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161. 용용이와 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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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입학식을 가주기로 했다.
워낙에 회사원 시절 수컷 인생인 나는 어릴 적에 개판 같은 입학식을 지냈으니까.
엄마, 아빠는 어디 가고 저 형아가 있어?
큭큭큭. 이제 네 엄마는 내 부인이란다. 너는 내 자식이 되는 거지.
쉿. 애 듣는데 못 하는 소리가 없어, xxx야. 아빠는 오늘 바빠서 못 오거든? 오늘은 이 형이 아빠 역할 해줄 거야. 우리 xxx 아빠 없는 입학식은 싫지?
그때 불륜남인 걸 알아봤어야 했는데 시발.
심지어 애비란 작자에게 고자질하러 갔더니 애비란 놈도 부하직원이랑 열심히 떡을 치고 있더라.
개판 집안이었지.
참 그것도 추억이다.
나는 내 자식에게 그런 안 좋은 추억을 주지 않기로 했다.
“좋아, 가자. 우리 딸에게는 안 좋은 추억을 줄 수 없지.”
“뭐야, 당신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런 게 있어.”
그렇게 나는 송도를 출발해 ‘남자’로 한성 아카데미 중등부 입학식이 열리는 운동장으로 갔다.
아카데미 교문에서는 입학을 확인하는 담당자로 보이는 헌터들이 있었다.
다급하게 개설했다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어머. 어서 오세요. 어. 혹시. 이계인 출신인가요?”
겉으로만 보면 우리는 이계인 출신 부부로 보일 거다.
아니, 나는 백발의 미남이니 각성자고, 레이첼은 순혈 엘프고, 그 자식인 레이도 일단은 엘프라 할 수 있다.
“네.”
“어머 엘프네요.”
“어, 뭐 그렇죠. 엘프예요. 그런데 고등부처럼 반 배정을 성적대로 합니까?”
애초에 성적이란 것도 없지만 궁금해서 물었다.
레이첼이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설마 초등학생이라던가 그런 성적별로 나누는 건 아니겠지?
“아뇨. 똑같이 배우고, 고등부 올라갈 때 성적대로 나누는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만일에 내 딸이 성적순으로 뒷반이었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생도 확인을 하고 운동장에 들어가니 사람이 많기도 했다.
“이야, 입학식에 사람들 참 많다.”
“입학식이니까? 그런데 가을에 연 거라 급하게 치르고 바로 수업 들어간다는 거로 알아.”
“오, 벌써 거기까지 알아봤어?”
“내 딸 일인데. 당연하지.”
하여간 레이 일에 지극 정성이다.
운동장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학부모들이랑 파릇파릇한 아이들이 줄을 섰다.
생도확인이 다 끝나고 나서 저 멀리 스크린이 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으음. 에휴 귀찮아.”]
[“학장님. 그래서 비대면으로……아니, 지금 방송 나갑니다!”]
저 나쁜 년이 지금 귀찮아서 스크린 두고 하는 거였네?
[“어? 커흐음. 안녕하십니까. 한성 아카데미 중등부 학부모와 생도 여러분. 저는 한성 아카데미 학장 이영희입니다.”]
저 여자도 언제 한 번 손 봐줘야 할까.
[“오늘은 한성 아카데미 중등부가 개설되고 첫 입학식입니다. 이곳에 앞으로 한국을 책임질지도 꿈나무 생도들과 그 부모님들께서는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계시는 겁니다…….”]
김영희가 입학식을 직접 주관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어째서 입학식 후에 바로 수업에 들어가는지 말이다.
무려 입학식만 2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시발련. 무슨 2시간 동안 입을 떠벌려.”
“아빠, 학장은 시발련이야?”
“응.”
찰싹!
등짝에 레이첼의 손바닥이 작렬했다.
“애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어차피 다 아는데 뭘. 아흐윽.”
남편을 두들겨 패는 폭력적인 엘프!
아무튼 이영희는 개년이다. 이러니까 바로 입학식 끝내고 수업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였지.
확 씨 가만두지 않겠다. 응?
복도를 걷는데 앞에 이질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뭔가 드워프를 떠올리는 작은 존재가 있다.
딱 봐도 이계인이라는 느낌의 인간이 아닌가.
“오. 드워프 족인가.”
막상 이렇게 보는 것은 처음이다. 드워프 족도 정말 묘사만 나오지 비중은 그냥 몇 줄 언급될 정도니까.
“음? 우리들을 아시오?”
털복숭이 난쟁이가 우리 부부에게 다가 왔다.
“아니, 그냥 드워프족은 처음 봐서 말입니다.”
난쟁이만 한 키. 덥수룩한 수염. 정말로 드워프다.
하긴 엘프도 한국에 있는데 드워프도 없으란 법은 없지.
