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 (해리포터 시리즈 제7탄)
조앤 K. 롤링 지음 /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펴냄
원제 -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제 1장 마왕의 비상
달빛이 비치는 좁은 오솔길, 두 남자가 약간 거리를 두고 허공에서 불현듯 나타났다. 그들은 상대방의 가슴에 지팡이를 겨눈 채, 잠깐 동안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곧 서로의 정체를 확인한 그들은 지팡이를 다시 망토 속에 집어넣고 같은 방향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소식이라도?”
두 사람 중에 키가 더 큰 자가 물었다.
“최고의 소식을 가져왔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오솔길 왼쪽에는 낮게 자란 야생 가시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고, 오른쪽에는 말끔하게 손질한 산울타리가 높이 솟아 있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의 긴 망토 자락이 발목 근처에서 펄럭거렸다.
“하마터면 늦는 줄 알았어”
악슬리가 말했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나뭇가지가 달빛을 가릴 때마다 흐릿한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까다롭더군. 부디 그분께서 만족하시면 좋겠는데. 그런데 자네 말투로 보니 꽤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자신하는가 보군?”
스네이프는 성의 없이 그저 고개만 까닥했다. 이윽고 오른쪽으로 돌아선 두 사람 앞에 저택으로 이어지는 진입로가 나타났다. 역시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높은 산울타리는, 길을 가로막고 우뚝 선 화려한 문양의 철 대문을 지나서 안쪽으로 한없이 이어져 있엇다. 하지만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앗다. 대신 아무 말 없이 인사를 하듯 왼쪽 팔을 번쩍 치켜들더니 마치 어두운 철문이 연기로 변해 버린 것처럼 곧장 통과해 버렸다.
빽빽이 들어선 주목나무 울타리가 두 사람의 발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때 오른편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악슬리는 재빨리 지팡이를 다시 뽑아들고 동행자의 머리 위로 겨누었다. 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새하얀 공작새였다. 공작새는 산울타리 위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날개를 활짝 펴고 걷고 있엇다.
“루시우스 그놈은 항상 호화판으로 살았지. 공작새라니....”
악슬리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지팡이를 다시 망토 속에 넣었다.
곧게 뻗은 진입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으리으리한 저택이 어둠 속에 우뚝 서 있었다. 마름모꼴 유리를 끼운 아래층 창문에서 불빛들이 반짝였고, 산울타리 너머 어두운 정원 어딘가에선 분수가 물을 내뿜고 있었다. 스네이프와 악슬리가 현관문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는 자갈이 자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현관문이 저절로 활짝 열렸다. 하지만 문을 열어 준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불이 밝혀진 현관 복도는 아주 넓고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는데, 대리석 바닥 대부분이 근사한 양탄자로 뒤덮여 있었다. 벽에 걸린 파리한 얼굴의 초상화들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스네이프와 악슬리를 계속 주시했다. 두 사람은 옆방으로 통하는 육중한 나무 문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마침내 스네이프가 청동 손잡이를 돌렸다.
응접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긴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방에 있던 다른 가구들은 아무렇게나 벽 쪽으로 밀쳐져 있었다. 금박을 입힌 거울이 놓인 웅장한 대리석 벽난로에서는 장작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희미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스네이프와 악슬리는 잠깐 동안 문간에서 머뭇거렸다. 하지만 어둠에 차츰 익숙해지자, 방 안에서 가장 기묘한광경 쪽으로 시선이 저절로 올라 갔다. 분명 의식을 잃은듯한 한 사람이 테이블 위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채, 천천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던 것이다.마치 투명한 밧줄이 그자를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거울과 그 밑에 놓인 테이블의 매끄러운 표면에 고스란히 비치고 있엇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 이상한 광경을 쳐다보지 않았다. 딱 한 명,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바로 밑에 앉아 있는 창백한 얼굴의 젊은이만 예외였다. 그는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듯, 거의 1분마다 힐끗힐끗 위를 올려다 보았다.
“악슬리, 스네이프”
테이블 머리 쪽에서 날카롭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마트면 늦을 뻔했군.”
목소리의 주인공은 벽난로 바로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방금 방에 들어온 사람들 눈에는 한동안 검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점차 드러났다.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고, 콧구멍은 가느다랗게 뜷렸으며,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진 새빨간 눈이 번뜩거리는 것이, 꼭 뱀 같은 얼굴이었다. 그의 낮빚이 어찌나 창백했던지 마치 진주처럼 뿌연 광택을 발하는 것 같았다.
