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외전용사파티의 S급 짐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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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와 마왕]
작가 유은하는 나에게 시련을 주었다.
사실 이런 귀찮은 짓거리는 하기 싫지만, 작가 유은하가 이것을 해내면 100년을 10년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주겠단다.
보나 마나 패시브 스킬이지. 그냥 주면 덧나나.
심부름의 내용은 자신이 쓰던 용사와 마왕의 스토리를 내가 직접 해피엔딩으로 이끌어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용사가 되어서 마왕을 무찌르는 것.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무찌르고 돌아갈 때까지 서고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했으니 서고에서 깨어나면 레이첼은 내가 잠자다 일어난 줄 알 것이다.
그러니까 나만 여기서 좆빠지게 고생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소린데.
용사와 마왕의 세계에 떨어진 이 세계가 일본 이세계물에나 볼 수 있는 그런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드와 던전, 능력 뭐 이런 거 말이다.
헌터시대가 도래한 지구의 중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그래. 언어 패치를 비롯해 내게 필요한 것은 전부 지원해줘서 좋다.
그런데 문제는…….
“에이 씨발.”
이름: 유은하
직업: 짐꾼
칭호: 용용 죽겠지
특징: 용용이 Mk. 2
“하다못해 성녀나 궁수, 전사 포지션으로 줬어야지!”
상태 창을 보고 놀라 뒤집혔다.
히로인 후보라도 상관없다! 반대로 용사 족치고 백합 하렘 만들면 되니까! 그런데 뭐냐! 짐꾼?
내가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아마조네스나 근육 덩어리 여자도 아닌 나 같이 완벽한 미소녀가 짐꾼을 하라고?
나는 혈압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상태창 생까고 하고 싶어도 이미 정해진 포지션이 있을 것이다.
개거지 같은 상태창을 뒤로 하고, 일단 나는 어떻게든 마왕을 조져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용사파티에 들어가야만 했다.
용사와 마왕 원작에 따르면 짐꾼은 길드에서 용사파티에 가입해야 한다.
짐꾼이 유난히 비중이 높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후우.
아무튼, 나는 길드에 가 짐꾼으로 파티 가입을 신청하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 마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니, 이럴 수가!”
나는 길드에 들어가자마자 경악했다.
길드에는 수인족 접수원이 있었다. 그것도 고양이 귀 수인!
이계인 중 수인이 없는 건 아닌데 극소수라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검은 고양이 귀에 흑발. 갈색의 눈동자. 잘빠진 몸매.
이건 못 참지.
“헤이, 수인 언니. 이따 나와 녹진한 민달팽이 섹스 고?”
“네?”
순간 목적을 잃었다.
귀를 쫑긋거리면서 나를 경계하는 고양이 소녀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아 씹. 이게 아니지. 저 짐꾼인데 가입 가능합니까?”
“어, 짐꾼은 능력 확인 후에 짐꾼으로 등록해드립니다.”
그 정도야 아공간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들어보니 짐꾼 등록은 꽤 간단하다고 한다. 어차피 일회용이니 그냥 길드 마스터 앞에서 짐을 얼마나 들 수 있는지 보고 등급을 매겨 준다는데.
“나는 길드 마스터 채르졸시그라고 하네.”
“안녕하세요.”
내 등급을 확인해주겠다며 만난 인물은 최철식 닮았는데. 심지어 대머리다.
최철식이란 이름과 너무 비슷하지 않나.
“그런데 힘 약한 여자로 보이는데, 정말 들 수 있겠나? 남자도 짐꾼은 아무나 못 해. 근육이 좀 붙어야 하지. 자네는 수인도 아니고.”
아니, 이 인간이 지금 인종차별을 해?
“일단 짐이나 주십셔.”
길드장 채르졸시그는 나보고 그럼 들어보라는 듯이 무식하게 큰 바윗덩어리를 보여줬다.
나는 그것을 아공간에 넣고 빼는 것을 보여줬다.
“이 정도면 됐수?”
“대단하군! 이 정도면 S급 짐꾼이야! 크하하핫! 내 생에 S급 짐꾼은 처음이로군! 불쌍도 하지! 저만한 능력을 다른 직업으로 가지고 있었으면 딱 좋았을 텐데 말이야.”
이 아재가 지금 그래서 좋다는 거야 안 좋다는 거야. 팍 씨.
어쨌든 내가 가진 아공간의 능력은 짐꾼으로서는 상당히 쓸 만한 것 같다.
용사파티는 생각대로 내가 머무는 왕국 수도 길드에 찾아왔다.