“크하하하핫! 아, 원래 나는 리폼 길드에서 무기 보급하는 하청을 맡고 있소. 그런데 딸내미가 이번에 한국 국적을 얻었는데. 학교는 보내야겠고. 그래서 중등부에 보낸 것이지. 반갑소. 내 이름은 라크라 하오. 여기는 내 부인인 김미영이고.”
딱히 궁금하지 않은데 멋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김미영이라는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염 덥수룩한 털북숭이 난쟁이와 약간 마른 체형 여자의 조합이라니 이거 묘한데.
이 부부는 섹스를 어떻게 할까?
여자가 위에서 할까? 아니면 남자가 뒤에서 개처럼 박을까?
뭐가 되었든 털 난 쇼타가 여자에게 박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여자도 마른 체형인 것이 좀 별로인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친한 척 하고 있으니 인사는 받아줘야 한국인의 정이 아닌가.
“아, 예. 제 이름은 유은석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쪽은 제 아내가 되는 엘프족 레이첼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호오. 엘프라 이거 참 귀중한 인연이오. 그럼 저 아이는”
“예. 우리 딸인 레이라고 합니다.”
나는 레이를 앞에 세워 소개했다.
여기서 드워프와 인연을 맺어둔다면 나쁜 건 없지.
“이 아이는 우리 딸인 류아라고 하오. 같은 이계인 자손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은 어떻소?”
드워프가 갈색 머리의 소녀를 소개했다.
오, 제법 귀엽다. 드워프족이라 그런지 조그맣기는 한데. 여자애라 그런지 조그마한 것이 귀엽다.
완전 합법로리라는 느낌? 중등부 교복도 제법 예쁜 것 같고.
“나쁘지 않군요. 벌써 딸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려는 거 같고요.”
아니, 전혀 아니다.
레이는 류아와 인사를 나누더니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침을 흘리고 있다.
음, 역시 내 딸 답 구나. 벌써 사냥감을 고르고 있는 듯하다.
일단 류아라는 아이를 보니 한참 작은데, 레이가 로리콘이라는 것을 잘 알 것 같다.
내 딸이 로리콘이라니. 머지않은 미래에 케이트의 순결이 위험할 것 같다.
힘내라 케이트!
그렇게 한참을 떠들면서 레이와 류아도 친해지는 모습을 보니 나름 훈훈했다.
이것 부모의 마음일까!
한참 모성애 및 부성애를 깨우칠 무렵. 익숙한 면상이 보였다.
몸집은 좋은데 옷은 맨날 누더기처럼 입는 양반이다.
그래. 이흥부. 그 인간이 나타났다.
“아빠. 아빠는 S급 헌터면서 왜 우리 집안은 항상 이렇게 뜯긴 옷을 입는 거야?”
뭔가 꼬마 여자애가 있는데, 교복이 아닌 다른 걸 입고 있다.
그냥 교복처럼 보이는 검은색 옷이다.
저거 상복 개량한 거 아니야?
와 정말 끔찍하다. 진짜 몇몇 룩덕질 게임에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캐릭터 따라 하겠다고 코디한 느낌이다.
딸을 저렇게 입힌다는 말인가?
“그·그건 말이다. 이 아빠가 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몇 번을 말하니?”
“강해져서 어쩌는데?”
“내가 강해져야 너희들을 먹여 살릴 것이 아니니?”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가난해 보이는데.
먹여 살린다고 하지만, 가난을 유지해야 힘을 얻고, 그 힘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결국 가난은 극복할 수 없다.
한심한 노릇이다.
“맨날 콩밥에 김치만 먹으면서! 으아앙!”
“그래야 내가 또 강해질 거 아니니? 한국의 자랑스러운 S급 헌터란다?”
“다른 사람들은 S급이라도 부자로 사는데. 으앙!”
딸 아이는 주저앉아서 꺼이꺼이 울었다.
“예진아.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나중에 반드시. 교복은 사주 마!”
“이미 다들 나 거지 취급해!”
음, 거지라. 확실히 거지 같다.
“와, 거지래요!”
레이도 처음 보는 아이에게 언어폭력을 시전했다.
“저거 봐! 나 거지래! 으아앙!”
이럴 수가 대놓고 시비를 걸다니.
“아니, 레이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니?”
“앗.”
뒤늦게 레이가 입을 막았다.
“말하더라도 뒤에서 말해야지. 어휴.”
“이 인간아 그게 아니지. 좀 돌려 표현하는 법을 몰라? 가난해 보이는구나. 이게 더 맞지. 안 그래?”
역시 내 아내야. 그래. 돌려 말하기 전법을 써야 했지.
“아니, 자네들 그게 아니지 않은가.”
