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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22화 (22/331)

〈 22화 〉 21. 엄청난 오해

* * *

* * *

레이나와 한수지의 활약과 내 무능함에 현자타임이 와버렸다.

“이제 나는 너희들을 놓아줄 때가 된 거 같다. 하산하렴.”

“어?”

“아니야. 열심히 싸우라고.”

난 정말 왜 이리 약한 거지?

애들 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뼈저리게 느낀다.

레즈고 나발이고, 이러다 레이나와 한수지, 이유정의 성욕만 풀어주는 여성판 러브돌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니 신검 최시우, 레이나랑 한수지 훈련시켰다고 했지.

그럼 원작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솔직히 아직도 회귀로 의심되는데, 고대의 유산도 여러 변수를 생각하면 나름 어귀가 맞아떨어진다.

나 빠져도 되는 거 아닌가?

약골이어도 되는 거 아니야? 최시우가 강하다면 내가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뭘 그리 생각해?”

히로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묻혀가는 방법도 있다.

게다가 나 지금 그냥 잡몹처리반이 아닌가.

이런 몸에 빙의시켰으면 하다 못해 좋은 능력이라도 있어야지. 스팀팩은 좀 경우가 심하지 않나.

“히야압!”

레이나가 기합과 함께 정령화살을 날려 골렘의 눈을 맞췄다.

순간 골렘이 몸이 멈추더니 작동이 중지되었다. 그 틈을 노려 한수지의 염화의 창이 골렘의 눈에 박아 그대로 불태웠다.

콰지지직!

이유정은 전자전을 지금껏 계속 사용했기에 보스룸 전까지는 빠지기로 했다.

전자전 하나 덕에 C급 던전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원작에서는 그토록 어려운 던전이었는데. 막힘없이 뚫었다.

그리고 갈림길이 나타났다.

“갈림길인데. 어디에요?”

“오른쪽은 거대골렘이 있어. 왼쪽은 보스룸까지 가는 길이고.”

거대 골렘. 기계형 던전의 함정괴수다.

던전 설정집에서는 죽이면 좋은 코어를 얻을 수 있으나이후 보스를 상대하기 힘들다고 나왔다.

최시우가 돕는다면 모를까.

“유은하!”

“최시우?”

뒤에서 시끄럽게 굴던 최시우가 나타났다.

“어 잔소리소년.”

잔소리 소년. 원래 히로인한테 저런 소리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그 거대골램 잡으러 가죠. 그 놈은 유은하가 쉽게 잡을 거에요.”

“너 내가 피떡 되는 꼴 보고 싶니?”

“마법면역 칼로 베면 걔 끝이야.”

정말? 왜 그런 좋은 걸 이제 알려주는 거지?

“잔소리 소년은 어떻게 그리 잘 알아? 여기 공략본 나오지도 않았는데.”

“신검사용자는 무엇이든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놈은 회귀로 쳐야겠다.

아직도 의심단계이긴 한데. 히로인들한테 이성적으로 감정이 없는 것도 회귀 전에 현자가 될 정도로 박아대서가 아닐까 싶다.

어? 진짜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따로 불러다 “님 회귀함?”물어봤다가는 이 새끼가 어떤 반응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존버하자.

아니, 잠깐만. 그렇다면 얘 어디서 회귀한 거지?

원작의 유은하가 있는 세상? 아니면 내가 있는 세상?

일단 그건 나중에 알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굳이 가서 잡으라 하는 이유는?”

“당연한 거 아냐? 그놈이 함정보스인데 걔 잡으면 성유물 주거든.”

그런 내용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빌런 중에 메카랜드에서 얻은 성유물을 가지고 강해진놈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상대가 이미 먼치킨을 찍고 있던 신검사용자 최시우라 후반에 성유물을 가진 애들은 아무리 강해도 척살당한다.

그때 주울 수 있던 건가.

“이쪽길 함정 엄청 많은데?”

“굳이 전자전으로 다 터트릴 필요 없어요. 저 위에 있는 붉은 점. 저것만 파괴해도 다 끝납니다.”

파킨!

이유정이 최시우의 지시대로 천장에 있는 붉은 점을 전자전으로 터트렸다.

“신검사용자님은 참 대단하시네요.”

“뭘. 부끄럽게.”

지가 계집애인가? 뭘 얼굴을 붉히고 있어? 기분나쁘다. 고간을 뜯어버릴까?

[침입자 발견. 침입자를 제거합니다.]

“오, 멍청하게 생긴 골렘이네.”

크기만 따지면 아주 벽 전체를 가득 채우는 놈이다.

양팔에는 미니건이 달려있고, 어깨에는 미사일 포대가 있다.

과연 여기가 C등급 던전이라 하는 이유가 있구나.

푸슈슈슈슈슈슉!

