그 여자는 분명 교장실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좋아했겠지."
헤르미온느가 가시 돋힌 어조로 말했다. 그들은 현관 복도를 향해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다른 모든 선생님들 머리 위에 군림하면서 말이야. 멍청하고 배에 바람만
잔뜩 들어간, 권력 중독자 늙은이..."
"어디 그 문장을 한번 끝까지 다 말해 보시지? 그레인저?"
드레이코 말포이가 어느 틈에 문 뒤에서 살짝 모습을 나타냈다. 뒤에는
크레이브와 고일이 서 있었다. 창백하고 뾰족한 말포이의 얼굴은 적개심으로
불타올랐다.
"미안하지만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기숙사에서 각각 몇 점을 깎아야
하겠는데."
말포이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너는 다른 반장의 점수를 깎을 수 없어, 말포이."
어니가 즉각 응수했다.
"나도 반장들끼리는 서로 점수를 깎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말포이가 빈정거리자, 크레이브와 고일이 킬킬거리고 웃었다.
"하지만 감사 위원회 위원은..."
"뭐라고?"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감사 위원회라고 했어, 그레인저."
말포이가 반장 배지 바로 밑에 달린 작은 은색 'T' 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법부를 돕기 위해서 엄브릿지 교수가 소수 정예 학생들을 직접 선발했지.
어쨌든 감사 위원회 위원은 점수를 깎을 수 있는 권한이 있어. 그러니까
그레인저, 너는 우리의 새로운 교장 선생님을 모독한 죄로 5점을 깎겠어. 그리고
맥밀란, 너는 나에게 말대꾸한 죄로 5점이야. 포터, 넌 내 마음에 안 들어서 5점.
위즐리, 넌 옷을 다려 입지 않았구나. 그래서 또 5점을 깎겠어. 이런, 깜빡할
뻔했군. 그레인저, 넌 머글 혼혈이지. 그 때문에 10점을 깎아야겠다."
론이 지팡이를 뽑아 들자,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그를 가로막으며 속삭였다.
"그러지 마!"
"현명한 처사야, 그레인저. 새로운 교장 선생님... 새로운 시대야... 이제 모든 게
좋아질 거야, 포터... 위즐왕..."
말포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뻥치고 있는 걸 거야. 저 녀석 마음대로 점수를 깎도록 허락했을
리가 없어. ...그렇게 되면 정말 웃길 거야... 반장 체계가 완전히 엉망이 될
텐데..."
어니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벽을 따라 세워져
있는 거대한 모래시계들 쪽으로 향했다. 그 모래시계들은 각 기숙사의 점수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만 해도 그리핀도르와 래번클로의 모래시계는
거의 잘록한 부분까지 채워져서 선두를 다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에도 계속해서 아래쪽 둥근 유리를 채우고 있던 보석들이 위로
다시 올라가면서 자꾸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모래시계는 오직
에메랄드가 채워져 있는 슬리데린 기숙사의 것뿐이었다.
"눈치 챘구나?"
프레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대리석 계단을 내려온 그와 조지는 모래시계
앞에 서 있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어니에게로 다가왔다.
"말포이가 방금 우리 점수를 50점이나 깎았어."
해리가 분개했다. 그 순간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그리핀도르의 모래시계를
채우고 있던 보석 몇 개가 다시 위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 몬태규 녀석이 쉬는 시간에 우리에게도 똑같은 짓을 하려고 했지."
조지가 말했다.
"'하려고 했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론이 재빨리 물었다.
"하던 말을 다 끝내지 못했거든."
프레드가 대답했다.
"우리가 그 녀석을 곧장 1층에 있는 사라지는 옷장 안에 처박아 버렸기
때문이지."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랐다.
"그러다가는 엄청나게 곤란해질 텐데!"
"몬태규 녀석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는 괜찮아. 적어도 몇 주일은 걸릴걸. 그
녀석을 어디로 보냈는지 우리도 모르거든."
프레드가 태연하게 말했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어떤 말썽이 일어나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어."
"언제는 했어?"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물론이지. 지금까지 한 번도 퇴학당한 적이 없잖아. 안 그래?"
조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린 항상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알거든."
프레드가 말을 이었다.
"이따금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을 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진짜
말썽이 일어나기 전에 그만두었지."
"하지만 지금은?"
론이 물었다.
"글쎄, 지금은..."
조지가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도 떠나 버린 이 마당에..."
프레드가 그의 말을 받았다.
"약간의 말썽쯤이야 우리의 새로운 교장 선생님께서 마땅히 겪으셔야 할
고초라고 생각해."
"그러면 안 돼! 절대로 그러면 안 돼! 그 여자는 너희들을 내쫓을 구실을 못
찾아서 안달하고 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넌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헤르미온느."
프레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린 더 이상 이 학교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아. 덤블도어 교수님을
위해서 먼저 뭔가 하겠다는 결심만 아니었다면, 우린 지금이라도 당장 제 발로
여길 걸어 나갔을 거야. 어쨌든..."
프레드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머지않아 1단계 작전이 시작될 거야. 내가 너라면 점심 시간에 반드시
대연회장에 있겠어. 그래야 선생님들에게 네가 이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걸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무슨 일을 하려고?"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자, 빨리 가자."
프레드와 조지는 재빨리 돌아서더니 점심을 먹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학생들 틈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어니는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미처 끝내지 못한
변신술 숙제를 잊고 있었다는 말을 하면서 총총히 가 버렸다.
"우리도 당장 이 자리를 떠나야 할 것 같아. 혹시라도..."
헤르미온느가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좋아."
론이 말했다. 세 사람은 대연회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오늘의 연회장 천장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누군가
해리의 어깨를 탁 쳤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 코앞에 관리인 필치가 서 있었다.
해리는 황급히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필치와는 되도록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좋았다.
"교장 선생님께서 널 보자고 하신다, 포터."
필치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해리는 프레드와 조지가 꾸미고 있다는 그 일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대답을 했다. 필치가 턱을 씰룩거리며 소리 없는 웃음을 웃었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지?"
필치가 씨근거리며 말했다.
"날 따라와라..."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힐끗 뒤돌아보았다. 두 사람 모두 몹시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해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필치의 뒤를 따라서 배고픈
학생들의 물결을 헤치고 현관 복도로 다시 나갔다. 필치는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며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첫 번째 층계참에 도착하자, 필치가 말했다.