“이 인간들이. 당신들 그러고도 부모야!?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는 건가? 그 부모에 그 딸년이로군! 딸을 위하지 않는 건가?”
드워프는 태클을 걸고 이흥부는 우리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슬쩍 이흥부의 딸을 보면서 느낀 건데. 저걸 저놈이 말할 자격이 있을까?
“아니, 당신에게만큼은 듣기 싫은데.”
“하! 부모로서 덜되 처먹었군!”
“딸 거지꼴로 만드는 것보다야 뭐.”
“지금 나와 한번 해 보자는 건가?”
나는 평화주의라서 싸우기는 싫어하지만, 딸을 거지꼴로 만드는 인간은 가만히 둘 수 없지.
“자네. 저 사람은 이흥부라고 하네. s급 헌터야!”
드워프가 자꾸 옆에서 막으려고 든다.
아니, 내가 더 강한데?
“당신 여기서 저 사람과 싸울 셈이야? 여기 아카데미야?”
레이첼이 말리지만, 여기서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S급 헌터라는 자가 자기가 강해지기 위해 딸을 굶기다니! 심지어 저 아이는 미래가 기대되는 귀여운 흑발의 소녀다!
저 나이 때의 여자아이들은 특히나 우습게 여겨지면 곤란한데. 저러다 아카데미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다.
“한 번 해볼까.”
“자네 미쳤나? 저자는 흥부네! 자네같이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사내가 이길 리가 없지 않은가!”
와, 이 드워프 어마어마하게 실례의 말을 하는데. 이 인간부터 두들겨 팰까?
아니다. 일단은 흥부부터 적당히 패자.
상대는 청와대 소속 헌터다. 저쪽은 나를 함부로 못 건드린다. 하지만 조금은 자극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훗. 내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저 인간보다 앞섭니다.”
“뭐라고?”
흥부는 내 말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원래 무식한 인간이다. 그런 주제에 제 방식대로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다.
정작 가족들의 불행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이다.
흥부란 인물이 작가 유은하가 만들어낸 너무 아쉬운 인물이 아닐까.
동화 속 흥부와 달리 이흥부는 그야말로 무식하고 이기적인 존재다. 놀부와 다를 바가 없다.
“한마디로 딸을 거치꼴로 만든 당신 같은 남자에게는 지지 않는다 이런 말이지.”
“호오,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자!”
퍼억!
흥부의 맨주먹을 너무도 쉽게 막았다.
역시 용용이는 막을 수 없는 것이 없다.
방구석에만 있던 레이에게 아버지의 잘난 모습도 보여줘야지.
“아이고, 내 이럴 줄 알았. 응?”
“제 남편 힘 하나는 강해서 아무한테도 안 져요.”
레이첼이 나를 아낌없이 암, 나를 더 찬양하라.
“아니, 저건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놀라는 드워프 부부와 당당한 표정의 레이첼. 그래. 그렇게 남편을 응원해주면 된다.
“원래 저런 양반이에요. 신경 쓰면 지는 겁니다.”
“우왕! 아빠 최고!”
후훗. 레이야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이 아빠의 힘이다!
가난의 힘으로 싸워야만 하는 이흥부 같은 졸부와는 다르다.
우두둑!
아예 뼈까지 우두득 구기는 소리를 내자 이흥부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후우, 이것 보세요. 제가 당신보다 딸을 더 사랑합니다. 저 나이 때의 어린 딸을 저리 거지처럼 키우는 당신은 아비의 자격이 없어!”
“내가 괜히 이러는 줄 아냐? 능력을 보전하기 위해서!”
“그런데 나보다 약하네?”
어쩔까? 나보다 약한데.
내가 조롱하듯이 흥부의 주먹을 꽉 쥐어 일그러뜨리자 흥부가 얼굴을 잔뜩 구겼다.
“!!”
“이야, 말로도 지는데, 힘에서도 지니 상당히 쪽팔리시겠습니다?”
흥부가 제법 힘을 주는 모양이지만, 나는 간단하게 제압했다.
“어떻게 나를 근력으로?”
“뭐 적당히 하시죠. 청와대 소속이 이러는 것도 쪽팔리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체면을 위해서라도 물리는 것이 좋은데. 말했듯이 이흥부는 무식하고 우직한 성격이다.
즉, 답이 없는 성격이다.
“내가 청와대 소속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인터넷에 내 이름이 거론된다 해도 상관없어! 내게는 딸이 가장 소중하다!”
흥부는 복도에서 그 두꺼운 몸으로 인정사정없이 나를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레이첼이 능력을 사용함과 동시에 한 여자가 흥부를 막아섰다.
“여보 그만 좀 해요!”
가만히 보니 이흥부의 마누라였다.
치킨무를 만들다 온 건가? 치킨 기름냄새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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