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79. 대머리와 신검사용자
* * *
* * *
시노하라 유즈키는 보스 룸의 천장을 가득 메우는 백염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흘렸다.
“검을 휘두르면 하얀 불꽃이 나오는. 호오라, 신기하네.”
그녀만이 아니라 히로인을 제외한 나머지도 꽤 놀란 눈치다.
특히나 핑 타오는 멍청한 표정인 것이 제법 웃겼다.
로즈마리는 이미 한 번 봤는데도 또 놀라는 것을 보면 학습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불이 다 사라진 후, 바닥에 남은 것은 유리 조각들뿐이었다.
“이것으로 다 된 건가?”
“그래 보이는데. 음, 다 제거 되었어요. 아니, 됐어.”
최시아는 신검의 성좌. 그녀의 능력 중 하나로 적을 탐색할 수 있다. 무려 악룡인 나 보다 빨리 알아챈다.
유리 던전은 이것으로 끝.
본래 원작에서는 백합길드 마스터 노아가 직접 도와 주러 오지만, 지금은 애들 실력이 워낙 다들 출중해서 내 선에서 끝났다.
유리공작을 처리하자 뒷문이 열렸다.
던전을 클리어하면 열리는 탈출구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이 유리던전이 온전히 백합길드에 의해 개조되었음을 의미했다.
밖으로 나오자 길드 마스터 노아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설마 너희들끼리 처리할 줄은 몰랐는걸.”
“어때. 대단하죠?”
아마 노아도 꽤 놀랐을 거다. 따지고 보면 유리 던전은 C급 헌터도 고생하는 곳이니까.
그나마 통로를 돌파하는 것은 괜찮아도 예를 들어 혼자 입장하면 6개의 통로를 전부 봉인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보스인 유리공작은 궤를 달리하는 존재다. 워낙 이쪽이 사기급 라인업이기 때문이지. 아마 B반 수준이었으면 깨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특별히 나를 칭찬할 권리를 주겠다.
“그래. 정말 대단했어. 특히 시노하라 코토네, 핑 타오, 유은하. 셋이 대단하네.”
노아는 우리 셋을 보고 다시 힘껏 물개 박수를 쳤다.
“우리 셋만?”
“다른 애들은 이미 널리 알려졌고, 은하 너는 내가 단체전 자료도 보고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도 봤지만 직접 보지 않고는 믿기 힘들었거든.”
시노하라 코토네는 알려지지 않은 시노하라의 가신. 핑 타오도 지금 중국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허세라 생각할 수도 있고, 나는 유진석의 여동생이니 동생을 오빠의 후광이나 얻어 각종 지원을 받았다고 여길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야 있지.
그런데, 조금은 기분이 나쁘다. 백염을 대놓고 토해 내는 나를 무시했다고?
“그렇게 나오기에요?”
사실 왜 이러는지 알고 있다.
이 노아년은 나를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음습마리를 가지고 논 것을 보고 자기도 똑같이 당하고 싶다거나 뭐 그런 거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레이나나 한수지, 최시우도 소문만 무성할 뿐. 오히려 나 보다 기술을 선보인 적이 없는 애들을 더 믿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아아, 토라지지 말고. 이래 보여도 확실한 걸 좋아해서 말이야. 다들 성적은 좋으니까. 불방망이에게. 아니, 그냥 내가 직접 학장에게 보고할게. 그리고 이번 유리던전에 관련해서 다른 길드도 알게 될 거야.”
“본격적으로 길드 스카웃인가요?”
원래 원작에서는 이 무렵에도 A반 생도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유리던전은 그중에서 선별해서 갔던 거고, A반의 불량아들을 처단한다던가. 생도회와 맞선다던가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원작이 비틀어진 시점에서 앞을 알 수 없게 되었다.
1A반이 바로 헌터일로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거 2A반이 상당히 배아파할지도 모르겠는데.
“너희가 실력이 너무 대단하니까. 저 남은 2조들도 통로에서 제법 잘 싸운 것을 보니 중소길드는 들어 갈 것 같고.”
“그건 다행히네.”
쟤들만 못 들어갔으면 원작이 비틀어진 탓이니 내가 미안했을 것이다.
“그럼 이걸로 끝이죠?”
“그래. 오늘은 이걸로 끝이야. 다들 수고 많았다.”
노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등을 돌리면서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통신코드를 받기는 했는데, 굳이 지금 연락할 필요는 없다.
