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147. 만주 1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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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직 반할 수 없다 그 말이지.
“정말이지 잘 튕기네. 로자리아는?”
“반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뭐.”
“이미 일선을 넘은 관계니, 말이지.”
로자리아를 교회에서 덮치던 시절이 떠오른다.
로자리아도 그때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인기척이 느껴 고개를 돌리니 이번에는 슈에리가 보였다.
수하들이 이것저것 챙겨주는 모습인데. 마치 딸 수학여행 가는 거 뒷바라지해 주는 부모님 같다.
“안녕하세요. 슈에리.”
서로 인사를 마친 다음에는 정나윤이 만주 1게이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할게. 일단, 이 던전은 미궁으로 범람형이야. 그리고 확인된 바로는 고블린과 오크 같은 상위 개체들이 있고, 헬하운드도 있지.”
“꽤 엘리트 몹들만 있는 모양인데요?”
고블린과 오크의 상위 개체들이라면 조금 더 강한 종류인 걸까.
헬하운드라면 침식지대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멍멍이 괴수다.
“뭐 그렇게 되는 거지. 너희에게는 크게 위협이 될 존재들은 아니지만, 아래층을 알지 못한다는 거야.”
“원래 북경 군벌이 사용하던 던전 아니었어요?”
“남겨둔 모양이더라고.”
“생각보다 깊다면 훨씬 다양한 괴수가 있겠네요?”
“응 발견된 것만 이 세 가지 괴수니까.”
발견된 것만 이 세 가지라.
“일단 그러면 뭐 딱히 더 들어볼 것도 없는데. 시작해보죠.”
그렇게 만주 1 게이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도착한 우리는 얼척이 없었다.
폐허더미들 사이에 등장한 동굴은 어째서인지 바깥에 괴수들이 즐비했다.
저건 거의 군대 단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아도 너무 많다.
“숫자가 엄청 많네요? 너무 방관하고 있던 거 아니에요? 탱크로 포탄만 날려도 적은 수였으면 알아서 기어들어 갔을 텐데.”
“이상하다. 생각보다 너무 불었는데.”
“생각보다?”
그럼 어제까지는 적었다는 소리인가?
가만히 보니 수상하기 짝이 없다.
원작에서도 이런 상황이 있었으면 중국이 최시우를 부르거나 최소한 범람이 있는 게이트라고 한국에 알려졌을 것이다.
없다는 것이 이거 상당히 수상한데.
이거 어쩌면 죄악이 관련되어있을지도.
“잠깐, 우리 따로 작전타임 좀 가질게요.”
“다 함께해야 하는 걸 굳이 너희끼리?”
“레이나를 아시겠지만, 오늘 좀 상태가 안 좋아요. 레이나 때문에 저희끼리 할 이야기가 있어요.”
내 말에 레이나가 하복부를 잡고 아픈 척을 했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다.
“아, 그래 보이는구나.”
다른 죄악 일을 슈에리에게 알릴 수는 없다.
죄악은 각국에서도 예민하게 다루는 존재다. 꺼내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지.
최시우는 어떤 죄악인지 대강 감이 올 테니 나는 히로인들만 따로 모았다.
“어제까지는 이렇게 많지 않았어. 뭔가 이상해.”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 불어났다는 것은.”
나는 딱 느낌이 왔다. 만주 1게이트에 죄악이 간섭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원작 내용만 알고 있지 이미 1회차를 겪은 시우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시우는 게이트의 상황을 멀찌감치 보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거 어쩌면 죄악의 짓일지도 모르겠어.”
“다른 빌런일 가능성은?”
“선양에 있는 백화교의 눈을 피해 범람에 영향을 줄 만한 빌런이 얼마나 되겠어?”
맞지. 애초에 포탈 건설과 선양의 한국화 때문에 워낙 엄중하게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동료들을 늘린다는 설정이 죄악이 무엇이지?”
“오만은 말 그대로 오만해서 동료들을 늘리지 않아. 나태는 나태해서 자기 혼자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내가 생각해도 그 둘은 죄악의 특성 때문에 수하도 동료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세상을 전부 침식지대로 물들여 괴수와 괴인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미친 짓을 벌이는 놈들인데 누가 동조하겠냐만.
“그렇다면 질투의 죄악. 또는 탐욕의 죄악이겠네.”
