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123.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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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를 놀리던 레이첼은 질렸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이상한 폭탄을 제작하는 우리 용용씨. 그럼 이제 또 원정 안 나가는 거야?”
“으으음. 글쎄?”
사실 경상북도까지는 내려가고 싶지만, 죄악 때문에 무리다.
충청도도 꽤 힘을 준 것이다. 만일에 충청도를 치다가 죄악이 등장하면 중국이 인해전술 벌이면서 밀고 내려왔을 것이다.
애초에 중국은 딱 30만의 헌터로 구성되어 쳐들어왔었다.
여기서 폭식의 죄악과의 싸움에서 최시우가 이기고 전쟁은 마무리된다.
아마 이번에는 내가 되겠지만.
최시우는 히로인으로서 절대적으로 나를 옆에서 지키는 역할만 할 것이다.
“그 죄악이라는 거 쳐들어오면 위험할 텐데, 엘프왕국의 힘을 빌리는 건 어때?”
“엘프왕국?”
“솔직히 이번에 죄악인지 뭔지 이길 자신 있어?”
변수만 없다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데.
이 무렵의 최시우는 폭식을 제압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인과율로 조금 강해질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전력이 추가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굳이 변수가 있다면 다른 죄악도 함께 나타나는 정도?
사실 그마저도 지금의 최시우가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
“간만에 마망을 만나러 가야 하나.”
안 만난 지 꽤 되었지만. 사실 서고에 있을 때도 몇 번 만난 적 있다.
100년이 거의 흐를 무렵. 한 번 마망의 방과 연결된 적이 있었으니까.
“나라도 가볼까?”
“일단 좀 생각해 보자.”
의외로 상대가 약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유난히도 불안감이 엄습한다.
며칠 안에 뭔가 터질 같은 불안감. 분명 폭식의 죄악을 비롯한 중국은 6월 25일에 침공을 개시한다.
딱 지금 무렵이다.
결국 아카데미가 중요하겠지. 전쟁이 일어나면 협회를 통해 한성으로 전달될 테니까.
당분간은 빠지지 말아야겠다.
* * *
아카데미는 오늘따라 유난히 바쁘게 돌아갔다.
특히나 교관들이 바쁜 것이 무슨 일이 터진 것 같다.
지금이 그때인가?
나와 히로인들 탓에 진작에 반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래서 우리는 길드가입이니 뭐니 아카데미에서 문자가 여러 번 왔었다.
그때마다 씹었지만.
그런데 오늘은 시노하라 코토네도 보이지 않았다.
“여. 다들 오랜만이다?”
간만에 만나는 불방망이는 유진석과 그렇게 꽁냥거려 기뻐 보이나 싶었는데, 얼굴이 유독 가라앉았다.
“오, 불방망이 오랜만입니다. 우리 오빠랑 어떻게 연애는 시작하셨습니까?”
“얘도 참.”
유진석과는 잘 돼 가나? 손을 저으면서 히죽거리는 것이 역한 불방망이다.
얼굴을 보니 유진석과의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아니면 첫키스를 한 백화에게 갈아탈 생각이라던가?”
그렇게 하면 나는 좋은데.
성격은 더럽지만, 몸매는 좋으니 말이다.
저 성격을 고쳐주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네가 아주 정신을 놨구나.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야?”
“왜요?”
먼저 실실 웃은 주제에 뭔 일 있나?
“중국에 황룡이 나타났다.”
어? 진짜?
“그게 사실입니까?”
오죽 놀랐으면 회귀를 한 번 했던 최시우가 놀라 물었다.
“그래. 그래서 지금 난리도 아니야.”
황룡은 죽어야 하지 않나?
인과율로 죄악 대신에 황룡이 부활했다던가?
조금 이상한데 그건.
최시우가 불방망이에 물어본 사이, 나는 아카식 레코드에 질문을 했다.
“아카식 레코드. 황룡이 죄악 대신이야?”
[폭식의 죄악을 발견한 북경 군벌이 황룡의 시체를 찾아 죄악을 이용하여 부활시켰습니다.]
시발. 죄악에 황룡까지 덤이네.