골렘의 어깨에서 미사일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함정에 있는 괴수답다. 빌런들은 저걸 공략하려고 힘을 얼마나 사용했을까.

가속과 병렬회로를 사용하자 미사일의 위치가 뻔히 보였다.

미사일을 피하면서 가속을 풀자 레이나의 정령화살이 미사일을 파괴하고 한수지의 염화의 창이 미사일을 불태워버렸다.

“미사일이 계속 나오네?”

“애초에 마력으로 만드는 마도탄이니 의미가 없어. 골렘의 회로에서 계속 만들어낼 수 있거든.”

그렇다면 골렘의 마력이 다 떨어져야겠네.

함정을 다 제거했으니 골렘에게 마력을 공급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미사일을 피하거나 파괴하면서 골렘을 공격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솔직히 귀찮다.

나는 이유정찬스를 쓰기로 했다.

“유정선배.”

“응.”

내 말에 이유정은 골렘의 양어깨에 있는 미사일들을 골렘의 코어와 연결을 끊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던전 공략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좀 더 극적인 연출을 바랄 것이다.

그러니까. 힘들게 싸우는 그런 거? 그런데 최시우 저새끼는 회귀자 같고, 나 역시 원작처럼 힘들게 하기는 싫었다.

당장 여기 치트캐릭터가 있는데 뭐하러 굳이?

던전 공략이 끝나고 영상이 올라가면 댓글들 반응이 기대된다.

재미없다고? 그럼 스킵하기를 바란다.

오히려 쉽게 깰수록 그만큼 능력자들이란 증거다.

[경고: 미사일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대체공격 방식을 채택합니다. 킥복싱.]

[경고: 킥복싱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관절손상이 우려됩니다.]

거대 골렘이 움직이려다가 고장난 테엽인형처럼 삐걱거린다.

아아, 이것이 바로 ‘홀딩’인가.

“그래도 두 팔로 저항은 하네.”

“그래 봤자지.”

기계형 괴수들. 골렘들은 방어력과 힘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대신 몸이 느리다.

한마디로 몸이 느려터져서 잡는 수단만 있으면 공략은 어렵지 않다.

벽에서 구체모양의 골렘들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레이나와 한수지가 잡았다.

소풍 나들이를 하듯 차분하게 걸어가 검으로 놈의 목에 박아넣었다.

콰지직!

골렘의 코어까지 그대로 검이 찍어내렸다.

완전히 작동이 중지한 골렘의 회로가 파괴되자 몸체가 무너져 아이템만 남겼다.

“그런데 이게 뭐야?”

[학습장치: 골렘 제작기술]

설명을 보니, 고대인들이 만든 골렘을 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거라고 한다.

확실히 끌리기는 하는데. 나는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사용해야 한다면 이유정 쪽이겠지. 이유정이 전투능력은 없으니까. 서포트 능력으로 골렘을 제작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오 신기한데.”

“유정선배가 사용하시죠.”

“그게 나을 거 같네요. 전자전도 사용하시니 골렘이랑 은근 어울리실지도.”

일단 [학습장치: 골렘 제작기술]은 그녀에게 넘겼다.

[S급 골렘코어: 생명체를 골렘으로 만들거나, 또는 가공하여 좋은 것을 제작할 수도 있다]

“이건 은하가 가지고 있는 편이 나을 거 같은데?”

“그런가?”

최시우가 넘겨주길래 일단은 받았다.

“잡은 것은 유은하니까. 나중에 팔거나 하면 돈이 꽤 나을 것 같아.”

“그런가?”

언제까지 유진석의 그늘 밑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 이 코어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함정방을 지나자 곧바로 보스방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제법 그럴 듯한 모양의 보스룸이었다.

확 트인 돔형 공간. 그리고 등장한 것은 아이들이 좋아할 거 같은 건담을 닮은 로봇.

심지어 다른 골렘들이 무슨 파츠별로 나와 붙으면서 정말 무지막지한 건담이 되었다.

기이잉­철컥­ 철컥!

[침입자 확인­임무목표확인­적들을 섬멸합니다.]

“함정에 곧바로 보스로 이어지나 보네.”

최악인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쪽은 회귀한 것 같은 신검 최시우와 아직 전자전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정이 있다.

원작에서 이번 보스전은 최시우가 엄청 피떡이 된다.

메카랜드의 보스 ‘혼돈의 골렘.’은 절대방어에 약점을 찾기가 힘들다. 원작에서는 이유정이 최시우를 서포트하느라 전자전을 제대로 박지도 못하고 체력만 소진한 터라 도움이 되지 못했다.

최시우 본인도 신검과의 싱크로가 제대로 안 되던 시절이라 신검의 궁극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저 골렘은 사람을 능욕할 줄 안다. 최시우는 이곳에서 본래라면 저놈의 손에 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치욕을 겪는다.