나는 가만히 길드 구석에서 앉아 길드의 식량을 축내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 이거 용사님 일행이 아니신가?”
“하하하. 그리 띄워주지 마세요. 저희도 여정을 떠나는 중인걸요.”
“음 무슨 일로 왔나?”
“저 짐꾼을 구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짐꾼을 구한다더라. 역시 이 부분은 스토리 그대로겠지.
“짐꾼?”
“슬슬 짐도 많아지니 뭔가 따로 필요할 거 같고.”
“나쁘지 않지. 안 그래도 자네들에게 맞는 짐꾼이 얼마 전에 길드에 가입했네. 무려 S급 짐꾼이지.”
“오. 정말요?”
하, 천하의 용용이가 한낱 짐꾼이라니.
판타지판 최철식. 사실 저놈도 원래 세계에서 온 건 아닌지 몰라.
그렇게 내 프로필 정보는 마치 이력서 마냥 용사의 손에 들어갔다.
참고로 나는 머리에 천 같은 것을 빙빙 둘렀다.
속에는 가죽으로 만든 복장에 망토를 걸친 모습으로 장비 자체는 딱 짐꾼한테 어울린다.
이렇게 눈이 적당히 가려져 있으면 내 모습은 어디를 내놔도 파리가 꼬이지 않을 것이다.
안 그러면 내 외모에 빠져 허우적거릴 테니.
“대단하군. 여자애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니 말이야. 일반 짐꾼은 먼 여정을 떠나는 우리에게는 안 맞는데. 부디 우리 용사파티에서 힘을 보태주겠니?”
“4대 보험에 월급 빵빵하면 쌉가능.”
그렇게 나는 용사 파티에 가입했다.
예상대로 용사는 스윗하게 생겨 먹은 금발 놈으로 딱 보니 하렘 주인공처럼 미소녀들만 옆에 끼고 있었다.
그래도 보통, 이 경우에는 아직 연결되지 않았으니 내가 따먹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정식으로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는데. 이 훈남을 제외한 히로인년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쓰고 있다.
그리고 먼저 자기소개를 한 것은 아주 번쩍번쩍한 장비를 입고, 딱 봐도 템빨이네 생각이 드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용사님이다.
“나는 용사 루인이야! 원래 지방에 있는 촌구석 마을인 튜토에서 살았는데, 여신의 선택을 받아 용사가 되었지. 이쪽은 귀잡이족의 플레나로 내 약혼녀야. 그리고 저쪽은 내 소꿉친구 신관 루이나. 이쪽은 여행 중에 만난 마법사 루엘.”
“뭐? 씨발.”
한마디로 내가 따먹기도 전에 이미 공략이 끝난 상태?
눈깔을 보면 알 수 있다. 죄다 눈에 하트 만발이라. 플레나를 비롯한 다른 애들도 전부 공략 끝 상태다.
플레나는 엘프 같네.
아무튼 내가 누구냐. 불굴의 용용이다.
백합 NTL을 하겠다! 쥬지와 뷰지 사이에 난입하는 뷰지가 되겠다!
“응?”
“아닙니다.”
그럼 이제 내 소개를 할 때가 되었다. 이 세계에서는 유은하라는 이름이 통하지 않을 테고. 뭐라고 할까? 유용용?
이름 지을 것도 없는데 실버류크로 할까. 당장 히로인들만 해도 실버류크씨가 많다.
이세계에 맞춘 이름이다. 용 실버류크. 영어로 드래곤 실버류크.
꽤 괜찮은 이름 같은데?
“용용 실버류크.”
“이름 참 기이하네. 용용 실버류크?”
아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네.
“나이는 영원한 17살. 드래곤 실버류크입니다.”
“오오. 멋진 이름이구나. 드래곤이라니.”
루인은 눈을 해맑게 반짝였다. 정말로 호기심 많고 정의롭고 순수한 용사 같은 분위기.
그런 주제에 히로인들을 점령했다?
각 나오지. 이 새끼 히로인들에게 좆을 박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말과 연출로만 히로인들을 꼬실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잠깐, 너 몸 보면 도무지 짐꾼으로서 불가능해 보이는데?”
히로인 중 한 명인 마법사 루엘이 나에게 대뜸 시비조로 물었다.
“왜죠?”
“왜냐니. 너 그런 여린 몸으로 가능하다고?”
확실히 내 몸은 겉으로만 보면 여리여리한 몸. 그래. 이런 식으로 나를 견제하겠다는 말인가?
“흥 우리만으로 충분해. 루인. 이런 얼굴만 반반한 년은 무시하자고.”
