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히로인을 공략함-300화 (300/331)

〈 300화 〉 외전­먼 세계의 이방인(2)

* * *

* * *

죄악이 토벌되고 시간이 좀 흘렀다.

슈에리도 이곳으로 옮겨 이제 완전히 완벽한 히로인 파티가 되어 매일 같이 주지육림에 빠져 살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러기도 뭐 했다.

어느날. 침대에 누워 폰을 보고 있는데 레이첼이 다가와 물었다.

“케이트가 좋기는 해도 그래도 매번 쓰는 건 불편하지 않아?”

“그렇기는 해.”

“이번에 내가 새로운 술식을 만들었으니 송도 밑으로 유적 전체를 옮기는 건 어때?”

유적 전체를 옮긴다라.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하정석이 아닐까.

“하정석이 지랄 떨 것 같은데.”

“그깟 새끼가 뭘 어쩌겠어? 애초에 서고가 있는 부분만 뜯어내면 그만이잖아. 그리고 대놓고 뜯어갈 것도 아니잖아.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고 말한 건 너야?”

“음. 그것도 그런가? 그런데 귀찮은데.”

어차피 하정석은 국뽕타락도 했고, 내가 많이 갖다 먹여줬으니 들켜둬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좀 귀찮은게 문제지.

“빨리해.”

“아. 넹.”

우리 마누라가 하라면 해야지. 어쩌겠어.

나는 케이트를 데리고 곧바로 엘프 유적으로 날아갔다.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 봐. 굳이 힘들일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작가 유은화지.”

매번 쓰는 것도 한계가 있지만, 어느 정도 소설은 쓸 수 있다.

나는 설정을 첨부했다.

­엘프 유적에 연결된 서고 이동장치는 내 뜻대로 온전히 이동시킬 수 있다.

술식이 박힌 유적 파편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가만히 유적을 보니 확실히 술식이 사라졌다.

그리고 방으로 다시 돌아와 서재로 갔다.

“자. 여기 설치하면 되겠지? 체중계처럼 옆에 처박아두면 될까?”

일단 서재 구석에 박아뒀다.

이제 저기로 가면 마음껏 서재로 들어갈 수 있지.

일단 시험할 겸 서고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음 늘 그렇듯 퀴퀴한 냄새가 나는구나.”

딱 오래된 냄새가 난다.

엘프 세계의 역사가 바뀌면서 여기도 멀쩡해진 줄 알았는데. 역시 쓸데없이 서고 자체가 방대하게 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리할 것은 싹 다 정리하고 이곳은 완전히 내가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 점이겠지만.

“응?”

치지직 치지지지직

서고 제어실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가만히 보니 통신기구에 불빛이 걸려있다.

누구지? 누가 전화를 한 걸까?

“뭐야. 내 몸이 불타고 있다. 하는 놈이 또 전화한 건가.”

이제는 좀 공포 분위기도 떨쳐낼 겸 싹 다 갈아치웠는데. 설마하니 아직 망해버린 엘프 세계와 전화가 연결되어있나?

일단 가만히 들어보기로 했다. 떠 어떤 것이 흘러나올지 궁금은 하니까.

물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지.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여기는 용용이.”

자, 누가 나올까?

[“용용이? 용용이는 뭔데 시발.”]

?

뭐지? 뭔가 우리 말로 말하는 욕이 들려오고 있는데. 설마 한국 어딘가와 연결되었다던가?

좀 멍청하지만 좀 떠보자.

아니,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너무 예뻐. 엄청나게 따 먹고 싶은걸.

작가 유은하인 나와 음습한 욕구의 용용이 자아가 융합되면서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 꼴리기 마련이다.

보통 남자들도 예쁜 목소리를 들으면 반응하지 않나?

그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그럼, 여기서 한국산 용용이로서 할 말이 있다.

“여기는 서고. 서고. 그쪽은 누구야? 두유 라이크 김치?”

두유라이크 김치.

제대로 마케팅 성공한 우리의 식품 김치!

좋든 싫든 다양한 방식으로 마케팅이 한민족의 음식!

설령 한글을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도 이걸 모를 리가 없지.

[“여기는 아르메리아 제국의 올리비아다. 그 서고는 어디인가?”]

아르메리아 제국? 거긴 뭐 하는 동네지.

적어도 지금 시대에 제국이라 일컬어질 만한 나라는 없다.

굳이 있다면 백화 자치령이겠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용용 제국이라고 칭할 수 있는 세력.

나는 당당히 밝힌다!

“여기는 한국. 서고를 옮겨놓은 송도 신도시. 또 다른 말로는 과거 송도 신도시와 구분 짓기 위해 용용도시.”

내 말에 저 통신기구 너머로 침음이 흘렀다.

[“한국? 송도 신도시? 뭐야. 시발 이상하잖아. 뭐 하는 동네야.”]

송도를 모른다고!?

이거 조금 슬픈데. 이 시대에 송도를 모른다는 것은 세계적인 간첩 새끼다.

왜냐? 세계를 구한 것은 나고, 백화교다. 백화교 자치령의 수도는 송도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천생 내 또래 여자인데.

