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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15화 (15/331)

〈 15화 〉 14. 던전에서 백합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 * *

* * *

내 말에 놈은 찔리는지 두 손을 젓지만, 그것이 제 무덤을 파는 거라는 것은 모르는 걸까.

“무슨 개소리야? 흑신교는 무슨 흑신교?”

이 새끼는 아무래도 괴인이 되면서 더 멍청해진 것 같다.

딱 봐도 각이 나오거든.

“이 새끼야. 네 뒷목에 있는 성게문신이 그 증거에요 시발아. 게다가 아주 온 몸에 마기를 두르고 있네. 나 흑신교에요 하고 광고하고 다니냐?”

얘는 괴인이 되고 머리가 더 굳은 케이스다.

“이. 시발년이! 그래 내가 오늘 네년을 제일 치욕스럽게 덮쳐주마!”

“실좆 관심없음 수고. 꺄르륵 꺄르륵.”

설마 내 입으로 저런 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 그런데 뭐 어때? 이몸은 생물학적 여자인데.

아무래도 내 말이 사실인지 놈은 격분하더니 눈깔에 혈관을 무시무시하게 띄웠다.

놈은 마침내 이성을 잃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까앙!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불빠따가 놈의 몸을 후려치니, 놈은 마치 저 하늘에 날아가는 별처럼 되어 던전 입구로 그대로 들어갔다.

어느새 피묻은 야구방망이에서 피를 털고 있는 김지혜의 모습은 과연 교관이라 할 만했다.

“교관님 스트라이크 아웃이네요. 그래서 킬하셨어요?”

“묵직하게 때리기는 했다만. 그래도 배후를 알아야 하니 죽일 수는 없지.”

그 배후 이미 내가 알고 있기는 한데.

“그럼 던전에 들어가버린 저것은 어떻게 빼오게요?”

“나에게는 훌륭한 수하들이 있지 않니? 자,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새로운 시련을 내리겠다.”

시련? 이 여자가 진짜 미친 건가.

“던전으로 들어가 꼭꼭 숨은 김승준이란 괴인을 잡아와라. 여의치 않다면 딱 죽기 직전까지만 패도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너희들 모두에게 높은 성적을 쥐어주지!”

저 사람 아무래도 그냥 귀찮은 것 뿐이다.

생도의 입장에서 괴인을 처리하면 어쨌든 그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저 쓰레기 교관 입장에서는 더는 생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거 쓰레기네? 불방망이가 아니라 저건 불타는 쓰레기다.

신입생 생도들에게 괴인을 맡기다니, 지금 김승준은 이성이 나간 상태다. 저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들이 들어가면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

애초에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생도들에게 괴인을 상대하라는 것은 농기구 들던 백성을 무기를 들게 하고 칭기즈칸의 몽골군에게 던져준 꼴이다.

“저 교관님.”

“왜?”

“굳이 신입생들 다 들어갈 필요 없죠? 생도들 죽게 되면 잘나신 불방망이의 명성만 갈려나갈 테니까.”

원작에서는 한성 아카데미가 괴인들의 피해로 생도들이 절반 이상 죽는다.

한성 아카데미는 국내 3대 헌터 아카데미 중 하나. 그 아카데미의 절반이 죽고, 동 시기 다른 아카데미들도 흑신교의 습격에 피해를 입는다.

후일 흑신교나 죄악과의 결전, 최종결전을 조금이라도 쉽게 하려면 헌터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유해야 한다.

원작의 작가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if엔딩을 많이 만들었다.

예를 들면 헌터 아카데미의 생도들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인 미래라던가. 생도들을 살려 미래의 헌터들을 살려둔다면 중국의 군벌빌런도 쉽게 이겨낼 수 있다.

여기서는 애들 스펙업을 위해서라도, 나, 레이나, 한수지가 가는 것이 맞다.

“그렇기는 하다만. 왠지 내가 나쁜 년이 된 거 같구나.”

“된 게 아니라 진짜로 나쁜 년이신데.”

“커.커흐흠. 커흠. 뭐 아무튼 너희가 김승준을 제압하고 돌아오면 A반의 중간고사는 없는 것으로 해주마.”

지도 찔리는 게 있는지 이번에는 꽤 크게 한턱 쐈다.

“우리가 괴인을 이길 수 있겠어요?”

“이미 불빠따에 얻어맞은 김승준이야. 우리끼리도 가능할 거야.”

어차피 꿈이잖아. 저지르고 보는 거다.

“와아아아아!”

“끼요오옷!”

어리석은 생도들이 좋다고 함성을 지른다.