그렇다는 말은 이전 황룡과 달리 북경군벌이 죄악으로 황룡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황룡의 시체를 어떻게 찾아?”
[황룡의 시체는 본래 황하에 떠내려갔다가 원작 캐릭터 유은하의 죽음으로 인해 터진 게이트 난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작과 달라진 지금은 중국 북경군벌이 부활시켰습니다.]
결국 내가 살아있는 탓인 건가.
아니, 그래도 그랬으면 침식지대의 인간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게이트 난이 없어서 황룡이 부활했다고 하나 처단하면 끝이 아닌가.
[문제는 이 황룡이 서울을 직접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황룡이 직접 서울을 공격한다고?
그럼 좆 될 텐데.
“우리는 막을 수 있어?”
[다양한 미래가 있어 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황룡이랑 죄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나?”
[둘 중 하나만 상대하실 수 있습니다. 마스터는 인간의 몸으로 환생하셨습니다. 괴인이라 할지라도 예전의 힘을 그대로 사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만일 둘을 동시에 상대하실 경우 마스터는 위험할 것입니다. 황룡은 이전보다 강합니다.]
나 조차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최시우가 폭식을 상대한다면?”
[생각보다 폭식이 강합니다. 잘해야 무승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차 북경 군벌의 사령관 자리를 이을 핑타오가 숙주입니다.]
핑타오가 숙주라고?
핑타오는 사묘아리라는 성좌도 가진 년이다.
좆 됐는데 그럼. 최시우가 수하들을 만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자주 주물러줘서 색욕의 권능으로 강해졌지만, 여전히 죄악 중에서는 약할 것이다.
원작의 폭식이 본체로 삼은 것은 북경군벌 사령관 장웨이였다. 그런데 아예 운영체제가 다른 핑타오를 본체로 삼는다면?
폭식의 죄악은 처먹을수록 강하다. 색욕 쪽이 힘 상승폭이 높아도 나만 일편단심인 최시우보다 막 처먹는 핑타오가 더 쉽게 강해지겠지.
안 그래도 몸 자체가 튼실한데 전쟁 직전까지 처먹었다면 꽤 힘들어지겠다.
망했군. 이거 차라리 최시우가 실컷 떡친 후에 가졌어야 했나?
아냐, 암만 그래도 NTR은 아니지.
황룡은 솔직히 내가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역시 죄악과 함께 라면 꽤 힘들어질지도.
초대 신검 사용자인 오빠 유진석의 도움도 받아야겠다.
원작에서 신검은 중국의 물량을 상대했지.
이번에는 머릿수가 꽤 되니 유진석이 핑타오와 싸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딱히 수업이 없을 거야. 다른 교관들도 반 생도들에게 황룡 때문에 협회로 가야 한다 했을 테니까.”
“그럼 불방망이도?”
“그래. 황룡이 중국군에 넘어갔다면 어떻게 될지 몰라. 최악 전쟁일 수도 있지. 너희도 끝나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
곧바로 귀가조치라는 건가.
“우리가 전쟁에 나설 수도 있습니까?”
A반의 이름 모를 친구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만일 터진다 해도, 우리가 나서지 너희가 나설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사실 원작은 최시우가 오지랖 부린 것이 크다.
지금은 원작 최시우와 달리 나만을 위한 최시우라 다행이지만.
결국 이 시대는 전쟁도 헌터가 다 해먹으니까. 생도들은 학도병으로 나서게 되는 것. 전시체제도 대격변 이전 때와는 다르다.
어쨌든 그 덕에 우리는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 점심으로 계속 황룡에 대한 기사가 TV를 비롯한 인터넷에 흐르기 시작했고, 오후 4시가 넘을 무렵 마침내 터질 것이 터졌다.
[긴급 속보입니다. 중국 난징의 주석궁에서 중국 국가주석 장학체 주석이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청와대에서는 하대통령이 유감을 표했으며 중국의 침공에 단호한…….]
아, 터질 것이 터졌네.
청와대 입장이 문제가 아니다. 하정석이 직접 한 말은 무엇일까?
