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5. 4zh1 D4h4k4
* * *
* * *
4/_#! )4#41
슬슬 인정하셔야해요.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혀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4/_#! )4#41
이번에는 제발 끝내요. 당신 스스로 문을 열고 고리를 끊으란 말이야.
이 세상의 주인공은 최시우가 아니라구요.
“씨발. 시끄러.”
어느 순간 잠이 들었나보다.
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아직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협회의 헌터가 나를 감시하고 있지 않았나.
어쩌면 아카데미를 지키러 빠진 걸 수도 있다.
“그래. 아무래도 그때인 것 같네.”
아카식 레코드의 말이 맞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 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된다. 이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이벤트는 내게 있어 중요한 이벤트다.
최시우도 아닌 바로 나에게 있어 중요한 이벤트. 이 모든 것을 구상한 작가가 내게 준 기회였다.
본능적으로 일으킨 몸에 생도복을 걸쳤다.
조금 전부터 색이 연해진 검은 아저씨를 다시 칼로 쳐내고 나는 아카데미로 달려갔다.
“최시우가 바꿔놓았고, 그럼 지금 타이밍에서 나올 아카데미 습격 괴인은 상당히 한정되어있다.”
당장 죄악같은 것이 나오지는 않을 거다. 그들은 아카데미 전복에 관심이 없으니까. 다만 한성을 넘어 신검을 노리는 악역은 김승준 말고 한 명 더 있었다. 최시우에게 첫 S급 적이면서 동시에 한국헌터 협회 몰락의 신호탄을 터트리는 인물.
“김재수 헌터.”
전작의 주인공 유진석 최대의 라이벌이자, 그래도 최종결전에서 유진석 덕에 살아남아 두고두고 열등감에 시달렸던 그 인물.
2대 신검이라도 잡겠다고 나타났던 인물.
그 녀석으로부터 나는 최시우를 지켜내야 한다.
[목표: 최시우를 지켜라]
[보상: 진실]
최시우를 지켜야지 나는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뛰었을까. 아카데미 부지에 진입했다.
협회에서 나온 헌터들이 학살당했다.
순간 그 역한 피냄새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코를 간질이는 피냄새. 피부로 느껴질 정도도의 살의
이 모든 것이 여기가 현실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한참 달리다보니 거대한 마기의 한 가운데에서 한 남성이 최시우의 목을 잡고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런 이런. 2대 신검은 이렇게 약한가?”
“콜록. 신검한테 질 거 같아 코어까지 먹은 자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켁!”
“네 몸을 보니 다른 의미로도 치욕을 주고 싶다만. 한참 즐기다 유진석이 오는 것은 싫거든.”
“겁.쟁이 주제에. 큭.”
당하는 사람은 최시우. 가해자는 온 몸을 검게 도색한 김재수였다.
S급 창술사 김재수. 그 자가 괴인이 되어 아카데미를 기습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검을 얻기 위해서 또는 신검을 죽이기 위해, 그 둘도 아니라면 그릇으로 삼기 위해.
아마 이 무렵부터 그는 흑신교에 접선하고 있었겠지.
S급 창쟁이가 괴인이 되었다면 SS에 준하거나 그보다 조금 떨어질 것이다.
아직 개화라고 할 수 있는 2차 각성을 하지 못한 최시우가 이길 리 없겠지.
다행히 늦지는 않았어.
“그런데 말이야. 신검사용자의 몸에 SS급 코어를 박으면 어떤 생명체가 될까?”
“그게 무슨.”
“이것으로 신검이든 헌터협회든 전부 끝장날 거다.”
김재수가 최시우를 넘어트리고 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코어를 최시우에게 들이밀고 있었다.
SS급 코어.
굉장히 익숙한 장면. 그리고 늘 반복되던 그 장면.
너무도 익숙해 보이는 그 광경에 나는 최시우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코어 앞으로 뛰어들었다.
콰직!
아주 잠깐 사이 내 가슴속으로 박히는 코어가 느껴졌다.
김재수는 설마 갑자기 외부인이 끼어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유.은하?”
“내가 집에만 있는다고 이 세상을 구할 수 없어.”
이런 말을 하는 순간에도 내 몸에 박힌 코어는 급속도로 몸을 침식해나간다.
“너 대체. 왜.”
코어가 심장을 대신하고 내 몸을 코어에 맞게 되돌린다.
“나는 나의 싸움을 끝낼 거야. 그러니 너는 너의 싸움을 끝내.”
코어에서 흐르는 거대한 마기가 내 몸을 순환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온몸이 격류에 휩쓸리고 살과 뼈과 재구성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이윽고, 그 고통은 머리를 침식하기 시작했고, 원작대로 내 몸은 폭주를 하려했다.
