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87. 송도의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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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협회
헌터 협회 소속 S급 헌터 죽음의 사진사 서지연은 누더기 마냥 잔뜩 찢긴 옷을 입고 상투를 튼 한 남성과 만났다.
남성은 청와대 소속 헌터 이흥부였다.
서지연은 이흥부를 보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저 인간은 언제까지 저 빈털터리 룩을 고집하는 건지. 화가 난 서지연은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여 노인네. 안녕하셈?”
“허, 아주 못 본 사이에 말투가 참.”
“그 하정석의 개노릇하고 있으면 이런 취급은 받을 각오는 했다는 뜻 아님?”
하정석의 개노릇을 하던 헌터들과 과거에 악연을 생각하면 이 정도 욕은 오히려 봐주는 수준이다.
“이봐. 지연이. 그래도 이 나라 국가원수는 대통령이야. 헌터 협회가 정부를 대신할 수는 없지 않나?”
“엌! 청와대에 앉아있는 게 어디 대통령임? 개소리 잘하심?”
개새끼가 아니고? 라고 비웃는 서지연에게 이흥부는 고개를 저었다.
“어휴. 내가 어린 애를 상대로 뭘하고 있는 건지.”
“나도 딱히 노인네와 더 말을 섞고 싶은 생각 없으니, 탐색루트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임.”
“그래. 신검은 뭐라고 하냐?”
이흥부의 물음에 서지연은 얼마 전 유진석의 말을 떠올렸다.
흥부는 청와대소속인 걸 제외하고 앞뒤가 꽉 막힌 양반이야. 융통성이라는 것이 없으니, 이왕이면 너만 따로 움직이는 게 좋아.
어떻게 하란 거임?
어차피 너 혼자도 가능하지? 내가 갈 때도 백화가 주변지역은 다 청소해둔 것 같으니까.
여자 혼자 보내는 거 너무한 거 아님?
협회 2인자가 그런 말하지 마라?
끝나면 데이트나 해주셈
유진석의 말이 아니더라도 굳이 청와대 출신에게 말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흥부가 단순무식한 과격파인 이상, 백화 탐색에 의견이 맞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설명해두는 것이 낫겠지.
“인천에서 남쪽으로 추정됨. 다만 마기가 너무 짙어서 들어가기가 힘듬.”
“흐음. 말은 통할 거 같다고 했다고?”
“무식한 노친네는 또 힘으로 할 거임?”
“원래 괴인들은 힘으로.”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단순무식하니 대통령의 개노릇이나 하고 있는 거지.
“어휴. 그러니 노인소리 듣는거임. 꼰대같으니. 대화를 모름? 당장 님형제들 10초면 컷하는 진석이도 일단 대화해보라고 했는데?”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타협을 해보자는 뜻이다.
“그 녀석도 이제 한물 갔다.”
“님은 이제 퇴직할 나이인 주제에 20대인 진석이한테 그런 말할 주제가 됨? 마누라랑 애새끼 굶겨야 강한 주제에 쯧쯧.”
서지연은 혀를 차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흥부의 능력은 ‘가난의 힘’이었다.
가진 것이 없을수록, 강해지는 것이 흥부의 고유능력이었다.
그래서 한참 생도시절에는 거의 속옷만 입고 다녔고, 최악의 적을 상대로는 알몸으로 싸우기도 했다.
그 탓에 변태로 몰려 경찰서도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른다. 형인 놀부가 늘 돈으로 어떻게 해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길거리에 나앉았을 것이다.
그나마 계속 능력을 개발한 탓에 어느 정도 보정을 받아 옷 정도는 커버치는 수준이 되었으나, 그 탓에 자식과 부인도 가난하게 살고 있다.
“커흠! 그래도 이 나라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어휴. 지랄 좀 작작하셈. 어떻게 청와대 소속 놈팽이들은 이런 인간들 밖에 없삼?”
협회 소속 헌터들은 청와대 소속 헌터들처럼 이렇게 음습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난 김재수의 반란만 아니었어도 협회는 여전히 활기찼을 것이다.
“뭐야?”
“내가 뭐 틀린 말함? 꼰대 형이란 사람인 놀부도 ‘욕심의 힘’으로 가진 게 많을수록 강해지잖슴?”
아주 형제가 쌍으로 기분 나쁜 능력을 가졌다.
서지연은 어쩌다 이런 인간과 파트너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그래 내가 졌다. 대화로 할 테니 적당히 하자.”
“진작 그럴 일이지. 그리고 일단 방송부터 볼 예정이니 그리 알고.”
서지연이 이죽이며 내뱉은 말에 협회의 말을 듣지 않고 출발하려 했던 이흥부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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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을 보여주는 방송을 하기 전에 나는 잠시 송도를 점검했다.
송도 신도시. 과거에 대격변이 일어나면서 방치되어버린 이 동네는 내가 점거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일단 무너진 건물들은 천산그룹의 지원과 이유정의 골렘이 도움을 주어 아파트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괜찮은 집들은 만들었다.
