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100. 송도 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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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정리를 해보자.
전작에서도 천산그룹은 존재한다. 다만 그때의 천산그룹은 잠시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였다.
왜? 괴수들한테 박겠다고 무식하게 마도총기류를 만들었으니까.
말그대로 일반 화약이나 연료를 이용한 무기가 아니라 마력석 같은 것을 이용한 무기다.
다만 마력석의 소모량이 어마어마하다.
저 레벨 던전에서는 얻는 코어나 소재보다 소비하는 마력석값이 더 들었다.
고레벨 던전에서는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마력석을 쏟아 넣을 수도 없고.
하지만, 말이지 괴수가 아닌 인간이 상대라면?
헌터들이 괴수들보다 강하다고 해도 맷집은 차이가 난다. 최소한 신체 강화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상 마도 총에 의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런 비효율적인 무기를 꺼내드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마력석 창조경제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전혀 비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이유진을 찾아갔다.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이유진은 내게 차를 주면서 용건을 물었다.
나름대로 천산그룹을 이끄는 입장이면서 제법 한가한 모양이다.
뭐 그 덕에 내가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헌터협회 측에서 백화교 토벌을 추진할 것 같아서 말이죠. 아마 길드도 연합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유진 얘는 나를 볼 때마다 착석하고 다리를 배배꼬고 있다.
뭐 하는 거지? 나를 유혹하는 건가?
혹시 보지에 에그진동기라도 넣어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여기서 거래는 끝이라는 건가요?”
“아닙니다. 무기를 좀 얻으려구요.”
“무슨.”
이유진의 얼굴이 마치 죽은 사람마냥 푸르게 변했다.
제 아무리 뒷거래를 하는 관계라 해도 무기 지원은 불가능한 것이겠지.
“천산그룹이 몇 년 전에 말아먹은 마도총기류들.”
“아니 그런 비효율적인 것들을 사용해서 길드 연합과 싸우겠다고요?”
“제가 질 것 같습니까?”
내 느낌으로 이년은 이미 내가 누군지 파악했다.
그런데 내가 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 아뇨.”
“그러니까 주세요. 마력석은 썩어져 나니 충전도 걱정 없으니까. 설마 다 폐기한 건 아니죠?”
내가 아는 이유진이라면 전부 버릴 리 없겠지.
아카식 레코드가 그랬다. 이년 성격이라면 아까워서라도 버리지 않은 것들이 있을 거라고.
[천산그룹은 프로젝트를 포함한 일부만 폐기했을 뿐, 무기는 처분하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마스터]
그렇다고 하니, 나는 이년에게서 뜯어낼 만큼 뜯어낼 것이다.
“물론 나중을 위해 남겨둔 것이 있기는 한데. 만일 우리 것이 백화교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흐른다면.”
“그건 천산에서 알아서 할 문제지요.”
그걸 왜 나한테 그래. 우리에게 무기를 지원할 거면 천산이 해결해야지.
“너무 무책임하신데요? 그래도 좋은 거래처인데.”
“어차피 정부의 허락을 받고 서해에 버리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이유진이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 해결을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
“우리가 그것들을 주워둔 것으로 하죠. 따지고 보면 천산같은 대기업이 대량의 총기류들을 밖으로 옮기는데 정부에게 모를 리 있습니까?”
심지어 본래 마도총기개발을 천산에 제안한 것은 하정석이었다. 그 사업이 망해버리자 하정석은 입을 싹 씻고 서해에 투기하는 식으로 폐기하라고 했다.
마도총기류는 본래 작품 후반부에 부족한 헌터수를 커버하기 위해 구식 군대에 보급하면서 천산에서 만들었다는 것이 알려진다.
국민들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으읏. 확실히. 그건 그러네요. 한꺼번에 무기를 백화교에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런 백화교가 우리 무기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죠. 알겠어요. 지원하죠.”
그래. 현명한 선택을 해준 것은 고마운데.
왜 자기 혼자 발정을 할까. 냄새 풀풀 풍기는 걸 보니 아래에 뭔가 삽입해둔 모양인데. 역시 내 주위에 정상인은 없어.
