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장 (142/194)

제15장

깨뜨릴 수 없는 맹세

   또다시 얼어붙은 유리창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벌써 대연회장에 평소와 같이 열두 개의 크리스마스트리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다가 가져다 놓았다. 호랑가시나무와 금박 장식을 엮은 화환들이 계단 난간 주위를 휘감고 있었고, 꺼지지 않는 촛불들이 갑옷의 투구 속에서 빛을 발하는 가운데, 복도에는 커다란 겨우살이 나뭇가지 다발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달려 있었다. 해리가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수많은 여학생들이 우르르 겨우살이 다발 밑에 모여드는 바람에(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밑에 있는 소녀에게 키스해도 되는 관습이 있음 : 역주) 통로가 막히곤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종종 밤마다 나돌아 다닌 덕분에 성 안의 비밀 통로를 훤히 꿰뚫고 있었던 해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겨우살이 다발이 걸려 있지 않은 길을 찾아 교실과 교실 사이를 다닐 수 있었다.

   한때 이런 상황이 유쾌하기보다는 배가 아파 돌아가는 길을 간절히 필요로 했던 론은, 이제 이 모든 것을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지난 몇 주 동안 견뎌야 했던 그의 우울하고 공격적인 모습보다 농담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이 새로운 론이 훨씬 더 좋긴 했지만, 달라진 론을 얻기 위해 해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 컸다. 우선, 라벤더 브라운이 자꾸 나타나도 참아야만 했다. 그녀는 론과 키스하지 않는 시간은 무조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또다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두 사람이 평생 서로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직도 손과 팔뚝에 헤르미온느의 새들이 공격해서 생긴 상처와 할퀸 자국이 남아 있는 론은 방어적이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헤르미온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론이 해리에게 투덜거렸다.

   “자기도 크룸하고 막 껴안고 다녔잖아. 그러니 나를 안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여긴 자유 국가야. 난 나쁜 짓 한 거 하나도 없어.”

   해리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음 날 마법 시간 전까지 읽어야만 하는 《물질의 정수 : 탐구 》를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척했다. 론과 헤르미온느, 두 사람 모두와의 우정을 잃지 않기로 결심한 뒤로, 해리는 입을 꾹 다물고 지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난 헤르미온느에게 아무 약속도 한 적이 없어.”

   론이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슬러그혼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같이 가려고 했어. 하지만 걔는 한 번도 달리 말한 적은 없었어……. 그냥 친구로 가자고 했지……. 난 자유로운 몸이라고…….”

   해리는 자기를 쳐다보는 론의 눈길을 의식하고 얼른 《물질의 정수 : 탐구》를 한 장 넘겼다. 론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탁탁거리는 장작 타는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하지만 크룸이니, 할 말이 없다느니 하는 말이 가끔씩 해리의 귀에 언뜻 들리는 듯 했다.

   헤르미온느는 워낙 수업 시간표가 꽉 차 있어서 저녁때밖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는데, 그때마다 론은 라벤더 옆에 찰싹 붙어 있느라 해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헤르미온느는 론이 휴게실에 있을 때에는 절대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리는 대개 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났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걔가 누구랑 키스를 하든 그건 당연히 걔 자유야.”

   도서관 사서인 핀스 부인이 뒤쪽 책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난 진짜로 상관 안 해.”

   헤르미온느는 깃펜을 들어 어찌나 사납게 i자의 점을 찍었던지 그만 양피지의 구멍이 나 버렸다.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을 안 하고 지내다가는 조만간 목소리가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상급 마법약 만들기》 위로 좀 더 깊숙이 고개를 처박고서 불로장생의 영약에 대한 필기를 계속하다가, 이따금 손을 멈추고 혼혈 왕자가 리바티우스 보레이지의 책에 덧붙인 유용한 정보들을 분석하곤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헤르미온느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너 조심해야 할 거야.”

   “마지막으로 말할게.”

   45분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던 해리가 약간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난 절대로 이 책을 돌려주지 않을 거야. 스네이프나 슬러그혼에게서보다도 혼혈 왕자에게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단 말이야.”

   “나는 지금 너의 그 한심한 ‘왕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헤르미온느는 기분 나쁜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그의 책을 힐끗 째려보았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거야. 여기 오기 전에 여학생 화장실에 갔었는데, 로밀다 베인을 포함해서 열두 명의 여학생들이 거기 모여서 너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할지 궁리하고 있더라고. 그 아이들 모두 네가 자길 슬러그혼의 파티에 데려가 주길 바라고 있어. 그리고 전부 다 프레드와 조지가 만든 사랑의 묘약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 어쩌면 그 약이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그럼 당장 그걸 압수해 버리지 그랬니?”

   해리가 따져 물었다. 준법정신이 그토록 투철한 헤르미온느가 정작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가만히 있었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걔들이 화장실에 그 마법약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어.”

   헤르미온느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걔들은 그저 작전을 짜고 있었을 뿐이야. 설사 혼혈 앙자라고 해도 -헤르미온느는 또다시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 책을 힐끗 보았다- 서로 다른 사랑의 묘약 열두 개를 동시에 해독 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 낼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걸. 어쨌든 네가 누구랑 갈지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야 다른 여자애들이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헛된 생각을 버릴 거 아니야. 파티가 바로 내일 밤이니, 여자 애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사실은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해리가 중얼거렸다. 지니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지니는 그의 꿈속에 야릇한 모습으로 자꾸만 나타나고 있었다. 해리는 론이 레질리먼시를 못 한다는 사실이 그토록 고마울 수 없었다.

