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장 왕자 이야기
해리는 그저 스네이프를 멍하니 내려다보면서, 그의 곁에 무릎을 끓고 앉아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날카롭고 싸늘한 목소리가 너무나 가깝게 들려왔기 때문에, 해리는 볼드모트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플라스크를 손에 꼭 쥔채 후다닥 일어낫다.
볼드모트의 목소리는 벽과 바닥에서부터 울려 나오고 있었다. 해리는 그가 호그와트 인근 지역 전체를 향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앗다. 호그스미드의 주민들과 성안에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그가 치명타를 날릴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목덜미에 숨결이 느껴질 만큼이나 바로 그들 곁에 서 있는 듯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날카롭고 싸늘한 목소리가 말했다.
“볼드모트 경은 용기를 존중할 줄 안다. 하지만 그대들은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 이대로 계속해서 나에게 저항한다면 그대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모두 죽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흘러 떨어지는 마법사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두 크나큰 손실이요 낭비이다.
볼드모트 경은 자비롭다. 나는 나의 군사들에게 즉각 후퇴할 것을 명령한다.
그대들에게 한 시간을 주겠다. 그동안 너희 전사자들을 예를 갖춰 매장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라.
이제부터 해리 포터, 바로 너에게 말하겠다. 너는 직접 나와 맞서지 않고, 네 친구들이 너를 위해 목숨을 잃도록 그냥 내버려 두엇다. 나는 금지된 숲에서 한 시간 동안 기다릴 것이다. 만약 한 시간 후에도 네가 나를 찾아와서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전투가 재개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이 싸움에 참여할 것이다. 해리 포터, 나는 너를 찾아낼 것이고 너를 숨기려고 하는 자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를 가리지 않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조리 벌할 것이다. 한 시간이다.“
론과 헤르미온느를 두 사람 모두 해리를 바라보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자의 말은 듣지마, 전부 다 괜찮을 거야.”
론이 말했다.
헤르미온느도 정신없이 떠들었다.
“어서 성.........성으로 돌아가자. 그 사람이 숲에 가 있다면 우린 새로운 작전을 짜야 해!”
헤르미온느는 스네이프의 시신을 힐끗 쳐다보더니, 서둘러 통로 입구로 달려갔다. 론도 그녀를 뒤쫓아 갔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집어 들고는 스네이프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기분을 알 수가 없었다. 오직 스네이프가 살해당한 그 방식과, 그런 짓이 행해진 이유에 대한 엄청난 충격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들은 다시 통로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해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론과 헤르미온느도 여전히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리는 볼드모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너는 직접 나와 맞서지 않고, 네 친구들이 너를 위해 목숨을 잃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금지된 숲에서 한 시간 동안 기다릴 것이다.....한 시간이다...........
성 앞은 잔디밭에는 여기저기에 작은 무리들이 흩어져 있는것 같았다. 동이 트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주위는 아직도 칠흑같이 어두웠다. 세 사람은 서둘러서 돌계단으로 향했다. 작은 보트만 한 통나무 하나가 그들앞에 버려져 있었다. 그것 이외에는 그롭이나 그를 공격했던 거인의 흔적은 없었다.
성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이제는 번쩍이는 광선이나 굉음도, 비명소리나 고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텅 빈 현관 복도에 깔린 포석들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산산조각난 나뭇조각과 대리석 파편들과 함게 에메랄드 알들이 여전히 바닥에 흩어져 있엇다. 계단의 난간은 일부가 완전히 날아간 상태였다.
“다들 어디 있는 거지?”
헤르미온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론이 대연회장으로 앞장서서 들어갔다. 해리는 그만 연회장 입구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기숙사 테이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연회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생존자들이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 무리지어 서 있었다. 높은 단상 위에서는 폼프리 부인과 도우미들이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엇다. 그중에는 피렌체도 있엇는데, 그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일어설수도 없는 듯 자리에 누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편 사망자들은 연회장 한가운데에 일렬로 놓여 있었다. 해리는 프레드의 시신을 볼 수 없었는데,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지는 프레드의 머리맡에 무릎을 끓고 있었고, 위즐리 부인은 그의 가슴 위에 엎드려서 온몸을 떨고 있었다. 위즐리 씨는 폭포처럼 눈물을 쏟으며 부인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지니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껴안는 것을 지켜보앗다. 지니의 얼굴은 퉁퉁 붓고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한편 론은 플뢰르, 퍼시에게 다가갔고, 퍼시는 한쪽 팔로 론의 어깨를 감쌋다. 지니와 헤르미온느가 나머지 가족들의 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해리는 프레드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또 다른 시신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루핀과 통스의 시신이었다. 창백하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들의 얼굴은, 얼핏 보면 마치 마법에 걸린 어두운 천장 아래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듯 했다.
일순간 대연회장이 아득하게 멀어지면서,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숨이 탁 막혔다. 다른 시신들을, 그를 위해 목숨을 잃은 또 다른 사람들을 차마 눈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위즐리 가족과 함께 잇는 것도 견딜 수 없었고, 그들의 눈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가 자신의 목숨을 포기했더라면, 프레드는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해리는 휙 돌아서서 대리석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루핀, 그리고 통스........그는 차라리 아무런 감정도 느낄수 없기를 바랐다..........심장이며 내장, 자신의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어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
성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유령들조차 대연회장에서 애도하는 모임에 동참한 듯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마지막 기억들이 담긴 수정 플라스크를 꼭 움켜쥔 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교장실을 지키는 이무기 석상 앞에 도착할때 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암호는?”
“덤블도어!”
너무나도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였기에, 해리는 다짜고짜 그 이름을 외쳤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이무기가 옆으로 비켜서더니 그 뒤로 나선형 계단이 나타났다.
해리가 둥근 교장신 안으로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가 보니, 뭔가 달라져 있엇다. 벽에 빙 둘러 걸려있는 초상화들이 모두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 방에 남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교장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기 위해서, 밖으로 뛰쳐나가 성의 복도에 줄지어 걸려있는 그림들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해리는 교장 선생님의 의자 바로 뒤에 걸려있는 덤블도어의 빈 액자를 절망적으로 흘끗 바라본 다음 돌아섰다. 돌 펜시브는 늘 있던 대로 캐비닛 속에 놓여 있었다. 해리는 펜시브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장자리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는 그 넓적한 대야 속에 스네이프의 기억을 쏟아 부었다.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달아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설사 스네이프가 그에게 남긴 기억일지라도, 결코 지금 자신의 생각보다 더 끔찍할 수는 없을 것이다........기억들은 은백색으로 기이하게 소용돌이쳤다. 해리는 마치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스런 슬픔을 가라앉힐 수 잇을 것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해리는 햇빛 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졋다. 곧 두 발이 따뜻한 대지에 닿았다.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자신이 한적한 놀이터에 잇음을 깨달았다. 거대한 굴뚝 하나가 아득한 지평선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소녀 두 명이 그네를 타고 있었고, 웬 말라깽이 소년이 덤블 뒤에서 그들을 엿보고 있었다. 소년의 새까만 머리칼은 지나치게 길었으며, 옷차림은 어찌나 어울리지 않던지 꼭 일부러 골라입은 것처럼 보였다. 청바지는 너무 짧았고, 어른에게나 맞을 만한 외투는 지나치게 크고 허름했으며, 여자 옷 같은 셔츠는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해리는 소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갓다. 스네이프는 기껏해야 아홉살이나 열살쯤 되어 보였는데, 혈색이 나쁘고 왜소하고 비쩍 말랐다. 그는 두 소녀 중에서 언니보다도 훨씬 더 높이 그네를 타고 있는 동생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야윈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갈망이 드러나 있었다.