“세베루스, 이리로."
볼드모트가 자신의 바로 오른쪽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악슬리, 돌로호브 옆에.”
두 사람은 각기 지정된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지만 테이블에 둘러앉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스네이프 만 뒤쫒았다. 볼드모트가 제일 먼저 말을 건 사람도 바로 그였다.
“어떻게 됐지?
“주인님. 불사조 기사단은 다음 주 토요일 해질 녘에 해리포터를 현재의 은신처에서 이동시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눈에 띄게 술렁였다. 어떤 이는 몸을 꼿꼿이 세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모든 이의 시선은 오직 스네이프와 볼드모트에게로 쏠려 있었다.
“토요일... 해질 녘이라...”
볼드모트가 되뇌였다.
그러더니 새빨간 눈으로 스네이프의 까만 눈동자를 뜷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그 눈빛이 어찌나 강렬하고 무시무시하던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 중 몇몇은 슬며시 눈을 돌렸다. 자신들도 그 소름 끼치는 시선을 마주하게 될까 봐 벌벌 떠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어떤 동요도 없이 볼드모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입술이 없는 볼드모트의 입이 살짝 벌어지면서 미소 비슷한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좋아. 훌륭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전에 말씀드렸던 그 정보원으로부터 얻었습니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주인님.”
악슬리가 긴 테이블 저쪽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볼드모트와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인님. 제가 들은 정보는 좀 다릅니다.”
악슬리가 말을 멈추고 기다렸다. 하지만 볼드모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악슬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러인 도울리쉬가 무심결에 흘린 정보에 따르면, 포터가 30일까지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녀석이 만 열일곱 살이 되기 전날 밤까지 말입니다.”
스네이프가 씩 미소를 지었다.
“제 정보원이 저에게 말하길,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가짜 정보를 흘릴 거라고 했는데, 바로 그건가 봅니다. 도울리쉬는 틀림없이 혼동 마법에 걸렸을 것입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요. 그는 이미 마법에 잘 걸리기로 유명한 자입니다.”
“주인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도울리쉬는 꽤 확신이 있어 보였습니다.”
악슬리가 다시 주장했다.
“그자가 혼동 마법에 걸렸다면, 당연히 그렇겠지.”
스네이프가 대꾸했다.
“악슬리. 내가 장담하는데, 오러 사무국은 더 이상 해리포터의 신변 보호문제에 관여하지 못할거야. 불사조 기사단은 우리가 마법부 내부까지 침투했다고 믿고 있거든.”
“그렇다면 기사단이 한 가지는 맞혔구먼, 안 그래?”
악슬리 근처에 앉아 있던 한 땅딸막한 남자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테이블 여기저기에서도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머리위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사람을 향해 옮아갔다.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주인님....”
악슬리가 끈질기게 말을 이었다.
“도울리쉬는 그 녀석을 이동시키는데 모든 오러들이 총동원될 거라고....”
그러나 볼드모트가 크고 하얀 손을 들어 올리자, 악슬리는 당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다시 스네이프를 향해 몸을 돌리는 광경을 분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녀석을 어디에 숨길 작정인가?”
“불사단 기사단 중 한 명의 집이라고 합니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정보원에 따르면 그곳은 기사단과 마법부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보호를 다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 일단 그 녀석이 그곳에 들어가면 붙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질 것 같습니다. 주인님. 물론 다음 주 토요일까지 마법부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만약 마법부가 무너지면 우리는 상당수 마법들을 알아내어 해제한 다음에 나머지 마법들도 뜷고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어떤가, 악슬리?”
볼드모트가 테이블 끝 쪽을 향해 물었다. 그의 새빨간 눈이 벽난로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빛났다.
“다음 주 토요일까지는 마법부가 무너지겠지?”
다시 한 번 모든 사람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악슬리는 어깨를 쫙 폈다.
“주인님, 제가 그 문제와 관련해서 아주 좋은 소식을 갖고 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참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 마침내 파이어스 씨크니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거는데 성공했습니다.”
악슬리 주위에 앉은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감탄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의 옆에 앉아 있던 긴 쭈그렁바가지처럼 생긴 돌로호브는 악슬리의 등을 탁탁 두드리기까지 했다.
“이제 시작이군.”
