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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4화 (4/331)

〈 4화 〉 3. 하늘은 어둡다.

* * *

* * *

유은하. 대한민국 S급 헌터 신검의 유진석의 동생.

뛰어난 오빠에 비해 나약했던 은하는 마음의 문을 닫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진석이의 부탁을 받아 최소한 D급 헌터라도 만들어주고자 아카데미 추천서를 써줬다.

솔직히 말해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친구의 부탁이고, 친구의 동생이 아닌가? 응당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겉으로 볼 때는 가시돋힌 고양이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는 허풍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은하가 방구석 여포로 진석에게 덤볐던 것을 보면 딱 그랬다.

“제 이름은 유은하입니다. 취미는 독서, 고유능력은 가속입니다. 좋아하는 거나, 싫어하는 것은 딱히 없습니다.”

오랜만에 스승과 제자로 만났을 때 느낀 것은 뭔가 확 변했다는 거다.

흑발이었던 머리카락은 백색으로 물들었고, 귀에는 여러개의 피어싱을 달았다.

바로 옆에서 입을 벌릴 때 나는 냄새는 담배냄새

완전히 노는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는데, 매번 징징거리거나 짜증가득하던 얼굴은 차갑게 가라앉은 무표정이었다.

솔직히 저 백발도 각성같지가 않다. 그냥놀려고 물들인 것 같았다.

자기 스스로 능력은 가속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진석이와 같은 능력인가? 아니면 거짓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능력테스트에서 증명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리고 능력테스트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유은하라는 여자애에 대한 평가를 전면수정해야 했다.

나와 유진석, 그리고 당시 동기들이 두들겨 팼던 목각인형을 그대로 답습한 능력테스트 시간 때 나는 진가를 보게 되었다.

나 이상의 마력운용. 여기까지는 그래도 진석이 동생답다. 라고 생각은 했는데, 바로 그때부터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마치 세상에 목각인형과 자신. 단 둘만 있는 것처럼 반듯하게 목각인형만 쳐다보다 움직였다.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A급 헌터인 내 눈에 조차 보이지 않는 속도. 아예 잔상수준만 보이는 그 속도는 진석이 부리는 가속과도 같았다.

목각인형 앞에서 움직이는 검은색 그림자. 약점만 찔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재생하는 목각인형.

누가 보면 마치 귀신들린 것처럼 보이는 장면.

“김지혜.”

그때, 능력테스트 시뮬레이션실의 총책임자이자 A급 헌터인 임유진이 차트를 들고 왔다.

“어, 유진아. 어떠냐? 이번 애들”

“정령화살을 사용하는 레이나는 1459체의 목각인형을 부수고, 신검의 최시우는 1124체. 그 뒤로 박지수가 1114체. 한수지가 1057체.”

유은하만 보다 다른 사람 것은 보지 못했는데, 꽤 기대할 만한 아이들이 많다.

뭐 유은하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이미 7천대를 넘어가고 있으니까.

“최시우와 레이나는 역시 기대 이상이고, 박지수와 한수지도 대단하군.”

“격파횟수로 카운트 하기는 했지만, 딜미터기만 따지면 최시우가 압승이겠군.”

“그런데 유은하는?”

임유진의 물음에 김지혜는 턱으로 전광판을 가리켰다.

“아직도 킬 횟수가 계속 오른다.”

사실 딜도 유은하 쪽이 높을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목각인형의 핵만 골라 치고 있으니까. 적어도 핵을 노리기 힘든 대형 괴수들이라면 모를까.

“뭐야, 저거. 저게 그 유은하라고?”

85—85—86­­

순식간에 8600에 이르렀다.

저러고도 마나가 멀쩡하나 싶어 마력측정기로 유은하의 마력을 봤다.

“마나를 소모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일격으로 부수고 있어?”

뿐만이 아니다. 마력회로가 무슨 핵연쇄반응처럼 늘어나고 있다.

상식적으로 저것이 가능한가?

그렇다고 도핑한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저건 이미 도핑의 범주를 넘어섰으니까. 게다가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도핑약을 살 바에는 유은하는 아카데미를 나오지 않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인가?”

저 정도면 괴수들을 잡는 연습만 좀 하면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다.

아니, 오늘 능력테스트결과만 알려져도, 본래 신검의 동생인 것도 있으니 여기저기서 스카웃해가려고 난리가 날 거다.

“실력이 저 정도면 그냥 숨길 것이지 왜 저러는 거야.”

“힘숨찐 컨셉 아니었을까? 아니면 진석이가 아카데미에 억지로 넣어버렸으니 될 대로 되라 식이라던가.”

“골치아파지겠군.”

어느새 9999체를 부숴버렸다.