그 순간, 나는 병렬회로를 발동했다.
내 자아, 인격개념을 병렬회로로 만들었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폭주하려는 몸을 멈추기 위해.
이 거지같은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해서.
폭주하기 시작한 몸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자나는 세상이 끔찍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도 몇 번이나 본 장면이었다.
[임무 목표달성]
[보상: 진실]
* * *
진실
나는 수없이 같은 시간을 반복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죽었다.
처음에는 원작의 유은하처럼 겁쟁이었다.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
심지어김승준에게조차 성폭행당했다.
그래서 개구리가 싫었다. 너무도 싫었다.
김승준을 넘길 수 있던 내게 다음 위협은 원작 스토리대로 괴인에 의해 코어가 이식되고 죽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유은하?”
“이제 이 거지같은 꿈에서도 깨게 되겠지.”
그렇게 1회차는 최시우의 앞에서 대놓고 괴인에게 꿰뚫려서 코어가 이식당해 죽었다.
그런데, 분명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소날로 돌아와 있었다.
막상 맛본 죽음은 최악이었다.
설마 또 같은 시간의 반복인 걸까.
그리고 설마는 사람을 잡는 법이었다. 나는 개구리를 또 상대해야 했고, 이번에는 죽기 싫어 도망치다가 끝끝내 나를 찾아온 괴인에 의해 죽게 되었다.
마치 이것이 내 운명이라는 것 같았다.
내가 일상에서 보는 어두운 하늘은 내가 죽을 때 시야가 점멸하면서 보았던 장면이었다.
어느 회차부터 담배를 피면서 어떻게든 그 기억을 잊으려 했다.
애초에 담배따위로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병신이었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억지로 제가 개입해본 거였죠. 원작의 최시우를 회귀시키고 당신의 기억을 지웠습니다.”
흑발의 유은하가 가슴을 쭉 피며 당당히 말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얄미웠던 나는 앞에 의자에 앉아 탁상을 손으로 치면서 그녀를 째려봤다.
“……씨발년. 왜 이제 말해주는 거지? 진작에 말해줄 수 있었잖아? 여기가 현실이라고.”
“했어요. 모두가 말했죠.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세계가, 꿈이라고 하기에는 완벽한 오감이, 꿈속의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완벽하게 독립적인 자아를 갖고 있는 히로인과 최시우. 모두의 존재 자체가 당신의 세계가 현실이라는 걸 말해줬어요.”
그 말에 나는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분명. 나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무서운 세계에는 있기 싫었다.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무서웠다.
그래. 인정한다 치자, 그래도 이것으로 끝낼 수는 없다.
“하. 그래. 계속해봐. 보상이 진실이잖아. 설마 그걸로 퉁치려는 것은 아니겠지.”
“한 소녀가 있었어요. 그 소녀는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신이었죠. 과거 이집트의 태양신 라가 있었다면, 이 시대에 갑자기 나타난 그 신은 그 소녀였어요. 하지만 그녀는 인간의 몸이었고,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죠.”
“찐따에게 힘이 있다면 세상을 말아먹는. 뭐 그런 건가.”
“다르지만, 아. 틀린 건 아니네요. 실제로 천애고아였던 소녀는 자신이 쓰는 소설을 현실로 만들어 ‘유은하’라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것이 유은하가 탄생한 이유였나.
나는 그 역할에 딱 맞는 인물이었고?
그 소녀는 결국 내 앞에 있는 이 흑발의 유은하겠지.
“그 판에 놀아줄 터이니 더 말해.”
“하지만 소녀는 지루했어요. 그래서 문득 재밌는 걸 만들어볼까 하고 신화를 읽다 악룡 4zh1 D4h4k4에 대해 듣게 되었죠. 아, 실례. 회차를 반복하면서 있을 충돌을 막기 위해 리트로 쓴 거라서요. 아지다하카에요. 리트가 뭔지는 알죠? 영여권의 야민정음 같은 거에요. 인터넷은어요.”
아,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다.
문제는 이 년이 아지다하카를 만들었다는 뜻인데. 그럼 10억 학살범이 내 앞에 있는 여자라는 거군.
“그걸 만들었나?”
“그거라니. 뭐 아무튼 아지다하카를 만들었는데, 그만 대격변이 일어났지 뭐에요. 그리고 이 세계의 역사대로 세상은 괴수들이 나타났고, 온갖 빌런과 헌터의 존재가 등장했죠. 세상은 그렇게 망가졌고, 그 탓에 힘을 꽤 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선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주인공격인 유진석과 유은하인 저를 소설의 시간대로 돌린 것. 그리고 다양하게 인간들을 괴롭히던 악룡 아지다하카를 다른 세계로 보내버린 것이에요.”