   “어쨌든, 아무거나 마시지 마. 로밀다 베인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거든.”

   헤르미온느가 진지하게 충고했다. 그러고는 산술점 작문을 쓰고 있던 긴 양피지 두루마리를 위로 끌어올리더니 계속해서 깃펜으로 뭔가를 끄적거렸다. 해리의 눈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잠깐만.”

   해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필치가 위즐리 형제의 신기한 장난감 가게에서 산 물건은 전부 금지시킨 걸로 아는데?”

   “언제 한 사람이라도 필치가 뭘 금지시켰는지 신경 썼던 적이 있었니?”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작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부엉이들을 모두 수색하고 있잖아? 그런데 어떻게 여학생들이 사랑의 묘약을 학교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가 있냐고?”

   “프레드와 조지가 그걸 향수나 기침약처럼 위장해서 보내거든. 그것도 그 가게의 우편 주문 서비스에 포함된 사항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넌 별걸 다 아는구나.”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쳐다볼 때와 똑 같은 표정으로 해리를 잠깐 째려보았다.

   “프레드와 조지가 지난 여름 방학 때 나하고 지니에게 보여 준 약병 뒷면에 전부 써 있었어.”

   헤르미온느는 쌀쌀맞게 말했다.

    “난 사람들의 음료에 마법약이나 넣고 다니지는 않아……. 물론 넣는 척하지도 않지……. 그것도 똑같이 나쁜 짓이니까…….”

“그래, 알았어. 그건 그만 하자.”

해리가 재빨리 입을 막았다.

 “문제는 필치도 속아 넘어가고 있다는 거야, 안 그래? 여학생들이 금지된 물건들을 마치 다른 물건인 양 속여서 학교로 들여오고 있잖아! 그런데 말포이라고 왜 그 목걸이를 학교에 들여오지 못하겠어?”

“오, 해리…… 그 이야기는 이제 좀 그만 하자…….”

“아니 왜 하지 말라는 거야?”

   해리가 따졌다.

   “내 말 좀 들어 봐.”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밀 탐지기는 나쁜 주술이나 저주, 감춰진 마법 따위를 찾아내는 거야. 어둠의 마법이나 어둠의 마법 물건들을 찾아내는 데 쓰는 거란 말이야. 그 목걸이처럼 강력한 저주에 걸린 물건은 단박에 들통이 난다고. 하지만 그냥 엉뚱한 약병 속에 담긴 마법약 같은 것은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어쨌든 사랑의 묘약은 어둠의 마법 물건도, 위험한 물건도 아니니까.”

   “너야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겠지.”

   해리는 로밀다 베인을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그게 기침약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건 순전히 필치의 몫인데, 사실 필치는 별로 실력 있는 마법사가 아니잖아. 난 필치가 마법약을 제대로 구별이나 할 수 있을지 의심…….”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입을 딱 다물었다. 해리도 역시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바로 그들 뒤에 있는 어두운 책장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독수리같이 생긴 핀스 부인이 책장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녀의 훌쭉한 뺨과 양피지 같은 피부, 그리고 구부러진 긴 코가 손에 든 등잔 불빛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이제 문 닫을 시간이다. 빌린 책은 전부 제자리에 꽂아 놓도록……. 너 이 책에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못된 녀석!”

   “이건 도서관 책이 아니에요. 제 거란 말이에요.”

   핀스 부인이 책을 향해 새 발톱 같은 손을 쭉 뻗자, 해리는 황급히 책상 위에서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집어 들었다.

   “책을 손상시켰구나!”

   핀스 부인이 야단을 쳤다.

   “더럽히고 훼손시켰어!”

   “이건 원래 글씨가 써 있던 책이에요!”

   해리가 핀스 부인의 손아귀에서 책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핀스 부인은 당장 발작이라도 일으킬 기세였다. 헤르미온느는 잽싸게 가방을 챙긴 다음 해리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갔다.

   “조심하지 않으면 도서관 출입 금지령을 내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 한심한 책은 왜 가져온 거야?”

   “저 여자가 미쳐 날 뛰는 건 내 탓이 아니야, 헤르미온느. 혹시 네가 필치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은 건 아닐까? 난 항상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어…….”

   “아마, 하하하!”

   다시 서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두 사람은 필치와 핀스 부인이 과연 남몰대 연애를 하는지 안 하는지 입씨름을 벌이며 등불이 밝혀진 텅 빈 복도를 따라 휴게실로 돌아왔다.

   “싸구려 장식!”

   해리가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의 새로운 암호를 뚱뚱한 여인에게 댔다.

   “너도 마찬가지야.”

   뚱뚱한 여인이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초상화를 활짝 열었다.

   “안녕, 해리!”

   해리가 초상화 구멍에서 기어 나오자마자, 로밀다 베인이 다가왔다.

   “질리워터 좋아하니?”

   그러자 헤르미온느가 ‘거봐, 내가 뭐랬니?’ 하는 표정으로 해리를 슬쩍 돌아보았다.

   “아니, 됐어.”

   해리가 재빨리 사양했다.

   “난 그거 별로 안 좋아해.”