지루해서 먼저 나간 애들을 제외하고 최시우, 레이나 등, 이번 기대를 한몸에 받는 루키들과 일부 생도들만이 남아서 입이 떡벌어져서는 유은하가 있는 테스트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 남매들은 적당한 걸 몰라?

유진석도 어지간히도 적당히라는 걸 몰라서 던전이란 던전은 다 부수고 다녔었다. 평양결전에서도 지 혼자 다 해먹었다.

아마 유은하는 훨씬 더 많은 목각인형을 부쉈겠지. 9999이상 오르지 않을 뿐.

“그런데 제 언제까지 부숴?”

“어? 아, 그러고 보니.”

정도를 모르고 있다. 적당히 하고 멈춰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억지로 들여보낸 것에 대한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 자기오빠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한다고 했었다.

혹시, 저 목각인형은 유진석을 대체한 것이 아닐까.

“유은하 생도! 그만!”

일단 유은하의 움직임을 멈췄다.

“아, 네.”

“너 대체 이런 재능이 있었으면서, 네 오빠이상이잖냐. 점수판을 봐라.”

유은하는 전광판에 떠오른 글자를 보고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칼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9999번 뿐입니까?”

확실히 유진석을 조지겠다는 마인드인가. 이거 조심하게 해야 할 지도.

“저거 최대가 9999라서 그래.”

“그래? 아쉽네요.”

뭐랄까. 어째 신검사용보다 유은하 쪽을 더 주의깊게 봐야 할 듯싶다.

한참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유은하는 눈을 몇 번 꾹꾹 눌렀다.

눈이 아픈가. 하는 짓은 귀엽다.

“교관님. 그럼 오늘은 끝난 거죠?”

“어, 그. 그래.”

유은하는 안절부절하더니 친구들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아, 몸이 녹는다. 녹아.”

삭신이 쑤셔 드러누운 노인들처럼 나는 고통을 호소했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온몸이 미칠 듯이 쑤신다. 벌레들이 기어오르는 것 같다.

하늘이 아직 어둑어둑하다.

손을 더듬어 테이블에서 담배를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이제야 좀 몸이 풀린다.

어제 능력테스트에서 주인공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정말 예상외였다.

과 의 조합은 최악이다.

하루에 한 번만 써도 죽을 것 같다.

뭐 이런 조루같은 조합이 다 있나. 아, 좆도 없어서 조루는 되지 못하니 이런 식이라도 체험해보라는 걸까.

“아, 아카데미 가기 귀찮다.”

내가 왜 가야지? 일하면 지는 거라고 배웠다. 하물며 아카데미에 가는 것도 일하는 것의 일부가 아닌가?

가기 싫다. 절대로 가기 싫어. 오늘 빠질까?

아직 어두운데 시간은 7시다. 일어나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담배 한모금씩 빨아들일 때마다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애초에 가지 않는 것이 이상적인데.”

신검을 가진 최시우가 주인공이지. 나는 결코 주인공이 아니다.

괜히 내가 필요 이상으로 주인공보다 잘 나간다면, 그건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아카데미를 안 다닐 수도 없는 것이. 통장에 남은 돈이 얼마 없다. 빨리 아카데미라도 나와서 헌터라도 되어야 한다.

운명은 왜 이리도 잔혹한가.

그래도 가기는 가야 한다.

어느 세상이고 학력사회는 중요하다.

나중에 아카데미 막 빠지다가 졸업하고 어디 길드 같은 곳에 헌터로 취직한다고 해봐라.

­와, 너 칼은 쥘 줄 아냐?

­놀던 년이었구만. 사내새끼라면 짐꾼으로라도 쓰지. 에휴.

뭔가 이 시대식으로 나를 경멸할 느낌이 싸하다.

그치만, 나는 남자의 기억으로 이미 뼈빠지게 노예짓을 해본 몸이다.

심지어 이 몸. 엄청 약하다. 가속과 병렬회로를 버티는 것이 참 용하다.

"킁킁."

시큼한 냄새가 나 몸의 냄새를 맡아보자 땀냄새가 코를 찌른다.

몇 몇 남자애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여자도 땀냄새는 다 난다.

어떤 놈들은 업계 포상이라 하겠지. 그런데 나는 싫다.

대충 씻고 나와서 아침으로 설탕물을 마셨다.

절대 가난해서가 아니다. 일단 집에서 쫓겨날 때, 전작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유진석이 돈을 줬다.

지금은 후속작이라 그놈은 지금 앞날이 창창하고 돈도 많다.

당연히 그 돈을 가질 권리는 한핏줄인 내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남자의 기억이 없는 유은하는 받았다.

매번 싸우면서도 돈을 주는 대로 받는 것은 그거다.