[“아직도 우리를 조선으로 보는 저 무례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중국놈들을 무찔러 과거 고구려의 영광을 되살릴 것입니다!”]
미친놈. 싸우는 것은 헌터들인데. 네가 뭘 어쩌겠다고.
그런데 말이다.
저 새끼 눈이 떨리고 있다.
저거 겁먹은 모양인데? 저러다 도망치는 거 아니야?
원작에서는 저러지 않았다. 아마, 수하로 있던 헌터들이 다 죽었기 때문이지.
그때 내 옆에서 가만히 뉴스를 보던 최시우가 입을 열었다.
“아마,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에는 우리도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고 소집령이 올 수도 있겠는데.”
“그 정도예요?”
걱정이 담긴 최시우의 말에 레이나가 반응했다.
원작은 그렇다. 일단 개전 초기에 국군이 중국 헌터 군단에게 궤멸한다.
그렇게 국군이 고기방패가 된 사이에 외국에 나간 헌터들까지 모두 소집한 한국의 헌터군이 중국 헌터들에 맞서 싸웠다.
아마 비슷하게 가겠지.
“황룡까지 있으면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 할지도. 황룡이 중국에서 한반도 면적만큼 피해를 주다가 겨우 제압됐었어.”
“그렇게 위험하다면. 죄악에 맞설 괴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일단 중국 물량을 상대하게 될 거야. 문제는 황룡이 이전보다 강할지도 몰라. 죽은 놈이 살아난 것을 보면 죄악 덕일 테니. 죄악보다 강할지도 모르지.”
죄악은 그 자체만으로 사천왕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이건 원작의 유진석이 직접 말했던 것이다.
“그럼. 엘프 왕국에서 사룡 마그뉴트를 데리고 오는 것은?”
“그런 것도 있었나?”
“있지. 마왕군에서 활약한 그 드래곤.”
그런 놈이 살아있었나?
솔직히 모르는 놈인데. 내가 싸울 때는 없지 않았나? 마왕 군이라면 내가 봤어야 옳았다.
“엄마. 그런 드래곤도 있었어?”
레이나가 묻자 레이첼이 손가락을 굴리다 조심히 대답했다.
“내가 레지스탕스로 활약할 시절에 봤던 드래곤이야. 그놈은 엘프 유놈이 세운 마을들을 전부 불태웠지. 기억은 안 나지만 마왕과 제국이 결탁하여 세운 나라의 수호신으로 반란을 일으킨 인간의 나라를 모조리 불살라버렸다지.”
“하지만 너의 시대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레이첼이 이쪽 세계선과 연결된 이상. 그 멸망한 세상으로는 갈 수가 없다.
마왕이 죽고 행복한 엘프왕국만이 있을 뿐이지.
“아냐, 그 드래곤은 꽤 오래된 걸로 알아. 확실한 것은 모르겠는데 레지스탕스 장로들이 수백 년은 먹었다고 했어.”
그런 드래곤이 있다면 해볼 만한가?
아니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다.
“확실히 전력 면으로는 강할지 모르지만. 설득이 가능할까.”
“일단 해 봐야지. 말은 통할 테니까.”
그래. 뭐든 하기는 해야 겠다.
“나는 혹시 모르니까. 하정석도 만나 봐야겠어.”
“머리털 또 뜯으려고?”
아니, 지금은 뜯을 생각은 없다. 전쟁 끝나고 뜯어야지. 그래야 창조경제가 된다.
안 그래도 지금 황룡에게 털리기 전인데 머리까지 뽑으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니야. 다른 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이번 전쟁에서 하정석과 협상을 이끌어 내야 한다.
백화교의 처우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다스리는 땅에 대한 자치권도.
일단 황룡을 상대할 방법이라도 찾아야겠지.
나는 옥상으로 나와서 케이트를 불렀다.
“케이트. 내가 게이트 열어달라 하면 열어줘.”
“네.”
하정석에게는 따로 협상할 일도 있으니, 황룡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줄 것이 필요하다.
원작에서 변경된 존재에 대해 언급하면 두통을 심하게 느낀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겠지.
“아카식 레코드. 한국에 공군이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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