“릴리, 그러지 마!”
두 소녀 중에서 언니가 빽 소리쳤다.
하지만 동생은 그네가 완전히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그네를 놓더니, 정말 말 그대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깔깔 웃으며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스팔트가 깔린 놀이터 바닥에 쿵 떨어지는 대신, 마치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아주 오랫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다가 너무나 가볍게 착지했다.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하셨잖아.”
페투니아는 샌들 뒤축을 땅에 질질 끌어서, 우두둑거리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그네를 멈췄다. 그리고 발딱 일어나더니 양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엄마가 그러면 안된다고 하셧어, 릴리!”
“하지만 난 괜찮은걸.”
여전히 키득거리면서 릴리가 말했다.
“투니, 이걸 봐. 내가 뭘 할 수 있나 좀 보라고.”
페투니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놀이터에는 자신들과, 그리고 비록 그들은 알지못했지만, 스네이프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릴리는 스네이프가 숨어 잇는 덤블 앞에서 떨어진 꽃 한송이를 집어 들었다. 페투니아는 호기심과 불만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가까이 다가갔다. 릴리는 페투니아가 똑똑히 볼 수 잇을 만큼 가가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손바닥 위에 놓인 꽃은, 마치 입술이 여러개 달린 괴상한 굴처럼, 꽃잎들을 오므렸다 펼쳤다 하고 잇었다.
“그만 해!”
페투니아가 악을 썻다.
“언니를 해치는 것도 아닌데 뭐.”
릴리는 그렇게 말햇지만, 손바닥을 오므리더니 꽃을 다시 땅바닥에 던졌다.
“이건 나쁜 짓이야.”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페투니아의 눈길은 여전히 땅으로 떨어지는 꽃을 뒤쫓으며 한동안 떠날 줄을 몰랐다.
“넌 어떻게 이런 걸 하는 거지?”
페투니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 뻔하지, 안 그래?”
그때 스네이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덤블 뒤에서 뛰쳐나왔다. 페투니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네 쪽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릴리는 분명히 깜짝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잇었다. 스네이프는 불쑥 나타난 것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릴리를 보자 누르스름한 그의 양쪽 뺨이 희미하게 물들엇다.
“뭐가 뻔하다는 거야?”
릴리가 물었다.
스네이프는 초조하고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는 멀리 떨어져서 그네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페투니아를 흘끗 바라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무슨 뜻이야?”
“너는........너는 마녀야.”
스네이프가 속삭였다. 릴리는 모욕을 당한 표정이었다.
“남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건 나쁜 짓이야!”
릴리는 고개를 쳐들고 휙 돌아서더니, 언니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그게 아니야!”
스네이프가 말했다. 이제 그의 얼굴을 새빨개져 있었다. 해리는 어째서 그가 그 우스꽝스러운 외투를 벗지 않는지 답답했다. 외투속에 입은 셔츠를 보이기 싫어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스네이프는 외투를 펄럭거리며 소녀들을 뒤쫓아 갔는데, 나이 든 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박쥐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자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쫓아올 수 없는 지점이라도 되는 듯이 그네 기둥을 각자 하나씩 붙잡고 있었다.
“너는 그거야.”
스네이프가 릴리에게 말했다.
“넌 마녀라고, 난 한동안 널 지켜봐 왔어. 하지만 그건 전혀 잘못된 게 아니야. 우리 엄마도 그랬고, 나 역시 마법사인걸.”
페투니아의 웃음은 마치 차가운 물처럼 싸늘했다.
“마법사라고?”
페투니아가 빽 소리쳤다. 이제 그녀는 예기치 못한 스네이프의 출현으로 인한 충격을 극복하고 용기를 되찾은 듯 했다.
“나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넌 스네이프네 자식이지!”
그러고는 릴리를 보고 말했다.
“쟤네 식구들은 저 아래 강가에 있는 동네, 스피너즈 앤드에 산다고.”
그녀의 말투로 보아 그 동네를 깔보고 무시하는 것이 분명했다.
“왜 우리를 엿보고 있었던 거야?”
“엿보고 있었던게 아니야.”
화창한 햇빛 아래 지저분한 머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스네이프는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서 말했다.
“아무튼, 널 엿보고 있었던 건 아니야.”
그러더니 그가 경멸에 찬 어조로 한마디 덧붙였다.
“너는 머글이니까.”
페투니아는 분명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말투를 못알아 듣진 않았다.
“릴리, 우리 가자! 어서!”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릴리는 즉시 언니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스네이프에게 눈을 부라리며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놀이터 문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동안, 스네이프는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제 그곳에 남아서 그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인 해리는 스네이프의 쓰라진 실망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이 순간을 한동안 계획해 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엇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
그 장면이 흐릿해지더니, 해리가 미처 알아차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지금 그는 작은 숲 속에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이 보였다. 나무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곳에 서늘한 초록빛 그늘이 생겨났다. 두 아이가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지금 스네이프는 외투를 벗고 있었는데, 그의 기묘한 셔츠는 반쯤 햇빛이 가려진 그늘 속에서 한결 나아보였다.
“.....그리고 네가 학교 밖에서 마법을 행하면, 마법부는 너를 벌줄 수 있어. 너는 편지를 받겠지.”
“하지만 난 이미 학교 밖에서 마법을 써는걸?”
“우린 괜찮아. 우린 아직 지팡이가 없잖아. 아직 어린아이고 어쩔 수 없었을 때에는 제외시켜 주니까, 하지만 네가 열한살이 되면.....”
스네이프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널 훈련시킬 거야. 그때부턴 조심해야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릴리는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더니 허공에 대고 휘저었다. 해리는 그녀가 그 끝에서 불꽃이 발사되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다시 떨어뜨리더니 소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정말이지, 그렇지? 농담 아니지? 페투니아는 네가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래, 호그와트 같은 건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진짜지, 그렇지?”
“우리에게는 진짜야.”
스네이프가 말했다.
“페투니아한테는 아니지만, 우리는 곧 편지를 받게 될거야. 너랑, 나는.”
“정말로?”
릴리가 속삭였다.
“그렇고말고.”
스네이프가 말했다. 엉망으로 자른 머리와 괴상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서 팔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묘하게도 꽤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걸 정말 부엉이가 배달해 주니?”
릴리가 속삭엿다.
“보통은 그래.”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하지만 너는 머글태생이니까, 학교에서 누군가 나와서 너희 부모님한테 설명해 줘야 할 거야.”
“머글 태생인게 무슨 차이가 있어?”
스네이프는 주저했다. 초록색 그늘 아래에서, 열의에 가득찬 그의 까만 눈동자가 짙은 붉은색 머리를 한 새하얀 얼굴을 흝어보았다.
“아니, 그건 아무 차이가 없어.”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다행이다.”
릴리가 긴장을 풀고 말했다.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넌 마법을 참 많이 할 줄 알더라.”