일단 빨리 가지 않으면 이년은 내 앞에서 허리를 활처럼 튕길 것 같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므로, 저년이 나한테 암컷임을 과시하기 전에 튀기로 했다.
* * *
내가 가져온 무기는 히로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이런 무기는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구시대의 소총이나 기관총같이 생긴 무기니까.
“이 무기들은 다 뭐에요?”
레이나. 좋은 질문이다.
“이건 천산그룹에서 만든 마도 총기류들. 마력석을 엄청나게 먹지.”
“이거는 대체 왜?”
내가 왜 가져왔겠어. 쓰려고 가져왔겠지. 결국 헌터들은 대부분이 가성비 좋게 마력을 두를 수 있는 검이나 활 지팡이 같은 걸 사용하니 말이다.
“부족한 머릿수를 때울 거야.”
“아니, 이렇게 되면 마력석이. 아.”
“내가 창조경제 쌉가능하잖아.”
당장 손에 대량의 마력석을 만들자 레이나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칙칙한 마기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칙칙하다니. 그래도 마기와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나만이 가능한 일이다.
“은하야. 그럼 어쩔 거야? 그것들 송도 애들한테 다 줄 셈이야?”
한수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도 사람들에게 맞서 싸우게 해야지. 배수진을 칠 생각이야. 그리고 유정 선배는 전장이 될 송도 외곽 지역을 드론으로 저 대신 방송을 송출해주세요. 당장은 아니지만 미리 준비는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송도 시민들을 불러주세요.”
“응.”
어쩌면 하정석이 보낸 정찰병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펜트하우스 앞으로 송도에 사는 성인들을 집합시켰다.
그중에는 빌런도, 괴인도 있으며 일반 시민도 섞여 있다.
이들은 내 덕에 살아남고, 내 덕에 송도로 들어와 살고 있다.
“백화교의 교리를 따르는 신도들과 송도의 시민들은 들어라.”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사람들의 귀에 쏙쏙 박히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흘렸다.
“격리지역의 국민들을 모조리 버린 개 같은 하정석은 협회를 압박해서 송도를 토벌할 생각이다. 그들은 내 목에 50억이라는 거금을 걸고, 백화교를 토벌하고 송도를 취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송도 사람 대부분은 이미 보통 인간이 아니지. 아마 대한민국 법상, 그리고 하정석의 권력을 위해서라도 송도의 사람들은 살지 못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대통령과 협회 사이에 이야기가 오갔으니 분명 전쟁은 터질 것이다.”
아마 이 싸움에서 패배한 괴인들을 살려둔다 해도 최소 감옥 같은 곳에 가둬둘 것이다.
“그럼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싸우느냐, 죽느냐, 아니면 도망치느냐. 너희들을 송도에 정착시킨 나는 여기서 싸우려고 한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자는 앞에 있는 마도총을 들어라. 싸울 자신이 없다면 어디든 도망쳐라. 물론 빌런을 만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만.”
내 말에 빌런들 출신의 송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한 사람이 손을 높이 들었다.
“씨발 까짓거 싸워보자!”
“어차피 도망쳐봤자 어디서든 죽을 게 뻔한데. 뭐.”
"죽기밖에 더 하겠나?"
격리지역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총기에 익숙한 자들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 근처 빌런들은 제법 능력이 강하지만, 능력 없는 잡종들이 살아남으려면 구시대 무기라도 다뤄야 했다.
지금 이곳에도 구형 총기들이 꽤 있다. 탄약만 없을 뿐.
“그럼 지금부터 송도는 정부에 대항할 준비를 한다. 백화교는 송도 인근에 바리게이트를 세우도록.”
괴인들도 설득했고 만족스럽다.
이제 남은 것은 송도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버티는 것,
아마 전투 가능한 애들 다 끌어모으면 500명쯤 될 거다. 그들이 이번에 정부를 상대로 대항할 괴인이 아닌 의병이 될 것이다.
하정석. 온다면 오는 대로 다 박살 내주겠다.