"포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나도 알고 있어요."
해리가 쌀쌀맞게 대꾸했다.
"그래... 나는 벌써 몇 년 전부터 덤블도어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 왔지.
너에게 너무 관대하다고 말이야."
필치는 심술궂게 키득키득 웃었다.
"나에게 너희들을 매질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이 못된 짐승
새끼들이 감히 똥 폭탄을 떨어뜨릴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 내가 너희들의
발목을 묶어서 내 방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면, 아무도 복도에다 송곳니가 돋은
원반을 떨어뜨려 놓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야. 안 그래? 하지만 교육 법령
29조의 발동으로 이제 난 그런 일들을 모두 다 할 수 있게 될 거다, 포터.
그리고 엄브릿지 교장 선생님은 피브스의 추방 명령서에 승인을 해달라고
장관님께 요청했지... 오, 엄브릿지 교장 선생님이 여길 맡게 된 이상, 모든 게
완전히 달라질 거야..."
엄브릿지는 필치를 거의 완전히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것이 분명했다. 가장
끔찍한 일은, 아마도 필치가 아주 효과적인 무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학교 구석구석에 있는 비밀 통로와 은신처에 대해서라면, 필치는 거의 위즐리
쌍둥이 형제에 필적할 만큼 환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 왔구나."
필치는 해리는 곁눈질하더니, 엄브릿지 교수의 방문을 세 번 똑똑똑 두드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포터 학생이 왔습니다. 교장 선생님."
수차례 나머지 공부를 해 온 해리에게 엄브릿지의 방은 아주 낯이 익었다.
책상 앞에 황금색 글자로 교장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나무 명패가 놓여 있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해리는 책상 뒤쪽 벽에 그의 파이어볼트와
조지의 클린스윕이 커다란 대못에 자물쇠로 채워진 채 묶여 있는 광경을 가슴
아프게 쳐다보았다. 엄브릿지는 책상에 앉아서 분홍색 양피지 위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쳐들고 문 앞에 서 있는 그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아구스."
엄브릿지가 상냥하게 말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교장 선생님. 천만에요."
필치는 신경통으로 아픈 몸을 무릅쓰고 최대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앉아라."
엄브릿지는 의자를 가리키며 짤막하게 명령했다. 해리는 자리에 앉았다.
엄브릿지는 잠시 동안 쓰던 일을 계속했다. 해리는 그녀의 머리 위로, 못생긴
고양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그려진 접시들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엄브릿지가
또 어떤 새로운 끔찍한 것을 준비했을까 생각했다.
"그래, 이제..."
마침내 엄브릿지가 깃펜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마치 특별히
먹음직한 파리를 앞에 놓고 군침을 흘리는 두꺼비 같았다.
"뭘 마시겠니?"
"네?"
해리는 분명 자기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마실 것 말이다, 포터 군."
엄브릿지는 더욱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차" 커피? 호박 주스?"
엄브릿지는 차례차례 이름을 대며 지팡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음료가
담긴 찻잔과 유리컵이 책상 위에 잇달아 나타났다.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해리가 거절했다.
"난 너와 함께 뭘 마시고 싶구나."
엄브릿지의 목소리는 거의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간드러졌다.
"하나를 선택해라."
"좋습니다... 그럼 차를 마시겠습니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엄브릿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돌아서서
차에다 우유를 타는 듯한 동작을 했다. 그러고는 기분 나쁠 정도로 애교가 철철
흐르는 미소를 지으며 차를 가지고 재빨리 책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기 있다."
엄브릿지는 해리에게 차를 건넸다.
"식기 전에 어서 마셔라. 그래, 자, 포터군... 어젯밤에 그런 소란스런 사건을
겪었으니 우리 잠깐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니..."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브릿지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그가 차를
마시기를 기다렸다.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몇 분이 침묵 속에 흘렀다.
엄브릿지는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
"아직 다 마시지 않았구나!"
해리는 잔을 입술까지 들어 올렸다가, 갑자기 다시 밑으로 내렸다. 엄브릿지
뒤로 보이는 그 끔찍한 고양이 그림들 중에 한 마리가 매드아이 무디의 마법의
눈과 똑같이 생긴 커다랗고 둥근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현듯 매드아이
무디에게서 적이 주는 것은 무엇이든 절대 마시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왜 그러지?"
여전히 그를 지켜보고 있던 엄브릿지가 물었다.
"설탕을 넣어 줄까?"
"아니요."
해리가 대답했다. 그는 잔을 다시 입술까지 들어올리며 한 모금 홀짝 마시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입술은 여전히 꼭 다물고 있었다. 엄브릿지의 입이 옆으로
쭉 찢어졌다.
"좋아."
엄브릿지가 속삭였다.
"아주 잘했어. 그럼 이제..."
엄브릿지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알버스 덤블도어는 어디 있지?"
"모르겠는데요."
해리가 즉시 대답했다.
"어서 마셔라, 어서 마셔."
엄브릿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포터 군, 지금 우리는 어린애들 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너는 분명히 알고 있어. 너와 덤블도어는 맨 처음부터 한통속이었잖아.
포터 군, 자신의 처지를 잘 생각해 봐..."
"덤블도어 교수님이 어디 있는지 저는 전혀 몰라요."
해리는 또다시 차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좋다."
엄브릿지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시리우스 블랙이 어디 있는지 말해 주겠니?"
갑자기 해리는 뱃속이 울컥 뒤집어지면서 찻잔을 쥐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렸다.
해리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찻잔을 입 쪽으로 기울였다. 뜨거운 액체가 목덜미를
타고 망토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전 모릅니다."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포터 군. 지난 10월에 그리핀도르 기숙사 벽난로에서 그 범죄자 블랙을 거의
붙잡을 뻔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지. 나는
그자가 널 만나고 있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내 장담하지만, 만약 그때
증거를 잡았다면 너와 블랙 둘 다 지금쯤 자유롭지 못했을 게다. 다시 한 번
묻겠다, 포터 군... 시리우스 블랙은 어디 있지?"
"저는 모릅니다."
해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전혀 몰라요."