다시 말해서 인터넷을 하는 젊은 세대라면 모를 리가 없다.

“아르메리아 제국이라니. 대체 어느 판타지 세계야? 장난해? 너야말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판타지? 야. 엄연히 있는 나라를 네가 뭔데 판타지 취급을 해?”]

살다 살다 그런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구만. 이 아가씨 안 되겠네. 내 앞에 있었으면 보빔으로 혼내줬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말투가 아무리 봐도 일반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조선족이나 중국인 같지도 않고. 뭔가 이상한데. 이런 건 떠볼 필요가 있다.

[“갑자기 화가 치미네. 조선족이나 중국인이 뭐 하는 인간들인지 모르겠지만 제국인은 반족 혼혈이다! 아까부터 용용이든 한국이든 뭔 개 잡소리 하고 있는데. 대체 거긴 뭐 하는 곳이야?”]

잠깐. 그렇다면 이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금 이 전개를 모를 리가 없다!

판타지 세계는 실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 엘프 세계만 해도 판타지 세계고. 세부적인 설정은 갖다 박지 않았으니 그런 세상이 좀 있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다.

일단 성격은 마음에 드네.

“아까부터 왜 이리 화를 내는 거야? 아무튼 여자 같네. 예뻐?”

[“근데 아까부터 듣자 듣자 하니 화나게 만드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국이 아니라면 자세하게 설명해.”]

좋아. 설명해 달라면 대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어음. 여기가 30억? 40억? 명이 사는 지구에 있는 한반도의 한국. 아니, 지금은 만반도인가. 만주랑 한반도니 아무튼. 한국의 송도야.”

[“지랄하네. 당장 대륙 제일의 국가인 제국 인구만 해도 5천만이 될까 말까 하는데 별 하나가 30억? 40억? 말이 되세요?”

“그러니까 별이라니까. 한국 자체 인구는 이것저것 포함해서 대충 3천만은 넘어.”

대륙 제일의 국가인 제국 인구가 5천만이 좀 안 되면. 뭐 저쪽 세상은 문명이 그렇게까지 발전한 것은 아닌 걸까.

아니면 인구수를 조절해주는 인류의 적대 세력이 있다던가.

마왕 같은 거나 뭐. 일단 확실한 것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어. 너 맘마통 크지? 다혈질인 걸 보니 힘만 쓰는 직업을 가졌을 것 같고.”

살짝 단순 근육이라는 느낌.

혹시 막 헬스 좋아하는 여자 아닐까?

판타지 세상이라면 근육 전사로 몬스터들 쓸어버린다던가.

[“마법사야! 그보다 맘마통은 또 뭔데?”]

마, 뭐야 예상외로 전문직업이었네. 그렇다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역시 여자의 그 날이라는 걸까?

“뭐긴 뭐야 젖가슴이지.”

전화가 끊겼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네. 좀 놀아줄 수도 있지. 이런 걸로 끊다니. 음.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지 않나?

혹시 뭔가 등록되어있는 정보가 없을까?

아카식 레코드라면 지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르메리아 제국이란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아르메리아 제국은 카니아라는 세상의 대륙 제일 인족국가입니다. 마스터와 연결된 여자가 있는 시대의 제국은 인류와 마왕군과의 전쟁이 치열한 시기로 마왕은 한 영웅의 활약으로 제거된 시점입니다.”]

역시 진부한 마왕과 용사 설정인가.

짐꾼 짓을 했던 시기가 떠오른다.

“잘도 그런 거까지 아네. 그럼 조금 전 여자는 누구인지 알아?”

[“마왕과 용사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현재는 아르메리아 제국에서 태사와 성녀와 관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상황에 따라 그녀는 마왕보다 더한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복잡 미묘한 존재가 있구나. 원래 단순한 악보다 그런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것이 더 꼴리는 법인데. 게다가 마왕이 죽은 시점에서 마왕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 답이 나오잖아?

아까 목소리는 정상이지만 사람의 본질은 사실 다른 법이지.

“호오. 그렇다면 순수악이 될 수 있다는 소리인가. 사진은 볼 수 있어?”

사진이 중요하지. 내가 꼴리는 외모라면?

[“현재 아르메리아 제국. 성녀 올리비아의 몽타주를 그려보자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뭔가 머리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역시 아카식 레코드! 완벽하다!

그리고 나는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들었다.

응? 나랑 같은 백발?

게다가 눈은 새파랗다. 그것도 아주 영롱하게.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우주를 품고 있다.

이건 나랑 딱 어울리게 생겼네.

심지어 맘마통 봐라! 어마어마한 크기의 맘마통!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유혹할 괘씸한 크기의 맘마통이 있다!

아우. 이건 정말 못 참죠.

“존나 예쁘네. 이런 애가 마왕과 용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뭐 그런 또라이들 많지. 사소한 이유 하나만으로 영웅이 된다거나.”

그렇다면 나에게도 굴러들어올 수 있는 거 아닌가?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 것 같은데. 이건.

어쩌면 이 세상에 묶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살기 힘든 세상보다야 이쪽 세상이 훨씬 낫잖아!

이런 존재가 마왕이고 용사고 한다면 그 어떤 것도 꼴릴 것이다.

