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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9화 (9/331)

〈 9화 〉 8. 현실도피

* * *

* * *

정말 최악의 환상이었다.

수백번 죽는 것을 반복했다.

문제는 너무 현실적이었다. 아마 원작탓이겠지. 원작의 내용을 읽었으니 그게 환상처럼 나온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왜 그 꿈은 수백 번 반복하면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내 몸에 괴인의 코어를 박아넣느냐는 말이다.

게다가 두 세 번째부터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숨어있다가 죽었다.

대체 뭐야? 원작대로 내가 아는 환상과는 다른 환상인가?

역시 꿈이다. 꿈이라 전개가 이상한 거야.

하하하. 그럼 그렇지. 꿈일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저 칙칙한 유령은 옆에서 눈치없이 혼자 비틀거리고 있다.

확 꺼져버렸으면 좋을 텐데.

“깨어났나? 유은하 생도.”

보건실에서 깨어난 내 앞에 레베카가 보였다.

“예. 보시다시피 교수님 덕에 죽을 뻔했습니다.”

“일단 그건 사과하마. 아니, 솔직히 말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레베카는 진심으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각설하고 묻지. 혹시 죽을 뻔한 적이 있나? 또는 죽음이나 환상관련 고유능력이라도 있나?”

“전부 해당없음입니다만.”

죽어본 적도 없고, 환상이나 죽음에 관련된 능력도 없다.

“일단 내가 너희에게 건 환상은 딱 하나다. 너희들의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환상으로 끌어내는 것.”

“거짓말이죠?”

여기서는 모르는 척해야지.

“나도 네가 고통받을 때, 정신간섭을 해서 너의 환상을 직접 봤다. 내가 보고도 놀랐어. 나로서는 네 정신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 아니다. 잠깐, 이건 꿈이잖아? 뭘 진지하게 생각해? 꿈속에서 환상을 본 것 뿐이다. 원작을 볼 때 유은하가 죽는 것을 여러번 상상한 적 있으니 그 때문이다.

“음, 죽은 적은 없지만 왜 그런지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찝찝하지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겠다.”

꿈속의 사람이 찝찝하면 어쩌게. 저 보건실 문쪽에 서 있는 칙칙한 블랙맨도 보이지 않는 주제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여기는 꿈이야. 분명히 구분하자. 그 불꽃창녀와 키스를 한 것도 잘 못 된 거였어.

좋아. 이참에 아카데미를 뜰 각을 보자.

“음, 교수님.”

“왜?”

나한테 한짓 때문에 레베카는 조금 소심해졌다.

원래 이런 여자였다. 평소에는 딱딱하지만 뭔가 실수하면 곧바로 자기반성에 빠지는 타입.

“저 한동안 학교 좀 쉬어도 될까요? 아무래도 좀 충격이 커서.”

“학기 초인데?”

어쩌라고.

“오늘 일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오빠가 좋아할까요?”

“아.알았어. 알겠어. 그렇게 해주면 되지 않나!”

잠깐 설명을 하자면 레베카도 전작의 히로인이다.

아마 김지혜나 이 여자나 아직도 유진석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이용해먹기로 했다.

* * *

절찬리 개인한정 휴교를 하고 있는 유은하는 울부짖었다.

“구와아아아아악!”

노는 것도 사람할 짓이 못 되는구나.

어쩔 수 없지. 벽과 한몸이 되어 움찔거리는 저 칙칙한 유령이라도 가지고 놀기로 했다.

저 유령과 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나는 나이프를 던졌다.

푹!

안타깝게도 유령을 뚫고 벽에 박혔다.

“칫.”

저 유령이 보다 잘 보이도록 방안을 하얀색으로 도배했는데. 아무래도 마법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사라진 유령 너머로 보이는 나이프를 벽에서 도로 뽑았다.

“하는 일없이 뒹굴거리면 살만 찔텐데.”

솔직히 말해 이몸은 지금껏 무엇을 먹어도 살이 찌지도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란 것이 그렇게 게으르게 살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생활비도 바닥을 보이고 있고, 인간으로써 뭔가 잘 못되기 전에 헬­조선 서민의 노예근성이 떠올랐다.

할 일이 없다면 할 일을 만들어내면 된다.

어쩔 수 없다. 돈을 버는 수밖에.