예시를 들자면 부모님이랑 한참 싸우고 방구석여포짓을 하며 처박혀 있는데,

­치킨 먹어라.

­네.

싸운 거 잘못했다고 빌고 싶지는 않은데 치킨은 먹고 싶어서 임시휴전하는 그런 느낌?

아마 내가 헌터짓을 시작할 때까지는 적당히 용돈은 줄 것 같다.

오늘은 반찬거리라도 사러 나가보는 것이 좋을까.

그 전에 아카데미를 가야겠지?

휴대폰을 보니 슬슬 등교하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다.

* * *

“과연 신검의 여동생이네. 역시 그 핏줄은 어디 안 가는 걸까?”

아카데미에 도착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우리 주인공께서 옆에 앉아 이죽이고 있다.

“핏줄은 무슨. 우연이야.”

우연이 9999라기에는 그냥 비틱인가.

“우연이 9999라고? 신검 조차 1500이 되지 못했는데. 참 어이가 없네. 결정했어. 앞으로 너는 내 라이벌이야!”

레이나가 대뜸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쿡쿡 찌르면서 선언했다.

"저도 질 수는 없어요. 무엇보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이건 절대 좌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제 라이벌이에요."

이건 뭐 싸구려 소설도 아니고.

­결정했어. 신검? 웃기시네. 나야말로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지고의 존재!유은하! 당신은 오늘부터 내 라이벌이에요!

히로인 레이나는 제법 호전적이면서 선민의식을 가진 여자다.

그래서 그녀는 주인공 최시우와 처음에는 라이벌로 관계를 이어간다. 나는 워낙 조용해서 라이벌이 될 이유가 없다.

굳이 다시 설명하는 이유는 지금 전개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거다.

왜 내가 라이벌일까?

나는 약하다. 가속과 병렬회로를 사용하지 않으면 시체다.

그 마저도 쓰고 나면 몸이 미칠 듯이 가렵고 날씨가 어두워진다.

하필이면 주인공까지. 이거 나 히로인이 아니라 숙명의 라이벌 자리를 꿰찬 건가.

“그런데 어제 왜 그리 급하게 갔어?”

“그야 날씨가 어두워졌으니까?”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

"어제 날씨는 밝았는데?"

거짓말.

“그러고 보니 게이트가 근처에 있으면 그렇다고 했어요. 뭐 정확히 말하면 s급 괴수들이 있을 경우지만.”

“그보다 너 헌터갤에 올라온 거 봤어?”

“갤?”

“응. 이거 봐. 개념글에 네 영상 올라옴."

최시우가 대뜸 휴대폰을 조작해서 글 하나를 보여줬다.

[제목: 이번 한성아카데미 루키.avi]

제목은 한성아카데미 루키. 내용은 동영상이었는데, 보아하니, 내가 가속과 병렬회로를 쓸 때 목각인형을 부수는 영상이다. 그리고 저 위에 빠르게 올라가는 킬 카운트가 제법 인상적이다.

내 모습은 거의 잔상이었다.

오로지 단도를 이용한 목각인형의 핵파괴. 네튜브 영상인데, 제목은 이미 내 이름을 박아둔 상태다.

댓글들도 다양하다.

­얘 누구임? 미국에서 유명한섬광의 지나보다 빠른 수준인데?

­신검 유진석의 여동생 유은하야. 영상 설명 좀 봐라.

­ ㅜㅑ 잔상인데, 허리놀림 봐라. 눈나 나 죽어.

­와 씨발. 끝부분 봐라. 외모 존나 예쁘네. 인형아님?

­ㅋㅋㅋ귀에 피어싱한 것 봐봐. 세면 뭐함? 날라린데. 걸래일 듯 ㄷㄷ;;

­네 다음 만년E급 헌터 돼지년

­응 소추 한남은 닥쳐~

­쟤는 니가 존재하는 줄도 모름. 돼지년아

해당 네튜브 영상은 단 하루만에 이미 유명했다. 500만 이상의 조회수와 더불어 추천은 만만치 않다.

네튜브 자체 댓글만 봐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가 보였다.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 댓글은 보기 힘들 지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르는 조회수.

이거 올린 놈은 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내 덕에 구독자가 수만명이나 생겼다.

“음, 확실히 다들 보는 눈이 달라졌네.”

가만히 보니 어제 나를 단순한 검신의 여동생이며, 무능력한 암컷으로 보던 것들이 지금은 선망이나 흥미를 가지는 시선이다.

어제 나를 깠던 여자애는 나를 노려볼 뿐 두 손을 불끈 쥐고 부들거린다.

“그런 엄청난 이펙트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그게 내 알 바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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