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4. 불꽃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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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목각인형만 부순 것 정돈데 뭐가 저리 난리법석일까.
“뭐래. 어차피 초반에만 말 많지. 결국 신검인 네가 더 유명해질 거야.”
“큭. 이것이 승자의 여유라는 건가?”
대뜸 혼자 절규하는 꼴이 북치고 장구치는 것 같아 멍청해 보인다.
이런 놈이 히로인이 10명이라니. 작가는 제정신인가?
아, 귀찮아.
그러고 보니 까메오톡에 어디서 알아냈는지 헌터관련업체들에서 톡을 잔뜩 보내뒀더라.
일단 다 차단 박아뒀는데 귀찮아죽겠다.
오늘은 제법 날씨도 화창하다.
이렇게 좋은 날 피크닉이나 하면 좋을 텐데. 꿈만 아니라면 딱 좋지 않을까.
유은하는 본래 아싸기질이 다분한 아이였다.
아카데미와서도 그건 고쳐지지 않았고, 자기 오빠의 명성을 이용해서 걸핏하면 빠졌다.
그런데 말이다.
“조잘조잘조잘 쫑알쫑알.”
“궁시렁궁시렁궁시렁.”
잘나신 신검계승자와 그 메인히로인 레이나는 왜 나를 중심에 두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것인가.
시끄럽다. 그냥 이 꿈 좀 빨리 깼으면 좋겠다.
어째 날씨가 또 어두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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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련을 해보겠다.”
불방망이가 대뜸 대련선언을 했다.
어제는 능력테스트. 오늘은 대련인가.
아마 전체적으로 생도들 수준을 확인하려는 듯 싶다.
이론수업이야,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그닥 중요하지는 않겠지.
그 다음 과별로 나눌 것이다. 마법이라던가, 검술이라던가. 창술이라던가.
“대련이라뇨?”
“어제는 능력 테스트를 했으니 오늘은 연습 대련을 해본다는 거야. 일단 그래. 첫 번째로 유은하. 김기태.”
불방망이 김지혜. 저 여자는 나를 얼마나 유망주로 보고 있는 건지 자꾸 시켜먹으려고 그런다.
그렇다고 능력을 말할 수는 없다.
가속에 병렬회로 한 번 쓰고 몸이 반송장 된다고 말하면 내 평가는 심각하게 추락할 것이다.
딱 지금 정도에서 어느 정도 평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냥 져줄까?
능력의 단점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냥 항복하거나 져주는 수준이라면 졌지만 잘싸웠다 등으로 포장이 가능하다.
그렇게 시작된 대련.
내 앞에는 너저분한 남색머리카락의 열정적인 소년이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불방망이는 김기태를 그냥 내 딜측정기로 쓰려는 것 같다.
“큭. 이 김기태님 앞에서 여유를 부리다니. 신검의 여동생이면 다야? 어차피 그 영상도 조작일 것이 뻔한데!”
“야, 그러다 죽는다.”
내가 죽는다.
과 를 또 써 먹기에는 상대가 그냥 지나가는 행인 1수준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스킬을 쓰지 않으면 내가 김기태보다도 약할 테고.
굳이 열심히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김기태한테 사용했다가 괜히 쓰러지면 그것도 고통이다.
딱 헌터만 되면 그만이니까. 아마 엔딩을 봐야 이 꿈이 깰 것 같은데, 소시민답게 적당히 유명해지지 않고 사는 게 좋다.
모든 것은 주인공이 할 일이다.
“나를 도발해? 당장 무기 들어!”
“무기같은 거 필요없는데.”
손에 들고 있는 검자루를 던졌다.
무거운 건 질색이다. 작은 나이프가 더 몸에 맞지.
어차피 질 것이 뻔한데 뭣하러? 대충 한 대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척하자.
“가.감히 나를 무시해? 훗. 좋아. 그럼 네가 먼저 나 쳐봐라. 너 같은 솜주먹 따위는. 아니, 무기들고 때려도 아프지 않을 테니까!”
“진짜?”
이렇게 되면 말이 달라지지.
놈은 생각보다 강한 놈인 거 같다. 작품 내에서 비중은 없지만 힘은 몰랐으니까.
저렇게 자신만만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신체강화 계열이겠지. 그렇다면 한 대는 맞아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적당히 나는 항복하면 그만.
“진짜.”
“그럼 배려해주신 대로.”
