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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20화 (20/331)

〈 20화 〉 19. 시비

* * *

* * *

누구긴 누구야.

“유은하인데요?”

“아니,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선배. 선배가 유은하보다 약하면 유은하의 상태가 제대로 안 보일 수도 있어요.”

“내.내가 얘보다 약하다고?”

아니, 애초에 나 같은 딜러랑 달리 서포터인 이유정이 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기량에 따라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이기는 하다만. 설마 저렇게 매일 놀고 먹을 거 같은 인간보다 약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럴수도 있지. 선배 신입생도보다 약한 건 창피한 게 아니라구요?”

최시우는 이유정에게 훈계를 당한 것이 아직까지 뒷끝이 남았는지. 정말 아줌마처럼 수다떨기 시작했다.

쟤가 저런 캐릭터였나. 오히려 잔소리 들으면 곧바로 고치겠다면서 남들에게 호감을 쌓으려는 멍청한 호구타입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감정이 안 되는 수준이 아닌데. 너 두고 봐. 반드시 내가 알아내고 말겠어.”

그래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솔직히 나도 더 가려져 있는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그런데 그 전에 이 셋이 왜 같이 다녔는지 그것부터 들어야겠다. 어디 나를 왕따시키려고 그래?

“그런데 너희 나 왕따시키고 어디 다녀온 거야? 뭐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갔었어?”

“아, 실은 조금 최시우군이 우리를 조금 훈련시켜줬어요.”

“훈련? 시발 난 빼놓고 얘들만?”

“상식적으로 넌 훈련할 게 없잖아.”

죽지 않으려면 내가 제일 필요한데 무슨 개소리일까?

가속 빼면 시체인 나를 레이나와 저 한수지보다 뒷전으로 삼는다고?

이거이거 순전히 히로인 호감도 채우기 아니야?

그럴 거면 나도 껴줘야지. 탈락한다해도 작가공인 ‘일단은 히로인’입장이라고.

“아니, 내가 제일 약한데.”

“이유정 선배의 상태감정도 안 통하는데 무슨 소리야.”

“맞아요. 우리가 최시우군에게 훈련받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최시우 때문이라고 하면 나는 이 자리에서 최시우를 고자로 만들 생각도 있다.

“뭔데?”

“우리는 강해져서 네 옆에서 부끄럽지 않은 동료로 서고 싶어!”

“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구나. 사실 이 둘이 너 몰래 강해지고 싶다고 해서 해줬던 건데. 다 같이 강해지면 되겠지.”

그래. 이제야 조금 말이 통하는 소리를 하고 있네.

“그래서 실전이라도 하자고?”

“응. 지금 당장.”

“이 띨띨한 새끼야. 우리 아직 아침시간이거든?”

지금이라도 가야 혼이 안 난다.

“선배도 수업빼고 있는데 뭘.”

“아, 그러네?”

"일단 다들 수업끝나고 봐."

애초에 이거 불방망이한테 허락받아야 했던 거 아니야?

그렇게 교실로 돌아간 우리는 한참을 야생의 불방망이를 조우했다.

"너희 오늘 오전시간 동안 내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 각오해라."

망했다.

* * *

“싯팔. 좆같네. 언제 한 번 진짜 손봐야겠어.”

빠따 없으면 시체에 히로인 자리만 아니었으면 존재감 없을 여자가 감히 나에게 잘도 화를 낸다.

나를 등교거부시키려는 계획을 짰던 최시우, 레이나, 한수지는 점심시간인 지금도 불방망이한테 혼나고 있다.

불방망이 입장에서는 내가 아카데미에 나오는 것이 더 좋을 거다.

일단 내 담당이 그 여자니까. 유진석에게 한 소리 들었겠지.

“어? 살인마다.”

저거 나한테 하는 소리겠지? 시비네?

슬쩍 고개를 돌리니 피부를 태운 금발의 양아치년이 패거리를 데리고 구석에서 나를 비웃고 있었다.

살짝 꼴받게 하는 개년일세. 죽일까?