스네이프가 말했다.
“내가 봤어. 그동안 줄곧 널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릴리는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대신 잎이 무성하게 깔린 땅바닥 위에서 기지개를 쭉 펴더니 머리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는 잎사귀들을 올려다보았다. 스네이프는 놀이터에서 그녀를 지켜보았을 때처럼 갈망에 찬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희 집은 요즘 어때?”
릴리가 물었다.
스네이프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좋아.”
그가 대답했다.
“엄마 아빠는 더 이상 안 싸우시고?”
“물론 싸우지.”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리고 나뭇잎을 한 움큼 쥐더니 그것들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난 머잖아 떠날 텐데 뭐.”
“너희 아빠는 마법을 안 좋아하시니?”
“우리 아빠는 아무것도 좋아하는게 없어.”
“세베루스?”
릴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스네이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떠올랏다.
“응?”
“디멘터 얘기 다시 해줘.”
“디멘터에 대해 알아서 뭐 하려고?”
“만약 내가 학교 밖에서 마법을 쓰면.......”
“그들은 그런 일로 너를 디멘터에게 보내지 않아! 정말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나 디멘터에게 보내는 거야. 디멘터는 마법사들의 감옥인 아즈카반을 지키거든. 넌 절대 아즈카반에 끌려가지 않을거야. 넌 너무....”
스네이프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또다시 나뭇잎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때 뒤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해리가 돌아보았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페투니아가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투니!”
릴리가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후다닥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엿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더라? 뭘 바라는 거야?”
페투니아는 갑자기 발각된 것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해리는 그녀가 뭔가 상처가 될 만할 말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네가 입고 있는 건 뭐니?”
페투니아가 스네이프의 가슴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 엄마 블라우스야?”
딱 소리가 나더니, 페투니아의 머리 위에 있는 나뭇가지가 뚝 떨어졌다. 릴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 나뭇가지는 페투니아의 어깨를 쳣고, 그녀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투니!”
하지만 페투니아는 이미 달아나고 있었다. 릴리는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섰다.
“네가 한 짓이지?”
“아니야.”
그는 반발하면서도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네가 그랬잖아!”
릴리가 그에게서 뒷걸음치고 있었다.
“네가 그랬어! 네가 언니를 다치게 했어!”
“아니야, 안 그랬어!”
하지만 그런 거짓말로 릴리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릴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분노에 가득 찬 눈길로 쏘아보더니, 작은 숲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 언니를 쫓아갔다. 스네이프는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제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 있었고, 스네이프는 바로 옆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그와 매우 닮은 한 여자가 홀쭉하고 누르스름한 얼굴에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스네이프는 조금 멀리 있는 네 명의 가족을 뜷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가족 중에서 여자아이 두 명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좀 떨어져서 서 있었다. 릴리는 언니에게 뭔가 애원을 하고 잇는 것 같았다. 해리는 엿듣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미안해, 언니. 정말 미안해! 내 말 좀 들어봐!”
페투니아는 자꾸만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는 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아마 내가 거기에 가면......아냐, 들어 봐, 언니! 아마 일단 내가 거기에 가면 덤블도어 교수님을 만나 뵙고 마음을 바꾸시도록 어떻게든 설득해 볼 수 있을 거야!”
“난....난.....가고 싶지 않아!”
페투니아가 소리치며, 동생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뺐다.
“넌 내가 그 멍청한 성에 가고 싶어 하는 줄 아니? 그래서 마.....마......”
페투니아의 옅은 눈동자가 승강장과, 주인 품에서 야옹거리는 고양이들과, 새장 속에서 퍼덕거리며 서로를 향해 부엉부엉 울고 있는 부엉이들, 그리고 학생들 위를 쓱 둘러보았다. 학생들 중 몇몇은 이미 길고 검은 망토를 입은 채, 트렁크를 진홍색 증기기관차에 싣고 있거나, 혹은 여름방학 동안 헤어졌다가 만난 기쁨에 함성을 지르며 서로서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넌........내가.........정........정신병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니?”
마침내 페투니아가 손을 완전히 뿌리쳤을 때, 릴리의 두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난 정신병자가 아니야.”
릴리가 말했다.
“그런 끔찍한 말을 하다니.”
“거기가 바로 네가 가려는 곳이야.”
페투니아가 고소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정신병자들을 위한 특수학교, 너와 그 스네이프 녀석.........별종들. 그게 바로 너희 두 사람이라고, 너희 같은 애들이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격리되는 건 좋은 일이지.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야.”
릴리는 부모님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승강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 광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릴리는 다시 언니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사나웠다.
“언니가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자기를 받아 달라고 졸랐을 때는, 그 학교가 그런 정신병자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았잖아.”
페투니아의 얼굴이 새빨게졌다.
“졸라? 난 조른 적 없어!”
“난 교장선생님의 답장을 봤어. 아주 친절하게 쓰셨던데.”
“네가 왜 내 편지를 읽는 거야?”
페투니아가 속삭였다.
“그건 내 사생활인데, 네가 어떻게 감히......”
릴리는 근처에 서 있는 스네이프를 힐끗 곁눈질하며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자 페투니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저 자식이 그걸 찾았구나! 너랑 저 녀석이 몰래 내 방에 숨어들어 왔었어!”
“아니, 몰래 들어간 게 아니야.”
릴리가 이제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세베루스가 그 봉투를 봤어. 그는 머글이 호그와트와 연락 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것뿐이야! 그는 비밀리에 우체국에서 일하면서 돌봐 주는 마법사들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랬어. 그러니까.........”
“보아하니 마법사란 족속들은 아무데나 쑤시고 다니는가 보구나!”
페투니아가 소리쳤다. 새빨갰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친 것!”
페투니아는 동생을 향해 내뱉듯이 말하고는 부모님이 서 계신 곳으로 뛰어갔다.....
장면은 다시 사라졌다.
스네이프는 호그와트 급행열차의 통로를 따라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열차는 어느 시골을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미 교복 망토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아마 그 흉측한 머글 옷을 벗어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오자마자, 당장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마침내 그는 한 무리의 소년들이 떠들썩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 객실 밖에서 걸음을 멈췄다. 릴리는 얼굴을 유리창에 바싹 붙인 채, 창가 옆의 구석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는 객실 문을 열더니, 릴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릴리는 그를 흘긋 쳐다보고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그녀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너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
릴리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왜?”
“투니가 날 미워해. 우리가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이 보내신 편지를 봤다고.”
“그게 뭐 어때서?”
그러자 릴리는 몹시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쏘아봤다.
“투니는 우리 언니라고!”
“걔는 그저....”
하지만 스네이프는 잽싸게 뒷말을 삼켰다. 릴리 역시 남몰래 눈물을 닦느라 바빠서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떠나고 잇어!”
스네이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올 게 온 거야! 우리는 호그와트로 떠나고 있다고!”
릴리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슬리데린에 배정되면 좋을 텐데.”
약간 밝아진 릴리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스네이프가 말했다.
“슬리데린이라고?”
객실에 함께 앉아 있던 남자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그 말을 듣자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는 릴리나 스네이프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던 아이였다. 해리는 비로소 아버지를 발견했다. 호리호리한 그는 스네이프와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였지만, 어쩐지 보살핌을 듬뿍 받고 자란 듯한, 심지어 애지중지 키워진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스네이프에게는 아주 두드러지게 결핍된 것이었다.
