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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110화 (110/331)

〈 110화 〉 108. 얼음 여제(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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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은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와 내 손에 들린 도끼를 번갈아보았다.

“설마 그걸로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뭘 모르나 본데, 이 도끼도 내 비늘로 만든 것이다.

악룡 아지다하카의 비늘은 천하무적 방어력을 자랑한다.

중국에서 괜히 수녀 차림으로 대놓고 어그로 끌고 다닌 것이 아니라는 말씀.

얼음 여제는 이제부터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뭐 분명히 말해서 얼음 여제. 일본에서조차도 당해낼 원소 술사가 없는 인물다워요.”

명성은 한국만 못하지만 그래도 아시아에서 한국 다음으로 헌터강국인 일본.

다양한 속성을 다루는 헌터들이 존재하는데, 단연 얼음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얼음 술사들은 차지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렇지? 그러니 항복을.”

“은 개뿔.”

“뭐? 내 힘을 보고도 싸우려고?”

당연하지. 애초에 져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저 여자 은근히 오만하다. 자기가 가진 힘에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녀는 분명히 말해 강하다. 이미 전작은 완결 낸 시점에서 그녀는 한국을 떠받치는 헌터 중 한 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녀가 유일하게 자만하지 않는 상대는 유진석, 그리고 얼음을 아예 삭제할 수 있는 서지연뿐이다.

“그러니 도끼를 꺼냈죠. 무엇보다도 저는 제가 질 거라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게 무슨.”

“한 번 점찍은 여자는 내가 강간할 때까지 놓아줄 생각이 없거든요.”

“건방지구나. [얼음감옥]”

차지은이 손을 나로 향한 채 꽉 쥐었다

순식간에 얼음 필드 위에 얼음 창살들이 떠오르더니 내 주변으로 모여 하나의 감옥을 형성하였다.

심지어 건물 파편으로 얼음판을 만들어 감옥의 천장으로 삼았다.

“확실히 내 히로인들이라면 깨기 어렵겠지만.”

나는 다르지.

쉬이익­까앙!

“그러니까 소용이 없다니. 어?”

도끼로 한 대 치니 얼음 창살에 금이 갔다.

쉬이익­파킹!

두 번째에 얼음 창살이 깨져버렸다.

“거봐요 놀랍죠? 얼음이 왜 깨질까?”

깨지지 않는 얼음으로 유명한 차지은의 얼음이 깨져버린 것이다.

유진석조차도 쉽게 깰 수 없던 얼음을 단숨에 깨버린 탓인지 차지은의 눈살이 보란 듯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어쨌든 헌터로서의 경험은 적지가 않다.

잽싸게 감정을 추스른 차지은이 다시 얼음 공격을 내게 쏘았다.

“[해일]”

콰르르르르륵

차지은의 얼음 능력에 의해 얼음 바닥이 되어버린 일대가 마치 바다처럼 파도가 일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거대한 규모의 해일을 만들어냈다.

주변의 온갖 건물들을 죄다 얼음 해일로 갈아 만들었다.

그리고 저 거대한 해일은. 나 같은 여자는 정말 사막의 모래알처럼 보일 정도로 웅장한 해일은 기어이 나를 덮쳤다.

“이야, 이건 고마운데.”

폐허더미를 다 치워준 덕에 건물들을 새로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저것부터 막아내야겠지.

나는 마기를 응집시키고 그대로 터트렸다.

푸슈우우우­콰아앙!

아지다하카의 마기 폭발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를 덮치던 해일은 마기 폭발에 휩쓸려 내 주변을 제외하고 싹 다 덮어버렸다.

어쨌든 나도 갇히기야 갇혔지.

마기 폭발에 내가 움직일 공간만 남아있을 뿐이다.

힘숨찐 짓도 귀찮구나. 제법. 그렇다고 백염을 쓰자니 유은하라는 사실이 들킬 테고. 아니, 뭐 여기서 얼음을 조금 녹이는 정도야 할 수는 있지만.

“어떻게 승리하는 게 좋을까?”

힘숨찐 짓을 계속하려면 여기서 그녀를 겨우 이기는 척을 해야 한다.

속성 상성은 집어치우고도 나한테 불리하다.

내 능력인 혼돈의 씨는 먹히지 않고, 도끼로 얼음을 부수는 것은 거의 노가다 급이니까.

체력적으로도 내가 불리해 보인다.

힘숨찐 상태로 얼음 여제를 이긴다. 그렇다면 결국 마력밖에 없겠지.

즉, 얼음 여제를 마력 고갈상태로 빠트리고 나도 적당히 체력이 빠진 상황으로 유도해서 얼음 여제가 진 상태라 해도 “잘 싸웠다.” 소리는 듣게 해줘야겠지.