나는 몸에 마나를 두르고 대련하기 전에 소지 가능한 무기 중, 방망이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뻑!
김기태의 수억마리 자식들을 죽였다.
김기태가 입에 개거품을 물고 뒤로 고꾸라지니, 조금 심했나 싶기도 하다.
아니, 그런데 자신있게 말한 놈치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어우. 이거 써먹지 못하겠는데.”
“멀쩡해도 써먹을 수는 있었을까?”
“그건 그렇네.”
김기태는 몇 몇 생도들에 의해 양호실로 끌려갔다.
어, 음. 나는 한 대 때려도 된다고 했으니, 괜찮은 거지?
대련이 끝난 이후에는 또 평가가 갈렸다.
남자들 중에서는 일부 나를 기피하는 놈들도 있었고, 여자애들 중에서는 걸크러쉬라며 찬양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인 최시우의 차례가 되었다.
최시우의 상대는 한수지. 한수지는 창을 다루는 여자로. 어느새 창박이로 알려졌다.
그리고 최시우의 히로인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해서는 두 번째 히로인.
창 관련한 각성을 한 것인지, 주황색의 포니테일이 예사롭지가 못하다. 마치 불꽃 같아서 꺼지지 않는 라이터로 좋지 않을까?
“최시우. 한 번 붙어보고 싶었다!”
“아하하. 나 미움받을 짓했나?”
“신검이라고 나대지 말라고! 너랑 유은하는 내가 반드시 쓰러트릴 거다!”
아니, 나는 왜 걸고 넘어져요.
아무래도 최시우가 이번에는 저 여자를 쓰러트려줘야겠다. 저 창년? 창녀? 아무튼 저 창술사랑 싸우는 것은 싫다.
나는 과일칼 같은 작은 단도파인데, 저 년은 창이라고. 무기 상성차이 무엇. 작가놈 캐릭터 콘티 보면 쟤 2페이즈도 있다.
폭주하는 경우 불꽃창녀가 된다. 창 끝에 불길이 생기면서 이리저리 휘두르는 년이다.
“젠장. 나 혼자면 모르겠는데, 유은하까지? 비겁하지 않냐?”
“흥! 너희들은 내 방해일 뿐이야! 빨리 네 놈을 쓰러트리고 저기 백발년을 잡아 무릎꿇릴 테다!”
거만하기 짝이 없다. 스승이 분명 S급 헌터 김재수라고 했었나. 그 사람도 창술사인데, 저 불꽃창녀는 그 창기술을 모조리 습득했다.
그리고 나중에 주인공에게 패배하고 주인공에게 빠진다.
특징이 마조라 했지. 그래서 주인공에게 쳐맞고 갱생하더니 마조가 되어버린다.
레이나가 츤데레 쪽이라고 하면 저쪽은 어휴. 말을 하지 말자.
“내 친구를 백발년이라고 하지 마!”
아니, 백발은 맞으니까.
“흥 덤비기나 해라.”
최시우의 잿빛머리가 순식간에 은빛으로 물들더니, 그가 들고 있는 검이 영롱하게 빛을 냈다.
어제 목각인형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대련이기 때문에 자기 능력을 한껏 선보이는 것이라 최시우는 신검을 소환했다.
불꽃창녀도 창을 소환했다.
왜 니들만 무기 소환하세요. 나도 소환 좀.
챙강! 캉! 킹!
창과 칼이 열심히 맞붙었다.
마치 교미를 하는 것처럼 얽히고 섞인다.
“여신이 내린 신검과 화신이 내린 창의 싸움이라. 대련이라도 이거 참 볼 만한데.”
“그러게.”
교관들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자리라며 높은 평가를 내린다.
이제 생각해보니 저 두 년놈에 비하면 나와 김기태의 싸움은 너무 싱거웠다.
최시우가 불꽃창녀의 사각지대로 들어가 단숨에 검을 높이 쳐들었다.
“큿!”
불꽃창녀는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창을 휘두르며 신검을 쳐냈다.
아니,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몇 번의 칼부림 끝에, 역시 남자인 시우가 체력적인 우세함을 믿고 밀어붙였다. 그래! 죽여! 나한테 덤비지 못하게 아주 철저하게 때려 눕혀! 친구인 나를 위해서!
그렇게, 불꽃창녀를 두들겨 패고 있는 주인공 새끼에게 처음으로 호감을 가질 무렵. 저 새끼는 내 기대를 배반한다.