   “그럼 이거 받아.”

   로밀다가 상자 하나를 억지로 그의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냄비 모양 초콜릿인데. 안에 파이어위스키가 들었대. 우리 할머니가 보내 주셨는데, 난 별로 안 좋아하거든.”

   “어…… 그래…… 정말 고마워.”

   해리는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저…… 나는 일이 있어서 그만…….”

   해리는 말끝을 흐리며 허둥지둥 헤르미온느의 뒤를 따라갔다.

   “내가 말했지!”

   헤르미온느가 딱 잘라 말했다.

   “네가 누군가를 초대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빨리 너를 그냥 내버려 둘 거야, 그러러면…….”

   갑자기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멍해졌다. 한 의자에 붙어 앉아서 서로 껴안고 있는 론과 라벤더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럼 잘 자, 해리.”

   이제 겨우 저녁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헤르미온느는 한마디 인사를 남기고 여학생 침실로 가 버렸다.

   해리는 이제 하루만 더 수업을 듣고 슬러그혼의 파티를 치르고 나면, 론과 함께 버로우를 향해 떠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론과 헤르미온느가 서로 화해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어쩌면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이성을 되찾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부질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 날 변신술 수업을 마치고 난 두 사람은 한층 더 침울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 수업 시간에 극히 어려운 인간 변신술 공부가 시작되었는데, 거울을 앞에 놓고 각자의 눈썹 색깔을 바꾸는 과제가 주어졌다. 론이 첫 번째 시도에서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우스꽝스런 자전거 핸들 모양의 콧수염을 만들어 내자, 헤르미온느는 그것을 보고 가차 없이 웃어 댔다. 그러자 론은 맥고나걸 교수님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의자에서 벌떡 일났다가 앉는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잔혹할 정도로 똑같이 흉내 내는 것으로 앙갚음을 해 주었다. 그것을 보고 라벤더와 패르바티는 배꼽을 잡고 즐거워 하는 바람에 헤르미온느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그녀는 종이 울리자마자 자기 물건들을 반쯤 내팽겨쳐 둔 채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해리는 론보다는 헤르미온느 쪽이 더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판단하고는 그녀의 소지품을 챙겨 들고 그녀를 뒤따라갔다.

   해리가 마침내 헤르미온느를 찾았을 때, 그녀는 아래층에서 있는 여학생 화장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루나 러브굿이 등을 톡톡 두들겨 주고 있었다.

   “어, 안녕, 해리.”

   루나가 인사를 했다.

   “네 눈썹 한쪽이 노란색이라는 걸 알고 있니?”

   “안녕, 루나. 헤르미온느, 너 물건을 놔두고 갔더라…….”

   해리가 그녀의 책을 내밀었다.

   “어, 그래.”

   헤르미온느가 목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소지품을 받아 들더니 필통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을 감추려고 얼른 뒤돌아섰다.

   “고마워, 해리. 난 이만 가 볼게…….”

   딱히 뾰족하게 할 말이 없기는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미처 위로의 말을 해 줄 틈도 주지 않고 횅하니 가 버렸다.

   “꽤 심란한 것 같더라.”

   루나가 말했다.

   “처음에는 모우닝 머틀이 안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헤르미온느 였지 뭐야, 론 위즐리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던데…….”

   “그래, 둘이서 좀 싸웠어.”

   해리가 설명했다.

   “론은 가끔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하지, 안 그래?”

   루나가 말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 불쾌하게 굴 때도 있어. 작년에 보니 그렇더라.”

   “음…… 그런 것 같아.”

   루나는 말하기 곤란한 사실을 태연히 대놓고 말하는 특유의 재능을 또다시 과시했다. 해리는 정말이지 루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 이번 학기는 어땠어?”

   “음, 괜찮았어.”

   루나가 대답했다.

   “D.A. 모임이 없어서 좀 외롭긴 했지만 지니가 친절하게 잘해 줬어. 지난번에는 변신술 수업 시간에 남학생 두 명이 나를 ‘루우니(멍청이라는 의미로 쓰임 : 역주)’ 라고 부르는 걸 막아 주기도 했지…….”

   “오늘 밤에 나랑 슬러그혼 교수님  파티에 가지 않을래?”

   갑자기 해리의 입에서 이 말이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해리의 귀에는 자기가 하는 말이 전혀 딴 사람의 것처럼 낯설게 들렸다.

   깜짝놀란 루나는 툭 튀어나온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슬러그혼의 파티에? 너랑 같이?”

   “그래.”

   해리가 말을 이었다.

   “손님을 데려가기로 되어 있거든. 너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내 말은…….”

   해리는 자신의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려고 애를 썼다.

   “너도 알다시피 단지 친구로서 말이야. 하지만 혹시 네가 싫다면…….”

   해리의 마음은 벌써 루나가 싫다고 대답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 아니야. 난 정말 너랑 친구로서 함께 가고 싶어!”

   해리는 루나가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파티에 함께 가자고 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물론 친구로서 말이야! 그래서 네 눈썹을 그렇게 물들인 거니? 파티 때문에? 그럼 나도 눈썹을 물들여야 하니?”

   “아니야.”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실수였어. 헤르미온느에게 부탁해서 원래대로 고쳐 놓을 거야. 그럼 여덟 시에 현관 복도에서 보자.”

   “아하!”

