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114. 놀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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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작가 유은하의 공간이었다.
나는 작가 유은하와 마주 앉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작가 유은하는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아, 결국 저질러주셨네요?”
“뭐가?”
“깨어나 보니 공책에 당신이 서지연을 먹었다고 적혀 있어요.”
그녀는 책상에 있는 공책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그래?”
저 공책에는 내 행적이 계속 기록되는구나.
“괴인으로는 언제 만들 거에요?”
“글쎄? 서지연이 원할 때 만들어주려고. 급하지 않잖아.”
어차피 서지연은 이미 전작 최강캐 중 한 명으로 우뚝 솟은 상태.
한 마디로 디지털 괴물로 치면 궁극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지연이의 괴인화는 급하지 않다.
물론 괴인화를 하면 능력을 바로바로 쓸 수 있으니 손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져 좋다만.
“하기야, 지금도 어떻게 싸우냐에 따라 유진석보다 강할지도 몰라요.”
예를 들면 위치라던가 말이다.
일단 유진석은 신검이 사라지고 힘이 좀 빠진 상태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 대 일본처럼 누가 이기는지 논하려고 부른 것은 아닐 테고.
“오늘은 왜 부른 거야?”
“슬슬 중국이 움직일지 몰라요. 그러니까. 백화교가 좀 더 노력해야 해요. 누구누구가 하정석 밑의 헌터들을 다 죽인 덕분에요.”
아니, 그건 진짜 잡아야 했다. 물론 아깝기야 한데, 그러지 않았으면 하정석은 나를 우습게 여기고 계속 보냈을 것이다.
“알았어. 내가 책임질게.”
“그럼 이제 돌아가 보세요. 저는 자야 하니까.”
작가 유은하가 귀찮다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자기가 불러놓고 돌려보내는 거 보면 인성 참.
“항상 내가 갈 때쯤 잠을 자는 거 같은데. 그렇게 자는 게 좋아?”
내 말에 그녀는 관자놀이를 꾹 꾹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좋은 꿈을 꾸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꿈이란 거. 나는 항상 꾸는 것 같은데.
가라면 가야지. 별수 있나.
“그럼 이만 가볼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가 유은하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다음에는 그래도 조금 더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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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 보니, 나는 서지연의 무릎 위에서 자고 있었던 모양인지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서지연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위치가 바뀐 걸까?
아마 지연이가 먼저 일어나 자세를 바꾼 것 같다.
아, 이대로 더 자고 싶다.
이거 레이첼에게 들키면 100% 한 달 뱀탕형이다.
“내가 이러니까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
사랑스럽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엮이고 보니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
그녀는 가만히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당연하지. 일단 내가 노린 여자 치고 나를 싫어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아, 급꼴린다. 한 번 더 할까? 마음껏 비비고 섹스하고.
나는 일어나서 대뜸 그녀를 껴안았다.
“한 번 더 할까?”
“안 돼. 오늘은 진짜 최철식한테 가봐야 해. 안 그러면 의심할걸.”
“어차피 이제 백화교 간부인데 안 가면 어때서?”
이참에 때려치우는 것도 좋지. 아내/남편이 빌런이면 당연히 협회를 그만 둬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더 가야지. 그래야 스파이짓을 하지.”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사악하게 웃었다.
또 아래가 불끈거린다. 아, 참아야 하는데. 못 참겠어.
“진짜 미치겠네.”
“왜?”
“지금 당장 비비고 싶다. 정말로. 왜 그리 내가 좋아할 말만 골고루 하는 걸까.”
“당연하지 네가 좋아할 말만 하고 싶은걸.”
이제 그녀가 사랑을 애걸하는 대상은 유진석이 아니라 내가 된 것이다.
아,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 같으니.
“알겠어. 끝나면 연락해.”
“응.”
지연이의 집에서 나와 거리를 걸었다.
돌아갈까? 아마 외박이라 진짜 이번에는 뱀탕 억지로 먹여질 거다.
실제로 마도기어에는 레이첼이 집착이 담긴 문자를 보내왔으니까.
지이이이잉
이거 봐라. 레이첼이 또 내게 문자를 보낸 모양이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려 마도기어를 꺼내봤다.