“맞아 S급 짐꾼? 보나 마나 그 대머리랑 뭔가 인연이 있었겠지.”
아니, 이 시발년들이 당장 따먹고 싶게 생긴 것들이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면 단 줄 아나.
나를 뭐로 보고!
나는 가슴을 탕탕 치며 반박했다.
“가능합니다.”
“흥, 말로는 어린 애도 마왕을 이긴다고.”
그래. 나도 집구석에서는 천하통일도 한다.
“큭큭큭. 그러실 줄 알아서 준비했습니다.”
“오오. 뭐지?”
나는 아공간에서 물건들을 꺼냈다가 집어넣는 모습을 보여줬다.
훈남 용사 루인은 손뼉을 쳤다. 그래. 너는 나를 알아보는구나.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제가 가진 짐꾼 능력입니다. 용사님과 동료분들도 담아서 저 혼자 다른 도시로 가 용사와 동료분들을 꺼낸다면 쾌적한 여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너 재밌네! 좋아, 함께 가자!”
“오오, 돈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돈 같은 건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다. 돈 때문에 왔다고 해야 저 보지들이 나를 경계하지 않겠지.
“그냥 돈만 밝히는 속물 같지?”
“그렇다면 상관없네. 게다가 능력 빼면 약해 보이고.”
“애초에 우리가 있으니 뭐.”
개 같은 년들. 더럽게 견제하네. 나는 용사가 아닌 너희들을 따먹을 생각인데.
그럼 남자로 접근할 걸 그랬나?
아니야, 남자로 접근하면 용사가 지랄맞을 것이다. 오히려 여자인 편이 낫지 않을까?
아무려면 어떤가. 남자가 될 방법은 없다.
[시스템 메시지: 이럴 때를 대비해 남장 스킬을 부여했습니다!]
“대체 그걸 왜 이제 말해?”
알았으면 조금 더 생각해봤을 텐데!
[시스템 메시지: 그럴 수도 있지.]
작가 유은하에게 진심으로 꿀밤을 먹이고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내 용사파티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용사 훈남 루인이 의외로 나를 배려해줬다. 사냥을 나갈 때도 그렇고.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고 쓸데없이 그러는 바람에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야, 너.”
히로인들이 단체로 몰려서 나를 부른 것이다.
이것은 마치 그거 같다. 여고에서 일진 년들이 왕따 하나를 밖으로 불러 괴롭힘 하는 것.
설마 천하의 용용이가 왕따라니.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빌어먹을 히로인들에게 내 진심을 보여주자.
“넹?”
“무슨 생각으로 이 파티 들어온 거야?”
“그야 돈 벌려고요?”
“그럼 용사파티 아니어도 들어갈 파티 있을 거 아니야.”
진심 그게 용사파티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애초에 일반 파티랑 용사파티가 벌어들이는 급이 다른데 말이지.
“에휴. 아가씨들도 참. 아가씨들이야 처음부터 용사파티셨고, 좋은 곳에서 자고 나라셔서 철이 없겠지만, 저 같은 년은 용사파티를 잡아야 출세할 수 있다고요. 일개 파티의 짐꾼이랑 용사 파티의 짐꾼. 뭐가 더 좋아 보여요?”
“음 그건 그렇네.”
“아니, 너 조금 전에 자연스럽게 우리 깠잖아.”
마법사 루엘이 내 말에 토를 달았다.
“그럴 수도 있지. 용사파티분들이 왜 이리 쪼잔해요?”
“뭐라고?”
“후우. 이거 참. 저는 용사님에게 관심 없으니 괜히 시비 걸지 마시죠?”
상식적으로 자지를 좋아할 수가 없다.
만약, 정말 최악의 가능성으로 내가 암컷타락한다리자,, 그런데 적어도 용사는 아니다. 딱 하반신만 봐도 느낌이 드는데. 이놈은 엄청 작다.
“뭐. 뭐라고? 너 진짜.”
찔리는지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귀엽기는 귀엽다.
“아니, 그만 하세요. 저분의 말이 맞지 않겠어요? 보아하니 확실히 여자로서도 상당히 이건 뭐.”
신관 년은 나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내 옷차림새만 보고도 나를 어디서 굴러온 거지 년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나중에 내 밑에서 암컷처럼 울게 해주마.
밤에 덮칠까도 생각했는데. 이 개년들이 나한테 따로 텐트를 마련해줬더라. 배려해서? 아니다. 여자들만 있는 텐트에 끼어주지 않겠다 이거다. 왕따라는 뜻이지.
어쩔 수 없지. 나라면 오히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용사와 마왕 시나리오 각본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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