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아침 일곱 시의 지하철, 한 남자가 재빠르게 닫히는 문에 뛰어 들어갑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이지요. 하지만 지하철이 뭔가 이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남자의 눈앞에서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다 죽여버립니다. 만원이던 지하철의 생존자는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한 명은 식물인간입니다. 예, 주인공이겠죠?”
아이콘의 색깔처럼 레드 오션 중에서도 레드 오션이라는 뉴튜브의 리뷰 시장.
그 정글 속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웹타쿠의 리뷰 솜씨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지하철의 참사는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헌터물이니 역시 게이트가 빠질 수 없겠죠. 도심 여기저기에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들이 침략합니다. 주인공의 집에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아들이 공격당하는 순간, 주인공은 병상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클리멘타인이냐고요? 에이, 말이 너무 심하시네!”
말 자체는 빨랐지만 악센트를 적절히 줘서 랩퍼들의 가사처럼 귀에 쏙쏙 들어왔고, 내용 또한 몇 번이나 고심해서 선정한 느낌이 났다.
적당히 섞은 유머도 과하다는 느낌 없이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 주인공의 아들은 이미 사라진 후입니다. 아버지는 아내의 시체를 묻어 주며, 반드시 아들을 찾을 것을 맹세하지요.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흔하디흔한 헌터물이죠?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묘미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게이트는 그냥 천재지변에 가까워요. 악당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조폭이지요!”
형우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라는, 미증유의 천재지변.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오직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조직폭력배 ‘재중파’.
그리고 그런 재중파에게 납치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철호.
그것이 형우가 짠 <아이언 타이거>의 구도였고, 웹타쿠 또한 의도대로 이해한 듯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리고 그 ‘재중파’가 등장한 순간, 이 소설은 더 이상 헌터물이 아니에요. 공포물이지요!”
“…뭐라고? 공포물?”
그 말이 나오는 순간, 형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영상 속 웹타쿠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상황 설정이나 묘사 같은 게 진짜 무서워요. 가끔은 저도 모르게 뒤에 뭐 있는 것 같아서 흠칫흠칫 놀란다니까요. 소설 읽다가 깜깜한 방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거기 있는 거 아니까 당장 나와-!’ 하고 소리쳤다가 아랫집이 올라오고….”
그렇게, <아이언 타이거>가 얼마나 훌륭한 공포물인지를 한참을 설명한 후에,
“<아이언 타이거>의 한줄평! 헌터물인줄 알았어? 사실은 공포물이었습니다!”
라는 말로 8분 30초짜리 리뷰가 끝났다.
형우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심정으로, 끝난 동영상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지, 이게?”
웹타쿠가 리뷰해준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웃음이 안 나왔다. 공포 소설이라니.
분명히 자신은 통쾌한 헌터물로 썼다. 조폭이 나오면 조폭을 물리치고, 삼합회가 나오면 삼합회도 물리치고, 야쿠자가 나오면 야쿠자도 물리치고, 배신한 옛 동료도 물리치면서 실종된 아들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약간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기는 줬다.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독자가 모르도록 수를 좀 썼다. 또, 묘사를 좀 실감나게 하기도 했다. 공구리라던가, 집단 자살이라던가….
“…그럴 줄 알았지. 네 소설은 내가 봐도 무서워.”
어느새 찾아온 고덕호 할아버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영화였으면 뒤도 안 보고 19세가 붙었을 걸.”
15년 넘게 근속하다가 칼 맞은 상처로 퇴직한 전직 형사가 무서워할 정도의 소설이라니. 어마어마한 걸 쓰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공포 소설은 아닌데.”
“무서우면 공포 소설이지.”
“…진짜 아닌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형우는 그대로 휴대폰을 들어 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해석의 차이.
사실 소설가의 의도와 독자의 읽는 방식이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이 좋은 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콜필드’라는 청년은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되는데, 그런 콜필드의 꿈은 ‘위선자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콜필드는 낭떠러지가 가득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자처한다.
‘아이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잡아 줄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잖아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위선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작가는 이 캐릭터를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구상했지만, 안타깝게도 마크 채프먼이라는 독자는 이 캐릭터를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말았다.
그는 ‘위선자를 없앤다’라는 단어에만 심취하여, 1980년 총을 들고 비틀즈의 맴버인 존 레논을 암살한다. 그 이유는- ‘위선자를 없애기 위해서’.
이 일로 인해, 세상에는 처음으로 ‘작가 책임론’이라는 말이 대두되었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자신의 작품을 해설할 의무를 가지는가?
