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16. 빌런격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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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의 여동생을 여기서 범하면 나도 신검사용자가 될 수 있겠지?
저.저리 가! 싫어!
순간 뇌리를 스치는 알지 못하는 기억 탓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놈을 쳐다봤다.
1페이즈가 허무하게 박살 난 김승준의 몸은 정말로 온 몸이 깨진 괴물 그 자체였다. 이형이라고 표현해야 옳았다.
아마 이 모습은 최시우가 봐도 기분 나쁘다고 하지 않았을까.
“으, 기분 더러워. 저거 뭐야. 몸이 깨졌잖아.”
“더 기분 나쁘게 변했는데?”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이야요? 븝미쟝 넘무 무서운 것이애오!”
여성진이 진짜 천하의 온갖 더러운 것을 쳐다보는 시선으로 쳐다보니, 그 괴물딱지는 마침내 다시 일어섰다.
“기.키에에에에에엑! 큭큭큭. 이것이 바로 흑신교의 힘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나는 더욱 진화할 것이다! 자, 보아라! 내가 이 고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너희들 모두를 죽일 것이다!”
진화선언과 동시에 놈의 몸에 검은 실이 착착 감기더니, 마치 고치의 모습을 띄기 시작했다.
확실히 2페이즈로 넘어가면 강해지기는 한다. 안 그래도 여자들은 고생했는데, 2페이즈가 시작되면 저 변태 고블린에게 강간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저 미친놈. 빨리 나가서 교관을 부르는게 어때요?”
"하와와와. 븝미쟝 죽기 실은 것이애오!"
“가서 언제 불러? 그 전에 이놈이 진화인지 뭔지 할 텐데?”
“자.잠깐, 유은하? 가지 마세요? 위험하다니까요?”
[징그러워. 징그러워. 징그러워. 기분나빠. 기분나빠. 기분나빠]
슬슬 저 텍스트에 익숙해졌다. 지금 하나 확실한 것은 나는 반드시 이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 진화할 시간을 누가 준데? 원래 변신타임이 적에게는 딜타임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놈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고치에 마법먼역이 걸린 검을 박아넣었다.
푸욱!
“컥!? 이 검은 대체 무슨. 비겁하다! 진화하는 중에 공격하다니!”
어쩌라는 걸까. 살 가치도 없는 쓰레기가.
개구리가 검에 박힌 채로 바둥거릴 때. 나는 고블린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투구를 들고 사방에 떨어져있는 기름덩이를 퍼내 이 기분나쁜 개구리인지 고블린인지 뭔지 모를 것에 뿌렸다.
“서.설마? 네 년! 비겁하다! 비열해! 적어도 기다려줘야! 컥!?”
나는 아무 말없이 놈에게 꽂은 검을 사정없이 더 밀어 넣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그제야 놈도 뭔가 느낌이 오는 건지 고개를 흔들었다.
“유.유은하! 내가 미안하다! 실수했어! 살려줘! 다시는 너에게 안 덤빌게! 안 돼! 그거 던지지 마!”
“죽이러 왔으면 자기가 죽을 각오도 했어야지.”
나는 라이터를 던졌다.
이미 기름에 푹 젖은 놈의 몸에 라이터가 떨어지자 그대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아악! 나.나쁜 년! 비열한 년! 이렇게 된 이상, 혼자 죽지 않을 거다! 죽어라! 유은하!”
산 채로 화형당하면서 이미 진화할 기회조차 잃은 그 괴물은 나를 향해 다시 덤비려고 하였으나, 어디선가 날아온 창이 놈의 몸에 푹 박혀 벽에 고정되었다.
“크헉!”
“그래도 마지막은 내가 장식했다고?”
한수지가 승리의 미소를 짓자, 괴물은 벽에 박혀 검과 창을 빼내려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이윽고 저 괴물은 재가 될 때까지 몸이 불타올랐다.
