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3. 수녀 로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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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팀 리더가 된 나는 굉장히 기분이 상했다.
“그야 유은하니까?”
내가 리더가 되는게 뭐가 좋다고. 나보다는 최시우겠지.
“아니 보통은 최시우가 하는 것이 맞지 않아? 나는 유진석의 동생이지. 명성이 높은 건 최시우라고?”
나는 유진석의 동생이라는 이름값으로 리더가 되기 싫다.
무엇보다 귀찮다. 리더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부담감이 넘친다.
귀찮은 일은 내가 다 떠맡아야 하잖아.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리더직을 넘긴다는 거야.
“우승상품은 남국여행권이래. 가서 비키니입고 날뛸 수 있다고.”
“알고 있었어.”
브라 차고 여성용 보들보들한 팬티입는 것도 이제 막 익숙해졌는데, 나보고 비키니를 입고 날뛰라니. 개소리도 정도껏이다.
“그리고 멸망한 엘프의 유적지로 갈 수 있데요.”
“알아.”
유적지같은 지루한 곳에 갈 리가 없다. 딱 이계인 2세대 출신인 짭엘프나 갈 법하지.
나는 집에서 이불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고 싶다.
나보고 남국이랑 엘프 유적지가서 데이트하자고 하면 나는 이 둘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하기 싫어?”
“아니, 최시우는 뭐하고 나한테 그러는데?”
“최시우는 흑신교일로 바쁘데.”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부디 나를 죽일 수도 있는 빌런들을 싹 다 잡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B반에 우리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놈이 있어.”
“그래. 한국사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는 척준경이 성좌로 있다는 소문이 있는 놈이지.”
“그런 놈이 왜 B반에? 성적순 아니야?”
분명 아카데미에서는 성적순으로 반을 결정한다고 들었다.
“A반은 정확히 말해서 특권계층이야. 이 반에서 진짜 성적으로 들어온 이들은 얼마 없을 걸?”
“그럼 B반은 오로지 성적순?”
“응. 그래서 B반에서 은근히 우리를 부모빨이라며 무시하는 놈도 있거든. 최시우나 나나, 레이나나 이번에 증명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오만한 놈이 많았구나.
……생각해보니 나도 추천으로 들어왔잖아.
그렇다면 B반에 우리를 증오할 놈들이 꽤 많겠군.
어쩐지 복도에서 B반 쪽 지나치면 나를 노려보는 놈들이 꽤 있더라.
그 놈들 입장에서 나는 유진석의 빽으로 들어온 특권층이니까.
“뭐 좋아. 해주지.”
최시우가 처리해주고, 귀찮은 눈총을 피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최시우는 신검사용자에 지금 졸라 강하다. 그런 놈에게서 훈련받은 한수지와 레이나는 말할 것도 없지.
한수지는 원샷원킬 죽창녀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레이나는 현무급 정령화살이 전술핵급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럼 뒤에서 편안히 버스타면 되는 일이 아닌가.
“정말?”
“그래. 대신 버스탈 테니 알아서 해.”
“한 명은 어디서 구하지?”
“우리파티에서 근접만 세명이야. 원거리는 레이나 한 명이고, 그럼 탱커나 힐러를 구해야 해. 아니, 탱커는 최시우가 맡는다고 해도 힐러는 확실히 구해야 해.”
딜러만 있는 파티. 들어는 보셨습니까.
지금 꼴을 봐서 이상적인 파티를 꾸리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힐러라도 구해야지.
“생각해둔 사람이 있어?”
“그러고 보니 전에 양호빌런여자 나가 떨어지고 나서 임시로 수녀가 들어온 것으로 알아.”
수녀? 누군가 떠오른다.
“수녀?”
“이름이 로자리아라고 했나.”
수녀 로자리아. 수녀컨셉 캐릭터로 히로인에 속하는 여자다.
레이나, 한수지, 이유정에 이어 4번째 히로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수녀 주제에 부녀자다.
생긴 건 천상여신. 백금발이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하얀 피부에 귀여운 소녀인데. 뒤에서 BL물이나 읽는다.
그것도 하드한 거더라.
주인공 최시우와 로자리아가 엮이는 것은 유은하가 죽은 후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괴인들의 습격을 막고 이겨낸 후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로자리아한테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로자리아는 자신의 비밀취미를 들키고 말지.
유은하의 죽음에 넋이 나가있던 최시우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로자리아는 굳이 비밀을 지켜달라면서 자기 스스로 히로인 반열에 들어온다.
힐러로서의 역할은 제법 좋다.
후일 능력이 개화해서 그녀는 성녀가 되고 강력한 힐러로서의 성능을 보여준다. 심지어 사지결손도 치료하며 죄악들의 공격도 방어하는 실드를 만들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할까.