마기에서 구해낸 생존자들을 머무르게 하고 케이트를 이용해 천산그룹의 지원을 받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도록 했다.
“일단 대충 송도로 보이지 않는 그럴 듯한 건물들만 보여줄까.”
멀쩡한 건물들을 좀 보여주면 이곳이 송도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면 곤란하지.
문제가 있다면, 그나마 마기 지역을 피해 돌아다닌 인간들은 괜찮지만, 마기에 진득하게 물들은 인간들은 이미 반은 괴인이 되었다.
방송으로 보여주면 과연 언론에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러고 보니 내 커뮤니티 반응은 어떻지?”
헌터 커뮤니티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나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았다.
그래. 예를 들면. 게시판 1페이지에 아무거나 클릭해봤다.
제목: 백화 근데 존나 꼴리지 않냐?
원래 평범한 헌터나 민간인보다 괴인이랑 빌런년이 젤 꼴리지 않냐?
심지어 유진석이랑 싸울 때 보니까 팬티가 시발 T팬티더만.
니 여친없지? 하다하다 빌런년이 꼴리냐.
솔직히 존나 비비고 싶다.
백합길드년 자택에서검거
불빠따한테 하는 거 못 봄? 언제든 비비려고 여자 유혹하기 위해 T팬티 입은 거지. 요망한 년
쥬지에 박히려고 그러는 거지 ㅅㅂ
대충 본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이것을 제외하고도 나에 대해 괴인이라 더 꼴린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이 많다.
그래도 결국 예쁜 여자는 정의라고. 내가 괴인이라고 해도 빨아주는 애들이 더 많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현상 수배까지 된 여자를 좋다고 팬클럽까지 만든 적이 있지. 결국 외모만 예쁘면 장땡이다.
“하여간 이놈의 외모는 그리고 T팬티라니. 노팬틴데.”
내가 언제나 어디서든 비빌준비를 하기 위해 벗어둔 것이 아니다.
그때 레이첼이 또 나 늦게 온다고 뭐라고 할 까봐 눈속임용으로 욕탕 앞에 뒀었다.
수녀복차림이 노팬티가 더 편해서라거나 노출을 즐기고 있다거나 절대 그런 게 아니란 뜻이다.
그 증거로 지금은 팬티를 입고 있거든.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것 같으니까. 한바탕 저질러 봐?”
어차피 오늘은 생존자들을 더 어필할 생각이었으니, 내가 괴인이라는 사실에 욕을 하든 딸을 치든 간에 나는 딱히 상관없다.
백화TV자체가 그런 목적이기도 했고.
백화라는 빌런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릴 때가 되었다고 여겼으니까.
나는 재개발된 송도 지역을 무대로 하여 방송을 켰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영원한 아이돌 백화에요!”
백하
괴인 빌런년이 아이돌은 무슨ㅋㅋ
윗놈은 뉴스와 담쌓았냐?
너한테 대주지도 않을 년 보빨하지 말고. 저년이 괴인에 유진석과 싸우기도 했는데. 빌런이 아니면 뭐임?
아ㅋㅋㅋ공격하는데 맞아줄 ㅂㅅ이 어딨냐고 ㅋㅋ
채팅창에서도 어지간히 불타고 있다.
따로 매니저를 둬야 하나? 그런데 애초에 백화TV는 오랫동안 써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자, 일단 그 괴인빌런보다 예의없으신 분은 쫓아내도록 하구요.”
ㄷㄷ오늘 약속대로 보여주는 거임?
“당연하죠. 저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자 보세요!”
이미 송도는 활성화되어 사람들이 꽤 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실시간 라이브로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정말 살고 있네?
어떻게 격리지역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
빌런들이 안 쳐들어감?
“여기는 괴인들끼리 자경단을 꾸리고 있어서요. 빌런 출신도 있고 어지간하면 공격받아도 다 잡아요.”
뭐 유진석이 봐줬다고 해도 충분히 맞서 싸운 백화니까
ㅈㄹㄴ 유진석도 퇴물이지 이제.
“일단 유진석님은 저보다 강하니까요. 그때 제가 먼저 도망쳤잖아요? 체력 후달려서 그런 거에요.”
그리고 지금은 누가 더 강한지를 두고 말하는 시간이 아니지 않나.
“백화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백화님 덕에 우리 모녀가 죽지 않았어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자 꼬맹아 사탕먹으렴.”
얼마 전 구조한 모녀가 나한테 감사인사를 하길래 딸에게는 가지고 있던 사탕을 주었다.
이게 바로 이미지 관리라는 거다.
정치인들의 가식적인 모습과는 달리 나는 진심으로 괴인, 빌런 백화로서 생존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거기가 어느 지역이야?
“헌터분들이 직접 찾으세요!”
불방망이 첫키스 빼앗은 거 실화임?