   그들 머리 위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그들은 피브스가 바로 위에 있는 샹들리에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그 밑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피브스는 두 사람을 보며 심술궂게 씩 웃었다.

   “포터가 루우니에게 파티에 가자고 했대요! 포터는 루우니를 좋아한데요! 좋아한데요!”

   피브스는 “포터는 루우우우우니를 좋아한데요!” 라고 꽥꽥거리면서 슝 날아가 버렸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고맙겠어!”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루나 러브굿을 슬러그혼의 파티에 데려가기로 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쫙 퍼졌다.

   “넌 누구든 데려갈 수 있었어!”

   론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탄했다.

   “누구든지 말이야! 그런데 루우니 러브굿을 데려간단 말이야?”

   “루나를 그렇게 부르지마, 론.”

   친구들에게로 가던 지니가 해리의 등 뒤에서 걸음을 멈추고 툭 쏘아붙였다.

   “해리, 루나를 데려가 줘서 정말 기뻐. 루나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지니는 이렇게 말하고 식탁으로 곧장 걸어가서 딘과 나란히 앉았다. 파티에 루나가 가게 된 걸 지니가 기쁘게 생각하다니, 해리도 좋아해야 할 일이었지만, 생각처럼 그게 잘 되지는 않았다. 식탁 저쪽에는 헤르미온느가 혼자 앉아서 스튜를 끼적거리고 있었다. 해리는 론이 슬쩍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네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잖아.”

   해리가 불쑥 충고를 던졌다.

   “뭐라고? 그러다가 또 카나리아 떼에게 공격을 당하라고?”

   론이 투덜거렸다.

   “꼭 헤르미온느 흉내를 내야만 했니?”

   “걔가 내 콧수염을 보고 웃었단 말이야!”

   “나도 웃었어. 내 평생 그렇게 우스꽝스런 꼴은 처음이었다고.”

   하지만 론은 그 말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라벤더가 패르바티와 함께 막 나타났던 것이다. 해리와 론 사이를 밀치고 끼어 앉은 라벤더는 당장 론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안녕, 해리.”

   패르바티가 해리와 마찬가지로 두 친구의 행동에 몹시 당황스럽기도 하고 질리기도 한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 잘 지냈어? 너, 그동안 호그와트에 계속 있었던 거니? 너희 부모님께서 네가 학교를 그만뒀으면 하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해리가 말했다.

   “내가 겨우 설득해서 당분간 두고 보기로 했어.”

   패르바티가 말했다.

   “케이티 일로 부모님이 혼비백산하셨는데, 그때 이후로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오, 안녕, 헤르미온느!”

   패르바티는 유난히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변신술 수업 시간에 헤르미온느를 놀려 댄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가 고개를 돌려 보니, 헤르미온느가 더할 나위 없이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 주고 있었다. 여학생들이란 때때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안녕, 패르바티! 오늘 밤에 슬러그혼 선생님의 파티에 너도 갈 거니?”

   헤르미온느가 론과 라벤더는 완전히 무시하며 말했다.

   “초대를 못 받았어.”

   패르바티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나도 정말 가고 싶었는데. 굉장히 근사한 파티가 될 것 같아……. 너는 갈 거지, 그렇지?”

   “응, 여덟 시에 코맥과 만나기로 했어. 우리는…….”

   그때 막힌 싱크대가 뚫리는 듯한 쪽 하는 소리가 나면서 론이 얼굴을 내밀었다. 헤르미온느는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은 사람처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파티에 갈 거야.”

   “코맥? 코맥 맥클라건 말이니?”

   패르바티가 되물었다.

   “맞아, 하마터면…….”

   헤르미온느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파수꾼이 될 뻔한 친구지.”

   “그럼, 그 애와 사귈 거니?”

   패르바티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어, 그래. 너 몰랐구나?”

   헤르미온느가 전혀 헤르미온느 답지 않게 킬킬거리며 말했다.

   “이럴 수가!”

   패르바티가 이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잔뜩 열을 올리며 탄성을 질렀다.

   “우와, 너는 퀴디치 선수들을 좋아하는구나? 처음에는 크룸이더니 이번에는 맥클라건을…….”

   “맞아. 하지만 난 정말 뛰어난 퀴디치 선수만 좋아해.”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패르바티의 말을 정정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난 그만 가서 파티 준비를 해야겠어…….”

   헤르미온느가 떠나자, 라벤더와 패르바티는 머리를 맞대고 자기들이 헤르미온느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사실들과 맥클라건에 대해 들은 모든 이야기를 총망라해서, 이 새로운 국면을 열심히 분석했다. 한편 론은 이상하게 맥 빠진 얼굴로 말없이 있었다. 해리는 혼자서 여자 아이들의 복수의 끝은 과연 어디인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날 밤 여덟 시가 되어 해리가 현관 복도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 수많은 여학생들이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루나에게 다가가는 해리를 원망스런 눈길로 노려보는 것 같았다. 루나는 보는 사람들마다 킬킬거리고 웃게 만드는 은색 반짝이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해리는 어쨌든 루나가 순무 귀걸이와 버터 맥주의 코르크 마개로 만든 목걸이, 그리고 심령 안경을 걸치지 않고 나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안녕, 그럼 가 볼까?

   해리가 말을 걸었다.

   “어, 그래. 파티 장소가 어디야?”