“누가 슬리데린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나같으면 차라리 학교 관두겠다. 안 그래?”
제임스가 그의 맞은편 좌석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해리는 그가 시리우스라는 사실을 깨닫고 흠칫 놀랐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죄다 슬리데린 출신이야.”
시리우스가 말했다.
“젠장. 그래도 넌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
제임스의 말에 시리우스가 씩 웃었다.
“어쩌면 내가 그 전통을 깰지도 몰라. 너는 만약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갈 거야?”
제임스는 보이지 않는 칼을 치켜드는 시늉을 했다.
“그린핀도르!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지! 마치 우리 아빠처럼 말이야.”
그러자 스네이프가 나지막이 구시렁거렸다. 제임스를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만 있냐?”
“아니야.”
스네이프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살짝 떠오른 비웃음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만약 네가 머리를 쓰기보다는 몸이나 쓰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
“넌 어디 가고 싶은데? 보아하니 넌 머리를 쓰는 쪽도 몸을 쓰는 쪽도 아닌것 같은데?”
시리우스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제임스가 요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몸을 곧게 세우고 앉은 릴리는 얼굴을 붉히며 제임스와 시리우스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자, 세베루스. 다른 객실을 찾아보자.”
“오오.....”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그녀의 거만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그리고 제임스는 스네이프가 지나갈 때 발을 걸려고 했다.
“또 보자고, 스니벨루스!”
객실 문이 쾅 닫히는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장면이 또다시 사라졌다......
이제 해리는 바로 스네이프 뒤에 서 있었다. 그들은 넋 나간 얼굴로 줄지어 서서, 촛불이 밝혀진 기숙사 테이블들을 바라 보고 잇었다. 잠시 후 맥고나걸이 말했다.
“에반스, 릴리!”
해리는 어머니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낡아빠진 의자에 앉는 것을 바라보았다. 맥고나걸이 마법의 모자를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놓았고, 모자는 붉은 머리에 닿자마자 소리쳤다.
“그리핀도르!”
해리는 스네이프가 나지막이 신음하는 것을 들었다. 릴리는 모자를 벗어 맥고나걸에게 건네주고는, 곧 환호하는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향해 달려갔다. 도중에 그녀는 스네이프를 힐끔 돌아보았는데, 그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그녀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긴 의자에서 옆으로 조금 옮겨 앉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릴리는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열차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낸 듯이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등을 돌렸다.
호명이 계속되었다. 해리는 루핀과 페티그루, 그리고 아버지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 잇는 릴리와 시리우스의 곁으로 합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열두 명 남짓한 학생들만이 기숙사 배정을 기다리며 남아 있었다. 그때 맥고나걸이 스네이프의 이름을 불렀다.
해리는 그와 함께 의자까지 따라 걸어갔고, 그가 모자 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슬리데린!”
마법의 모자가 외쳤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릴리와 멀리 떨어진 연회장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는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를 환호하며 맞이하고 있었다. 그가 옆에 앉자, 가슴에 반짝이는 반장 배지를 단 루시우스 말포이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었다.......
릴리와 스네이프는 성의 안뜰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는데,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 서둘러 그들을 따라잡았다. 그들 곁으로 다가갔을 때, 해리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키가 많이 컷는지 깨달았다. 기숙사 배정 이후로 벌써 몇 년이 흐른 듯했다.
“.....난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햇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닌가?”
스네이프가 말했다.
“맞아, 세브. 하지만 난 너랑 같이 어울려 다니는 애들 중에 어떤 얘들이 싫어! 미안해, 그렇지만 애버리와 뮬시버는 정말 끔찍하게 싫어! 뮬시버! 도대체 너는 걔를 뭘 보고 만나는 거니, 세브? 걔는 아주 소름 끼쳐! 걔가 전에 메리 맥도널드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
릴리는 기둥으로 다가가서 몸을 기대더니, 스네이프의 누르스름하고 야윈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별일 아니었어.”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건 그냥 장난이었어, 그게 전부야.”
“그건 어둠의 마법이었다고! 그리고 네가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포터와 그 패거리들이 치는 장난은 어떻고?”
스네이프가 따져 물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아마도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게 포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릴리가 물었다.
“걔들은 밤에 학교를 몰래 빠져나갔어. 게다라 루핀이라는 녀석은 뭔가 기분 나쁜 구석이 잇단 말이야. 그는 왜 계속 외출을 나가는 거지?”
“그 앤 아파.”
릴리가 말했다.
“그 애는 아프댔어.”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만?”
스네이프가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릴리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네가 게네들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데? 게네들이 밤에 뭘 하고 다니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난 단지 다른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얘들이 그저 멋진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 주려는 것 뿐이야.”
그의 눈빛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릴리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그 애들은 어둠의 마법을 쓰지는 않아.”
릴리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게다가 너는 정말 고마워할 줄을 모르는구나. 지난밤에 잇엇던 일 나도 들었어. 네가 커다란 버드나무 옆 통로로 몰래 들어갔는데, 제임스가 그 통로 안에 잇는 무언가로부터 너를 구해 줬다고.....”
순간 스네이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침을 튀기며 말했다.
“구해 줘? 구해 줬다고? 넌 그가 영웅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는 자기 목숨이랑 자기 친구 목숨을 구했던 거야! 너 설마 걔를......난 너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나를 뭐? 나를 뭐?”
릴리의 밝은 초록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스네이프가 즉시 말을 바꿨다.
“난 그런 뜻이 아니라.....난 그냥 네가 웃음거리가 되는 걸 바라지 않을 뿐이야. 그 녀석이 널 좋아하고 있어. 제임스 포터가 널 좋아하고 있다고!”
그 말은 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니야....물론 모두 생각하지....대단한 퀴디치 영웅이라고....”
스네이프는 혐오감과 비통함에 사로잡혀서 점점 더 두서없이 떠들어댔고, 릴리의 눈썹은 점점 더 치켜 올라갔다.
“나도 제임스 포터가 시건방진 건달이란 건 알고 있어.”
릴리가 스네이프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그런 말까지 해 줄 필요는 없어. 하지만 뮬시버랑 애버리의 유머 감각은 정말 너무 악랄해. 악랄하다고 세브. 난 어떻게 네가 그런 애들이랑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가.”
하지만 해리는 과연 스네이프의 귀에 방금 릴리가 뮬시버와 애버리에 대해서 말한 비난이 들렸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녀가 제임스 포터를 욕하자마자, 그의 온몸에서 긴장이 쫙 풀렸던 것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을 때, 스네이프의 발걸음에는 다시 새봄이 찾아든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장면이 사라졌다......
해리는 다시 스네이프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의 표준 마법사 수준 시험을 치른 후 대연회장에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가 성에서 멀리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제임스와 시리우스, 루핀, 페티그루가 함께 앉아 있는 너도밤나무 그늘 근처를 배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리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제임스가 세베루스를 공중에 거꾸로 메달고 그를 조롱한 다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그 말을 다시 듣는 것은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해리는 릴리가 스네이프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멀리서 굴욕감과 분노에 사로잡힌 스네이프가 그녀를 향해 그 용서받지 못할 말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잡종”
장면히 변했다.......