볼드모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씨크니스 한 명뿐이지 않은가? 내가 행동을 개시하기 전까지 우리 쪽 사람들이 완전히 스크림저 주변을 장악해야만 한다. 장관을 한 번에 처치하지 못하면, 나는 아주 한참을 후퇴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인님.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의 부장인 씨크니스는 정기적으로 장관을 직접 만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마법부 부서의 부장들을 만납니다. 이제 그런 고위 관료가 우리 손에 있으니 다른 관료들을 예속 시키기가 쉬워질 것이고, 그러면 다 함께 스크림저를 끌어내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친구 씨크니스가 다른 관료들을 포섭하기 전에 발각되는 일이 없다면 말이지.”
볼드모트가 말했다.
“어쨋든 다음 주 토요일까지 마법부가 내 손아귀에 들어올것 같진 않군. 일단 녀석이 은신처에 들어가면 쉽게 건드릴 수 없을 테니, 녀석이 이동하는 도중에 해치워야겠어.”
“그런 점에 있어서는 우리가 유리합니다. 주인님.”
악슬리가 얼른 나섰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볼드모트에게 인정받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현재 마법 교통부에도 우리 쪽 사람들을 여러 명 심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포터가 순간이동이나 플루 가루 네트워크를 이용한다면 즉시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녀석은 그 어느 것도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스네이프가 딱 잘라 말했다.
“불사조 기사단은 마법부에서 관리하거나 통제하고 있는 그 어떤 운송 수단도 피하고 있습니다. 마법부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잘됐군.”
볼드모트가 말했다.
“그렇다면 녀석은 공공연하게 이동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붙잡기도 훨씬 더 쉽겠지.”
볼드모트는 이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사람을 또다시 올려다보았다.
“녀석의 일은 내가 직접 맡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리 포터가 관련된 문제마다 너무 실수가 많았다. 그중 일부는 나의 실수였어. 포터가 여태껏 살아 있는 것은 녀석의 공이라기보다는 내가 실수했기 때문이다.”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볼드모트를 쳐다보았다. 모두 혹시나 해리 포터가 계속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이 자신에게 쏠릴까 봐 두려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그자들에게 말하기 보다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머리 위에 의식 없는 상태로 떠 있는 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부주의했어. 그래서 완벽한 계획이 아니면 모두 좌절시키고 마는 훼방꾼들인 운과 우연이 번번이 방해를 놨지. 히지만 이제 난 더 많은 걸 알고 있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내가 바로 해리 포터를 죽일 그 사람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통과 절망에 못 이겨 내지르는 처절한 절규였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밑을 내려다보았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발밑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윔테일.”
볼드모트가 조금도 변함없이 침착하고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몸을 향하고 있었다.
“죄수를 조용히 시키라고 네게 이르지 않았느냐?”
“네, 주, 주인님.”
테이블 중간쯤에서 조그만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의 몸이 어찌나 푹 꺼져 있던지 얼핏 보면 그가 앉아 있는 자리가 비어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제 그는 황급히 의자에서 기어 내리더니 허둥지둥 방을 나가 버렸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이상한 은빛 섬광만이 남았다.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이제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볼드모트가 바짝 긴장한 추종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가령, 내가 해리 포터를 죽이러 갈 때에는 그 전에 너희 중 한사람으로부터 지팡이를 빌려야 할 것이다.”
볼드모트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에는 충격만이 가득했다.
마치 그들의 팔 한짝을 빌려야겠다는 선언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누구 자원자 없느냐?”
볼드모트가 물었다.
“어디 보자.... 루시우스, 너는 더 이상 지팡이를 갖고 다닐 이유가 없을텐데.”
루시우스 말포이가 고개를 들었다. 벽난로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노랗게 질려 있었다. 두 눈은 푹 꺼지고 눈 밑에는 시커멓게 그늘이 져 있었다. 그가 쉰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에? 주인님?”
“네 지팡이를 달란 말이다. 루시우스.”
“저.....저는.....”
루시우스 말포이가 옆에 앉은 부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금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부인은 남편만큼이나 창백한 얼굴을 하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테이블 밑으로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손목을 잠깐 잡았다 놓았다. 그러자 말포이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지팡이를 꺼내서 볼드모트에게 전달했다. 볼드모트는 그의 새빨간 눈 앞에 지팡이를 바싹 갖다 대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었으로 만들었느냐?”
