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5. 단체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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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미끼로 삼은지 십여분 드디어 나타났다.
멀리서 보이는 헤어스타일들이 독수리 같다. 5명이 모두 같아서 진심으로 기분 나쁘다.
“아주 겁 없이 혼자 돌아다니네.”
“자기가 신검 유진석 동생이라고 지도 신검인 줄 아나 봐?”
하얀 생도복을 입은 남자애들이 숲속에서 기어나와 실실 나를 비웃고 있다.
뒷담이나 까는 계집애들도 아니고. 고려 아카데미는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적어도 한성아카데미 애들은 저러지 않는다. 대놓고 앞에서 앞담을 깠으면 깠지.
나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다가 후 하고 뱉었다.
역시 폐를 망치는 니코틴의 맛은 언제나 짜릿하고 새롭다.
“말이 많다. 나타났으면 덤벼라.”
“건방지긴!”
촤르르르르륵!
독수리 5형제의 주특기인 쇠사슬 묶기가 내 몸을 칭칭감았다.
귀갑묶기는 조금 흥미가 생긴다. 악룡이 하찮은 인간에 의해 귀갑묶기 당하고 희롱당한다라.
아, 흥미가 있을 뿐. M속성은 아니다.
“독수리 5형제. 항상 5명이서 몰려다니고 쇠사슬로 목표를 묶고 압박해서 죽이거나 다굴을 쳐 잡는 팀워크가 좋은 패거리.”
“호오. 우리 소문을 들어 알고 있구나.”
소문이고 나발이고 독자들에게도 유명하다.
독수리 5형제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달고 나왔는데, 한 번에 최시우에게 떡실신당하고 그게 끝이었다.
“따라서 혼자서는 1인분도 못하는 멍청이들.”
“뭐라고?”
“일단 내가 오빠와 달리 좀 자비가 없어. 그 점은 알아둬.”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격의 차이를 보여줄게.”
딱!
가볍게 오른 손을 빼어 손가락을 튕기자, 나를 묶은 쇠사슬을 시작으로 독수리 5형제가 하얗게 불타올랐다.
화르르륵!
"끄어어어어억!"
물론 생도들간의 전투이기 때문에 죽일 생각은 없다.
그냥 가볍게 백염으로 마력만 싹 다 태웠을 뿐이다.
하얗게 불타오른 독수리 5형제는 모두 통닭마냥 아주 보기 좋게 익었다. 입에 개거품을 물고 다 발가벗겨져서 빼빼로를 노출하고 있다.
……쟤네 진짜 형제가 아닐까? 어떻게 크기가 다 같지?
[고려아카데미 1C 2조 전원 전투불능 한성아카데미 1A반 1조 승리]
참 싱겁다.
* * *
한 시간 전
한성아카데미와 고려아카데미, 그리고 서울아카데미의 학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살얼음판에 가까웠다. 3대 아카데미 중 하나로 뽑힌 서울아카데미의 학원장은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으며 한성아카데미의 학원장 김영희와 고려아카데미의 학원장 비올라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영희야. 참 오랜만이야? 철수는 잘 지내니?”
“호호호. 너 아직도 철수 좋아하니? 그런데 어째? 이제는 품절남인데.”
“나도 유부남은 관심없거든? 다만 결혼한지 몇 년째인데 아이가 없는 것이 수상하니 그러지~”
“너 철수가 지금 고자라는 거야?”
“네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이전부터 두 여자의 라이벌관계는 유진석도 알아줬는데 두 사람이 각자 고려와 한성 아카데미의 학원장이 되면서 그 경쟁관계는 쭉 계속되어오고 있었다.
“너! 후 좋아. 내가 참는다. 어차피 우리 둘이 아니라 두 아카데미의 자존심을 건 승부니까.”
“끽해야 소문만 무성한 유진석의 동생과 신검이 전부겠지? 괴인 김재수의 제자라고 해봐야 쓸모없을 테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저기 두 분 그만하시고 우선 시작하셔야죠.”
서울아카데미 학원장의 설득에 두 사람은 마지못해 단체전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바로 첫대전부터 한성과 고려아카데미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어머, 저 아이가 진석이 여동생? 괜찮겠어?”
비올라는 남몰래 한성아카데미의 익명게시판을 조사했다.
그런데 터무니없이 올라가는 유은하의 주가에 그저 유진석의 후광을 업고 호가호위를 하고 있다 생각했다.
“너 아직도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하여간 이렇게 굼떠서야. 영희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하지. 설령 그 광속이라는 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독수리 5형제는 혼자 감당 못할 걸?”
“광속? 쟤 이명 바뀌었는데?”
“뭐?”
하여간 누가 양키아니랄까봐 소식도 참 느려터지게 받는 모양이다.
비올라는 괜한 불안감에 시험장을 비추는 마도기어의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화면에는 백발의 소녀가 독수리 5형제의 구속에 걸려있는데도 담배를 던지면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격의 차이를 보여줄게.
화르르르륵!
소녀를 중심으로 독수리5형제는 물론 시험장의 숲에 불이 붙었다.
“백염의 검희 유은하로.”
* * *
전투가 끝나고 사방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꺅!꺄아아악! 언냐 멋져!”
“저게 바로 걸크러쉬지!”
"결혼해줘요 언니!"
독수리 5형제를 처리하면서 나에 대한 인지도가 확실히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 소문이 사실일까?"이랬다면, 지금은 "사실인 것 같은데?"이렇게 바뀌었겠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느새 그렇게 강해졌어?”