무승부까지 봐주고 싶은데, 이왕 기회가 생겼다면 따먹어야 하잖아?

아마 이 얼음 해일을 사용했으니 마력을 꽤 소비했을 것이다.

앞으로 한두 번? 애초에 자기 얼음이 깨지는 걸 보고 당황한 차지은이 막바지에 써야 할 최후의 스킬을 지금 써버렸다.

[“이런 멍청한. 그러다 죽었으면 어쩌려고!”]

“아.”

밖에서는 벌써 내가 죽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건 참을 수 없지.

광부는 내 체질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도끼숙련도 1인 애기용용이는 지금부터 열심히 얼음을 깨겠습니다.

까앙! 깡! 까앙!

역시 조금 단단하기는 해도 금방 엿가락 부러지듯 부서지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얼음이 아지다하카의 비늘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부수다가는 한세월이다.

한 번에 도끼에 많은 마력을 담아 때리면 어떻게 될까?

나는 양손으로 도끼를 높게 들어 올렸다.

콰장창!

얼음 해일이 완전히 박살 났다.

한 곳을 부수니 점차 금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이윽고 돌멩이 하나에 깨지는 유리창처럼 해일은 무너져버렸다.

[“잠깐 뭔가 이상하지 않나?”]

“말도 안 돼. 설마 그 공격에도 살아남다니.”

놀란 최철식과 차지은의 목소리가 내 귀에 아른거렸다.

슬슬 지친 척, 얼음 속에서 빠져나와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주인공은 언제나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는 법이죠. 뭐 나름 힘들었으니까. 저도 진심으로 갈까요?”

큭큭, 오른손의 흑염룡이…….

나는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도끼를 고쳐잡았다.

차지은도 이제 질 때가 되었지.

전작에서 유진석에게 빠졌을 뿐. 자기 힘이 강하다고 자만하는 것은 이참에 고쳐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얼음 여제에게 달려들었다.

쉬이익­까앙!

오, 이걸 막아?

“크윽.”

“그 사이에 잘도 얼음을 만들었네요.”

하지만 그것뿐이다. 아까와는 달리 방어력이 형편없다.

마력을 꽤 쓴 모양이다. 조금만 힘을 주었더니, 마찬가지로 부서졌다.

차지은은 뒤로 물러나면서 얼음벽을 계속 세웠다. 그리고 나는 한수지가 도끼 살인마 짓을 할 때처럼 계속 도끼로 밀어붙였다.

딱 반응만 빠를 뿐이지. 얼음은 약해졌다.

이미 해일에서 정말로 마력의 대부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자기 얼음을 부수는 나를 이레귤러처럼 여기고 한 번에 끝내기 위해 해일을 썼을 것이다.

본능적인 위협말이지.

그거 만만치 않았다. 방벽을 세울 때보다 규모가 작기는 했는데, 나 하나를 덮치겠다고 압축한 해일이라면야. 끔찍하지 않나.

생각해보니 정말 힘을 다해 나를 죽이려고 했네?

살짝 빡돌았다.

“자아, 뭐하십니까? 막아보시죠? 네? 막아보라니까?”

콰지직­빠지지직­콰앙!

얼음벽, 하나, 둘, 셋, 넷.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했다.

차지은은 요리조리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뭐해요? 뭐합니까? 이게 황제 길드의 마스터 얼음 여제 차지은입니까? 고작 이 정도 수준이에요? 우와아 약해!”

“헛소리하지 마! [송곳]”

거대한 고드름들이 나타나 내게 쏟아졌다.

조금 전과 달리 제법 강도가 있는 것이다.

아마 저기에 마력을 꽤 투자한 것 같다.

이번에는 나에게 살기를 흩뿌리는 듯 보였다. 저 얼음송곳들에 하나하나가 악의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몸을 향해 쏟아졌다.

쉬쉬쉬쉬이이이익!

이쯤에서 신이 내린 연기로 저 공격을 겨우 막는 척해야지.

“젠. 장. 어. 떻. 게. 저. 런. 무. 서·운. 기·술. 이!”

나는 얼음송곳들이 정확히 손도끼의 타격 범위 안에 들어올 때. 도끼에 마기를 담아 있는 힘껏 얼음송곳들을 그었다.

콰지지지직!

이것이 차지은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마력이 떨어지면 얼음의 강도가 결국 떨어지고, 마력으로 응집된 얼음이기 때문에 일단 얼음의 일부만 박살 나도 한 번에 다 부서진다.

“말도 안 돼. 내 공격이 전부. 이렇게도 허망하게.”

“후우. 후우. 저도 꽤 힘들었습니다. 얼음 여제님. 자, 그럼 슬슬 끝을 내볼까요?”

