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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1화 (프롤로그)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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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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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재미있게 읽던 소설의 작가에게 이렇게 뒷통수를 맞을 줄 몰랐다.

소설 ‘아카데미의 신검무쌍’. 주인공은 헌터세계관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밑바닥에서 ‘신검’이라는 능력을 각성하여 아카데미에서 성장하고 끝끝내 한국에서 이름 날리는 S랭크 헌터가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후속작인 ‘아카데미의 신검전설.’ 새로운 주인공으로 성좌로부터 신검을 부여받은 주인공이 아카데미를 통해 성장하는 내용.

양산형이라면 양산형인데, 이게 나름 재밌었다.

단 한가지 빼고.

“이 히로인의 존재 이유는 뭔가?”

신검전설의 주인공 히로인 중 한 명인 유은하.

전작 주인공 유진석의 동생이자, 오랫동안 주인공과 비교당하던 몸으로 히키코모리였다가 아카데미 추천장을 받게 되고 반강제로 게임의 주 배경이 되는 한성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유은하의 설정이 골때린다.

주인공과 비교당하면서 컸던 터라 잔뜩 삐뚤어진 아이는 흡연에 귀와 몸의 각 부위에 피어싱을 박아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혼자 불량해진 소녀를 주인공이 끄집어내고 개과천선 시켜 히로인으로 끌어올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미안, 난 여기까지야.

­아니야, 너는 죽지 않아! 반드시 살 수 있어!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누가 보면 존나 장렬하게 괴수들과 싸우다 죽는 것 같이 보이겠지만, 주인공이 아카데미에 침입한 빌런과 싸울 때, 빌런의 공격에 때마침 지나가다가 맞고 명치가 뚫려 죽는다.

이래놓고 무슨 히로인으로 잡아둔 것일까.

심지어 능력도 제법 그럴 듯한 걸 넣어서 독자들이 희망을 가졌던 정실 히로인 코인을 타기도 했던 여자다.

블랙기업의 노예로 살던 나는 퇴근 후에 웹소설을 보는 것이 생활의 낙이었는데. 하도 화가 치민 나는 뒷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질문을 했다.

[블랙기업한국: 씨2발 대체 유은하를 죽인 이유가 뭐임?]

[작가: 히로인이 너무 많아서 줄여보려다가 그만 ㅎㅎ;;]

ㅎㅎ;;? ㅎㅎ;;?!

웃음이 나오나보네, 이 시발놈.

안 그래도 상사에 시달려 빡치던 마당에 기어이 나는 그 얼척없는 대답에 순간 빡돌았다. 고소고 나발이고 세상에서 사용가능한 온갖 육두문자로 장황하게 싸질렀다.

[작가: 아니, 독자님. 독자님이 글 써봐야 알아요. 히로인이 십여명인데 얘네 비중 다 채우려면 줄여야지.]

하, 지랄을 해요. 그럼 히로인으로 만들지 말던가.

한 번 더 육두문자를 날리려는데, 작가새끼가 댓글을 하나 더 적었다.

[작가: 확실히 걔한테 준 능력이 아깝기는 한데. 그럼 독자님이 해보실?]

“뭐라는 거야. 싫은데?”

[작가: 지금같은 개차반 인생보다는 낫지 않아요?]

“오 그건 좀 꼴리는. 아니, 누구 인생을 개차반이래! 어? 잠깐 난 입으로 말하는데 왜 쪽지로 답변을 계속해?”

[작가: 그럼 바라는 대로.]

“아니, 시발. 기달…….”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컴퓨터가 펑 소리를 냈다.

순간 나는 점점 눈앞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의식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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