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141. 원작이 깨진 세계의 사람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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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영국은 저번 한중전쟁 이후, 전쟁을 중재한 일본의 시노하라 정권 다음으로 한국의 동북 3성 지배를 인정한 국가였다.
영국은 한국의 우방국이었기에 유은하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그 때문인지 유은하와 같은 반의 생도인 로자리아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유은하의 반 학우라고?”
“유은하가 레즈라 소문으로는 그렇고 그렇다는 썰도 있던데?”
“저번 전쟁에서 저분이 유은하에게 키스해서 그 힘으로 중국을 물리쳤다는 말도 있어.
정작 로자리아 본인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황이다.
그저 단순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전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냈다.
”어휴.“
로자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답이 없다.
이건 정말 음해나 다름이 없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음해에 시달렸나.
이게 다 유은하 때문이다. 자기 몸을 마음대로 농락하고, 가지고 놀고. 겉만 번지르르한 여자지. 그 속은 항상 발정이 나 여자만 눈이 돌아가는 수컷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남자한테나 매달리지 왜 하필 여자인가.
비록 남성의 성기와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동성끼리 그런 짓을 해버렸다.
세상이 암만 개방되었어도 지금 자신은 성좌를 모시는 수녀다. 이건 좋지가 못하다.
그리고…….
로자리아는 정면에서 스테이크를 써는 사내를 보았다.
알렌. 어쩌다 보니 약혼남이 된 사람이다.
얼굴은 쓸데없이 잘 생겼는데, 하는 행동도 쓸데없이 귀찮게 군다.
차라리 혼자 만족하면 반짝거리는 얼굴로 돌아가는 유은하가 차라리 나을 것이다.
“로자리아. 그러고 보니 유은하랑 친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실제로 단체전 때도 그랬었죠.”
“네. 네에 알렌씨.”
“앞으로 영국과 한국의 관계는 로자리아양에게 달린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 아하하.”
이 멍청한 남자는 모르겠지. 약혼녀가 자신이 아닌 한국의 여자와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그래도 확실히 유은하는 여자를 좋아하는 거 같으니 조금만 꼬시면 앞으로도 영국과 한국의 장래는 밝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로자리아는 그 날 유은하가 자신을 덮쳤을 때를 떠올렸다.
암컷의 껍데기를 쓴 주제에 그 수컷 짐승의 거친 손짓. 이 신사적어서 손잡는 것만으로도 수줍은 척하는 알렌과는 다른데 자꾸 떠오른다.
아주 살짝 하복부가 뜨거워지는 것 같다.
그 강간범이 아래를 만진 이후부터 쓸데없이 불끈거릴 때가 있다.
“로자리아양? 어디 불편하십니까?”
“하·아. 아니예요. 다만 조금 피곤해서요.”
“어! 며칠 후면 한성 아카데미에 다시 가셔야지요. 컨디션이 중요한 법입니다. 오늘 데이트는 여기까지 하죠.”
알렌은 신사적인 얼굴로 빙긋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가야 하는구나. 잠깐 잊고 있었다.
그래. 가게 되면 또 얼마나 자신을 노릴까.
생각해보면 눈앞의 남자도 약혼자라지만 상당히 끈덕지다. 그렇다고 변태처럼 몸을 접근하는 것도 아니고 귀찮다.
오늘도 거의 반강제로 이루어진 데이트다.
이것만이 아니다. 영국에 있으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귀찮은 것 천지다.
그래. 차라리 한국에 가는 것이 낫다.
로자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 * *
전쟁이 있고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사실 생도들이나 일반인의 경우에는 별 차이 없었으나, 한반도 북부에 무려 한반도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한국에 편입되었다.
당연히 전후처리 문제로 바빴다.
전승국의 지위, 동북 3성에 대한 한국의 지배권 인정 등등 문제로 국제사회에서도 인정을 받고 외국 헌터의 투자에 관해 일이 마무리 지어질 때쯤, 마침내 지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들에 대한 상이 청와대와 헌터 협회의 주최로 시작되었다.
“그럼. 한성 아카데미 2학년 A반 생도. 유은하.”
“네. 대통령 각하.”
