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3. 흥부와 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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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유은하가 한참 레이첼에게 탈탈 털릴 준비를 할 무렵.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하정석의 앞에 놀부와 흥부 형제가 나란히 섰다.
그런데 하정석과 놀부는 유독 흥부를 째려봤다.
시킨 일을 제대로 임무달성을 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알아내지 못했다?”
하정석은 어이가 없어 흥부를 노려봤다. 청와대 소속 헌터 중 그나마 가장 강한 자 중, 한 명인 흥부가 이 꼬라지다.
“상당한 실력자였소. 놈을 족치고 싶은데 히트 앤드 런이 대단했지.”
“추격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이래서야 만나지 못한 서지연보다 못한 꼴이 아닌가. 차라리 못 찾았으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백화의 동료를 만나고 잡아서 물어보지도 못 했으니 체면만 구긴 꼴이다.
“백화에게는 강한 동료들이 있다더니, 그게 딱 맞는 말인가 보더군.”
“젠장, 백화는 반드시 잡아야 해.”
생각보다도 전력이 너무 강하다. 이러다가 백화가 격리구역의 모든 지역의 빌런이나 생존자라도 규합하면 분명 위험해질 것이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당장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고작 빌런년을 찬양하는 놈들이 너무 많다. 애들 풀어서 억누르기에도 너무 티가 나고.”
하정석은 헌터 정보부 휘하 헌터들을 동원하여 얻어낸 자료들을 흥부와 놀부 형제에게 보여주었다.
그 내용인 즉, 한국의 국민은 대통령보다 백화를 더 지지한다는 것. 극단적인 댓글에는 하정석보다는 차라리 백화를 대통령 대신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후, 그러게 인천은 버리지 말자고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지 않았나. 송도는 반드시 이 혼란한 시대에 괴수들을 무찌를 전초기지가 될 거라고 말이야.”
놀부는 고개를 저었다.
대격변이 터진 이후, 한국은 여러 번 괴수의 위협을 받으면서 국력이 깎여나갔다. 그나마 겨우 태세를 추스르고 방벽을 설치한 것이 유진석 세대의 공이었다.
그때 놀부는 송도까지는 지키자고 했다.
당시 헌터의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을 때, 송도에 각성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정석은 당시에 헌터 협회에 권력을 넘길까 봐 그대로 포기했다.
“그래서 놀부 자네에게는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그 백화라는 처자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쨌든 빌런이니 잡아야 할 존재가 아닌가?”
놀부는 그렇게 말하면서 뒷머리를 긁었다.
“그렇지.”
“일단 보아하니 그 송도는 투자할 가치가 충분해.”
또 그 소리인가. 백화가 송도에 살림을 차렸다는 소리가 돌 때부터 놀부는 그런 말을 했었다.
지금이라도 송도를 되찾자고. 명당이라고.
“그럼 자네도 백화를 잡고 송도를 얻자는 건가?”
“백화에 50억을 거는 것이 어떤가? 평양사태를 유진석이 해결한 이후 우리 헌터들의 괴수토벌 임무가 주로 외국이 되었으니. 백화에 50억을 건다면 헌터들이 방벽을 넘을 걸세. 그리하면 영토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니 나쁠 것이 없네.”
이미 방벽을 넘어서 남한 땅을 되찾자는 정책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허, 50억이나 걸자고?”
50억이 뉘 집 애 이름인가.
아무리 위협적인 빌런이라지만 고작해야 계집애 하나 잡겠다고 50억까지 거는 것은 영 마땅치 않다.
“그렇게 하면 외국계 헌터들도 달려들지 않겠나. 어차피 끽해야 빌런이네. 결국 그곳은 토벌되어야 해.”
“흐으음. 일단 해보지. 그럼. 당장 협회에 압박을 넣어야겠어.”
놀부의 말이 일리는 있었다.
이참에 협회를 상대로 일도 제대로 못 했다며 따지는 것도 좋겠지.