참자, 도발당하면 지는 것이다. 그저 내가 활약하는 거에 샘나는 바보일 뿐.

“중학교에서 혼자 음습하게 지내더니, 헌터 아카데미 와서는 사람이나 죽이고.”

“킥킥 그러다 너도 죽을지도 몰라.”

“상식적으로 저 년이 아니라 레이나나 한수지가 캐리한 거겠지.”

예상은 했다. 내가 활약할수록, 원래 유은하가 중학교 때 인연이 있던 년들이 시비를 걸거나 뒤에서 험담하면서 질투할 거라고.

이전의 유은하라면 오들오들 떨었을 것이고.

최시우라면 지금 상황에서 주인공답게 쿨하게 넘기려 하겠지.

그런데 나는 말이다. 그렇게 속편한 호구같은 주인공이 아니다. 하물며 저런 양아치년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다.

“꼬우면 뒤에서 열등감 폭발하지 말고 덤비지 그래?”

그래서 직접 맞받아쳤다.

간만에 걸린 시비다. 한 번 스트레스를 풀 때가 되었다.

빌어먹을 기억들이 자꾸 두통을 만들어내니 어딘가 풀 곳이 필요했다.

“너 많이 컸다?”

스윗한 남자 금태양말고 양아치 금태양은 콧방귀를 뀌며 내게 걸어왔다.

“많이 크긴. 헌터 아카미들어와서도 여전히 너 같은 애들 패거리로 모아 다니는 것만 봐도 네가 안 큰 거 아닐까?”

“뭐?”

딱 생긴 거 봐라. 견적이 나온다. 얼굴은 못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엑스트라들만 있다.

“너희 같은 애들은 늘 그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애들 모아 다니지 않으면 불­편하지.”

“중학생 때 까이던 년이 사람들이 좀 띄워주니 네가 뭐라도 된 거 같지?”

“그리고 너 아까부터 중학생 중학생하는데. 너 누구야?”

정말로 모르겠다. 이전의 유은하 기억을 떠올려봏려 해도 전혀 모르겠어.

애초에 자기 괴롭힌 여자를 일일이 기억할 리가 없다.

“이년이 진짜!”

“말이 안 되면 행동부터 앞서는 바보들이 간혹 있지. 그런데 어쩌냐? 그러다 힘으로도 털리면 진짜 쪽팔릴 텐데."

으로 움직여서 금태양 여자버전의 입에 물린 담배를 빼서 그 구리빛 볼따구니를 지져주었다.

“꺄아아악!”

“이 정도로 짖으면 어떡하니. 유진석의 동생을 건들 거였으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지.”

그대로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자기들 보스가 나한테 한방 먹는 것을 본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내가 주인공도 아니고. 이런 이벤트가 존재하면 사양하고 싶다.

제압하는 거야 어렵지 않다.

힘이 부족해도 가속으로 배빵만 몇 번씩 후려쳤더니, 배를 붙잡고 쓰러졌다.

“야, 입으로도 안 되는데, 힘으로도 안 되니쪽팔리겠다? 그것도 쪽수로 밀어붙이고 왔는데.”

내가 키득거리자 화가 치미는지 주먹을 앞으로 뻗길래 살며시 잡아서 그대로 꺾어버렸다.

“아.아파. 꺾였어! 꺾였다고!”

“아, 그러고 보니까 질떨어지는 패배자들만 모인 빌런조직 있다더라. 거기 들어가는 거 어때? 너 같은 애가 헌터라니. 웃기잖냐.”

그 말에 자존심은 상하는지 눈살이 부르르 떨리길래 쿡하고 찔러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때 뒤에서 흑발의 미남이 나타났다.

아, 저 캐릭터는 알지. 한성 아카데미 생도회장 윤세하

한성아카데미에서 최시우와 대척점같은 존재다.

그리고 현재 한성아카데미의 남성 생도들 중 1위다. 아마 전국 아카데미를 통틀어서도 탑에 들 것이다.

