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186. 작가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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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얘 누구야? 분위기가 다르잖아?”
확실히 이건 좀 굉장히 낯설다.
최시우는 전회차를 겪고 이번 회차에서 낯선 유은하의 모습을 알고 있어서 지금의 유은하 역시 괴리감이 상당히 느껴졌다.
“너 누구야? 은하 몸 가지고.”
“음. 일단 저도 유은하입니다.”
“네가 유은하라고?”
‘일단’이 걸리기는 한다.
“네. 정확히 말하면 이중인격 중 하나라 볼 수 있겠네요. 원래는 밖으로 나서는 것이 귀찮은 방구석 작가입니다만. 지금 용용이가 이 모양이니 어쩔 수 없죠.”
이제야 알게 된 충격적인 소식에 히로인들은 눈을 끔벅거렸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
“네 말은 작가 유은하와 용용이 유은하가 존재한다는 거야?”
한수지의 물음에 유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용용이와 저는 어쨌든 같은 유은하라 보시는 것이 맞을 겁니다.”
같은 유은하라니,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럼 네가 왜 나온 건데?”
“이번 작품은 인과율에서 벗어난 것. 아마 나태의 죄악이 자기 성질 못 이겨서 나설 생각은 않고 헬게이트를 있는 대로 소환했습니다. 그것을 막아야죠.”
“막을 수 있겠어?”
“그래도 같은 몸인데 힘도 쓸 수 있겠죠?”
그래. 그 백염의 힘은 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한국에는 하정석이 있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 힘 썼다가는 유은하가 일본을 도와준 일 때문에 한일간에 또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일본에 은혜를 입히는 건 좋지만, 한국에 하정석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죄악과 싸우려면 한국과 일본도 친밀해야 한다.
만일에 하정석이 이번 일로 일본에 생색내고 뭔가 얻으려 하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아무리 시노하라 유즈키라도 그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유은하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작가 유은하는 나온 김에 충분히 서비스하기로 했다.
“네 말을 들어보니 그럼 백염으로 처리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와, 엄마가 진지해!”
한수지와 마그뉴트의 말에 피식 웃은 작가 유은하가 손을 들자 재질을 알 수 없는 빛나는 펜이 떠올랐다.
작가 유은하는 그 펜을 들어 허공에 다른 이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빠른 속도로 글을 썼다.
“[헬게이트가 일본의 상공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나타났다는 말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일본의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괴수도, 악마의 그림자도 없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에 있던 헬게이트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잠깐 보였던 것처럼, 물리적으로 사라진다거나 그런 것이 없이 존재감 자체가 지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하늘은 정말 깨끗해졌다.
“““…….”””
히로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도 계속 떠올라 하늘을 뒤덮던 헬게이트가 전부 사라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작가라고.”
“끝이야?”
“아뇨. 지금 좀 살짝 화났습니다.”
이 장난질을 친 방구석 찐따를 그냥 둘 수는 없지.
작가 유은하는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헬게이트 장난을 친 못된 장난꾸러기는 구속된 채 내 앞에 떨어진다]”
그녀가 문장을 적음과 동시에 하늘에서 키 160 조금 넘는 소년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나태의 죄악 케일이었다.
“크으읏?”
“인과율을 망치면 나만 귀찮아지는데. 잘도 저질러 주셨어요. 이 방구석 히키코모리씨.”
유은하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케일에 다가가 케일의 목을 꽉 쥐고 들어올렸다가 내던졌다.
케일을 잡은 작가 유은하는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기존의 유은하의 힘과 폭력성을 알고 있는 히로인들에게 작가 유은하의 모습은 기이했다.
자신들이 아는 유은하와 달리 고상한 느낌이면서 또 무차별적으로 때리는 모습은 무섭기도 했다.
퍽! 콰직!
“그러니 용용이가 손바닥 위에 올려줄 때 정도를 아셨어야죠. 이게 공포 영화도 아니고 인형 극장에서 인형이 멋대로 극장 밖으로 탈출해서야 쓰겠습니까?”
