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88. 악룡과 사진가
* * *
#
서지연 아군만들기.
괴인으로 만드는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 협상을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송도를 나와 다시 마기를 정화하고 있는 강렬한 마력을 따라갔다.
한쪽은 이미 한 곳에 정체한 것을 보니 최시아가 싸우는 모양이다.
"이쪽이네."
그렇다면 서지연이 있는 쪽은 이쪽일 것이다.
연수동에서 한참 동쪽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존재.
나를 도발할 셈이라면 좋은 방법이다. 아마 윤지석이 말해줬겠지. 이 근처에서 알짱거리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송도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실 길을 잃어도 내가 찾을 생각이었다. 서지연은 내 최애캐 중 한 명. 최애캐를 핥짝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헤에. 이쪽이 정답인 거임?”
“죽음의 사진가. 서지연.”
사실상 대한민국 헌터 중 2인자에 속하는 여성.
사람을 향기로 죽이는 꽃의 노아나 다른 길드의 마스터 헌터들도 그녀의 사진기에 걸리면 푹 찍이다.
절대로 적으로 두어서는 안 되는 상대지.
“오, 나 알고 있었음? 그럼 협상가능?”
“네. 저도 협상하러 왔거든요.”
“서울로 합류?”
“아니오.”
글쎄 서울로 합류는 불가능하다.
내 말에 서지연이 씁쓸하게 웃었다.
서지연이라는 암컷은 침대 위에서 어떻게 울까?
“그럼 힘으로 해야 함?”
힘으로 하면 아픈데.
“딱히 싸우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뭐 괴인인 이상, 이쪽은 헌터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음. 이래 보여도 나는 사도 후보였음.”
어느새 나는 그녀의 손가락 사진기에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찰칵!
사진에 찍혀버린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내면세계에 떨어졌다.
새하얀 세상이지만, 마치 그녀의 심상세계를 가르쳐주는 것처럼 주변에 액자가 많았다.
짝 짝 짝 짝 짝
서지연이 박수를 쳤다.
“역시, 대단함. 내 찰칵에 저항하는 자는 오랜만임.”
“어머나, 너무한데요. 아무리 여자끼리라지만 이거는 순전히 납치가 아닙니까?”
설마 내가 서지연의 심상세계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작 묘사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가.
“어쩔 수 없음. 그만한 상대가 아님?”
“여기서는 분명 정신공격까지 가능하던가요?”
이래서 서지연이 무서운 여자라는 것이다.
강한 상대는 자신의 심상세계에 가두고 무슨 공격이든 가능하다. 상대를 정신적으로 죽일 때까지 말이다.
이겨내려면 강한 정신력으로 서지연이 나가 떨어질 때까지 버티거나 그도 아니면 비슷한 정신계조작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 예를 들면 이런 거임.”
딱!
어느새 주변이 폐허로 변했다.
아무래도 내가 만든 백화의 설정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환상인지 아직 토벌되지 않은 흑신교와 헌터세력이 폐허 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헌터세력들은 유진석을 시작으로 쟁쟁한 헌터들이 줄을 이었고, 흑신교 세력은 이미 네임드가 다 죽어갔으나, 괴수들을 앞세워 열심히 헌터들에게 맞서 싸웠다.
“뭐해? 흑신교놈들을 다 죽여!”
“사.살려주세요! 저희는 아니에요!”
“웃기지 마라! 너희 같은 년들이 자폭을 해대는 통에 헌터들이 얼마나 죽었는데!”
흑신교 세력권 주변에 살던 민간인들도 헌터들에게 학살당했다.
어떻게든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 셈인가. 그도 아니라면 자신은 이 정도로 정신을 조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런데 말이다. 이런 공간이 무대라면 반대로 내가 공격할 수도 있다.
“저도 정신공격 하나는 잘하거든요.”
이 심상세계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고 묻는다면 이곳은 작가 유은하의 공간과 비슷하니까. 그 공간과 냄새 자체가 비슷하다.
레이첼과 100년의 시간을 보낼 동안 나는 몇 번 작가 유은하의 심상세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심상세계라는 설정을 만들어낸 것은 작가 유은하고. 나는 작가 유은하의 분신격이나 마찬가지라 심상세계는 내 의지로 조종할 수 있다.
그럼 작가 유은하는 앙그라 마이뉴일까. 그런 말을 했다가 몇 대 얻어 맞았는데. 그것도 추억이었지.
심상세계라는 개념 자체가 나와 이어져 있다.
“아무리 여기서 정신공격을 한다고 해도 나한테는 안통할거임?”
“이곳은 내 공간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나 역시 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다.
내 말에 서지연은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임?”
탁!
“백합의 화원!”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여자와 여자가 서로 녹진한 키스를 하고, 얽히고 얽히며 서로 손가락으로 보지를 쑤시고 클리를 비비고 가위치기를 하며 남자의 자지가 삽입되지 않는 달콤한 섹스. 나는 그런 환상을 서지연의 뇌를 통해 직접 보여주었다.
“뭐,뭐임. 이건. 무슨. 여자끼리 어떻게. 저게 가능?”
서지연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보통은 자기 능력을 내가 똑같이 사용하면 그것에 놀라 반응해야 하는데, 이 여자는 백합에 반응했다.
이 여자는 늘 그랬다.
