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106. 청와대의 민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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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지에 사인을 써서 내 팬이라는 정장녀에게 주었다.
“어머, 여기 사인이요. 가보는 아니더라도 뿌듯해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아, 그 마력 결계가 있는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인까지 줬더니 알아서 다 불었다.
이 사람 거의 매국노급인데.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하정석은 국민한테도 욕 들어 먹는 처지가 아닌가?
다행히 드론은 청와대 내부를 보고 있어 나중에 하정석에게 꼬투리 잡힐 일은 없을 것 같다.
안내받은 결계에 마력을 부여해 단숨에 터트렸다.
그렇게 하정석이 있다는 밀실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드디어 마력석으로 도배된 거대한 문을 발견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드론은 잠시 가려뒀으니 방송에 나올 일은 없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꼴리는 정장녀는 마지막까지 풍만한 가슴이 흔들리게 몇 번 고개를 숙이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직까지 다른 헌터들이 공격해오지 않는 것으로 보니 정말 헌터들은 구경만 하는 것 같다.
국군도 불렀을 테니 딱 머리털 밀어버리고 두들겨 팰 시간만 남겠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적에게 등을 보일 수는 없는 일! 내가 죽던 그년이 물러나던 둘 중 하나가 되겠지!
안쪽에서 제법 국가지도자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설마하니 저 인간에게 저런 면도 있을 줄이야. 독재만 할 생각이지 그래도 나름대로 자존심은 있다는 건가.
“그거참, 대단하시네요. 독재자 주제에, 그렇다고 뭐 하나 이룬 것도 없는 주제에 마음가짐은 참 좋아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대로 파이어 펀치를 마력석으로 도배된 문에 주입했다.
콰앙!
한계를 넘언 마력을 주입받은 문은 파괴되었고, 나는 당당히 안으로 들어가 우리 잘나신 대통령 각하를 알현했다.
“네 이년! 너는 예의도 모르냐!”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내가 예의를 차려줄 리가 없다.
나는 앞을 가로막는 비서실장의 뺨따귀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용케도 도망치지 않으셨군요.”
“도망칠 이유가 있나? 네년이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결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네년은 더 위험도가 오르겠지.”
아 상관없는데. 애초에 죽일 생각도 없고.
“뭐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
“뭐?”
“저 이래 보여도 굉장히 살생을 싫어하는 괴인이에요.”
“궤변이로군.”
“에이~진짜예요.”
아니, 정말인데. 딱 필요한 만큼만 죽일 뿐이지.
애초에 그 A급 세뇌 헌터들도 우리에게 얌전히 길을 열었다면 나는 죽일 생각이 없었다.
다 반격하다 죽은 것들이 잘못이지.
자, 그럼 이제 미션을 시작할 때가 되었지?
나는 몹시도 곤란하다는 시선으로 하정석을 쳐다봤다.
“사실 시청자분들 중에 우리 잘나신 대통령 각하의 머리털을 다 뽑는 것과 두들겨 패라는 미션을 주셔서요.”
“뭐?”
“무려 2천 5백만원이 걸려있습니다.”
나는 손가락 두 개에 하나는 반만 접어서 각하인 그를 약 올렸다.
그래. 너는 2천 5백만원에 내 손에 마음껏 놀려질 것이다.
“그. 그게 무슨.”
“뭐 머리털은 좀 아프겠지만, 두들겨 맞는 것은 우리들이 직접 해드릴 테니 업계포상일 수도 있어요.”
솔직히 이 자리에 있는 여자들 전부 아름답다.
물론 반쪽짜리 얼굴만 보이는 나나 레이나를 제외하고 최시우는 그 라텍스 같은 제질의 마기로 얼굴이 덮여있다.
아마 대통령 앞이라 조금 무섭게 보이려는 걸까.
한수지는 스마일 가면을 쓰고 있으니, 얼굴을 보고 꼴릴 수는 없겠지만 다들 한 몸매 하니 그것만으로도 이 자식은 기뻐해야 한다.
물론 그전에 일단 머리를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기다려. 무슨 짓을. 왜 머리털이 아프다는 거냐!”
“가만히 계십시오. 맞기 싫으면. 아니, 맞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끄아아아악!”