   루나가 신이 나서 말했다.

   “슬러그혼 교수님의 방이야.”

   해리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을 피해서 대리석 계단으로 루나를 이끌며 말을 이었다.

   “뱀파이어가 올 거라는 말을 너도 들었니?”

   “루퍼스 스크림저가 온단 말이야?”

   루나가 물었다.

   “내 말은…… 뭐라고?”

   해리는 기가 막혔다.

   “마법부 장관 말이니?”

   “그래, 그 사람은 뱀파이어야.”

   루나가 태연하게 말했다.

   “스크리저가 처음 코넬리우스 퍼지에게서 장관 직을 넘겨 받았을 때, 우리 아버지가 거기에 대해서 아주 긴 사설을 쓰셨어. 하지만 마법부로부터 그 사설을 신문에 내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지. 분명히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었던 거야!”

   해리는 루퍼스 스크림저가 뱀파이어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는 자기 아버지의 괴상한의견을 당연한 사실인 양 말하는 루나에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의 슬러그혼의 방에 가까워져 있었고, 한 발 한 발 걸어갈 때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 말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슬러그혼의 방은 원래 그렇게 지어졌는지 아니면 슬러그혼이 뭔가 마법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방보다 훨씬 더 컸다. 천장과 벽에는 온통 에메랄드색과 진홍색, 황금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어서 마치 거대한 천막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방 안은 숨이 막힐 듯이 답답했고, 천장 가운데 매달려 있는 화려한 황금 램프는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램프 안에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진짜 요정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찬란한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한쪽 구석에서는 만돌린 같은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이야기에 열중한 예닐곱 명의 나이 든 마법사들 머리 위로는 파이프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음식이 담긴 무거운 은 쟁반에 가려져서 마치 떠다니는 작은 식탁처럼 보이는 수많은 꼬마 집요정들이 사람들의 무릎 사이를 꽥꽥거리며 헤치고 다니고 있었다.

   “오, 우리 해리!”

   해리와 루나가 문을 비집고 들어서자마자, 슬러그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리 오게, 이리 와. 자네가 만나 봐야 할 사람들이 아주 많다네!”

   슬러그혼은 스모킹 재킷(남자용의 헐거운 평상복 : 역주)을 입고 그에 어울리는 술 달린 벨벳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해리의 팔을 어찌나 꽉 잡았는지, 함께 순간이동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해리를 데리고 일부러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해리는 루나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끌고 다녔다.

   “해리, 내 옛날 제자인 엘드레드 워플을 소개하겠네. 《피의 형제들 : 뱀파이어와 함께한 나의 인생》의 저자일세. 그리고 이쪽은 그의 친구인 샹귀니.”

   땅딸막한 체격에 안경을 쓴 워플은 해리의 손을 쥐고 열정적으로 흔들어 댔다. 키가 크고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뱀파이어 샹귀니는 그저 고개만 까딱할 뿐이었다. 그는 약간 따분한 모양이었다. 그 옆에는 호기심과 흥분에 가득 찬 표정의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서 있었다.

   “해리 포터, 정말 반가워요!”

   워플리 근시 안경 너머로 해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안그래도 얼마 전에 슬러그혼 교수님께 말씀드렸다네. ‘우리 모두가 손꼽아 고대하고 있는 해리 포터 군의 전기는 왜 없는 거죠?’ 하고 말이야.”

   “아, 그러셨어요?”

   해리가 말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정말 겸손하기도 하지.”

   워플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건 진심인데…….”

   갑자기 그의 태도가 사업적으로 돌변했다.

   “그 전기를 내가 직접 쓰면 안 될까? 사람들은 포터 군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어서 안달을 하지. 진짜 난리라니까! 자네가 나와 인터뷰만 몇 번 해 줄수 있다면, 한 번에 길어야 고작 네다섯 시간 정도면 될 거라네. 그러면 몇 달 안에 책 한권을 끝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자네 쪽에서 해야 할 일은 거의 없다네. 내 약속하지. 못 믿겠다면 샹귀니에게 물어보라고……. 어이, 샹귀니, 여기 가만 있어!”

   워플이 갑자기 딱딱한 어조로 소리쳤다. 뱀파이어가 굶주린 눈을 번뜩이며 가까이 있는 여학생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고기 파이나 먹으라고.”

   워플은 그 앞을 지나가는 집요정에게서 파이를 하나 집어 들더니 샹귀니의 손에 쥐여 주고는 얼른 다시 해리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어, 해리, 자네는 얼마나 큰 돈을 벌게 될지 상상도 못할 거야…….”

   “저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해리가 딱 잘라 거절했다.

   “저기 제 친구가 있어서,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해리는 루나를 이끌고 사람들 속을 파고들었다. 방금 인기 여성 그룹 ‘운명의 세 여신’ 의 두 멤버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긴 갈색 머리가 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

   “해리, 너 여기 있었구나! 만나서 다행이다! 안녕, 루나!”

   “너 무슨 일 있었니?”

   해리가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마치 지금 막 ‘악마의 덫’ 덩굴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꼴이 엉망이었다.

   “어, 방금 도망쳐 나오는 길이야……. 내 말은, 방금 코맥과 헤어졌다는 뜻이야.”

   헤르미온느가 설명했다.

   해리가 그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

   “겨우살이 밑에서 도망쳤어.”