“컥. 커헉! 큭! 젠장! 너는 또 누. 켁!”
“뭐, 나는 이 정도만 해드리죠. 어차피 당신에게 천벌을 내릴 것은 내가 아니라 용용이가 될 테니. 썩 꺼지세요.”
퍽! 쿠당탕!
작가 유은하에게 얻어맞고 바닥을 구른 나태의 죄악 케일은 분한 표정으로 능력을 사용해서 재빠르게 사라졌다.
케일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딱 여기까지. 그렇다면 남은 것은 용용이에게 넘기는 것이 낫다.
아마 여기서 자신이 케일을 잡는다면 틀림없이 케일을 수컷 탈락시킬 완벽한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니까.
경악하는 히로인과 신선조들을 훑어보면서 작가 유은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도 적당히 잘 처리했네요.”
자기들이 아는 유은하와는 다르지만, 한층 여유롭고 뭔가 스마트하게 적을 두들겨 패는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혹시 신은 아닐까 하고. 그냥 허공에 문장을 적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헬게이트를 지워버리지 않았나.
"죄악은 잡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레이나는 케일을 그냥 살려보내는 것에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다 용용이의 계획이 있으니까요. 제가 방해하면 곤란해요."
“뭐야, 그 엄청난 힘은? 사실상 신 아니야?”
한수지가 묻자 작가 유은하는 피식 웃었다.
뭐 신이라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현실에 자주 개입할 수 없다는 거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몸을 용용이에게 넘겨준 시점에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 대격변의 역사도 지울 수 있어?
“안타깝게도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개변된 것’이지 대격변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 힘 한 번 사용하면 저도 현세에 오래 있기 힘듭니다.”
대격변은 자신이 직접 조작한 것이 아니다.
아지다하카를 만들었더니 물 흐르듯이, 대격변이 일어났다.
반강제로 수정할 수도 있지만, 세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간만에 나온 바깥 공기를 즐겨볼까.
작가 유은하는 히로인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뭐 그래도 잠깐은 이 짧은 휴식을 즐길까요.”
“유은하는 언제부터 이중인격이었어?”
가장 궁금해 하던 최시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부터라, 말하기 복잡하지만 말하는 것이 좋을까.
“용용이 유은하는 사실 제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라 보는 것이 맞겠네요. 그래서 그녀는 탄생했습니다. 시우 양이 뭘 궁금해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유은하'는 용용이가 맞습니다.”
작가 유은하는 손을 가슴에 모았다가 꽃이 피는 것처럼 손을 움직였다.
히로인들은 자신들이 아는 유은하와 달라 꽤 당황했다.
“그 다른 인격은 유은하는 아지다하카야? 어떻게 한몸에서 분리된 두 개의 인격인데 능력이 달라?”
“그 점에 대해서는 말하기 복잡합니다. 자세한 사정을 말할 만큼 지금 제게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래도 히로인들은 유은하가 이전 아지다하카처럼 세상을 파괴할 건 아닌지 다소 불안해하는 것 같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히로인들은 유은하가 세계가 질려 파괴한다고 하면 따라오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유은하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겠지.
작가 유은하는 그 걱정을 덜어주기로 했다.
“확실한 것은?”
“용용이는 아지다하카처럼 세상을 멸망시킨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당신들을 너무 좋아하죠.”
너무 좋아한다.
육체적으로나 캐릭터 설정으로나. 그러니까 히로인들이 싫어할 짓을 할 인물도 아니다.
게다가 여자들도 예쁘기만 하면 취하는 것이 용용이 유은하다.
세계를 멸망시키면 여자를 어디서 얻는다는 말인가?
“너도 레즈야?”
“음. 저는 용용이처럼 과하지는 않지만, 당신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용용이와 같습니다. 말했듯이 저는 안에 있는 인격이에요.”
그 말에 한수지가 호기심이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기들을 좋아해 줄까?
“그럼 우리 좋아해?”