둘 다 괴수 관련한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질투가 이곳까지 올 리는 없을 테니 탐욕이겠지.”
“탐욕. 그 여자가 홀로 왔다고?”
탐욕의 죄악. 그 정체는 독일의 부잣집 딸내미다.
이렇게만 보면 욕심만 많은 년 같겠지만, 정작 탐욕 본인은 지략가 포지션이라고 봐야 한다.
금발에 전형적인 귀족 영애라는 느낌이 드는 백인 여자애인데, 학식이 뛰어나고 정보력에 밝다.
탐욕의 능력은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폭식이 무엇이든 먹어 힘을 키운다면 탐욕은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부하처럼 부린다.
로즈마리가 인형의 극의로 진화하기 전 인형사의 가장 궁극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 힘이 있는 강자를 상대로는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끽해야 괴수들이나 영구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나태나 오만이 그녀를 도우러 따라올 리는 없고, 질투는 탐욕에 라이벌 의식이라는 것을 갖고 있어서 굳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 그놈들은 동일한 목표를 가진 주제에 협력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왔겠지.”
“그런 능력이라도 괴수들을 늘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괴수들을 교미시켜서 새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레이나가 좋은 부분을 지적했다.
맞다. 괴수들을 교미시켜서 새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능하다고 해도 하루 사이에 저렇게 늘어날 수가 없지.
그것이 다 탐욕의 능력이란 거다.
“그 능력 자체가 개념을 풀어버리거든. 예를 들면 만주 1 게이트가 원래 괴수 허용 제한이 30마리라고 치고 탐욕이 그중 10마리를 가지면 그 10마리는 만주 1 게이트에 속하는 게 아니라 탐욕에 속하게 되고, 10마리가 탐욕에 넘어간 만큼 던전에 새롭게 채워져.”
의외로 게임 시스템의 허점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한계를 넘은 게이트는 괴수들을 밖으로 토해낸다. 그리고 계속 안은 30마리로 채우는 거지.
“그것을 반복한다면 범람이.”
“그런 거지.”
“귀찮은 아가씨네. 왜 갑자기 혼자서 이런 일을?”
한수지가 투덜거렸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진짜 얻어터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실제로 전투력은 죄악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주제에 말이야. 무슨 깡으로 혼자 와서 우리를 시험하려 하는 것일까.
최악의 변수로 다른 죄악도 올 수도 있다.
현실과 원작은 다르니까. 애초에 지금의 상황도 본래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그년 혼자 왔을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고 싶겠지.”
“우리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고?”
“그년 의외로 분석가거든. 여기서 뭔 일 터지면 우리를 부를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
“낚여줄 필요가 있나?”
한수지의 말이 맞다. 솔직히 낚여주기는 싫다.
문제는 여기서 낚여주지 않으면 저 미궁은 계속 불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게이트도 처리해야 하는 마당에 괜히 귀찮아진다.
“낚이지 않으면 저건 계속 불어나겠지?”
“결국 어쩔 수 없는 건가.”
길드 마스터들이라면 걸려도 상관없는데, 이대로 던전을 클리어해 주자니 그 탐욕의 의도대로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이거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때마침 길드 마스터들도 다른 지역에 나가 있으니까.”
“굳이 우리가 힘쓸 필요가 있을까?”
최시우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히로인들에게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무슨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놈들이 궁금한 것은 죄악과 대적한 우리의 힘. 아마 그년도 머리가 있으니 방송으로 본 내 힘보다는 내 암컷들인 너희들 힘을 더 알아보려 할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아니라 슈에리나 코토네, 로자리아라면?”
“그 셋은 이미 탐욕도 알고 있을 테니 괜찮겠어.”
최시우도 그럴듯하다며 맞장구쳤다.
낚시에는 낚시로 대응해야지.
죄악이 탐욕이라면 군신 치우를 성좌로 가진 슈에리가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코토네와 로자리아도 그렇고.
“그런 의미라면 우리들에 대한 정보도 있을 거 아니야?”
“죄악을 상대한 이상 우리를 직접 상대해보고 싶은 거겠지. 다른 능력이 있나 그런 것. 탐욕은 자기 능력을 이용해서 우리에게서 뭔가 얻어낼 셈일 테고.”
탐욕은 너무 철두철미하거든. 보통 그런 캐릭터는 무식하기 마련인데, 이 세계의 탐욕은 쓸데없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년이라 까다롭다.