구구절절이 그 여자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그 BL물을 약점으로 파티에 넣을 생각이다.
이유정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호감가는 히로인들이었다.
그런데 과연 예쁠까?
지금까지 히로인들 외모는 원작을 기반으로 고증이 철저하긴 한데. 그래도 수컷의 본능이란게 있지 않은가.
“예쁘냐?”
“에휴.”
그냥 내뱉은 말에 불꽃창녀와 현무화살이 한숨을 쉬었다.
“왜 뭐. 남자가 여자 밝히는 게 잘못된 거야? 수컷이 암컷 밝히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냐고?”
“아니, 너 암컷이잖아.”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한수지에게는 꿀밤으로 혼내줬다.
반박은 받지 않습니다.
* * *
한성아카데미 부지에는 교회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그 교회에는 지금 한 수녀가 있다.
양호실의 빌런 대신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파견된 수녀 로자리아.
저래 보여도 일단은 1학년 생도다.
영국에서 한국 한성으로 유학을 온 케이스거든.
그녀는 교회 소속으로 나름 영국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고, 예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멋진 것을 좋아한다.
“조금 뻔뻔하게 가자.”
어차피 내 외모에 떨어진 히로인이 세 마리다.
한마디로 나는 예쁘다. 암컷이 되어 남자에게 아양떨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이몸의 나는 굉장히 예쁘다.
로자리아라고 해도 쉽게 떨어질 거다.
심지어 이쪽은 약점도 잡고 있다. 구슬리면 떨어질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지으면서 교회로 입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녀복을 입은 백금의 소녀가 자애의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어머 오늘은 어떤 상처받은 가엾은 어린 양이.”
“안녕하세요. 수녀님.”
가까이서 보니 히로인답게 예쁘다.
저 백금발과 완벽한 흉부, 봉긋한 가슴, 풍선처럼 부푼 유방.
수녀복으로도 감쌀 수 없는 저 호리호리한 콜라병 몸매.
한성아카데미 결혼하고 싶은 여생도 5위안에 늘 들 수밖에 없는 완벽함을 겸비한 소녀였다.
꿀꺽
최근 들어 욕망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유정과 해보면서 나름 백합을 즐기는 것도 알아냈다.
일단 참기로 했다. 지금은 사심을 채우는 것보다는 팀원이 급하다.
“어머 예쁜 사람. 여기는 어쩐 일로?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참회라도?”
“수녀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아주 진득하고 걸쭉한 이야기를 하러 왔지.
“네?”
“이번 단체전에 제 팀이 되어주세요.”
“혹시 이름이?”
“1A반 유은하입니다.”
“혹시 그 유진석의 여동생?”
아직은 유진석의 동생으로 유명한 모양이다.
“네.”
“어, 음. 하지만 미안해요. 은하양. 저는 이번 단체전이 딱히 나갈 생각이 없어서요.”
그래도 1학년인 이상 나오는 것이 좋을 텐데.
애초에 내가 이 여자를 여기 교회에 박아둘 생각도 없다.
히로인이면 히로인답게 따라와야지.
아무래도 최시우는 이제 기대하기 어려운 고자이므로, 나라도 얘를 써먹어야겠다.
죄악들을 잡고 게이트를 온전히 구축하려면 그게 답이다.
나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하실 입장이 아니신데.”
“예?”
“타락한 아서왕과 수컷 랜슬롯.”
“!”
바로 이 수녀를 움직이게 만들 치트키다.
‘타락한 아서왕과 수컷 랜슬롯.’
제목만 봐도 딱 알 수 있겠지. 이것은 바로 BL소설이다.
교회까지 오면서 [아카식 레코드]로 이 작품 완결까지를 머릿속에 구겨넣어야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소녀는 이런 하드한 걸 보는 걸까.
“어떠냐. 랜슬롯. 이래도 네가 기네비어와 도망칠 수 있겠느냐? 이 맛을 알고 네가 여자로 만족할 수 있다고?”
“!!”
수녀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그럼 한 대 더 때려야지.
“헉. 헉 폐하. 이 랜슬롯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게는 폐하 한 분 뿐입니다.”
“!!!”
“음탕하고 사악한 기네비어를 화형하는 날 너와 나는 진심으로 부부의 연을 맺을 것이다.”
그렇다. 더 말해 무엇하리.
이 수녀는 아서왕의 전설에서 아서왕의 왕비인 기네비어와 불륜을 한 랜슬롯이 기네비어와 도망치려 하자 평소 랜슬롯을 좋아했던 아서왕은 이것을 빌미로 랜슬롯을 잡아 수컷타락을 시킨다는 내용의 소설을 즐기고 있다.