당시에는 뜨거운 감자였지만, 21세기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 대답은 확실하게 NO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독자에게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은 이미 작품을 완성한 데서 작가로서의 의무를 다했으니,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이 어떻게 해석되든 그건 그 작품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아직 작가의 손을 떠나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렇게 한참을 머리를 긁적대고 있던 차, 지원이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회의가 좀 길어져서요.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예요? <아이언 타이거>가 공포 소설 취급을 받는다니?”
“…그게요.”
웹타쿠의 리뷰를 본 후에, 형은 곧바로 자신의 소설 <아이언 타이거>를 찬찬히 살펴봤다.
<전설의 보안관>의 강점이 시원시원한 전개였다면, <아이언 타이거>의 강점은 강렬한 캐릭터성과 거기에 따르는 세밀한 묘사였다.
“넓은 것과 깊은 것이군요.”
“맞아요.”
소설론에 따르면, 인간이 놀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넓어지는 즐거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심화하는, 깊어지는 즐거움. 대부분의 ‘놀이’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RPG게임으로 비유하자면, ‘탐험’은 넓어지는 즐거움이고 ‘레벨업’은 깊어지는 즐거움이다.
“<전설의 보안관>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생소한 장르니 모험의 재미를 우선시했고, 이번 <아이언 타이거>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헌터물이라 전개보다는 묘사와 캐릭터에 공을 좀 더 들였는데….”
문제는 묘사가 너무 섬세하다는 거였다.
한 평론가는 ‘공포란 무언가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묘사란 확대와 성질이 같기 때문이다.
100m 밖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해 보인다.
1m 거리에서 보면, 그 사람의 특징이 보인다. 외모나, 흉터나, 키 같은 것.
그걸 더더더 확대해서 1cm, 1mm, 그보다 더 가까이 본다면…?
아무리 잘생긴 사람이라도 모공이나, 그 안에 있는 모낭충이나, 표피 세포까지 잘생기지는 않았을 테다. 필연적으로 징그러움과 괴이함, 즉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으음, 맞아요. 형우 님 소설에 나오는 범죄 묘사는 좀 무서운 데가 있죠. 뭐랄까, 단어가 자극적인 건 아닌데 디테일이 무섭다고 해야 하나?”
당연히 디테일이 좋을 수밖에 없다.
직접 봤으니까.
하지만 고덕호가 여간해서는 비밀로 해 달라고 했으니, 굳이 말하지는 않고 말을 돌렸다.
“…아무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기존에 잡아뒀던 설정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독자니즈에 맞춰 공포소설 쪽으로 방향을 꺾느냐에 대한 질문이었다.
“작가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제 생각에는, 아무리 그래도 기본 노선으로 가는 쪽이….”
“흐으음.”
갑자기 지원이 노인 같은 소리를 낸 탓에, 형우는 살짝 움찔했다.
“…혹시, 다른 걸 염두에 두고 계셨나요? 매니저님 생각도 좀 듣고 싶은데요.”
기다렸다는 듯이 지원이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한 만화의 표지였다.
“이 만화 혹시 아세요?”
“<가정주부 히트맨 리본>이잖아요?”
일본의 만화잡지인 주간 점프에서 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피아를 소재로 한 초능력 액션 만화였다.
“사람들이 잘 기억은 못 하지만, 사실 이 만화 시작은 액션 만화가 아니라 개그 만화였거든요. 하지만 정작 개그물일 때에는 잘 나가지 못하는 작품이었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작가는 개그물을 그리고 싶었지만, 사실 액션을 더 잘 그렸다. 그제야 형우는 지원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제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좋아하는 걸 하라는 거군요.”
“네. 결국 소설이란 건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지라… 아쉽긴 하지만 여기서는 공포 소설로 가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일 것 같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흐음.”
언뜻 들으면 정설이지만, 지원의 제안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대중성의 문제다. 헌터물에 비하면 공포 소설은 팬층이 옅다.
액션 영화나 로맨스 영화를 엄청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공포영화는 아예 못 보는 사람도 많다.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장르라는 뜻이다.
형우의 첫 작인 <전설의 보안관>도 마이너 중의 마이너인 서부극이긴 했지만, 공포 소설과 서부극은 그 궤가 좀 달랐다.
서부극이 잘 몰라서 꺼려지는 장르라면, 호러는 아는 맛이긴 한데 그게 너무 강렬해서 꺼려지는 장르다. 낯선 음식과 엄청 매운 음식의 차이랄까.
소설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좀 컸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장르가 바뀐다는 건, 지금까지 짜왔던 설정들을 한 번 엎어야 한다는 것과 진배없는 이야기니까.
