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84화 (84/200)

#83

종합 13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집에 다가왔을 때, 문 앞에는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마치 자그마한 딱장벌레처럼 생겨서 그 이름까지도 비틀(Bittle). 폭스바겐의 주력 경차였고, 동시에 지원의 애마였다.

“작가님, 좀 늦으셨네요!”

“수업이 좀 많은 날이여서….”

“얼마나 많은데요?”

“9시에 학교를 가서… 10시간 내내 연강이요.”

“헉.”

처음에는 에이- 4학년이 학교가 바빠 봐야 얼마나 바쁘겠어요? 라고 농담을 던지려고 했는데, 시간을 듣자마자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저, 약은 잘 챙겨 드시고 계시죠?”

“편집자님이 주신 한약 말이죠? 늘 고맙게 먹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한 포씩 먹어요.”

문창과의 농담으로, 모든 문창과생은 니코틴과 카페인, 알코올 중 한 가지에는 중독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형우도 당시에는 전적으로 공감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2% 정도 부족한 농담이다. 농담이 좀 더 완벽해지려면 품목 하나를 더 추가해야 옳다.

‘진세노사이드.’

다른 말로는 사포닌이라고도 한다. 홍삼에 들어 있는 성분인데, 소화 흡수를 돕는 데다가 눈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는 좋은 성분이다.

괜히 지원이 형우에게 홍삼을 선물로 준 것이 아니다. 형우의 생활 패턴은 과장을 조금 더하면 죽기 딱 좋았다. 식사는 불규칙에, 수면도 불규칙. 몸을 잔뜩 혹사하는 데다가 하루 종일 앉아서 글만 쳐다보고 있다.

“다 닳았네요.”

노트북 앞에 놓인 컴퓨터 의자를 보고 지원이 중얼거렸다. 사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등받이와 엉덩이 부분이 새하얗게 바랬다.

“신발은 하나도 안 닳았던데.”

그러니까, 밖에는 잘 안 돌아다니고 집에서 글만 쓴다는 뜻이었다.

글은 안 쓰고 나돌아다니기만 하는 무책임한 작가들보단 백 배 나았지만, 그래도 걱정은 좀 됐다. 지원은 그대로 챙겨 온 홍삼을 내밀었다.

“슬슬 다 드실 때 된 것 같아서, 새로 사왔어요.”

“이런 거 안 사오셔도 되는데….”

“어허. 그냥 드리는 거 아니거든요? 이번에 <아이언 타이거>가 무료 10위권에 안착한 기념으로 드리는 거예요.”

히어로물에서 헌터물로, 헌터물에서 공포 스릴러로. 지금까지 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아이언 타이거>는 이제 어느 정도 궤도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리뷰글도 많이 생겼다.

[B급인 척하지만, 사실은 S급인 소설]

<아이언 타이거>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리뷰의 제목이었다.

<아이언 타이거>는 제목부터 B급 감성이 가득 묻어나온다. 작품 전개로 들어가면 더 그렇다.

출근하는 직장인, 갑자기 열리는 게이트, 혼수상태가 된 주인공. 갑자기 눈을 뜨고 숟가락으로 첫 번째 악당을 해치운다.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내기 위해 백두산의 신궁에게 활을 배우고, 숭산의 고수에게 무술을 배우고, 후지산의 사무라이에게 검술을 배운다. 모든 게 B급이다.

하지만, 그 B급 감성 속에는 늘 작가의 주제의식에 대한 맹렬한 통찰이 들어가 있다. 처음부터 질문은 하나다.

‘인간은 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작품이 더 전개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리뷰글이 아닌데.’

그 리뷰를 처음 읽었을 때, 지원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웹소설의 리뷰라고 하면 재미있다, 통쾌하다, 몰입도가 높다, 캐릭터가 입체적이다 등등 소설의 주제적인 부분보다는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에 조금 더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리뷰의 경우에는 정반대였다.

“마치 전문가가 쓴 것 같네요.”

글의 얼개부터 개요까지. 글쓰기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썼다고는 믿기 힘든 퀄리티였다.

“그렇네요.”

과 특성상 평론 같은 것을 읽고 쓸 일이 많았던 형우도 지원의 의견에 공감했다. 뭣보다 주제 부분을 잡아낸 것이 퍽 신기하게 느껴졌다.

‘‘인간은 변할 수 있는가’라….’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언 타이거>를 집필할 때 딱히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갖고 쓰지는 않았다. 있다고 한들, 딱 모두가 갖고 있는 것 정도였다.

헌터물이니 통쾌하게 쓰자. 공포물이니 무섭게 쓰자. 웹소설이니 재미있게 쓰자.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저 리뷰가 틀렸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치에 맞네요.”