당분간은 가지고 있기만 하자. 길드 마스터와도 잘못 엮이면 큰일이니까.
"응?"
노아의 통신코드를 확인하려고 마도기어를 열었더니, 어째 유진석이 보낸 문자가 있었다.
* * *
헌터 협회
김재수의 반란사건 이후로 이전보다 조용해진 헌터 협회 5층 복도를 한 사내가 걷고 있었다.
사내는 한참 걷다가 가장 안쪽에 있는 회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 반짝이는 대머리의 남성이 손등에 턱을 괸 채, 사내를 반겼다.
“1대 신검사용자 유진석.”
사내는 유진석이었다. 죄악일을 조사하다 받은 휴가로 간만에 독도까지 날아가 독도 앞바다에서 서식하는 왕독도새우를 잡고 있었다.
“왜 부릅니까? 왕독도새우 두드려 잡고 있었는데.”
“아니, 그놈의 새우가 뭐가 그리 급하나? 끽해야 새우일 뿐 아닌가?”
유진석이 퉁명스럽게 묻자 최철식은 어이가 없는 듯 쳐다봤다.
고작 새우가 아닌가. 1대 신검사용자에 그만 한 실력이면 바다처럼 밀려오는 괴수들도 싹 잡을 인간이 고작 새우에 고생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마력을 머금은 새우입니다. 그런 거 찾기 쉬운 줄 아십니까? 새우는 의외로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놈들이기도 하는 데.”
“그래봤자 새우가 아닌가?”
뭔 새우가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는 말인가.
“새우 꼬리에 찔려서 해양성 비브리오 패혈증균에 감염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거야 오염된 어패류에 면역기능이 떨어진 인간들이나 걸리는 거지. 애초에 신세대 인간들은 마력순환만 잘해도 그딴 균에 감염될 일은 없어. 아니, 동문서답이로군. 새우잡는데 뭐 그리 오래 걸리나?”
누구는 오래 걸리고 싶어서 걸렸나. 마력을 가진 독도새우를 잡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초가산간 다 불태울 수도 없는 일이라 하나하나 직접 바닷속에서 찾아 잡았다.
“말했듯이 마력을 머금은 새우입니다. 워낙 신출귀몰하고요. 그놈들이 몸이 그렇게 좋다더군요. 맛도 있고. 그래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잡느라 늦은 겁니다.”
“자네가 더 건강해질 몸이 어디 있어?”
어차피 마력을 컨트롤 잘하는 사람이라면 건강이 나빠질 리 없다. 특히나 몇 년 전 인류최강이라는 타이틀마저 달았던 유진석이라면 더 그렇겠지.
“은하주려고 하는 겁니다. 은하 주려고. 자 보십쇼. 일단 한 마리를 잡아 왔습니다.”
“새우가 원래 이렇게 큰가?”
뭔 놈의 새우가 사람 덩치만하다.
다행스럽게도 기절시킨 모양인 데 날뛰면 꽤 귀찮아질 만큼 크다.
“그래서 더 위험한 놈입니다. 이놈의 꼬리에 찔리면 바로 즉사하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독도 앞바다에서 튀어 오르는데. 그 때 기습당하면 큰일이죠.”
“그게 여자한테 좋던가?”
“한동안 죄악일로 여러 던전을 돌아다니며 조사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여동생을 만나지 못만난 만큼 이 정도 선물은 줘야지요. 여자 미용에 탁월하게 좋다더군요. 가슴도 커진다는 거 같고.”
유진석이 그렇게 말 하면서 쭈뼛거렸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을 듣던 최철식은 어이가 없었다.
여동생 바보도 정도가 있지. 유은하의 어디가 가슴이 더 클 필요가 있던가.
“아니,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한 거 같기는 한 데. 의미가 있나? 은하 가슴은 그 정도면 큰 걸로 아는데.”
성희롱 같지만, 실제로 크기는 크다.
“죽고 싶습니까? 이 새우는 맛도 있습니다.”
“하이고. 여동생 바보가 되셨군.”
여동생 바보라니. 그렇게 귀여운 여동생이 없으니 저 대머리는 저렇게 무심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진석은 순간 불끈했으나 참았다.
저렇게 머리가 벗겨지고 덜렁거리는 양반이지만, 그래도 상관이다.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매번 서론이 길어지네.”
