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8. 무신(??)
* * *
박준혁은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 터무니없이 막히자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아.아니야. 말도 안 돼. 내가 얼마나 연습을 했는데.”
“아무리 연습을 잘해도 결국 혈똥빨, 각성빨인 세상이야. 너 까짓게 무슨 짓을 하든 나한테 소용없다고.”
“흥! 그래봤자 나를 치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척준경의 환생은 사실 피카츄의 환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주위에 잔상을 뿌리며 도망다녔다.
애초에 성좌빨인 주제에 척준경의 환생취급받은 것도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뭐하자는 거지?
저러다가 나 정신없게 만들어서 언월도로 찌를 생각인가?
나한테 “이건 잔상이다.”이딴 드립 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캐릭도 아니거니와 정말 그딴 전개로 나아가려 한다면.
개빡친다.
나는 오른손을 불끈 쥐고 백염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박준혁의 배에 파이어펀치를 꽂았다.
퍼억!
나한테 배빵을 얻어맞은 박주혁은 한번 붕 뜨더니 시험장의 결계까지 날아가 그대로 박았다.
“끄헉!”
“너보다 내가 빨라요 븅신아.”
아무렴 악룡 앞에서 저렇게 빨리 움직인다고 해도 눈에 다 보일 뿐이다.
“아무래도 인정하기 싫은 모양인데 말이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소용없어. 무슨 수를 쓰든 너는 B수준에 불과해. 이 너비아니 같은 새끼야.”
“그렇게 오만하게 굴다가 큰코 다칠 걸?”
누가 할 소리냐.
“나는 오만해도 된다. 무슨 수를 쓰든 너 같은 놈이 나를 이길 수 없거든.”
“큭.크 푸하하하핫!”
한바탕 비웃어줬더니 갑자기 놈은 배를 잡고 실성한 놈처럼 웃었다.
“이 새끼가 드디어 정신줄을 놓으셨나? 응?”
박준혁의 몸에서 음산한 살기가 흘러나온다.
백염으로 마력회로를 불태웠는데. 어디서 이런 마력이?
아니다. 이건. 박준혁이 가진 본래의 마력이 아니다.
어둡고 탁하디 탁한 마력. 그저 괴인의 마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더러운 마기.
그래. 이건 마치 죄악이 아닐까.
원작에서 죄악의 힘을 가진 놈이 이런 반응이었지.
“좋아. 어디 이 힘도 버텨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자꾸나! 7대 죄악 중 하나 폭식의 파편을 받은 나를!”
“미친. 인과율 좆망했네. 벌써 폭식인가.”
폭식이라고 해봤자 결국 저놈말대로 파편조각을 받은 것 뿐이겠지. 아무리 인과율이 조정되었다고 해도 박준혁이 죄악이 될 가능성은 낮다.
원작에서도 파편을 흡수한 빌런들은 여럿 나타난다.
그것이 죄악이란 존재에 관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유은하! 위험해!”
히로인들과 함께 사람들을 피신시키던 최시우가 소리쳤다.
“괜찮아.”
박준혁의 몸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 변신하고 잡아도 되지만. 파편을 빼내려면 변신을 하기 전에 하는 것이 좋다.
원래 변신이나 진화는 기다려주는 것이 국룰이라 했던가.
미안하지만 나는 용용이라 인간의 룰 같은 것을 몰라요.
그래서 파이어펀치를 박준혁의 명치에 주입했다.
꽈직!
전과는 달리 묵직한 감각과 함께 박준혁은 허공에 붕 떠오르더니 다시 바닥에 널부러졌다.
“꺼헉!”
“잘 났다. 시발아. 주제도 모르고 그딴 힘을 받아 쓰고.”
원작에서도 트롤이더니, 이번에는 대놓고 빌런이 되겠다고 이 지랄이다.
무식해서 용감한 건가. 그것도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가 죄악의 신도인 것을 밝히는 격이다.
파편을 사용하는 순간. 마치 괴인이 되면 심장이 코어로 변하는 것처럼 심장이 파편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파편의 본래 주인의 죄악이 가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아마 레이나나 한수지라면 또 모르겠지만. 최시우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조금이나마 두툼해진 박준혁의 멱살을 들어올려서 이번엔 볼따구니를 후려쳤다.
퍽!
“네가 그 힘을 받으면 뭐라도 된 줄 알았지. 시발아?”
그래. 시발 생각해보니 내 존재가 아주 인과율을 조져놨구나.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냥 넘어가면 재미가 없다. 내가 이렇게 강한데, 인과율이 조정되지 않으면 이상한 거겠지.
그래서 더 재미가 없다.
빠직!
무릎을 발로 밟아 아주 박살냈다.
“아주 시발. 지랄을 해요. 지랄을. 너 같은 새끼가 그러니까 약한 거야.”