놈이 잿더미가 되고 나서야, 내 뇟속을 잠식하던 그 더러운 악몽이 해방되는 듯 머리가 맑아졌다.
힘을 너무 쓴 탓인지 앞이 어둑어둑해졌다.
담배가 필요한 시점에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 라이터.”
뒤늦게 앞뒤 생각 안 하고 라이터를 던져버렸다는 생각에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 * *
한국헌터협회
전작의 주인공 유진석은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예전에 평양의 게이트를 막고 사실상 전세계가 지옥에 빠질 뻔한 것을 구한 유진석이었으나, 그렇다해도 괴수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꽤 부자라 굳이 헌터짓을 하지 않고 퇴역해도 상관없지만정의감에 똘똘 뭉친 1세대 신검사용자 유진석은 오늘도 괴수를 잡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문득 사무처의 동료가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야, 진석아 네 여동생 한건 했는데?”
“무슨 말이야?”
“한성 아카데미 그 신입생 A반에 김승준이라는 애가 흑신교에 괴인이었는데, 유은하가 처리했다나 봐.”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역시 네 여동생답다고나 할까. 뭐 아무튼 오빠로서 여동생 좀 칭찬해줘야 하는 거 아냐?”
협회 사무처에서 일하던 동료가 유진석에게 실습 던전에서 일어난 괴인사건을 정리한 문서를 넘겼다.
유진석은 머리로 그 수상한 지식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흑신교는 분명 몇 년 전에 자신이 몰살시켰을 텐데. 아직 살아남아 있었나?
활동을 개시했다는 뜻은 어느 정도 세력을 회복했다는 말일 터. 골치가 아파졌다.
‘그나저나 은하 걔.’
뭔가 이상해졌다. 최근 신경을 못 써서 거의 방임주의라 더 걱정했는데, 갑자기 얘가 괴인을 처리했다고?
동료들이 다 증명했고, 유은하 본인도 쓰러져서 헌터병원에 가 있다더라.
‘대체 어떻게?'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은하는 맨날 방구석에서 여포짓만 할 뿐이지. 철이 덜 든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한성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괴인을 잡았다?
설마 김지혜가 애를 가르친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동료로서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김지혜는 애들을 가르치는 재능은 없다.
그럼 레베카일까. 아니, 레베카도 아닐 것이다. 애초에 분야가 다르니까.
‘그러고 보니 안 만난지 꽤 됐지. 병문안 겸 한 번 가볼까.’
* * *
그러니까실격당한 히로인을 위한 새로운 스토리란 거죠! 말하자면 DLC?
소설이잖아요. 이거.
그럼 외전편이라고 합시다. 하하하. 그리고 당신이모르는 것이 있는데요.
또 무슨 삐소리를. 시발 이것도 필터링이네.
하하하. 제가 욕을 좀 싫어해서. 아무튼 말이에요? 이건 소설도 꿈도 아니에요.
네?
이건 현실입니다.
삐소리도 정도껏이지.
아하하. 아무튼 말이에요.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시한부세상에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괴로운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라구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이제 깨어나세요.
귀를 짜증나게 하는 목소리들이 나를 잠에서 깨운다.
일어나면 언제나처럼 회사에서 졸고 있을까?
아니면 웹소설보다가 모니터 앞에 엎어져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코로 들어오는 냄새가 30초반 남정네의 집안 냄새나 회사와는 다른 냄새라는 거다.
살며시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다.”
반듯한 체크무늬 천장에 시야 한구석에 보이는 가습기.
여기까지는 그래도 여기가 과로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추측을 해보았다.
그러다 내 가는 손과 하얀 피부를 보고 낙담했다.
슬슬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유은하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회사생활과 평범한 일상에 늘어져 있던 남자는 그냥 내가 상상 속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더 자자.”
몸에 근육통이 몰려온다. 자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
슬쩍 눈을 돌려보니, 역시나 내 눈에 드는 저 정장의 남성은 이제 행동이 제법 구체적이었다.