“다른 세계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알고 계시죠? 상자 속의 고양이가 살아있을 수도 있고, 죽어있을 수도……알았어요. 그냥 평행우주라고 할 테니 째려보지 마요. 오랜만이라 대화를 좀 하고 싶었을 뿐인데……대격변이 존재하는 세계는 새로운 평행세계로 이전 세계와 존재하게 되었는데, 저는 아지다하카를 대격변이 없는 그 세계로 보내버렸어요.”
한마디로 답없는 새끼를 쫓아낸 것처럼 아예 다른 세계로 보내 세계를 지킨 것이구나.
그런데 그렇다면 이상하다.
즉, 내가 있던 지구로 그 아지다하카가 왔다는 말인데, 원래 세계에는 아지다하카는 커녕 이무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지다하카가 존재했으면 그 지구도 망가졌을 텐데?
“하지만 내가 살던 지구는 멀쩡했는데?”
“그야, 그렇죠. 내쫓아내긴 했는데 그 세상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인간으로 전생시켰으니까요. 그저 아무런 목적없이 악룡으로써만 의무를 다하던 아지다하카에게 인간의 삶을 살면서 자아를 고쳐놨죠. 그렇지만 본래 이 세계에 존재하던 아지다하카는 돌아와야만 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세계를 웹소설로 그쪽 세계에서 볼 수 있도록 했죠. 서서히 이쪽 세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익숙해지게 할 셈이었어요. 여기에 심술을 더해서 소설 속 ‘유은하’를 계속 죽게 만들었죠. 다 읽어놓고 뒤늦게 빡치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뭐? 잠깐만. 지금 그 말은 마치 나를 말하는 것 같잖아.
“아니 시발. 잠깐. 기다려봐.”
“그 아지다하카가 온갖 욕을 하는 꼴은 웃기더라니까요. 그리고 때가 되어서 유은하의 몸으로 돌아오게 한 거에요.”
아니다. 아닐 거다. 그런 전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하기 싫다.
아니면 유은하의 몸은 사실 2개가 아닐까? 그래야만 한다.
“아니지?”
“그때는 처음부터 나타나 유은하가 주인공인 소설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아지다하카를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할 셈이었죠. 먼치킨으로 편하게 말이죠. 그 적당한 몸이 유은하의 몸이었습니다.”
듣기 싫어 귀를 막았는데도, 이 빌어먹을 작가의 목소리가 귀를 계속 울려댔다.
“아지다하카가 가졌던 힘은 너무 강대해서 힘을 되찾으려면 특수한 조건을 붙여야만 했어요. 원래 아지다하카는 괴수의 어머니격이니 최소 SS급 코어를 이식받는 것.”
“그런데 가면 갈수록 그는 괴로운 현실에 부정하고 꿈이라 생각했죠. 나쁘지 않아요. 애초에 이런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법이니까. 그런데 그 탓에 어차피 죽어도 꿈이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서, 본인의 프롤로그가 막 끝나갈 때마다 게임오버를 해버렸죠. 그 이벤트에서 수백회차 즘 지나자 겁을 먹고 숨으면서 나약한 모습도 보이기도 했고, 도무지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왜 자꾸 내 이야기를 하는 건가.
아니다. 그만해라. 듣기 싫다.
“심지어 아지다하카는 저쪽 세계에서 회사원으로 찌들어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회사원인 시절 제 모습을 자꾸 환각증상으로 보았죠. 환시말이에요.”
마치 무언가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식을 조금 바꿨어요. 두 번째 말하는 거지만 원작 클리어를 실패하는 미래의 최시우를 돌려놨죠. 아지다하카의 머리도 초기화 시켰구요. 수백회나 누적되어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인과율이 조정된 건지 몰라도 그는 병렬회로로 마침내 힘을 개방하고 죽지 않는 전개를 이끌어 냈어요. 게임으로 치면 초반부 중간 보스에게 수백회나 죽고 공략법을 깨달은 격이죠.”
“아니야. 설마.”
이 세계의 괴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아지다하카의 특징에 대해 알 수 있다.
아지다하카는 인간들이 혼란스러워하고 분열에 빠지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쾌락과 존재가치를 느끼는 변태다.
내가 아무리 병신같이 산다고 해도 차라리 섹스를 하고 말지. 쾌락을 즐기겠다고 살육행위를 할 리가 없다.
“또 현실을 부정하지 말아요.”
인정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나한테는 사람들을 학살하던 기억조차도 없다고.
“……아지다하카.”
나를 향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