콰직!
이번에는 다시 명치를
“죄악은 얼어 죽을 죄악. 여기가 전장이라면 너는 한성이라는 깃발 아래에 무능한 아군이란 포지션이야. 이 모지리 새끼야. 어쭈? 살살 때려줬더니 두 손으로 막아? 야. 팔 내려라. 그 팔 뽀개버리기 전에. 어쭈. 진짜 안 내려?”
우지직
이번에는 팔꿈찌를 반대로 접어버렸다.
“끄아아아악!”
“야, 다시 지껄여봐. 뭐 큰 코 다친다고? 큰코는 이미 인간에서 탈주하신 네가 큰코 다치셨구요.”
다행스럽게도 아직 파편이 심장을 먹어치우기 전이었다.
그럼 뽑아버려도 되겠지. 죽지는 않을 거다.
헌터의 인생도 끝났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다만 트롤러라도 후반부에 나름 머릿수 채워주는 놈인데. 그건 좀 아쉽다.
나는 발로 땅을 내리쳐 흙먼지를 일으켰다.
쿵!
그리고 그 사이 오른손에 용의 발톱을 만들어 박준혁의 가슴에 박아 붉게 빛을 내는 검은색의 파편을 강제로 뜯어냈다.
뿌드드득!
“끄하아아악!”
“죽이지 않는 걸 고맙게 여겨라. 음?”
그런데 이 새끼. 파편이 한 두 개가아니네?
진짜 내가 없었으면 좆될 뻔 했구나.
대체 누가 이놈에게 파편을 이렇게 많이 박아 넣은 거지?
"어, 대체 몇개를 박아넣은 거야? 이 미친놈."
뽑아낸 것은 겨우 4개. 그 외에 이미 심장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퍼엉!
박준혁의 몸에 박힌 파편이 마치 숙주를 보호하려는 듯 마기를 내뿜었다.
아지다하카인 내게 저 마기는 별다른 타격은 되지 않지만, 나는 필연적으로 지금이 2페이즈라고 느꼈다.
뒤로 몇 걸은 물러났다.
“박준혁의 재능을 알아본 건가?”
박준혁은 이미 의식을 잃었는데, 파편은 박준혁의 몸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몸에 근육이 더 붙고, 전체적으로 까맣게 물들어졌다.
박준혁의 주변은 파편에서 흘러나온 마기로 뒤덮였으며, 곧 그 마기는 갑옷의 형상을 하여 박준혁의 몸에 감겼다.
마치 저건 전장에 선 장군과도 비슷했다.
좆됐다. 저거 상대하려면 나도 헌터들이 느낄 만큼 힘을 내야 하는데. 내 주변인물들이 나를 의심할 것이다.
“설정이라도 무신의 성좌가 붙은놈이다 그거냐?”
성좌가 있었으면 파편을 먹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성좌를 무시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직 성좌가 없나?
아카식 레코드는 어떻게 생각할까?
[현재박준혁의 성좌는 무신(??) 척준경입니다. 다만 박준혁이 성좌의 말을 무시하고 폭식의 파편이 가진 욕망에 충실한 탓입니다.]
“그렇다고 지가 맡은 애새끼를 컨트롤 못해?”
아마 저 모습은 최시우가 신검의 영향으로 성좌화가 되었듯, 박준혁 역시 비슷한 것이겠지. 다만 박준혁 저놈은 파편의 힘으로 성좌의 힘을 강제로 끌어낸 것 같다.
하필이면 무신이라니. 귀찮아졌다.
박준혁이 왜 트롤러라고 불리는지 조금이나마 더 언급하자면, 머리를 너무 쓰지 않고 무작정 달려든다는 점이다.
남캐 중에서는 그 무신이라는 각성 이명 탓에 그래도 최시우 다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놈이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최시우를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참 안타까운데.”
중국의 폭식이 패왕 항우가 성좌라면 한국의 폭식은 박준혁이라는 건가.
그것도 파편이라는 덜떨어진 조각만 가진 무신이라니.
아니다. 지금 박준혁이 상대적으로 강해진다면 본래 폭식의 죄악이 박준혁의 몸에 강림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죽일까?
결계 밖에서는 최시우와 한수지, 레이나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도망치던 관전석의 사람들도 이상함을 감지한 모양이고.
빨리 끝내지 않으면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백염의 검희여]
아카식 레코드가 아닌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이건 무신이겠지.
박준혁에게서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이미 무신은 박준혁에게서 떠나 내게 온 것이다.
[이 일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내 저놈의 속도 모르고, 너무 참으라고만 했었다. 그러니 내가 끝낼 수 있게 해다오.]
“성좌라며?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신검도 내가 누군지 알아봤는데, 무신이라고 다를까?