찻잔을 든 모습. 저것도 아마 진짜 차는 아니겠지.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이불을 깊게 덮었다.
나는 이불과 한 몸이다. 이것이 바로 너와 나의 연결고리
그래서 더 자려는데,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유은하.”
뭔가 반갑지 않은 목소리. 본능이 남기는 불쾌함.
이것은 오빠란 작자의 목소리인가.
최시우의 원조격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놈이 바로 저놈이다.
사실 전작의 주인공이니 대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귀찮다. 지금은 그냥 푹 자고 싶어.
“후우, 아직도 이 오빠가 밉다는 것을 잘 안다. 너 사람되라고 한성 아카데미에 보낸 것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 점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알았으면 돌아가라. 잠 좀 자자.
“네가 괴인을 무찔렀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기쁘기도 했지만, 역시 동생이 그런 일을 당하니 정말…………쫑알쫑알쫑알.”
존나 시끄러.
“이번 일로 헌터길드가 너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니……이 오빠는 네가 헌터가 되지 않아도 되니까. 건강하게만……중얼중얼중얼.”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있다.
저렇게 말 많은 놈을 좋아하는 히로인들은 제정신인가?
심지어 최시우보다 말이 많은 것 같다. 아니, 애초에 그 놈은 말은 잘 알아먹는다. 그런데 이놈은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이기적이다.
아무튼 귀가 썩는다. 아줌마들의 수다도 아니고.
그렇게 한참이나 떠들던 유진석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 달은 미안해서 생활비는 두둑히 넣었으니까. 몸조리 잘하고. 나는 이만 가볼게.”
쿵
빌어먹을 인간이 드디어 갔다.
속으로 애국가 4절까지 외우느라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전 저놈이 이야기 한 것을 들어보니, 내가 괴인을 잡는 영상이 퍼진 모양이다.
휴대폰으로 헌터커뮤니티에 들어가 봤다.
근데 어느새 개념글에 괴인 김승준과 싸운 내 영상이 올라간 모양이다.
클릭해서 보니, 내가 김승준을 처단하는 영상이었다. 영상을 촬영한 위치로 봐서는 븝미쟝이 분명하다.
마지막에 한수지가 꽂은 창은 편집이 된 건지 전투는 오로지 내가 하고 끝낸 것으로 나왔다.
문제는 내가 김승준을 죽이면서 내뱉은 말이 그대로 명대사로 굳어졌다.
[“죽이러 왔으면자기가 죽을 각오도 했어야지”]
ㄹㅇ좆간지 명대사 아니냐.
그래도 동기 아니었음? 저리 망설이지 않고 죽임?
윗놈 븅신이냐? 흑신교는 무조건 척살령이 내려진지 언젠데? 혹시 흑신교냐?
근데 살려둘 수도 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시발 전투 끝나고 유은하 쓰러졌데잖냐. 죽이지 않고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는 뜻이야. 하여간 이래서 유입새끼들은.
헤으응. 눈나 나도 불태워죠.
일단 뭐 헌터 커뮤니티 반응 대다수는 나를 찬양하면서 일부는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냐는 의문도 있었다.
그런데 부정적인 댓글은 없는 것이. 흑신교의 악행은 이미 세상이 아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유독 테러를 벌이는 놈들로 잡아도 자폭하는 경우가 있어 척살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럼 한성아카데미 익명커뮤니티는 어떨까?
제목: 유은하는 크싸레가 확실함ㄹㅇ
레이나랑 한수지가 그러더라 자기들 지키겠다고 나서서 싸웠다고.
왜지? 한성아카데미는 레즈들 많은데 대체 왜 그 둘만 지켜줘?
시발. 윗댓글봐라. 이 아카데미는 레즈만 있냐? 남자생도들 좀 살려달라.
ㅋㅋ그래봤자 1학년 신입생일 뿐이지.
유진석 동생이라고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님?
여기는 내 레즈설이 매일 가십거리다.