두 사람은 해리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오랫동안 서로를 빤히
노려보았다. 잠시 후에 엄브릿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포터. 이번에는 네 말을 믿도록 하지. 하지만 경고하마. 내 뒤에는
마법부의 막강한 힘이 버티고 있다. 이 학교를 오고 가는 모든 통신은 전부
감시를 받고 있어. 호그와트에 있는 모든 난로들마다 플루 가루 네트워크
단속반이 감시를 하고 있지. 물론 내 방의 난로만 제외하고 말이야. 나의 감사
위원회 위원들은 이 성을 드나드는 모든 부엉이들의 우편물을 뜯어서 읽어 보고
있어. 그리고 필치 씨는 성으로 통하는 모든 비밀 통로들을 감시하고 있지.
사소한 증거라도 내 눈에 뜨이는 날이면..."
펑!
마루가 흔들렸다.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한 엄브릿지는 황급히 책상을 꽉
붙들었다. 굉장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뭐지?"
엄브릿지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마른
꽃이 꽂혀 있는 가장 가까운 꽃병 속에 아직도 찻잔 가득 남아 있는 차를 쏟아
부었다. 아래쪽에서 각 층에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그만 점심을 먹으러 가라, 포터!"
엄브릿지는 지팡이를 치켜들고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해리는 곧이어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갔다.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의문은 금방 풀렸다. 바로 아래층에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해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마법에 걸린 폭죽이 담긴
거대한 상자처럼 보이는 것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초록색과 황금색 불꽃이 만들어 낸 용들이 요란한 폭음과 폭발을 일으키며
복도를 따라 사방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직경이 1점5미터나 되는 현란한
분홍색의 회전 불꽃들은 마치 수많은 비행접시처럼 위협적으로 허공을 핑핑
날아다녔고, 빛나는 은색 별들을 꼬리처럼 길게 내뿜는 로켓들은 이쪽저쪽 벽에
마구 부딪혔다. 한편 반짝이는 불꽃들은 제멋대로 온갖 욕설들을 허공에 그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폭죽이 지뢰처럼 터지고 있었는데, 완전히 타버리거나
점차 사라지거나 요란한 소리를 멈추는 대신, 이 기적 같은 기술의 산물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기운이 나고 세지는 것 같았다.
필치와 엄브릿지는 공포에 사로잡혀 계단 중간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해리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커다란 회전 불꽃 중 하나가 마치 움직일
공간이 너무 비좁다는 듯이 무시무시하게 위...위...위...윙 하는 소리를 내며
엄브릿지와 필치를 향해 돌진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목을 쑥 집어넣었다. 회전 불꽃은 곧장 그들 뒤에 있는 창문 밖으로 날아가더니
운동장 너머로 사라졌다. 한편 기분 나쁜 연기를 뿜어 대는 대여섯 마리의 용과
커다란 보라색 박쥐는 복도 끝에 열린 문을 통해서 2층으로 도망쳤다.
"서둘러, 필치. 어서!"
엄브릿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뭐가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온 학교를 다 뒤집어 놓겠어. 스투페파이!"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붉은 불꽃이 발사되더니 로켓 중 하나에 명중했다.
하지만 로켓은 허공에서 딱 정지하는 대신, 엄청난 폭발을 일으켜서 잔디
한가운데 서 있는 가냘픈 인상의 마녀 그림에 구멍을 냈다. 다행히도 그림 속의
마녀는 제때에 도망을 쳐서, 바로 옆에 걸린 그림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
그림 속에서 카드를 치고 있던 마법사 두 사람은 황급히 일어나더니 그녀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필치, 폭죽에 기절 마법을 걸지 마!"
엄브릿지는 마치 모든 게 그의 탓인 양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필치가 씨근거리며 대답했다. 물론 스큅에 불과한 그는 폭죽을 삼키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기절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필치는 옆에 있는
선반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빗자루를 꺼내서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폭죽들을 파리 잡듯이 때려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 빗자루 끝에 불이
붙었다.
이 광경을 실컷 구경한 해리는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납작 숙이고, 양탄자
뒤에 감추어진 비밀 문으로 도망쳤다. 과연 문 뒤에서는 프레드와 조지가 몸을
숨긴 채, 엄브릿지와 필치가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떠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감동적이었어."
해리가 씩 웃으며 속삭였다.
"정말 감동적이었어... 필리버스터 박사의 불꽃놀이를 당장 시장에서
몰아내겠는걸. 문제없어..."
"브라보!"
조지가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속삭였다.
"엄브릿지가 이번에는 소멸 마법을 쓰면 좋겠어... 그때마다 불꽃이 열 배나 더
커지거든."
결국 그날 오후 내내 학교 전체에서 불꽃놀이가 계속되었다. 비록 엄청난
소동이 일어나긴 했지만(특히 폭죽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은 별로 그 일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이런."
용들 중에 한 마리가 요란한 폭음과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내뿜으며 맥고나걸
교수의 교실 안을 헤집고 돌아다니자, 그녀는 비꼬듯이 말했다.
"브라운 양, 교장 선생님께 달려가서 우리 교실로 도망친 폭죽 하나가
들어왔다고 알려 드리겠어요?"
결국 엄브릿지 교수는 교장이 된 첫날, 이 교실 저 교실로 쫓아다니며 다른
선생들의 부름에 응하느라 오후 시간을 다 보냈다. 모두들 엄브릿지가 없으면
교실 안으로 들어온 폭죽 하나 쫓아낼 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대단히 흐뭇한 표정으로 가방을 둘러메고 그리핀도르
탑으로 향했다. 한편, 머리는 산발하고 온통 숯 검댕이 된 엄브릿지는 땀에 젖은
얼굴로 플리트윅 교수의 교실을 바쁘게 달려 나오고 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교수님!"
플리트윅 교수는 가늘고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저 혼자서는 폭죽을 내쫓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사실 제게 그런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군요."
플리트윅 교수는 활짝 웃으며 일그러진 엄브릿지의 면전에서 교실 문을 쾅
닫았다. 그날 밤 그리핀도르 휴게실에서 프레드와 조지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헤르미온느까지도 환호하며 몰려든 아이들 틈을 파고들어 가서 그들을 칭찬해
주었다.
"정말 너무나 훌륭한 불꽃놀이였어."
헤르미온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마워."
조지는 무척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위즐리 형제의 도깨비불 폭죽이야.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이지. 우리가 가진
재고를 다 썼거든. 이제 다시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어."
프레드는 아우성을 치며 달려드는 그리핀도르 학생들로부터 열심히 주문을
받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너도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으면 폭죽 기본 한 상자는
5갈레온이고 특별 제작 상품은 20갈레온이야..."
