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131. 연전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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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이 서해에 수장되고, 평양에서 연이어 올라오는 승전에 전쟁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하정석에게는 불쾌한 전화가 아닐 수 없었다.
황룡이 수장된 마당에 무슨 말을 하려고 마도기어로 전화를 한 것인가.
“이거 장학체 주석이 아니신가. 황룡을 어떻게 잡았는지 물어보려고 통화를 거셨습니까? 그 일이라면 전쟁이 끝나고 배상금 문제에서 말해줄 테니 끊는게 어떠십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하정석. 아직 우리는 핵을 보유하고 있어. 그것도 수백 발이나 있다. 이걸 평양과 서울에 쏟아부으면 어떻게 될 거 같은가? 핵이 통하지 않는 것은 괴수들이지 인간들은 아닐 텐데?”]
‘이런 졸렬한 오랑캐 새끼 같으니! 숨겨두고 있었나!’
설마 핵을 숨겨두고 있을 줄이야.
“국제사회가 무섭지도 않으시오? 안 그래도 생도 시절처럼 왕따인 것으로 아는데?”
인류가 단합하여 함께 괴수에 맞서 싸워야 할 판에 중국은 한국을 삼키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당연히 세계는 중국을 비난했고, 중국은 고립된 처지다.
중국의 시장 같은 것은 필요 없어진 마당에 굳이 중국과 더 국교를 맺을 이유가 사라졌으니 앞으로 중국이 가야 할 길은 슬플 것이다.
[“네놈들 잡으면 상관없지 않나? 국제사회를 들먹이는 걸 보니 핵에 대한 대책이 없는 걸로 보이는데.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나라는 조선자치구로 유지시켜주지. 물론 유력 헌터들은 전부 전범으로 처형해야겠지만 말이야.”]
곧이어 마도 기어를 통해 핵 격납고와 비밀리에 한 핵실험 등, 많은 영상이 도착했다. 거짓이 아닌 진짜였다.
아마 합성은 아니겠지. 장학체란 놈은 힘을 가지면 과시하는 쓰레기지만, 허세를 부리는 놈은 아니었으니까.
‘이 쓰레기 새끼가 감히. 누구를 협박해?’
하정석은 잠시 마도기어를 내려놓고 최지수를 불렀다.
“이봐 비서실장.”
“예. 각하.”
상대가 핵으로 나온다면 이쪽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보유한 미사일이 얼마나 되나? 자네에게 내 군대 쪽 인사들을 꽉 잡아두라 하지 않았나. 그 정도는 알겠지.”
“끽해야 현무 4백발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마저도 예전 거라, 핵을 미리 준비한 중국과는 상대가 안 됩니다.”
비빌 수조차 없나. 하긴 애초에 상대는 핵이지. 미사일이 중국 본토가 사정거리에 닿는다고 한들 한반도와 달리 넓으니 싸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이대로 고개를 숙이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다.
그때 문득 귓가에 아른거리는 것이 있었다.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면 한 번만이라도 나라를 위해봐요 좀
언젠가 빌런인 백화가 했던 말이다.
한 번이라도 나라를 위하라. 지금껏 자신은 오로지 한국의 권력을 잡기 위해 살아왔다. 그래서 한국 자체가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인물이 하정석이다.
여기서 저런 협박에 넘어갈 수 없다.
저런 놈에게 항복하는 순간, 한국이라는 나라는 사라진다. 하정석이 사라진다.
‘그래 황룡도 잡았으니, 나도 내 할 일을 해야겠지.’
원래 라면 건방지다고 여길 말이었으나, 지금은 용기를 얻었다.
하정석은 마도기어를 다시 들었다.
[“핵찜질 당하기 싫으면 지금 당장…….”]
“야, 장학체. 나한테 처맞던 새끼가 진짜 컸다? 야 돌대가리 새끼야. 너 내 밑에서 구르는 동안 나에 대해 전혀 배우지 않았냐?”
핵찜질이라니. 생도 시절에 얻어터지던 놈이 중국이란 덩어리를 얻었다고 건방지기 짝이 없다.
[“네놈이 감히 언젯적을!”]
“너는 장학체고 나는 하정석이다. 뭐가 다르냐? 핵찜질? 시발새끼야 쏠 테면 쏴! 속이 시커먼 네놈들과 붙어있는데 누구는 미사일 안 숨겨둔 줄 알아? 대격변 이전에 꽁쳐둔 거랑 평양사태 때 비밀리에 얻은 북한의 미사일만 수 천 발이야!”
[“뭐라고?”]
역시 생도 때와 다를 것이 없다.
여전히 목소리에 분기가 있으나 당황한 목소리다. 그러면 그렇지. 제 놈이 국가 주석에 오른다고 뭐가 바뀔 것 같은가.