“미안해.”
“난 관심없어.”
“미안해!”
“조용히 해!”
밤이었다. 잠옷 차림의 릴리는 팔짱을 낀 채, 그리핀도르 탑입구에 있는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단지, 메리가 네가 밤새 여기서 잘 거라고 위협했다기에 나온것 뿐이야.”
“그랬어. 그리고 정말로 그랬을 거야. 난 절대로 널 잡종이라고 부르려고 한 게 아니었어. 그 말이 그냥......”
“무심코 나왔다고?”
릴리의 목소리에는 동정심이라곤 전혀 없었다.
“너무 늦었어. 난 몇 년 동안 줄곧 너를 옹호해 왔어. 내 친구들은 아무도 내가 왜 너랑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해. 너와 너의 그 귀하신 애송이 죽음을 먹는 자 친구들...... 거봐. 넌 부인도 하지 않는 구나! 넌 심지어 네가 뭐가 되고 싶어하는지 부인조차 하지 않잖아! 넌 그 사람에게 합류하고 싶어서 못 견디겠지, 그렇지?”
스네이프가 잠깐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다물었다.
“난 이제 더 이상 모르는 척할수 없어. 넌 네길을 택했고, 난 내길을 택한 거야.”
“아니야. 들어 봐! 난 그런 뜻이 아니었단......”
“나를 잡종이라고 부를 뜻은 없었다고? 하지만 넌 나와 같은 출생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잡종이라고 부르잖아, 세베루스. 어째서 나만 그들과 달라야 하는 거지?”
그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 가려고 애를 썻지만, 릴리는 경멸에 가득 찬 눈길을 한 번 던지더니, 휙 돌아서서 다시 초상화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버렸다.
복도가 사라지고, 다음 장면으로 다시 바뀌는 데에 약간 시간이 걸렸다. 해리는 마치 휙휙 움직이는 색과 형체들 속을 뜷고 날아가는 듯했다. 마침내 주위 배경이 다시 자리를 잡았고,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추위에 떨며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바람이 씽 불고 지나갔다. 이제 성인이 된 스네이프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꼭 쥔 채,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두려움이 해리에게까지 전해졌다. 물론 자신이 해를 입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스네이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해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눈부시게 날카로운 하얀 광선이 허공을 뜷고 날아왔다. 해리는 번갯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스네이프가 털썩 무릎을 끓고 쓰러졌고, 그의 지팡이는 손에서 날아가 버렸다.
“저를 죽이지 마세요!”
“그럴 의도는 없었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에 덤블도어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나는 소리가 묻혀 버렸던 것이다. 그는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스네이프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지팡이 불빛이 밑에서부터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래, 세베루스! 볼드모트 경이 나에게 무슨 전갈을 보낸거지?”
“아닙니다. 전갈은 없습니다. 제가 용건이 있어서 온 겁니다!”
스네이프는 초조하게 손을 비틀고 있었다. 마구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서 꼭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저.......저는 경고를 드리려고, 아니. 요청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까딱 흔들었다. 그러자 여전히 잎사귀들과 나뭇가지들이 그들 주위의 어두운 대기 속을 날아다녓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스네이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자리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죽음을 먹는 자가 내게 무슨 요청이 있단 말이지?”
“그.......그 예언......그 예고......트릴로니...”
“아, 그렇군.”
덤블도어가 말했다.
“볼드모트 경에게 얼마나 많은 걸 전해 주었나?”
“전부 다.....제가 들은 내용은 모두 다 전했습니다.”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래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분은 그 예언이 릴리 에반스를 뜻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은 여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덤블도어가 말했다.
“칠월의 마지막 날 태어난 사내아이에 대해 말했지.”
“제 말뜻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그 아이가 바로 그녀의 아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를 추적할 겁니다. 그들 모두 죽일 거라고요!”
“그녀가 자네에게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분명 볼드모트 경은 그녀의 목숨을 살려 주지 않겠나? 아들을 넘겨주는 대신, 그 어머니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할 수 없었단 말인가?”
덤블도어가 말했다.
“저는......저는 그분께 요청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구역질나는군.”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한 번도 그토록 경멸에 찬 덤블도어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약간 주눅이 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는 죽어도 상관없단 말인가? 자네가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은 전부 죽어도 좋단 말인가?”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덤블도어를 올려다 보았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를 숨겨 주십시오.”
스네이프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아니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십시오.”
“그렇다면 자네는 대가로 나에게 무엇을 줄 건가, 세베루스?”
“대.....대가요?”
스네이프가 입을 딱 벌리고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가 당연히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한참 후에 그가 말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언덕이 사라졌다. 이제 해리는 덤블도어의 교장실 안에 서 있었는데, 무언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끔찍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로 스네이프가 앞으로 몸을 푹 숙인 채,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고, 덤블도어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스네이프가 고개를 들었다. 그 황량한 언덕을 떠난 이후로, 마치 고통 속에서 백 년쯤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저는......저는 당신이......그녀를 무사하게.......지켜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녀와 제임스는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을 신임했네.”
덤블도어가 말했다.
“자네와 비슷하지, 세베루스. 자네도 볼드모트 경이 그녀를 살려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나?”
스네이프의 호흡이 가빠졌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살아남았다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러자 스네이프가 진저리나는 파리를 쫓듯이 갑자기 머리를 움찔했다.
“그녀의 아들이 살아 있다네. 그 아이는 바로 그녀의 눈을, 그녀와 아주 똑같은 눈을 갖고 있지. 분명히 자네는 릴리 에반스와 눈매와 색깔을 기억하고 있겠지?”
“아니요!”
스네이프가 울부짖었다.
“끝낫어요....죽었어요......”
“후회하고 잇나, 세베루스?”
“저는......차라리 제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덤블도어가 싸늘하게 말했다.
“자네가 만약 릴리 에반스를 사랑했다면, 정말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자네 앞에 놓인 길은 분명하다네.”
스네이프는 마치 혼미한 고통 속에 갇혀 간신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덤블도어의 말이 그에게 도달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무슨.......무슨 말씀이시죠?”
“자네는 그녀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었는지 알고 있네. 그러니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게. 내가 릴리의 아들을 보호하는 것을 도우란 말일세.”
“그 아이는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둠의 마왕은 사라졌습니다.”
“어둠의 마왕은 돌아올 것이고, 그때는 해리 포터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될 걸세.”
긴 침묵이 이어졌다. 스네이프는 서서히 자제력을 되찼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침내 그는 말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절대, 절대 말하지는 마십시오. 덤블도어 교수님! 이것은 오직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의 일이어야만 합니다! 맹세해 주십시오! 저는 참을 수 없습니다......특히 포터의 아들이라니......약속해 주십시오!”
“세베루스, 지금 나더러 자네의 가장 훌륭한 행동을 밝히지 말라고 하는 건가?”
덤블도어는 고뇌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스네이프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탄식했다.
“자네가 정 고집한다면......”
교장실 장면이 사라지더니, 즉시 다시 나타났다. 이제 스네이프는 덤블도어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 아비만큼이나 경박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예 작정을 하고 규칙을 위반하질 않나, 유명세를 즐기고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싶어하고 무례하고.......”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법이지, 세베루스.”