   “그런 녀석이랑 파티에 오다니, 당해도 싸다.”

   해리가 가차 없이 구박을 했다.

   “걔랑 오면 론이 제일 속상해 할 줄 알았지 뭐.”

   헤르미온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한동안 자카리아스 스미스랑 올까도 고민해 봤었는데, 전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스미스 자식이랑 올 생각까지 했단 말이야?”

   해리가 발끈했다.

   “그래, 그랬어. 그리고 차라리 걔를 선택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 있는 중이야. 맥클라건에 비하면 그롭이 차라리 신사라니까. 우리 저쪽으로 가자. 그럼 맥클라건이 오는지 볼 수 있을 거야. 걔는 키가 아주 크니까…….”

   세 사람은 꿀술이 담긴 잔을 각자 하나씩 집어 들고 방 저쪽 편으로 자리를 옮기다가, 거기에 트릴로니 교수가 혼자 서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루나는 트릴로니 교수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잘 있었니, 얘야?”

   트릴로니 교수가 루나를 똑바로 바라보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해리는 또다시 요리용 셰리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요즘은 내 수업에서 널 통 못 보겠구나…….”

   “네, 올해에는 피렌체 선생님 수업을 들어요.”

   루나가 말했다.

   “오, 그렇겠지.”

   트릴로니 교수가 술에 취한 채 코웃음을 치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종마 말이지. 난 그자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 이제 내가 학교로 돌아왔으니, 덤블도어 교수는 그만 그 말을 내보내야 한다고 너희들은 생각하지 않니? 안 그래? 그런데 안 그렇더구나……. 우린 수업을 나눠서 하고 있잖아……. 이건 모욕이야. 솔직히 모욕이라고 너희들 혹시 아니…….”

   다행히 트릴로니 교수는 술에 너무 취해서 해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피렌체에 대해서 계속해서 욕을 해대고 있는 동안,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곁으로 바싹 다가가서 속삭였다.

   “우린 솔직히 이야기 좀 해 보자. 너 혹시 네가 파수꾼 선발 테스트 때 했던 일을 론에게 말할 작정이니?”

   헤르미온느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넌 정말로 내가 그렇게 비열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해리가 날카롭게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 네가 맥클라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생각까지 했다면…….”

   “그건 진짜 다른 문제야.”

   헤르미온느가 도도하게 말했다.

   “나는 파수꾼 선발 테스트 때 무슨 일이 있었든 혹은 있지 않았든 간에 론에게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거야.”

   “다행이다.”

   해리는 크게 안도했다.

   “론이 또다시 흔들리면, 다음번 시합에서는 진짜 질지도 모르거든.”

   “퀴디치!”

   헤르미온느가 버럭 화를 냈다.

   “남자 애들은 온통 그 생각뿐이니? 코맥도 정작 나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안 물어보더라. 그만 해. 나는 조금 전까지 코맥 맥클라건한테 수백 가지나 되는 멋진 수비 방법에 대해서 실컷 들었다고! 이런, 안 돼, 저기 코맥이 온다!”

   헤르미온느가 어찌나 재빨리 몸을 감추는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금방 저기 있는가 싶더니, 어느새 깔깔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던 두 명의 마녀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는 사라져 버렸다.

   “헤르미온느 못 봤니?”

   잠시 후에 맥클라건이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헤치고 다가와서 물었다.

   “응, 못 봤어.”

   해리는 루나의 대화 상대가 누구라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리고는, 얼른 몸을 돌려서 루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해리 포터!”

   비로소 해리를 알아본 트릴로니 교수가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안녕하세요.”

   해리가 심드렁하게 인사했다.

   “나의 소중한 학생!”

   트릴로니는 매우 또렸한 어조로 속삭였다.

   “그 소문들! 그 무성한 이야기들! ‘선택받은 자’ 라! 물론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 징조가 무척 안 좋아, 해리……. 그런데 왜 점술 수업은 다시 안 듣는 거지? 어느 누구보다도 자네에게는 그 과목이 굉장히 중요한데!”

   “아, 사이빌. 선생들은 모두 자기 과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이죠!”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슬러그혼이 트릴로니 교수의 옆에 불쑥 나타났다. 그는 벌겋게 술에 취한 얼굴로 벨벳 모자를 약간 삐딱하게 쓴 채, 한 손에는 꿀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고기 파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마법약에 있어서 이렇게 타고난 천재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 같소!”

   슬러그혼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이 해리를 쳐다보았다.

   “정말 타고났단 말이지. 이 애 엄마도 그랬거든! 사이빌, 내가 자신있게 말하지만, 이렇게 실력 있는 학생은 별로 가르쳐 본 적이 없소. 심지어 세베루스도…….”

   그리고는 슬러그혼이 한쪽 팔을 쭉 뻗자 그 손에 이끌려 난데없이 스네이프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해리는 기겁을 했다.

   “이제 그만 숨어 다니고 이리 와서 우리와 함께 어울리도록 하게나, 세베루스!”

   슬러그혼이 기분 좋게 딸꾹질을 하며 말했다.

   “나는 지금 해리의 놀라운 마법약 만들기 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네. 물론 일부는 자네의 덕분이겠지. 자네가 해리를 5년이나 가르쳤으니 말일세!”