“너 같은 무뇌도 알 것이다. 이 수천 발 전부가 중국 전역에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을. 대격변 이후 네놈들의 영역도 축소되었으니 그만큼 더 두들길 수 있겠지.”
만일 정말 재래식 무기가 남아있었으면 그리되었을 것이다.
[“이 새끼가!”]
“그러니 쏠 테면 쏴! 한국이 뒤지더라도 너희 평생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는 만들 수 있으니, 쏘라고! 아니면 내가 먼저 쏠까!”
[“감히 누구를 협박하는 건가!”]
이걸 내로남불이라 하는 걸까.
“협박은 황룡이 죽었다고 벌써 패배할까 봐 똥줄 타서 핵 날린다는 새끼가 누구 보고 협박이라 지껄여? 야, 장학체! 나한테 두들겨 맞던 새끼가 주석궁에 숨어있다고 진짜 황제라도 된 거 같냐? 나야말로 선택권을 주마. 중국을 반송장으로 만들어줄까. 아니면 헌터의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겠나? 반병신이 되면 핵을 날린 보복으로 세계는 중국을 근절하려 하겠지? 결국, 한국이 죽으면 중국도 끝이야 새끼야!”
[“이 자식이!”]
[“주.주석선생!”]
뚝
마도기어 너머에서 다른 목소리들을 들어보니, 아마 주석을 말리는 공안들일 것이다.
“어쩌자고 그러셨습니까? 우리는 그만한 미사일이 없습니다! 차라리 헌터로 협박을 하셨어야죠!”
“이봐 최지수. 자네는 아직 멀었군.”
이러고도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니.
“예?”
“국제 외교에서는 허세를 부려야 살 때가 있는 법이야. 큰 것은 작게, 작은 것은 크게 불려야 하는 법이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감히? 놈은 절대 핵을 못 쓴다.”
하정석의 말대로였다. 얼마 후 주석궁 헌터공안부에서 직접 전쟁의 승부는 평양에서 끝을 보자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이제 대통령으로써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
* * *
평양에서 일어난 평양전투는 한국 헌터, 빌런연합군의 우주방어로 중국의 죄악헌터군단은 뚫지 못했다.
결국 중국 헌터군은 평양에서 퇴각했다.
한층 여유로워진 길드연합 수뇌부에서는 다음 작전을 논의했다.
여기에 생도출신인 나도 꼈다. 서지연을 구하고 백염으로 헌터연합군을 차단했으니 당연하다.
회의에 참가시켜줬으니 나는 의견을 보탰다.
참고로 지연이는 귀찮다고 나한테 맡기고 밖에 나가 있다.
나와의 관계가 들켜 꽤 부끄러운 모양이다.
하긴 공식커플로 인정받았으니까.
“저놈들이 정비하기 전에 이참에 반격하죠. 100만이 합류해버릴 수도 있으니 조금이라도 줄여놔야 합니다.”
“반격을 가하자고?”
유진석은 내 말에 놀란 듯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뜬 소문만 들었지. 설마하니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던 여동생이 이렇게 바뀌었을 줄은 몰랐겠지.
아까 나를 전장에서 본 그의 입이 떡 벌어졌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응.”
“틀린 말은 아니로군. 황룡도 잡았고, 저놈들 100만이 다시 몰려온다면 힘들어진다. 지금 조금이라도 잡아둬야지.”
신지운이 내 의견에 찬성했다.
결국 반격으로 의견이 모이자 길드 연합의 시선은 괴인군 지휘관인 엘리제에게 향했다.
“그럼 백화가 와야 하지 않나?”
차지은은 백화교의 수장 백화가 없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아니면 나를 유혹할 셈인가? 하지만 나는 아직 낄 생각이 없다.
“백화님께서는 제게 지휘권을 맡기셨습니다.”
엘리제가 의외로 지휘를 잘하더라고. ,본래 미국인이었던 여자가 잘도 괴인군을 이끌었다.
“백화는?”
“지금 상처를 입으신 관계로. 당장 전장에 참여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엘리제가 변명은 그럴듯하게 해줬다.
이 자리에서 나와 백화가 공존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국군도 보존하고 있고, 백화교는 전투 골렘까지 있으니 불시의 기습을 가하면 이길 수 있겠어. 놈들의 위치는?”
“평성까지 물러갔네.”
평성은 지도상으로 바로 평양 위쪽에 있다.
맹공을 퍼붓다가 뒤로 빠졌으니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중국놈들도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백화교의 마력 무기들은 아직 사용 가능한가?”
“예. 길드 연합의 헌터들도 마력사정은 괜찮습니까?”