느뤂나무입니다. 주인님.“
루시우스 말포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속에 넣은 것은?”
“용입니다. 용의 심장을 넣었습니다.”
“좋아.”
볼드모트는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더니 서로 길이를 비교해 보았다. 그때 루시우스 말포이가 무심결에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자세를 취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기 지팡이를 바친 대신 볼드모트의 지팡이를 받을 거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볼드모트가 그런 동작을 놓칠 리가 없었다.
“루시우스, 내 지팡이를 너에게 달라는 거냐? 내 지팡이를?”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은 키득키득 숨죽여 웃었다.
“루시우스, 난 너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느냐? 그런데 최근에 너와 네 가족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는 걸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내가 네 집에 머물러 있어서 기분이 나쁜게냐, 루시우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루시우스...”
볼드모트의 잔인한 입이 더 움직이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낮은 목소리가 쉭쉭거리는 것 같았다. 쉭쉭 소리가 점점 커지자, 마법사 한두명은 부르르 몸서리가 쳐지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뭔가 육중한 것이 테이블 밑 마루위를 스르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거대한 뱀이 모습을 나타내어 볼드모트의 의자 위로 천천히 기어올랐다. 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이 계속해서 기어오르더니, 볼드모트의 어깨를 휘감았다. 뱀의 목은 거의 성인 남자의 허벅지 만큼이나 굵었다.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뱀의 눈은 한시도 깜박이지 않았다. 볼드모트는 여전히 루시우스 말포이를 노려보며,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는 무심히 뱀을 쓰다듬었다.
“어째서 너희 말포이 집안 사람들은 자기들의 역할에 대해 그토록 못마땅해하는 것처럼 보이느냐? 나의 귀환, 내 힘의 부활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 너희 입으로 소망한다고 공언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물론입니다. 주인님.”
루시우스 말포이가 황급히 대답했다. 윗입술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는 그의 손이 와들와들 떨렸다.
“저희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랐습니다. 지.....지금도 그렇습니다.”
루시우스 말포이의 왼쪽에 앉아 있는 그의 아내는 볼드모트와 뱀을 외면한채 뻣뻣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아들 드레이코는 줄곧 머리 위에 떠 있는 의식 잃은 몸뚱이를 쳐다보고 있다가 볼드모트 쪽을 한 번 재빨리 쳐다보더니 시선을 마주칠까 두려워서 얼른 얼굴을 돌렸다.
“주인님.”
테이블 중간쯤에 앉아 있던 검은 머리의 여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 감정을 잔뜩 억누른 듯한 목소리 였다.
“주인님을 저희 집안의 저택에 모시는 것은 커다란 영광입니다.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머리가 검고 눈꺼플이 두꺼운 그녀는, 옆에 앉은 여동생 나시사와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태도와 행동까지도 매우 달랐다. 나시사가 뻣뻣하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엇던 반면, 벨라트릭스는 그저 말만으로는 그녀가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지 표현하기에 모자라는 듯, 볼드모트를 향해 잔뜩 몸을 기울이고 있엇다.
“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단 말이지.”
볼드모트가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기울인 채,벨라트릭스를 쳐다봤다.
“벨라트릭스, 네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아주 의미심장하군.”
그녀의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두 눈에 기쁨의 눈물이 고였다.
“저는 오직 진실만을 말한다는 걸 주인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 큰 기쁨이 없다..... 내가 듣기론 이번 주에 너희 집안에 커다란 경사가 있었다던데, 그보다도 더 기쁘단 말인가?”
그녀가 입을 헤벌리고 볼드모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네 조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벨라트릭스. 그리고 루시우스와 나시사, 너희 두 사람의 조카이기도 하지. 바로 얼마전에 늑대인간 리무스 루핀과 결혼을 했다면서. 무척이나 자랑스럽겠군.”
테이블 주위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아주 재미있다는 듯 한 표정을 주고받았다. 어떤 이는 깔깔거리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기도 했다. 이 갑작스런 소란에 약이 오른 커다란 뱀이 입을 딱 벌리고 신경질적으로 쉭쉭소리를 냈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벨라트릭스와 말포이가족이 모욕당하는 꼴을 보고 너무 신이 났던 것이다. 방금전까지 기쁨에 겨워 달아올랐던 벨라트릭스의 얼굴은 이제 흉하게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 계집애는 저희 조카가 아닙니다. 주인님!”