메세지 하나가 도착했는데 다행히 레이첼은 아니었다.
[오늘 오후 4시에 이놀부가 테라포밍 마력 무인우주선을 띄울 거에요. 잘 부탁하겠습니다.]
“음, 오늘이 그날인가.”
미리 짜둔 계획이 다 있다.
이놀부는 조금이라도 푼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있었다.
우주선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용돈이라도 벌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그건 바로 치킨집이었다.
무려 이놀부의 가족이 직접 치킨을 튀긴다. 그 새끼는 제 친척들까지 싹 부려 먹어서 지 능력을 키우는 미친놈이니까.
그래도 그만큼 또 돈을 나눠주니까. 블랙기업에서 일하는 취급을 받는 친척들은 호구처럼 일한다.
흥부가 가족이나 친척들이 가난해도 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반대라는 뜻이다.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니 놀부가족만의 치킨 튀기는 비법을 터득했으니 이것으로 대박을 터트리겠다고 했었지.
이제 그 치킨집으로 꼬투리를 잡을 생각이다.
* * *
치킨집에 도착하자마자, 일단은 잠깐 내부사정을 알아보기로 했다.
귀에 마력을 집중해서 청각을 올렸다. 그러자 가게 안 주방에서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동서! 그렇게 튀기는 거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죄.죄송해요. 형님.”
“가서 치킨무나 만들어!”
“형님 저 이번달 월급이.”
“치킨 그 따위로 튀기고 월급이 나오기를 바라는 거야? 동서가 망친 치킨만 요 한 달 동안 세 마리야!”
“월급은 150인데요. 형님. 그 중 치킨 세 마리를 가격을 빼도.”
“시끄러! 가서 치킨무나 만들라고!”
동서? 형님? 그렇다면 이놀부 동생 이흥부의 아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있던 건가?
어휴, 인성봐라. 쓰레기가 따로 없네.
역시 조금은 양심에 찔릴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 치킨집 하나는 확실히 조져야겠다.
나는 인기척을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이거 귀여운 아가씨로군. 뭐 드릴까?”
나 귀여운 건 아는데, 아줌마는 엄청나게 못 생겼네요.
놀부 마누라답게 아주 사악하게 생겼다.
그리고 저 뒤쪽에 보이는 흥부 마누라는……가서 꼬시고 싶다.
애도 낳은 걸로 아는데, 어쩜 저리 청순하게 생겼지.
아,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은 이 가게를 좆되게 만들어야 한다.
“음, 놀부치킨 하나 주세요.”
“한 마리도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한 마리? 한 마리 정도야 껌이지. 김재수 부모도 한입에 꿀꺽했는데.
“어휴. 이래 보여도 저 나름 먹방 티튜버에요. 맡겨주세요.”
“아, 그랬어? 그럼 대접 잘해줘야지. 기다려 봐. 금방 튀겨줄게.”
그래. 얼른 튀겨와라. 그래야 좆되게 만들지.
"여기 치킨 한마리에 콜라는 섭스야~"
놀부마누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튀긴 후라이드 치킨을 내왔다.
치킨무에 콜라까지 챙겨준 것을 보면 내 덕에 더 뜰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치킨 한조각을 들어 한입 물었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튀김옷에 질 좋은 닭고기의 맛!
……김재수 부모가 더 맛있던 것 같다.
정말 맛있다면 나름대로 가게는 살려주려고 했는데. 이거 안 되겠네.
“음, 과연 인터뷰에서 나온 대로 정말 맛있네요.”
아니, 인간의 입맛으로 볼 때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레이첼의 음식이 워낙 고급 져야지.
“그렇지? 많이 먹어.”
나는 치킨을 잡는척하면서 몰래 손바닥에 아공간을 열어 치킨 다리와 날개를 집어넣었다.
한마디로 다리와 날개 전부 사라지게 한 것이다.
이걸로 이제 이 치킨집 망하게 해야지.
“어, 그런데. 여기 왜 닭다리 하나에 날개는 둘 다 없어요?”
“그.그게 무슨 소리야? 없다니?”
“보세요. 없잖아요. 제가 먹은 것도 가슴살이랑 목 부분인데. 저는 먹지도 않았어요.”