헤르미온느는 해리와 론이 앉아 있는 책상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마치 숙제가 툭 튀어나와서 저절로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듯이 가방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하룻밤쯤 놀면 안 될까?"
헤르미온느가 유쾌하게 말했다. 그 순간 은색 불꽃을 길게 내뿜는 위즐리의
로켓 하나가 창 밖으로 휙 날아가 버렸다.
"어쨌든 금요일이면 부활절 휴가도 시작되잖아. 그땐 시간도 많을 텐데 뭐."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니?"
론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글쎄... 뭐랄까... 약간 반항적인 생각이 들어."
헤리미온느가 웃으며 말했다.
한 시간 후에 론과 해리가 그만 자려고 일어섰을 때, 멀리서는 아직도
이리저리 도망치는 폭죽들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해리가 옷을
갈아입을 때에도, 불꽃 하나가 '멍청...'이란 글자를 남기며 탑 옆을 휙 날아갔다.
해리는 길게 하품을 하고 침대로 들어갔다. 안경을 벗자, 이따금씩 창 앞을
지나가는 폭죽들이 흐릿하게 보이면서 마치 검은 하늘에 떠 있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반짝이 구름 같았다. 해리는 과연 덤블도어의 자리를 빼앗은 첫날을
지내고 난 엄브릿지의 소감이 어떨까 궁금해하면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거의 하루 종일 학교가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퍼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면서 해리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폭죽들의 요란한 소리가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가 그곳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해리는 곧장 미스터리 부서로 향하는 복도에 떨어졌다. 그는 밋밋한 검은 문을
향해서 재빨리 달려가고 있었다. 열어야 해... 열어야 해...
과연 그랬다. 해리는 문들이 줄지어 서 있는 둥근 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똑같이 생긴 어느 문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문이 휙
열렸다.
이제 그는 시계가 돌아가는 듯한 묘한 기계음으로 가득 찬 긴 사각형 방 안에
있었다. 벽 위로 점 같은 불빛들이 흩어져 일렁이고 있었지만, 해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 가야만 했다...
저 끝에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 또한 손을 대자마자 열렸다...
이제 그는 교회처럼 천장이 높고 대단히 넓은, 어둠침침한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높은 선반 진열장이 줄지어 서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각
선반에는 작고 먼지 낀 둥근 유리 구슬들이 놓여 있었다... 이제 해리의 가슴은
환희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마구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거대한 방에서는 그의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가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바로 이 방 안에 있었다... 그가 원하는
무엇이... 혹은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무엇이...
그의 흉터가 쿡쿡 쑤셨다...
쾅! 해리는 혼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퍼뜩 잠에서 깨었다. 어두운 침실은
웃음소리로 떠나갈 것 같았다.
"멋지다!"
시무스가 소리쳤다. 창문 앞에 서 있는 그의 그림자가 보였다.
"회전 불꽃 중의 하나가 로켓과 부딪혔나 봐. 그래서 마치 짝을 이룬 것 같아!
이리 와 봐!"
해리는 론과 딘이 그 광경을 더 잘 보기 위해서 침대 밖으로 뛰어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마의 통증이 가라앉고 실망감이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마치 마지막 순간에 너무나 커다란 기쁨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거의 손에 넣을 뻔했는데.
분홍색과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날개 달린 돼지가 그리핀도르 탑의 창문
밖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해리는 아래층 침실에서 다른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탄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문득 내일 저녁에
오클러먼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해리는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하루 종일 해리는 자신이 지난밤 꿈속에서 미스터리 부서의 더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스네이프가 과연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움에 시달렸다. 동시에 지난번 수업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오클러먼시를
연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꼈다. 덤블도어가 떠난 이후로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해리는 설사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다
하더라도 마음을 깨끗이 비우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스네이프가 그런 변명을 받아 줄지는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해리는 그날이나마 수업 시간 동안 틈틈이 연습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가 입을 다물고 모든 생각과 감정을 비우려고 시도할
때마다, 헤르미온느가 옆에서 어디가 아프냐고 계속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배운 내용에 대해 질문을 마구 퍼붓는 동안에는
머릿속을 비우는 게 불가능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해리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스네이프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현관 복도를 반쯤 지나고 있을 때, 초가 황급히 그를 쫓아왔다.
"이쪽으로 와."
해리는 조금이라도 스네이프와의 만남을 늦출 수 있는 핑계가 생긴 것을
기뻐하면서, 현관 복도의 한쪽 구석으로 그녀를 손짓하여 불렀다. 그곳에는
거대한 모래시계들이 서 있었다. 이제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모래시계는 거의
바닥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너 괜찮니? 엄브릿지가 너에게 D,A에 대해서 물어보지는 않았니?"
"아니야." 초가 서둘러 말했다.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어서... 해리, 난 마리에타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그래."
해리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초가 친구를 선택할 때 좀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난번에 마리에타가 아직 병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폼프리 부인조차도 그녀의 물집을 전혀 낫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해리는 약간 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사실은 아주 좋은 친구야. 이번에는 단지 실수로..."
초가 말했다. 순간 해리는 자기 귀가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은 친구가 실수를 한 거라고? 그 애는 우리 모두를 적에게 팔았어.
너까지도 말이야!"
"글쎄... 하지만 우리 모두 빠져나왔잖아. 안 그래?"
초는 해리를 달래려고 했다.
"너도 알지만, 그 애 엄마가 마법부에서 일하시거든. 그래서 그 친구로서는
너무 힘든..."
"론의 아버지도 마법부에서 일하시는 건 마찬가지야!"
해리가 벌컥 화를 냈다.
"혹시 네가 미처 몰랐을까 봐 하는 말인데, 그래도 론의 얼굴에는 '밀고자'라는
글씨는 새겨지지 않았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한 짓이야말로 정말 끔찍한 속임수였어!"
초도 언성을 높였다.
"그 명단에 주문을 걸었다고 우리에게 미리 말해 주었어야지..."
"난 아주 훌륭한 계획이었다고 생각해."
해리가 냉정하게 말했다. 순간 초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두 눈이 빛났다.
"오, 그래. 내가 깜박 잊고 있었군. 그게 사랑하는 헤르미온느의 계획이라는
걸..."
"그렇다고 내 앞에서 또다시 울진 마!"
해리가 경고했다.
"나는 절대 울지 않아!"
초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렇다면... 좋아. 지금 난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단 말이야."
