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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27화 (27/331)

〈 27화 〉 26. 아지다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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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 무렵 바깥에서는 최시우가 검게 물들고 있는 유은하의 몸을 붙들었다.

이대로 라면 폭주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심장이 코어에 먹혔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유은하?”

[정신차려! 최시우! 눈앞의 적에게 집중해!]

“또. 또 죽었어! 유은하가 죽었다고!”

[여자애가 되고 싶다더니 좋아하는 사람이 저꼴이 되었다고 감성적이 되었냐?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너까지 어떻게 되면 이 세계는 끝이다!]

기껏 회귀한 마당에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검의 성좌는 어떻게든 최시우를 되돌릴 생각이었는데. 최시우는 회귀 전의 일이 걸리는 것 같았다.

성좌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서고 싶지만 그것이 어려웠다.

이 상태라면 반 강제로 100% 싱크로가 불가능하다.

“미친년. 유진석의 동생이란 년이 이런 무식한 선택을 할 줄이야. 뭐 좋아. 이년은 곧 폭주할 테고, 2대 신검사용자를 내 손으로 죽여볼까.”

김재수가 창을 높이 들었다.

[야, 최시우!]

까앙!

괴인 김재수의 창날이 최시우의 목을 찌르려는 순간.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머리의 창술사 한수지가 막아섰다.

“스승님!”

“허, 이게 누구야. 귀여운 내 제자가 아닌가. 기껏 잘 키워놨더니 2대 신검사용자도, 유진석의 동생도 못 이긴 반푼이 같은 녀석.”

한수지는 괴인이 된 김재수의 모습에 경악했다.

저게 대체 뭔 꼴이란 말인가. 평소에도 음침한 것이 재수없지만, 지금껏 저를 돌봐주고 후계자로 키워준 분이라 믿고 따랐는데. 괴인이 되다니. 전설의 창술사 김재수가 아니라 괴인 김재수의 제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테니 어쩐다는 말인가.

무엇보다도.

이제 유은하가 저를 어떻게 볼까.

괴인의 제자라고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을까.

그 때문인지 더 화가 치밀었다. 눈앞의 김재수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딴 미친 선택은 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다고 괴인이 되는 선택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미련한 것. 어차피 이 세상은 힘이면 다 되는 거야. 지금 나를 이길 자 얼마나 될 것 같으냐?”

“그래놓고 유진석이 오기 전에 튈 거면서!”

제자의 말에 김재수는 깊은 빡침을 느꼈다.

그래. 실제로 유진석에게 몇 번이나 졌었으니, 트라우마가 되었다.

기껏 괴인이 되어 강화된 지금도 과연 유진석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이년! 제자라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내 오늘 너의 그 반푼이 같은 몸둥아리도 철저히 교육해주마!”

“청출어람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습니까!”

한수지가 염화의 창에 불꽃을 깨웠다.

김재수는 한수지가 염화의 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역시 내어주지 말걸 그랬나.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창도 염화의 창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S급 괴수인 마룡의 비늘로 만든 마창이니까. 강도만 따지면 염화의 창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쉬이익­콰앙!

스승과 제자의 한판 싸움이 시작되려 할 무렵. 김재수를 향해 거대한 화살이 날아와 폭발했다.

이미 창으로 그 화살을 쳐낸 김재수였으나, 계속 적이 늘고 있으니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또 어떤 새끼야!”

“유은하를 저렇게 만들고 최시우…군? 어? 양? 아무튼 저것을 저렇게 만든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생도복 곳곳이 찢어져 속살이 비치는 최시우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른 탓에 레이나는 최시우를 대충 흘려넘기면서 김재수를 향해 활을 겨냥했다.

“가지가지하는 구나. 좋다. 오늘 한성의 인재란 인재는 다 죽여주마!”

S급 빌런 김재수가 유은하의 히로인들에게 덤벼들었다.

* * *

수많은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수백회나 되는 반복되는 기억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 내 삶. 누군가에 의해 탄생해서 세상의 생명들을 죽이고, 마술을 부려 인간들이 혼란해 하며 서로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가혹한 모습.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 시절의 나는 인간이 아닌 악룡으로써 존재했다.

