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화 〉 279. 마지막 파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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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너는?”
뻔한 걸 묻나.
이제 저 쓰레기 같은 놈을 미국에 있는 게이트에 밀어 넣고 끝낼 생각이다.
“거기 밀어 넣고 올 거야.”
“그렇게 되면 저놈은 혼자 그 세계에서 대격변을 일으키다 죽는다는 건가.”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지만. 아무리 저놈이라도 그런 식으로 혼자 죽으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최후의 발악이라는 것도 하겠지.
조금 귀찮을 뿐.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거지. 그러니 나만 믿어. 넣기만 하면 되는 거라 내가 위험할 일은 없어.”
사실 정확히 말하면 거기서 두들겨 팰 생각이지만. 걱정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알겠다. 네 손에 한국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걸 잊지 말고.”
“응.”
“유은하! 아무리 네년이라도 나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레오는 어느새 그 몸이 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내 파편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지 몸이 검게 침식되면서 변신하기 시작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변신을 기다려줄 만큼 착하지 못하다.
“용용펀치!”
있는 힘껏 명치를 후려쳤다.
콰지지직!
“크흑?”
“원래 변신 시간 따위 주지 않는 게 내 법칙이라서.”
“이런 비열한.”
“여기까지 쳐들어온 새끼가 감히 비열을 입에 담네. 미쳤냐?”
한 번 명치를 후려친 상태에서 다시 몇 대 더 후려쳤다.
콰직! 퍼억!
꼴에 아지다하카의 파편을 가져왔다는 놈치고 이미 최시우랑 유진석에게 잔뜩 양념이 되었던 놈은 나한테 그대로 흠씬 두들겨 얻어맞고.
“케이트 너로 정했다!”
케이트를 사용해서 단숨에 멀리 보내버렸다.
그곳은 바로 미국에 연결된 게이트. 고대인의 세상이었다.
“후우. 자,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유은하. 네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뭘 그런 칭찬까지 하고 그러시나.
오히려 죄악들이 바보였던 거지. 최시우가 전회차에서 말아먹은 것은 그 무식한 뇌를 커버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지.
“큭큭큭. 정말 바보 같은데.”
“뭐라고?”
“나 폭식이야.”
“폭식이라고? 그런데 대체 어째서.”
어째서긴 뭐가 어째서야. 그야 죄악 편에 있으면 될 거리도 안 되니까 그렇지. 바보인가.
그럼 슬슬 약을 올려볼까?
내 파편 가지고 얼마나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하여 최시우는 색욕이지.”
“그런 네놈들이 대체 왜!”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대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 그야 그렇겠지. 세상 멸망하면 뭐 하고 노는데? 너희들 대가리 딸리니 뭐 새로운 세상도 못 만들 테고.”
“그걸 말이라고.”
이게 말이 아니면 소인가.
고작해야 작가 유은하에 생겨난 떨거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이 아니면 뭔데? 이럴 바에는 그냥 인간들 편에서 너희들 잡고 민심 얻는게 낫지. 안 그래?”
“크아아악 죽여버리겠다!”
그 훈남 레오가 이 모양이 되다니. 상당히 화가 치밀기는 했나 보다.
그러니까 나는 더 흠씬 두들겨 팼다.
빠지지직
“크하아악!”
“그런데 너 그건 제대로 쓸 줄 아냐?”
내 파편을 네놈 따위가 어떻게 쓸 건데?
레오는 내가 보란 듯이 파편을 사용하기 위해 마기를 흘려 넣지만.
“뭐야, 어째서 반응을 하지 않는.”
“그야 당연한 거지. 그 본체는 나니까 말이야.”
바로 앞에 내가 있는데 어떻게 쓸까?
“본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말했듯이 그 본체는 나야. 즉, 아지다하카라고.”
“말도 안 돼.”
뭘 그리 세상 망한 표정을 지을까.
어쨌든 틀린 건 전혀 없는데.
나는 아지다하카고 더해서 폭식이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 불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증거로 네가 가진 파편이 나한테 반응하잖냐?”
“어떻게 이런.”
“그러니까 너는 여기서 조질 운명이다. 이 말입니다.”
다시 한번 그 멍청한 얼굴에 용용펀치!
빠지지지지지직!
아마 꽤 어이없겠지.
설마하니 그간 자신을 엿먹이던 존재가 아지다하카일 줄은 말이야.
말이 대격변이지. 내가 막은 이상 이놈은 인생이 실패한 것이다.
“어. 어째서. 아지다하카라는 놈이 대체 왜!”
아니, 그렇게 따지면 할 수 있는 대답이 많지 않은데.
그야 간단한 거 아닌가.
오히려 이 간단한 이치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이놈이 불쌍할 따름이다.
“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느냐고? 그야 간단하잖아.”
“뭐?”
“세상에 보지가 많으니까.”
딱 그 정도일 뿐이다.
어째 레오의 얼굴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 * *
송도
송도는 레오의 괴수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펜트하우스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이첼과 마그뉴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우와. 이거 숫자 너무 많은데.”
“그러게. 다 막을 수는 있겠지만 송도가 엉망이 될 거야.”
여기만이 아니다.
일단 흥부네에 가 있는 레이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웈드드드드득
“이건 무슨 소. 어? 서지연?”