“아, 음. 죄악일은 잠시 미뤄두지. 일본의 시노하라도 죄악일을 돕는 것 같으니까. 그보다당장은 백화라는 여자에 대해 알아봐야 바네.”
시노하라라. 일본의 총리가 돕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시노하라라면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자국을 위해 알뜰살뜰 외교관계에도 신경 쓰는 것이 시노하라니까.
“격리지역에 있다는 그?”
“그렇네. 사실 김지혜를 파견했으나, 빌런 놈들만 쳐죽이고 오지. 할 줄 아는 게 없지 뭔가.”
“지혜답군요.”
생도시절부터 이론과는 담을 쌓은 바보가 바로 김지혜였다.
보통 헌터를 지망하는 우수한 생도들은 마력으로 기본 적인 두뇌는 갖추고 있다.
조금만 공부해도 어지간하면 헌터이론은 다 외울 수 있다. 그러나 김지혜는 지금껏 무식하게 빠따질만 하고 있었다.
그 점이 또 빠지면 김지혜는 시체나 다름이 없으니 유진석은 제법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니 자네가 함께 가서 백화에 대해 알아봐 주게. 아마 인천에 있지 않을까 싶은 데.”
“알아서 빌런들 잡아주는데, 가서 찾으면 잡아 와야 합니까?”
오히려 자기가 할 일을 백화란 스트리머가 하는 것 같아 유진석은 미안 했다.
설마 하니 과거 격리지역을 그렇게 토벌하며 가장 세력이 컸던 흑신교를 박멸했음에도 남아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아니, 그래도 격리지역에 있는 것 자체가 문제네. 그리고 백화탓에 최근 인터넷에서 청와대와 헌터 협회가 꽤 욕을 먹고 있어. 이걸 보게.”
격리지역에 사는 스트리머가 빌런들을 퇴치하는 데 정부와 헌터 협회는 무엇을 하는가?
격리지역 생존자들의 영웅! 백화! 그녀는 누구인가?
정부와 헌터 협회는 대격변을 잊지 말라.
언론이야 늘 헌터 협회와 청와대를 까니 그렇다 치겠지만, 이 정도로라면 이미 백화란 여자는 반대급부로 인터넷에서 상당히 큰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부상한 것이다.
그 대신 헌터 협회와 청와대의 신뢰는 떨어지고 있었다.
특히나 그 신문 일면을 읽다 보면 대통령 하정석과 최철식의 이름도 보였다.
하기야 격리지역에 갇혀있는 생존자를 구하는 백화와 헌터 협회와 청화대에 박혀있는 최철식, 하정석.
누가 더 정의로운지는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애초에 기자들이 기사거리로 써먹는 바람에 더 커진 탓도 있으나, 큰 틀로 볼 때는 백화가 더 나았다.
최철식은 그것들을 제외하고 다른 신문도 보여줬다.
백화가 구한 생존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격리지역 중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역이 있을 가능성.
S급 헌터 이흥부 격리지역에 ‘거주구역 가능성 충분해…….’
심지어 격리지역에 거주구역이 있을 가능성도 나왔다.
이렇게 되면 백화를 어떻게든 찾아야만 한다.
“헌터 협회 이미지가 아주 그냥 박살 났네요.”
“그래서 백화를 찾아서 영입하든가. 아무튼 일단 찾아서 데려와야 하네. 적어도 나는 그 격리지역에 생존자들이 머물고 있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할 거라 생각하거든. 지원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격리지역은 그 어떤 외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어. 자국의 침식된 지역도 해결해야 하는 중국과 일본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없지.”
빌런들에게 갇혀있던 생존자들이 그 침식된 지역에서 어떤 생산력을 갖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백화는 대체 어디서 생존자들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인가.
“알겠습니다. 한 번 해 보지요.”
“오후 10시에 남쪽 방벽의 검문소에서 김지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뭔가 발견하면 마도기어로 바로 연락하고.”
“예. 그전에 은하는 만나야겠네요.”
못 만난 지 꽤 되었다. 은하는 저를 달갑게 여기지 않지만, 그래도 오빠다. 오빠로써 여동생은 챙겨줘야 하지 않을까.
“하여간여동생 바보라니까.”
“슬슬 볼 때는 되었으니까요.”
1대 신검사용자 유진석. 평소 가족관계에 신경을 쓰지 못하던 그는 어느새 여동생 바보가 되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