덤블도어는 <오늘날의 변신술>에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아이가 아주 겸손하고 호감이 가고 상당히 재능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있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나는 그 애가 아주 매력적인 아이라고 생각한다네.”
덤블도어는 책장을 넘기더니,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퀴렐에게서 눈을 떼지 말게. 알았나?”
순간 모든 색깔이 소용돌이 쳤다. 이제 사방이 온통 캄캄했고, 스네이프와 덤블도어는 현관 복도에서 약간 떨어져 서 있었다. 크리스마스 무도회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그들 옆을 지나갔다.
“그래서?”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카르카로프의 표식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자는 완전히 겁에 질려서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마왕이 몰락한 이후로 그자가 마법부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는 교수님도 잘 아시겠죠?”
스네이프는 코가 구부러진 덤블도어의 옆얼굴을 곁눈질했다.
“카르카로프는 만약 표식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도망칠 생각입니다.”
“그런가?”
덤블도어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때 운동장에서 플뢰르 델라루르와 로저 데이비스가 깔깔거리며 돌아왔다.
“그럼 자네도 그와 합류하고 싶은가?”
“아닙니다.”
스네이프가 새까만 눈으로 플뢰르와 로저의 멀어져 가는 모습을 쫓으며 말했다.
“저는 그런 겁쟁이가 아닙니다.”
“그래, 아니지.”
덤블도어가 수긍했다.
“자네는 이고르 카르카로프보다 훨씬 더 용감한 사람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사실 우리가 학생들을 너무 일찍 분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네......”
덤블도어는 충격 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네이프를 남겨 두고 유유히 걸어갔다.....
이제 해리는 또다시 교장실에 서 있었다. 늦은 밤이었는데, 덤블도어는 책상 뒤에 놓인 왕좌 같은 의자에 비스듬히 늘어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의식이 온전치 못한 듯했다. 그의 오른손은 시커멓게 화상을 입은 채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지팡이로 다친 손의 손목을 가리키며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편 왼손으로는 잔에 가득 담긴 걸쭉한 황금색 마법약을 덤블도어의 목구멍으로 부어 넣고 있었다. 잠시 후, 덤블도어의 눈꺼플이 파르르 떨리더니 활짝 떠졌다.
“도대체 어째서!”
거두절미하고 스네이프가 다그쳤다.
“어째서 그 반지를 끼셧나요? 그 반지는 저주에 걸려 있습니다. 교수님도 분명히 알고 계셧을 텐데요. 그걸 대체 왜 만지십니까?”
마볼로 곤트의 반지가 덤블도어 앞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부서져 있었고, 그 옆에는 그리핀도르의 칼이 놓여 있었다.
덤블도어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바보였지. 몹시 마음이 끌리더라고.......”
“무엇에 마음이 끌렸단 말씀입니까?”
덤블도어는 대답이 없었다.
“교수님이 여기까지 돌아오신 게 기적입니다!”
스네이프는 불같이 화난 목소리였다.
“그 반지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저주에 걸려 있단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거라곤, 그 저주를 억누르는 게 전부입니다. 제가 한동한 그 저주가 한 손에만 머물도록 붙잡아 두기는 했지만....”
덤블도어는 시커멓고 쓸모없게 된 손을 들어 올리더니, 마치 흥미진진한 골동품이라도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주 잘 해 주었군, 세베루스. 자네 생각에 내가 얼마나 오래 살 것 같나?”
덤블도어의 말투는 너무나 태연했다. 마치 일기예보라도 물어보고 있는 듯한 어조였다. 스네이프는 잠시 주저한 뒤에 대답했다.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아마 1년 쯤일 겁니다. 이런 저주를 영원히 멈추게 하는 건 불가능 합니다. 그것은 결국 몸전체로 퍼져 나갈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력해지는 저주니까요.”
덤블도어는 미소를 지었다. 살 날이 1년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은 그에게 거의, 혹은 전혀 염려할 일이 아닌 듯했다.
“난 운이 좋아. 정말 유별나게 운이 좋지. 자네가 내곁에 잇으니 말일세, 스네이프.”
“저를 조금이라도 일찍 불러 주셨더라면, 좀 더 잘 해 드릴수 있엇을지도 몰라요. 교수님에게 시간을 좀 더 벌어드렸을 지도 모른다고요!”
스네이프가 사납게 말했다. 그는 부서진 반지와 칼을 내려다 보았다.
“반지를 부수면 주문도 깨질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내가 정신이 나갔엇어.......분명히....”
덤블도어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으음, 사실 이건 모든 문제들을 훨씬 더 수월하게 만들어 줄 거라네.”
스네이프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덤블도어가 미소를 지었다.
“볼드모트 경이 나를 노리며 벌이고 있는 계획에 대해 얘기하는 걸세. 불쌍한 드레이코 말포이를 시켜 나를 죽이려는 계획 말이야.”
스네이프는 해리가 그토록 자주 앉았던 바로 그 의자에 덤블도어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가 덤블도어의 저주 받은 손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해리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는 정중한 거절의 표시로 다친 손을 치켜들었다. 스네이프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어둠의 마왕은 드레이코가 성공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저 루시우스가 최근에 한 실패들에 대한 응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실패해서 그 대가를 치르는 걸 지켜보게 하려는 거죠. 드레이코의 부모를 서서히 고문하려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그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로군.”
덤블도어가 말했다.
“일단 드레이코가 실패하고 나면, 그 임무의 후임자는 당연히 자네가 될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게 바로 어둠의 마왕의 계획인 것 같습니다.”
“어둠의 마왕은 머지않아서 호그와트에 첩자가 필요하지 않을 순간이 오리라고 예상하고 있겠지?”
“그자는 학교가 곧 자기 손아귀에 넘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만약 학교가 그의 손에 넘어간다면 호그와트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네 힘이 닿는 데까지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고 내게 맹세할 수 있겠나?”
덤블도어는 슬쩍 지나가는 말을 던지듯이 말했다.
스네이프는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자네의 첫번째 임무는 드레이코가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아내는 거네. 겁에 질린 십 대 소년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위험한 법이지. 그러니 자네가 그 아이를 도와주고 길잡이가 되어 주게, 그 아이는 분명 받아들일 걸세. 그 아이는 자네를 좋아하니까.”
“.......그 애 아버지가 총애를 잃고 난 이후로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드레이코는 저를 탓하고 있습니다. 제가 루시우스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번 시도나 해 보게. 나는 나 자신보다도, 그아이가 어떤 계획들을 세우든지 그 때문에 뜻하지 않은 희생자들이 생길까 더 걱정일세. 물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볼드모트의 분노로부터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할 일이 딱 한가지 남아 있네.”
스네이프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물었다.
“그 아이가 교수님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시려고요?”
“그럴 리가. 자네가 나를 죽여야만 하네.”
한동안 긴 침묵이 이어지다가, 기묘하게 딸각거리는 소리에 깨졌다. 불사조 퍽스가 오징어 뼈를 콕콕 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제가 그 일을 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스네이프가 잔뜩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
“아니면 비문을 작성하실 시간이라도 잠시 드릴까요?”
“오오, 아직은 아닐세.”
덤블도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때가 되면 그 순간이 저절로 찾아올 걸세. 하지만 오늘 밤 벌어진 일을 고려하면......”
