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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14화 (14/331)

〈 14화 〉 13. 선빵필승!

* * *

* * *

그 시각. 김승준의 집.

“아이고. 학비란 학비는 다 받아먹고 왜 안 가겠다는 거니!”

“시끄러! 내가 안 가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중년의 여성과 한 소년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김승준. 중학생 무렵부터 한성 아카데미에 가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 겨우 뒷돈과 턱걸이로 한성에 재학 중인 소년이었다.

그리고 던전실습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아카데미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본 김승준은 최시우와 유은하가 활약할 것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 아예 아카데미를 빠졌다.

“네 누나가 너 한성보내려고 돈버는대로 네 학비로 넣었는데!”

“아, 시끄러!”

화끈한 불속성 효자 김승준은 어머니를 무시하며 제 방으로 들어가 혼자 벽을 두드렸다.

“젠장! 최시우! 유은하! 가만히 두지 않겠어!”

화가 나도 너무 난다.

참을 수 없다. 이 분노를 어디다 풀어야 할까.

어릴 때부터 신검을 갈망한 자신이 성좌의 선택을 받지 않은 것은 그 두 연놈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 두 연놈을 죽일 방법을 찾자. 그래야 한다.

“호오라, 가만히 있지 않겠다면 어쩔 생각이지?”

“그야 밥에 독이라도 타서.”

“큭큭큭. 소인배다운 발상이군.”

뭔가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어느새 김슨준의 방은 시커멓게 변했다.

“다.당신은 누구?”

“격이 떨어지는 놈이 감히 나를 궁금해 하다니.”

김승준은 입술을 씹었다.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 주제에 저게 무슨 말같지 않은 소린가.

안 그래도 던전에서 그 두 연놈이 활약할 것을 생각하면 속에서 부아가 치미는데, 왜 자신은 이런 부조리함을 견뎌야 하는가.

“왜 이 부조리함을 견뎌내야 하냐고?”

“!!”

“그것은 당연히 네가 모자란 놈이기 때문이다.”

저 정체불명의 존재는 저를 놀리려고 찾아온 것인가.

괜히 발끈해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을 세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라면 모자란 네놈도 그 둘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지.”

“저.정말입니까?”

“그러나 딱 그 정도다. 그 힘을 써 최시우와 유은하를 쓰러트리는 방법은 너에게 달려있다.”

“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승준은 보이지도 않는 기괴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반듯하게 접어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어둠 속에서 검은색 손이 나와 김승준의 가슴을 뚫었다.

“커헉!”

김승준은 제 가슴에 무언가 박히는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그 시각. 신검사용자 최시우는 아카데미에 있었다.

본래라면 이번 던전탐사에 가야 하지만, 회귀한 지금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이 시간에 다가올 적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낫지.

그래서 아카데미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할 거냐]

“일단 김승준. 그 놈 뒤에 있는 놈부터 잡아야죠. 김승준 자체는 레이나나 한수지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따로 교관님한테 저 대신 레이나 넣으라고 한 겁니다.”

김승준 자체는 별거 없다. 그 뒤에서 자만하고 있을 개자식부터 잡는 것이 우선이다.

[문제는 유은하가 아니냐. 유은하가 가진 저 힘은 그저 그런 힘이 아니다. 성좌인 내가 보건대 뭔가 이질적인 것이 느껴져.]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믿는 겁니다. 그리고 김승준 뒤에 있는 놈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유은하가 죽지 않죠.”

김승준에게 힘을 준 존재. 흑신교.

7대 죄악과 더불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광신교.

자기들을 방해하는 한성 아카데미를 전복시키기 위해 온갖 민폐를 부리는 족속들. 그 희생자가 다름아닌 유은하였다.

[음. 그렇기야 하지만.]

“유은하를 죽게 할 수는 없어요. 그 아이를 위해서도, 인류를 위해서도.”

과거 유은하에 박힌 괴수의 코어는 결국 폭주하여 거대한 게이트를 만들어냈다.

당연히 아카데미는 큰 피해를 입었고, 많은 피해자가 나왔다.

게이트는 급하게 파괴하였으나, 서서히 축소시켜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묵인 아래에 파괴하였기 때문에 마기가 퍼져 한국에는 게이트의 출현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유은하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제외하더라도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 흑신교의 괴인들.

그 자들은 처음에는 흑신을 모신다고 떠벌러디가 기어이 토벌당할 처지가 되자, 목숨을 구명하고자 죄악들과 손을 잡았다.

[아카데미 결계를 깨는 놈이 저기 있군.]

“보이네요.”

아카데미 뒷문 쪽에서 뭔가 사전 작업을 하는 놈들.