어쨌든 현재 대한민국 헌터 2인자로 불리는 서지연이 백화에 대한 정보도 얻지 못했으니까. 이참에 한 번 압박을 넣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흥부. 자네는 아직도 너무 순해 빠졌군. 그러니까 자네가 요령 없이 마누라랑 애새끼를 굶기는 것이 아닌가.”
“형님 뭐라고요?”
흥부는 금방이라도 주먹질을 할 것 마냥 손을 불끈 쥐었으나 놀부의 다음 말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이유가 있든 송도에서 들고 일어난 그 백화라는 년이 계속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 청와대가 어찌 되겠나? 기껏 협회가 조용한 이때, 나라가 혼란스러워져.”
놀부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하자 발끈하기만 했다.
그 말은 일리가 있다.
국민들이나 협회로서 치사하고 더러워도 결국 정부는 하정석 정권이다. 그런데 빌런이, 그것도 괴인이 송도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으며 아예 독립적인 도시처럼 살아가고 있다.
외부와 단절되었으니 아마 의식주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 괴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빌런 무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이것은 심각한 일이다.
어쩌면 세를 더 키운 백화는 서울을 노릴 지도 모를 일이다.
‘빌런년 따위에 의해 무너질 수는 없지. 시노하라도 써먹어야겠군.’
그리고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하정석은 어떻게 해서든 정권을 지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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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협회
서지연의 소득 없는 복귀로 협회장 최철식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늘었다.
그 주름살에 서지연은 내심 찔렸으나, 어쩔 수 없다.
자기만 믿고 빌런인 것도, 괴인인 것도 밝힌 아이다. 그것도 열렬하게 구애를 하던 아이를 어떻게 찌를까.
솔직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격렬하게 받아보는 구애라 서지연은 조금 설레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절대 찌를 수 없다.
서지연이 한참 눈치를 보고 있자 최철식이 대머리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하정석이 협회에 압박을 가했네.”
“무슨 소리임? 압박이라니?”
대통령이 무슨 염치로 압박을?
흥부가 가서 또 뭐라고 했나. 그런데 흥부는 그럴 위인은 아니다. 대통령 명이니 따르고는 있어도 결코 협회를 까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하정석 개인의 의지라는 건가.
하여간 답이 없는 인사 같으니라고.
“백화에 현상수배를 걸라고 한다.”
“아니, 얼마를 걸라는 거임?”
백화에게 현상수배. 정부에서 대놓고 백화를 없애야 할 빌런으로 지목하겠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괴수를 쓸어버리고 최철식의 소집령에 협회로 와 서지연과 한 자리에 있던 백청강도 백화의 소식을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빌런으로 선택할 줄이야.
“유진석과 싸우기도 했고, 생존자들을 끌고 한국에서 자기만의 도시를 세웠으니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존재라더군.”
하정석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서지연의 옆에 있던 백청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상금은 그럼 얼마나?”
“50억이다.”
50억. S 랭크 헌터들도 한 번에 그리 벌 수 없다.
하정석이 백화라는 존재에 심각하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0억이라면 여러 이유를 들어가면서 방벽 제한도 풀리겠음.’
아마 하급 헌터도 도전해보려 하겠지. 하정석은 어떻게 해서든 백화를 잡을 속셈이다.
한국은 자신만의 것이라 여기는 놈이니까. 아마 송도에 한자리를 꿰차고 사람들이 떠받드는 백화가 마음에 안 들 것이다.
“그런데 너무 이른 거 아니야? 50억이라니. 하정석이 미쳤어?”
빌런 중에서도 현상금이 십억 단위는 보기 드물다.
그것도 처음에 당한 거치고는.
“문제는 따로 있지. 지금 송도만이 아니라 서울이나 부산 전라도 쪽 국민들도 백화를 지지하는 애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허. 협회와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백화가 하고 있어서인가.”