여기서 '회귀한 것 같은' 최시우의 반응을 보면 저놈이 회귀했는지 안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 달리 나는 지금 무척이나 흥분했다.

“선배 전자전 사용할 수 있어요?”

“응.”

가슴이 웅장해지는 보스전이다.

이때를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건담이다. 어렸을 때 한참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놀던 시절에 즐겨찾던 건담. 그 거대한 건담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건담과 싸운다는데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전자전도 사용할 필요 없어.”

“어?”

콰직!

싱크로된 신검에 순식간에 보스가 두동강이 났다.

"안돼! 내 건담!"

남자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내 로망이!

[최시우!]

“말리지 마세요. 신검님.이놈에게 내가 당한 것을 생각하면!”

최시우가 씩식거리면서 신검의 말도 무시하고 골렘을 박살낸다.

저 새끼 회귀맞네. 모른 척해주자.

메카랜드에서 그가 당한 치욕은 온몸이 걸레짝이 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죽은 건담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화려하게 빛을 내는 구체였다.

이것이 고대의 유산인가.

[고대의 유산(SSS): 고대인의 지식이 담겨있는 성유물. 귀속시 소유자가 고대인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천산그룹을 원작 후반부까지 귀찮게 만든 흑룡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버린 물건.

생각해보면 굳이 천산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당장 이유정만 해도 천재고, 천산그룹의 이유진은 빌런에게 휘둘릴 뻔한 인간이다. 딱히 아군이라고 보기에도 미묘한 인간이니 원작에서 초반부에 정보가 필요할 때나 최시우가 이용하던 정보통역할이었다.

저 녀석이 회귀한 지금은 의미가 없다.

“와, 엄청난 득템인데. 왜 이런 던전이 남아있지? 드랍되는 템은 제쳐두고라도 C급이면 누가 공략할 만한데.”

“그러게요. 뭐 나타난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요.”

한수지와 레이나의 반응은 정상이었다.

고작 C급 던전에서 SSS급 아이템과 학습장치까지 있다.

“기본적으로 이런 기계형 던전은 가성비가 좋지 못하거든. 함정은 더럽게 많고 몬스터들도 단단한데 던전도 미로같지. 보상은 형편없어.”

“메카랜드만 해도 이렇게 잔뜩 먹었잖아?”

“메카랜드라 그렇지. 다른 던전은 달라. 지금까지 발견된 기계형 던전은 S급 헌터들이 간혹 방송하는 것이 아니면 거의 안 가.”

원작에서 기계형 던전에 대한 설정이 그랬다.

가성비는커녕 목숨마저 위험한 던전이 바로 이 기계형 던전.

아마 이유정은 되어야 이런 던전은 손쉽게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남아도는 던전이 기계형 던전들이라면. 앞으로 유정선배의 도움이 필요하겠어요.”

가성비가 좋지 못하다고 해도 이유정처럼 쉽게 클리어한다면 던전 최초공략이나 보상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 그거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일단. 고대인의 유산은 어떻게 해? 팔기에는 아깝지 않아?”

“나는 유은하가 먹어야 한다고 봐.”

대뜸 최시우가 나에게 고대의 유산을 넘겼다.

“먹으라고? 이걸?”

“그래.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될 걸?”

도움이고 나발이고 나한테 이걸 먹여서 어쩌려는 거지.

아. 알겠다. 저 놈은 지금 내 호감도를 올리려는 거다.

회귀 전에 다른 히로인은 다 맛봤어도 나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맛보지 못한 내 구멍의 맛이라도 보고 싶은 거겠지.

이런 비열한 놈 같으니. 순진한 얼굴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용케도 하고 있구나.

그래도 공짜는 잘 받는 성격이다.

고대의 유산이 있으면 내 생존확률이 더 오를 수도 있다.

“선배나 수지랑 레이나는?”

일단은 SSS급이다. 나 혼자 결정하기에는 좀 그렇다.

“어, 파는 게 좋지 않나?”

“네. 일단 보스드랍물은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니까.”

“은하도 부담스러워하는데, 수상한 생각하지 마.”

히로인들은 각자 반응이 다르다. 유독 최시우를 째려보는 것은 왜일까.

정작 최시우도 억울한지 나랑 히로인들을 번갈아보더니, 슬쩍 히로인들만 모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뭔가 속닥속닥하더니, 히로인들은 최시우를 밀치더니 내게 말했다.

“아, 은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래요. 유은하. 특별히 제가 양보하는 거니 겸손한 마음으로 가지도록 하세요.”

“나는 애초에 은하가 가져도 상관없었어.”

역시 주인공일까. 히로인들을 설득하는 능력을 보니 만만치 않다.

그리고 저 빌어먹을 주인공새끼는 회귀한 김에 나를 먹으려고 아주 작정하고 선물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거 덮쳐지는 거 아닐까? 정조대라도 차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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