정확히 전교의 모든 학생들의 던전탐사가 시작된 오늘. 흑신교의 놈들이 아카데미의 결계에 다른 술식을 쳐둔다.

증오에 빠진 자를 타락시키기 위해 어둠을 만들어 집어삼키는 놈들.

“작업 철저히 했지?”

“그냥 던전 내부에서 매복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어린 년들도 맛보고. 헤헤.”

“멍청한 놈.”

자기들 교리에 맞춰 흑신을 찬양하는 무리. 그런 주제에 범죄란 범죄는 다 부리고 다니는 쓰레기들.

저놈들 탓에 한국은 게이트의 위기를 맞이했다.

“용서하지 않겠어.”

최시우의 검에 빛이 깃들었다.

* * *

머리가 아프다. 그저 버스를 타고 왔을 뿐인데 멀미에 미칠 뻔했다.

빌어처먹을 불방망이. 멀미 난다니까 알아서 하란다. 내 언젠가 저 불방망이의 불빠따를 빼앗아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줄 것이다.

이럴 거면 그냥 가속이랑 병렬 쓸 걸 그랬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이미 비틀어진 원작이라면 더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김승준 말고 다른 놈도 나타난다거나?

위액이 올라오는 것을 꾹꾹 참으며 차량에서 내리자, 저 멀리서 호들갑을 떨며 달려오는 빨래판 핑크색머리 여성이 보였다.

“하와와., 하와와. 저기 있는 거시애오!”

“오. 븝미쟝.”

븝미쟝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제대로 나타나 주었다. 그녀의 손에는 내가 부탁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백발언냐. 이걸 받으시는 거야요.”

“엄청 비싸 보이는데?”

척 봐도 최소한 양산형무기는 아니다.

손에 착 감기는 것이 긴 도검이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그런데.

“……진짜로 묵직하네요.”

대검도 아니고 뭐 이리 무겁나. 신체강화를 하지 않으면 휘두르는 게 고작이다. 아니 무기 자체는 괜찮아보인다. 검신에 흐르는 윤기도 그렇고.

“1천만 밖에 안 하는 것이애오.”

“아니, 나 천만원어치는 안 도와준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은 입막음비기도 한 것이애오.”

입막음비라니. 이것이 바로 뇌물이란 건가.

살다살다 내가 뇌물을 다 받아본다.

“무슨 말이에요?”

“실은 우리 오빠야들이 그 던전 함정보스가 존재하지 않는 던전으로 등록해둔 것이야요.”

“아하.”

“그런데 이제 와 협회측에 함정보스가 사실 존재했다고 알려지면 우리는 아주 큰 벌금을 내야하는 것이애오. 하와와 하와와 븝미쟝 큰 일날 뻔 한 거야요.”

“…….”

어, 이거 협회에 신고하면 나 돈 오지게 받을 거 같은데.

이거 헌터들 생명도 걸린 문제라서 천만원가지고는 택도 없다.

그리고 븝미쟝. 말이 참 많다.

“저기 븝미쟝. 저 입막음 하려면 하나 더 도와주시는 거시애오.”

“하와와. 무엇이야요?”

내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 무엇이든 들어줄 것처럼 매달리는 김븝미

“븝미쟝 혹시 모르니 이 던전 근처에서 호위 좀 서주시는 것이야요.”

“호에에. 알았다는 거시애오!”

내 상냥하고 친절한 부탁에 김븝미는 던전 입구 근처에 착 붙었다.

이것으로 비틀린 원작 탓에 김승준을 제외한 다른 놈이 개입할 가능성도 미리 손봐둔 격이다.

그런데 최시우는 어디로 간건가.

최시우가 어째 보이지 않는다. 본래는 이곳에 함께 와 있어야 하는데. 차에서 함께 내리지 않았던가?

아니야. 차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이 자식 그럼 어디로 갔어? 나 빼고 어디서 노가리까고 있는 거 아니야?

“유은하!”

“아 뭐야. 진짜. 깜짝이야.”

“너. 조금 전 그 여자 누구야? 그 빨래판!”

조금 전의 빨래판이라면 그 븝미 밖에 없지.

“보다시피 빨래판?”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나한테 그런 짓해놓고 어떻게 다른 여자를 봐?”

이건 무슨 터무니 없는 오해가. 아, 자업자득인가.

“이거 왜 이래. 애초에 저 사람은 나한테 신세를 져서 나한테 도움을 준 것 뿐이라고. 무기 보면 몰라? 나는 너처럼 신화급 무기도 없으니 누구한테 빌릴 수밖에 없어.”

“흥.”

이년이 지금 끼부리려는 건가.

아무래도 던전에서 나한테 음습한 짓이라도 당하고 싶은 모양이다.