“한수지. 당신은 바보입니까? 유은하라는 여자애가 누군지 잊으셨어요? 용. 읍. 그래. 용가리잖아요!”
“용가리? 무슨 말들 하는 거야?”
시우에게는 아직 내가 아지다하카에 대해 말하지 않았었다.
송도일로 생각할게 많아 말할 틈이 없었다기 보다는 역시 좀 뭐라 변명해야할까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음, 시우야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아, 응. 아니야.”
굳이 지금 말해서 시우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시우의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설마 레이나의 말이 그저 농담이라고 여기고 있는 걸까.
“실은 신검님이 말씀해주셨어. 네가 아지다하카의 힘을 물려받았다고.”
“그래?”
“나를,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신검이 말했어. 그러니까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지금은 그런 것으로 되는 건가.
애초에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직접 아지다하카라고 해도 시우가 믿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이쪽이 형편이 좋지. 틀린 말도 아니니까.
아지다하카라는 존재는 최시우와 별관계도 없으니까. 최시우의 부모는 김재수의 부모와 달리 나한테 먹힌 게 아니라 대격변에서 죽은 거니까.
“그런데 설마 애들 수준이 이렇게 낮을 줄은 몰랐어.”
“애초에 이쪽이 너무 강한 거야.”
“우리 밸런스 너무 안 맞는 거 아니에요?”
확실히 지금 우리는 사실상 1학년 대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뭐 어때. 불방망이도 딱히 뭐라고 태클걸지 않았잖아. 좋은 애들 섭외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아니야?”
불빠따가 언젠가 그랬다. 실력좋은 친구들을 두는 것도 능력이라고. 즉, 이번에 단순한 깃발뺏기만이 아닌 인맥에 관한 점수도 있을 것이다.
학기 초부터 열심히 엘리트들과 인맥을 쌓아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하나하나 약육강식 시스템이다.
그렇다고 단체전에 나가지 않아 피해를 보는 건 없다. 패배한다고 해도 참가상으로 가산점이 좀 있다.
“그야 그렇기는 한데.”
“보아 하니까 다른 아카데미도 몰려있네.”
서울이나 고려나 엘리트만 모인 팀이 존재한다.
그 외의 팀은 서울, 고려, 한성 모두 비슷비슷하다.
3대라고 해서 무작정 강한 아카데미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에 있는 헌터 아카데미는 이 3곳이 끝. 일본도 비슷하다. 자칭 중화, 대국이라고 하는 중국은 꼴에 인구자랑이라도 하고 싶은지 헌터 아카데미가 한국과 일본의 3배는 된다.
“설마 오늘 하루 만에 결승전을 다 치를 건 아니겠지?”
“좀 오래 걸린다고 해도 끝내기로 한 거 같아. 일정 변경 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까.”
한성아카데미 습격사건으로 상당히 일정이 미뤄져 있다. 당장 당일치기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기는 한데.
식사를 대준다는 것이 그나마 안심인가.
인과율 탓에 또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괜찮겠지?
* * *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와서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런데 심심한지 나를 따라나온 로자리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대체 그 담배란 건 왜 피는 거에요?”
그러게. 왜 피고 있는 걸까. 더는 환각도 보지 않고, 죽음의 끝에서 보았던 하늘이 어두워지는 일이 없다.
버릇이나 니코틴 중독이라는 걸까.
뭐 그래도 너무 자주피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회사원 시절 이웃집 여고생이 대놓고 담배피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다니. 남친이 핀다고 해서 따라하게 되었다고 했었나.
이래서 애인은 잘 만나야 한다.
나는 그런 어린 애가 아니니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
“그냥. 니코틴을 빨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거든.”
“그래도 여자가 피는 것은 몸에.”
잔소리가 시끄럽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래? 무려 사지결손도 해결되는 위대한 헌터시대라는 말씀이다.
“그런 건 요즘 꼰대도 안 그런다야. 이리로 와 봐.”
“왜요?”
“어차피 즐길 거 다 즐긴 사인데 이럴 거야?”
슬쩍 로자리아의 팔을 끌어당기자 마지 못해 내쪽으로 다가온다.
그날 교회에 있었던 일 일일이 열거하면 이 녀석은 쪽팔려서 쥐구멍에라도 숨으려 할 것이다.
수녀복장으로 찐득찐득 민달팽이행위를…….
갑자기 꼴려서 니코틴을 한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대로 로자리아와 키스를 하며 입에 니코틴 폭탄을 투척했다.
“으읍?”
꽤 저항하는 로자리아였으나 일종의 보복이다.
그러게 왜 그 날 일을 떠올리게 하래?
“콜록콜록! 너무해요!”
한참 니코틴을 폐에 축적한 미래의 성녀 로자리아는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그런데 말과 몸은 다른지 몸은 어느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굳이 아래를 만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간 좀 남는데 근처 모텔로 데려갈까?
“호오. 이런 짓하고 아래는 달아올랐는 걸?”
“!!”
“해줘?”
“누.누가 필요하데요!? 됐거든요!”
로자리아는 애써 내 손길을 거부했다.
쩝. 아쉽다. 그날은 그렇게나 앙앙거린 주제에. 그런데 그녀의 품에서 책한권이 툭하고 떨어졌다.
책의 제목은 하녀의 여주인조교일기
말그대로 하녀가 평소 거만하게 구는 여주인을 조교하고 심지어 그 남편으로부터 여주인을 뺏는 내용이다.
그래. 백합물이란 거다.
왜 BL물에서 백합물로 취향이 바뀐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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