   스네이프는 어깨를 감싼 슬러그혼의 팔에 꼼짝없이 붙잡힌 채, 까만 눈을 가늘게 뜨고 매부리코 아래로 해리를 내려다보았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저는 포터에게 뭔가를 가르쳤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그래? 그렇다면 이건 타고난 재능이구먼!”

   슬러그혼이 감탄을 했다.

   “첫 시간에 해리가 나에게 제출한 ‘살아있는 죽음의 약’ 을 자네도 보았어야만 했는데……. 첫 번째 실험에서 그렇게 완벽한 마법약을 만들어 낸 학생은 처음이었네. 세베루스, 자네라도 그러지는 못했을걸.”

   “정말인가요?”

   스네이프가 여전히 해리를 꿰뚫을 듯이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해리는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해리가 어떻게 마법약에 대한 재능을 갑자기 발휘하게 되었는지 스네이프가 뒤를 캐게 되는 사태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다른 과목들은 뭘 듣고 있다고 했지?”

   슬러그혼이 물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마법, 변신술, 약초학…….”

   “한마디로 모두 다 오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목들이군.”

   스네이프가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네, 저는 오러가 되고 싶어요.”

   해리가 꿋꿋하게 대답했다.

   “자네는 틀림없이 훌륭한 오러가 될 걸세!”

   슬러그혼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난 네가 꼭 오러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해리.”

   루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오러들은 로르팡 음모의 일부라고. 난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러들은 어둠의 마법과 잇몸 병을 결합시켜서 마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활동 중이야.”

   해리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그 바람에 꿀술이 절반쯤 코로 넘어갔다. 정말 이것만으로도 루나를 데려온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해리가 옷을 다 적신 채 황급히 술잔에서 입술을 떼고 캑캑 기침을 하면서도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데, 그의 눈앞에 더욱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구스 필치가 드레이코 말포이의 귀를 붙잡아 끌고 오고 있었던 것이다.

   “슬러그혼 교수님.”

   필치가 턱 부분을 파르르 떨면서 씩씩거렸다. 툭 튀어나온 그의 두 눈은 반드시 범행을 밝혀내겠다는 광기로 번득였다. 

   “이 녀석이 위층 복도에 숨어 있는 걸 잡았는데, 교수님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고 박박 우기는군요. 출발이 좀 늦었다면서 말이지요. 교수님이 이 녀석을 초대하셨습니까?”

   말포이는 사나운 표정으로 필치의 손을 뿌리쳤다.

   “그래요. 난 초대받지 못했어요!”

   말포이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몰래 파티장으로 들어오려고 했어요! 이제 만족해요?”

   “아니, 만족 못한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필치의 얼굴은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이제 넌 딱 걸렸어! 교장 선생님께서는 허가 없이는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씀하신 거 못들었어? 엉?”

   “이제 됐네, 아구스, 괜찮아.”

   슬러그혼이 한 손을 흔들며 말렸다.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파티에 오고 싶어 그러는 게 뭐 대단한 범죄라고. 딱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도록 함세. 드레이코, 너도 파티에 참석해도 좋다.”

   필치의 얼굴이 분노와 실망으로 일그러지는 것은 당연이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도대체 왜 말포이까지 저렇게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해리는 의아했다. 그리고 어째서 스네이프는 저런 눈빛으로 말포이를 노려보는 것일까?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약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한…… 하지만 그게 말이 될까?

   그러나 해리가 방금 본 광겨을 미처 머릿속으로 정리하기도 전에 필치가 휙 돌아서더니 씩씩거리며 가 버렸다. 말포이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슬러그혼의 너그러운 처사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스네이프도 다시 심중을 헤아릴 수 없는 태연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무것도 아닐세.”

   슬러그혼이 말포이의 감사 인사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쨌든 자네 할아버지와도 아는 사이였고…….”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교수님을 칭찬하셨어요.”

   말포이가 재빨리 말했다.

   “교수님이야말로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최고의 마법 약사라고 하셨지요.”

   해리는 말포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말포이의 아부가 아니었다. 말포이가 스네이프에게 아부를 떠는 꼴은 이미 지겹게 봐 왔다. 이상한 것은 말포이가 왠지 아픈 사람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말포이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이었는데, 그의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안색도 눈에 띄게 어두워 보였다.

   “드레이코, 잠깐 나와 이야기 좀 하자.”

   갑자기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오, 세베루스.”

   슬러그혼이 다시 딸꾹질을 하며 말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때가 아닌가. 너무 심하게 다루진 말게나.”

   “저는 그의 기숙사 사감입니다. 학생들을 엄하게 대할지 말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스네이프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날 따라오게, 드레이코.”

   스네이프가 앞장을 서자, 말포이는 뿌루퉁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해리는 잠시 망설이며 서 있다가 말했다.

   “금방 돌아올게, 루나. 어…… 화장실 좀.”

   “알았어.”

   루나가 명랑하게 말했다.

   사람들 틈을 헤치고 재빨리 걸어가는 해리의 귀에, 로트팡 음모 어쩌고 하면서 트릴로니 교수에게 다시 설명을 시작하는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트릴로니 교수는 진짜로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일단 파티장에서 빠져나오자, 주머니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어 덮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복도에는 쥐 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힘든 일이라면 말포이와 스네이프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해리는 복도를 달려 내려갔다. 다행히도 뒤쪽 슬러그혼의 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말소리와 음악소리가 발소리를 가려 주었다. 아마 스네이프는 말포이를 지하에 있는 자기 방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슬리데린의 휴게실로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해리는 교실문마다 차례차례 귀를 대보면서 복도를 따라 달려 내려갔다. 천만다행으로 복도 제일 끝에 있는 교실의 열쇠 구멍 앞에 웅크리고 앉았을 때,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된다, 드레이코. 학교에서 퇴학이라도 당하면…….”