[네가 누구인지는 성좌인 내게는 상관이 없다. 그저 저 아이가 더 어긋나기 전에 끝낼 수만 있으면 한다.]
“뭐 나쁘지 않아. 그 대신. 당신이 가진 기술을 전부 나에게 전수해.”
나는 분명히 힘은 강하다. 그러나 정작 스킬 그 자체는 다른 생도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검술’이라는 기술만 따진다면 나는 최시우에게 새발의 피가 되겠지.
무신의 검술을 전수받는 다면 그나마 악룡 티를 더 벗을 수 있을 거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강한 티를 내기도 했으니, 괴인 의심을 벗기 위해서라도 무신의 기술로 커버쳐야한다.
[좋다.]
파아앗!
성좌 무신이 내 몸에 깃들었다.
그때, 무신이 가진 기억의 편린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황제의 명을 받고 오랑캐 정벌을 위해 올라간 군대가 위급해지자, 무신은 일어섰다.
해가 저무는 전장 한가운데 무신은수많은 오랑캐들의 시신들의 위에 있었다.
그가 쥐고 있는 칼에서는 피가 마를 일이 없었으며, 적의 지휘관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그의 검에 목이 베였다.
전장의 신이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 바로 무신이었다.
편린은 거기서 끝이었다.
박준혁을 처분하는 것 정도로 무신의 기술만 배울 수 있다면야, 백번도 더 죽일 수 있다.
무신은 박준혁 처분 후에 나중에 한수지한테 넘겨주자.
"어 가볍네."
유난히 몸이 더 가볍다.
손에 쥐고 있는 건 고작해야 마법면역 이름도 짓지 않은 검 뿐인데. 마치 명검을 손에 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무신의 힘?
나는 습관적으로 검에 백염을 둘렀다.
“끽.끼기긱.”
흑장군으로 변한 박준혁은 몸을 비틀기 시작하더니 언월도로 바닥을 내리쳤다.
꽈앙!
누가 폭식의 파편 아니랄까봐 힘 하나는 무지막지하게 세다. 시험장이 박살날 것 같다.
투구 안쪽으로 보이는 놈의 붉은 눈이 기분 나쁘게 번뜩인다.
놈은 다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우악스럽게 언월도를 잡고는 그대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사람 말하는 법도 잊어버렸나.”
내 몸에 깃든 무신에게 흘려넘기듯 몸을 맡기자, 지금까지 내가 휘두르는 것과 달리 마치 강물이 흐르듯 춤을 추며 검으로 언월도를 받아쳤다.
챙강!
[삼한 최강의 검이라 불린 이 몸을 네 몸으로 직접 느껴라!]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다.
악룡의 힘을 뺀 오로지 검술만으로 파편과 싸웠다.
몇 번 합을 맞추자 박준혁이 조금 밀리는 기색을 보였다. 언월도에 비하면 짧디 짧은 검이 팽팽하게 맞선다.
챙강!
“저것이 백염의 검희.”
“헌터들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저 마기 속에서 오로지 순수히 검으로만 맞서고 있어.”
“무신모드의 박준혁을 상대로 예우를 해주겠다는 뜻이겠지.”
도망치던 인간들의 헛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무신모드는 지랄! 마기나오는 거 보면 답이 안 나오냐.
슬슬 상대해주는 것도 귀찮다.
비대해진 박준혁이 휘두르는 언월도는 거의 빈틈을 찾기 힘들었다.
시간을 오래 끌 수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폭식의 파편을 순식간에 제압할 힘을 선보일 수도 없고.
체력싸움을 벌이려고 해도 폭식의 파편을 가진 박준혁은 마기를 내뿜으며 주변에 민폐를 끼칠 거다.
[눈을 감아라.]
“눈을 감고 감으로 싸우라고? 그거야 어렵지는 않은데 굳이 허세 떨려고 눈을 감을 이유가?”
[느껴지는 것이 있지 않나?]
포스요? 스타워즈의 그것인가?
어, 아니다. 마력회로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눈을 감고도 보일 정도로 어둡고 텁텁한 알맹이가 느껴졌다.
“이건 파편?”
[딱 한 번이다. 언월도가 네 목을 향할 때, 바로 그때 네 검이 박준혁의 심부를 도려내야 한다.]
어차피 죽을 일은 없지만, 한반도 최강의 무장이 성좌로나마 내뿜는 위압감에 눈을 자세를 잡고 기회를 노렸다.
“끼기기기긱!”
박준혁이 요란하게 달려온다.
스으윽
언월도가 내 목을 겨냥한다.
서걱!
단 한 번에 승부는 끝이 났다.
박준혁의 가슴은 파편 째로 베였으며, 몸을 뒤덮던 마기로 만들어진 갑옷은 파편의 힘이 다하자 부서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