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29. 빌런이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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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상황정리를 하던 레이나와 한수지가 들어왔다. 그 뒤로 또 이유정이 따라붙었다.
얼굴을 보니 내게 묻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 보였다.
“은하. 너. 괴인이 된 거지?”
음. 괴인은 아닌데, 일단 보통 인간사회에서는 내 신체구조만 보면 괴인으로 취급하는 것이 맞다.
“틀린 말은 아니야. 다만 애초에 코어를 가지는 것이 내 힘을 끌어낼 조건이었어.”
“괴인이 되는 것이 조건이라구요?”
한수지와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신하게 앉아있는 그 모습은 적어도 나를 괴인이라고 멀리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이유정만은 조금 찝찝한 표정이다.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을 거다. 그녀 정도면 내 본명은 알아낼 수 있을 테니.
관계를 가진 여자가 알고 보니 10억명을 죽인 악룡이었다니. 나 같아도 기분이 묘할 것이다.
“이유정 선배도 지금은 알고 계시죠?”
“으.으응.”
“그럼 이 둘에게 정보를 보여주세요. 허가합니다.”
내 허가가 떨어지자, 이유정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지다하카라는 이름만 적힌 상태창에 이것저것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름– 유은하(아지다하카)
나이 ??세
성별 여
고유능력
[악룡의 권능][지배자의 권능][백염][혼돈]
보유스킬
[검술][신체강화]
딱히 스킬자체가 필요없는 막강한 권능.
정리가 된 내 상태창을 바라보는 레이나와 한수지의 얼굴이 그 외 뭉크의 절규인가. 그것을 떠올릴 정도로 일그러졌다.
“농담이지? 유은하가 아지다하카라니. 끔찍한 소리는.”
“내 눈동자랑 혀를 봐.”
완전한 능력이 개화한 이후, 변한 눈과 혀.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화한다면 그만큼 취급이 다르니까.
아지다하카의 아지 자체가 뱀이나 용의 뜻이다. 외모에 좀 변화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갈라진 혓바닥은 도로 합칠 수 있으니 눈동자만 금빛으로 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
한수지는 내 눈과 자연스럽게 갈라졌다가 붙기도 하는 혓바닥을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레이나는 말할 것도 없이 두 눈만 껌벅거렸다.
당연히 이 셋을 설득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일단 말했듯이, 나는 그 시절의 아지다하카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쪽으로 말했다.
아지다하카의 힘과 기억만 가진 존재라고.
이게 설득력있는 이유가 뭐냐면, 사진으로 남은 여러 모습의 아지다하카랑 달리 나는 실제로 유진석의 동생이라는 출생증거도 있다.
사라진 아지다하카가 나에게 힘과 기억을 물려줬다는 뭐 그런 분위기로 말을 이었을 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최시우가 2대 신검사용자가 되었다면, 나는 2대 아지다하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 설득하니 히로인들은 받아들였다.
정말로 안 되면 그 몸으로 다시 굴복시킬 생각이었는데 다행이다.
“그럼 전에 말했던 그 성좌같은 건?”
“그건.”
아무래도 대답하기 곤란하다. 전에 살던 삶이 너무도 그리워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어도 그 시절로 살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환각을 봤다고. 애초에 그 시절의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나는 본래 이 세상의 존재니까. 오히려 회사원으로 살던 시절이 내게는 그저 지금의 유은하가 되기 위한 빌드업 시절이었을 뿐이니까.
“그냥 내 환각이더라.”
“우리는 괜찮다고 해도, 마기를 다루면 위험한 거 아냐? 협회측에 들키기라도 하면.”
“굳이 마기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상관없어.”
마기는 마나조절도 못하는 팔푼이들이 괴인이 되었을 때 퍼트리는 것에 불과하다.
아쉽게도 나는 지금 이 몸으로도 평소의 유은하처럼 행동할 수 있다.
“그런데 유정선배는 아까 어디 가셨던 거에요?”