이미 많은 길드가 컨택하고 스카우터도 아카데미에 몇 번 오갔다고 한다.

면상? 흑발에 잘 빠진 미남이다.

능력이 분명 무기에 원소를 인첸트하면서 싸우는 마검사라고 했지. 쓸데없이 슬기로운 인간이다.

“유은하 생도. 혹시.”

오, 내 이름은 알고 있네.

눈치를 주는 것이 내가 때렸냐고 묻는 건가.

“제가 때렸는데요.”

“……따라와라.”

그 길로 곧장 생도회실로 끌려갔다.

나는 이미 유명한 터라 생도회에서도 나를 힐끗거리는 애들이 있었다.

“그래서 왜 싸웠습니까?”

“유은하가 먼저 우리를 욕하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년들은 이만한 쪽수가지고 욕먹고 폭행당했다는 거네?”

부회장 윤미영이 여자금태왕과 그 패거리들을 비웃었다.

“유은하 생도. 할 말 있나?”

“때린 건 맞지만, 먼저 살인마라고 도발한 것은 저년들이고,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것도 저년들이에요.”

“거짓말이에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년이 아주 작정하고 나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증거는 있나?”

“2학년 이유정 선배님이 알 거에요.”

이유정. 그 여자는 전자전만이 아니라 천산그룹 후원으로 학교 전체에 깔린 CCTV용 마도기어를 관리한다.

그 마도기어에는 생도식당에서 일어난 일도 찍혀 있을 테고, 나에게 호감을 가질 이유정이라면 나를 주시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최시우를 관음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이유정 역시 이번 일로 생도회실로 불려왔다.

“이유정 생도. 저 생도들이 먼저 유은하 생도를 공격한 증거가 있습니까?”

이유정은 뒷목을 긁으며 하품을 하더니, USB를 넘겼다.

“여기. 영상이 담긴 USB.”

“대단하네. 식당에 몰카라도 넣어놨어?”

부회장 윤미영이 물었다.

“무슨 소리야. 한성아카데미는 천산그룹 후원을 받는 아카데미고, 얼마 전에 설치한 CCTV들. 내가 전부 관리하는데?”

이유정의 대답에 양아치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 그런데도 도움이 되나?”

“당연. 마도기어 개량품으로 만든 CCTV라 관리하기 쉬워.”

결국 양아치들의 행동이 그대로 찍힌 영상파일을 생도회가 확인했다.

영상 제목은 으로 제목을 보니 언젠가 커뮤니티에 올릴 거였나보다.

이미 다 밝혀지자 여자 금태양은 눈썹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두꺼운 화장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박살이 났다.

“이렇다는데 변명은?”

“살인마 맞잖아요?!”

이제는 그저 빼애액거리는 거 밖에 못하는 꼴이 불쌍하다.

“흑신교는 발견 즉시 척살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유은하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면 더 큰 피해가 났을 거야. 멍청하군. 이번 1학년 생도들 질이 이렇게 떨어지는 건가. 이 세상이 그냥 영웅놀이나 하는 헌터들의 세상인 줄 아나 봐.”

결국 마지막 정의구현의 몫은 부회장 윤미영이다.

윤미영의 말에 내심 불만인지 손을 불끈 쥐지만, 거기까지다. 양아치들은 벌점 부과와 함께 20시간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때 생도회실로 가운을 걸친 한 여성이 들어왔다.

양호실 쪽 사람인가본데.

“선생님 어떤가요?”

윤미영이 다친 양아치들을 맡긴 상대였다.

“어, 음. 괜찮기는 한데. 유은하라고 했지? 같은 여자애가 그렇게 아랫배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면. 그러다 나중에 쟤네 애 못 낳을 수도 있어.”

가슴 때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데, 실수했나보다.

아니면 면상때릴 걸 그랬나.

아, 그런데 양호실 쪽은 한 사람 밖에 없잖아.

빌런년.

“저 성깔과 면상보면 남자 생길 것 같지도 않고 대한민국 저출산율에 이바지하면 했지 애 안 낳을 거 같은데요?”

