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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12화 (12/331)

〈 12화 〉 11. 백합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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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시우는 개새끼다.

히로인 관리도 안 하고, 빌런관리도 안 한다.

왜 내가 최시우 포지션을 유지해야 하는가? 이 꿈은 대체 언제 깰까?

특히 김승준은 나를 날카롭게 째려봤다.

왜 구체만들기를 다른 걸로 바꿨냐고 따지는데, 그건 일단 레베카한테 따져야 할 것이 아닐까?

심지어 나도 왜 용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구체를 만드는 느낌이었는데, 내 본능이 용을 뽑아냈다.

큭큭. 오른손의 흑염룡이. 아 백룡이구나.

“다음 대련은 정령화살의 레이나와 가속의 유은하의 대련이 있겠다. 두 생도는 앞으로 나와라!”

혼자 노가리까는데, 대련시간에 불방망이가 또 나를 지명했다.

“인생 진짜.”

“유은하. 당장 안 나와?”

안 나가면 저 불빠따로 또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겠지. 그래서 조용히 엉덩어릴 틀면서 나갔다.

“그래. 나왔습니다.”

“흥. 오늘이야말로 당신을 이겨주겠어요! 오늘의 내 정령화살은 한국이 그리 자랑하는 현무미사일급 파괴력을 지녔다구요!”

그거 보통 나 같은 여린 여자한테 박을 만한 건가?

“항복해도 돼요?”

“안 된다. 그 정도는 이겨낼 줄 알아야 유진석 동생이지.”

현무미사일을 맞고도 살아남거나, 피해서 살아남아야 신검의 여동생 자격이 있다면 나는 그 자리를 내려놓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레이나에게 뭘 했지? 너무 부조리하잖아.

아니, 최시우 저 색기는 뭐가 재밌다고 실실 웃고 있냐. 원래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이거.

“그럼 시작.”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 말 못했는데, 이 대련장에는 결계가 쳐져 있다.

능력사용으로 인한 피해가 바깥으로 퍼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령으로 위장한 레이나의 미사일을 피해도 대련을 구경하는 놈들에게 갈 피해는 없다는 거다.

하지만 문득 재밌는 것이 떠올랐다.

결국 저 귀잽이 후손은 궁 밖에 못 쓴다. 가까이 가서 맴매질하면 끝이란 소리다.

그래. 한 번은 이런 날이 와야지.

나는 품 속에서 나이프를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없다. 아, 그러고 보니 부서졌지.

“아, 무기 안 들고 왔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요?”

“아니, 그보다 왜 빡쳤는데?”

“레베카 교수님의 사인!”

아, 맞다. 이 년. 진짜 진득하리만큼 레베카의 팬이다.

팬인 이유는 하나다. 레베카가 이계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계인 출신 중에 S급에 오르는 헌터는 없다.

기본적으로 이계인들은 선민의식이 그 바탕에 있고, 오만한 자들이 많다. 당장 레이나만 하더라도 은근슬쩍 사람을 깔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분명 정령을 이용한 힘이나 마법에는 꽤 대단하지만, 또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엘프의 힘을 받은 이계인들은 노오오력을 하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한 인간과 달리, 세계수의 힘을 얻지 못하면 각성이 힘들다.

뭐 그래도 레이나는 히로인이자 이번 작품의 메인딜러기도 하다. 언젠가 세계수로부터 각성의 힘을 얻기야 한다.

물론 그 짓거리 안해도 일반 헌터는 현무미사일 급 정령화살로 죽이는 미친 여자다.

봐라. 날 친구라고 하더니, 라이벌이라 하더니. 아예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나온 군인의 모습이다 저건.

아니, 그냥 저건 살인마다. 죄없는 여자아이를 죽이려는 살인마.

“인생 참. 그냥 직접 가서 사인해달라하면 되지. 쯧쯧. 사람한테 현무급 정령화살을 쏠 용기는 있으면서 그런 용기는 없어?”

“너는 내 라이벌이에요!”

그러니까 니 라이벌은 최시우라구요.

정말 답이 없는 년이구나. 그래. 아무래도 불꽃창녀처럼 수치를 줘야 할 것 같다.

나는 입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담배를 다 태우기 전에 이 전투를 끝내겠다.”

“이익! 더는 봐주지 않을 거에요!”

