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280. 용용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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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삭빵. 시발련아?”
“나도 그간 당한 게 많아!”
퍼어억!
가짜 아지다하카가 반격을 가했다.
어디서 가짜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진짜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당하긴 뭘 당해? 다른 세계에 퍼질러있던 주제에!”
“아직도 진실을 모르네. 슬슬 깨달을 때 아니야?”
슬슬 깨달으라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레오가 죽었으면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빠아악!
어차피 힘만으로 치면 내가 이년에게 질리 없다.
어디서 또 나타난 파편인지 몰라도 늘 그렇듯 여기서 이 파편은 나에게 흡수당할 것이다.
본체와 분체의 차이가 어떤지 보여줘야겠지.
“크으윽. 이렇게 무식하게 힘만 키우다니.”
몇 번 두들겨 맞은 이 망할 년은 피맺힌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래 보여도 폭식의 힘까지 손에 얻었다 이 말이야.”
그간 먹은 게 많으니 그만큼 강해졌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죽는 일은 없다는 소리다.
설령 아무리 얻어 맞는다 해도. 본체가 분체에게 지는 일 따위는 없다.
“그렇다 해도 너는 나를 이기지 못해!”
콰과과과앙!
어느새 파편 덩어리는 한참 뒤로 피했다.
그새 저만큼 힘을 키워냈다고?
“내가 진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고작해야 분신 따위에게 질 리 없겠지?
“처음에는 그냥 조용히 흡수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너무 억울해서 말이야!”
“억울하다고?”
억울하기는 뭐가 억울해? 억울하다면 두들겨 맞은 내 쪽이 더 억울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얼른 쓰러뜨리고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쯤은 지연이도 일어나지 않았나.
얼른 이 구질구질한 싸움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데.
“너와 내가 누군지는 깨달아야 할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소.”
“자기 자신도 모르는 년한테 당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아지다하카는 나야. 이 멍청한 년아!”
반박하기도 전에 내 볼따구니로 주먹이 날아왔다.
빠아악!
“케에엑?”
아직도 이런 힘을 가지고 있어?
이거 평범한 파편이 아닌데? 정말로 어쩌면 본체인 나 이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강함.
아니지. 아닐 거야. 설마 정말로 저년이 본체일 리는 없어.
저게 본체면 그럼 나는 뭔가.
이상하지 않나.
퍼억! 파악!
어째서 나는 ‘이것’에 저항할 수 없지?
“거봐. 결국, 너는 저항다운 저항도 못 하지. 네가 정말 아지다하카면 여기서 나를 막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맞다. 막아야 한다. 싸워야 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 지금 싸우려고 해도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전력을 내기 힘들다. 대체 왜 이러지?
마치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빌어먹을 년이 자꾸.”
“네가 정말 본체면 나를 제대로 흡수해야지? 안 그러냐?”
“닥쳐!”
안 된다. 더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네가 나를 흡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내가 본체고.”
“그럼 내가 파편이란 거야?”
아니다. 내가 파편일 리는 없지.
이미 파편이 나를 만났고, 나를 본체로 인정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파편일 수가 있을까.
내 물음에 가짜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귀에 속삭인다.
“너는 나를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라는 거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라니. 그럼 나는 파편도 뭣도 아니라는 거야?
“이제 무대에서 내려올 때야. 유은하.”
가짜가 내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그 순간, 머리에 빛이 울렸다.
파키이이잉!
갑자기 머리에 방대한 양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 * *
나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심장병이 있어서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검사받으러 다녀야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생 무렵에는 친구들도 사귀면서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체육복이 사라졌네.”
직접 체육 시간에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체육복을 입지 않으면 점수를 깎인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정도는.
카라를 올려 애써 숨기고 있으나, 앞자리에 있는 친한 친구가 가져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은 체육복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입고 있는 체육복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는 집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가 가져갔는지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일로 친구 관계를 깨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대놓고 물어보지 않고 저 스스로 알아서 두기를 바라면서 반에서 공론화시켰다.
체육복이 사라졌는데 누가 가져갔을까?
담임에게는 말하지 않고.
그런데 그 친구는 체육복을 내놓지 않았다.
네가 어디다 잃어버린 거 아니야?
심지어 마치 자신은 관계가 없다는 듯 비웃었다.
최소한 몰래 내 자리에 두기를 바랐는데 그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나는 그 자리에서 체육복을 잃어버린 바보가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아 친구들과 자주 놀 수 없어 친구도 소수였던 내가 동정을 받는 일은 없었다.
소설에 관심을 둔 것이 학교생활에 지친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다양하게 소설을 읽기만 했었다.
직접 집필을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되어 웹소설 사이트를 알게 된 이후였다.
몸도 안 좋으니 자연스럽게 이쪽에 중점을 뒀다.
처음에는 라이트노벨을 시작으로 성인소설도 써보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한동안 알바를 하거나 웹소설을 연재하다가 편당 결제 방식인 사이트에서 대체 역사 소설을 계약하기도 했다.
아쉬움이 가득한 한국사는 대역물 소재로 쓸만한 소재들이 많았으니까.
물론 문제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고증을 지적하거나 그냥 까 내리기 바쁜 댓글들이 자주 보였다.
무엇보다 매번 역사 공부를 해야 했고.