백화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빌런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그것도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 이미 한국에서 이 정도라면 해외에도 알려졌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 하정석으로서는 지지율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어.”
“우리가 하정석 말을 따라야 함?”
하정석은 여태 대통령 중에서도 가히 최악의 대통령이다.
잘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역을 지킬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다. 김재수 탓에 협회 헌터 인력이 부족한 판이라서 말이야.”
김재수 일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는데. 협회가 왜 이렇게 무능할까?
“그냥 뭐 어디서 데려올 수 없음?”
“길드나 아카데미에서 알아볼 생각이다.”
“빨리 알아보셈. 그럼.”
서지연은 짜증이나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이렇게 무능할까. 최철식. 이 인간은 생각해보니 늘 유진석의 도움만 받은 것 같다.
막상 이렇게 보니 정말 정부도 협회도 답이 없다.
그렇다면 유은하 쪽이 더 나을지도. 결국 헌터 협회도 정부도 형편없으니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유은하가 하는 일은 결코 나라에 좋지 못한 일이다. 그저 분열을 일으키려는 행동일 뿐이다.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나중에 반드시 엉덩이 팡팡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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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트하우스 용용이의 방에서는 무릎을 끓고 있는 나와 하늘을 나는 리틀 용용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는 레이첼이 있었다.
마치 살얼음 판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입을 여는 것은 오로지 리틀 용용이 레이 뿐이었다.
“뀨잇 뀨뀨 뀨잇! 뀨르르!”
용용이는 지금 뱀탕을 먹는 게 아니라 뱀탕이 될 위기에 처했어요.
저 의리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는 리틀 용용이가 전부 레이첼에게 고자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거 봐라. 하늘에서 퍼덕거리면서 앞발로 나를 가리키는 것이 말만 못 할 뿐이지 저거 이미 자기 엄마를 엿먹일 정도로 지능을 가졌다.
심지어 나랑 시우가 열심히 비비는 것을 보고 저러는 거다.
“인간아. 내가 못 살아. 어떻게 자식이 보는데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해?”
레이첼이 열심히 내 등짝을 때린다.
마치 바람피운 남편의 등짝을 후려치는 것처럼 레이나의 손은 매웠다. 그것도 엄청. 저 손으로 뱀탕을 하니 뱀이 매운맛이 아닌가.
“나 용인데.”
“지금 말대답할 처지야?”
이것이 전부 레이 탓이다.
이 망할 리틀 용용이 같으니. 내가 알아먹을 수 없으니 나중에 따로 한글이라도 가르쳐야겠다. 그래야 저게 내 욕인지 뭔지 알아듣지.
“아니, 애초에 왜 방임주의로 키워서. 설마 감시한 거야?”
“얘가 제 아빠 좋다고 나간 건데, 그걸 감시라고 해? 어휴.”
내가 아빠 포지션이라지만 너무하다.
이것은 엄연히 사생활 침해라는 뜻이다.
“한 번만 봐줘. 응? 아니다. 앞으로 1000번만. 그 정도만 해도 너보다는 덜 자는 거야. 응?”
애기 용용이는 눈물의 즙짜기를 시전했다.
“눈물로 애원해도 안 돼!”
하지만 실패했다!
“이상하다.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고 판사님이 그러셨는데.”
“같은 여자에게 통할 리가 없겠지!”
그건 그런가? 그래도 이제는 나를 좋아하니까 즙 짜기에 넘어와 주면 좋지 않나?
“그러지 말고. 응? 오늘은 내가 화끈하게 해줄 테니까. 뱀탕만은 봐주세요. 모녀 덮밥 소리도 한 달은 안 할게. 응?”
모녀 덮밥은 엘리제와 음습마리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레이나와 레이첼 모녀와 할 이유가 없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지.
그런데도 뭐가 그리 불만인지 그녀는 나를 노려본다.
아! 아무래도 위로해줘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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