덤블도어가 시들어 버린 손을 가리켰다.
“분명 그 일은 1년 안에 벌어질 거야.”
“그토록 죽는게 아무 상관이 없으시다면, 그냥 드레이코가 그렇게 하도록 내려버 두시지요?”
스네이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의 영혼은 아직 그렇게까지 손상되지 않았어. 나 때문에 그 아이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 놓고 싶지는 않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 영혼은요. 덤블도어 교수님? 제 것은요?”
“한 늙은이가 고통과 수모를 모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과연 자네의 영혼을 해칠 만한 일인가 하는 것은 오직 자네만이 알겠지. 처들리 캐논 팀이 올해 리그에서 꼴찌를 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죽음이 내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자네에게 이런 중대한 부탁을 하는 거라네, 세베루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빠르고 고통없는 죽음이 좋다네. 이를테면 만약 그레이백이 연루될 경우에 벌어지게 될, 그런 질질 끄는 너저분한 죽음보다는 말일세.....볼드모트가 그를 영입했다고 들었는데? 아니면 먹잇감을 먹어 치우기 전에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벨라트릭스라든가.”
그의 말투는 한없이 가벼웠지만, 그의 푸른 눈동자는 해리에게 종종 그랬던 것처럼 스네이프를 매섭게 꿰뜷어 보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논의하고 있는 바로 그 영혼이 그의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침내 스네이프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덤블도어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네, 세베루스.....”
교장실이 사라졌다. 이제는 스네이프와 덤블도어가 석양빛을 받으며 텅 빈 운동장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요즘 포터와 뭘 하시는 겁니까? 저녁마다 두 사람이 할께 꼭 틀어박혀 있으니.”
스네이프가 불쑥 물었다.
덤블도어는 몹시 지쳐 보였다.
“왜? 그애에게 더 자주 방과 후에 남는 벌을 주려는 건가? 세베루스! 그 아이는 머잖아 밖에서 지내는 것보다 벌을 받으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겠구먼.”
“그 애는 천생 제 아비를 닮아서....”
“외모는 그럴테지. 하지만 그아이의 가장 깊은 내면은 어머니를 훨씬 더 많이 닮았다네. 나는 그 아이와 할 얘기가 있어서 함께 시간을 보낸걸세. 너무 늦기 전에 그에게 반드시 알려 줘야 할 정보 말이네.”
“정보라고요?”
스네이프가 되풀이했다.
“교수님은 그 아이를 믿으시는 군요. 저를 믿지 못하시고요.”
“그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네. 우리 두 사람 다 알다시피, 나에게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그 아이가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내가 그 아이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네.”
“그렇다면 왜 저는 똑같은 정보를 알아서는 안 되는 거죠?”
“나는 한 바구니 속에 내 모든 비밀을 쏟아 놓고 싶지는 않다네, 특히나 볼드모트 경의 팔에 매달려 아주 긴 시간을 보내는 바구니에다가는 말일세.”
“하지만 저는 교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네는 그 일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하고 있지. 자네가 항상 처해 있는 위험을 내가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세베루스. 핵심적인 정보는 허락하지 않으면서도 꽤 유용해 보이는 정보를 볼드모트에게 제공하는 일은, 자네가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못했을 걸세.”
“하지만 교수님은 마법 실력도 보잘것없고, 어둠의 마왕의 머릿속과 곧장 연결되어 있는데다, 오클러먼시도 할 줄 모르는 일개 꼬마에게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계시지 않습니까!”
“볼드모트는 그 연결을 두려워하고 있어.”
덤블도어가 말했다.
“얼마 전에야 비로소 그는 해리의 정신을 진짜로 공유한다는 것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약간 경험했지. 그것은 그가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고통이었어. 그는 해리의 마음을 두 번 다시 지배하려고 하지 않을 걸세. 난 확신할 수 있네. 그런 방식으로는 아니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볼드모트 경의 영혼은 불구가 되어서, 해리와 같은 영혼과 긴밀하게 접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네. 마치 얼어붙은 강철에 닿은 혓바닥이나, 불길에 휩싸인 살처럼.....”
“영혼이라고요? 우리는 지금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리와 볼드모트 경의 경우는 어느쪽을 이야기하나 마찬가지일세.”
덤블도어는 그들 이외에 아무도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제 그들은 금지된 숲 가까이에 와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 누군가 있는 낌새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네가 나를 죽인 후에, 세베루스.....”
“교수님은 저에게 모든 걸 말씀해 주지도 않으시면서, 그 시시한 임무만은 꼭 제가 해주기를 바라시는군요!”
스네이프가 대들었다. 이제 그의 야윈 얼굴에서는 진정한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교수님은 너무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덤블도어! 어쩌면 저는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이미 내게 맹세했네, 세베루스. 그리고 자네가 해 주어야 할 임무들에 대해 얘기했을 때, 나는 자네가 우리의 꼬마 슬리데린 친구를 면밀히 감시하겠다고 동의한 줄 알았는데?”
스네이프는 분노와 반항심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덤블도어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 열한 시에 내 사무실로 오게, 세베루스. 그러면 내가 자네를 신임하지 않는다고 더 이상 불평하지는 못할 걸세.....”
이제 그들은 다시 덤블도어의 사무실에 돌아와 있었다. 창문들은 어두웠고, 퍽스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 역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오직 덤블도어만이 그의 주위를 걸어 다니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모르고 있어야 하네. 어쩔 수 없이 알게 될 때까지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아이가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낼 수가 있겠는가?”
“그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데요?”
“그건 나와 해리 사이의 일이네, 이제 잘 들어 보게, 세베루스. 내 말에 반박하지도 말고, 끼어들지도 말게! 때가 올 거야, 내가 죽고 나면 말이야. 볼드모트 경이 그 뱀의 목숨을 염려할 때가 올 거야.”
“내기니 말입니까?”
스네이프는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그렇지, 만약 볼드모트가 더 이상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뱀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대신 그 뱀에게 보호 마법을 걸고 자기 곁에 안전하게 두려고 하는 때가 오면, 내 생각에 그때는 해리에게 말해도 괜찮을 걸세.”
“그에게 무슨 말을 하란 겁니까?”
덤블도어는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감았다.
“볼드모트 경이 그를 죽이려고 했던 그날 밤에 대해 그 아이에게 얘기해 주게. 릴리가 그들 사이를 가로막으며 자신의 목숨을 방패 삼아 내던졌을 때, 살인 저주가 볼드모트 경에게로 다시 튕겨 나갔다는 것을 말일세. 그리고 볼드모트의 영혼이 일부 떨어져 나갔고, 그 무너져 버린 집에 살아 있는 유일한 영혼에 달라붙었다는 사실을 말일세. 볼드모트 경의 일부가 해리 안에 살아 있다네. 그래서 해리에게 뱀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 거지. 그리고 볼드모트 경과의 정신적인 연결도 가능한 것이고. 물론 해리 자신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야. 볼드모트가 알아차렸듯이, 그 영혼의 일부가 해리에게 달라붙어서 해리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한, 볼드모트는 결코 죽을 수 없다네.”
해리는 마치 긴 동굴의 한쪽 끝에서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만이 귓가에서 기이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러면 그 녀석은, 그녀석은 끝내 죽어야만 하나요?”