"그렇다면 어서 가서 할 일이나 해!"
초는 벌컥 화를 내며 홱 돌아서더니 달려가 버렸다. 해리는 잔뜩 성이 난 채,
스네이프의 지하 교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비록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그가 화가 나거나 분노한 상태로 찾아가면 스네이프가 훨씬 더 손쉽게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 교실의
문 앞까지 가는 동안 해리의 머릿속에는 줄곧 초에게 마리에타에 대해서 더
심한 말을 해줬어야 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늦었구나, 포터."
해리가 문을 닫고 들어서자, 스네이프가 차갑게 말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평소처럼 자신의 생각을 꺼내어
덤블도어의 펜시브 속으로 조심스럽게 옮겨 담고 있었다. 마지막 은색 실을 돌
대야 속에 떨어뜨린 스네이프는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래, 연습은 많이 했니?"
스네이프가 물었다.
"네."
해리는 스네이프의 책상 다리 하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거짓말을 했다.
"좋아. 금방 드러날 테니까, 안 그러냐? 지팡이를 꺼내라, 포터."
스네이프는 여유 있게 말했다. 해리는 늘 그렇듯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스네이프를 마주 보았다. 그의 가슴은 초에 대한 분노와 스네이프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얼마나 들킬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구 두근거렸다.
"그럼 셋을 세겠다."
스네이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나... 둘..."
바로 그때 스네이프의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드레이코 말포이가 뛰어
들어왔다.
"스네이프 교수님... 어, 죄송합니다."
말포이는 깜짝 놀라며 해리와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괜찮다, 드레이코."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내리며 말했다.
"포터는 지금 마법약 보충 수업을 받고 있다."
엄브릿지가 해그리드의 수업을 참관하려고 나타났을 때 이후로, 해리는
말포이가 그렇게 고소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보았다.
"몰랐습니다."
말포이는 해리를 힐끗 곁눈질하며 말했다. 해리는 자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말포이에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에게 저주라도 걸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래, 드레이코, 무슨 일이지?"
스네이프가 물었다.
"엄브릿지 교수님께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시답니다."
말포이가 말했다.
"몬태규가 4층 복도에 있는 화장실 안에 끼인 채 발견되었거든요."
"도대체 거긴 어떻게 들어간 거지?"
스네이프가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몬태규가 약간 얼이 빠진 상태라서요."
"좋아, 좋아. 포터, 이 수업은 내일 저녁으로 미뤄야겠다."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말포이는 소리 없이
입을 벙끗거리며 스네이프의 등 뒤에 서 있는 해리에게 '보충 수업이라고?' 하고
놀렸다.
해리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지팡이를 망토 안에 다시
집어넣고 그만 나갈 준비를 했다. 최소한 스물네 시간 동안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록 말포이가 학교 전체에 그가 마법약 보충 수업을
받는다는 소문을 퍼뜨릴 생각을 하면 속이 쓰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급한 고비를 넘긴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방문 앞에 섰을 때,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문지방
위에 흔들리는 빛줄기가 어른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뭔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난밤 그의 꿈속에서 보았던 그 불빛과 비슷했다. 미스터리 부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 때, 두 번째 방에 있었던 그 불빛 말이다.
해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빛은 스네이프의 책상 위에 놓인 펜시브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펜시브 안에서는 은백색 내용물이 소용돌이치며 출렁거렸다.
스네이프의 기억... 혹시라도 해리가 스네이프의 방어벽을 뚫고 들어갔을 때,
절대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기억이 거기 있었다.
해리는 가만히 펜시브를 바라보았다. 자꾸만 호기심이 솟아났다... 스네이프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는 기억이 무엇일까? 벽 위로 반짝이는 빛들이
일렁거렸다... 해리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책상을 향해 두 걸음 다가갔다. 혹시
스네이프가 그에게 절대 알려 주고 싶지 않은, 미스터리 부서에 대한 어떤
정보는 아닐까?
해리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세차게 빠르게
뛰었다. 스네이프가 몬태규를 화장실에서 꺼내 주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런 다음에는 방으로 다시 곧장 돌아올까, 아니면 몬태규를 데리고 병동으로
갈까? 분명히 병동으로 갈 거야... 몬태규는 슬리데린 퀴디치 팀의 주장이었다.
그러니 스네이프도 그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해리는 펜시브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며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잠깐 동안 귀를 기울인
다음, 다시 지팡이를 꺼냈다. 방과 복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해리는 지팡이
끝으로 펜시브의 내용물을 살짝 찔러 보았다.
안에 들어 있던 은빛 내용물들이 아주 빠르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해리는
펜시브 위로 몸을 숙인 채, 은색 물질이 점점 투명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다시 천장에 있는 둥근 창문을 통해서 어떤 방 안이 내려다보였다... 그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그곳은 틀림없이 대연회장이었다.
해리의 숨이 닿자, 스네이프의 생각 표면 위에 김이 끼었다... 그의 머리가
마치 뿌연 지옥의 변방에 있는 것 같았다... 분명히 정신 나간 짓이었지만,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해리는 덜덜 몸이 떨렸다... 스네이프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화를 내던 초와 능글맞게 웃던 말포이의 얼굴을
생각하자, 무모한 용기가 치솟았다.
해리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스네이프의 생각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즉시 마룻바닥이 기울어지면서 해리는 펜시브 안에 거꾸로
처박혔다.
그는 정신없이 빙빙 돌면서 차가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대연회장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네 개의 기숙사 테이블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수백 개가 넘는 작은 책상들이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
놓여 있었다. 각 책상에는 학생들이 한 명씩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양피지
위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깃펜이 사각거리는 소리와 이따금씩 양피지를
바로잡기 위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시험 시간이 분명했다.
높은 창문을 통해서 흘러 들어온 햇살이 그들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환한 햇살을 받은 학생들의 머리가 밤색과 회색, 황금색으로 제각기 빛났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기 어딘가 틀림없이 스네이프가 있을
것이다... 이건 그의 기억이니까...