* * *
헌터 협회
협회는 간만에 각 길드의 헌터들로 북적였다.
다만, 최철식이 있는 회의실은 유난히 살얼음판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 있는 길드 마스터들에게 백화 토벌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와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터라 길드 마스터들은 화가 치밀대로 치밀었다.
얼음 여제 차지은이 탁상을 내리쳤다.
쾅!
“하다하다 하정석의 개새끼가 되다니. 정말 제정신입니까? 우리는 뭐 백화를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차지은의 말에 다른 마스터들도 공감했다.
이 자리에 모인 길드 마스터들은 생도를 막 졸업하기 직전 벌어진 대범람 사태를 겪었다. 그 사태는 수도권과 몇몇 대도시들을 제하고 지방은 마기로 뒤덮인 참담한 자연재해였다.
서울은 얼음여제 차지은이 방벽을 쳐서 인천을 버리는 것으로 마기가 서울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으나, 그날의 사건을 모두 겪은 현 길드마스터이자 유진석 세대는 잊을 수 없엇다.
특히 차지은은 방벽설치 때 격리지역의 국민들이 애절하게 구해달라는 그 눈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국민들을 백화가 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백화를 토벌하자는 것은 그녀를 따르고 있는 생존자들도 토벌하자는 이야기였다.
아니, 설령 그들을 서울로 합류시킨다고 하더라도 상당수는 토벌하는 헌터들에 의해 짓밟힐 것이다.
더군다나 그 지역에 있는 인간들은 서울에 합류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굳이 왜 벌집을 건드리려고 그래? 기억 안 나? 그 송도에 있는 애들도 절반은 괴인일 거라고. 최소 자연스럽게 괴인화가 시작되었다 이 말이야. 당연히 송도를 친다고 해도 하정석이 잘도 목숨을 살려주라 하겠다.”
당시에는 이미 많은 국민이 마기에 홀려 괴인화 상태에 이르렀다. 대격변 이후 나타난 괴인들은 태반이 범죄자였다. 그래서 그들을 서울에 합류시킨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다.
대범람 당시에 어쩔 수 없이 차지은이 방벽을 세울 수밖에 없던 이유 중하나이기도 했다.
송도라고 다를까. 송도에 있는 시민들이 설령 선량한 괴인들이라고 해도 결국 하정석에게 위협을 받을 것이다.
한참 길드 마스터들의 욕을 들어먹던 최철식은 이마의 땀을 쓸었다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나름 협회장 노름만 십 년을 넘게 하고 있다. 그런 자신이 고작 하정석의 충견 노릇을 하겠는가.
다 생각이 있다.
“그러니까 적당히 해.”
“적당히 하라니 그게 무슨.”
토벌명을 내린 주제에 적당히 하라니.
“저항이 격렬하면 그냥 져주는 척 빠지라고. 이미 협회의 위신도 땅에 떨어졌어. 길드가 괜히 송도를 후려 패면 국민들 사이에 헌터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 거다.”
이게 다 백화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은 탓이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좀 희생을 할 각오로 송도를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하정석도 휘하 헌터들을 보내겠지. 그놈들을 고기방패로 써.”
하정석 밑에 있는 놈들이라고 해봐야 순 속이 시커먼 놈들이다.
그놈들이 얼마가 죽던 솔직히 상관없다.
협회 소속 헌터도 인력이 적은 마당에 길드 헌터들까지 죽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단 백화를 만나보는 것도 좋은가. 그런데 서지연은?”
백청강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손가락 사진기를 만들며 놀고 있어야 할 서지연이 보이지 않자 최철식에게 물었다.
“빠지기로 했다.”
“뭐?”
“그날이라던데. 아무튼 쉬어야 한다더라.”
아주 협회에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더니 잠수타고 있다.
“허! 평생 그런 적이 없던 년이.”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백합길드 마스터 꽃의 노아는 서지연의 꾀병에 허탈하게 웃었다.
자기 혼자 숨을 생각인 거다. 하여간 약아빠진 계집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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