이미 다른 반 애들은 각자 맡은 던전에 들어갔는데, 이반은 나와 레이나, 한수지만 던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반 애들이 수준낮은 것은 아니다.

A반은 특별추천이나 나름 능력있는 애들이 걸려들어간 곳. 당연히 길드소속 애들도 많고, 유명 가문의 아이도 있다.

당연히 유은하인 나도 신검의 동생이라 저 높으신 분들이 일단 A반으로 넣어둔 거다.

던전 한 번 안 간다고 다른 반이랑 차이가 날 리 없겠지.

“그러니까 나와, 레이나, 한수지가 들어갔으면 하는데.”

“음. 그게 낫나.”

사실 말이다. 처음부터 김철수나 다른 애 빼고 최시우 하나만 있었으면 김승준을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최소한 레이나만 있었어도 전략을 짰을 것이다.그런데 밸런스 드립치며 지금같은 조를 만들었으니 김승준이 던전에 있는 지금 신화급 무기소유자와 엘프의 후손을 데리고 가는 편이 이득이다,

“여기에 븝미쟝도 함께 하면 딱 맞겠네.”

나는 레이나와 한수지, 그리고 마법소녀 김븝미를 한데 모았다.

“이쪽은 정령화살 레이나에 불꽃창녀 한수지에요. 이쪽은 븝미쟝. 리폼길드의 마스코트로 실명은 김븝미. 나랑 던전에 갔던 적이 있어.”

“하와와 내 이름은 김븝미라고 해양. 잘 부탁하는 거시애오.”

내 말에 김븝미는 멋쩍게 웃으며 제 소개를 마쳤다. 그러자 레이나와 한수지는 복잡한 시선으로 븝미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우리 몰래 언제?”

“전에 학교 쉴 때.”

레이나는 애매한 눈빛을 하다 고개를 갸웃했지만, 한수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다.

왜, 뭐. 어쩌라는 걸까.

설마 저한테 키스해놓고 다른 여자 데려왔다고 저러는 걸까. 이거 억울하다. 본래 능력있는 수컷은 많은 암컷을 거느리는 법.

내 비록 생물학적 유은하. 여자라고 해도 마음만큼은 아직도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다. 이런데서 한수지 하나에 발목이 잡힐 수는 없지.

“자, 지금부터 김승준에 대해 설명할게. 김승준이 고유능력이 있으면 모를까. 신체강화나 하는 멍청이야.”

문제는 마법운용력이 좋아졌다는 점. 하필이면 내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구체가 아닌 용을 만든 탓이다.

마법운용력에 따라 신체강화 컨트롤이 달라진다.

아마 놈은 원작보다 강할 거다. 사실 레이나가 있는 조 그대로 갔을 때도 남은 둘을 고기방패로 쓰고 레이나랑 함께 딜 넣어 잡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나름 딜러로 구성된 파티니, 한수지랑 레이나가 완벽하게 놈을 잡아야 한다.

“하와와. 그런데 누구를 잡는 것이아요?”

“괴수코어를 박은 괴인생도에요.”

“호에에. 조금 전에 이 던전에 박힌 그 괴인씨요?”

“네.”

“코어 뽑아가도 되는 거시애오?”

아니, 그건 안 되지. 그럼 죽는데. 일단 잡아서 고문은 해야 한다. 그래야 본격적으로 흑신교에 대해 두각이 드러나고, 흑신교 스토리에 들어가게 되니까.

“일단 괴인문제라 협회 쪽에도 연락이 가겠죠?”

“하와와. 아쉽는 거시애오. 하지만 븝미쟝. 백발언냐를 도와줄 거시애오.”

슬슬 저 엿같은 컨셉에 익숙해져가는데, 레이나와 한수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 나를 보는 시선이 영 곱지 못하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여자랑 인연을 맺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는 표정.

“아니, 이렇게 보여도 좋은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거구나.”

“무슨 이상한 오해를 하는데, 지금 븝미쟝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마법을 잘 쓰기 위해서니까.”

이 사람은 조건부 능력자라 이 말이지. 실제로 힘만 보면 C급 이상 헌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저 엿같은 말투가 문제일 뿐.

“하와와. 븝미쟝은 븝미쟝인 거시애오.”

“그렇다는데?”

찰떡같이 말했으면 개떡같이 받아들이는 븝미쟝이다. 어떻게 분위기라는 걸 못 맞추는 걸까.

두고 보자. 나중에 반드시 리폼길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까발려줄 것이다.

* * *

고블린의 미궁

고블린의 미궁은 숲과도 같은 형식이다.