해리의 바로 뒤쪽 오른편 책상에 그가 있었다. 해리는 자세히 그를
바라보았다. 십 대 소년인 스네이프는 마치 그늘에서 자란 식물처럼
호리호리하고 창백했다. 맥이 없고 기름이 낀 그의 머리카락이 책상 위에 늘어져
있었다. 스네이프는 그의 매부리코가 거의 양피지에 닿을 정도로 바싹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답을 쓰고 있었다. 해리는 그의 뒤로 돌아가서 시험지 제목을
읽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표준 마법사 수준
그렇다면 지금 스네이프 나이는 해리와 비슷한 열다섯 살에서 열여섯 살
정도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손은 양피지 위를 거의 날아다니고 있었다. 제일
가까이 있는 다른 친구들보다 최소한 30센티미터는 더 많이 쓴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글씨는 깨알처럼 작고 촘촘했다.
"오 분 남았다!"
이 소리에 해리는 깜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뒤를 돌아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책상들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플리트윅 교수의 머리가 보였다.
플리트윅 교수는 마구 헝클어진 검은 머리의 남학생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
해리가 어찌나 급하게 몸을 움직였는지, 만약 그가 실체가 있었다면 책상에
걸려서 나뒹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꿈속에서처럼 책상 두 줄을 지나서 세
번째 줄로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검은 머리 소년의 뒷모습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 그는 고개를 들고 깃펜을 내려놓은 다음, 양피지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고서 자신이 쓴 답안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있었다...
해리는 책상 앞에 멈춰 서서 열다섯 살인 그의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가슴
가득히 기쁨이 밀려들었다. 마치 어떤 실수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임스의 눈은 밤색이었고 해리보다 코가 약간 더 길었으며
이마에는 흉터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갸름한 얼굴과 입과 눈썹 모양까지
똑같았다. 해리와 똑같이 제임스의 뒷머리도 제멋대로 삐쳐 있었고, 손 모양도
해리와 똑같았다. 아마 제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두 사람의 키도 분명히
거의 비슷할 것 같았다.
제임스는 크게 하품을 하고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 바람에 그러지 않아도
헝클어진 머리가 더욱 엉망이 되었다. 그는 플리트윅 교수 쪽을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의자에서 몸을 돌려서 뒤로 네 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한 남학생을
보며 싱끗 웃었다.
해리는 제임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시리우스를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시리우스는 의자를 뒤로 기울이며 빈둥빈둥 한가하게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눈 위에까지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그의 모습은 너무나
멋있었다. 그에게서는 제임스도, 해리도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우아함이 풍겼다.
그의 뒤에 앉아 있는 한 여학생은 선망 어린 눈길로 그를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여학생으로부터 두 자리
떨어진 곳에 리무스 루핀이 있었다. 해리의 가슴은 또다시 기쁨으로 고동쳤다.
그는 다소 창백하고 야윈 것처럼 보였다(보름이 다가오고 있었을까?). 그리고
시험에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다. 깃펜 끝으로 턱을 긁으며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답안지를 다시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웜테일도 여기 어딘가 있어야 하는데... 틀림없이. 다음 순간 해리는
웜테일을 발견했다. 코가 뾰족하고 회색 머리카락을 지닌 작은 소년이었다.
웜테일은 초조한 듯이 손톱을 물어뜯고 발끝을 연신 바닥에 비벼 대면서
시험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옆 자리 친구의 시험지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한동안 웜테일을 바라보던 해리는 다시 제임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그는 양피지 한 귀퉁이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스니치
하나를 그려 놓고, 그 옆에 L,E 라는 글씨를 썼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깃펜을 내려놓아라!"
플리트윅 교수가 소리쳤다.
"스테빈스, 너도 마찬가지야! 내가 양피지를 걷는 동안, 모두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어라. 아씨오!"
수백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가 허공으로 붕 날아오르더니 두 팔을 활짝 벌린
플리트윅 교수의 품 안으로 일제히 떨어졌다. 그 바람에 플리트윅 교수는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몇몇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일 앞자리에 앉은
학생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플리트윅 교수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고맙다... 고마워."
플리트윅 교수가 숨을 헐떡거렸다.
"자, 그럼. 모두들 그만 나가도 좋아요!"
해리는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L,E 라는 글자에 장식을 그려 넣고 있던
제임스는 재빨리 낙서를 지우더니 깃펜과 시험지를 가방 속에 집어넣고 가방을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 시리우스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주위를 돌아보던 해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스네이프를 발견했다. 그는
여전히 시험지에 정신을 빼앗긴 채, 현관 복도로 나가는 문을 향하여 책상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앙상한 어깨를 구부정하게 숙이고서 씰룩씰룩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거미를 연상시켰다. 한편 기름이 잔뜩 낀 그의 머리카락은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스네이프와 제임스, 시리우스, 루핀 사이를 지나갔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 여학생들 속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제임스와 그 친구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니, 10번 문제가 마음에 들었냐?"
시리우스가 현관 복도로 나가면서 물었다.
"물론이지."
루핀이 쾌활하게 말했다.
"늑대인간을 식별할 수 있는 다섯 가지 특징에 대해서 쓰시오. 정말 훌륭한
질문이었어."
"그래서 너는 그 특징들을 다 쓴 것 같니?"
제임스가 짐짓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물었다.
"그런 것 같아."
루핀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세 사람은 어서 햇빛이 쏟아지는 운동장으로
나가고 싶어서 현관문 주위에 몰려 있는 학생들 틈을 파고들었다.
"첫째, 그는 내 의자에 앉아 있다. 둘째, 그는 내 옷을 입고 있다. 셋째, 그의
이름은 리무스 루핀이다."
이 말을 듣고 웃지 않는 사람은 웜테일 한 명뿐이었다.
"나는 툭 튀어나온 주둥이 모양과 눈동자의 동공, 그리고 털달린 꼬리까지는
썼는데, 다른 건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웜테일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왜 그렇게 아둔하냐? 한 달에 한 번씩 늑대인간이랑 어울려 다니면서도..."
"목소리 좀 낮춰."
루핀이 주의를 주었다. 해리는 불안해서 또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시험지 문제에 정신을 빼앗긴 채, 바로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것은
스네이프의 기억이었다. 만약 스네이프가 일단 운동장 밖으로 나간 후에 어딘가
다른 쪽으로 향한다면, 해리는 더 이상 제임스를 지켜볼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제임스아 다른 세 친구가 호수 쪽 잔디밭으로
내려갔을 때, 스네이프도 그 뒤를 따라 왔다. 시험지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스네이프보다 약간
앞에 서 있던 해리는 계속해서 제임스와 다른 친구들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이번 시험은 정말 식은 죽 먹기였어."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시험에서 최소한 'O'를 받지 못한다면, 난 너무 놀랄 거야."