어느새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는 유령을 나이프로 치워버리고 앉아 인터넷으로 근처에 있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다.

­장소: 뉴서울 강남 타워빌 지하 1층.

­모집인원: 5명

­업무내용: 괴수, 헌터 시체 닦이. 청심환 증정.

­보상: 50만원

나쁘지 않은데, 끌리지 않는다. ‘닦이’라면 괴수와 헌터의 시체가 그 지하에 말라붙어 오래되었다는 것. 아마 냄새가 엄청날 거다. 청심환으로 해결될 일인가?

­장소: 뉴서울 클라우드 던전

­모집인원: 2명

­업무내용: 븝미쟝과 1층부터 5층까지 답파.

­보상: 던전에서 얻은 보상은 공평하게 지급. 단, 아티펙트나 코어는 먹는 사람이 임자.

븝미쟝? 뭔가 소름이 끼친다.

그래도 파티를 이뤄 던전을 클리어하자는 취지는 좋다. 보상 역시 보통 파티에서 보상을 지급하는 형식이다.

꿈이라는 것은 결국 본인의 영향도 강하다.

내가 무의식 중에 븝미쟝을 생각한 걸까?

“하느님 맙소사.”

일단 다음으로 넘겨봤다.

­장소: 한성 아카데미 건너편 GC편의점.

­모집인원: 2명(여성우대)

­업무내용: 말 그대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보상: 시급 1만2천원.

음, 현실세계와 달리 이 세계에서 알바구하는 사이트가 너무 간단하게 나오지 않나?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헌터들 기준에 맞춰 개설된 사이트라 간단히 해둔 것 같다.

시간대는 협의고. 지금 당장은 편의점 알바를 할 정도로 딱히 여유로운 것은 아니니 이 븝미쟝이 나을 거 같다.

* * *

클라우드 던전

“호고곡! 너무 예쁜 거시에오! 이 백발 새하얘서 마음에 들어양!”

그냥 돌아갈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하와와. 내 이름은 김븝미인 거시애오 헌터등급은 D고, 이번에 클라우드 던전 공략의 파티장을 맡은 거시에요. 부를 때는 븝미쟝. 븝미씨라고 불러주었으면 좋은 거시에오. 마법을 주로 다루는 거시야오.”

지랄이 풍년이다.

“난 시노하라 마리코. 일본에서 유명한 닌자가문 시노하라 가문 출신으로, 이번에 절친인 븝미가 도와달래서 한국 구경할 겸 넘어왔어. 도쿄헌터아카데미를 작년에 졸업했고 D등급 헌터야. 인술은 화둔을 사용하고 있어.”

시노하라 가문. 작중, 일본에서 잘 나가는 헌터가문 중 하나다. 그곳 당주가 여성으로 훗날 일본에 헬게이트가 열릴 때, 당주 시노하라 유즈키가 헬게이트에 떨어졌다가 파견된 최시우에게 구해진다.

그래. 더 말을 해 무엇하랴.

얘네 가문 당주도 서브 히로인이다.

그쪽 가문의 아이라면 뭔가 또 연결점이 있을 것 같은데, 괜히 엮이기 싫어 그만두기로 했다. 애초에 원작에서 보지 못한 애라 무시해도 될 것이다.

“난 금태양이야. 서울헌터아카데미 현재 재학 중인 몸이지. 용돈 벌려고 들어왔고, 비록 생도의 몸이지만 졸업 후 검은늑대 길드에 D등급 헌터 계약을 할 몸이야. 신체 강화를 이용한 근접전이 주특기지. 이렇게 생겨먹었어도 스윗한 남자라고.”

다음은 금태양. NTR, NTL 암컷타락 위주 성인 소설, 만화에서 실눈근육남, 최면어플돼지에 이어 3대장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인물.

어디선가 태운 구릿빛 피부에 금발머리. 적당히 잘 갖춰진 몸.

금태양이라는 단어에 뭔가 본능적으로 그의 하반신으로 눈이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 한쪽이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유은하가 되면서 잃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꿀꺽

시발놈. 너는 내 적이다.

“내 이름은 유은하.한성아카데미 재학 중이고,능력은 가속을 이용한 속도전.오늘 하루 잘 부탁해.”

“우효~백발 미소녀 갯또다제.”

NTR전문 배우가 나를 음흉하게 쳐다본다.설마,그래도 뭔 일 없겠지?