호기심이 많지. 그래서 비록 제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일단 재밌어 보이는 건 시도하고 보는 성격이다.
“당연하죠. 여자들도 사랑이 있으면 가능하다구요.”
지금 당장 덮치고 싶은데.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음. 너는 대체 누구임?”
“알 수 있지 않아요?”
“나는 그래도 매너가 있는 편임.”
그런데서 매너 찾지 말지.
“뭐 제 정체를 말하기 전에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뭐임?”
“저희 백화교에 들어와 주세요.”
너 내 동료가 되라!
한 마디로 내 동료가 되어달라는 뜻이다. 무려 악룡 아지다하카가 이만큼 무릎 꿇어준 거다.
“나보고 빌런집단이 되라는 거임??”
“백화교는 빌런집단이 아니에요. 절대 다수 여성들로 이루어진 빌런조직이라구요. 여자들끼리 사랑만 하는 그런 조직?”
약간 농담처럼 말하기는 했는데, 기존 흑신교에 남아있던 남자들을 제외하고는 절대다수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니 이상하지 않음?”
“이상하다면서 아래는 왜 젖었죠?”
핫팬츠 위로 보일 정도로 고간이 젖은 것이 보인다.
심지어 젖다못해 다리를 타고 흐르는 것이 음란하다.
“아니, 이건 그러니까. 음, 이건 생리적인 문제인거임.”
“어쨌든 성적으로 흥분해서 흘린 거잖아요. 아님?”
물론 저건 그녀가 흘린 것이 아니다. 젖은 것처럼 느끼도록 머리를 만져줬지.
적어도 지금의 그녀는 유진석을 더 좋아하니까. 그저 여자끼리의 관계에 흥미만 가지게 해준 것 뿐이다.
그런데 내 말에 그녀는 귀엽게 고개를 흔들더니 화를 냈다.
“아무튼 아닌거임! 애초에 이곳은 정신만이 있는 세계인거임. 무슨 수작을 부린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한테 뭔 짓 한 거 아님?”
“후. 들켰나요?”
들켰네. 이거 쉽지 않을지도모르겠다. 초반부터 여러 의미로 따먹는 구실이 있었던 히로인들과 달리 서지연은 탄탄하니:까. 빌드업구간이 필요하다.
“나한테 딱걸린 거임. 자, 그럼 간만에 정신력 싸움임!”
“아니, 저는 사실 전부터 당신을 노리고 있었어요.”
“네가 나를 뭘 암?”
“매너 그만하시고 내가 누군지나 알아보세요.”
내 말에 서지연은 입을 삐죽이더니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 순간, 내 몸에 있는 베일이 벗겨지고 수녀의 모습에서 유진석의 여동생 유은하의 모습으로 변했다.
“!!”
“놀라는 거 보면 알아보시나 보네.”
“아니, 잠깐. 이상하지 않음? 왜 백화가 유은하? 잠깐, 그럼 방벽너머로 간다는 것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유진석에게 끌고 가기 전에 엉덩이 팡팡해버릴거임!”
작은 손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니 귀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알겠어요. 앉아보세요. 전부는 아니지만, 언니가 이해할 만큼은 알려드릴 테니까요.”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주 조금 말해주었다. 아카식 레코드로 대가리 깨질 각오로 미래를 보았는데 죄악이 침공할 수 있으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심상세계에서 정신적으로 나와 대등한 관계인 그녀는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내 말을 다 들은 서지연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말이 맞다치는 거임. 그럼 오히려 서울에 합류하는 게 옳은 거 아님? 빌런세력을 키우는 건 나쁜 짓임!”
“솔직히 지금 제 밑에 있는 빌런들은 어쩔 수 없이 빌런짓했던 놈들이에요. 진짜 쓰레기들은 제 선에서 다 죽이고 다니니까요. 그리고 반대로 물어볼게요. 지금 협회사정도 좋지 못하고 청와대의 개는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하려 할 텐데요?”
하정석 그 인간은 내가 아카식레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면 틀림없이 나를 이용해먹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인간이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는 좋은 능력자들은 죽을 때까지 물건처럼 써먹으려는 쓰레기다.
그러니까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건 확실하다.
서지연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전작에서 그 능력을 탐낸 하정석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이 바로 서지연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으음.”
슬슬 넘어오고 있다.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서지연에게 매달렸다. 이만한 외모로 즙짜기를 시전하면 여자도 넘어오기 마련이다.
“적어도 폭식의 죄악을 잡을 때까지만요 안 될까요?”
“그래도 협회 헌터로서 못 본 척할 수는 없는 거임!”
정말 쓸데없이 정의롭다니까. 이런 여자 싫지 않아. 내 색으로 물들이는 가치가 있다.
“몸으로 때울게요.”
“그런 거에 안 넘어감! 무엇보다 나는 이성애자임!”
이성애자라고 해도 결국 나한테 걸리면 수컷의 자지는 필요없는 암캐가 되고 말 거다.
내 꼬리 한방이면 직빵이지! 금태양조차도 울고 갈 완벽한 꼬리다.
“그러지 말고 한 번 즐겨보면 안다니까? 하지 않겠는가?”
“잠깐. 너 원래 그쪽인 거임?”
그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참 서운하다.
딱 봐도 각이 나오지 않나? 내가 아까 뭐하러 그런 걸 보여줬다고 생각하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