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윤정아는 그렇게 말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한바탕 바람이 불고 지나간 C&N의 장르소설편집부는 마치 행보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군수창고를 방불케 했다.
“아니,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가장 먼저 투덜거리는 것은 졸지에 편집부의 최고참이 되어버린 홍 매니저였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C&N 장르소설 편집부의 사정은 거의 세계 2차대전 말미의 일본군에 비유해도 될 정도로 최악 오브 최악이었다.
편집부 최고 권한자였던 편집장과 수석 편집자가 인수인계도 없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고, 실무진을 편성해 줘야 할 박재진 사장 또한 사내 권력구도에서 밀려나 회사에서 나가버렸다.
“아니, 마린을 뽑으려고 해도 미네랄을 50은 줘야 하는데. 자원 없이 어떻게 결과를 내라는 거야?”
인력이 없어도 상황이 좋으면 어떻게든 물을 탈 수 있고, 상황이 좀 안 좋아도 인적 자원이 풍부하면 노가다 정신으로 역경을 헤쳐나가겠지만, 둘 다 없는데 뭘 하라고 하는 건 너무하다. 홍 매니저가 알기로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역사책에 실린 위인밖에 없었다.
그리고 C&N의 장르소설 편집부 사람들은 솔직히 말해서, 유능하긴 했지만 비범하다고까지 할 만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원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이순신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대로면 작가들 데려와도 케어가 안 될 건데요.”
옆에서 막내 편집자인 윤진이 물었다. 홍 매니저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투덜거릴 말은 백만 개도 넘지만, 그 수많은 말 중 사장님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까라면 까야죠.”
C&N의 수직구조는 마치 게임과도 같다. 플레이어가 아무리 자충수를 신나게 줘도 아바타가 ‘저 플레이어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 없듯이. 사장이 하라는 일을 일개 직원이 안 한다고 뻗댈 수는 없는 법이다.
끝이 개박살이라는 걸 알면서도 달려갈 수밖에 없는 기분은 뭐랄까, 엄청나게 보람 없는 기분이다. 보람이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니 이 악물고 일단 하기는 하지만, 보람 없는 일만큼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도 또 없으니.
“…다른 회사 알아볼까.”
이직이 마려워지는 시즌이었다.
* * *
“이게 진짜 내 소설 속 캐릭터라고?”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던 형우가 입을 쩍 하니 벌렸다. 5분 전에 도착했던 메일 덕분이다.
[빙그레게임즈 : 원안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개당 용량이 40mb가 넘는 그림 파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일러스트가 50개 정도 되니까, 다 합치면 거의 2GB 정도 되는 거네?”
생각보다 용량이 크다는 점이 꽤 놀라웠다.
형우가 지금까지 썼던 소설을 죄다 합쳐도 40mb가 될까 말까였으니까.
“그림쟁이들은 글쟁이보다 훨씬 용량 큰 하드디스크를 써야겠는걸.”
그뿐만이 아니다. 컴퓨터 자체 사양도 좋아야 하고, 그래픽 태블릿이라든지 하는 고가의 장비들도 잔뜩 써야 한다.
“맥북 사느라 돈이 없으면 음대생, 이것저것 사느라 돈이 없으면 미대생, 그냥 돈이 없으면 문창과생이라고 했었지.”
대학 다닐 때 자주 하던 농담에 피식거렸다.
이제 대학 갈 일은 딱 한 번, 졸업식밖에 남지 않은 형우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대학생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뭐 지금은 졸업식 생각할 때는 아니지.”
뚜르르-
형우는 그대로 빙그레게임즈 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지태입니다.”
“…대표님?”
“네, 대표입니다. 누구시지요?”
대표가 직접 전화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살짝 놀랐다. 이게 수평적 기업문화라는 건가?
“저 예전에 뵀었던 작가 참새치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아아, 하는 유지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새치 작가님이시군요. 일러스트 보셨나요?”
“예. 방금 확인했습니다.”
그대로 마우스를 딸칵거려 일러스트를 화면 위에 띄웠다. <아이언 타이거> 속의 등장인물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일러스트 전체적으로 너무 마음에 듭니다.”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도 종종 있었지만, 캐릭터에 대한 오해보다는 재해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낫게 느껴질 정도. 그 점까지 과연 프로답다 싶었다.
하기야, 작가의 생각을 그저 옮기기만 할 뿐이라면 애초에 이 일로 돈을 벌고 있지도 못하겠지.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잘 그려주실 줄은 몰랐어요.”
원론적으로 보자면 계약의 이행에 하나하나 고개 숙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정성을 담은 일 처리에는 호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
빙그레게임즈의 대표인 유지태.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아저씨처럼 보였지만, 역시 스타트업을 넘어 이제 중소기업으로 내달리는 최신 IT업체의 대표라고 할 만했다.
“그 외에 또 궁금한 건 없으신가요?”
“어어, 서비스는 언제쯤 시작하나요?”
“일러스트가 완성되었으니까, 저희 직원들이 뼈 빠지게 일한다면 아마 다음 달쯤에는 프로그래밍을 완료하지 않을까요?”