덮친다거나 그런 건 없겠지?

클라우드 던전은 던전 내에 음침한 먹구름이 있고 간혹가다 독비를 뿌린다.

몬스터들도 질퍽질퍽한 괴수들이 있다.슬라임 같은 것들?

실제로 만난 슬라임은 뭔가 이렇다할 무게감이 없었다.

그냥 사람 몸집만한 푸딩?정도로 보인다.

슬라임 공략법은 간단하다.일단 마법에 졸라약하고,레이나의 정령화살이면 바로 조질 수 있을 정도다.대검류에도 약한 편이고,핵만 공격하면 바로 죽는다.

나는 나이프만 사용해서 슬라임의 핵을 향해 찔렀다.

촥!

슬라임은 내게 저항할 틈없이 마치 물풍선이 터진 것처럼 형태를 잃고 액체가 쫙 퍼졌다.

으로 치고 빠지지 않았으면 입고 있던 제복이 다 젖어서 저 금태양이 보기 좋은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하와와와.저쪽이 독비씨가 내리는 거시애오!”

“화둔!파이어볼!”

김븝미쟝은 뭔가 이상한 빛을 난무해서 우리가 가면 안 되는 지역을 알려주고,마리코는 던전 곳곳에 있는 횃불에 불을 키고 있다.

그런데 화둔 저거 인술 아냐?마법인파이어볼과 어울려?그냥 어느 만화처럼 화둔 호화구의 술을 하는 것이 닌자가문에 어울리지 않을까?

“슬라임 코어GET!”

저기 금태양은 생각보다 성실한 인물이었다.

저 특이한 듀오와 달리 나는 그저 가속을 사용해서 슬라임의 핵만 터트리고 있다.

의외로 쉬운 일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5층까지 답파라고 했지.

“븝미님.”

“하와와 븝미쟝이라 불러주는 거시에요!”

귀찮은 년.

“브.븝미쟝.”

“하와와?”

“그런데 이미 여기 공략당한 던전 아니에요?그런데 굳이5층에 올 이유가 있어요?”

“하와와 하와와.이 던전은 공략 이후, 5층에서 마물의 범람이 일어나 잡몹들이 많은 거시에오!잡으면 코어들을 잔뜩 벌 수 있는 것이야요!”

“아,그것들을 쓸어버리자구요?”

확실히D급 코어들이라고 해도 티끌모아 태산이다.개당5만원은 하니까.모아서 나눈다면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이거 사실상 봉잡은 거 아니야?

“호에엥!내 오빠야들한테 말해서 전세로 빌린 거시애오.혼자는 힘들어서 모두의 힘이 필요한 거시야요!”

“우리끼리 할 수 있어요?”

의외로 정직한 금태양의 질문이었다.

여전히 바지 위로 보이는 그 불룩불룩한 것이 영 신경쓰인다.진짜 쟤 그쪽 부류 아니야?신체강화야 솔직히 노오력을 하면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고.다른 능력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았는데.

“이 븝미쟝 약하지 않은 것이야요!사실 규칙상4인을 맞추기 위해서지 혼자 가도 되는 거시애오!”

확실히 이 븝미는 실력이 남다르다.

당장 주위를 정찰하는 탐색마법에 클린마법.더불어 옆에서 절친이랍시고 횃불까지 계속 밝혀주는 횃불빌런까지.

저 둘을 떠나 금태양의 근접전도 역시나 꽤 그럴 듯하고.

5층까지는 금방이었다.

이미 길드에 의해 공략된 던전이기도 해서 난이도가 떨어진 것도 있다.

“아니,너무 쉬운 거 아닌가?”

“하와와.언냐,옵빠들이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야요!내 덕인 줄 알아야 하는 것이애오!”

븝미쟝은 있지도 않는 가슴을 암으로 당당하기 내보이면서 잘 난 척했다.

확실히 코어수급만 잘하면 시체닦이 한 만큼 벌 거 같기는 하다.

그래.이때까지만 해도 순탄했다.

“어,누님들.여기 버튼이 있는데.”

금태양 새끼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버튼을 벽에서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거 함정아님?”

“어?이미 눌렀는데?”

“저 씨발새끼.”

쾅!

금태양에게 욕할 틈도 없이 븝미쟝 파티는 어디론가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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