일단 머리털을 싹 벗겨버렸다.
장인정신으로 싹 뽑아버렸다.
아마 한동안은 빡빡이 상태일 것이다.
나와 히로인들 앞에는 머리털을 잃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하정석이 있었다.
그래. 누구든지 머리를 강제로 벗겨버리면 화가 치밀 것이다. 그런데 어쩐다? 솔직히 재밌었다.
“내 머리카락은 찰랑찰랑. 그런데 눈앞의 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라네. 아아 나무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새로 심어야 하나. 심어야 하나~”
나는 붉은 대머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웃었다.
“네년.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자, 그러면 업계 포상을 드리겠습니다. 시아야?”
“응.”
빌런 이름은 시아로 고정된 최시우가 고혹적으로 웃으면서 사복검을 움직여 반짝반짝 하정석을 돌돌 묶었다.
“자, 그럼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그 나이에 미녀들에게 두들겨 맞는 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가버리십시오.”
하정석은 꼴에 마력으로 저항하려 했으나 실패. 우리는 마음껏 그를 밟아주었다.
“크하악!”
이것으로 당장에 청와대 기습사건은 끝을 맺었다. 이번 일로 대통령 하정석은 대머리에 온갖 굴욕을 당했으며, 청와대 소속 헌터를 전부 잃어 길드에 호위를 의뢰하게 될 정도로 처지가 궁색해졌다.
그래도 일단은 트위티에 하정석의 모습을 직접 걸어주기로 했다.
이건 딱 박제를 시켜줘야지 않겠어?
나는 슬쩍 내 채널 채팅창을 확인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머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밟힌 것은 업계 포상 아님?ㅋㅋㅋㅋ
ㄹㅇ 저 나이에 어떤 여자가 저리 밟아줌? ㅋㅋㅋ
아주 반응이 마음에 든다. 나중에 하정석 머리털 다 자라면 또 뽑으러 와야겠다.
“백화 팬클럽 회장 님 천오백만원 감사합니다. 그래요. 미친개는 매가 약이죠. 그렇죠?”
“아이고~F급 빌런님 천만원 감사합니다. 대통령도 탈모라서 좋다고요? 힘내세요!”
너 이 새끼. 탈모라 대통령도 탈모 만들고 싶었구나.
그래도 헌터들이라 씀씀이가 확실히 다르다. 나중에 튜튜브에 ‘대통령 머리털 쉽게 뽑는 방법.’영상으로 올려야겠다.
* * *
연수동
수도를 벗어난 길드 연합과 국군 대 괴수 방위 1사단은 송도로 가기 위해 연수동으로 막 진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길드 연합에 앞서 송도로 향하던 국군이 진군을 멈춘 것이다.
가만히 국군의 동향을 주시하던 최철식은 미간을 좁혔다.
무슨 생각인가. 하정석이 헌터들을 앞세우려는 건가?
이봐 최철식이 우리는 이만 가보겠네.
바보 같은 양반이 머리털이 뜯겨버렸으니 말이야.
흥부와 놀부도 청와대로 돌아간 것을 보면 수상하다.
어쩔 수 없이 최철식은 사단장을 불렀다.
“뭐야, 어디로 가는 건가? 왜 갑자기 부지런해? 하정석이 회군 명령이라도 내렸어?”
“예! 지금 당장 국군 방위사단은 회군하고 길드 연합은 그대로 송도를 공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왜? 뭔가 이상하다.
“무슨 소리지? 하정석이 군을 왜 물려?”
“저, 그게 지금 난리입니다. 백화를 주축으로 한 백화교가 청와대로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백화교가?”
국군이 서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부회장 정나윤은 노트북을 두드려 백화TV를 검색해 최철식에게 넘겼다.
“저기 협회장님. 이걸 보시지요.”
백화 팬클럽 회장 님 천오백만원 감사합니다. 그래요. 미친개는 매가 약이죠. 그렇죠?
아이고~F급 빌런님 천만원 감사합니다. 대통령도 탈모라서 좋다고요? 힘내세요!
“대체 이게 무슨”
“백화TV 라이브입니다.”
심지어 후원을. 아니, 후원을 받아서 대통령이 저 꼴인가?
그래. 그건 나도 보면 알 수는 있다.