“아까 네가 김재수를 잡을 때. 동영상 이거 협회에 제출하느라고.”
그녀가 내게 보여준 것은 김재수를 두들겨 팰 때의 영상이었다.
“언제 찍었어요?”
대체 왜 나는 스토커밖에 없을까?
“그야 그런 명장면을 나 혼자 볼 수는 없잖아. 애초에 김재수가 한성 아카데미 생도에게 죽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데. 한성 아카데미가 습격당한 일이다.
지금 김재수의 배후도 파악되지 않은 마당에 김재수가 어떻게 되었고, 죽었다면 누구한테 죽었는지 정도는 알려져야 남은 생도들이나 주변 시민들이 안심할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괴수들의 침입을 겪은 세대들은 모두 하나같이 영웅을 바란다.
특히 괴수의 침입이 극심하고 지금도 지방의 도시들을 수복해야 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런 마당에 영웅의 동료였던 S급 헌터 김재수가 배신해버렸으니, 시민들의 동요는 알 만하다.
그나마 1대 신검사용자이자 대영웅이라 불리는 유진석에 유은하가 김재수를 격퇴했다고 선전하면 잠재울 수 있다.
“하기야, 결계도 뚫렸고 300명이나 피해를 봤다고 했으니,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네요.”
“그나마 죽은 김재수가 간과한 것이 헌터들이 일방적으로 당할 줄 알았다는 것. 그래도 생각외로 분전했고, 생도들은 지킬 수 있었어.”
문제는 그거다.
헌터협회는 원작에서도 완결까지 중요한 조직이다.
그야 툭하면 쌈박질만 해대는 길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중재를 해주는 축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처럼 협회의 헌터의 전력이 크게 손실되었다면 길드들이 쉽게 협회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헌터무력권도 없겠군.
헌터무력권. 전쟁이나 괴수의 대범람이 일어날 때, 정부의 허가없이 협회에서 자력으로 헌터들을 군사처럼 쓸 수 있는 권리.
탐욕. 이라고 해야 할까. 폭식의 죄악이 중국놈들을 선동해서 밀고 내려올 때. 협회는 그 무력권을 사용하여 길드들을 통합시킨다. 물론 무력권으로 길드장만 모으지. 통합 자체는 주인공 최시우의 몫이었다.
그런데, 협회에서 배신자가 나왔고, 큰 피해를 입었으니 이제 무력권 사용은 힘들어졌다.
또 미래가 크게 바뀌겠는데.
“왜 그래?”
“아니야. 그럼 단체전 준비는?”
단체전은 할 수 있나?
“당분간은 중지라는데.”
하긴, 이 상황에서 눈치없이 단체전을 한다면 그게 미친 짓이지.
* * *
최시우는 세 사람에게 맡기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세 사람을 신경 쓰기에는 이쪽은 이쪽대로 일이 바쁘다.
원작과 너무 비틀어졌다. 소녀소녀해진 최시우는 지금 나보다 약하다.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지는 모르지만, 내가 죽지 않고 아지다하카의 능력을 개화한 시점에서 주인공은 내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일단 죄악들을 상대할 만큼 강한 건 나 밖에 없으니까.
[축하합니다. 마스터. 진명을 찾으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유은하야. 그나저나, 여기가 원작소설이 배경이라면 위험하게 되었는데. 최시우는 저런 꼴이고 헌터협회가 저 모양이면 중국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주인공은 마스터입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앞으로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제는 머리가 어느 정도 버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 들어도 상관없다.
[헌터협회의 약화로 한국 각지에 있는 빌런들을 제압하는데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문제라는 거지.”
[그들을 토벌하기보다 전력으로 삼으십시오.]
“잘도 따르겠군. 그들 중 절반은 괴인인데.”
[마스터도 엄밀히 따지면 괴인입니다.]
차라리 빌런루트를 타라는 건가.
분명히 헌터들을 다시 키우기보다는 그 편이 낫기는 하다.