레이나가 무서운 것은 하나 더 있다.

말했듯이 엘프는 마법에 통달하고 그 후손인 이계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레이나는 무려 무영창. 정령화살을 쓰는 입장에서 최고의 조건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저 년은 그 현무급 화살을 나에게 쏘았다.

엘프의 후손이라 조금은 짧지만 보통 사람보다 뾰족하고 기다란 저 귀를 내 오늘 뽑아버리고 말 것이다.

[정령화살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그런데 느리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씨발 장난치자는 건가?]

어? 텍스트에 욕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다. 아니, 굳이 말할 이유도 없잖아.

근데, 애초에 나는 말하지도 않는데, 저 텍스트가 왜 나오는 거야?

[정령화살이 내 몸에 닿는 그 순간, 나는 그것을 바로 잡았다. 양손으로 가볍게. 그리고 자극을 주지 않고 레이나쪽으로 돌렸다.]

사람한테 화살을 쐈으면 지도 맞을 각오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저 년은 나를 향해 저 미사일 같은 화살을 총 5발이나 날렸다.

그래서 전부 돌렸다. 저 년을 향해서.

[가속상태에서는 세상이 너무 느리다. 저 되돌린 정령화살이 레이나에게 격추하려면 가속을 푸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가속과 병렬회로를 풀었다.

그 순간, 화살들이 전부 레이나를 향해 날아갔다.

쐐에에엑! 콰앙!

“꺄악!”

“보았느냐? 아둔한 귀잡이여. 이것이 바로 내 세 번째 능력 다. 무엇이든 반사를 하지.”

내 선언에 반 생도들이 흥미롭게 시선을 보냈다.

특히 최시우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얼떨떨한 표정이다.

정작 상처투성이 레이나는 눈살을 요망하게 떨었다.

“어.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죠?”

……내 기억으로 레이나란 여자는 좀 재수없어도, 저렇게 뻔뻔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현무급 화살이라며 나한테 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피해자 행세입니까?”

“농담이잖아요!”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나는 어느새 무릎꿇고 있는 레이나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눕혔다.

“어?”

철썩!

엉덩이를 힘차게 후려쳤다.

“꺅!”

철썩!

“헤으응.”

철썩!

“헤으으윽.”

내가 때리고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철썩!

“헤으윽.헤응.”

아무래도 얘는 한수지보다 심각한 것 같다.

그래서 때리다 말았다. 수치를 주는 건 좋은데, 이러다 이건 벌이 아니라 상이 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지.

슬슬 끝내려는데, 또 누군가 귀를 자극했다.

“정말로 완벽하군. 이계인 출신을 저렇게 대놓고 모욕을 주다니 말이야.”

“그러게. 이계인을 보호하다 죽은 은하 부모님이 이 모습을 보셨어야 했는데 말이야.”

히로인은 아니지만 유진석의 동료이자 지금은 아카데미 교수를 맡고 있는 임유진과 불방망이가 대놓고 나를 까대고 있다.

은하 부모님이지. 내 부모님이냐? 나는 한다면 하고 때린다면 때린다.

“흐응. 흐응.”

뭔가 조금 전부터 레이나의 신음이 조금 더 요염해진 것 같아 그냥 풀어주기로 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진짜 원작기반 세상이 맞나 싶다.

그렇잖아. 레이나가 사실 이렇게 변태라고? 그럼 최시우 저 새끼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멋진데?”

슬쩍 최시우를 보니 하얀 이를 내보이면서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혹시 쟤 뭐 NTR 성향이라던가. 그런 거 있나? 아니, 진정하자. 애초에 지금은 최시우와 레이나가 연인관계도 아니니까 별의미 없겠지.

아니, 근데 히로인들이 하나같이 이 모양이라면 대체 쟤한테는 어떤 히로인이 어울리는 걸까?

아직 몇 명 남았나? 일단 레이나, 한수지, 유은하를 제외하면 일곱이나 남았다.

그래. 내가 최시우의 입장이라면 솔직히 말해 엉덩이 맞고 좋아하는 변태녀를 좋아할 수는 없다.

“승자, 어, 음. 유은하!”

불방망이는 엉덩이를 쭉 뺀 고양이 자세로 엎어져 있는 레이나를 힐끗 쳐다보면서 내 손을 들었다.