“은하양. 그래도 영웅으로써 우뚝 선 유진석의 동생이잖니.”

그건 당신이 할 말은 아니겠지.

양호선생 전지현. 한성 아카데미의 정보를 빼서 빌런조직인 죠스에 넘기는 년이다.

그래서 좀 똘기가 보이는 놈들은 죠스에서 몰래 스카웃해간다. 그래서 헌터아카데미가 빌런아카데미란 소리도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냥 각설하고, 빌런이라는 소리다.

이년 처리하는 이벤트가 있어서 따로 건들지 않고는 있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유진석 동생이라고 오빠 체면 생각해야 한다는 값싼 소리 하려는 건 아니겠죠? 이년들은 그냥 저급한 빌런집단에나 어울리는 년들이에요. 아, 그래. 헌터들에게 두드려 맞기만 하는 죠스란 조직에 딱 어울리네요.”

내 말에 전지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쓸데없이 지가 죠스의 빌런인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불편한 여자다.

그 표정 변화는 아주 살짝 변해서 나만 본 것 같다.

“그러다 진짜로 삐뚤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그 말은 그러다 진짜로 자신이 죠스에 넣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가.

만일 금태양 여자가 빌런이 된다면.

“그럼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잖아요.”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 말을 끝으로 유은하의 중학교 때 인연이었던 양아치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그대로 잠자코 벌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쟤들이 나한테 덤비는 것 자체가 간이 부은 짓이다.

이미 나는 길드가 흥미를 가지는 존재이며, 당장 유진석의 동생이고 내가 말만 하면 협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쟤들은 나를 이전의 유은하라 여기고 깝치다가 역관광당한 거다.

“너 그러다 내가 지켜보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

생도회실을 나오면서 반 즈음 감긴 눈으로 이유정이 물었다.

“에이 솔직히 말하세요. 나는 선배를 잘 알아요.”

“어?”

“저 지켜보고 있었잖아요.”

“어, 음. 네 상태창을 조사하려고.”

지금은 그런 걸로 쳐두자.

내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이유정은 찜찜한 표정을 짓다가도 내 손을 잡았다.

무엇을 숨기랴.

이거 최시우 원래 이벤트다.

정확히 말하면 아까 그 금태양여자도 내가 아니라 최시우에게 깝쳤어야 했다.

물론 나처럼 폭력사태는 없다. 오히려 금태양여자가 최시우를 성희롱하는 변태로 몰아가다 최시우를 관음하던 이유정이 증거물을 내밀면서 오해가 풀린다.

본래 이 사건으로 최시우는 이유정에 대한 호감을 품게 된다.

과연 하렘주인공 다운 시발놈이다.

그런데 빌어처먹을 최시우가 다른 두 명과 함께 불방망이에게 끌려가 있다.

나는 스트레스 좀 풀면서 동시에 이유정과의 친밀도도 올리기로 한 것이다.

나야 오늘 만난 거지만, 이유정은 CCTV를 통해 오랫동안 나를 지켜봤을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히 봤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처음부터 엉덩이가 가벼워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짭엘프와 불꽃창녀와는 달리 이 사람은 사랑만 있으면 그게 구멍이든 막대기든 상관없다고 여기는 주의다. 당연히 하렘 중 한 명이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동성이면 어때. 이렇게 작용한 걸지도 모르지.

얼굴은 세상만사가 귀찮아 보이는데, 그런 가치관을 지녔다.

“아하하하. 솔직해지시면 저 마음대로 만지셔도 되는데.”

이 몸은 여자들이 보기에도 너무 매력적인 몸이다.

익명게시판에서 한성 아카데미의 여생도들이 레즈라는 말이 도는 것도 어쩌면 나 때문인지도 모르지.

가만히 이유정을 쳐다보며 눈웃음을 지어주니 이유정이 움찔거렸다.

"……."

이유정은 내 말에 반 즘 감겨있던 두 눈이 살짝 커지더니 욕망의 불이 피어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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