나는 비틀거리면서 차지은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도끼를 들어 차지은의 머리를 노렸다.

차지은의 두 눈이 공포에 물들었다. 죽음을 직감한 모양이지. 어느새 그녀는 힘을 잃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겁먹으라고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톡­

정작 내가 한 짓은 차지은의 이마에 도끼 손잡이로 살짝 친 정도였다.

아주 살포시. 얼음같이 차가운 피부라도 여자의 피부니 상처받지 않도록. 도끼를 돌려 손잡이로만 살짝 때렸다.

내 행동이 뜻밖이었는지 차지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지금 패자를 동정하는 거냐?”

“에이. 무슨 소리예요? 내기 기억 안 나요?”

설마 그 나이에 치매는 아닐 테고, 내가 한 말이 거짓이라고 착각한 건가?

“그거 진심이었나?”

“예.”

그럼 진심이지 거짓이겠어? 나는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고 마는 용용이다.

내 대답에 그녀는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하니 빌런에게 동정받아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나는 오로지 비비기 위해서 그녀와 열심히 싸운 것뿐이다.

안 비벼준다고 하면 뒤로 빠졌지. 진짜루.

“정말 그 내기 아니었으면 저는 안 해줬을 거예요? 튀는 거야 어렵지 않고. 길드 연합도 더 피해를 보기 전에 돌아갔을 테고.”

“완전히 걸려들었네. 이거 너무 굴욕적인데.”

굴욕적이지 않아도 된다. 무려 악룡으로부터 선택받은 거야. 무려 이 용용이가 선택했다 이 말이다.

“전혀 굴욕적이지 않아요. 오히려 기뻐하라고요. 당신은 너무 매력적인 암컷이라 내 시선을 끌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승리한 격이니까요.”

“빌런한테 그런 말을 들어도 안 기뻐.”

“약속은 약속이죠? 언제 만날까요? 저는 지금 당장도 가능한데. 설마하니 약속을 하시고 안 지키시는 그런 스타일?”

승자는 패자를 유린한 권리가 있다.

승자는 패자의 암캐나 암캐를 마음껏 능욕할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지금 승자의 권리로 그녀를 내 밑에 두고 마음껏 굴리고 싶다.

꿀꺽

“누가 안 지킨다고 했어? 다만 이 자리는 좀 아니란 뜻이야.”

내 음탕한 눈길을 눈치챈 차지은이 자기 가슴을 가리면서 몸을 뒤로 뺐다.

이거 충격적인데. 유진석이 덮치면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못 이기는 척 다리를 벌려줄 거면서 나한테는 너무 튕기는데?

좋아, 원래 이런 건 밀고 당기기다. 억지로 덤벼도 좋지 못하겠지. 드론으로 다 찍고 있는데 지금은 그냥 적당히 꼬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 그쯤 하지.”

마력 고갈로 지쳐있는 차지은의 뒤로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빡빡이다. 반짝거리는 빡빡이. 유은하로는 만나봤으나, 백화로는 초면이었다.

그 이름하여 최철식이 되시겠다.

“빡빡이시네요.”

“백화, 네 실력은 충분히 알았다. 우리는 이만 물리지.”

음, 그거 현명한 선택이다.

나도 여기서 차지은이 패배했다고 하여 길드 연합이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 공격하면 어쩌나 했다.

그때는 정말 죄악을 상대할 전력이 남지 않게 될 테고, 내 그리고 있던 그림이 박살이 나는 격이니까.

“의외네요. 대통령 하정석은 태양의 전사의 친구가 아닌가요?”

“자업자득이야. 애초에 난 이번 원정 반대했으니까.”

“그래요?”

“다만 네가 하정석의 헌터들을 모두 죽인 것은 조금. 뭐 빌런에게 이런 말 할 건 아니지만 이 나라를 위해서는 좋지 못할 것 같군.”

이건 이런 아직 뭘 모르시네.

“어차피 세뇌로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 작자 밑에서 기계처럼 평생 살 바에는 죽는 게 낫죠. 게다가 이렇게 해야 협회가 하정석의 목에 개목걸이를 달겠죠?”

써먹지도 못하는 아군은 있어도 소용이 없다.

최철식은 하정석이 숙이지 않는 한, 그 청와대의 헌터들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오히려 하정석 본인의 독재를 위해 계속 키워질 헌터들이니, 오히려 더 크기 전에 지금 잡는 것이 좋았다.

“허, 거기까지 보고 있었던 건가. 참 이곳에서 서울에 대해 잘 알고 있군.”

“자주 서울도 다니니까요.”

“하나만 묻겠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빡빡이가 나름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딱히 살기는 없지만, 최소한 내 의중을 보려고 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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