웃음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벨라트릭스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저희는, 그러니까 나시사와 저는 동생 안드로메다가 잡종과 결혼한 이후로 눈길 한 번 준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계집애와 저희는 아무련 관련이 없습니다. 그 계집이 어떤 짐승이랑 결혼했든 저희가 알 바가 아닙니다.
“드레이코, 너는 무슨 할말이 없느냐?”
볼드모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시끄러운 야유와 조소 속에서도 똑똑히 들렸다.
“그 애새끼들의 보모 노릇이라도 하려느냐?”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공포에 질려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계속 자기 무릎만 내려다보고 있자, 이번에는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살짝 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무표정하게 맞은편 벽을 응시했다.
“그만.”
볼드노트가 성난 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만.”
일순간 웃음소리가 싹 사라졌다.
“우리의 가장 유서깊은 마법사 가문들 중에 상당수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다.”
볼드모트가 말을 이었다. 벨라트릭스는 숨도 쉬지 못하고 애원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건강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 쓸데없는 가지를 쳐내야만 하지 않겠느냐? 나머지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부는 잘라 버리도록 해라.”
“네, 주인님.”
벨라트릭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다시 감사의 눈물이 고였다.
“기회가 되는 대로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머잖아 기회가 올 것이다.”
볼드모트가 말했다.
“너희 집안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우리는 오직 진짜 순수한 혈통을 지닌 자만 남을 때까지 우리를 병들게 하는 암덩어리들을 계속해서 잘라 낼 것이다.....”
볼드모트는 루시우스 말포이의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매달려서 천천히 돌고 있는 사람을 향해서 곧장 겨누더니, 살짝 흔들었다. 갑자기 그 사람이 신음소리와 함께 깨어나더니 보이지 않는 결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우리의 손님이 누군지 알아보겠느냐, 셀베루스?”
볼드모트가 물었다. 스네이프가 눈을 들어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마치 호기심을 드러내도 좋다는 허락이라도 받은 듯이, 죽음을 먹는 자들 모두가 그 포로를 올려다 보았다. 빙빙 돌고 있던 그 사람의 얼굴이 마침내 벽난로의 불빛을 향하게 되었을 때, 잔뜩 겁에 질린 여자의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베루스! 날 좀 도와줘!”
“아,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그 포로는 다시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너, 드레이코는 어떠냐?”
볼드모트가 지팡이를 들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뱀의 콧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드레이코는 경련을 일으키듯이 마구 머리를 흔들었다. 그 여자가 깨어난 이후로, 드레이코는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는 저 여자의 수업을 듣진 않았겠지.”
볼드모트가 말을 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오늘 밤 이 자리에는 채러티 벌베이지가 함께하고 있다. 그녀는 최근까지 호그와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
테이블 주위에서 이제 알겠다는 듯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어깨가 넓고 등이 구부정하고 이빨이 뾰족한 한 여자가 쇳소리를 내며 떠들어 댔다.
“맞습니다..... 벌베이지 교수는 마녀와 마법사들의 자식들에게 머글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머글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입니다.....”
죽음을 먹는 자들 중 한명이 마룻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채러티 벌베이지의 얼굴이 다시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갔다.
“세베루스....제발....제발....”
“조용.”
볼드모트가 또다시 루시우스 말포이의 지팡이를 까딱 움직였다. 그러자 채러티가 재갈이라도 물린 듯,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마법 세계 아이들의 정신을 타락시키고 오염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벌베이지 교수는 지난주 <예언자 일보>에 잡종들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글까지 썻다. 그리고 마법 세계는 우리의 지식과 마법을 훔친 이자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했지. 순수혈통의 감소야말로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하면서..... 이 여자는 우리 모두가 머글들과 짝짓기를 바럴 것이다. 혹은 분명이 늑대인간과도.....”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볼드모트의 목소리에서는 분노와 멸시를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세 번째로, 채러티 벌베이지의 얼굴이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갔다.그녀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쏟아지더니 머리카락 속으로 흘러내렸다. 스네이프는 감정이라곤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다시 돌아갔다.
“아바다 케다브라.”
초록색 불빛이 번쩍하더니 방 안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채러티가 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테이블이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몇몇 죽음을 먹는 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드레이코는 의자에서 마루로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다.
“저녁식사다. 내기니.”
볼드모트가 조용히 말했다. 커다란 뱀이 몸을 흔들며 그의 어깨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반들거리는 나무 테이블 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