히로인 빼앗는 취미는 없지만, 여기서 최시우란 인간은 원작과 달리 히로인을 빼앗기는데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남은 하렘도 어마어마하니 한수지 하나 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한수지는 입을 삐죽이더니, 다른 애들과 떠드는 레이나에게 가서 열심히 내 뒷담을 하기 시작했다.

저 둘은 지금은 쓸모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역시 최시우.

“여, 너 의외다? 던전에 안 갈 줄 알았는데.”

한참 최시우가 어디 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 전까지 다른 교관들과 웃고 떠들던 불방망이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그렇게 말했다.

“누구누구가 오늘 말한 탓인데 뭔 소리에요.”

“세상사가 다 그런 거야 요 녀석아.”

네가 그러니까 유진석에게 버려진 것이다.

아니, 이제 이 여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지금은 최시우가 중요하다. 그 머저리 같은 놈이 이번에 힘을 키울 생각을 안하고 어디서 놀고 있는 것에 나는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가 띵해진다.

“그나저나 최시우는 어디로 갔어요?”

“네 남편? 던전은빠진다던데.”

“누가 남편이라는 거에요. 이 아줌마도 익명게시판 보나보네.”

아카데미 게시판은 여전히 난리가 났다.

최시우가 유은하의 남편이라는 등, 유은하는 남자고 여자고 가리지 않고 다 따먹는다는 등의 온갖 음해로 나는 시달림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일일이 신고하면 대체 몇 명이나 잡힐지 감도 안 나오니 참고 있는 거다.

“누가 아줌마라는 거야?”

김지혜가 내 머리에 콩하고 꿀밤을 박았다.

“네. 다음 아줌마.”

“요 녀석이. 아무튼 최시우라면 볼 일 있어서 빠진다고 했어. 어떻게 알았는지 그걸 쏙 빼네.”

“지금이라도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정신 나간 놈. 날 볼 때마다 히죽이죽 웃더니 기어이 미쳐버린 거다. 이 세상이 그 놈 어깨에 달려있는데.

그놈이 진짜 그렇게 빠지겠다면 유진석이라도 다시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 잠깐, 그런데 자기 대신 레이나 넣으라 했다고?

그럼 이번 조에 레이나가? 그럼 김승준은 잡을 수 있을 거다.

“무슨 수로? 나는 방임주의라서.”

“귀찮은 거겠지.”

내 말에 불방망이는 관자놀이에 핏줄을 세우더니 조 명단에 무언가 끄적였다.

“아무튼 지금부터 조를 불러주겠다. 자, 다들 주목!”

레이나가 함께 하면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3조: 김철수, 유은하, 김승준, 박재상

듣도 보도 못한 생도 둘에 김승준과 나.

이거 망한 거 아닐까. 최시우 이 개 같은 놈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김철수랑 박재상 둘 다 고기방패로 쓴다고 해도 내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

일단 보험으로 무기는 가져왔는데. 이걸로 죽여야 하나?

“레이나 넣어준다며?”

내가 입을 부풀리며 불방망이한테 따지자, 그녀는 조명단으로 내 머리를 쳤다.

“밸런스를 맞춰야지 바보야.”

아 망했다.

불방망이의 되도 안 되는 트롤짓으로 나는 꼼짝 없이 이름없는 엑스트라들과 함께 했다.

“유은하, 잘 부탁해.”

“나도. 실력이 좀 안 좋을지 모르지만 잘 부탁할게.”

너희들에게는 기대도 안 한다.

“나야말로 거품있으니까. 던전에서 협력 잘하자.”

그래도 엑스트라 생도 둘과는 적당히 인사는 했다. 문제는 김승준인데.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제는 아예 시선강간이라 여겨질 정도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아무래도 위험하다. 원작과 다른 세상. 즉, 나는 언제든 죽을 위기에 처했다.

딱 봐도 분위기가 달라. 목 근처에도 흑신교의 문양 비스무레한 것이 보이고.

잠깐, 아직 던전 들어가기 전이고, 저 녀석 싸구려 괴인이라 불방망이한테 한방감이다.

그렇다면 내가 살기 위한 최선의 상책을 써야지.

저 강간범은 나를 노려보던 눈길을 거두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이, 유은하. 오늘은 잘 부탁…….”

선빵필승!

뻑!

나는 발로 있는 힘껏 김승준의 고간을 후려쳤다.

순간, 김승준이 두 눈을 부릅 뜨더니 고간을 부여잡고 흐느적거렸다.

그리고 내 행동에 이곳을 쳐다보는 불방망이를 향해 소리쳤다.

“교관님! 이 새끼 흑신교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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