“다음 달이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흐흐, 이참에 저희 게임 한번 해 보시는 거 어떠세요?”
“이미 깔아 놨습니다.”
요즘 스케쥴이 좀 빠듯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캐릭터들과 콜라보된 게임이다. 흥미가 돋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닐까.
그렇게 유지태와의 전화를 끊고 다시금 일러스트를 감상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가열차게 울었다.
[김뿔테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스패로우 팩토리인가? 하는 생각에 확인했는데, 의외의 이름이 휴대폰 위에 떠 있었다.
요즘 <흡연 검성>이 엄청 잘 나가던데,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하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저기요, 김형우 작가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터져 나오는 김뿔테의 사자후에 형우는 잠깐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네. 방금 저한테 전화가 하나 왔습니다. 그러니까, 출판사에서요!”
“지원 편집자님이요?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 지원 편집자님이면 작가님한테 전화를 하지도 않았죠. 스패로우 팩토리가 아니라, C&N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 갑작스러운 발언에 형우는 살짝 당황했다.
“…혹시 계약을 요청하던가요?”
물어볼 필요도 없었을 것 같다. 하기야, 편집부에서 작가에게 연락할 일이 몇 개나 되겠는가. 작가를 빼내려는 거다.
그 행보가 딱히 놀랍지는 않았으나, 당황스럽기는 했다.
“연재가 끝난 작가를 빼돌리는 것도 아니고, 연재 중인 작가를 이렇게 대놓고 빼돌린다고요? 계약 부분이 걸리지 않나요?”
“그게… 위약금까지 내주겠다고 하더군요. 변호인단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거기에 선인세도 따블로 준답니다.”
그 말이 뜻하는 건 간단했다.
출혈경쟁. C&N이 손해를 보고 피를 흘리더라도 그 전에 스패로우 팩토리를 먼저 말려 죽이겠다는 거다. 그 후에는 아예 회사를 회생 불가 상태까지 몰아넣던가, 모노폴리를 시도하겠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끔 나온 소재라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당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출혈경쟁이라니.”
지금 C&N과 스패로우 팩토리의 차이는 코끼리와 쥐의 크기 차이와 같다. 같은 피를 흘려도 C&N은 멀쩡하지면 스패로우 팩토리는 죽는다.
“그래서, 김뿔테 작가님은 어떻게 하시기로 했습니까?”
“그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만약 김뿔테가 C&N으로 간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것 같기는 하다. 더 좋은 대우를 해 주겠다는데, 안 가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니.
하지만 다음에 나온 김뿔테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요? 왜요?”
“그게, 헌터물이긴 하지만 <흡연 검성>은 기본적으로는 무협이잖아요?”
김뿔테는 뜬금없이 소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기는 하죠.”
“저는요, 의협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무협 쓰는 사람이 사리사욕에 물들어 의인을 버려서야 도리가 아니지요.”
묘하게 무협소설스러운 말투.
하지만 그 의미는 확실하게 전달이 됐다.
소설을 잘 쓰게끔 도와준 스패로우 팩토리와 자신에게 등을 돌리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고맙습니다. 김뿔테 작가님.”
“어어어, 아닙니다 작가님! 감사는 제가 해야지요!”
수화기 너머로도 김뿔테가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협객이라. 유치하고, 현실적이지 않게 들리지만. 동시에 낭만이 있다.
“김뿔테 작가님은 좋은 무협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형우는, 그대로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향하는 곳은, 당연히 스패로우 팩토리다.
김뿔테 작가님은 협객이었지만, 모든 소설가들이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일 테니까.
“몇 명이나 빠져나갔으려나.”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타다다닥-
어제까지 좋았던 날씨가 무색하게, 바깥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라고 부르기에는, 그 휘둘림이 예사스럽지가 않다.
“후우.”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혜선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만든 플랫폼, 스페셜 위크에 1차 연재를 계약했던 작가들 열 명 중 빠져나간 것은 총 세 명이었다.
“그래도 전부 다 빠져나가지 않은 건….”
다행… 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뼈아프다.
그래도 이 정도 손해로 그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전적으로 형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C&N은 앞으로 더 박차를 가할 테고, 그럴수록 회사는 점점 위축되어 갈 것이 뻔한데.
“플랫폼 사업을 시작한 게 실수였나.”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어떻게 시작한 사업인데,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일을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의욕이 나지 않았다. 열심히 작업을 해 봐야, 결국 빼앗기고 말 텐데.
지원은 뭐라도 해 보겠다며 급하게 어디론가 동분서주 뛰어다녔지만, 자신은, 솔직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키워나가던 스타트업을 홀라당 빼앗겼던 예전의 기억이 다시금 부글부글 떠오른다. 그 기포의 이름은 무기력이다.
프로답지 않은 자세였지만,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항상 프로다울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딸랑-
그때, 때맞춰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왜 이리 주눅 들어 있어?”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두 손 가득히 홍삼 셋트를 들고 있는 형우였다. 아까 온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왔다.
“아.”
일찍 온 게 아니다. 시계를 보니까, 그냥 자신이 무기력하게 있었던 시간이 긴 거였다.
