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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28화 (28/331)

〈 28화 〉 27. 백염의 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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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떠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주변 상황을 살폈다.

나는 뒤에 쓰러져 있고, 최시우 역시 의식불명. 아까 그 패닉 상태에서 쓰러졌던 걸까.

꼬라지를 보니, 저건 이기지 못할 것 같다.

“대체 왜 아직도 지원이 오지 않는 거지?”

“멍청이들. 확실히 유진석이라면 모르겠다만. 지금 유진석은 해외 파견나갔다. 그리고 아카데미 주변은 내 수하들과 내가 새로운 결계를 설치해서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이지.”

수하들까지 있었나?

하긴, 유진석 탓에 협회에서 김재수에 붙다가 도태된 헌터들도 많았다. 아마 보복하고 싶은 자들도 제법 있었겠지.

그들을 괴인으로 만들었다면 따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뭐? 그럼 우리는.”

“잔챙이들이 귀찮게 하다니. 너희들에게 지원은 없다는 뜻이다. 이 멍청이들아.”

더는 못 들어주겠다.

레이나와 한수지도 꽤 다친 것 같고, 아카데미 전체에 마기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괴인들을 위한 필드나 다름이 없다. 오래 끌 싸움이 아니다.

일단 마기부터 흡수하기로 했다.

한 손을 마기에 휘젓자 그 눈에 보일 정도로 깊은 검은 연기가 내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남은 헌터들이 괴인과 싸우기 쉬울 것이다.

“어? 마기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유은하?”

“김재수. 네 덕에 봉인을 풀었다. 이건 고마워해야겠군.”

수백회를 반복했다지만, 만일 저놈이 SS급 코어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나는 꼼짝없이 스팀팩 유은하 수준이 끝이었을 거다.

“뭐.뭐라고?”

“아무튼, 이제 네 상대는 내가 할게.”

다친 애들 앞에 세우기도 뭐하니까.

“뭐야, 그 황금색의 눈동자는? 동공이 마치 뱀같은.”

“뱀도 맞지만,용이라 불러라.머저리 새끼야.”

누가 자기 같은 줄 아나.

“뭐냐, 너그건 마치 아지다하카 같잖아?”

확실히 괴수도감에 아지다하카의 눈동자는 황금색의 뱀눈동자와 비슷하다.

“은하. 너.”

한수지와 레이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내 모습은 좀 이질적이겠지. 그런데 지금은 걸즈토크나 할 때가 아니다.

“레이나. 너는 최시우를 부실로 데려가라. 선배가 포션을 가지고 있으니 가서 치료해. 한수지 너는 저 북쪽에서 공격해오는 괴수와 괴인 무리를 격파하는데 도움을 주고.”

“너.너는?”

“저 떨거지를 맡겠어.”

딱히 강해보이지도 않으니 나는 당당히 손가락으로 놈을 겨눴다.

“떨거지라니! 건방진 년이!”

레이나와 한수지가 도망칠 때까지의 시간도 주지 않는다니. 아무래도 이놈은 레이디 퍼스트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쉬익­퍼억!

옆에서 발을 차길래 그대로 다리를 잡아 내던졌다.

속도는 꽤 빠른 편인데, 나에 비하면 약하다.

그러다 문득 놈의 손에 있는 검은색의 창이 눈에 들었다.

“호오. 마룡의 비늘로 만든 창인가.”

그럭저럭 강력해 보이는 창. 이 정도라면 염화의 창과 강도는 비슷할 것이다.

염화의 창을 제자에게 넘겨준 김재수는 실력으로 커버치려는 모양이지만.

“괴인이 되어 뭔가 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어쭈? 또 덤벼?

“나는 되는데?”

콰직!

나를 찌르고 들어오는 마룡의 창을 사뿐히 잡아 부숴버렸다.

악룡에 비하면 한참 격떨어지는 존재의 비늘로 만든 창 따위가 날 뚫을 거라 생각했나.

오히려 용타입의 무기라면 상성 상 내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여유로워서 그런지 장난 좀 치고 싶다.

원작 설정상, 그리고 내 기억으로 김재수의 부모님은 가족끼리 중국에 여행갔다가 수녀컨셉을 하며 학살을 벌이던 나에게 잡아먹혔다.

어, 그러니까 식인으로.