그때 제대로 안 보였는데 해명해 해명해
T팬티도 해명해
그거 해명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평생가도 키스 못할 주둥이에 내가 직접 침발라준 것 뿐인데.
“아, 그런데 숫처녀라 그런지 키스 진짜 못하던데요? 그리고 격리지역은 속옷 하나도 귀해서 이것 밖에 없어요.”
아ㅋㅋ불방망이 새벽부터 아침까지 갤에 백화욕 오지게 쓰던데.
송도 생존자들 다 T팬티? ㅜㅑ
시발 남자들도 그럴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빡친다.
오 불방망이가 뿔 났나보네.
“아무튼 협회에 들키면 더 많이 보여드릴 수는 없는데요. 대충 이 수천명이 산다고 생각하세요.”
딱 이 정도면 하고 방송을 껐다.
다음은 누가 올까? 아마 남자 하나 여자 둘 이렇게 올 거 같다.
유진석이 가서 협회에 말해뒀을 테니, 최소한 유화책을 쓰기 위해 여자를 내보내려 할 테고, 그리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힘캐릭도 두겠지.
백청강과 서지연 듀오가 올 것 같다.
유진석을 제외한 협회 측 강자는 그 둘 정도니까. 아니면 길드에서도 올 수 있겠는데. 길드까지 가려면 협회도 청와대의 허락은 구해야 하니까.
어? 잠깐만.
“흥부가 올지도 모르겠는데?”
흥부라면 조금 귀찮아진다.
흥부 능력이 가난이 아니었던가? 분명 ‘가난의 힘’ 가진 것이 없을수록 흥부는 힘이 강해진다. 그래서 흥부는 늘 거의 경찰아조씨한테 잡혀가지 않을 만큼만 옷을 걸치고 있다.
한마디로 입은 옷차림부터 눈갱이라는 점에서 내게 큰 타격이 된다.
그렇다고 잘 생긴 것도 아니거든. 그냥 우락부락하게 사내다운 얼굴?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게이물 같은데서 나오는 아조씨들. 바로 그런 모습이다.
흥부는 이 세상에서 존재 자체만으로 나에게 딜을 넣는 유일한 사내다.
게다가 그 상태에서 궁극기로 옷을 다 찢어발긴 다면 그때부터 나는 시각을 포기해야 한다.
이상하게 작가 유은하는 흥부 일러는 정말 고퀄리티하게 삽입했었다.
그래서 더 빡친다.
“실제로 전작에서 그 알몸으로 여성빌런들을 무릎꿇게 만들었지.”
기분 나빠서 눈가리다가 당하고 말거든.
그래도 속단하기는 이르니까. 잠시 상황을 알아볼까?
“저, 은하야. 송도 근처에 누가 찾아왔는데.”
4마리의 분신인형으로 송도 밖을 순찰시키던 로즈마리가 다급하게 찾아와 내게 보고했다.
“그래? 누구야?”
“한 명은 죽음의 사진사. 서지연. 다른 한 명은 가난의 신 이흥부.”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했다.
그래. 예상한 대로다. 그나마 서지연이 있다는 점이 다행이네.
서지연은 반드시 미래에 열심히 따 먹어주겠지만 지금 당장은 타협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엘리제는 불가능하겠지. 강해지긴 했어도 상대가 한국의 S급 두 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엘리제는 이흥부도 잡을 수 없고, 만일에 잘 못 걸리면 미국과의 외교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상한 대로의 조합이네. 시아야.”
“네넵. 주인님.”
“이따 입에 마력석 가득 넣어줄 테니 흥부 맡아. 가능하지?”
모처럼 성좌인데 그 정도는 해야겠지?
“죽고 죽이는 싸움이라면 지금 이 몸으로는 좀 힘들겠지만.”
최시아는 성좌의 힘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안에 있는 최시우였다.
색욕이 되어버린 최시우를 내면에서 조금이라도 제어해두고 있으려면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
“아니, 그랬다가는 색욕도 깨어날 테고. 흥부는 살아있는 편이 좋아.”
그 인간 고지식하고 좀 방해가 되며 내 눈을 극한으로 기분 나쁘게 만들 것 같지만. 힘 하나는 쓸 만하다.
유진석 세대의 헌터들을 제외하면 흥부는 형인 놀부와 더불어 한국에서 제일가는 격투가라고 할 수 있다.
일명 ‘가난권법’이라는 이상한 기술을 사용하는데, 일본에서 스모 쪽으로 능력이 있는 헌터가 백기를 들 정도라고 한다.
뭐 결국 알몸으로 싸우는 탓에 시각적 테러를 처음에 먹고 시작하는 게 크니까.
일단 쫓아내는 것이 좋을 텐데. 문제는 한 번 쳐내도 계속 나타날 수 있다는 점. 결국 언젠가는 송도의 위치를 들키고 만다.
차라리 서지연을 아군으로 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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