머리가 좋으며, 교활해서 직접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죽인다.

초기에는 용의 모습으로 사람을 직접 죽이고 다녔다.

마지막에는 귀찮아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여인의 모습이 되어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어 서로를 죽이게 만들었다.

본능에 굉장히 솔직했던 짐승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람들을 죽이고, 서로 죽이는 것을 바라보며 성적 쾌락을 느끼는.

“우웩!”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랐나보죠?”

“아니 시발.”

토악질이 또 올라온다.

“심지어 수녀인 모습으로 서로 죽이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자위를….”

“안 돼. 그 이상 말하지 마.”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생각도 하기 싫다.

애초에 그게 나인가? 아니야. 아니어야 한다. 여러 의미로 인정할 수 없다.

아니, 다 떠나서 10억이나 죽였다. 어떻게 인정한다는 말이냐.

작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조금의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뭐.”

“후우, 굳이 그렇게 자책할 필요가 없어요. 애초에 아지다하카를 만든 것은 저에요. 10억이 넘는 학살자는 저란 거에요. 대격변이 일어난 것도 엄밀히 따지면 제 탓이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런 끔찍한 것들을 쉽게 잊을 수 있을 리가.

“그렇다면 왜 이 기억을 되돌린 거야?”

“당신도 느낄 거 아니에요. 그 시절과 당신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당신은 아지다하카의 힘과 기억을 물려받은 유은하일 뿐. 사람들을 죽인 과거? 그런 걸로 치면 전생에는 학살자였던 사람들은 다 괴로워하게요?”

그거랑 이건 경우가 다른데.

학살에 대한 규모 자체가 다르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브레스로 태워죽이고 마법으로 혼돈에 빠트렸다.

온갖 악한 짓을 벌여 죽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후. 뭐 그래도 수백회 만에 여기까지 왔으니, 고유능력 하나를 더 줍시다. 원래는 아지다하카를 더 놀려먹으려고 안 주고 있던 건데.”

“무슨? 능력을 그리 주고 뺐다할 수 있는 거야?”

“나도 마냥 전지전능하지 않아요. 있는 기력 쥐어짜서 우리 용용이 선물 주는 거라구요.”

용용이라니. 기분 상당히 더러운데. 내가 애완용 드래곤이 된 거 같지 않은가.

그녀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트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얼마 후, 허공에 퀘스트 알림이 떠올랐다.

[임무목표: 작가와 대화하기]

[보상: 고유능력]

[임무달성]

[보상: 냉정함]

고유능력 냉정함. 이것은 혼란스럽거나 감정이 제 의지와 달리 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발동하는 것이다.

확실히 조금 전보다는 나은 거 같다.

“꼭 이런 식으로 게임 시스템 거쳐야 해? 이럴 때마다 꿈인지 현실인지 또 햇갈리잖아.”

“이곳에서만 지내다 보면 심심하다구요. 이런 거라도 혼자 해야지.”

그러고 보니 이곳은 이 작가. 유은하만의 공간인가.

현실에 있는 유은하의 방과 비슷한 형태다. 그런데 나처럼 하얀색에 미쳤는데, 온통 하얀 것이 마음에 든다.

그럼 이곳은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심상세계 같은 곳일까.

그렇다면 굳이 내가 겉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

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인있는 몸을 쓰는 짓은 하기 싫다.

“어차피 이 몸의 원주인은 너 아니야? 나는 없어도 돼 그럼.”

“아니요. 그건 좀.”

그녀는 곤란하다는 듯 멋쩍게 웃었다.

아, 알 거 같다. 얘도 그런 거다.

“역시 너도 책임 때문이지?”

나를 만든 책임. 10억이나 죽게 만들고 심지어 대격변을 만들어내기까지 한 책임. 차마 이 모습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었다던가.

나는 당시에 정말 신화 속 악룡보다 더 철저하게 의무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다면 이 여자는 아무 생각없이 나를 만들어냈으니까.

하다 못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다른 존재를 만들었으면 대격변없이 오히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죽은 자들은 윤회의 고리에서 다시 태어난다지만, 당신은 그냥 내가 재미로 창조한 탓에 그저 본능에 따른 것이 전부라면 나는 시켰을 뿐이니까.”