“그녀는 한민족이 이 땅에 반만년 뿌리를 내린 이래로 가장 통쾌한 승리를 국민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녀는 친한 생도들과 함께 국난을 극복하고자 전쟁에 뛰어들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이것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오. 선조들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말은 진짜 그럴듯하게 잘하고 있네.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하여 나 대한민국 24대 대통령 하정석은 세계 수호를 위해 유은하 생도를 12사도 후보로 세울 것이며 그녀의 삶에 부족함이 없도록 갖은 특혜를 누리게 해줄 것입니다. 또 그녀는 아직 정규 헌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을 증명한바, X급 특수 헌터의 지위를 내릴 것입니다.”
뭐 결국 형식적이다.
이미 특수 헌터로서 백화교를 맡고 있으니까.
딱 한 가지 좋은 것은 어디를 가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논공행상하고 아카데미로 돌아온 나는 히로인들과 옥상에 누워 무더운 초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이야, 하정석 그 양반도 참 대단해. 이미 뒤에서는 다 수를 써둔 주제에 이제 와 선심 쓰듯이 임명식을 벌이네.”
나는 한숨을 쉬며 손에 들린 헌터 카드를 나한테 안겨있는 최시우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내 카드를 받아들더니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 빌런 담당 특수대책반 X급헌터 유은하……에 백화교 단장 유은하. 이야 웃기네. 그 나이 먹고 자기 자식뻘을 견제하고 있잖아.”
내 카드는 순도 높은 마력석을 가공해서 만든 흑색의 카드로 헌터 등급에 X급이라 기입되어있다. 그리고 이 카드는 신분 증명 및 게이트 진입을 위해 쓰이는데, 그 뒷면에는 현재 수행 중인 임무나 활동이력등이 적혀 있다.
여기에 백화교 단장으로 등록되어있으니 너는 빌런이라고 대놓고 임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12사도 후보로 세웠잖아요? 유진석 님은 거절했으나 죽음의 사진가 서지연 님 이후로 처음이라구요?”
“12사도야 헌터계의 천상계라 할 수 있으나, 정치에서는 완전히 떨어졌으니 말이야.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가는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고.”
하정석이 개 쌍욕을 처먹어도 어쨌든 국가원수로 있으니 한중전쟁의 승리와 땅을 얻었다는 업적이 있어 나름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찬양받고 있다.
그 자리에서 새파랗게 젊은 년이 사도 후보를 거절한다? 전쟁영웅이니 뭐니해도 온갖 욕을 먹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도 분위기 깨는데 뭐 있다고 하겠지.
“이제 다섯 죄악은 어찌하냐는 건데.”
“당분간은 숨죽이지 않을까?”
“그렇겠지. 폭식이 그렇게 가버렸으니 말이야.”
정확히 말하면 폭식을 내가 흡수하면서 내가 폭식도 겸하게 되었지만. 최시우 하나만으로도 이미 엔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야 그렇잖아. 결국 작품 후반부까지 죄악들이 주인공 일행을 방해한다.
폭식, 색욕, 전부 내 수중이 있으니까.
오만, 탐욕, 질투, 분노, 나태의 죄악. 이렇게 다섯이 남았다만. 지금 잡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놈들 전부 괴수출신이 아니라 인간출신이다.
겉으로 보면 지금 놈들은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잡아 죽일 수도 없다.
한놈씩 몰래 잡는다면 다른 죄악들이 잠적할 테니 문제고. 한 번에 잡아 소탕할 수도 없다.
“죄악이란 게 그럼. 핑타오처럼 인간이었던 존재들인가요?”
아이스크림 네로나를 요염하게 빨아먹던 레이나가 물었다.
“응. 그럴걸. 당장 최시우도 그렇잖아.”
나에게 조물조물 가슴을 내어놓는 최시우도 본래는 인간이었다.
나만 아니었어도 평범하게 제2의 유진석이 되었겠지. 뭐 색욕이 된 거 반은 내 책임이니 나는 평생 최시우를 책임질 생각이다.
“그럼 함부로 잡을 수 없네요?”
“음. 그래도 일단 둘을 확보한 상태니까 당분간은 여유야.”
유은하의 죽음도 없고 색욕도 둘에 놈들이 세력을 키워봤자 크지도 못한다.
“죄악이라면 매우 강한 거지?”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한수지의 말이었다.
“응. 그렇지. 그런데 왜?”
“혹시 이 사람도 죄악일까?”
확실히 죄악은 강하지만, 남은 죄악 중에 지금 당장 모습을 보일 인물은 없을 텐데?