“뭘 그렇게 싸 들고 왔어. 사장님이 보시면 별로 안 좋아하실 텐데.”
“그래, 그렇게 말하겠지. 편집자가 작가한테 뭐 받으면….”
“…편집자 자격 박탈이라고요.”
지원의 말투를 따라 하며 그렇게 말해 봤지만, 딱히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지쳐 보이는데, 하나 먹고 해.”
형우가 홍삼 뚜껑을 하나 까서 내밀었다. 평소에 한약을 즐기지는 않지만, 일단 주니까 먹었다.
“읏.”
쓴맛이 입안에 가득 감돌았다.
“너무 쓴데.”
“쓰니까 몸에 좋은 거지. 쭉 먹어.”
“…알았어.”
내친김에 형우도 홍삼을 하나 까 들었다. 둘은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홍삼 하나를 다 먹었다.
“빠져나간 작가는 몇 명이야?”
“세 명.”
“생각보다 많이 남았네.”
물이 반이나 남았다, 물이 반밖에 없다, 같은 말장난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찌 됐건 30%가 사라진 건 변함 없는 일이니.
“후우…….”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순간.
형우가 갑자기 테이블을 톡톡, 하고 건드렸다.
“야, 혜선아.”
“…응?”
멍청하게 되물으며 형우 쪽을 바라봤다. 형우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있었다.
“나 오늘 여기서 작업해도 되냐?”
“어?”
“오늘은 집에서 글이 좀 안 써져서. 그래도 되지?”
“뭐, 상관은 없는데….”
“그러면 저 구석에서 할게. 콘센트 아래에 있네. 너 일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겠지?”
“일?”
“어. 너도 고민이 많을 거 아냐.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그렇지.”
“그래, 그러면 열심히 하자. 기대하고 있을게.”
“…나도. 소설 다 쓰면 보여 줘.”
“당연하지.”
형우는 그대로 믹스커피 한 잔을 가져가서 자리를 잡더니 턱, 하고 노트북을 연결했다.
그리고,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빗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해결책이라, 대체 어떻게 해야 스패로우 팩토리를 이용해서 C&N을 때려 부술 수 있을까.
말이 안 된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두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노트북 페이지 위는 하얗게 비어 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세 시간이 지나고.
뭔가를 썼다가, 지웠다가 했다.
쓰면 쓸수록 말이 안 되는 것들 뿐이다. 자신이 어떻게 머리를 쥐어짜 봐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바깥은 여전히 빗소리가 들린다.
타다닥-, 턱.
네 시간쯤 경과했을 때. 노트북을 덮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했어?”
그렇게 물어오는 것은 형우다. 혜선도 빈 노트북을 보여 주기 싫어 그대로 노트북을 접었지만.
턱,
하고 그 순간. 형우가 노트북을 잡았다. 그대로 텅 빈 화면을 바라봤다.
“비었네.”
“…나도 하고 싶어.”
그렇게 변명하듯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자기는 일개 직원일 뿐이니까. C&N을 이길 방법 따위는,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혜선을 바라보는 형우의 표정이 굳었다.
“무능하게 굴지 마.”
형우의 지적에 혜선은 훅, 하고 숨을 들이켰다.
말이 심해서가 아니다.
어디서 들은 적 있는 말이라서였다.
* * *
“소설론 수업 진짜 못 듣겠어.”
7년 전 1학년이었던 형우는 동기인 혜선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 봐도 답이 안 나오는 기분이야.”
그런 형우를 보며 혜선이 피식 웃었다.
“뭐래, 무능하게 굴지 마.”
“뭐어?”
형우가 상처 입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럴 때는 좀 위로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야, 생각해 봐. 일의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뭔가를 못 하는 사람을 보고 무능하다고 하디?”
“...어, 그건 좀 나쁜 사람이지.”
“그래. 무능함이란, 있는 것을 똑바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한테 하는 거야. 지금 너처럼.”
“내가 뭘?”
“너, 나한테 수업 내용 물어본 적 한 번이라도 있어?”
“어…… 없지?”
“그니까 무능하다는 거야.”
혜선이 자신감 넘치는 제스쳐로 자신을 가리켰다.
“너보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왜 나를 활용하지 않아?”
그때 해 줬던 말이, 7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혜선에게 되돌아왔다.
“나를 활용해.”
“너를 활용하라고? 어떻게?”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그게 네 일이잖아.”
형우는 그대로 커피 한 잔을 슥 내밀었다.
“네가 뭘 생각해 낼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생각한 거라면 나는 여간해서는 믿을 거야.”
믿어준다, 라는 그 한마디 가벼운 말이 이상하게도 혜선의 심금을 울렸다.
혜선은 코를 쓱 문지르며, 형우가 내민 종이컵을 받아 홀짝 마셨다.
“너, 그 말 후회하게 될걸. 지금보다 열 배는 바빠질 수도 있어. 그래도 좋아?”
“그거 기대되는데. 나는 워커 홀릭이거든.”
형우는 그대로 커피 한잔을 휘휘 내저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두드리는 소리가 스패로우 팩토리를 가득 채웠다.
비는, 이미 그친 지 오래였다.