주제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만들어낸다. 한 유명한 문학 평론가가 했던 말이다.

인문학이란 이공계와는 꽤나 달라서, 어떤 절대적인 공식이라는 게 존재하지를 않는다. 문학은 그중에서도 특히 상대적이다. 누군가의 해석이 다른 누군가의 해석보다 타당하다면, 그것이 주류가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현재 나온 해석들 중에서는, 지금 형우가 보고 있는 리뷰가 가장 이치에 맞고 타당했다.

“예술성이라… <전설의 보안관> 때도 못 들어본 건데.”

전작에서는 재미있다든지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예술적이라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뭔가, 비슷한 칭찬이여도 뉘앙스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형우는 그 이유까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독창성.’

<전설의 보안관>은 마이너 장르인 서부극이었지만, 그 진행 방향은 정통 서부극의 틀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아이언 타이거>는 메이저 장르인 헌터물의 형식을 택했지만, 그 안에 스릴러 요소를 섞어 넣어 반전을 추구하는 등의 많은 실험 요소를 집어넣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전설의 보안관>은 정석대로 만든 똠양꿍(태국 요리의 일종)이고, <아이언 타이거>는 독창적으로 만든 짜장면이랄까.

“참 아이러니하네요.”

마이너만 쓰면 힙스터 취급을 받을까 싶어 메이저 장르를 쓰기로 결심했는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특이한 작가 취급을 받게 되다니.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너무 좋아 보이시는데요.”

“세상에 자기 작품이 예술적이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그렇네요. 아무튼 이 추천글은 진짜 봐도 봐도 잘 썼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분명 전문가겠죠?”

“글쎄요. 저것만 봐서는 모르겠는데요.”

이게 정식으로 등재된 A4 10p 규격의 평론이었다면 모를까, 저 짧은 글만 봐서 전문가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기야 뭐, 작가님이 좋다면 좋은 거지. 전문간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죠?”

“어라, 편집자님은 안 기쁘세요?”

“안 기쁜 건 아닌데, 좀 덜 기쁘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편집자로서는 자기 담당 작가의 작품이 ‘예술적이다’보다는 ‘엄청 재밌다.’라는 평가를 받는 쪽이 조금 더 기뻤다.

“…예술은 재미없잖아요.”

“엥. 그거 완전 편견인데요.”

“알아요. 편견은 고치는 게 맞죠. 하지만.”

지원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저희가 다 고칠 수는 없는 거잖아요?”

* * *

두 시간 후.

볼일을 마친 후 지원은 그대로 출판사로 돌아갔고, 형우는 지원을 마중하는 김에 동네를 한 바퀴 쭉 돌았다. 너무 외출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원의 걱정스러운 말 때문이기도 했다.

“…학교 오가는 정도면 되겠지.”

30분쯤 걷다 보니 학교가 보였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가운데, 상호 하나가 눈에 띄었다.

<두유집>

처음 보는 사람이면 두유 전문점도 있나, 하고 오해할 만한 상호지만, <두유집>은 두유 전문점이 아니라 카페다.

두유는 콩을 갈아 끓여낸 음료고, 커피도 어떻게 보면 콩을 갈아 끓여낸 음료니까. 그 점을 돌려서 말장난을 한 건데, 너무 크게 돌렸다는 생각이 없지 않는 느낌의 상호랄까.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샷 두 개 넣어서.”

“마카롱은 안 사세요?”

“커피만 주세요.”

잠시 후, 형우는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쭉, 빨았다.

‘뭐야 이거?’

형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더럽게 맛이 없었다. 형우는 아메리카노를 대충 구석으로 밀었다. 물로 입을 한번 헹군 뒤, 형우는 가방 안에서 계약서 하나를 꺼냈다.

지원이 주고 간 계약서였다.

‘유명 작가들에게 특별 심사를 시킨다라….’

확실하게 마케팅이 될 만했다. 그 대가로 형우에게 지급되는 돈은 300만 원가량. 액수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도 있었다.

‘…다른 작가들과 친해질 기회야.’

지난번 천우희에게 로맨스를 배웠던 경험을 통해 형우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가끔은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현업 종사자의 말 한마디가 더 도움이 된다.’

들어보니 이번 행사에 초청되는 작가는 형우와 천우희 말고도 다섯 명 정도가 더 있다고 했다. 모두가 C&N에서 엄선해서 뽑은 최고의 작가들. 기라성같은 작가들과 자연스럽게 친목을 다질 기회라면야, 300만 원을 내라고 해도 기꺼이 냈을 테다.

‘스릴러나 헌터물을 쓰시는 작가님들과 좀 친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된다면 <아이언 타이거>는 어쩌면 한 번의 도약을 더 해낼지도 몰랐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형우는 가방을 뒤져 두꺼운 노트를 하나 꺼냈다.