한쪽에서는 한수지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레이나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 그렇겠지. 나도 놀랐는데, 저 불꽃창녀가 오죽하려고.

“유은하. 꼭 그런 식으로 승리를 해야겠냐?”

그러게 누가 대련시키래? 불방망이가 요즘 들어 너무 거만하게 군다.

“뭐로 가든 승리만 하면 되잖아요.”

애초에 한참 진지하게 가는데, 장르를 성인물로 바꾸는 건 레이나였지. 내가 아니다.

어쩌면 이거 나름 고증 지킨 건가?

애초에 신검무쌍 자체가 라이트노벨에 속한 장르기도 하다. 이런 개그코드 정도는 있어야지.

아니면 정말로 레이나가 그런 변태라던가.

아무래도 한동안 레이나와는 좀 떨어져 지내야겠다.

그건 그렇고.

“씨발. 또 하늘이 어두워지네.”

* * *

한성 아카데미 점심시간은 생도들 식당에서 먹거나, 매점에서 사먹거나 둘 중 하나로 나뉜다.

내가 워낙 아카데미를 드문드문 다녀서 그렇지. 생도들 식당은 점심시간마다 내가 보지 못한 인간들로 꽉 찬다.

그러니까. 다른 반 생도들이라거나. 선배들도 존재한다.

웃긴 건, 어지간하면 외모는 다들 평타 이상이라는 거다. 과연 주인공이 다니는 아카데미라는 건가.

“그런데 엄청 소식하네요. 그래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얼마 전까지 헤으응거리던 레이나가 내 옆에 앉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며칠 안 먹어도 버티는데 뭘.”

“……그게 사람이에요?”

“아닐수도?”

설탕물만 먹어도 문제가 없다.

그냥 형식적으로 먹을 뿐이지. 아, 그래도 간식은 좋아한다.

케이크나, 스무디나 타피오카나 이런 거 말이다.

그런 거라면 하염없이 먹을 수 있다. 돈문제만 아니라면 말이지.

그러고 보니 100만원 얼마 전에 벌었잖아?

그 돈으로 나는 매점에 파는 다양한 군것질들을 사왔다.

치즈케이크에, 타피오카에, 마카롱. 그리고 기타등등.

“그러다 살쪄요.”

레이나가 옆에서 설친다.

살? 누가? 내가? 웃기는 소리다.

“나 밤에 족발먹고 자도 살 안 찜 수고? 꺄륵. 꺄르륵.”

“내 기필코 당신을 쓰러트리고 말 것이에요.”

“헤으응. 헤윽.”

“가.갑자기 왜 그런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는 거에요?”

왜기는 왜겠어.

“아니, 네가 아까 낸 신음이에요. 여기 녹음도 해놨지.”

휴대폰을 꺼내 녹음파일 하나를 보여줬다.

물론 뻥이다. 저런 여자의 신음따위 내 알 바인가.

“내.내놓으세요! 꺄악!”

“아, 뭐하는 거야. 이 변태야!”

레이나가 고꾸라지더니 내 가슴에서 버둥거린다.

뭐하자는 거지? 잡아먹어달라는 건가? 한 번만 더 버둥거리면 꿈이기도 하니 가위치기를 넘어서 찢어주겠다.

“미친. 진짜 배가 하나도 안 불렀어.”

“그게 느껴지냐? 그보다 떨어질래? 지금 불꽃창녀랑 최시우가 눈따갑게 쳐다보는데?”

“윽.”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둘 다 눈이 다르다.

불꽃창녀는 레이나를 무섭게 째려보고 있고, 최시우는 흐뭇하게 쳐다본다.

저 얼굴들이 몹시 기분나쁘다. 이러다가 나 레즈로 찍히는 거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날 밤. 한성아카데미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 올랐다.

제목: 유은하 레즈임?

[유은하가 대련에서 레이나 엉덩이를 때리는 짤]

[유은하가 식당에서 레이나와 부둥켜 안고 애정행각 벌이는 짤]

­내가 레즈 극혐하는데, 저 둘은 그림이 되네.

­눈나들 나도 껴줘

­레이나코인 탑승합니다.

­한수지 코인 뜨는 날 있다 ㅅㄱ

­최시우는 뭐임?

­뭐긴 뭐야, 유은하가 양성애자라는 거지.

­아니면 유은하 딜x라던가.

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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