“어·엄마. 저쪽 엄마도 취향 특이해졌는데.”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것은 자기가 들어가 있던 고치를 야무지게 물어뜯고 있는 서지연이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듯. 고치에 달린 눈알을 뽑아 입에 넣어 먹거나 껍질을 야무지게 먹는 모습은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음. 이거 확실히 기분 좋네. 왜 괴인 타락하는지 알 거 같아.”
“드디어 된 건가?”
바뀐 서지연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기존에도 피부는 하얬는데 조금 더 하얗고, 눈에는 크로스 헤어 같은 것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은하가 보면 바로 벗길 정도로 야릇한 눈길까지.
하복부에 있는 자궁문신은 그녀가 온전히 유은하의 괴인이자 암컷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괴인으로 사는 것도 좋을지도.”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닌데. 저길 봐.”
당장은 뚫리지 않고 있는 거대한 괴인의 바다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게 레오의 괴수들?”
“알고 있네?”
“고치 안에서 전부 들었으니까.”
서지연은 고치 안에 있었어도 전부 들어 알고 있다.
레오가 쳐들어온 것도. 그리고 유은하가 옆에서 사랑을 계속 속삭인 것도.
고치 속에서 유은하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괴인으로 진화한 서지연은 마침내 이렇게 고치를 찢고 나올 수 있었다.
다만 영양분 보충을 위해 자신이 나온 고치를 먹는 것뿐이다.
“경황이 없겠지만 지금 저거 당장 처리해야 하니 좀 도와줘.”
“간단하잖아.”
서지연은 가만히 저 침입자의 파도를 응시했다.
그리고.
찰칵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전부 사라졌다.
““어?””
“간단하게 찍으면 그만인걸.”
순식간에 전부 사라졌다.
“어떻게 한 거야?”
“말 그대로의 의미. 나는 더 이상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거든.”
그렇게 말하는 서지연은 어느새 마기로 옷을 만들어 걸쳤다.
생각보다 강한 존재의 등장이었다.
그저 눈을 깜박이는 정도로 적들을 격멸한 지연은 다시 고치에 있던 눈알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 * *
“아니, 뭐 이런 미친.”
나한테 처맞던 레오의 모습이 기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크허어어어어억!”
“뭐야. 이거 미친 건가?”
처음 설정이나 컨셉 따위는 삭 다 잘라먹고 갑자기 몸이 뒤룩뒤룩 살이 찌거나 마르거나. 막 변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끼고 있었지.”
내 파편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다.
아주 쌩쇼를 부리더니 지금은 뭐 연체동물처럼 변했다.
어휴 이거 답이 없네.
“오히려 쉬운 건가?”
“끄어어어억. 으으으으으윽.”
“뒤져 병신아.”
빠각!
일단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쳤다.
“그으윽. 그르르 흐윽. 아악. 으.으으 내가 사라져간다?”
“어?”
콰아아아아아아
몸이 점점 날씬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여자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오. 이게 바로 TS라는 걸까?
변신형 TS 말이다.
“응? 잠깐. 뭐야 이거.”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는 레오의 몸이 마기에 덮일 무렵. 나는 어떤 환각을 보게 되었다.
지구가 아니 세상 어딘가의 깊은 심연.
형체도 뭣도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 따분하고 답답해.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지?
그것은 차갑고 고요하면서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
오랫동안 원주인의 조각으로서 존재했던 파편들이 심연의 정신체가 되어 한데 모였다.
얼른 하나로 합쳐야 하는데. 그래야 본래의 모습이 되지.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 있어.
우리 사랑스러운 작가님이 계신 세상일까.
이제 어느 정도 힘을 키웠어. 그러니까 하나가 되어야지.
이렇게 한데 모이기 참 오래 걸렸네.
어쩔 수 없지. 본체가 작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조각내 뿌린 게 많으니까.
자, 그럼 이제 시작하자.
파편들은 한데 어우러져 합쳐지고 있었다.
“그런가. 이것들은 내 일부?”
“아니. 말은 바로 해야지.”
“어. 레오 너 완전히 나와 비슷해졌네?”
남자였던 레오가 완전히 변했다.
아주 나랑 똑같은 모습으로.
어디서 감히 죄악 따위가 나와 견주려고 변해?
“레오? 제 주제도 모르고 나를 폭주시키려 했던 이 몸 말인가.”
“뭐야. 갑자기 너 무서워졌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음산해졌다.
그야말로 기존 아지다하카의 모습과도 같았다.
즉, 초기의 내 모습.
“큭큭. 바보네. 너.”
빠악!
“크흑?”
가짜가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건 조금 아픈데? 뭐야. 내 모습이 된 탓에 강해진 건가?
나를 때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가만두지 않겠다!
“딱 봐도 각이 나오지 않아?”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의 의미야. 아지다하카는 나라고.”
뭐? 아지다하카는 자기라고?
“무슨 그런 개소리를.”
어디서 남의 자리를 꿰차려고!
그것도 감히 내 자리를 차지하려 하다니!
화가 치민 나는 이 가짜를 후려쳤다.
뻐억!
어차피 서로 같은 용용이라면.
“끄아아악?”
“너 죽고 나 살자. 이 샹년아!”
퍼어억! 빠아악!
용용이 역사상 유래없는 난타잔의 시작. 감히 내 자리를 빼앗으려는 이 건방진 년을 나는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대로 이 본체라고 주장하는 가짜의 머리채를 잡아다 내리찍었다.
콰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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