“사실 들켜도 상관은 없지만, 그 시발년이 괘씸하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한참 떠들자, 정나윤을 비롯한 슈리에, 코토네, 로자리아가 다가왔다.
“너희 뭘 그리 떠들고 있나?”
“일단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전 회의를 할까 하고. 그런데 우리 전력을 생각하면 굳이 포지션을 짤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죄악은 건너뛰고, 전력만 치며 우리를 이길 만한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살짝 슈에리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흠. 그렇군.”
“솔직히 저는 슈에리의 힘이 가장 궁금합니다.”
“좋아. 보여주지. 군신의 힘을.”
슈에리는 망설이지 않고 내 제안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나와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휙 돌린다.
설마 지금 일로 미움받은 걸까?
“이상하네요. 평소라면 그 백염의 불길로 확 쓸어버릴 생각 아니었어요?”
“사실 슈에리의 힘도 보고 싶고, 이번에는 다른 죄악도 껴있어?”
내 말에 코토네(유즈키)와 로자리아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일본과 영국은 아직 남아있는 다른 죄악들 때문에 한국과 죄악에 대한 공동조사를 하는 국가다.
그 국가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니 이 정도는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면 슈에리에게도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물어보면 그때 답해줘야지.”
어린 애도 아니고 일일이 내가 전부 말해줄 이유가 있나? 직접 물어봐야 대답해주지.
게다가 슈에리의 실력을 보고 싶은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그럼 우리는 다녀올게요.”
“그래. 너희니까 딱히 어려운 일은 없겠다만 조심해. 무슨 일 있으면 즉각 마도 기어로 연락하고.”
“넹.”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만주 1 게이트로 향했다.
“뭐, 그 전에. 입구 주변은 쓸어주지.”
화르르르륵!
게이트 일대의 괴수들이 전부 불에 타올랐다. 그러면서 슬쩍 슈에리 쪽을 쳐다보니 슈에리는 흥미를 보이다가도 고개를 휙 돌렸다.
정말 왜 저래?
그렇게 시작된 게이트 진입과 동시에 슈에리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가장 선두에 서 있었는데, 손에서 만들어낸 빛의 쇠뇌에서 쏘아대는 빛의 궤적이 괴수들을 전부 쓸어버렸다.
피슈우우우웅!
마치 천지를 꿰뚫어버리는 듯한 강렬함이 허공을 갈랐다. 빛의 화살이 닿는 거리의 괴수들이 전부 사라져갔다.
“와, 엄청난데. 이건 뭐 죄악급 아니야?”
“성좌의 힘이 군신인 이상. 강하겠지. 원래 치우가 무기를 잘 다뤘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정말 치우일까요?”
솔직히 나도 믿기 어렵다. 이 세계는 작가 유은하가 창조한 반판타지 세상이니 정말로 치우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만. 치우는 정말 신화 같은 존재다. 그 실체에 대한 증거는 나오지도 않았지.
애초에 최시우의 신검 최시아도 본래는 사람이었다가 신검이 되고 성좌가 된 것이니까.
“확실하지는 않겠지. 치우와 같은 포지션에 있는 위인이 군신으로 추앙받아서 성좌가 된 걸지도 모르고.”
“그 여자도 아예 무시할 거 못 되네요.”
“그러게. 작정하고 괴수들을 만들었네.”
정말 끊임없이 몰려온다.
앞에서 슈에리가 열심히 잡는 것 같지만. 옆으로 빗겨 우리를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 정말 징글징글하다.”
그냥 어제 끝냈어야 했나? 이거 꽤 귀찮아졌다.
그때 수십 마리의 괴수들이 복병처럼 일어났다.
거대한 오크 한 마리가 나한테 다가와 괴성을 질렀다.
“구야아아아아악!”
개새끼가 건방지게 군다. 그래서 나도 저질러주었다.
저놈과는 달리 용의 울음을 들려주마.
“끼요오오오오옷!”
이것이 바로 용용이의 귀여운 울음이다.
내 꾀꼬리 같은 음색을 바로 앞에서 들은 오크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는 전부 쏟아내더니 옆으로 푹 쓰러졌다.
“……목소리 미러전?”
저 앞에 있는 최시우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길래 유두의 피어스를 쭉 잡아당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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