“완전히 전설을 뒤엎어서 원탁의 기사들도 엮여있는 아주.”
원탁의 기사들은 현재 영국 제일의 헌터들이다.
총 12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교회의 수녀인 로자리아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기사들이 알게 되면?
“아.아.어어. 그.그게 대체 무슨.”
“영국 원탁의 기사 공홈에 올려야지.”
“그.그만! 그만해주세요!”
기어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귀를 가리는 모습은 심히 불쌍하다.
“자, 이 사실을 영국 원탁의 기사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다들 좋아할까?”
“파렴치한! 워.원하는 게 뭔가요!? 역시 제 몸인가요?”
“그래. 나는 너를 원한다!”
로자리아의 어감이 이상하지만, 일단 팀원만 된다면 나쁠 것이 없다.
내 외침에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크흐흑. 한국인은 친절하다고 들었는데.”
“나는 내 여자들에게 한없이 친절하지.”
좋아. 이것으로 힐러도 구했다.
그런데 이 여자 갑자기 벗기 시작했다. 뭐지? 치년가? 갑자기 술렁술렁 벗고 있는 모습이 가히 수컷을 불끈하게 만드는.
아니, 나는 이제 큥큥이다. 아무튼 엄청 두근거린다.
“흑흑흑.”
“근데 왜 벗으세요?”
“저를 원한다면서요. 흑.”
그렇다고 교회에서 그렇게 막 벗어? 그리고.
“그런 의미는 아나었는…….”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차려진 밥상을 마다할 수는 없다.
강간은 아니지. 나는 원한다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XX하자! 는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최시우는 고자니 내가 상차려준다고 해도 못 먹을 거다.
그렇다면 내가 조금 맛봐도 되겠지.
교회라는 배덕적인 공간. 벗겨진 수녀복. 참을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유.유은하양?”
“이건 누가 봐도 로제리아가 유혹한 겁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
“그러니 나중에 후회해도 몰라요.”
나는 로자리아를 뒤로 자빠트렸다.
* * *
팀 명단을 제출한 다음 날, 아카데미 익명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제목: ㅅㅂA반 1팀 라인업보소
근딜 광속 유은하(유진석 동생)
근딜 신검 최시우(신검 성좌)
근딜 염화의 창 한수지(김재수 제자)
원딜 정령화살 레이나(엘프 후손)
힐러 신의대리인 로자리아(원탁교회 소속)
A반 1팀 밸런스 미쳤는데? 근딜러만 3명에 원거리1명 힐러가 하나야.
우리 게이는 포지션 조합만 보노
그래 시발 신검에 광속에 염화의창, 정령화살, 신의 대리인까지.
로자리아는 다 거절하더니 유은하팀에 들어갔네.
뻔한 거 아님? 교회에서 자빠트렸겠지.
뭐야 최시우 하렘팀 아님?
이거 유은하 하렘팀인데. 아니면 최시우도 유은하한테 넘어갔나?
신검 딜1도 ㅜㅑ
“아니, 시발. 내 이명 뭔데 광속?”
장담컨대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딱히 힘자랑한 적도 없다.
대체 어디서 이런 소문이 퍼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파티조합 탓에 B반도 난리가 났다.
“얘네들 잡아야 A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어.”
“유은하를 잡자!”
특권계층이라 불리는 A반에서 가장 유명한 것들끼리 조합을 짰으니까. 어떻게든 우리를 잡아 특권층을 누르고 싶은 미친놈들이 있다.
단체전은 3대 헌터 아카데미가 주최한다는 설정이었다.
그 때문인지 불방망이가 오늘은 불필요하게 말이 많았다.
“단체전은 한국 3대 아카데미가 함께 하는 거니까. 단순히 다른 팀이나 다른 반만이 우리 경쟁상대는 아니야. 뭐 B반은 A반에 감정이 안 좋아서 어지간하면 자기들끼리 뭉쳐 우리와 싸우고 싶은 양인데. 단체전은 TV, 인터넷방송으로도 나가고, 다른 나라의 유명한 헌터들이나 길드. 협회에서도 관전하러 오니 다들 한성아카데미 생도라는 자존심을 갖고 단체전에 임해라.”
심지어 방송? 어우 끔찍해.
“그리고 단체전 첫날은 한성아카데미에서 열린다. 그 날은 타국의 유명인들까지 참여하는 거라. 아카데미 결계를 해제하고 협회와 길드의 헌터를 배치할 것이니, 너무 놀라지들 말아라.”
소설 속에서도 괴인의 습격이 있던 날은 아카데미의 결계가 해제되었을 때다.
다만 그때는 흑신교의 공작으로 결계가 깨진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는 다른가?
슬쩍 최시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엄지를 세우고 있다.
……아무 일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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