“그러고 보니 네 부모가 나한테 죽었다지? 내가 잡아먹었었나?”

“뭐?”

그 시절에는 식인도 하긴 했었다.

한참 어렸던 김재수를 지키던 부모를 잡아먹었지.

특히 수녀의 모습으로 방심시키다가 잡아먹었을 때는 진짜 꿀맛. 아. 이럴 때가 아니다.

“나 아지다하카라고.”

“너. 정말로!”

“네 부모님 맛 쩔더라.”

황홀한 표정으로 뱀같이 끝이 반으로 갈라진 혀로 날름거리자 김재수의 두 눈에 핏발이 맺혔다.

“씨발년이!”

“악룡의 브레스를 느껴보렴.”

인간의 모습으로 지내던 시절에도 브레스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쓰기로 했다.

내가 쓰는 브레스는 세상 모든 것을 태우는 새하얀 불꽃. 백염이었다.

전면에서 차마 인간의 뇌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성으로 돌격해오는 김재수를 향해 입을 벌리고 그대로 브레스를 쏘았다.

콰르르륵

아주 강력한 한방으로 우리 김재수의 상체를 뜨겁게 달궜다.

“어머, 버틸 줄 알았는데, 상반신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네.”

“이. 이 괴물.”

“미안 한 번에 태우려 했는데, 간만에 해보는 거라 머리 조준 못했다. 뭐 그래도 그거 목표물은 반드시 불태울 때까지 죽지 않으니까.”

내 브레스는 백린탄 보다 더한 효과를 가졌다.

생명체가 불탈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살을 태우면서 피해자는 제 몸이 점점 재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지금 김재수도 그렇다.

그저 불타죽는 것만이 아니다. 저 고통은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얼굴을 제외한 상반신의 오른쪽이 사라진 상태로 붙은 불이 점차 그의 몸을 재로 만들어갔다.

“끄아아아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괴성을 지르던 놈의 목을 검으로 베어냈다.

일단 주범의 목은 잘라둬야 후일 협회 측이 알고 처리할 테니까

협회 내부에도 배신자가 있었음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은하야?”

“최시우는?”

“말한 대로 레이나가 부실로 데려갔어.”

“남은 괴인들도 처리하자. 조금이라도 남은 헌터들을 살려야 해.”

조금이라도 살려둬야 나중에 탐욕이 있을 중국과의 결전을 대비하지.

아카데미 건물 본관 자체는 이유정이 만든 골렘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덕에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하던 생도들이나 기숙사에 있던 생도들은 살아남은 것 같다.

그런데 김재수를 처리한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건 아니다.

레이나가 들어갔을 아카데미 본관이 서서히 괴수들에게 둘러싸고 있었다.

“괴인들이랑 괴수들이 꽤 많구나.”

아카데미를 공격하는 괴수들과 괴인들은 골렘에 막히고 있으나, 창문을 이용하면 금방 뚫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골렘들이 군대급으로 많은 것도 아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검에 백염을 둘렀다.

“나도 싸울게!”

한수지가 창을 빼들었다.

“아니야. 아까도 그냥 해본 말이었어. 너 김재수와의 싸움으로 많이 힘들잖아.”

그래도 한때는 자기 스승이었다. 그런 자와 싸웠고, 그런 자가 죽는 것을 봤으니, 그런 몸으로 싸우기란 어려울 테지.

어차피 저깟 괴수들을 잡는 거야 어렵지 않다.

칼을 휘두르자 칼을 칠하고 있던 백염이 부채꼴로 넓게 퍼져 괴수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크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마치 세상을 정화하는 것처럼.

언젠가 사람들을 불태웠던 새하얀 화염은 괴수들을 죽여 생도들을 구하고 있었다.

“살았다! 살았어!”

"유은하 만세!"

아카데미 창문에서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생도들이 보였다.

불방망이가 있었다면 최소한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필시 괴인들은 김재수의 부하들. 괴수들은. 흑신교의 지원을 받은 것 같다.

일단 흑신교의 간부들 중에는 괴수를 소환하는 자도 있다. 도시에서는 결계로 방비가 되어있어 쉽게 사용할 수는 없다.

그것도 이곳은 수도권이니, 더 그렇지. 아마 김재수가 결계를 풀어둔 덕에 이번 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은하야. 저기 봐!”