“괜찮다. 그럼 지금 당장 올라가지.”
백화교의 무기도 완벽하고, 길드 연합도 완벽하다.
그렇게 드디어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지휘부 밖으로 나오자 유진석이 나를 따로 불렀다.
“은하야.”
“오빠?”
“너는 대체 이 전쟁에 뭐하러. 에휴.”
유진석의 얼굴에 잠깐이나마 주름살이 는 것 같았다. 나 같아도 나 같은 동생년은 한심할 것이다.
유진석은 나를 보호하려 했는데, 나는 전장에 와 있으니.
게다가 그 여동생이 여자와 사귀고 있으니 놀라 노자일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뭔들 못하겠어요? 오빠는 내가 지연이랑 함께해도 상관없지?”
“네가 좋다면 상관없다. 다만 몸은 좀 아껴라. 헌터 아카데미에도 생도들 소집한다는 거 내가 겨우 뜯어말렸다.”
오, 그 정도로 힘썼어? 어이구 착하다.
“올, 간만에 오빠 노릇 좀 하신 듯? 솔직히 내 여자는 내가 지켜야지. 안 그래요?”
“하아. 내 여동생이 레즈였을 줄이야.”
유진석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남자랑 사귀기라도 바래?”
내 말에 유진석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내가 남자친구 손을 잡는 모습이라도 떠올린 걸까. 하지만 걱정 마시라.
“그건 더 끔찍하다. 차라리 여자가 낫지. 지연이도 뭐 나쁜 애도 아니고. 그래서 평성까지 함께 가려고?”
“응.”
“진짜 언제 그렇게 강해졌어?”
“어쩌다 보니?”
제대로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 인간 시스콘이라 동생한테 따지는 타입도 아니고.
“그래. 뭐 각성 같은 것도 있고, 성좌는 그럼 무신이라고?”
“응.”
“무신이라면 후. 박준혁 그 자식도 불쌍하게 되었군.”
유진석은 아까운 인재를 날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죄악에 홀린 게 잘 못이지.”
6월 30일, 국군과 헌터, 빌런연합군이 마침내 북진하기 시작했다.
이미 중국 물량전에 북한 대부분의 괴수가 토벌된 덕에 괴수들 때문에 입는 피해는 전혀 없었다.
이때부터는 한국 상황이 나아졌다고 여겼는지, 해외 종군기자들까지 함께했다.
“자! 남의 땅 처들어온 짱깨새끼들 다 조져버려!”
죄악 파편을 달고 있었다 해도 중국의 헌터들은 수준이 낮았던 터라 골렘을 앞세운 헌터, 빌런 연합군에 학살을 당했다.
평성의 싸움은 연합군이 공격하고 중국 헌터군이 수비를 하는 모양새였으나, 가면을 쓴 최시우와 다크엘프 레이나, 사룡 마그뉴트가 참전하면서 평성은 드래곤의 브레스로 엉망이 되었다.
재밌는 점은.
“븝미빠워인 것이애오!”
“븝미누님. 쪽팔리니 저기로 가서 혼자 싸우세요.”
“하와와 너무한 것이야요! 금태양 이러면 궁물도 없을 것이애오!”
“어휴.”
븝미랑 금태양이 함께 하고 있었다.
간만에 만나서 대화했는데, 븝미가 나를 옆에 두려고 해서 나왔다.
나는 백염으로 중국 헌터들을 잡다가 혼란한 틈에 백화로 전장에 참전했다.
“모두의 아이돌 백화 등장!”
타락수녀 백화의 모습으로 전장에 나서자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백화다!”
“백화쟝!”
“후우욱. 후우욱 백화 발바닥 핥고 싶다.”
마지막 놈은 조금 역겹다. 그래도 백화교에 의해 황룡이 격퇴되고 중국 헌터군도 백화교 괴인군에 작살났으니, 이제 내 주가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엄청 뛰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멋지게 참가했다.
“파티 타임~!”
즐겁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죄악파편이라고 해도 내 혼돈을 이겨낼 수 없다.
내 정신공격에 저항하려던 놈들이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이 미친놈들 뭐하는 짓들이야 컥!”
평성에서 밀려난 중국 헌터군은 그대로 궤멸하여 북으로 계속 밀렸다.
7월 1일. 연합군의 대규모 공세로 결국 압록강까지 내쫓기고만 중국 헌터군이 압록강을 건널 즘에는 불과 100명도 남지 않았다.
7월 3일. 연합군이 두만강까지 탈환하자 청와대에서는 하정석이 105년 만에 한반도를 온전히 탈환했음을 선포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는가?
다만, 아직 승리를 축하하기에는 일렀다.
아직 죄악과 개떼 같은 물량이 남아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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