"나도 그래."
제임스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마구 몸부림을 치고 있는 황금 스니치를
꺼냈다.
"그거 어디서 났니?"
"슬쩍했지."
제임스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스니치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는데, 몇 센티미터쯤 도망치게 내버려 두었다가 얼른 다시 붙잡곤 하는
것이었다. 그의 순발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웜테일은 입을 딱 벌리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호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너도밤나무 그늘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 일요일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숙제를 하며 하루를 보냈던 바로 그
나무였다. 그들은 풀밭 위에 벌렁 누웠다. 해리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스네이프는 덤불 아래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O,W,L 시험지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덕분에 해리는 너도밤나무와 덤블
사이의 잔디밭에 앉아서, 나무 아래에 있는 네 사람을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있었다. 태양이 잔잔한 호수 표면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호수 주변에서는
방금 대연회장에서 나온 여학생들의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어 던진 채, 호수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깔깔 웃고 있었다.
루핀은 책을 꺼내더니 읽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다소 거만하고 권태로워
보였지만, 그래도 역시 너무나 잘생긴 얼굴로 잔디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제임스는 여전히 스니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조금씩 점점 더 멀리 날아가던 스니치는 거의 도망칠 뻔하다가도 번번이 마지막
순간에 그의 손에 붙잡히곤 했다. 한편 웜테일은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제임스가 특별히 어렵게 스니치를 잡을 때마다, 박수를 치며 탄성을
질렀다. 이런 일이 오 분쯤 계속되자, 해리는 제임스가 왜 웜테일에게 한번 직접
잡아 보라고 말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웜테일의 주목을 받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해리는 그의 아버지가 너무 단정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자꾸만 머리를 쓸어 넘기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한 호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여학생들을 계속 의식하며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것 좀 그만 치워."
멋진 솜씨로 스니치를 잡는 제임스를 보고 웜테일이 또다시 환호성을 지르자,
마침내 시리우스가 한마디했다.
"그러다가 웜테일은 오줌이라도 싸겠다."
웜테일이 얼굴을 붉히며 돌아섰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저 씨익 웃기만 할
뿐이었다.
"네가 싫다면 알았어."
제임스는 스니치를 다시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해리는 오직
시리우스만이, 뽐내길 좋아하는 제임스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난 심심해. 지금이 보름이면 좋을 텐데."
시리우스가 중얼거렸다.
"좋기도 하겠군."
루핀이 책 뒤에서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변신술 시험이 남아 있으니까 그렇게 정 심심하다면 나에게 이
내용이나 좀 물어봐 줘. 자..."
루핀은 책을 내밀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코웃음을 쳤다.
"난 그런 쓰레기는 볼 필요가 없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저걸 보면 좀 기운이 날 거야. 패드풋."
제임스가 조용히 말했다.
"저기 누가 있는지 좀 봐..."
시리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마치 토끼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주 좋아. 스니벨루스."
시리우스가 속삭였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쳐다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스네이프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방 속에 O,W,L 시험지를 집어넣고
있었다. 그가 덤불 그늘 아래에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기 시작하자,
시리우스와 제임스도 벌떡 일어섰다.
한편 루핀과 웜테일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루핀은 아직도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한곳에 머물러 꼼짝도 하지 않았고
양미간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웜테일은 뭔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시리우스와 제임스, 그리고 스네이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때, 스니벨루스?"
제임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스네이프는 마치 항상 공격을 당하리라
예상하고 있던 사람처럼 재빨리 동작을 취했다. 황급히 가방을 내던진
스네이프가 망토 속에 손을 집어넣고 지팡이를 반쯤 꺼내는 순간, 제임스가
소리쳤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스네이프의 지팡이는 허공으로 3점5미터쯤 날아가서 잔디밭 위에 콩 하고
떨어졌다. 시리우스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임페디멘타!"
시리우스는 스네이프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며 주문을 외쳤다. 자신의 지팡이가
떨어진 쪽으로 몸을 날리던 스네이프는 그만 뒤로 나자빠졌다.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더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걱정스런 표정이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지팡이를 치켜들고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제임스는 그 와중에도 호숫가에
앉아 있는 여학생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웜테일은 이제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서
더 자세히 이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루핀 앞으로 돌아 나왔다.
"시험은 어땠냐, 스니벨리?"
제임스가 물었다.
"내가 이 녀석 하는 꼴을 지켜봤는데, 코를 완전히 시험지에 처박고 있더군."
시리우스가 심술궂게 말했다.
"시험지 위로 온통 머리 기름이 떨어져서 아마 한 글자도 못 알아볼 거야."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몇몇 아이들이 킬킬거렸다. 스네이프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특히 웜테일은 요란스럽게 키득거렸다. 스네이프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지만, 아직도 주문의 효력이 남아 있어서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인 사람처럼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거기... 기다려!"
스네이프는 증오심에 가득 찬 얼굴로 제임스를 올려다보며 씩씩거렸다.
"거기... 기다려!"
"뭘 기다리라는 거지?"
시리우스가 차갑게 말했다.
"뭘 하려고, 스니벨리? 코라도 닦으려고?"
스네이프는 온갖 주문과 저주를 줄줄이 내뱉었지만, 지팡이가 3미터나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네 입이나 닦으시지, 스코지파이!"
제임스가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순간 스네이프의 입에서 분홍색 비누 거품이 흘러나왔다. 거품이 온통 입술을
뒤덮자, 스네이프는 숨이 막혀 왝왝거렸다.
"스네이프를 가만 내버려 둬!"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제임스는 지팡이를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재빨리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것은 호숫가 주위에 앉아 있던 여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풍성한 검붉은색의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그 여학생은 아몬드 모양의 반짝거리는 초록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해리의 눈이었다.
해리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오, 에반스?"
갑자기 제임스의 목소리가 더 명랑해지면서, 깊고 성숙하게 들렸다.
"그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둬."
릴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녀는 제임스에 대한 혐오감을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그 아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니?"
"글쎄, 그게 말이지..."
제임스는 짐짓 신중히 생각하는 척했다.
"그냥 저 녀석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지. 네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모르겠지만..."
주위에 모여든 많은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시리우스와
웜테일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아직도 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 루핀과 릴리만이
웃지 않았다.
"넌 자신이 꽤 웃긴다고 생각하겠지."