한수지가 가리킨 곳. 정확히 아카데미 뒷문에는 게이트가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게이트.

그 앞으로 널린 헌터들과 괴수, 괴인들의 시체들.

그 뒤로는 길드나 협회 측으로 보이는 헌터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새 아카데미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무기를 잡고 있다가 아카데미 본관의 괴수들을 쓸어버리는 백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김재수의 습격 이벤트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 피해는 심각했다.

협회 측 D~F급 헌터가 사실상 몰살되었다.

급하게 지원군을 파견한 길드들도 헌터들을 잃어야 했다.

인과율이 조정된 이 세상에서는 본래는 없어야 할 헌터의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 * *

한국 헌터협회

김재수의 배신과 더불어 한성아카데미에 대한 습격이 있던 날.

협회장 최철식과 부회장 정나윤은 죽을 맛이었다.

헌터들의 피해가 커도 너무 크다.

“죽은 헌터들의 피해만 300명이 넘습니다. 협회의 헌터무력권은 더는 사용할 수 없을 듯합니다.”

헌터무력권.

국가적 위기상황 때, 협회가 소유한 헌터를 정부의 허가없이 괴수의 범람이나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이번 한성아카데미 습격사건으로 상당히 많은 헌터가 피해를 봤다. 무력권을 사용할 전력도 없고, 이것만이 아니라 김재수의 배신을 미리 알아채지 못하고, 심지어 도심에 괴수와 괴인이 대놓고 침입하였다.

“길드는.”

“길드는 이번에 급하게 파견한 장미길드의 D급 헌터 10여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또 강철길드의 부길드장 최준오가 김재수의 일격에 지금 헌터중앙병원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아마 다시는 헌터생활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협회만이 아니라 길드의 헌터들까지. 심지어 강철길드의 부길드장 최준오는 A급 중에서도 꽤 이름있는 인물이었다.

이거 피해가 커도 너무 크다. 설마 한때 유진석과 힘을 합쳐 평양 탈출전을 끝냈던 그 인간이 이토록 대놓고 인류를 배신하다니.

“이번에 김재수를 죽인 애가 누구라고?”

“유진석의 동생 유은하입니다. 자, 이걸 보시죠.”

정나윤은 한성 아카데미 2학년 생도 이유정이 보낸 영상파일을 노트북으로 실행했다.

모니터에서는 유은하가 신검, 정령화살, 염화의창이 고생한 S급 빌런 김재수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2차 각성이라도 한 건가? 무슨 이런 힘이. 당장 저 백염의 능력은 뒷전으로 하고 신체능력만으로도 저 김재수를 압도하고 있지 않나.”

주능력이 아닌, 기본기. 오로지 체술만으로 김재수를 당황시킬 청도로 제압하고, 마룡의 비늘로 만든 창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예. 이미 언제든 실전투입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번 단체전 벨붕 아니야?”

“뭐 그래도 이번 기수들은 다들 대단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전세대에서 유진석의 동료였던 인물을 제압할 정도의 존재가 유은하말고 또 있을까.

그건 아니겠지. 이번 일로 한성의 무방비함도 겉으로 드러났으니, 오히려 유은하를 내세우는 것이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다.

“유진석이 기뻐하겠군.”

동생이 저만큼이나 강해지다니. 심지어 저 정도 수준이면 유진석 생도시절보다 강하다.

생도시절이 뭔가? 졸업하고도 유진석은 한참 후에나 강해졌다.

그런데, 유은하는 고작 생도시절에 저 정도라면, 졸업 후에는 단순히 헌터로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강한 12명의 헌터를 뽑아 만든 조직인 12사도 중 한 명이 될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협회 측에서 이명을 붙여두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그렇게라도 해야 유은하가 우리를 도와준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마침 유진석도 협회 측 인물이고.”

굳이 억지로 유은하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냥 협회측에서 이명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유은하와 협회가 모종의 연결이 있음을 증명하게 되는 격이니까.

“검을 사용한다고 했지? 그리고 하얀색 불을 다루고.”

“네.”

“백염의 검희(??)어떤가.”

그 백염은 오래 전 사진으로 남은 아지다하카가 사용했다는 것과 무척 유사하지만, 유은하의 생김새가 워낙 공주같다보니 어째 잘 어울린다.

아지다하카는 이렇게 백염의 검희 유은하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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