평소 스티븐 킹의 말이라면 대부분 성경처럼 따르는 형우였지만, 그중에도 몇몇 예외는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이디어 노트에 대한 의견이었다.

‘아이디어 노트라는 건 필요가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고, 좋은 아이디어라면 다시 기억날 테니. 비슷한 의미로 플롯 또한 굳이 짤 필요가 없다. 좋은 이야기는 스스로 발전해나가는 법이다.’

한다은 교수님은 스티븐 킹의 이 의견을 딱 잘라서 ‘잘난 척’이라고 일축했다.

‘본인이 너무 천재적이다 보니, 다른 작가들이 자기보다 멍청하다는 걸 깜빡한 거지. 그러니 제자들아, 이런 말일랑 듣지도 말고 항상 아이디어 노트를 챙겨 다니렴. 플롯도 꼭 짜고!’

1학년 때 그 수업을 들은 이후로, 형우는 언제 어디서나 아이디어 노트를 챙겨 다녔다. 휴대폰이나 아이패드로 대처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형우는 아무래도 노트에 바로바로 쓰는 게 제일 편하게 느껴졌다.

<아이언 타이거>에 필요한 질문들.

그렇게 제목을 적은 뒤, 밑에 목차를 만들었다.

-캐릭터의 수는?

-주인공은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가?

-히로인은 몇 명? 비중은 어떻게?

-설정과 스토리의 비중은?

….

모두 <전설의 보안관>에서는 해당하지 않았던 헌터물만의 고유한 특징들이었다.

형우는 거기에 하나하나 나름의 답을 달았다.

‘실제 역사를 베이스로 한 서부극과 달리 헌터물은 <와우> 등의 MMORPG를 기반으로 하는 장르야. 그러니까 포지션별 등장인물이 많아질 수밖에….’

투두둑.

한참이나 글을 써 내려가는데, 갑자기 노트 위로 검붉은 액체가 투둑 떨어졌다.

처음에는 만년필 촉이 부러져서 잉크가 터졌나 했는데, 아니었다.

“…이런.”

액체는 펜촉이 아니라 코끝에서 나왔다.

뒷목이 찡하면서 손끝이 살짝 떨렸다.

신체가 한계에 달했을 때 나오는 몸의 반응, 체육학 용어로 하면 ‘리바운드’라는 증상이었다.

‘…잠깐 쉴까.’

전에 리바운드가 왔을 때는 쉬지 않고 억지로 글을 쓰다가 그대로 병원에 실려 갔었다.

‘병원을 또 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형우는 그대로 쇼파에 기댔다.

‘…병원 가면 또 글을 못 쓰니까. 낭비잖아.’

샷 세 개짜리 아메리카노가 무색하게, 1분도 안 돼서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으으음.”

꿈자리가 불편한지, 잠깐 몸을 뒤척였다.

손끝에 뭐가 사락, 닿았던 것 같기도 했다.

* * *

“손님, 일어나셔야지요.”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알바생 한 명이 형우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곧 폐점 시간이라서요.”

“……폐점 시간이요?”

재빨리 시간을 확인해 보니 11시.

4시간이 넘게 자 버린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형우는 테이블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당황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아이디어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저, 저기요!”

형우는 다급하게 알바생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여기에 노란색 노트 하나 있지 않았나요?”

“노란색 노트라면, 혹시 저거 말씀이신가요?”

알바생이 형우의 테이블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그 위에는 다소곳하게, 형우의 아이디어 노트가 올려져 있었다.

“휴우.”

형우가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커다란 안도감이 마음에 자리했다.

그대로 나가려는 순간, 예의 그 알바생이 형우의 앞을 막아섰다.

“손님, 혹시 이거 손님 물건 아닌가요?”

알바생의 손에는 볼펜 하나가 들려 있었다.

딸깍이 부분에 귀여운 플라스틱 참새가 장식되어 있는 볼펜이었다.

“손님이 계신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거든요.”

기억에 있는 볼펜이었다.

‘선배! 참새 볼펜 엄청 귀엽지 않아요? 뭔가 참치 같기도 하고! 선배도 하나 드릴까요?’

‘…싫어. 실용성과 디자인을 동시에 챙긴다면 모를까, 저건 디자인을 위해 실용성을 내다 버렸잖자. 잡스 말 몰라? 실용이 아름다움을 만든다.’

‘에휴, 그렇게 실용만 따질 거면 선배도 공장에서 휴대폰 만들어야지. 소설은 왜 써요? 됐어. 필요 없다는 사람한테 나도 안 줘요.’

그렇게 말하며 형우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사람은… 서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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