스네이프가 아주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볼드모트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야만 하네, 스네이프. 그게 핵심이지.”
또다시 긴 정적이 감돌았다. 이윽고 스네이프가 말문을 열었다.
“저는.....요 몇 년간 줄곧.....그녀를 위해 그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릴리를 위해서요.”
“우리는 그 아이를 보호해 왔네. 왜냐하면 그 아이를 가르치고 성장시켜, 그 아이가 자신의 힘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야.”
덤블도어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로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그들 간의 연결은 훨씬 더 강력해졌어. 기생적인 성장 말일세. 이따금 나는 그 아이가 스스로 그런 의심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네. 어쨌든 내가 그 아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거라면, 그 아이는 자신의 죽음과 대면하기 위해 길을 떠날때, 그것이 곧 볼드모트의 진정한 죽음이 되도록 모든 문제들을 정리해 놓을 걸세.”
덤블도어가 감았던 눈을 떳다. 스네이프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그 아이가 적당한 순간에 죽을 수 있게 하려고 지금껏 그를 보호해 오셧다는 말씀입니까?”
“너무 놀라지 말게, 세베루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 자네가 지켜보았는데 그러는 건가?”
“하지만 근래에는 오직 제가 구해내지 못한 사람들뿐입니다.”
스네이프가 이렇게 대답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신은 저를 이용하셨군요.”
“그게 무슨 뜻인가?”
“저는 당신을 위해 첩자 노릇을 했고, 당신을 위해 거짓말을 했고, 당신을 위해서 제 자신을 죽을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오직 릴리 포터의 아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제게 마치 도살용 돼지처럼 그를 키워 왔던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군요.”
“이거 참으로 감동적이군, 세베루스.”
덤블도어가 진지하게 말했다.
“결국, 자네는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나 보군?”
“그 녀석을요?”
스네이프가 소리쳤다.
“익스펙토 패트로늄!”
그의 지팡이 끝에서 은빛 암사슴이 치솟았다. 그것은 교장실 바닥에 내려앉더니, 한달음에 교장실을 가로질러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덤블도어는 패트로누스가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것의 은빛 광채가 희미해지자, 덤블도어는 다시 스네이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즉 고여 있었다.
“결국 이제야?”
“항상 그랬습니다.”
스네이프가 말했다.
이윽고 장면이 바뀌었다. 이제 해리는 스네이프가 책상 뒤편에 걸린 덤블도어의 초상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자네는 볼드모트에게 해리가 그의 이모와 이모부의 집에서 출발하는 정확한 날짜를 알려 주어야만 할 거야.”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심이 커질 걸세. 볼드모트는 자네가 아주 정보에 훤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일세. 하지만 자네는 반드시 유인책을 미리 세워 놓아야 하네. 아마 그렇게 하면 해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걸세. 먼던구스 플레처에게 혼동 마법을 걸어 보도록 하게. 그리고 세베루스, 만약 자네가 추격에 가담하게 되면, 반드시 자네가 맡은 역할을 확실하게 하도록 하게나....... 나는 자네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볼드모트 경의 총애를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네. 그렇지 않으면 호그와트는 캐로우 남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될 테니.......”
이제 스네이프는 낯선 술집에서 먼던구스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먼던구스의 얼굴은 기묘하게 얼빠진 듯한 표정이었고, 스네이프는 정신을 집중하느라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자네는 불사조 기사단에 제안하는 거야.”
스네이프가 중얼거렸다.
“유인책을 사용하자고 말이야. 폴리주스 마법약. 똑같이 생긴 포터들. 먹힐 만한 건 그것뿐이야. 자네는 내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걸 잊게 될거야. 자네는 마치 자네 생각인 것 처럼 그 계획을 얘기할 거야, 알겠지?”
“잘 알았습니다.”
초점이 풀린 눈으로 먼던구스가 웅얼거렸다.
이제 해리는 스네이프와 나란히 빗자루를 타고 맑고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두건을 쓴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루핀과, 실제로는 조작인 해리가 날고 있었다.....죽음을 먹는 자 한 명이 스네이프를 앞질러 갔고, 즉시 지팡이를 들어 곧바로 루핀의 등을 가리켰다.
“섹튬셈프라!”
스네이프가 소리쳤다.
그 주문은 죽음을 먹는 자의 지팡이를 든 손을 겨냥한 것이 었으나, 빗나가서 대신 조지를 맞혔다........
이제 다음 장면으로, 스네이프는 시리우스의 옛 침실에 무릎을 끓고 앉아 있었다. 그가 릴리로부터 온 옛날 편지를 읽는 동안, 그의 휘어진 코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번째 장에는 고작 몇 줄밖에 적혀있지 않았다.
어떻게 겔러트 그린델왈드와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 솔직히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틸다가 그만 망령이 난 것 같아!
사랑을 듬뿍 담아. 릴리.
스네이프는 릴리의 서명과, 그녀의 사랑이 담겨 잇는 편지를 챙겨 망토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역시 손에 쥐고 있던 사진을 반으로 찢더니, 릴리가 웃고 있는 부분은 간직하고, 제임스와 해리가 나온 부분은 다시 바닥에 내던졌다. 그 사진은 서랍장 밑으로 떨어졌다......
이제 스네이프는 다시 교장의 사무실에 서 있었다. 마침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자기 액자 속으로 허둥지둥 돌아왔다.
“교장 선생! 그 녀석들이 딘의 숲에서 야영을 하고 있고! 그 잡종.....”
“그 단어는 쓰지 마시오!”
“......그럼. 그레인저 계집이 구슬 백을 열면서 그 장소를 말하는 걸 내가 들었소!”
“좋아요, 정말 잘됐군!”
교장의 의자 뒤에서 덤블도어의 초상화가 외쳤다.
“자, 세베루스! 그 칼을! 그 칼은 반드시 꼭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에만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그리고 그 아이는 자네가 그 칼을 주었다는 사실을 몰라야하네! 행여 볼드모트가 해리의 마음을 읽고 자네가 그 아이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저도 압니다.”
스네이프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리고 덤블도어의 초상화로 다가가더니, 액자 가장자리를 잡아당겻다. 그러자 액자가 앞쪽으로 열리면서, 그 뒤에 숨어 있던 움푹한 구멍이 드러났다. 스네이프는 거기에서 그리핀도르의 칼을 꺼냈다.
“그리고 교수님은 여전히, 포터에게 이 칼을 전해 주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저에게 얘기해 주지 않으실 거지요?”
옷 위에 다시 여행용 망토를 뒤집어쓰며 스네이프가 말했다.
“안 돼네, 안 될 것 같네.”
덤블도어의 초상화가 말했다.
“그 아이는 그걸로 뭘 할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세베루스. 아주 조심해야 하네. 그 아이들은 조지 위즐리의 사고 이후로는 자네가 나타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걸세.”
스네이프는 문간에서 돌아보았다.
“걱정 마십시오. 덤블도어 교수님.”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곧 스네이프는 방을 떠났다. 해리는 위로 붕 떠오르면서 펜시브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정확히 같은 방의 카펫 깔린 바닥에 누워있었다. 마치 스네이프가 방금 전에 방문을 닫고 나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