“네. 많이 좋아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할까. 엄청 많이 좋아한다.
용용이 유은하가 가진 마음은 자신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
“그 용용이 유은하처럼?”
“네. 저도 이왕이면 하렘을 지향하고 싶습니다. 여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겠어요?”
여자는 많을수록 좋다니.
“와 그 점은 똑같네요.”
“음, 레이나 씨.”
작가 유은하는 레이나를 진지하게 쳐다본다.
그 눈빛에 레이나는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원래 자신이 아는 유은하와는 너무 다르니까.
“뭔데 그리 빤히 바라보는 거예요?”
“혹시 모녀덮밥할 의향 없으세요? 저도 안에서 다 보고 있는데.”
작가 유은하의 말에 레이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이 유은하도 유은하다웠다.
저렇게 정중하게 부탁한다고 해도 봐줄 수 없다.
“아, 나와 엄마가 용용이 유은하 앞에서 앙앙거리는 걸 보고 싶으시다?”
“넹.”
“썩 꺼져요!”
역시 실패일까. 아쉽지만 용용이가 더 고생해줘야 할 것 같다.
“음. 아쉽네요. 용용이도 이제 좀 케어 된 것 같으니 어쨌든 다음에 또 봐요.”
그 말을 끝으로 작가 유은하는 눈을 감았다.
* * *
익숙한 천장이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또 어디인가.”
“장난치지 마세요. 용용씨.”
혼자 삼류연극을 찍고 있는데, 눈치가 없는 우리 작가께서는 고상하게도 차를 마시고 있다.
“아니, 나 갑자기 쓰러져서 말이야. 잠을 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이번에 힘을 너무 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음, 유즈키에게?”
그건 나도 기억나는데 설마 이 정도일까?
“그게 가장 크죠. 유즈키는 단신으로 오니를 이길 정도로 강한 각성자입니다. 심지어 그 사천왕 오니의 코어가 삽입되었죠? 아예 유전자 수준에서부터 유즈키를 오니의 코어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당연하죠.”
“이런 이런.”
최강의 아지다하카라도 역시 그건 힘든가.
유전자 수준에서부터 바꾸다니. 그냥 마력을 때려 녛었을 뿐인데 이만큼 힘이 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상대가 나태였잖아요. 헬게이트들 일일이 작업하고 동쪽을 정화하면서 힘을 많이 썼어요. 당신이 강하다고 하나 상대가 죄악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음, 그렇지?”
“그래서 케어할 겸 당신을 여기 둔 거예요. 좀 쉬라고.”
좀 쉬라니. 나는 지금 준비만전이다.
“잠깐, 헬게이트는? 하늘에 엄청 많던 그것들!”
“아, 그건 제가 지웠죠.”
“그래. 네 권능이. 어? 그렇다면.”
잠깐, 설마 그렇다면 내 몸을 썼다는 소리인가?
아니지. 원래는 작가 유은하의 몸이니 화를 낼 수도 없구나.
“네. 제가 잠시 몸을 썼죠. 히로인들 반응이 아주 재밌었어요.”
대체 뭐라고 했길래 히로인들 반응이 좋아?
설마 내 히로인들을 덮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리 작가 유은하라도 그런 건 참지 못한다.
“아니, 너무한 거 아니야?”
“인생이 다 그런 거죠.”
그렇게 나 몰라라 하면 내가 너무 화가 나거든요.
“잠깐 설마 그럼 나태도?”
나태는 안 된다. 나태만큼은 내가 앞에서 열심히 따먹어줄 생각이란 말이다.
“나태는 내버려 뒀습니다. 나태는 당신이 처리하고 싶겠죠?”
“응. 그야 그런데.”
그놈 앞에서 개처럼 박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 마력 씨로 수정하는 거지. 나태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눈앞에서 괴수에게 씨가 뿌려져 수정하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가세요. 가서 놈 앞에서 요하나를 마음껏 따 먹어주세요.”
“역시 이래야 작가님이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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