보통 보스로는 고블린 십장이나, 고블린 메이지 등. 결국 고블린급 밖에 안 되는 놈들이지만, 아마 지금은 김승준 그놈이 보스가 되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 멍청이가 괴인의 힘을 아무리 못 다뤄도 고블린 보스는 끝장냈을 테니 말이다.

“일단 이 실습던전은 고블린이랑 뿔각토끼가 나온데.”

“뿔각토끼? 엄청 귀여운 그 뿔달린 토끼?”

“조심해. 그러다 두개골 파여 죽을 걸.”

고블린과 뿔각토끼. 둘 다 괴수 중에서 가장 약한 축에 속한다.

뭐 고블린이야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것이다. 어차피 많은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서 초반에 잘 죽는 몬스터가 아닌가?

뿔각토끼는 대가리에 유니콘 뿔 같은걸 달고 있는 토끼다.

겉으로만 보면 귀엽지만, 이놈들이 독종인 것이 방심하고 가까이 가다가 온몸이 뜯기거나 무리지어 다니는 놈들에게 덤비면 아예 몸에 뼈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독한 놈들이다.

“호에에. 호에에. 다들 보는 거시야요. 저기 뿔달린 토끼인 거시애오!”

어 진짜다. 얼마 걷지 않으니 뿔달린 토끼가 붉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여길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헌터씩이나 되어서 저런 걸 보고 눈을 반짝거리시면 어쩝니까.”

“파이어볼!”

뭔가 한마디 하려 했다니 대뜸 불덩어리를 뿔각토끼를 향해 던진다.

“응?”

“식량이 만들어진 거시애오!”

순식간에 불타올라 토끼구이가 되어버린 뿔각토끼. 븝미쟝은 식량을 얻어 기뻐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털도 안 뽑고 내장 정리도 안 한 걸 그대로 먹을 수는 없다.

심지어 숯검댕이가 되었다.

“븝미쟝. 그거 지지에요.지지. 버리세요.”

“넹.”

말도 잘 듣는 븝미쟝은 시무룩해져서 뿔각토끼 구이를 버렸다.

대체 어디까지 날아간 건가? 이왕이면 던전 초입부에 있었으면 상대할 만 했을 텐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고블린과 뿔각토끼가 늘어나다보니 상대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기에에에엑.”

“으악 더러운 고블린이다.”

무리지어 다니는 고블린을 만났다.

놈들의 음흉한 시선이 우리의 몸을 훑는다.

아, 그거다. 저놈들. 우리로 성욕을 해소하고 싶은 생각이다. 여러 작품의 고증에 충실해서 저놈들은 인간 여자에 발정하여 여자를 지들 암컷으로 취급한다.

침을 질질 흘리며 내 가슴을 훑어보는 놈들의 시선에 불현 듯 화가 치밀었다.

“시발놈들이 어딜 쳐다보나.”

“에.에에. 음. 그렇지. 어딜 보는 거야!? 이 변태새끼들!”

고블린들과 함께 내 가슴을 쳐다보던 한수지가 나보다 더 화를 냈다. 엽화의 창에 불이 붙어 놈들을 겨냥했다.

레이나의 정령화살이 고블린의 목을 꿰뚫었고,

한수지의 엽화의 창이 고블린의 머리를 터트렸으며,

븝미쟝은 불로 열심히 고블린들을 태웠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관전했다.

“어우. 야. 언냐들 대단해요.”

나는 모두의 활약에 박수 세 번 쳐줬다.

“자.잠깐, 너는 왜 놀고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고블린들을 잡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네? 뒤에서 담배나 피지 말고 도우란 말이야!”

“호에에 호에에!”

그치만.귀찮은 걸. 아니, 나도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김승준과 싸우려면 체력을 꽤 보존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년들은 최시우의 히로인들이다.

한수지라면 몰라도 레이나는 아마 속에서는 최시우가 좋아서 큥큥거리고 있을 거다. 김승준 잡고 최시우에 고자질하면 나만 귀찮아진다.

나는 입에 양손을 레이나와 한수지의 어깨에 올리면서 작게 말했다.

“너희들을 믿어서? 나 없이도 고블린 따위는 쉽게 해치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지.”

내 말에 레이나와 한수지는 두 눈 둘 곳없이 마구 떨렸다.

한수지는 머리를 긁으며 히죽히죽거리고, 레이나는 갑자기 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다소곳이 세우는 모습이 갑자기 끼를 부리는 듯 했다.

심지어 김븝미도 마찬가지다. 븝미의 두 눈동자가 격하게 떨리더니 눈을 반짝거렸다.

“박력있는 거시애오!”

아무래도 내 히로인이 한 명 더 생긴 것 같다.

대체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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