릴리가 쌀쌀맞게 말했다.
"하지만 넌 단지 거만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인간쓰레기일뿐이야, 포터.
그러니까 그를 더 이상 건드리지 마."
"네가 나랑 외출을 나가 준다면 그렇게 하지, 에반스."
제임스가 재빨리 대꾸했다.
"나랑 같이 외출 한 번 하자. 그럼 두 번 다시 이 못난 스니벨리 녀석에게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을게."
한편 제임스의 등 뒤에서는 장애 마법이 효력을 다해 가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입에서 비누 거품 지꺼기를 뱉어 내며 조금씩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설사 너와 대왕오징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도 난 절대 너랑
외출하지 않을 거야."
릴리가 매몰차게 말했다.
"운이 나쁘군, 프롱스."
시리우스가 유쾌하게 말하며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섰다.
"앗!"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스네이프는 제임스를 향해서 곧장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불꽃이 번쩍하더니 제임스의 얼굴 한쪽에 상처가 나고 망토 위로 피가
흘러내렸다. 제임스는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두 번째 불꽃이 번쩍하더니,
스네이프가 허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의 망토가 머리 아래로 흘러내려서
앙상하고 여윈 두 다리와 때 묻은 팬티가 다 드러났다.
모여 있던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시리우스와 제임스,
웜테일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릴리의 성난 얼굴도 잠깐 동안 웃음이 터질 듯이 실룩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소리쳤다.
"그를 내려 줘!"
"물론이지!"
제임스는 지팡이를 위로 탁 쳤다. 그러자 스네이프는 땅에 머리를 쾅 박으며
거꾸로 떨어졌다. 온몸을 휘감은 망토를 헤치고 재빨리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지팡이를 치켜들었지만, 이번에는 시리우스가 소리쳤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스네이프는 판자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다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를 가만 두지 못해!"
릴리가 소리를 지르며 이번에는 자기 지팡이를 빼 들었다. 하지만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태연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에반스, 내가 너에게 주문을 쏘는 일은 없도록 해줘."
제임스가 진심으로 말했다.
"그럼 어서 저주를 풀도록 해!"
제임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서서 저주를 푸는
주문을 외웠다.
"너는 그만 꺼져."
스네이프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제임스가 빈정거렸다.
"에반스가 여기 있어서 천만다행인 줄 알아. 스니벨루스..."
"난 저런 더러운 잡종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어!"
릴리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좋아. 나도 앞으로는 간섭하지 않겠어. 그리고 너는 팬티나 좀 빨아 입고
다니렴, 스니벨루스."
"에반스에게 당장 사과해!"
제임스가 스네이프에게 위협적으로 지팡이를 겨누며 호령했다.
"그럴 필요 없어."
릴리가 제임스를 향해 돌아서며 소리쳤다.
"너나 저 아이나 모두 똑같이 나쁜 녀석들이야!"
"뭐라고?"
제임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난 한 번도 널... 그거라고 부른 적이 없어!"
"마치 방금 빗자루에서 내려온 것처럼 멋지게 보일까 해서 항상 일부러
머리를 헝클어뜨리기나 하고, 그 멍청한 스니치를 가지고 뽐내질 않나, 복도를
돌아다니며 아무나 눈에 거슬리는 상대에게 저주를 쏘질 않나... 너같이 무거운
돌대가리를 태우고 어떻게 빗자루가 하늘로 올라가는지 난 그게 놀라울 뿐이야.
널 보면 정말 구역질이 나!"
릴리는 휙 돌아서서 달려가 버렸다.
"에반스! 이봐, 에반스!"
제임스가 그녀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도대체 쟤가 왜 저러는 거야?"
제임스는 마치 자기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질문을 그저 한마디 툭 내뱉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가 한 말로 짐작하건대, 에반스는 네가 거만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친구."
시리우스가 말했다.
"맞아."
제임스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말이 맞아..."
또다시 불꽃이 번쩍 튀더니, 스네이프가 다시 허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내가 스니벨리의 팬티를 벗기는 걸 보고 싶은 사람?"
하지만 제임스가 정말로 스네이프의 팬티를 벗겼는지 아닌지 해리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누군가 그의 팔을 꽉 움켜잡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집게로 꼬집는
것처럼 아팠다. 해리는 인상을 쓰며 자기 팔을 잡은 사람을 돌아보았다. 순간 다
자라서 어른이 된 스네이프가 바로 등 뒤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해리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래, 재미있더냐?"
해리는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환한 여름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시 차가운 어둠 속으로 떠올랐다. 스네이프의 손이 아직도
그의 팔을 꽉 붙잡고 있었다. 잠시 후에 공중돌기를 하듯이 빙그르르 도는
느낌이 들면서, 그의 발이 스네이프의 지하 교실 바닥에 닿았다. 해리는 다시
스네이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펜시브 옆에 우뚝 서 있었다. 현재 세계의
어두컴컴한 마법의 교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 그래... 실컷 즐겼느냐, 포터?"
스네이프는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해리의 팔을 움켜쥐었다.
"아... 아니요."
해리는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를 악물고 있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네 아버지는 꽤 재밌는 사람이었지, 안 그러냐?"
스네이프는 해리의 안경이 코 밑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그를 마구 흔들었다.
"아... 아니요."
스네이프가 있는 힘껏 해리를 밀쳐 버렸다. 해리는 지하 교실 바닥에
나뒹글었다.
"네가 본 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스네이프가 고함을 질렀다.
"네."
해리는 되도록 스네이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애를 썼다.
"당연히 절대로 말..."
"당장 나가, 나가! 난 두 번 다시 이 방에서 네 꼴을 보고 싶지 않다!"
해리가 허둥지둥 문 쪽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죽은 바퀴벌레가 담긴 유리병이
그의 머리 위에서 펑 하고 터졌다. 해리는 얼른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있는 지하 교실로부터 삼 층 위까지 도망친 후에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헐떡이며 멍이 든 팔을
문질렀다.
해리는 곧장 이대로 그리핀도르 탑에 돌아갈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방금 본 광경을 말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나 마음이
우울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그것은 스네이프에게 야단을 맞았거나 죽은
바퀴벌레가 든 유리병에 얻어맞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해리는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롱을 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놀려 댈 때, 스네이프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방금 그가 본 광경으로 판단하자면, 그의 아버지는 스네이프가 항상
그에게 말했던 그대로, 거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