“어? 에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진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네가 놀부 부인인 걸 어찌하겠느냐. 어떻게든 이 부조리한 현실을 깡으로 버텨라.
“아니, 이걸 보고도 자꾸 아니라고 할 거에요? 보세요 없잖아! 뭐에요? 아주 그냥 손님을 우롱하는 거야 뭐야?”
“아니, 아가씨야말로 그러면 안 되지. 대체 어디 없다는 거야? 어디 떨어트리고 일부러.”
일부러라니. 물론 일부러는 맞지. 근데 그렇게 떨어트리지 않아.
“난 의자에서 일어난 적도 없고, CCTV라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손으로는 치킨만 들고 먹었다 이 말이에요.”
내 말에 놀부 마누라는 마도기어를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건 엄연한 가게의 실수. 뭐 따지고 보면 닭 한 마리 더 받는 것으로 보상을 끝내면 되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게다가 흥부 마누라가 당한 것까지 전부 녹음하고 있었다.
“어? 뭐.뭐야. 진짜네?”
“진짜 이러고도 인정 안 하다니. 어휴. 소문을 듣고 내가 빌런이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왔더니만.”
“아가씨. 그게 무슨. 너 누구야?”
그제야 사태파악이 된 건지 놀부부인이 몸을 뒤로 물렸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대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고 마기로 수녀복장을 만들었다.
“나는 백화다! 당신이 오늘 저지른 치킨집 주인으로서 큰 실수를 했어! 내 오늘 일은 놀부에게 직접 가 따질 거야!”
“배.백화? 그 빌런? 자 잠깐!”
잠깐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잠깐?
“흥!‘
나는 그 자리에서 나와 케이트의 도움으로 개성으로 이동했다.
애초에 치킨집은 명분쌓기라는 거지.
빌런주제에 이러는 것도 우습지만.
이 개성에는 우주선 발사대가 있다.
놀부 우주산업연구소. 그곳에 마력우주선 발사대라는 것을 설치했다. 라고 이유진이 보낸 파일에 전부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우주선 발사 당일. 놀부가 수 많은 사람과 기자들을 앞에 두고 연설하고 있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드디어 화성의 테라포밍을 하기 위한 마력 무인우주선 갑놀부 1호가 마침내 발사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이제 곧 발사 카운트가 시작될 겁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토록 기대하시던 한국의 우주마도기술을 확실하게 만나고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어, 저 대사 들으니 나 뭔가 하고 싶은 대사가 떠올랐다.
지금이 기회라 여긴 나는 당당하게 이 성스럽지 못한 장소에 치킨 뼈다귀들이 담긴 상자를 들고 소리쳤다.
“개소리 집어치워! 무슨 기술을 만나게 된다는 거야! 그리고 우주선? 치킨을 빼먹듯이 부품이 빠진 우주선 말인가?”
“저. 저년은?”
내 목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는 한 번 더 놀랐다.
송도에 있거나 경기도를 돌아다니고 있을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놀랍겠지.
그런데 문득 떠오른 게 있는데 말이다.
이유진이 아니더라도 이러기는 해야 할 것 같더라고.
아니, 그렇잖아. 상관인 하정석이 머리털 뜯기고 국제 망신 당했는데 수하인 놀부가 멀쩡해서는 안 되잖아.
“거짓으로 헌터와 시민을 속인 놀부와 그 아내를 오늘 단죄하러 왔다. 나 백화다!”
“뭐? 백화? 빌런이다! 뭣들 하냐! 당장 저년을 우주선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놀부가 부리는 헌터들이 멍청하게도 내 앞을 막았다. 꼴에 눈치는 있어서 잽싸게 우주선에 접근 못하게 하려는 걸 보면 웃길 따름이다.
나는 어리석은 종자들에게 손가락을 들었다.
백화 TV는 이제 유명하다. 당연히 내 손가락이 어떤 의미인지 헌터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야 이 청와대의 개들아! 이것은 내가 지난날 청와대를 털어먹은 고유능력이다! 죽기 싫으면 까불지 마!”
내가 손가락을 튕길 듯 말 듯 꼼지락거리자 놀부의 헌터들이 길을 열었다.
그래. 결국, 누구든지 간에 어차피 죽기는 무서운 법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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