음 한번 노려볼까? 문제는 어떻게 데려오느냐인데.

“데려올 방법이 있을까?”

[“올리비아는 대륙 제일의 마법사입니다. 그녀가 노력하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그럼 올리비아란 여자를 유혹해야 하나?

“대륙 제일의 마법사면 나와 비교했을 때 어때?”

[“음. 어느 한쪽이 강하다고 판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 그쪽도 대륙 최강자 중 한 명이란 건가.

머릿수를 생각하면 올리비아 같은 인물은 정말 강한 편일까.

결국 노오오오력은 중요하다.

마이 네임 이즈 유은하.

원하는 여자는 어떻게든 얻고 만다!

문제는 다시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아니, 잠깐. 나 작가잖아.

­나는 조금 전 전화한 올리비아에게 다시 연결된다.

나는 마석을 잡고 그런 설정을 넣었다.

조금 머리가 띵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뭐 괜찮다.

저 거대한 맘마통과 여자를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물론 작가 모드가 되어야겠지.

애초에 이쪽이 본래 성격이기도 하고.

“여보세요?”

나는 통신마석에 대고 말했다.

[“아니, 뭐야 발신도 가능해?”]

아니, 여기를 뭘로 보고.

확실히 내가 아니면 다시 연락하기 귀찮기야 하겠지만.

“안녕하세요. 아까는 실례가 많았네요. 제 이름은 유은하라고 하며 대한민국 백화교 자치령의 단장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고도. 상대가 경계를 풀도록 자기소개를 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은?”

“아, 접니다만. 장난 전화인 줄 알았거든요.”

제발 이 부분은 그냥 넘겼으면.

[“장난 전화? 아. 대충 뭔지 알겠네요. 알겠습니다.”]

큭큭큭. 그래. 일단 이런 식으로 방심시키고 휙 하고 낚아채는 거지.

반응을 보니 마왕과 싸우는 것에 지친 모양이다.

이러면 어쩔 수 없거든요. 결국 천천히 나에게 넘어올 것이다.

자, 이제 떠보는 거다.

“아무래도 그쪽 세상이랑 이쪽 세상이 다를 수도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볼 수 있을까요?”]

[“거긴 혹시 마왕이나 인류의 적이 있습니까?”]

인류의 적이나 마왕. 없는 건 아니지.

대격변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던전이 바로 그거니까. 괴수들이 그 즈거니까.

“없는 건 아니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적은 아니고 음. 돈벌이나 국력과시용 적? 은 존재합니다.”

이제 이쪽 괴수들은 고작 그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까.

괴수들을 잡아 돈을 벌고 괴수들을 쉽게 잡아 나는 이만큼 존나 센 헌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하하하 하고 밝히는 거지.

“혹시 이 세상에 오실 생각이 있나요?”

[“흠.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세상이기는 합니다만.”]

“그럼 당장 오시죠!”

바로 유혹해버리고 말았다.

[“잠시만요. 갈 수 있는지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다시 연락을 주실 수 있나요?”]

“네! 킥킥”

[“어, 음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래. 여기까지는 매우 좋았다.

나는 호쾌하게 웃었다.

내 영향력을 받지 않은 맘마통이 존재하는 세상!

생각 같으면 내 쪽이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히로인들을 두고는 무리다.

어쨌든 이것으로 저쪽과도 연결되었으니 지금 당장은 만족스럽다.

“큭큭큭. 이로써 다른 세계의 맘마통도 GET! 악!”

뒤에서 꿀주먹이 떨어졌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보인 것은 붉은 십자선이!

“GET은 무슨 GET이야! 아 어이가 없네. 왜 보는 것마다 그렇게 꼬셔대는 건데?”

지연이다. 지연이가 눈동자의 크로스 헤어를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어우야. 저거 가끔 보면 무서워.

저기 걸려들면 진짜 쿨타임 상관없이 바로 강간당한다 이 말이지.

“아니, 그게 저어.”

“이런 개보지년이 진짜. 야. 얼마나 더 늘려야 속이 시원해?”

내 보지가 만족할 만큼?

말대답하려다가 지연이의 눈이 나를 죽일 것 같아서 참았다.

용용이는 착한 아가야.

“그렇지만 이 마석 너머에 맘마통이 있는데! 솔직히 판타지 세계의 사람 궁금하지 않아?”

“그건 음.”

아마 궁금하겠지!

무려 판타지 세상이다. 이 말이야!

“그보다. 응? 레이첼에게도 허락받을 테니까. 응? 엄청. 엄청 예쁘다니:까?”

“나보다?”

“으으음. 외모로만 치면 비슷한 수준?”

나를 노려보는 시선이! 무섭다!

딱 비슷한 수준인데.

한참 나를 노려보던 지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에휴. 이번 딱 한 번이야? 나만큼이라니 궁금도 하네.”

“오예.”

“레이첼에게는 네가 알아서 허락받어. 뱀탕 먹어도 쉴드 못쳐주니까.”

사후 서비스는 거기까지 좀 도와줘야지.

설마. 나보고 뱀탕을 먹으라는 소리인가?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