한성아카데미에서는 내가 뜨기 시작하자 슬슬 견제하려는 애들도 생겼다.
아마 2, 3학년 즘 되겠지. 적어도 1학년 애들 중에서는 나를 무시할 자가 얼마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열심히 떠들라지."
똑똑
그렇게 병원 이불을 덮고뒹굴뒹굴거리고 있으니, 이번에는 머리에 재를 끼얹은 것 같은 놈이 나타났다.
저 특이한 머리색은 시우놈 밖에 없다.
하여간 여자가 입원한 방에 멋대로 찾아오는 것 봐라.
“여. 유은하.”
“어휴. 오늘따라 신검사용자만 보이네.”
“설마 유진석 선배님도 오셨어?”
저 자식. 저거저거. 아카데미 땡땡이친 주제에. 유진석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거린다.
“그래. 이 새끼야. 대체 뭐 때문에 빠진 거야? 네가 있었으면 더 빠르게 잡았을 텐데.”
“아, 저 미안. 할 일이 있어서.”
할 일? 무슨 놈의 할 일. 뒤늦게 나타나서 미안하단 제스처를 하면 내가 용서해줄 것 같나?
부모님 초상이 아닌 이상, 원작 때문이라도 너는 나타났어야 했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았지. 너는 과연 어디까지 강할까? 원작과 다르다고 해도 김승준이 나타났다는 것은 너를 위한 시련이었을 텐데.
“딸기맛 스무디 사 왔으니까. 한 번만 봐주라. 진짜 피치 못할 사정이라서 말이야. 슈크림도 사 왔어.”
스무디?
“딱 한 번만 봐준다?”
일단 사정은 뒷전으로 하고 한 번만 봐주기로 했다.
“일단, 내가 알아보니, 이번 일은 아카데미에서도 제법 떠들썩하게 퍼졌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3일 지났는데?”
3일 만에 깨어났고, 바로 그때 유진석이랑 이놈이 나타났다고?
눈 뜨자마자 보이는 것이 전작이랑 이번 작 주인공이라서 어이구 대단히 영광입니다.
최시우는 한 번 말을 시작하니 전부 내가 아는 쓸데없는 소리들을 뱉었다.
흑신교의 부활이라거나, 아카데미 근처에서 괴인이 출몰했다거나 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카데미에 협회 측이 한성아카데미를 주시하고 있어. 괴인도 나타났으니까.”
“그래?”
“그래서 말인데, 한동안 내가 너를 지켜줘도 될까? 너 집에도 혼자 살잖아.”
이 새끼가 어디서 작업을 걸어? 히로인이라 그런가? 원작이 바뀌었어도 히로인이니 지키고 싶다 뭐 그거냐?
어휴. 이렇게 유혹이나 하다니. 답도 없군.
미안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놈은 김승준 처치 후에 협회와 본격적으로 접촉한다는 말이다.
지금 나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말.
어? 그런데 내가 김승준 잡았잖아? 얘 어떻게 되는 거야?
“사실 내가 어쩌다 보니 흑룡길드랑 알게 되었거든.”
“흑룡길드라면 소식통으로 유명한 길드 아니야?”
중소규모의 헌터길드지만, 소수정예라 전력은 어마어마하고, 대기업 길드조차도 잘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
고유능력들도 하나같이 정찰, 탐색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내가 김승준과 싸우면서 최시우가 협회와 못 붙어먹으니 대신 흑룡길드와 연이 닿은 거라면 이해는 간다.
“흑룡길드에서 알아본 건데, 조만간흑신교가 한성아카데미를 공격할 거라는 정보가 들어왔어.”
어?
“아마도 김승준은 그 말단이었을 테고, 다음에는 더 강한 놈이 나타나겠지.”
잠깐만.그 정보는 흑룡길드라도 흑신교의 아지트도 모르는 시점이라 모르는 건데?
“이번에 너를 돌보지 못했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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