“그런 거라면.”

“애초에 그 몸. 더는 인간이 아니에요. 아지다하카의 힘을 얻은 그 몸은 불로불사나 다름없죠. 그래도 모처럼 작가인데 괴인의 몸에 들어갈 수는 없어요. 나도 프라이드가 있지. 이곳에서 뒹굴거리는 게 좋아요.”

“와 재수없다. 너.”

심지어 날 대놓고 괴인취급했어!

아니, 인간들의 정의상, 괴인은 맞다.

단순한 마력. 즉, 마나를 다루는 것보다 마기를 다루는데 더 뛰어난 소질이 있으니까.

“농담이고 말했듯이 마냥 전지전능하지 않아요.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내 창조물을 다른 세계로 옮기고 이게 얼마나 힘을 소비하는데요. 힘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럼 최종결전은?”

“그것도 인과율에 따라 바뀔지도 몰라요. 최시우가 회귀하기 전의 세계가 원작 그대로인데. 유은하의 몸에서 폭주한 SS코어가 이계에 영향을 주고 끝에 2차 대격변을 일으키죠. 세상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그리고 SS급 들이 무더기로 나오고 끝에는 악마를 잡는다는 스토리. 는 알겠죠?”

“응.”

그랬던가? 작가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용용이는 그냥 닥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런 미래가 없으니까. 어쩌면 그 전의 악역들인 죄악들이 최종빌런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강해져서 말이죠. 이건 제가 건드리면 더 이상해질 까봐 그냥 내버려 둘 생각입니다.”

“탐욕이 중국에 있었지.”

하필이면 죄악 하나가 당장 중국에 있다.

아직은 등장하지 않고, 아마 숨죽이고 힘을 키우고 있겠지.

나중에 얼마나 강해질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완전히 힘을 각성해서 싸울 필요가 있다.

“이번에 김재수가 날뛴 탓에 협회가 아주 말아먹게 생겼어요. 뭐 앞으로의 이야기는 유은하가 만들어가는 거지만요.”

“유은하는 너잖아. 나보고 너를 뭐라고 부르라고? 작가님? 폼이 안 나잖아. 자만하긴 좀 그렇지만 명색이 아지다하카를 만든 신님이라면 이름으로 불려야지.”

“알았어요. 둘이 있을 때만 서로의 본명을 부르도록 하죠.”

아,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다.

“그런데 배에 있는 이거 문신은 뭐야? 음문(??)인가 뭔가 떠오르잖아. 게다가 귀랑 여기 이거 피어싱이라던가.”

대체 무슨 취향을 가졌으면 제 몸에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귀에 있는 건 예뻐서 내버려 뒀다만.

“그거 당신 수녀일 때 자기 몸에다 한 거였어요. 남자일 때도 인터넷으로 이런 태그의 만화만 봤으면서 뭘. 그래서 취향에 맞을까봐 커스텀해뒀는데요? 이 음탕한 용용이 같으니.”

“솔직히 말해.”

내 물음에 그녀는 두 눈을 정말 앙증맞게 굴리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하아, 반은 진담이에요. 수녀인 당신은 그렇게 했었고, 아마 그거 아티팩트였던 거 같기도 해요. 힘을 조금이라도 봉인하는 거였다던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에휴. 배에 그것도 음문이란 기상천외한 상식의 문신이 아니라 잘 보면 아지다하카의 문장이에요.”

진짜 그건 내가 아니었다. 10억을 학살했을 때나 그건 절대 내가 아니야.

그런데 아지다하카의 문장이 음란해 보이는 것은 결국 창조주인 유은하의 탓 아닌가?

“내 여자들이라니.”

“그럼 아니에요? 지금 모두가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해서 김재수와 싸우고 있다구요?”

김재수와 아직도? 최시우가 더 강해지지 않았나?

김재수를 이길 정도로 개화는 해야지.

“이제 갈거야.”

내 여자들이라고 하니 지키러가야지.

“아, 뼈 삭으니까 적당히 하세요.”

“……노력해볼게.”

여자들이 나를 가만히 놔둬야 말이지. 애초에 그까짓 거 좀 비빈다고 뼈가 삭을 일도 없다.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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