“돈까스 전문점의 우동이 맛있다고 간판을 우동집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형우의 말에, 지원이 난색을 표했다.
“글쎄요, 안 될 건 또 없지 않나요? 제 생각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원과 형우, 어느 쪽도 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서, 쉽사리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일단 아직 유료화가 진행된 것도 아니고, 시간은 좀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는 건 어떠실까요?”
“저도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생각을 좀 더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이 정도로 오늘의 대화를 일단락지었다.
“일단 편집자니 제 의견을 말씀드리긴 했지만, 저희는 어디까지나 작가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니까요, 언제라도 부담 갖지 말고 연락 주세요. 아, 이번에 홍삼 보냈으니까 꼭꼭 챙겨 드시고요! 저는 회의가 있어서 이만.”
“네, 나중에 뵐게요.”
그 말을 끝으로, 지원이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꽤 바쁜 모양이다.
전화를 끊은 후, 형우는 그 자세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어쩐다.”
계획대로 소설을 진행해 완벽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임기응변으로 방향을 꺾어 완전을 추구할 것이냐.
“참치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뺘악.”
나도 모르겠다는 듯이, 참치가 우짖었다.
이 정도는 직접 선택하라는 건가, 그 정도로 이해했다.
* * *
C&N의 장르소설 편집부.
“다들 모였나?”
평소처럼 공판석이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원이 물꼬를 텄다.
“…C&N 장르소설 공모전 2주 차 결산입니다. 응모 작품은 총 스물두 작품이며, 그중에서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결과를 알고 있는 몇몇 직원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하나도 없습니다.”
지원도 생각 같아서는 의자에 앉아 고개라도 숙이고 싶었지만, 과분하게도 달고 있는 ‘수석 편집자’라는 직함 때문에 그럴 수조차 없었다.
“미쳤지, 아주?”
역시나, 공판석의 표정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공모전이라고 공모만 기다리면 저번처럼 망하는 거야. 직접 찾아다니라고!”
공판석이 말하는 ‘저번’은 작년에 있었던 제5회 C&N 장르소설 공모전을 뜻했다. 응모 수도 적은데다가 작품의 질조차 개판이라 결국 ‘대상 없음’으로 공모를 마쳐야만 했다.
저작권 먹튀라느니, 보여주기식 공모전이라느니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이전 편집장이 잘려 나가고 공판석으로 교체된 데에는 그 사건의 영향이 꽤나 컸다.
“…대체 전임 편집장이 얼마나 편하게 굴었기에 니들 일솜씨가 이따위야? 일하기 싫으면 사표를 내던가!”
공판석의 폭언에, 몇몇 팀원들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니까 아마, ‘공모전에 공모작이 없는데, 저희가 뭘 어떻게 합니까?’ 같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말이 나왔기에 말인데, 작년에도 편집부가 일을 똑바로 안 해서 망했다기보다는 같은 시기에 대형 공모전 하나가 겹쳐서 망한 것에 가까웠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봤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등의 이야기나 들을 것이 뻔하니 참고 있는 거다.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갚아야 하는 대출금과 한 달 뒤에 예약해 놓은 뮤지컬 티켓을 생각하니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그런 지원의 귀로 공판석의 말이 따발총처럼 박혔다.
“불법만 아니면 편법이든 뭐든 좋아. 아니, 안 들킬 자신 있으면 불법이어도 돼! 어떻게든 공모작 끌어모아! 그거 안 되면, 다음에 의자 몇 개 없어져 있을 줄 알아.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공판석은 씩씩거리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다른 팀원들도 우르르, 몰려나갔다.
“…뮤지컬 볼 때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 살아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원은 묘한 탈력감을 느꼈다. 비어있는 회의실에 앉아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앗.”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목 뒤에 뭔가 따뜻한 것이 닿았다.
“…윤진 님?”
“커피 하나 드세요!”
지원의 목 뒤에 닿은 건 윤진이 방금 뽑아 온 따뜻한 커피였다.
“편집장님도 참, 말 너무 심하게 하세요. 저희가 노는 것도 아닌데, 그렇죠?”
거의 안 들릴 듯한 작은 소리.
그렇게 말하고서도, 제풀에 놀란 듯이 미어캣처럼 상체를 들어 올려 좌우를 살폈다. 저렇게 깡이 없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나 말 것이지.
“후훗.”
지원은 그 모습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윤진의 두 귀가 빨개졌다.
“왜, 왜 웃어요?”
“자기 사수 컨디션 안 좋은 것도 알고. 윤진 님도 이제 직장인 다 됐네요. 사회생활 만렙이네요.”
“치이.”
윤진이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사회생활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