   “저는 그 일과 아무 관련도 없다니까요? 그럼 됐잖아요?”

   “부디 네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건 아주 어리석고 한심한 짓이었거든. 넌 이미 그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어.”

   “도대체 누가 절 의심한다는 거죠?”

   말포이가 화를 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전 절대 안 했어요, 알겠어요? 그 케이티란 계집애한테 아무도 모르는 적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요. 그런 눈으로 절 보지 마세요! 저는 교수님께서 뭘 하고 계시는지 다 알고 있어요! 전 바보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을걸요! 전 교수님을 막을 수 있다고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스네이프가 조용히 말했다.

   “오…… 벨라트릭스 이모가 너에게 오클러먼시를 가르쳤구나. 도대체 네 주인에게까지 감추려고 하는 생각이 뭐냐, 드레이코?”

   “저는 그분께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아요! 단지 교수님이 끼어드는 게 싫을 뿐이에요!”

   해리는 열쇠 구멍에 더욱더 귀를 바싹 가져다 대었다. 말포이가 언제나 그토록 존경심을 보이고 심지어 좋아하기까지 하던 스네이프에게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그래서 이번 학기 내내 나를 피해 다녔느냐? 내가 간섭할까 봐 두려워서? 드레이코, 이것만 알아둬라. 만약 너 말고 다른 누가 몇 번이나 내 사무실로 오라는 나의 지시를 듣고도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러니까 저에게 징계를 내리세요! 덤블도어에게 일러바치라구요!”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또다시 침묵이 흐르더니,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그 두가지 모두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이라는 걸 넌 너무나 잘 알고 있잖니?”

   “그럼 자꾸 저더러 교수님 방으로 찾아오라는 말씀은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좋을걸요!”

   “내 말을 잘 듣거라.”

   스네이프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는 바람에 해리는 열쇠 구멍에 더욱더 귀를 바싹 갖다 대야만 했다.

   “난 너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널 보호해 주겠다고 네 어머니와 맹세했다. ‘깨뜨릴 수 없는 맹세’ 를 했단 말이다, 드레이코!”

   “그렇다면 그 맹세를 깨뜨릴 수밖에 없겠네요. 왜냐하면 전 교수님의 보호 따윈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이건 제 일이에요. 이건 그분께서 저에게 주신 일이고, 저는 그 일을 수행하는 중이에요. 저에겐 나름대로 계획이 있고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그냥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 계획이란게 뭐냐?”

   “교수님께선 아실 필요 없어요!”

   “네가 뭘 어떻게 하려는지 나에게 말해 줘야 내가 널 도와 줄 수가 있잖니!”

   “고맙지만 절 도와줄 사람은 충분해요. 전 혼자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오늘 밤에 너는 분명히 혼자였어. 망을 보거나 뒤를 봐줄 사람도 없이 혼자서 복도를 돌아다니는 건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건 아주 초보적인 실수였다고.”

   “교수님께서 크레이브나 고일에게 나머지 공부를 시키지만 않았다면, 걔들과 같이 다녔을 거예요!”

   “목소리를 낮추거라!”

   흥분한 말포이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스네이프가 쏘아붙였다.

   “네 친구들인 크레이브와 고일이 어둠의 마법 방어술 O.W.L. 을 통과할 생각이라면, 지금처럼 공부해서는 어디…….”

   “그게 무슨 대수죠?”

   말포이가 대들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이라니. 그게 다 웃기는 장난 아니에요? 그냥 쇼잖아요? 우리들 중 어느 누구에게 어둠의 마법을 방어할 필요가 있냐고요?”

   “하지만 그건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쇼야, 드레이코!”

   스네이프가 야단을 쳤다.

   “네가 그 쇼를 할 줄 몰랐더라면 지난 몇 년동안 과연 어디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제 내 말을 좀 들어 봐! 넌 부주의하게 밤에 돌아다니다가 붙잡혔어! 게다가 크레이브나 고일 같은 녀석들의 도움을 믿고 있다가는…….”

   “그 애들만이 아니에요! 제 편이 또 있다고요! 걔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에요!”

   “그럼 나도 믿어 봐라. 내가…….”

   “무슨 꿍꿍인지 다 알아요! 제 영광을 빼앗고 싶은 거죠?”

   또다시 침묵이 흐르더니, 스네이프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꼭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말하는구나. 네 아버지가 붙잡혀 감옥에 가셨으니 네가 몹시 화가 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순식간에 해리의 머릿속에 위험 신호가 켜졌다. 문 저쪽에서 말포이의 발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리면서 말포이가 뛰쳐 나오더니 복도를 저벅저벅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열려 있는 슬러그혼 교수의 방문 앞을 그대로 지나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해리는 감히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스네이프가 천천히 교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지으며 파티장으로 돌아갔다.

   해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투명 망토를 뒤집어쓴 채 꼼짝도 못하고 복도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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