세 작품째. 계약이시네요. 축하드려요!
대역물만 세작품 째.
사실 그다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계약 자체는 의미가 깊지만 결국 다른 기성작가의 잘 쓴 작품 하나를 이기지 못했으니까.
백편 쯤 연재하면 다른 플랫폼으로 런칭을 시켜주지만. 그때만 반짝일 뿐이었다.
사이트에서 수익의 60%. 출판사에서 20% 가져가는 것은 꽤 컸다.
슬슬 질리던 참이었고,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었다.
건강하고 강한 여자애가 먼치킨으로 세상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치면서 살아가는 것.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실은 뒤에서 흑막 같은 최종 보스 같은 느낌의 캐릭터.
더해서 백합이면 좋았다.
내가 여자를 좋아하니까.
내가 창작한 또 다른 나. 그것이 유은하. 아니. 유은하 그 자체는 나 같은 캐릭터였다. 우연히 신의 힘을 가지게 되어 자신이 이상적으로 바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것 뿐.
그게 바로 아지다하카. 용용이 유은하.
다양한 설정을 담았는데. 용용이 유은하에 의해 세상은 대격변을 맛보게 된 탓에 내 실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용용이 캐릭터에 부여한 것이 큰 문제였다.
그래. 나는 그때 내 이상보다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더 앞섰다.
왜 나는 이런 몸일까.
왜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건강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연약한 너를 대신해 내가 세상을 파괴해줄게.
어쩌면 그때 그것을 바랬을지도 모른다.
이미 작가의 몸이 되면서 건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 주제에.
그 결과 대격변은 일어났다.
그래서 아지다하카를 없애버렸다.
그리고 용용이는 다른 세상에서 전생시켰다는 설정을 넣었다.
그 세상에서 지금의 내가 만든 모든 설정을 인터넷 소설로 보게 한 것이 아카데미의 신검무쌍. 제목도 대충 지었었다.
다시 시간을 지금으로 돌려서. 결과만 말하자면.
“그랬던 거였네.”
눈앞에 있는 존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용용이가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그 용용이가 일으킨 대격변을 이유로 나는 나 자신이 용용이가 되려고 했었다.
지금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백화교 단장 유은하. 히로인들 사이에 용용이라고 불리는 나는 사실 아지다하카가 아니었다.
작가 유은하. 그 자체.
뒤에서 내가 이상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밖에 못했던 나.
아카식 레코드라는 새로운 설정을 만들어 나 자신을 아지다하카라고 세뇌하고 자기합리화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심상 세계도 늘 이상했지.
어째서 침대에 누울 때 보면 항상 책상에 아무도 없었을까?
어째서 크레이지 사이코 레즈비언인 용용이는 작가 유은하와 비비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했던 거지.
나는 심상세계에서 늘 혼자 있었다.
나는 그냥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이 모든 것을 ‘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어버린 채 나는 스스로 소설 속 캐릭터가 되었다.
모든 것이 픽션 그 자체.
내가 용용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전부 작가 유은하에 의한 설정.
“하.하. 하. 제법 유쾌했던 꿈 같네.”
“이제야 깨달았니?”
“역시 악역. 이렇게 잔혹하게 현실을 깨닫게 하다니.”
하여간 너무한 용용이다.
이런 식으로 현실을 깨닫게 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하지.
“잔혹한 것이 아니야, 원래 깨달아야 할 현실이지. 나 같은 게 뭐라고. 네가 나를 따라하고 흉내 내는 건데?”
“하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흉내 낸 것과는 조금 다르지.
“그렇다 해도 흉내 낸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것. 내가 궁극적, 이상적으로 바라던 나 자신은.”
“뭐?”
“한마디로 결국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이상성을 캐릭터로 만들어낸 것. 그러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이룬 꿈이란 거죠.”
그 과정에서 나는 그냥 용용이라는 타이틀을 빌린 것 뿐.
내걸 내가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나는 작가다. 그러니, 내 창작물을 내가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일까.
“그래서?”
“당신은 제게 선택을 강요할 셈이겠죠.”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뻔한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 현실을 깨닫게 해준 거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았겠지.
“그래. 잘 아네.”
“전처럼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제는 하나가 될 때라고 생각해요.”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용용이가 될 때라 할 수 있다.
굳이 작가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와 흡수하겠다고? 하지만 어째? 나는 그럴 생각 없는데.”
“쉽지 않을 텐데요?”
“우리 나약한 작가님이 뭘 어쩌겠다고? 나는 네가 능력을 쓸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인데.”
그래. 그럴 줄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내 창작물인 주제에. 내가 만들어낸 용용이 시험판인 주제에 감히 나한테 덤비겠다고?
하극상을 벌이겠다고?
나는 아지다하카의 팔을 잡아 꺾었다.
“창조주인 나를 죽이겠다고?”
“나약한 주제에!”
그래. 나약할지도 모른다.
나약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시도하는 것이 있지.
나는 레즈다. 그것도 크레이지 사이코.
“미안하지만. 나는 레즈야?”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멍청하구나. 내가 왜 이런 말을 할까.
크싸레에게 있어 먹잇감은 내가 창작한 또 다른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너라도 결국 암컷. 절정 시키는 거야 어렵지 않지.”
나는 손가락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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