아니,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나.
“백화교에 설마 포탈능력자도 있던 건가? 공간이동? 서울은 방비가 철저하지 않은가? 대 괴수 방공망은 지금 미국 저리 가라 수준일 텐데?”
천산 그룹을 비롯한 여러 기술자의 도움으로 지금 서울은 완벽한 상태였다. 그 누구도 침공하기 어려운 도시.
솔직히 하정석에게는 방심하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하정석 본인도 은근히 백화가 서울까지는 노리지 못할 거라 여겼다.
“예. 청와대까지 이동한 것을 보면. 일단은 서울 내의 도움은 아닐 테고 뭔가 이동능력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청와대에 머무는 것 같고. 잽싸게 송도까지 진격하면 어떨까.
“백화가 없다면 이거 좀 노려볼 만하지 않나?”
“예.”
아닌 말로 공간이동 능력자는 만능이 아니다.
순간이동은 분명 좋은 능력이지만, 한 번 사용하면 그 리스크가 크다. 그렇게 한 번에 여러 번 쓸 수 있지 않다.
아마 백화의 수하인 공간이동 능력자는 괴인일 수도 있다지만 많은 마력을 소비하는 만큼 마력석이 차고 넘쳐야 한다.
하정석이 보기에는 백화는 여론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였다.
‘굳이 지금 백화에 유리한 여론을 뒤집을 필요가 없으니 무력으로 서울을 탈출하기보다는 결국 순간이동을 써먹는 능력자의 마력 회복을 기다리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아마 한동안은 청와대에 남아 저렇게 하정석 두들겨 패는 방송만 하겠지. 마력이 채워질 때까지 말이다.
“그래도 설마 백화가 하정석을 제압하다니 말이야.”
정말 예상 밖이다.
A 랭크의 헌터들을 단순에 고깃덩이로 만들다니. 백화 본인이면 모를까 그 밑의 수하들까지 강했다.
그러게 최철식은 하정석에게 몇 번이나 말했다.
제발 벌집은 괜히 건드리지 말라고.
“솔직히 각하는 딱히 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고작 신체 강화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 하정석 본인은 강한 편이 아니다.
다만 정신적으로 선동하고 세뇌하는 것에 재주가 있는 편이고, 헌터를 육성하는 것을 잘한다.
신체 강화계지만, 그것만으로 A급으로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작 본인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B급도 되지 못하는 실력이다.
“그렇지. 그런데 세뇌가 문제가 아닌가. 하정석 밑에 세뇌당한 헌터들은 무지막지하지. 빌런들도 섞여 있어.”
솔직히 길드 연합보다 못할 뿐. 하정석의 헌터군단도 강한 편이다.
“아 그 A급 이상 헌터들 말씀입니까?”
“심지어 평양사태 때도 꽤 활약했던 놈들인데. 시원한데 조금은 아쉬워.”
최철식은 입맛을 다셨다.
“예?”
“확실히 불법적인 전력이지만 말이다. 헌터 협회의 헌터들이 꽤 큰 피해를 본 이상, 그놈들이 큰 전력이었거든.”
평양에서도 유진석을 도와 활약했던 놈들이 너무도 쉽게 백화의 손에 죽어나갔다.
아마 백화는 이미 청와대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단순 전력만으로 비교할 때 길드 연합을 제외한 헌터협회는 상대도 안 될 것이다.
“그렇기는 하죠. 그럼 일단 유진석과 김지혜에게도 마도기어로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유은하에게도 요청할까요?”
“유은하는 왜?”
“일단은 협회 마스코트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니, 유진석이 말릴 거야. 그리고 유진석은 서울로 보내. 가만히 보니 백화가 직접 이끌고 간 주력병력이 청와대를 친 것 같으니까. 지금 길드 연합으로 충분해.”
이건 방심이 아니다. 가만히 보니 분명 주력들은 다 빠진 것 같다. 그 마당에 아직 백화의 동료급이 몇 명 남아있어도. 이쪽은 얼음 여제를 위시한 현 협회장 태양의 전사인 자신도 있다 이 말이다.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송도에 대한 무력공격은 빌런들에 한해서다.
생존자들은 내버려두고 빌런을 토벌하여 백화교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이번 원정은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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