빌런들을 전부 내 아래에 두고, 그들을 이용해서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올 죄악들을 막는다.
분명 헌터쪽보다 빌런들이 더 강하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원작이라면 빌런들을 전부 토벌하면서 한국은 남한지역을 전부 수복한다. 한마디로 빌런전국시대를 헌터의 이름으로 종식시키는 건데, 이렇게 되면 빌런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말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정부는 쓸모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길드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세계에서 한국정부는 쓰레기다. 대통령을 시작해서 정부 수반이 전부 해당된다.
내가 얼마 전까지 회사원으로 살던 저쪽 세계의 대통령과는 다른 대통령인데. 이름이 하정석이었나.
헌터출신이며, 협회에게 가 있는 권력을 언제든지 되찾고 싶어 하는 야심있는 인물이다. 나아가 게이트를 이용해서 코어와 아티펙트 수급을 해서 자기 배를 불릴 생각이 만만인 놈이다.
참고로 이 세계는 UN에서 게이트확산금지협약으로 인해 게이트를 봉쇄하지 않고 키워서 코어와 아티펙트 수급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정석은 겉으로는 그 협약에 준수하면서 속으로는 아직 평양에 남은 게이트를 노리고 있었다.
그나마 협회에서 어느 정도 정부에 제동을 걸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확실히 빌런 루트를 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빌런짓을 하려면 어디가 좋지?”
[마음을 정하신 겁니까?]
“아카데미와 함께 돌릴 거야. 빌런과 아카데미 생도. 둘 다 하겠어.”
정확히 말하면 빌런쪽은 정체를 숨기면서 해야겠지.
[그렇다면 흑신교를 아예 수중에 두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왜 첫타자가 흑신교인가.
“말고는?”
[당장 서울을 제외하고 가까운 빌런집단은 인천 미추홀구의 흑신교, 부평의 산곡연합. 부천의 빌런동호회입니다만.]
산곡연합, 빌런동호회 들어본 적이 없는 빌런 집단이니 아마 네임드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흑신교를 추천하는 이유는?”
[한 번 무너지고, 이번에 김재수 덕에 전력을 크게 상실했을 테지만. 마스터도 알다시피 능력좋은 간부들이 남아있으며, 흑신교에서 모시는 흑신 자체가 아지다하카. 즉, 마스터입니다.]
“내 존재로 단숨에 그들을 수중에 넣으라는 건가.”
[네.]
사이비종교의 신노릇은 하기 싫은데.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사이비 종교의 신노릇 하는 것만으로도 흑신교라는 조직이 내 밑으로 들어오고 인천에 있는 빌런들을 아래로 둘 수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분명 인천 미추홀구라고 했으니, 그 근처에 마기가 가장 짙은 곳으로 가면 될 것이다.
문제는 미추홀구까지 가는 방법이다.
이곳 서울에서 인천의 사이에는 방벽이 설치되어있다.
일찍이 대격변 이후 마기에 침식당한 인천이란 지역 자체를 격리하기 위해 정부가 방벽을 설치한 것이다.
“흠.”
사실 날아가는 방법도 있다.
아지다하카 시절처럼 당장 드래곤으로 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날개 정도는 뽑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서울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아마 날아서 인천으로 가는 순간 추격이 붙겠지.
따돌릴 수는 있어도 괜히 귀찮아진다.
“이럴 때는 금태양인가.”
그런데 결국 금태양놈에게 내 정체를 밝히는 쪽이 아닌가.
심지어 이건 불법적인 일이다. 잘 못하면 내 정체가 완전히 걸릴 위험이 있겠지.
당분간 아카데미도 쉬게 되었으니, 지금이 기회인데.
“어? 무슨 문자지?”
XXXXXXXXXXX: 유은하양. 헌터협회 비서 겸 부회장 정나윤입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협회로 오실 수 있는지 해서요.
정나윤. 유진석의 또 다른 히로인이다.
이거 잘하면 인천으로 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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