“여기까지 할래. 항복.”
“뭐?”
기껏 칼날을 불꽃창녀의 목에 들이대놓고는 하는 말이 항복을 받지 않고 지가 항복한다.
레이디퍼스트야 뭐야. 내 옆에서는 기집애들 마냥 쫑알거리더니 쓸데없는 정의심이라도 보여?
아니다. 잠깐. 애초에 원작과 다르잖아.
너는 거만함만 버리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오늘 승부는 여기서 끝내는 게 어때? 나중에 더해줄 테니까.
하.항복.
그래. 원래는 이런 전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주인공이 항복했다.
이렇게 되면 저 불꽃창녀는 어떻게 되는데? 갱생의 여지는?
설마 내 존재 때문에?
“너를 쓰러트리는 것은 나만의 몫이 아니야. 모욕받은 유은하의 몫이기도 하지.”
아니, 나는 괜찮은데.
“교관님.”
“음, 좋다. 이번 대련은 최시우의 패배. 따라서 다음 대련은 최시우의 요청대로 유은하와 한수지의 대련이 되겠다.”
아니, 나는 싫다고요. 신검이라고 주인공새끼의 요청이라고 들어주는 것 봐라.
순간 화가 치밀었다.
하늘이 또 어두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최시우 저 놈. 눈을 반짝거린다.
이런 거 받아주는 스타일 아닌데, 저렇게 쳐다보면서 응원하는데 그냥 져준다면 이건 좀 그렇겠지.
결국 어쩔 수 없이 대련장으로 갔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들 짜증난다. 가속으로 전부 눈깔을 찔러버릴까.
“최시우. 저놈한테는 졌지만, 너한테 질 생각은 없어!”
“하늘이 참 화창하네.”
“뭐?”
“이런 날 미쳐버린 암캐가 주제도 모르고 미친년 널뛰기하는 짓을 가만히 두고 보면 곤란하지.”
응. 그것도 마조라면 당연하다.
이왕 주인공이 내 자리를 마련해줬으니, 저 년이 얼마나 흉측한 마조인가를 깨닫게 해줘야 할 때다.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네. 너 그러다 창에 꽂히면 덜 아프냐?”
“미친개는 매가 약이라지.”
나는 품속에서 얇고 날카로운 나이프를 꺼냈다.
이걸로 집에 오기 전에 사과를 깎아 먹었다.
“잘난 척은! 고작 나이프 하나로 날 이기겠다고?”
내 도발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는지. 창에 불꽃 인첸트를 걸었다.
“너는 내가 보는 하늘을 어둡게 만들까? 아니면 눈부시게 만들까?”
유난히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날씨가 안 좋아지더라. 꼴에 멋진 말이라고 해봤는데, 영 어울리지 않아 한숨을 쉬었다.
“자, 둘 다 그만 떠들고, 시작해라!”
삐익!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소리와 동시에 녀석이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를 사용했다.
상대는 마조다. 이 자리에서 철저하게 마조답게 때려눕힐 필요가 있다.
그래. 예를 들면 자궁펀치라던가.
남자애가 하면 미투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여자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가속을 사용해서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당장 최시우의 신검도 반응하기 어려운 스피드다. 창따위를 들고 있는 불꽃창녀가 나를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마치 멈춰버린 시간처럼. 나는 빠르게 불꽃창녀의 품으로 들어가 오른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마력을 담아 아랫배를 때렸다.
퍽!
“컥?”
“나는 이 순간. 내가 유은하인 것을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해.”
안 되겠어. 두 대.
퍽!
“남자가 여자치는 것보다.”
안 되겠어. 세 대.
퍽!
“여자가 여자를 치는 것이 그래도 보는 것이 좋지 않겠니.”
“이익!”
“느려.”
필사적으로 저항하듯 창을 휘두르는데, 가속상태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나를 그녀가 창으로 찌를 수 있을 리 없다.
되는 대로 창을 휘두르던 불꽃창녀는 내가 피하자 중심을 잃고 그대로 넘어졌다.
[이때를 노렸어.]
나는 정신을 못차리는 한수지를 일으켜 세웠다.
배빵 몇 번 했을 뿐인데, 제법 힘이 빠진 모양이다.
자, 이제 공개 수치플레이다. 역시 엉덩이가 좋겠지?
“또 뭐, 뭐하려고. 그.그만. 내가 잘.”
철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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