나는 한수지가 보여준 기사 내용을 보았다.
“음? 누구?”
“중국 서북 군벌 헌터군. 치우단 리더 슈리에.”
서북 군벌 치우단 리더 슈리에가 북경을 탈환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슈리에?”
“최근 중국에서 꽤 유명한 존재야.”
“아,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외모도 좋아서 서북 군벌 사이에서는 아이돌로 불리고, 남중국에 사는 중국 인민 중에도 제법 팬이 있다고 들었어요.”
레이나가 폰을 두드려 슈리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슈리에는 서북 군벌의 군복을 입고 괴수의 시체를 밟고 서 있는 사진인데, 그 뒤에 병사들이 도깨비 깃발을 들고 있다.
좀 멋진데 이거. 백화교는 단순한 용 그림인 반면에 도깨비는 뭔가 멋이 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미녀라는 느낌의 여자다.
흑발을 묶어 올린 것이 제법 잘 어울린다.
“호오오, 뭔가 맛있게 생겼네. 죄악은 아닐 걸?”
핑타오 상위호환이라는 느낌이다. 핑타오와는 달리 멍청하거나 다혈질로 보이지도 않는 것이 내 히로인으로 삼고 싶다.
당연히 죄악은 아니다. 죄악은 원작 시작 될 때 장웨이에게 이식될 폭식 제외하고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여자를 음식으로만 보지 말아요!”
짝!
레이나가 내 등짝을 후려쳤다.
“한국에 백화교가 있다면 중국에는 서북 군벌 치우단인가. 하지만 핑타오처럼 중화주의에 물든 년이면 보무룩할 텐데.”
중국의 주력 군벌이던 북경 군벌이 그랬는데, 서북 군벌이라고 다를까.
“보무룩은 뭐에요?”
“보지 시무룩.”
다시 말해 한참 달아오르던 보지가 시무룩해진다는 의미다.
“엄마가 천박한 단어 좀 쓰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레이나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레이가 드래곤에서 인간으로 진화를 함으로써 진화론을 무시해버리는 근본 없는 짓을 해버렸기 때문에 졸지에 나만 얻어터졌다.
이제 레이도 말도 할 줄 아니까 천박한 언어 좀 그만 쓰라고 말이다.
심지어 섹스도 적당히 하란다.
그런데 나는 레이를 알고 있다. 개는 이미 알고 있어. 내 가슴을 보는 눈빛이 마누라와 섹스리스에 빠져 여자에 굶주린 중년 남자가 젊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비밀로 좀. 아니, 애초에 레이 걔 알 거 다 안다니까? 내 젖 무는 테크닉이 장난이 아니라니까?”
레이 고년이 아주 야무지게 빨아댄다.
내가 바래서 빠는 게 아니다. 일어나 보면 내 가슴에 매달려 있다.
본인 말로는 맘마가 필요하다는데 난 모유 한 방울 없다 이 말이다.
“이제는 레이가 맘마통 좀 물었다고 흥분하는 거예요?”
“어, 레이나 너 맘마통이라고 했네?”
“그거 봐요. 나도 당신에게 전염됐잖아!”
짝!
“캑!”
레이나가 내 등짝을 두어 번 더 후려치는 바람에 최시우의 가슴에서 손이 떨어졌다.
최근 수하들을 이용해 힘을 올리고 있는 그녀는 전보다는 성욕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그래서 내 손이 떨어져도 너무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좀 아쉽다.
조금 전부터 말이 없던 그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슈리에에 관해 나는 본 적이 없어.”
“아마 이전과는 다르게 돌아가니까. 북경 군벌의 몰락으로 서북 군벌에 기회가 생겼으니.”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원래는 서북 군벌에서 일개 헌터로 남아있어야 할 여자애가 성좌를 받은 것이다.
치우단이라는 조직의 리더라는 것을 보니 아마 치우가 성좌겠지.
북경 군벌의 자리까지 맡아야 하는 부담감에 힘들어할 때, 슈리에에게 치우가 성좌로 나타난 것이겠지.
크~역시 이 맛에 원작을 비틉니다.
끼익
“너희들 여기 있었냐.”
옥상에서 한참 수업을 땡땡이 치고 있는데 누군가 싶어 문쪽을 보니, 레베카가 지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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